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회남자 › 숙진훈

俶真訓

회남자 淮南子 · 유안(劉安)과 문객들 · 기원전 139년 무렵 · 단락 27 · 한자 5,377자 · 낭독 21.5분

「회남자」 숙진훈 「俶真訓」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나라 회남왕 유안이 문객들과 함께 엮은 책이다. 도덕경·장자·열자에 이은 도가의 넷째 자리에 놓이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손이 나누어 쓴 백과에 가깝다. 하늘과 땅의 얼개(천문·지형·시칙), 사람의 정신과 다스림, 병법과 잠언까지 한 집에 다 들여놓았다. 항아가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처음 적힌 곳이 남명훈이다. 지금 전하는 달 신화의 뿌리가 여기 한 줄이다. 설산훈과 설림훈 두 편은 짧은 잠언을 줄줄이 늘어놓았고, 도응훈은 이야기 쉰다섯 도막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로 끝을 맺는다. 옛 이야기를 도덕경 구절에 하나씩 맞춰 본 셈이다. 시칙훈은 동방의 끝을 「갈석산을 지나 조선을 지난다」로 잡고, 인간훈은 진 시황이 긴 성을 쌓아 「동으로 조선에 맺었다」고 적는다. 한나라 초에 조선이 어디쯤으로 여겨졌는지 보여 주는 두 자리다.

有始者,有未始有有始者,有未始有夫未始有有始者。有有者,有無者,有未始有有無者,有未始有夫未始有有無者。

시작이 있는 것이 있고, 시작이 있음이 아직 있지 않은 것이 있고, 시작이 있음이 아직 있지 않음이 아직 있지 않은 것이 있다. 있음이 있고, 없음이 있고, 있음과 없음이 아직 있지 않은 것이 있고, 있음과 없음이 아직 있지 않음이 아직 있지 않은 것이 있다.

所謂有始者,繁憤未發,萌兆牙櫱,未有形埒垠堮,無無蝡蝡,將欲生興而未成物類。有未始有有始者,天氣始下,地氣始上,陰陽錯合,相與優游競暢于宇宙之間,被德含和,繽紛蘢蓯,欲與物接而未成兆朕。有未始有夫未始有有始者,天含和而未降,地懷氣而未揚,虛無寂寞,蕭條霄雿,無有仿佛,氣遂而大通冥冥者也。有有者,言萬物摻落,根莖枝葉,青蔥苓蘢,萑蔰炫煌,蠉飛蝡動,蚑行噲息,可切循把握而有數量。有無者,視之不見其形,聽之不聞其聲,捫之不可得也,望之不可極也,儲與扈冶,浩浩瀚瀚,不可隱儀揆度而通光耀者。有未始有有無者,包裹天地,陶冶萬物,大通混冥,深閎廣大,不可為外,析豪剖芒,不可為內,無環堵之宇而生有無之根。有未始有夫未始有有無者,天地未剖,陰陽未判,四時未分,萬物未生,汪然平靜,寂然清澄,莫見其形,若光燿之間於無有,退而自失也,曰:「予能有無,而未能無無也。及其為無無,至妙何從及此哉!」

