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후한서 동이열전 › 한 권

평어評語

후한서 동이열전 後漢書 東夷列傳 · 범엽(范曄) · 5세기 (432~445년 무렵) · 단락 2 · 한자 229자 · 낭독 0.9분

「후한서 동이열전」 한 권 「평어」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이백 년 동안 중국이 동쪽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5세기 사람이 정리한 글. 부여·읍루·고구려·동옥저·예·삼한·왜가 차례로 나온다. 삼국지 동이전보다 백오십 해쯤 뒤에 엮이면서 더 이른 시대를 다루므로, 같은 자리를 두고 두 책이 무엇을 덜고 무엇을 보탰는지가 나란히 드러난다. 동명이 활로 물을 쳐 부여를 세운 이야기, 히미코가 왕으로 세워진 내력, 마한이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세운 소도가 여기 실렸다.

1논하여 이르기를 — 여덟 조를 두었더니 문을 잠그지 않았다

論曰:“昔箕子違衰殷之運,避地朝鮮。始其國俗未有聞也,及施八條之約,使人知禁,遂乃邑無淫盜,門不夜扃,回頑薄之俗,就寬略之法,行數百千年,故東夷通以柔謹為風,異乎三方者也。苟政之所暢,則道義存焉。仲尼懷憤,以為九夷可居。或疑其陋。子曰:“君子居之,何陋之有!”亦徒有以焉爾。其後遂通接商賈,漸交上國。而燕人衛滿擾雜其風,於是從而澆異焉。《老子》曰:“法令滋章,盜賊多有。”若箕子之省簡文條而用信義,其得聖賢作法之原矣!

논하여 이른다. 「옛날 기자가 쇠하는 은나라의 운수를 저버리고 조선으로 피하여 갔다. 처음에는 그 나라의 풍속이 알려진 바 없었으나, 여덟 조의 약속을 베풀어 사람들에게 금할 것을 알게 하매 마침내 고을에 음란함과 도둑질이 없어지고 문을 밤에도 잠그지 않았다. 완악하고 엷은 풍속을 돌이켜 너그럽고 간략한 법으로 나아가 수백 년 천 년을 행하였으니, 그러므로 동이가 두루 부드럽고 삼가는 것을 기풍으로 삼아 세 방위의 다른 이들과 달랐다.

진실로 정사가 펴지는 곳에는 도의가 깃든다. 공자가 분함을 품고 구이에 살 만하다 여기매 더러 그 누추함을 의심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살거늘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 또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그 뒤에 마침내 장사치가 오가고 차츰 위쪽 나라와 사귀었다. 그런데 연나라 사람 위만이 그 기풍을 어지러이 뒤섞으매, 이에 따라 엷어지고 달라졌다. 『노자』에 이르기를 「법령이 늘어날수록 도적이 많아진다」 하였으니, 기자가 조문을 덜어 간략히 하고 믿음과 의로움을 쓴 것 같은 것은 성현이 법을 만든 근본을 얻은 것이라 하겠다.」

2기려 이르기를 — 좇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하였다

贊曰:宅是嵎夷,曰乃暘谷。巢山潜海,厥區九族。嬴末紛亂,燕人違難。雜華澆本,遂通有漢。眇眇偏譯,或從或畔。

기려 이른다.

우이에 자리 잡으니 이름하여 양곡이라. 산에 깃들고 바다에 잠겨 그 구역이 아홉 겨레. 진나라 끝에 어지러워 연나라 사람이 난을 피해 왔네. 중화를 섞어 뿌리를 엷게 하고 마침내 한나라와 통하였네. 아득히 먼 곳의 두 겹 통역이여 좇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