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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倭

후한서 동이열전 後漢書 東夷列傳 · 범엽(范曄) · 5세기 (432~445년 무렵) · 단락 6 · 한자 729자 · 낭독 2.9분

「후한서 동이열전」 한 권 「왜」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이백 년 동안 중국이 동쪽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5세기 사람이 정리한 글. 부여·읍루·고구려·동옥저·예·삼한·왜가 차례로 나온다. 삼국지 동이전보다 백오십 해쯤 뒤에 엮이면서 더 이른 시대를 다루므로, 같은 자리를 두고 두 책이 무엇을 덜고 무엇을 보탰는지가 나란히 드러난다. 동명이 활로 물을 쳐 부여를 세운 이야기, 히미코가 왕으로 세워진 내력, 마한이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세운 소도가 여기 실렸다.

1왜 — 백여 나라, 큰 왜왕은 야마대국에 있다

倭在韓東南大海中,依山島為居,凡百餘國。自武帝滅朝鮮,使驛通於漢者三十許國,國皆稱王,世世傳統。其大倭王居邪馬臺國。樂浪郡徼,去其國萬二千里,去其西北界拘邪韓國七千餘里。其地大較在會稽東冶之東,與朱崖、儋耳相近,故其法俗多同。

왜는 한(韓)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어 산과 섬에 기대어 사는데 무릇 백여 나라다. 무제가 조선을 멸한 뒤로 사신과 역참으로 한나라와 통한 나라가 서른쯤인데, 나라마다 다 왕이라 일컫고 대대로 이어 온다. 그 큰 왜왕은 야마대국(邪馬臺國)에 산다.

낙랑군 경계에서 그 나라까지 만 이천 리요, 그 서북쪽 경계인 구야한국(拘邪韓國)까지 칠천여 리다. 그 땅은 대체로 회계 동야(東冶) 동쪽에 있어 주애(朱崖)·담이(儋耳)와 가까우므로 그 법과 풍속에 같은 것이 많다.

2몸에 무늬를 새기고, 뼈를 태워 점친다 — 그리고 지쇠

土宜禾稻、麻紵、蠶桑,知織績為縑布。出白珠、青玉。其山有丹土。氣溫腝,冬夏生菜茹。無牛馬虎豹羊鵲。其兵有矛、楯、木弓,竹矢或以骨為鏃。男子皆黥面文身,以其文左右大小別尊卑之差。其男衣皆橫幅結束相連。女人被髮屈紒,衣如單被,貫頭而著之;並以丹朱坋身,如中國之用粉也。有城柵屋室。父母兄弟異處,唯會同男女無別。飲食以手,而用籩豆。俗皆徒跣,以蹲踞為恭敬。人性嗜酒。多壽考,至百餘歲者甚衆。國多女子,大人皆有四五妻,其餘或兩或三。女人不淫不妒。又俗不盜竊,少爭訟。犯法者沒其妻子,重者滅其門族。其死停喪十餘日,家人哭泣,不進酒食,而等類就歌舞為樂。灼骨以卜,用決吉凶。行來度海,令一人不櫛沐,不食肉,不近婦人,名曰“持衰”。若在塗吉利,則雇以財物;如病疾遭害,以為持衰不謹,便共殺之。

땅이 벼와 삼과 모시와 누에와 뽕에 알맞아 짜고 삼아 명주와 베 만들 줄 안다. 흰 구슬과 푸른 옥이 나고 그 산에 붉은 흙이 있다. 기후가 따뜻하여 겨울에도 여름에도 나물이 난다. 소와 말과 범과 표범과 양과 까치가 없다. 병기로는 창과 방패와 나무 활이 있고 대나무 화살에 더러 뼈로 살촉을 삼는다.

남자는 다 얼굴에 자자하고 몸에 무늬를 새기는데, 그 무늬의 좌우와 크고 작음으로 높고 낮음의 차이를 가른다. 남자의 옷은 다 폭을 가로로 하여 묶어 잇는다. 여자는 머리를 풀어 굽혀 쪽 짓고 옷은 홑이불 같아 머리를 꿰어 입는다. 아울러 붉은 흙을 몸에 바르니 중국에서 분을 쓰는 것과 같다.

성책과 집이 있다. 어버이와 형제가 따로 살되 오직 모여 만날 때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먹는 데 손을 쓰면서도 변두를 쓴다. 풍속에 다 맨발이며 쭈그려 앉는 것을 공경으로 삼는다. 사람들이 술을 즐긴다. 오래 사는 이가 많아 백 살 넘는 이가 아주 많다.

