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道訓
夫道者,覆天載地,廓四方,柝八極,高不可際,深不可測,包裹天地,稟授無形。原流泉浡,沖而徐盈,混混滑滑,濁而徐清。故植之而塞於天地,橫之而彌於四海,施之無窮而無所朝夕。舒之幎於六合,卷之不盈於一握。約而能張,幽而能明,弱而能強,柔而能剛。橫四維而含陰陽,紘宇宙而章三光。甚淖而滒,甚纖而微。山以之高,淵以之深,獸以之走,鳥以之飛,日月以之明,星歷以之行,麟以之游,鳳以之翔。
무릇 도는 하늘을 덮고 땅을 실으며 사방을 넓히고 여덟 끝을 열어 높아 끝에 닿을 수 없고 깊어 잴 수 없으며 하늘과 땅을 싸안고 꼴 없는 것을 받아 준다. 근원의 흐름은 샘처럼 솟아 텅 비었으면서 천천히 차고 흐리고 흐리다가 흐리면서 천천히 맑아진다. 그러므로 세우면 하늘과 땅에 가득 차고 가로 놓으면 사해에 두루 미치며 베풀어 다함이 없어 아침저녁이 없다. 펴면 육합을 덮고 말면 한 줌에도 차지 않는다. 줄어들면서 펼 수 있고 그윽하면서 밝을 수 있고 약하면서 강할 수 있고 부드러우면서 굳셀 수 있다. 네 벼리를 가로질러 음양을 머금고 우주를 벼리 삼아 세 빛을 드러낸다. 매우 질면서 미끄럽고 매우 가늘면서 작다. 산은 이것으로 높고 못은 이것으로 깊으며 짐승은 이것으로 달리고 새는 이것으로 날며 해와 달은 이것으로 밝고 별의 운행은 이것으로 돌며 기린은 이것으로 노닐고 봉황은 이것으로 난다.
泰古二皇,得道之柄,立於中央,神與化游,以撫四方。是故能天運地滯,輪轉而無廢,水流而不止,與萬物終始。風興雲蒸,事無不應;雷聲雨降,並應無窮。鬼出電入,龍興鸞集;鈞旋轂轉,周而復匝。已彫已琢,還反於樸。無為為之而合於道,無為言之而通乎德,恬愉無矜而得於和,有萬不同而便於性,神託於秋豪之末,而大宇宙之總。其德優天地而和陰陽,節四時而調五行。呴諭覆育,萬物群生,潤於草木,浸於金石,禽獸碩大,豪毛潤澤,羽翼奮也,角觡生也,獸胎不贕,鳥卵不毈,父無喪子之憂,兄無哭弟之哀,童子不孤,婦人不孀,虹蜺不出,賊星不行,含德之所致也。
아득한 옛날 두 황제가 도의 자루를 얻어 가운데에 서서 신이 조화와 노닐며 사방을 어루만졌다. 이 때문에 하늘이 돌고 땅이 멈추며 바퀴가 돌아 폐함이 없고 물이 흘러 그치지 않아 만물과 시작과 끝을 함께할 수 있었다. 바람이 일고 구름이 피어오르니 일에 응하지 않음이 없고 우레 소리에 비가 내리니 아울러 응함이 끝이 없었다. 귀신이 나오고 번개가 들며 용이 일고 난새가 모이며 고른 바퀴가 돌 듯 돌아 두루 하고 다시 한 바퀴 돈다. 이미 새기고 이미 쪼았다가 다시 질박함으로 돌아간다. 함이 없이 하면서 도에 맞고 함이 없이 말하면서 덕에 통하며 편안하고 즐거워 뽐냄이 없이 화함을 얻고 만 가지가 다르나 성품에 편하며 신은 가을 터럭 끝에 의탁하면서 우주의 총괄에 크다. 그 덕은 하늘과 땅을 넉넉히 하고 음양을 화하게 하며 사철을 조절하고 오행을 고른다. 따뜻이 불어 덮어 기르니 만물이 무리 지어 나고 풀과 나무에 젖고 쇠와 돌에 스며 새와 짐승이 크고 털이 윤택하며 날개가 떨치고 뿔이 나며 짐승의 새끼는 태 안에서 죽지 않고 새의 알은 깨어지지 않으며 아비는 자식 잃는 근심이 없고 형은 아우 잃고 우는 슬픔이 없으며 아이는 고아가 되지 않고 부인은 과부가 되지 않으며 무지개가 나오지 않고 도적별이 다니지 않으니 덕을 머금은 것이 이르게 한 바다.
夫太上之道,生萬物而不有,成化像而弗宰。跂行喙息,蠉飛蝡動,待而後生,莫之知德;待之後死,莫之能怨。得以利者不能譽,用而敗者不能非。收聚畜積而不加富,佈施稟授而不益貧。旋縣而不可究,纖微而不可勤。累之而不高,墮之而不下,益之而不眾,損之而不寡,斲之而不薄,殺之而不殘,鑿之而不深,填之而不淺。忽兮怳兮,不可為象兮;怳兮忽兮,用不屈兮;幽兮冥兮,應無形兮;遂兮洞兮,不虛動兮。與剛柔卷舒兮,與陰陽俛仰兮。昔者馮夷、大丙之御也,乘雲車,入雲蜺,游微霧,騖怳忽,歷遠彌高以極往,經霜雪而無跡,照日光而無景,扶搖抮抱羊角而上,經紀山川,蹈騰昆侖,排閶闔,淪天門。末世之御,雖有輕車良馬,勁策利鍛,不能與之爭先。是故大丈夫恬然無思,澹然無慮;以天為蓋,以地為輿;四時為馬,陰陽為御;乘雲陵霄,與造化者俱。縱志舒節,以馳大區。可以步而步可以驟而驟。令雨師灑道,使風伯埽塵。電以為鞭策,雷以為車輪。上游於霄雿之野,下出於無垠之門。劉覽偏照,復守以全。經營四隅,還反於樞。故以天為蓋,則無不覆也;以地為輿,則無不載也;四時為馬,則無不使也;陰陽為御,則無不備也。是故疾而不搖,遠而不勞,四支不動,聰明不損,而知八紘九野之形埒者,何也?執道要之柄,而游於無窮之地。是故天下之事,不可為也,因其自然而推之。萬物之變,不可究也,秉其要歸之趣。
무릇 지극히 높은 도는 만물을 낳으면서 가지지 않고 조화의 모양을 이루면서 주재하지 않는다. 발로 걷고 부리로 숨 쉬며 날고 꿈틀거리는 것이 기다린 뒤에 나면서도 그 덕을 아는 것이 없고 기다린 뒤에 죽으면서도 원망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로써 이익을 얻은 이는 기릴 수 없고 써서 패한 이는 그르다 할 수 없다. 거두어 모으고 쌓아도 더 부유해지지 않고 베풀어 주어도 더 가난해지지 않는다. 돌고 매달려 다 캘 수 없고 가늘고 미세하여 수고롭힐 수 없다. 쌓아도 높아지지 않고 떨어뜨려도 낮아지지 않고 더해도 많아지지 않고 덜어도 적어지지 않고 깎아도 얇아지지 않고 죽여도 다치지 않고 파도 깊어지지 않고 메워도 얕아지지 않는다. 문득 황홀하여 꼴을 삼을 수 없고 황홀하고 문득하여 써도 다하지 않으며 그윽하고 어두워 꼴 없는 것에 응하고 이르고 통하여 헛되이 움직이지 않는다. 굳셈과 부드러움과 함께 말리고 펴지며 음양과 함께 굽어보고 우러른다. 옛날 풍이와 대병이 수레를 몲에 구름 수레를 타고 구름과 무지개에 들어 옅은 안개에 노닐고 황홀함에 달리며 멀리 거쳐 더욱 높이 끝까지 가고 서리와 눈을 지나도 자취가 없고 햇빛을 비추어도 그림자가 없으며 회오리바람을 돌려 양의 뿔 같은 바람을 안고 오르며 산과 내를 벼리 지어 곤륜을 밟아 오르고 창합을 밀어 열고 천문에 들었다. 말세의 수레 몰기는 비록 가벼운 수레와 좋은 말과 굳센 채찍과 날카로운 재갈이 있어도 그와 앞을 다툴 수 없다. 이 때문에 대장부는 편안하여 생각이 없고 담담하여 근심이 없다. 하늘을 덮개로 삼고 땅을 수레로 삼으며 사철을 말로 삼고 음양을 몰이꾼으로 삼아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 조화하는 이와 함께한다. 뜻을 놓고 마디를 펴서 큰 지경을 달린다. 걸을 만하면 걷고 달릴 만하면 달린다. 우사에게 길에 물 뿌리게 하고 풍백에게 먼지를 쓸게 한다. 번개를 채찍으로 삼고 우레를 수레바퀴로 삼는다. 위로 하늘 들에 노닐고 아래로 끝없는 문으로 나온다. 두루 살펴 치우침 없이 비추고 다시 지켜 온전히 한다. 네 모퉁이를 경영하고 다시 지도리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하늘을 덮개로 삼으면 덮지 않음이 없고 땅을 수레로 삼으면 싣지 않음이 없으며 사철을 말로 삼으면 부리지 않음이 없고 음양을 몰이꾼으로 삼으면 갖추지 않음이 없다. 이 때문에 빨라도 흔들리지 않고 멀어도 수고롭지 않으며 네 팔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총명을 덜지 않으면서 여덟 벼리 아홉 들의 꼴과 지경을 앎은 어째서인가. 도의 요긴한 자루를 잡고 끝없는 땅에 노닐어서다. 이 때문에 천하의 일은 할 수 없으니 그 절로 그러함을 따라 미루고 만물의 변화는 다 캘 수 없으니 그 요긴한 돌아감의 취지를 잡는다.
