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의 기근養和の飢饉
1양화의 기근 — 곡식이 여물지 않다
又養和のころかとよ、久しくなりてたしかにも覺えず、二年が間、世の中飢渴して、あさましきこと侍りき。或は春夏日でり、或は秋冬大風、大水などよからぬ事どもうちつゞきて、五糓ことごとくみのらず。むなしく春耕し、夏植うるいとなみありて、秋かり冬收むるぞめきはなし。これによりて、國々の民、或は地を捨てゝ堺を出で、或は家をわすれて山にすむ。さまざまの御祈はじまりて、なべてならぬ法ども行はるれども、さらにそのしるしなし。京のならひなに事につけても、みなもとは田舍をこそたのめるに、絕えてのぼるものなければ、さのみやはみさをも作りあへむ。念じわびつゝ、さまざまの寳もの、かたはしより捨つるがごとくすれども、さらに目みたつる人もなし。たまたま易ふるものは、金をかろくし、粟を重くす。乞食道の邊におほく、うれへ悲しむ聲耳にみてり。さきの年かくの如くからくして暮れぬ。
또 양화 무렵이었던가, 오래되어 확실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두 해 동안 세상이 굶주리고 목말라 참혹한 일이 있었다.
어떤 해는 봄여름에 가물고 어떤 해는 가을겨울에 큰바람과 큰물 같은 궂은 일이 잇달아, 오곡이 죄다 여물지 않았다. 헛되이 봄에 갈고 여름에 심는 수고만 있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들이는 흥성거림이 없었다. 이 때문에 여러 지방의 백성이 어떤 이는 땅을 버리고 경계 밖으로 나가고, 어떤 이는 집을 잊고 산에 들어가 살았다. 갖가지 기도가 시작되고 예사롭지 않은 법회들이 행해졌으나 도무지 그 효험이 없었다.
서울의 살림살이란 무슨 일에나 다 밑바탕을 시골에 기대는 것인데, 올라오는 것이 아주 끊겼으니 언제까지 체면을 차리고 있을 수 있으랴. 견디다 못해 갖가지 보물을 하찮은 것부터 내다 버리듯 해도 도무지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다. 어쩌다 바꾸는 이가 있어도 금을 가볍게 치고 좁쌀을 무겁게 친다. 거지가 길가에 넘치고 근심하고 슬퍼하는 소리가 귀에 가득했다. 앞의 해는 이렇게 고생스럽게 저물었다.
2이듬해, 돌림병까지 겹쳐
明くる年は立ちなほるべきかと思ふに、あまさへえやみうちそひて、まさるやうにあとかたなし。世の人みな飢ゑ死にければ、日を經つゝきはまり行くさま、少水の魚のたとへに叶へり。はてには笠うちき、足ひきつゝみ、よろしき姿したるもの、ひたすら家ごとに乞ひありく。かくわびしれたるものどもありくかと見れば則ち斃れふしぬ。ついひぢのつら、路頭に飢ゑ死ぬるたぐひは數もしらず。取り捨つるわざもなければ、くさき香世界にみちみちて、かはり行くかたちありさま、目もあてられぬこと多かり。いはむや河原などには、馬車の行きちがふ道だにもなし。しづ、山がつも、力つきて、薪にさへともしくなりゆけば、たのむかたなき人は、みづから家をこぼちて市に出でゝこれを賣るに、一人がもち出でたるあたひ、猶一日が命をさゝふるにだに及ばずとぞ。あやしき事は、かゝる薪の中に、につき、しろがねこがねのはくなど所々につきて見ゆる木のわれあひまじれり。これを尋ぬればすべき方なきものゝ、古寺に至りて佛をぬすみ、堂の物の具をやぶりとりて、わりくだけるなりけり。濁惡の世にしも生れあひて、かゝる心うきわざをなむ見侍りし。
이듬해는 다시 일어서려나 했더니, 그 위에 돌림병까지 겹쳐 더 심해질 뿐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세상 사람이 모두 굶어 죽으니, 날이 갈수록 막바지로 치닫는 모습이 「물 마른 데의 고기」라는 비유에 꼭 맞았다.