나라에 여자가 많아 대인은 다 네댓 아내를 두고 그 나머지도 더러 둘이나 셋을 둔다. 여자는 음란하지 않고 시새우지 않는다. 또 풍속에 도둑질이 없고 다투어 송사하는 일이 적다. 법을 어긴 자는 그 처자를 몰수하고 무거운 자는 그 문족을 없앤다.

죽으면 상을 열흘 남짓 멈추어 두는데, 집안사람은 울고 술과 밥을 들지 않으며 같은 무리는 나아가 노래하고 춤추며 즐긴다. 뼈를 태워 점쳐서 길흉을 가린다. 바다를 건너 오갈 때에는 한 사람에게 머리를 빗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고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게 하니 이름을 「지쇠(持衰)」라 한다. 만약 길에서 좋은 일이 있으면 재물로 값을 치르고, 병이 나거나 해를 입으면 지쇠가 삼가지 않았다 하여 곧 함께 죽인다.

3왜노국이 조회하고 광무제가 인수를 내리다

建武中元二年,倭奴國奉貢朝賀,使人自稱大夫,倭國之極南界也。光武賜以印綬。安帝永初元年,倭國王帥升等獻生口百六十人,願請見。

건무 중원 이년에 왜노국(倭奴國)이 공물을 받들고 조회하여 하례하매, 사신이 스스로 대부(大夫)라 일컬었다. 왜국의 가장 남쪽 경계다. 광무제가 인수를 내렸다. 안제 영초 원년에 왜국 왕 수승(帥升) 등이 사로잡은 사람 백육십 명을 바치고 뵙기를 원하였다.

4히미코 — 나이 들도록 시집가지 않고 귀신의 도를 섬기다

桓、靈閒,倭國大亂,更相攻伐,歷年無主。有一女子名曰卑彌呼,年長不嫁,事鬼神道,能以妖惑衆,於是共立為王。侍婢千人,少有見者,唯有男子一人給飲食,傳辭語。居處宮室樓觀城柵,皆持兵守衛。法俗嚴峻。

환제와 영제 사이에 왜국이 크게 어지러워 서로 번갈아 치고 쳐서 여러 해 임금이 없었다. 한 여자가 있어 이름을 히미코(卑彌呼)라 하였는데, 나이 들도록 시집가지 않고 귀신의 도를 섬겨 요망한 술법으로 무리를 홀릴 수 있었으므로 이에 함께 세워 왕으로 삼았다. 시중드는 계집종이 천 사람인데 그를 본 이는 적고, 오직 남자 한 사람이 마시고 먹을 것을 대며 말을 전할 뿐이었다. 사는 궁실과 다락과 성책에 다 병기를 들고 지켰다. 법과 풍속이 엄하고 매서웠다.

5구노국과 주유국, 그리고 나국과 흑치국

自女王國東度海千餘里至拘奴國,雖皆倭種,而不屬女王。自女王國南四千餘里至朱儒國,人長三四尺。自朱儒東南行船一年,至裸國、黑齒國,使驛所傳,極於此矣。

여왕의 나라에서 동으로 바다를 천여 리 건너면 구노국(拘奴國)에 이른다. 다 왜의 갈래이나 여왕에게 딸리지 않는다. 여왕의 나라에서 남으로 사천여 리를 가면 주유국(朱儒國)에 이르는데 사람의 키가 서너 자다. 주유에서 동남으로 배로 한 해를 가면 나국(裸國)과 흑치국(黑齒國)에 이르니, 사신과 역참이 전하는 바가 여기서 다한다.

6서복이 갔다는 섬

會稽海外有東鯷人,分為二十餘國。又有夷洲及澶洲。傳言秦始皇遣方士徐福將童男女數千人入海,求蓬萊神仙不得,徐福畏誅不敢還,遂止此洲,世世相承,有數萬家。人民時至會稽市。會稽東冶縣人有入海行遭風,流移至澶洲者。所在絕遠,不可往來。

회계 바다 밖에 동제인(東鯷人)이 있어 스무 남짓 나라로 나뉘었다. 또 이주(夷洲)와 단주(澶洲)가 있다. 전하는 말에 진시황이 방사 서복(徐福)에게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수천 명을 거느리고 바다에 들어가 봉래의 신선을 찾게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고, 서복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감히 돌아오지 못하고 마침내 이 섬에 머물러 대대로 이어 사니 수만 집이 되었다 한다. 그곳 백성이 때로 회계에 와서 저자를 본다. 회계 동야현 사람으로 바다에 나갔다가 바람을 만나 단주로 흘러간 이가 있다. 있는 곳이 아주 멀어 오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