협주 1
影
저본이 「景」 옆에 「影」이라 달아 둔 것이다. 景은 그림자 影의 옛 글자다.
夫鏡水之與形接也,不設智故,而方圓曲直弗能逃也。是故響不肆應,而景不一設,叫呼彷彿,默然自得。人生而靜,天之性也。感而後動,性之害也。物至而能神應,知之動也。知與物接,而好憎生焉。憎成形,而知誘於外,不能反己,而天理滅矣。故達於道者,不以人易天,外與物化,而內不失其情。至無而供其求,時聘而要其宿。小大修短,各有其具,萬物之至,騰踴餚亂而不失其數。是以處上而民弗重,居前而眾弗害,天下歸之,姦邪畏之。以其無爭於萬物也,故莫敢與之爭。
무릇 거울과 물이 꼴과 접함은 슬기와 꾀를 베풀지 않아도 모나고 둥글고 굽고 곧음이 달아날 수 없다. 이 때문에 메아리는 함부로 응하지 않고 그림자는 한결같이 베풀어지지 않으며 부르고 외침이 어렴풋하나 잠잠히 절로 얻는다. 사람이 나서 고요함은 하늘의 성품이요 느낀 뒤에 움직임은 성품의 해다. 물건이 이르러 신령하게 응할 수 있음은 앎의 움직임이다. 앎이 물건과 접하면 좋아하고 미워함이 난다. 미워함이 꼴을 이루고 앎이 밖으로 꾀이면 스스로 돌이킬 수 없어 하늘의 이치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도에 통달한 이는 사람으로 하늘을 바꾸지 않아 밖으로는 물건과 더불어 변하나 안으로는 그 정을 잃지 않는다. 지극히 없으면서 그 구함에 이바지하고 때로 달리면서 그 머묾을 요구한다. 작고 크고 길고 짧음이 저마다 그 갖춤이 있어 만물의 이름에 뛰고 뒤섞여도 그 수를 잃지 않는다. 이로써 위에 처하여도 백성이 무겁게 여기지 않고 앞에 있어도 무리가 해치지 않으며 천하가 돌아오고 간사함이 두려워한다. 만물과 다투지 않으므로 감히 더불어 다투는 이가 없다.
夫臨江而釣,曠日而不能盈羅,雖有鉤箴芒距,微綸芳餌,加之以詹何、娟嬛之數,猶不能與網罟爭得也。射者扞烏號之弓,彎棋衛之箭,重之羿、逢蒙子之巧,以要飛鳥,猶不能與羅者競多。何則?以所持之小也。張天下以為之籠,因江海以為之罟,又何亡魚失鳥之有乎!故矢不若繳,繳不若無形之像。
무릇 강에 임하여 낚시함에 날을 보내도 그물을 채울 수 없으니 비록 낚시와 바늘과 날카로운 미늘과 가는 줄과 향기로운 미끼가 있고 거기에 첨하·연환의 술수를 더하여도 오히려 그물과 얻음을 다툴 수 없다. 쏘는 이가 오호의 활을 잡고 기위의 화살을 당기고 예·봉몽자의 교묘함을 더하여 나는 새를 노려도 오히려 그물 치는 이와 많음을 겨룰 수 없다. 어째서인가. 잡은 것이 작아서다. 천하를 벌여 새장으로 삼고 강과 바다로 인하여 그물로 삼으면 또 무슨 잃는 고기와 놓친 새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화살은 주살만 못하고 주살은 꼴 없는 모양만 못하다.
夫釋大道而任小數,無以異於使蟹捕鼠,蟾蠩捕蚤,不足以禁姦塞邪,亂乃逾滋。昔者夏鯀作三仞之城,諸侯背之,海外有狡心。禹知天下之叛也,乃壞城平池,散財物,焚甲兵,施之以德,海外賓伏,四夷納職,合諸侯於塗山,執玉帛者萬國。故機械之心藏於胸中,則純白不粹,神德不全,在身者不知,何遠之所能懷!是故革堅則兵利,城成則衝生,若以湯沃沸,亂乃逾甚。是故鞭噬狗,策蹄馬,而欲教之,雖伊尹、造父弗能化。欲寅之心亡於中,則飢虎可尾,何況狗馬之類乎!故體道者逸而不窮,任數者勞而無功。
무릇 큰 도를 놓고 작은 술수에 맡김은 게로 쥐를 잡게 하고 두꺼비로 벼룩을 잡게 함과 다를 것이 없어 간사함을 금하고 사악함을 막기에 넉넉하지 않고 어지러움이 곧 더욱 불어난다. 옛날 하나라 곤이 세 길의 성을 지으니 제후가 등지고 바다 밖에 교활한 마음이 있었다. 우가 천하가 배반함을 알고 곧 성을 헐고 못을 메우며 재물을 흩고 갑옷과 병기를 태우고 덕으로 베푸니 바다 밖이 손님으로 복종하고 사이가 직분을 바치며 도산에 제후를 모으니 옥과 비단을 잡은 이가 만 나라였다. 그러므로 기계의 마음이 가슴속에 감추어지면 순수하고 흰 것이 순수하지 않고 신의 덕이 온전하지 않으니 몸에 있는 것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먼 것을 품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가죽이 굳으면 병기가 날카로워지고 성이 이루어지면 충차가 나니 끓는 물로 끓음을 부음 같아 어지러움이 곧 더욱 심해진다. 이 때문에 무는 개를 채찍질하고 차는 말을 때리면서 가르치려 하면 비록 이윤·조보라도 교화할 수 없다.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속에서 없어지면 주린 범의 꼬리를 밟을 수 있는데 하물며 개와 말 따위랴! 그러므로 도를 몸 삼는 이는 편안하여 궁하지 않고 술수에 맡기는 이는 수고로워도 공이 없다.
夫峭法刻誅者,非霸王之業也;箠策繁用者,非致遠之術也。離朱之明,察箴末於百步之外,不能見淵中之魚。師曠之聰,合八風之調,而不能聽十里之外。故任一人之能,不足以治三畝之宅也。脩道理之數,因天地之自然,則六合不足均也。是故禹之決瀆也,因水以為師;神農之播穀也,因苗以為教。
무릇 가파른 법과 각박한 베임은 패왕의 업이 아니요 채찍을 번거로이 씀은 멀리 이르는 술이 아니다. 이주의 밝음은 백 걸음 밖의 바늘 끝을 살피나 못 속의 고기를 볼 수 없다. 사광의 총명은 여덟 바람의 가락을 맞추나 십 리 밖을 들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능함에 맡김은 세 이랑의 집을 다스리기에 넉넉하지 않다. 도리의 수를 닦아 하늘과 땅의 절로 그러함을 따르면 육합도 고르게 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이 때문에 우가 물길을 틈에 물을 따라 스승으로 삼았고 신농이 곡식을 뿌림에 싹을 따라 가르침으로 삼았다.