이른바 시작이 있는 것이란 무성하게 부풀어 아직 발하지 않고 싹과 조짐이 움트나 아직 꼴과 지경과 경계가 없으며 꿈틀꿈틀 장차 나서 일어나려 하나 아직 물건의 무리를 이루지 않은 것이다. 시작이 있음이 아직 있지 않은 것이란 하늘 기운이 비로소 내려오고 땅 기운이 비로소 올라 음양이 섞여 합하고 서로 더불어 우주 사이에서 넉넉히 노닐고 다투어 펴며 덕을 입고 화함을 머금어 어지러이 무성하나 물건과 접하려 하면서 아직 조짐을 이루지 않은 것이다. 시작이 있음이 아직 있지 않음이 아직 있지 않은 것이란 하늘이 화함을 머금었으나 아직 내리지 않고 땅이 기운을 품었으나 아직 날리지 않아 비고 없고 고요하고 쓸쓸하고 텅 비어 어렴풋함도 있지 않고 기운이 마침내 크게 통하여 어둡고 어두운 것이다. 있음이 있는 것이란 만물이 흩어져 떨어지고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이 푸르고 무성하며 화려하고 빛나며 날고 꿈틀거리고 기어다니고 숨 쉬어 만지고 따라 잡을 수 있고 수량이 있음을 말한다. 없음이 있는 것이란 보아도 그 꼴이 보이지 않고 들어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더듬어도 얻을 수 없고 바라보아도 다할 수 없으며 넓고 넓고 아득하고 아득하여 헤아리고 재어 은밀히 견줄 수 없으나 빛을 통하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이 아직 있지 않은 것이란 하늘과 땅을 싸안고 만물을 빚어 크게 통하여 섞여 어둡고 깊고 넓고 크며 밖을 삼을 수 없고 터럭을 쪼개고 까끄라기를 갈라도 안을 삼을 수 없으며 담 한 겹의 집이 없이 있음과 없음의 뿌리를 낳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이 아직 있지 않음이 아직 있지 않은 것이란 하늘과 땅이 아직 갈리지 않고 음양이 아직 나뉘지 않고 사철이 아직 나뉘지 않고 만물이 아직 나지 않아 넓게 평평하고 고요하며 잠잠히 맑고 맑아 그 꼴을 보는 이가 없으니 빛이 없음과 있음 사이에 있다가 물러나 스스로 잃음 같아 말하기를 「나는 없음을 둘 수 있으나 아직 없음을 없앨 수 없다. 그 없음을 없앰이 되면 지극한 묘함이 무엇으로 여기에 미치겠는가!」 한다.

夫大塊載我以形,勞我以生,逸我以老,休我以死。善我生者,乃所以善我死也。夫藏舟於壑,藏山於澤,人謂之固矣。雖然,夜半有力者負而趨,寐者不知,猶有所遁。若藏天下於天下,則無所遁其形矣。

무릇 큰 덩어리가 나를 꼴로 실어 주고 삶으로 나를 수고롭히며 늙음으로 나를 편안히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 내 삶을 잘함은 곧 내 죽음을 잘하는 까닭이다. 무릇 배를 골짜기에 감추고 산을 못에 감추면 사람이 굳다 한다. 비록 그러나 한밤에 힘센 이가 지고 달리면 잠자는 이는 알지 못하니 오히려 달아나는 바가 있다. 천하를 천하에 감추면 그 꼴이 달아날 데가 없다.

物豈可謂無大揚攉乎?一範人之形而猶喜。若人者,千變萬化而未始有極也。弊而復新,其為樂也,可勝計邪!譬若夢為鳥而飛於天,夢為魚而沒於淵,方其夢也,不知其夢也,覺而後知其夢也。今將有大覺,然後知今此之為大夢也。始吾未生之時,焉知生之樂也?今吾未死,又焉知死之不樂也?昔公牛哀轉病也,七日化為虎。其兄掩戶而入覘之,則虎搏而殺之。是故文章成獸,爪牙移易,志與心變,神與形化。方其為虎也,不知其嘗為人也;方其為人,不知其且為虎也。二者代謝舛馳,各樂其成形。狡猾鈍惛,是非無端,孰知其所萌!