끝내는 삿갓을 쓰고 발을 싸매고 그럴듯한 차림을 한 사람이 오로지 집집마다 빌러 다닌다. 이렇게 넋 나간 이들이 걸어가나 싶으면 곧 쓰러져 엎어진다. 흙담 아래며 길거리에 굶어 죽은 이들은 수도 모른다. 치워 버릴 방도도 없어 썩는 냄새가 온 세상에 가득 차고, 변해 가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이 많았다. 하물며 강가 같은 데는 말과 수레가 엇갈려 다닐 길조차 없었다.
천한 이도 산사람도 힘이 다해 땔나무마저 모자라게 되니, 기댈 데 없는 사람은 스스로 제 집을 헐어 저자에 내다 파는데, 한 사람이 지고 나온 값이 하루 목숨을 지탱하기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괴이한 것은, 그런 땔나무 가운데 붉은 칠이 묻고 금은박이 여기저기 붙어 보이는 나무 조각이 섞여 있는 일이었다. 이를 캐어 보니, 어찌할 도리 없는 사람이 옛 절에 가서 불상을 훔치고 법당의 기물을 부수어 뜯어다 쪼갠 것이었다. 흐리고 악한 세상에 태어나 이런 마음 아픈 짓을 보았다.
3먼저 죽는 쪽 — 그리고 사만 이천의 머리
又あはれなること侍りき。さりがたき女男など持ちたるものは、その思ひまさりて、心ざし深きはかならずさきだちて死しぬ。そのゆゑは、我が身をば次になして、男にもあれ女にもあれ、いたはしく思ふかたに、たまたま乞ひ得たる物を、まづゆづるによりてなり。されば父子あるものはさだまれる事にて、親ぞさきだちて死にける。又母が命つきて臥せるをもしらずして、いとけなき子のその乳房に吸ひつきつゝ、ふせるなどもありけり。仁和寺に、慈尊院の大藏卿隆曉法印といふ人、かくしつゝ、かずしらず死ぬることをかなしみて、ひじりをあまたかたらひつゝ、その死首の見ゆるごとに、額に阿字を書きて、緣をむすばしむるわざをなむせられける。その人數を知らむとて、四五兩月がほどかぞへたりければ、京の中、一條より南、九條より北、京極より西、朱雀より東、道のほとりにある頭、すべて四萬二千三百あまりなむありける。いはむやその前後に死ぬるもの多く、河原、白河、にしの京、もろもろの邊地などをくはへていはゞ際限もあるべからず。いかにいはむや、諸國七道をや。近くは崇德院の御位のとき、長承のころかとよ、かゝるためしはありけると聞けど、その世のありさまは知らず。まのあたりいとめづらかに、かなしかりしことなり。
또 애처로운 일이 있었다. 차마 떨어질 수 없는 지아비나 지어미를 둔 사람은 그 정이 더한 쪽이, 마음 씀이 깊은 쪽이 반드시 먼저 죽었다. 그 까닭은 제 몸을 뒤로 하고, 남자든 여자든 애틋하게 여기는 쪽에 어쩌다 빌어 얻은 것을 먼저 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이 있는 경우는 정해진 일이어서 어버이가 먼저 죽었다. 또 어미의 목숨이 다해 누워 있는 줄도 모르고 어린아이가 그 젖에 빨아 붙은 채 누워 있는 일도 있었다.
닌나지의 지손인 대장경 류교 법인이라는 분이,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죽는 것을 슬퍼하여 성인들을 많이 청해 두고, 그 주검의 머리가 보일 때마다 이마에 아(阿) 자를 써서 인연을 맺어 주는 일을 하셨다. 그 수를 알아보려고 넉 달 다섯 달 동안 세었더니, 서울 안 이치조에서 남쪽, 구조에서 북쪽, 교고쿠에서 서쪽, 스자쿠에서 동쪽까지 길가에 있는 머리가 모두 사만 이천삼백 남짓이었다.
하물며 그 앞뒤로 죽은 이가 많고, 강가·시라카와·서쪽 서울과 여러 변두리까지 더해 말한다면 끝이 있을 수 없다. 하물며 여러 지방 일곱 길이랴.
가까이는 스토쿠인이 왕위에 계실 때 조쇼 무렵이었던가 이런 예가 있었다고 들었으나 그 시절의 형편은 알지 못한다. 눈앞에 보게 된 이번 일이 참으로 유례없이 슬펐다.
협주 1
父イ
이본에는 「母(어미)」가 「父(아비)」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