夫萍樹根於水,木樹根於土,鳥排虛而飛,獸蹠實而走,蛟龍水居,虎豹山處,天地之性也。兩木相摩而然,金火相守而流,員者常轉,窾者主浮,自然之勢也。是故春風至則甘雨降,生育萬物,羽者嫗伏,毛者孕育,草木榮華,鳥獸卵胎,莫見其為者,而功既成矣。秋風下霜,倒生挫傷,鷹鵰搏鷙,昆蟲蟄藏,草木註根,魚鱉湊淵,莫見其為者,滅而無形。木處榛巢,水居窟穴,禽獸有芄,人民有室,陸處宜牛馬,舟行宜多水,匈奴出穢裘,於越生葛絺,各生所急以備燥溼,各因所處以禦寒暑,並得其宜,物便其所。由此觀之,萬物固以自然,聖人又何事焉!九疑之南,陸事寡而水事眾,於是民人被髮文身,以像鱗蟲,短綣不恊,以便涉游,短袂攘卷,以便刺舟,因之也。鴈門之北,狄不穀食,賤長貴壯,俗尚氣力,人不弛弓,馬不解勒,便之也。故禹之裸國,解衣而入,衣帶而出,因之也。今夫徙樹者,失其陰陽之性,則莫不枯槁。故橘樹之江北則化而為枳,鴝鵒不過濟,貈渡汶而死,形性不可易,勢居不可移也。是故達於道者,反於清淨;究於物者,終於無為。以恬養性,以漠處神,則入於天門。所謂天者,純粹樸素,質直皓白,未始有與雜糅者也。所謂人者,偶䁟智故,曲巧偽詐,所以俛仰於世人而與俗交者也。故牛岐蹄而戴角,馬被髦而全足者,天也。絡馬之口,穿牛之鼻者,人也。循天者,與道游者也。隨人者,與俗交者也。
무릇 개구리밥은 물에 뿌리내리고 나무는 흙에 뿌리내리며 새는 허공을 밀어 날고 짐승은 땅을 밟아 달리며 교룡은 물에 살고 범과 표범은 산에 처하니 하늘과 땅의 성품이다. 두 나무가 서로 비비면 타고 쇠와 불이 서로 지키면 녹으며 둥근 것은 늘 구르고 빈 것은 뜨기를 주로 하니 절로 그러한 형세다. 이 때문에 봄바람이 이르면 단비가 내려 만물을 낳아 기르니 날개 있는 것은 알을 품고 털 있는 것은 새끼를 배며 풀과 나무가 꽃피고 새와 짐승이 알 낳고 새끼 배니 그 하는 것을 보는 이가 없어도 공이 이미 이루어진다. 가을바람에 서리가 내리면 거꾸로 난 것이 꺾여 상하고 매와 독수리가 치고 곤충이 숨으며 풀과 나무가 뿌리를 묻고 고기와 자라가 못에 모이니 그 하는 것을 보는 이가 없어도 사라져 꼴이 없다. 나무에 사는 것은 둥지에 깃들고 물에 사는 것은 굴에 처하며 새와 짐승에 보금자리가 있고 백성에 집이 있으며 뭍에 처함은 소와 말이 마땅하고 배로 다님은 물 많음이 마땅하며 흉노는 거친 갖옷을 내고 어월은 칡베를 내니 저마다 급한 것을 내어 마르고 습함에 대비하고 저마다 처한 곳을 따라 추위와 더위를 막아 아울러 그 마땅함을 얻고 물건이 그 처소에 편하다. 이로써 보면 만물은 본디 절로 그러하니 성인이 또 무엇을 일삼겠는가! 구의 남쪽은 뭍의 일이 적고 물의 일이 많으니 이에 백성이 머리를 풀고 몸에 문신하여 비늘 있는 벌레를 본뜨고 짧은 잠방이로 바지를 입지 않아 헤엄치기에 편하며 소매를 짧게 걷어 배 젓기에 편하니 따른 것이다. 안문의 북쪽은 적이 곡식을 먹지 않고 늙은이를 천히 여기고 씩씩한 이를 귀히 여기며 풍속이 기운과 힘을 숭상하여 사람이 활을 풀지 않고 말이 굴레를 벗지 않으니 편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가 나국에 감에 옷을 벗고 들어가 옷과 띠를 하고 나옴은 따른 것이다. 이제 무릇 나무를 옮기는 이가 그 음양의 성품을 잃으면 말라 죽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귤나무를 강 북쪽에 옮기면 변하여 탱자가 되고 구관조는 제수를 넘지 못하며 담비는 문수를 건너면 죽으니 꼴과 성품은 바꿀 수 없고 형세와 거처는 옮길 수 없다. 이 때문에 도에 통달한 이는 맑고 깨끗함으로 돌아가고 물건을 궁구한 이는 함이 없음에서 마친다. 편안함으로 성품을 기르고 고요함으로 신에 처하면 하늘 문에 든다. 이른바 하늘이란 순수하고 질박하며 곧고 희어 아직 섞임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사람이란 짝하여 앎과 꾀로 굽고 교묘하고 거짓되어 세상 사람에게 굽어보고 우러르며 풍속과 사귀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가 발굽이 갈라지고 뿔을 이며 말이 갈기를 입고 발굽이 온전함은 하늘이다. 말의 입에 굴레를 씌우고 소의 코를 뚫음은 사람이다. 하늘을 따르는 이는 도와 노니는 이요 사람을 따르는 이는 풍속과 사귀는 이다.
夫井魚不可與語大,拘於隘也;夏蟲不可與語寒,篤於時也;曲士不可與語至道,拘於俗,束於教也。故聖人不以人滑天,不以欲亂情,不謀而當,不言而信,不慮而得,不為而成,精通於靈府,與造化者為人。
무릇 우물 고기와 큰 것을 말할 수 없음은 좁음에 갇혀서요 여름 벌레와 추위를 말할 수 없음은 때에 갇혀서요 굽은 선비와 지극한 도를 말할 수 없음은 풍속에 갇히고 가르침에 묶여서다. 그러므로 성인은 사람으로 하늘을 어지럽히지 않고 바람으로 정을 어지럽히지 않아 꾀하지 않아도 맞고 말하지 않아도 믿어지며 생각하지 않아도 얻고 하지 않아도 이루어져 정이 신령한 곳간에 통하여 조화하는 이와 벗이 된다.
夫善游者溺,善騎者墮,各以其所好,反自為禍。是故好事者未嘗不中,爭利者未嘗不窮也。昔共工之力,觸不周之山,使地東南傾。與高辛爭為帝,遂潛於淵,宗族殘滅,繼嗣絕祀。越王翳逃山穴,越人熏而出之,遂不得已。由此觀之,得在時,不在爭;治在道,不在聖。土處下,不爭高,故安而不危;水下流,不爭先,故疾而不遲。昔舜耕於歷山,期年,而田者爭處墝埆,以封壤肥饒相讓;釣於河濱,期年,而漁者爭處湍瀨,以曲隈深潭相予。當此之時,口不設言,手不指麾,執玄德於心,而化馳若神。使舜無其志,雖口辯而戶說之,不能化一人。是故不道之道,莽乎大哉!夫能理三苗,朝羽民,徙裸國,納肅慎;未發號施令而移風易俗者,其唯心行者乎!法度刑罰,何足以致之也?是故聖人內修其本,而不外飾其末,保其精神,偃其智故,漠然無為而無不為也,澹然無治也而無不治也。所謂無為者,不先物為也;所謂無不為者,因物之所為。所謂無治者,不易自然也;所謂無不治者,因物之相然也。
무릇 헤엄 잘 치는 이는 빠지고 말 잘 타는 이는 떨어지니 저마다 그 좋아하는 바로 도리어 스스로 화가 된다. 이 때문에 일 좋아하는 이는 재앙에 걸리지 않은 적이 없고 이익 다투는 이는 궁하지 않은 적이 없다. 옛날 공공의 힘은 부주산을 받아 땅이 동남으로 기울게 하였다. 고신과 제왕 되기를 다투다가 마침내 못에 잠기고 종족이 다 멸하고 후사가 끊겨 제사가 끊어졌다. 월왕 예가 산굴로 달아나니 월나라 사람이 불을 놓아 나오게 하여 마침내 마지못하였다. 이로써 보면 얻음은 때에 있지 다툼에 있지 않고 다스림은 도에 있지 성스러움에 있지 않다. 흙은 낮은 데 처하여 높음을 다투지 않으므로 편안하여 위태롭지 않고 물은 아래로 흘러 앞을 다투지 않으므로 빠르면서 더디지 않다. 옛날 순이 역산에서 밭 갈 때 한 해가 되니 밭 가는 이들이 다투어 척박한 데 처하고 기름진 땅을 서로 사양하였고 하수 가에서 낚시할 때 한 해가 되니 고기 잡는 이들이 다투어 여울에 처하고 굽이진 깊은 못을 서로 주었다. 이때를 당하여 입으로 말을 베풀지 않고 손으로 가리키지 않고 검은 덕을 마음에 잡으니 교화가 달림이 신 같았다. 순에게 그 뜻이 없게 하였다면 비록 입으로 변론하여 집집이 설득하여도 한 사람도 교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도라 하지 않는 도가 아득히 크도다! 무릇 삼묘를 다스리고 우민을 조회하게 하고 나국을 옮기고 숙신을 들이며 호령을 내리지 않고 풍속을 옮겨 바꾼 것은 오직 마음으로 행한 이일 것이다! 법도와 형벌이 어찌 이르게 하기에 넉넉하겠는가. 이 때문에 성인은 안으로 그 근본을 닦고 밖으로 그 끝을 꾸미지 않으며 그 정신을 지키고 그 슬기와 꾀를 누여 잠잠히 함이 없으면서 하지 않음이 없고 담담히 다스림이 없으면서 다스리지 않음이 없다. 이른바 함이 없음이란 물건에 앞서 하지 않음이요 이른바 하지 않음이 없음이란 물건이 하는 바를 따름이다. 이른바 다스림이 없음이란 절로 그러함을 바꾸지 않음이요 이른바 다스리지 않음이 없음이란 물건이 서로 그러함을 따름이다.
萬物有所生,而獨知守其根;百事有所出,而獨知守其門。故窮無窮,極無極,照物而不眩,響應而不乏,此之謂天解。故得道者志弱而事強,心虛而應當。所謂志弱而事強者,柔毳安靜,藏於不敢,行於不能,恬然無慮,動不失時,與萬物回周旋轉,不為先唱,感而應之。是故貴者必以賤為號,而高者必以下為基。託小以包大,在中以制外,行柔而剛,用弱而強,轉化推移,得一之道,而以少正多。所謂其事強者,遭變應卒,排患扞難,力無不勝,敵無不凌,應化揆時,莫能害之。是故欲剛者必以柔守之,欲強者必以弱保之。積於柔則剛,積於弱則強,觀其所積,以知禍福之鄉。強勝不若己者,至於若己者而同;柔勝出於己者,其力不可量。故兵強則滅,木強則折,革固則裂,齒堅於舌而先之敝。是故柔弱者,生之榦也;而堅強者,死之徒也。先唱者,窮之路也;後動者,達之原也。何以知其然也?凡人中壽七十歲,然而趨舍指湊,日以月悔也,以至於死,故蘧伯玉年五十而有四十九年非。何者?先者難為知,而後者易為攻也。先者上高,則後者攀之;先者踰下,則後者蹶之;先者隤陷,則後者以謀;先者敗績,則後者違之。由此觀之,先者,則後者之弓矢質的也。猶錞之與刃,刃犯難而錞無患者,何也?以其託於後位也。此俗世庸民之所公見也,而賢知者弗能避也。所謂後者,非謂其底滯而不發,凝結而不流,貴其周於數而合於時也。
만물은 나는 바가 있으나 홀로 그 뿌리 지킴을 알고 백 가지 일은 나오는 바가 있으나 홀로 그 문 지킴을 안다. 그러므로 끝없음을 다하고 극 없음을 극하여 물건을 비추어도 어지럽지 않고 메아리처럼 응하여도 모자라지 않으니 이를 하늘의 풀림이라 한다. 그러므로 도를 얻은 이는 뜻이 약하나 일이 강하고 마음이 비었으나 응함이 마땅하다. 이른바 뜻이 약하나 일이 강하다 함은 부드럽고 고요하여 감히 않음에 감추고 못함에 행하며 편안하여 근심 없고 움직임에 때를 잃지 않으며 만물과 함께 돌고 돌아 먼저 부르지 않고 느껴 응한다. 이 때문에 귀한 이는 반드시 천함으로 이름하고 높은 이는 반드시 낮음으로 터를 삼는다. 작음에 의탁하여 큼을 싸고 가운데에 있어 밖을 제어하며 부드러움을 행하여 굳세고 약함을 써서 강하며 변화를 굴려 옮겨 하나의 도를 얻어 적음으로 많음을 바로잡는다. 이른바 그 일이 강하다 함은 변고를 만나고 갑작스러움에 응하며 환난을 물리치고 어려움을 막음에 힘이 이기지 못함이 없고 적이 능멸하지 못함이 없으며 변화에 응하고 때를 헤아려 해칠 수 있는 이가 없음이다. 이 때문에 굳세려는 이는 반드시 부드러움으로 지키고 강하려는 이는 반드시 약함으로 보전한다. 부드러움에 쌓이면 굳세고 약함에 쌓이면 강하니 그 쌓인 바를 보아 화복의 고을을 안다. 강함은 저만 못한 이를 이기고 저와 같은 이에 이르면 같아지며 부드러움은 저보다 나은 이를 이기니 그 힘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군사가 강하면 멸하고 나무가 강하면 꺾이며 가죽이 굳으면 찢어지고 이가 혀보다 굳세나 먼저 닳는다. 이 때문에 부드럽고 약함은 삶의 줄기요 굳세고 강함은 죽음의 무리다. 먼저 부름은 궁함의 길이요 뒤에 움직임은 통달의 근원이다. 무엇으로 그 그러함을 아는가. 무릇 사람의 중간 수명이 일흔인데 나아가고 물러남과 가리키고 모임에 날로 달로 뉘우쳐 죽음에 이르므로 거백옥은 나이 쉰에 마흔아홉 해의 그름이 있었다. 어째서인가. 먼저 하는 이는 알기 어렵고 뒤에 하는 이는 치기 쉬워서다. 먼저 하는 이가 높이 오르면 뒤에 하는 이가 붙들고 먼저 하는 이가 넘어 내려가면 뒤에 하는 이가 넘어뜨리며 먼저 하는 이가 무너져 빠지면 뒤에 하는 이가 꾀하고 먼저 하는 이가 패하면 뒤에 하는 이가 피한다. 이로써 보면 먼저 하는 이는 뒤에 하는 이의 활과 화살의 과녁이다. 창의 물미와 날 같으니 날은 어려움을 범하고 물미는 근심이 없음은 어째서인가. 뒷자리에 의탁해서다. 이는 속세 용렬한 백성이 다 같이 보는 바인데 어질고 아는 이도 피하지 못한다. 이른바 뒤라는 것은 그 막혀 발하지 않고 엉겨 흐르지 않음을 이름이 아니라 수에 두루 하고 때에 맞음을 귀하게 여김이다.
夫執道理以耦變,先亦制後,後亦制先。是何則?不失其所以制人,人不能制也。時之反側,間不容息,先之則太過,後之則不逮。夫日回而月周,時不與人游,故聖人不貴尺之璧,而重寸之陰,時難得而易失也。禹之趨時也,履遺而弗取,冠掛而弗顧,非爭其先也,而爭其得時也。是故聖人守清道而抱雌節,因循應變,常後而不先。柔弱以靜,舒安以定,攻大䃺堅,莫能與之爭。
무릇 도리를 잡아 변화에 짝하면 먼저도 뒤를 제어하고 뒤도 먼저를 제어한다. 이는 어째서인가. 남을 제어하는 까닭을 잃지 않아 남이 제어할 수 없어서다. 때의 뒤집힘은 사이에 숨 쉴 틈이 없어 먼저 하면 너무 지나치고 뒤에 하면 미치지 못한다. 무릇 해가 돌고 달이 두루 하니 때는 사람과 노닐지 않으므로 성인은 한 자의 옥을 귀히 여기지 않고 한 치의 그늘을 무겁게 여기니 때는 얻기 어렵고 잃기 쉬워서다. 우가 때를 좇음에 신이 벗겨져도 줍지 않고 관이 걸려도 돌아보지 않음은 그 먼저를 다툼이 아니라 때를 얻음을 다툼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맑은 도를 지키고 암컷의 절개를 안아 따라 변화에 응하여 늘 뒤에 하고 먼저 하지 않는다. 부드럽고 약함으로 고요하고 편안하게 펴서 정하니 큰 것을 치고 굳은 것을 갈아도 더불어 다툴 수 있는 이가 없다.
天下之物,莫柔弱於水,然而大不可極,深不可測,修極於無窮,遠淪於無涯,息耗減益,通於不訾,上天則為雨露,下地則為潤澤,萬物弗得不生,百事不得不成,大包群生而無好憎,澤及蚑蟯而不求報,富贍天下而不既,德施百姓而不費,行而不可得窮極也,微而不可得把握也,擊之無創,刺之不傷,斬之不斷,焚之不然,淖溺流遁,錯繆相紛而不可靡散,利貫金石,強濟天下,動溶無形之域,而翱翔忽區之上,邅回川谷之間,而滔騰大荒之野,有餘不足,與天地取與,授萬物而無所前後,是故無所私而無所公,靡濫振蕩,與天地鴻洞,無所左而無所右,蟠委錯紾,與萬物始終,是謂至德。夫水所以能成其至德於天下者,以其淖溺潤滑也。故老聃之言曰:「天下至柔,馳騁天下之至堅。出於無有,入於無間。吾是以知無為之有益。」夫無形者,物之大祖也;無音者,聲之大宗也。其子為光,其孫為水,皆生於無形乎!夫光可見而不可握,水可循而不可毀,故有像之類,莫尊於水。
천하의 물건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다. 그러나 커서 다할 수 없고 깊어 잴 수 없으며 길이는 끝없음에 극하고 멀리는 가없음에 잠기며 쉬고 줄고 덜고 더함이 헤아릴 수 없음에 통하고 하늘에 오르면 비와 이슬이 되고 땅에 내리면 윤택함이 되어 만물이 얻지 못하면 나지 못하고 온갖 일이 얻지 못하면 이루어지지 않으며 크게 뭇 생명을 싸면서 좋아하고 미워함이 없고 은택이 벌레에 미치면서 갚음을 구하지 않으며 천하를 부유하게 넉넉히 하면서 다하지 않고 백성에게 덕을 베풀면서 허비하지 않으며 다녀도 끝을 얻을 수 없고 미세하여 잡을 수 없으며 쳐도 상처가 없고 찔러도 다치지 않고 베어도 끊어지지 않고 태워도 타지 않으며 질고 미끄럽게 흘러 달아나고 어지러이 뒤섞여도 흩어지지 않으며 날카로움은 쇠와 돌을 꿰고 강함은 천하를 건지며 꼴 없는 지경에 움직여 녹고 문득한 곳 위에 날며 내와 골짜기 사이를 돌고 큰 거친 들에 넘실거려 남고 모자람을 하늘과 땅과 주고받으며 만물에 주어 앞뒤 없이 하니 이 때문에 사사로움도 없고 공변됨도 없으며 넘실넘실 흔들려 하늘과 땅과 통하고 왼쪽도 없고 오른쪽도 없이 서리고 얽혀 만물과 시작하고 마치니 이를 지극한 덕이라 한다. 무릇 물이 천하에 그 지극한 덕을 이룰 수 있는 까닭은 질고 부드럽고 매끄러워서다. 그러므로 노담의 말에 이르기를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지극히 굳은 것을 달린다. 없음에서 나와 틈 없는 데 든다. 나는 이로써 함이 없음의 이익 있음을 안다」 하였다. 무릇 꼴 없는 것은 물건의 큰 조상이요 소리 없는 것은 소리의 큰 종주다. 그 아들은 빛이 되고 그 손자는 물이 되니 다 꼴 없음에서 났다! 무릇 빛은 볼 수 있으나 잡을 수 없고 물은 따를 수 있으나 헐 수 없으므로 모양 있는 무리에 물보다 높은 것이 없다.
出生入死,自無蹠有,自有蹠無,而以衰賤矣。是故清靜者,德之至也;而柔弱者,道之要也;虛無恬愉者,萬物之用也。肅然應感,殷然反本,則淪於無形矣。所謂無形者,一之謂也。所謂一者,無匹合於天下者也。卓然獨立,塊然獨處,上通九天,下貫九野,員不中規,方不中矩,大渾而為一葉,累而無根,懷囊天地,為道關門,穆忞隱閔,純德獨存,布施而不既,用之而不勤。是故視之不見其形,聽之不聞其聲,循之不得其身,無形而有形生焉,無聲而五音鳴焉,無味而五味形焉,無色而五色成焉。是故有生於無,實出於虛,天下為之圈,則名實同居。音之數不過五,而五音之變不可勝聽也。味之和不過五,而五味之化不可勝嘗也。色之數不過五,而五色之變不可勝觀也。故音者,宮立而五音形矣;味者,甘立而五味亭矣;色者,白立而五色成矣;道者,一立而萬物生矣。是故一之理,施四海;一之解,際天地。其全也,純兮若樸;其散也,混兮若濁。濁而徐清,沖而徐盈,澹兮其若深淵,汎兮其若浮雲,若無而有,若亡而存。萬物之總,皆閱一孔;百事之根,皆出一門。其動無形,變化若神;其行無跡,常後而先。是故至人之治也,掩其聰明,滅其文章,依道廢智,與民同出於公。約其所守,寡其所求,去其誘慕,除其嗜欲,損其思慮。約其所守則察,寡其所求則得。夫任耳目以聽視者,勞形而不明;以知慮為治者,苦心而無功。是故聖人一度循軌,不變其宜,不易其常,放準修繩,曲因其當。
삶에서 나와 죽음에 들어 없음에서 있음으로 가고 있음에서 없음으로 가니 이로써 쇠하고 천해진다. 이 때문에 맑고 고요함은 덕의 지극함이요 부드럽고 약함은 도의 요긴함이며 비고 없고 편안하고 즐거움은 만물의 쓰임이다. 엄숙히 느낌에 응하고 은근히 근본으로 돌아가면 꼴 없음에 잠긴다. 이른바 꼴 없음이란 하나를 이름이다. 이른바 하나란 천하에 짝하여 맞는 것이 없음이다. 우뚝 홀로 서고 덩그러니 홀로 처하여 위로 구천에 통하고 아래로 구야를 꿰며 둥글되 그림쇠에 맞지 않고 모나되 곱자에 맞지 않으며 크게 섞여 하나가 되고 잎이 쌓이되 뿌리가 없으며 하늘과 땅을 품고 도의 관문이 되어 그윽하고 아득하며 순수한 덕이 홀로 남아 베풀어도 다하지 않고 써도 수고롭지 않다. 이 때문에 보아도 그 꼴이 보이지 않고 들어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고 따라도 그 몸을 얻지 못하나 꼴 없음에서 꼴 있는 것이 나고 소리 없음에서 다섯 음이 울리고 맛 없음에서 다섯 맛이 이루어지고 빛 없음에서 다섯 빛이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있음은 없음에서 나고 실은 빔에서 나오며 천하가 그 우리가 되니 이름과 실이 함께 산다. 음의 수는 다섯을 넘지 않으나 다섯 음의 변화는 이루 다 들을 수 없다. 맛의 화함은 다섯을 넘지 않으나 다섯 맛의 변화는 이루 다 맛볼 수 없다. 빛의 수는 다섯을 넘지 않으나 다섯 빛의 변화는 이루 다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음은 궁이 서면 다섯 음이 꼴을 이루고 맛은 단맛이 서면 다섯 맛이 정해지며 빛은 흰빛이 서면 다섯 빛이 이루어지고 도는 하나가 서면 만물이 난다. 이 때문에 하나의 이치는 사해에 베풀어지고 하나의 풀림은 하늘과 땅에 이른다. 그 온전함은 순수하기가 통나무 같고 그 흩어짐은 뒤섞이기가 흐림 같다. 흐리면서 천천히 맑아지고 비었으면서 천천히 차며 담담하기가 깊은 못 같고 넓기가 뜬구름 같아 없는 듯 있고 없어진 듯 남아 있다. 만물의 총괄이 다 한 구멍을 지나고 백 가지 일의 뿌리가 다 한 문에서 나온다. 그 움직임은 꼴이 없어 변화가 신 같고 그 다님은 자취가 없어 늘 뒤에 있으면서 앞선다. 이 때문에 지극한 사람의 다스림은 그 총명을 가리고 그 문장을 없애며 도에 의지하고 슬기를 폐하여 백성과 함께 공변됨에서 나온다. 그 지키는 바를 줄이고 그 구하는 바를 적게 하며 그 꾀임과 사모함을 버리고 그 즐기고 바람을 없애며 그 생각을 던다. 그 지키는 바를 줄이면 살펴지고 그 구하는 바를 적게 하면 얻는다. 무릇 귀와 눈에 맡겨 듣고 보는 이는 꼴을 수고롭히면서 밝지 못하고 앎과 생각으로 다스림을 삼는 이는 마음을 괴롭히면서 공이 없다. 이 때문에 성인은 한 법도로 궤도를 따라 그 마땅함을 바꾸지 않고 그 늘 그러함을 바꾸지 않으며 수준기를 놓고 먹줄을 닦아 굽음도 그 마땅함을 따른다.
夫喜怒者,道之邪也;憂悲者,德之失也;好憎者,心之過也;嗜欲者,性之累也。人大怒破陰,大喜墜陽;薄氣發瘖,驚怖為狂;憂悲多恚,病乃成積;好憎繁多,禍乃相隨。故心不憂樂,德之至也;通而不變,靜之至也;嗜欲不載,虛之至也;無所好憎,平之至也;不與物散,粹之至也。能此五者,則通於神明。通於神明者,得其內者也。是故以中制外,百事不廢;中能得之,則外能收之。中之得,則五藏寧,思慮平,筋力勁強,耳目聰明,疏達而不悖,堅強而不鞼,無所大過而無所不逮,處小而不逼,處大而不窕,其魂不躁,其神不嬈,湫漻寂寞,為天下梟。
무릇 기쁨과 노함은 도의 사악함이요 근심과 슬픔은 덕의 잃음이며 좋아하고 미워함은 마음의 허물이요 즐기고 바람은 성품의 누다. 사람이 크게 노하면 음을 깨뜨리고 크게 기뻐하면 양을 떨어뜨리며 기운이 얇으면 벙어리가 되고 놀라 두려우면 미치며 근심과 슬픔에 성냄이 많으면 병이 곧 쌓여 이루어지고 좋아하고 미워함이 번거로우면 화가 곧 서로 따른다. 그러므로 마음이 근심하거나 즐기지 않음은 덕의 지극함이요 통하되 변하지 않음은 고요함의 지극함이요 즐기고 바람을 싣지 않음은 빔의 지극함이요 좋아하고 미워하는 바 없음은 평안의 지극함이요 물건과 흩어지지 않음은 순수함의 지극함이다. 이 다섯을 할 수 있으면 신명에 통한다. 신명에 통하는 이는 그 안을 얻은 이다. 이 때문에 가운데로 밖을 제어하면 온갖 일이 폐하지 않으니 가운데가 얻을 수 있으면 밖이 거둘 수 있다. 가운데를 얻으면 오장이 편안하고 생각이 평안하며 근력이 굳세고 강하며 귀와 눈이 총명하여 트여 통달하여 어그러지지 않고 굳세고 강하여 꺾이지 않으며 크게 지나침이 없고 미치지 못함이 없어 작은 데 처하여도 핍박되지 않고 큰 데 처하여도 헐렁하지 않으며 그 혼이 조급하지 않고 그 신이 어지럽지 않으며 맑고 고요하여 천하의 으뜸이 된다.
大道坦坦,去身不遠,求之近者,往而復反。迫則能應,感則能動;物穆無窮,變無形像。優游委縱,如響之與景;登高臨下,無失所秉;履危行險,無忘玄伏。能存之此,其德不虧,萬物紛糅,與之轉化,以聽天下,若背風而馳,是謂至德。至德則樂矣。古之人有居巖穴而神不遺者,末世有勢為萬乘而日憂悲者。由此觀之,聖亡乎治人,而在於得道;樂亡乎富貴,而在於德和。知大己而小天下,則幾於道矣。所謂樂者,豈必處京臺、章華,游雲夢、沙丘,耳聽九韶、六瑩,口味煎熬芬芳,馳騁夷道,釣射鷫鷞之謂樂乎?吾所謂樂者,人得其得者也。夫得其得者,不以奢為樂,不以廉為悲,與陰俱閉,與陽俱開。故子夏心戰而臞,得道而肥。聖人不以身役物,不以欲滑和,是故其為懽不忻忻,其為悲不惙惙,萬方百變,消搖而無所定,吾獨慷慨,遺物而與道同出。是故有以自得之也,喬木之下,空穴之中,足以適情。無以自得也,雖以天下為家,萬民為臣妾,不足以養生也。能至於無樂者,則無不樂;無不樂,則至極樂矣。
큰 도는 평탄하여 몸에서 멀지 않으니 가까운 데서 구하면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다가오면 응할 수 있고 느끼면 움직일 수 있으니 물건은 그윽하여 끝이 없고 변화는 꼴과 모양이 없다. 여유롭게 맡기고 놓아 메아리가 소리에, 그림자가 꼴에 응함 같고 높이 올라 아래를 굽어보며 잡은 바를 잃지 않고 위태함을 밟고 험함을 다녀도 검은 엎드림을 잊지 않는다. 이를 보존할 수 있으면 그 덕이 이지러지지 않아 만물이 어지러이 뒤섞여도 더불어 굴러 변화하며 천하를 다스림이 바람을 등지고 달림 같으니 이를 지극한 덕이라 한다. 지극한 덕이면 즐겁다. 옛사람에 바위 굴에 살면서 정신을 잃지 않은 이가 있었고 말세에 만승의 세를 가지고도 날마다 근심하고 슬퍼하는 이가 있다. 이로써 보면 성스러움은 사람 다스림에 있지 않고 도 얻음에 있으며 즐거움은 부귀에 있지 않고 덕의 화함에 있다. 저를 크게 여기고 천하를 작게 여기면 도에 가깝다. 이른바 즐거움이란 어찌 반드시 경대·장화에 처하고 운몽·사구에 노닐며 귀로 구소·육영을 듣고 입으로 지지고 볶은 향기로운 것을 맛보며 평탄한 길을 달리고 숙상을 낚고 쏨을 즐거움이라 하겠는가. 내가 이른바 즐거움이란 사람이 그 얻을 것을 얻음이다. 무릇 그 얻을 것을 얻은 이는 사치를 즐거움으로 삼지 않고 청렴을 슬픔으로 삼지 않으며 음과 함께 닫히고 양과 함께 열린다. 그러므로 자하는 마음이 싸워 여위었다가 도를 얻어 살쪘다. 성인은 몸으로 물건에 부려지지 않고 바람으로 화함을 어지럽히지 않으니 이 때문에 그 기뻐함이 기뻐 날뛰지 않고 그 슬퍼함이 근심에 잠기지 않아 만 가지 온갖 변화에 소요하여 정한 바 없이 나 홀로 강개하여 물건을 버리고 도와 함께 나온다. 이 때문에 스스로 얻음이 있으면 큰 나무 아래와 빈 굴 속도 정을 맞추기에 넉넉하다. 스스로 얻음이 없으면 비록 천하를 집으로 삼고 만민을 신하와 첩으로 삼아도 삶을 기르기에 넉넉하지 않다. 즐거움 없음에 이를 수 있는 이는 즐겁지 않음이 없고 즐겁지 않음이 없으면 지극한 즐거움에 이른다.
夫建鍾鼓,列管弦,席旃茵,傅旄象,耳聽朝歌北鄙靡靡之樂,齊靡曼之色,陳酒行觴,夜以繼日,強弩弋高鳥,走犬逐狡兔,此其為樂也,炎炎赫赫,怵然若有所誘慕。解車休馬,罷酒徹樂,而心忽然若有所喪,悵然若有所亡也。是何則?不以內樂外,而以外樂內,樂作而喜,曲終而悲,悲喜轉而相生,精神亂營,不得須臾平。察其所以,不得其形,而日以傷生,失其得者也。是故內不得於中,稟授於外而以自飾也,不浸於肌膚,不浹於骨髓,不留於心志,不滯於五藏。故從外入者,無主於中,不止。從中出者,無應於外,不行。故聽善言便計,雖愚者知說之;稱至德高行,雖不肖者知慕之。說之者眾而用之者鮮,慕之者多而行之者寡。所以然者,何也?不能反諸性也。夫內不開於中而強學問者,不入於耳而不著於心。此何以異於聾者之歌也?效人為之而無以自樂也,聲出於口則越而散矣。
무릇 종과 북을 세우고 관과 현을 벌이며 담요와 자리를 깔고 깃대와 상아를 붙이고 귀로 조가와 북비의 나른한 음악을 들으며 곱고 가는 여자를 가지런히 하고 술을 벌여 잔을 돌리며 밤으로 낮을 잇고 센 쇠뇌로 높은 새를 쏘고 달리는 개로 교활한 토끼를 쫓음은 그 즐거움 됨이 이글이글 빛나 두려워하며 꾀어 사모하는 바가 있는 듯하다. 수레를 풀고 말을 쉬며 술을 그치고 음악을 거두면 마음이 문득 잃은 바가 있는 듯하고 창연히 없어진 바가 있는 듯하다. 이는 어째서인가. 안으로 밖을 즐기지 않고 밖으로 안을 즐겨 음악이 일면 기쁘고 곡이 끝나면 슬퍼 슬픔과 기쁨이 굴러 서로 나서 정신이 어지럽고 잠시도 평안을 얻지 못해서다. 그 까닭을 살펴도 그 꼴을 얻지 못하고 날로 삶을 상하니 그 얻음을 잃은 것이다. 이 때문에 안으로 가운데에서 얻지 못하고 밖에서 받아 스스로 꾸밈은 살갗에 젖지 않고 골수에 배지 않으며 마음과 뜻에 머물지 않고 오장에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밖에서 든 것은 가운데에 주인이 없으면 머물지 않고 가운데에서 나온 것은 밖에 응함이 없으면 행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착한 말과 편한 꾀를 들으면 비록 어리석은 이도 기뻐할 줄 알고 지극한 덕과 높은 행실을 일컬으면 비록 못난 이도 사모할 줄 안다. 기뻐하는 이는 많으나 쓰는 이는 드물고 사모하는 이는 많으나 행하는 이는 적다. 그러한 까닭은 어째서인가. 성품에 돌이킬 수 없어서다. 무릇 안으로 가운데가 열리지 않으면서 억지로 배우고 묻는 이는 귀에 들지 않고 마음에 붙지 않는다. 이것이 귀먹은 이의 노래와 무엇이 다른가. 남을 본떠 하면서 스스로 즐길 것이 없으니 소리가 입에서 나오면 넘쳐 흩어진다.
夫心者,五藏之主也,所以制使四支,流行血氣,馳騁於是非之境,而出入於百事之門戶者也。是故不得於心而有經天下之氣,是猶無耳而欲調鐘鼓,無目而欲喜文章也,亦必不勝其任矣。故天下神器,不可為也,為者敗之,執者失之。夫許由小天下而不以己易堯者,志遺於天下也。所以然者,何也?因天下而為天下也。天下之要,不在於彼而在於我,不在於人而在於我身,身得則萬物備矣。徹於心術之論,則嗜欲好憎外矣。是故無所喜而無所怒,無所樂而無所苦,萬物玄同也,無非無是,化育玄燿,生而如死。
무릇 마음은 오장의 주인이라 네 팔다리를 제어하여 부리고 혈기를 흐르게 하며 옳고 그름의 지경을 달리고 온갖 일의 문호를 드나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음에서 얻지 못하고서 천하를 다스릴 기운이 있음은 귀가 없이 종과 북을 고르려 하고 눈이 없이 문장을 기뻐하려 함과 같으니 또한 반드시 그 맡음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하는 신령한 그릇이라 억지로 어찌할 수 없으니 하는 이는 패하고 잡는 이는 잃는다. 무릇 허유가 천하를 작게 여겨 저로 요를 바꾸지 않음은 뜻이 천하에서 잊혀서다. 그러한 까닭은 어째서인가. 천하로 인하여 천하를 삼아서다. 천하의 요긴함은 저기에 있지 않고 나에게 있으며 남에게 있지 않고 내 몸에 있으니 몸이 얻으면 만물이 갖추어진다. 마음의 술에 관한 논에 통하면 즐기고 바라고 좋아하고 미워함이 밖으로 나간다. 이 때문에 기쁜 바가 없고 노한 바가 없으며 즐거운 바가 없고 괴로운 바가 없어 만물이 검게 같으니 그름도 없고 옳음도 없어 조화하고 기름이 검게 빛나 살아도 죽은 듯하다.
夫天下者亦吾有也,吾亦天下之有也,天下之與我,豈有間哉!夫有天下者,豈必攝權持勢,操殺生之柄而以行其號令邪?吾所謂有天下者,非謂此也,自得而已。自得,則天下亦得我矣。吾與天下相得,則常相有,己又焉有不得容其間者乎!所謂自得者,全其身者也。全其身,則與道為一矣。故雖游於江潯海裔,馳要褭,建翠蓋,目觀掉羽、武象之樂,耳聽滔朗奇麗激抮之音,揚鄭、衛之浩樂,結激楚之遺風,射沼濱之高鳥,逐苑囿之走獸,此齊民之所以淫泆流湎,聖人處之,不足以營其精神,亂其氣志,使心怵然失其情性。處窮僻之鄉,側谿谷之間,隱於榛薄之中,環堵之室,茨之以生茅,蓬戶瓮牖,揉桑為樞,上漏下溼,潤浸北房,雪霜滖灖,浸潭眾蔣,逍遙於廣澤之中,而仿洋於山峽之旁,此齊民之所為形植黎黑,憂悲而不得志也,聖人處之,不為愁悴怨懟,而不失其所以自樂也。是何也?則內有以通於天機,而不以貴賤貧富勞逸失其志德者也。故夫烏之啞啞,鵲之唶唶,豈嘗為寒暑燥溼變其聲哉!是故夫得道已定,而不待萬物之推移也,非以一時之變化而定吾所以自得也。吾所謂得者,性命之情處其所安也。
무릇 천하는 또한 내 것이요 나도 천하의 것이니 천하와 나에 어찌 사이가 있겠는가! 무릇 천하를 둔 이가 어찌 반드시 권세를 잡고 죽이고 살리는 자루를 쥐고 그 호령을 행하는 것이랴. 내가 이른바 천하를 둔 이는 이를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얻을 뿐이다. 스스로 얻으면 천하도 나를 얻는다. 나와 천하가 서로 얻으면 늘 서로 가지니 저와 내가 또 어찌 그 사이에 용납되지 않을 것이 있겠는가! 이른바 스스로 얻음이란 그 몸을 온전히 함이다. 그 몸을 온전히 하면 도와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비록 강 가와 바다 끝에 노닐고 요뇨를 달리며 비취 덮개를 세우고 눈으로 도우·무상의 음악을 보며 귀로 넘실대고 기이하고 곱고 격하게 흔드는 음을 듣고 정·위의 넓은 음악을 드날리며 격초의 남긴 풍을 맺고 못가의 높은 새를 쏘고 동산의 달리는 짐승을 쫓음은 이는 보통 백성이 음탕하게 흘러 빠지는 바인데 성인이 처하면 그 정신을 어지럽히고 그 기운과 뜻을 어지럽혀 마음이 두려워 그 정과 성품을 잃게 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궁벽한 고을에 처하고 시내와 골짜기 사이에 곁하며 덤불 가운데 숨어 담 한 겹 방에 산 띠로 지붕을 잇고 쑥대 문과 항아리 창에 뽕나무를 구부려 지도리로 삼아 위는 새고 아래는 젖어 북쪽 방까지 스미며 눈과 서리가 쌓이고 뭇 풀에 젖으며 넓은 못 가운데를 소요하고 산골짜기 곁을 방황함은 이는 보통 백성이 꼴이 검게 마르고 근심하고 슬퍼하여 뜻을 얻지 못하는 바인데 성인이 처하면 근심하고 초췌하며 원망하지 않고 그 스스로 즐기는 까닭을 잃지 않는다. 이는 어째서인가. 안으로 하늘의 틀에 통함이 있어 귀하고 천하고 가난하고 부유하고 수고롭고 편안함으로 그 뜻과 덕을 잃지 않는 이여서다. 그러므로 무릇 까마귀의 까악까악과 까치의 깍깍이 어찌 일찍이 추위와 더위와 마름과 습함으로 그 소리를 바꾸겠는가! 이 때문에 무릇 도를 얻음이 이미 정해지면 만물의 옮겨 감을 기다리지 않으니 한때의 변화로 내가 스스로 얻는 까닭을 정함이 아니다. 내가 이른바 얻음이란 성품과 명의 정이 그 편안한 바에 처함이다.
夫性命者,與形俱出其宗,形備而性命成,性命成而好憎生矣。故士有一定之論,女有不易之行,規矩不能方圓,鉤繩不能曲直。天地之永,登丘不可為脩,居卑不可為短。是故得道者,窮而不懾,達而不榮,處高而不機,持盈而不傾,新而不朗,久而不渝,入火不焦,入水不濡。是故不待勢而尊,不待財而富,不待力而強,平虛下流,與化翱翔。若然者,藏金於山,藏珠於淵,不利貨財,不貪勢名。是故不以康為樂,不以慊為悲,不以貴為安,不以賤為危,形神氣志,各居其宜,以隨天地之所為。夫形者,生之舍也;氣者,生之充也;神者,生之制也。一失位,則三者傷矣。是故聖人使人各處其位,守其職,而不得相乾也。故夫形者非其所安也而處之則廢,氣不當其所充而用之則泄,神非其所宜而行之則昧。此三者,不可不慎守也。
무릇 성품과 명은 꼴과 함께 그 조상에서 나오니 꼴이 갖추어져 성품과 명이 이루어지고 성품과 명이 이루어져 좋아하고 미워함이 난다. 그러므로 선비에게 한 번 정한 논이 있고 여자에게 바꾸지 않는 행실이 있어 그림쇠와 곱자가 모나고 둥글게 할 수 없고 갈고리와 먹줄이 굽고 곧게 할 수 없다. 하늘과 땅의 영원함은 언덕에 올라도 길게 할 수 없고 낮은 데 있어도 짧게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도를 얻은 이는 궁하여도 겁내지 않고 통달하여도 영화롭지 않으며 높은 데 처하여도 흔들리지 않고 가득함을 지녀도 기울지 않으며 새로워도 빛나지 않고 오래여도 변하지 않으며 불에 들어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도 젖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를 기다리지 않고 높고 재물을 기다리지 않고 부유하며 힘을 기다리지 않고 강하여 평평하고 비어 아래로 흘러 조화와 더불어 난다. 이 같은 이는 금을 산에 감추고 구슬을 못에 감추어 재물을 이롭게 여기지 않고 세와 이름을 탐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편안함을 즐거움으로 삼지 않고 모자람을 슬픔으로 삼지 않으며 귀함을 편안함으로 삼지 않고 천함을 위태함으로 삼지 않아 꼴과 신과 기운과 뜻이 저마다 그 마땅함에 있어 하늘과 땅이 하는 바를 따른다. 무릇 꼴은 삶의 집이요 기운은 삶의 채움이요 신은 삶의 제어다. 하나가 자리를 잃으면 셋이 다친다. 이 때문에 성인은 사람마다 그 자리에 처하고 그 직분을 지켜 서로 범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무릇 꼴이 그 편안한 바가 아닌데 처하면 폐하고 기운이 그 채울 바에 맞지 않는데 쓰면 새고 신이 그 마땅한 바가 아닌데 행하면 어둡다. 이 셋은 삼가 지키지 않을 수 없다.
夫舉天下萬物,蚑蟯貞蟲,蝡動蚑作,皆知其所喜憎利害者,何也?以其性之在焉而不離也,忽去之,則骨肉無倫矣。今人之所以眭然能視,營然能聽,形體能抗,而百節可屈伸,察能分白黑、視醜美,而知能別同異、明是非者,何也?氣為之充,而神為之使也。何以知其然也?凡人之志各有所在而神有所繫者,其行也,足蹪趎埳、頭抵植木而不自知也,招之而不能見也,呼之而不能聞也。耳目非去之也,然而不能應者,何也?神失其守也。故在於小則忘於大,在於中則忘於外,在於上則忘於下,在於左則忘於右。無所不充,則無所不在。是故貴虛者以豪末為宅也。
무릇 천하 만물과 발 달린 벌레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들이 다 그 좋아하고 미워하고 이롭고 해로운 바를 앎은 어째서인가. 그 성품이 거기 있어 떠나지 않아서니 문득 떠나면 뼈와 살이 차례가 없어진다. 이제 사람이 눈을 부릅떠 볼 수 있고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으며 몸이 버틸 수 있고 온갖 마디를 굽히고 펼 수 있으며 살핌이 흰빛과 검은빛을 나누고 추하고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며 앎이 같고 다름을 가르고 옳고 그름을 밝힐 수 있음은 어째서인가. 기운이 채우고 신이 부려서다. 무엇으로 그 그러함을 아는가. 무릇 사람의 뜻이 저마다 있는 바가 있어 신이 매인 바가 있으면 그 다님에 발이 구덩이에 걸려 넘어지고 머리가 선 나무에 부딪쳐도 스스로 알지 못하며 불러도 볼 수 없고 소리쳐도 들을 수 없다. 귀와 눈이 없어진 것이 아닌데 그러나 응할 수 없음은 어째서인가. 신이 그 지킴을 잃어서다. 그러므로 작은 데 있으면 큰 것을 잊고 가운데에 있으면 밖을 잊고 위에 있으면 아래를 잊고 왼쪽에 있으면 오른쪽을 잊는다. 채우지 않는 바가 없으면 있지 않은 바가 없다. 이 때문에 빔을 귀하게 여기는 이는 터럭 끝으로 집을 삼는다.
今夫狂者之不能避水火之難而越溝瀆之險者,豈無形神氣志哉?然而用之異也。失其所守之位,而離其外內之舍,是故舉錯不能當,動靜不能中,終身運枯形於連嶁列埒之門,而蹪蹈於污壑阱陷之中,雖生俱與人鈞,然而不免為人戮笑者,何也?形神相失也。故以神為主者,形從而利;以形為制者,神從而害。貪饕多欲之人,漠歐於勢利,誘慕於名位,冀以過人之智植於高世,則神日以耗而彌遠,久淫而不還,形閉中距,則神無由入矣。是以天下時有盲妄自失之患。此膏燭之類也,火逾然而消逾亟。夫精神氣志者,靜而日充者以壯,躁而日耗者以老。是故聖人將養其神,和弱其氣,平夷其形,而與道沈浮俛仰,恬然則縱之,迫則用之。其縱之也若委衣,其用之也若發機。如是,則萬物之化無不遇,而百事之變無不應。
이제 무릇 미친 이가 물과 불의 어려움을 피하지 못하고 도랑과 개천의 험함을 넘지 못함은 어찌 꼴과 신과 기운과 뜻이 없어서겠는가. 그러나 그 씀이 달라서다. 그 지키는 자리를 잃고 그 안팎의 집을 떠났으니 이 때문에 거동이 마땅할 수 없고 움직임과 고요함이 맞을 수 없어 종신토록 마른 꼴을 잇단 언덕과 늘어선 두둑의 문에 운행하며 더러운 구렁과 함정 속에 넘어져 밟혀 비록 삶은 사람과 함께 고르나 남에게 죽임을 당하고 웃음을 사는 것을 면하지 못함은 어째서인가. 꼴과 신이 서로 잃어서다. 그러므로 신을 주인으로 삼는 이는 꼴이 따라 이롭고 꼴을 제어로 삼는 이는 신이 따라 해롭다. 탐하고 바람 많은 사람은 세와 이익에 흘러 몰리고 이름과 자리에 꾀여 사모하며 남보다 나은 슬기로 높은 세상에 세우기 바라니 신이 날로 소모되어 더욱 멀어지고 오래 빠져 돌아오지 않으며 꼴이 닫히고 가운데가 막히면 신이 들어올 길이 없다. 이 때문에 천하에 때로 눈멀고 망령되어 스스로 잃는 근심이 있다. 이는 기름 초의 무리라 불이 탈수록 사라짐이 더욱 빠르다. 무릇 정신과 기운과 뜻은 고요하여 날로 차는 이는 씩씩하고 조급하여 날로 소모되는 이는 늙는다. 이 때문에 성인은 장차 그 신을 기르고 그 기운을 화하고 약하게 하며 그 꼴을 평평히 하여 도와 더불어 잠기고 뜨고 굽어보고 우러르며 편안하면 놓고 급하면 쓴다. 그 놓음은 옷을 벗어 둔 듯하고 그 씀은 쇠뇌를 쏘는 듯하다. 이 같으면 만물의 변화에 만나지 않음이 없고 온갖 일의 변고에 응하지 않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