물건이 어찌 크게 드날려 두드림이 없다 할 수 있겠는가. 한 번 사람의 꼴을 본떠 놓고도 오히려 기뻐한다. 사람 같은 것은 천 번 변하고 만 번 변하여 아직 끝이 있지 않다. 해지면 다시 새로워지니 그 즐거움 됨을 이루 다 셀 수 있겠는가! 비유하면 꿈에 새가 되어 하늘에 날고 꿈에 고기가 되어 못에 잠김에 바야흐로 꿈꿀 때는 그 꿈임을 알지 못하고 깬 뒤에야 그 꿈임을 앎과 같다. 이제 장차 큰 깸이 있은 뒤에야 지금 이것이 큰 꿈임을 알 것이다. 처음 내가 아직 나지 않았을 때 어찌 삶의 즐거움을 알았겠는가. 이제 내가 아직 죽지 않았는데 또 어찌 죽음이 즐겁지 않음을 알겠는가. 옛날 공우애가 병이 구르더니 이레에 변하여 범이 되었다. 그 형이 문을 열고 들어가 엿보니 범이 쳐서 죽였다. 이 때문에 무늬가 짐승을 이루고 손톱과 이가 옮겨 바뀌며 뜻이 마음과 함께 변하고 신이 꼴과 함께 변하였다. 바야흐로 그 범이 되었을 때는 그 일찍이 사람이었음을 알지 못하고 바야흐로 그 사람일 때는 그 장차 범이 될 것을 알지 못하였다. 둘이 번갈아 바뀌어 어긋나게 달려 저마다 그 이루어진 꼴을 즐긴다. 교활하고 둔하고 어두워 옳고 그름에 끝이 없으니 누가 그 싹튼 바를 알겠는가!

夫水嚮冬則凝而為冰,冰迎春則泮而為水,冰水移易于前後,若周員而趨,孰暇知其所苦樂乎!是故形傷于寒暑燥溼之虐者,形苑而神壯;神傷乎喜怒思慮之患者,神盡而形有餘。故罷馬之死也,剝之若槁;狡狗之死也,割之猶濡。是故傷死者其鬼嬈,時既者其神漠。是皆不得形神俱沒也。夫聖人用心,杖性依神,相扶而得終始,是故其寐不夢,其覺不憂。

무릇 물이 겨울을 향하면 엉겨 얼음이 되고 얼음이 봄을 맞으면 풀려 물이 되니 얼음과 물이 앞뒤로 옮겨 바뀜이 둥글게 돌며 달림 같은데 누가 그 괴롭고 즐거운 바를 알 겨를이 있겠는가! 이 때문에 꼴이 추위와 더위와 마름과 습함의 사나움에 다친 이는 꼴이 시들어도 신이 씩씩하고 신이 기쁨과 노함과 생각의 근심에 다친 이는 신이 다하여도 꼴이 남는다. 그러므로 지친 말이 죽음에 벗기면 마른 것 같고 교활한 개가 죽음에 베면 오히려 젖어 있다. 이 때문에 다쳐 죽은 이는 그 귀신이 요란하고 때가 다한 이는 그 신이 고요하다. 이는 다 꼴과 신이 함께 없어지지 못한 것이다. 무릇 성인이 마음을 씀은 성품에 기대고 신에 의지하여 서로 붙들어 시작과 끝을 얻으니 이 때문에 그 잠에 꿈꾸지 않고 그 깸에 근심하지 않는다.

古之人有處混冥之中,神氣不蕩于外,萬物恬漠以愉靜,攙搶衡杓之氣莫不彌靡,而不能為害。當此之時,萬民猖狂,不知東西,含哺而游,鼓腹而熙,交被天和,食于地德,不以曲故是非相尤,茫茫沈沈,是謂大治。於是在上位者,左右而使之,毋淫其性;鎮撫而有之,毋遷其德。是故仁義不布而萬物蕃殖,賞罰不施而天下賓服。其道可以大美興,而難以算計舉也。是故日計之不足,而歲計之有餘。

옛사람에 섞여 어두운 가운데 처하여 신과 기운이 밖으로 흔들리지 않고 만물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즐겁고 고요하며 혜성과 북두 자루의 기운이 두루 스러지지 않음이 없어 해가 될 수 없는 이가 있었다. 이때를 당하여 만민이 미친 듯하여 동서를 알지 못하고 먹을 것을 물고 노닐며 배를 두드리며 즐기고 하늘의 화함을 함께 입고 땅의 덕을 먹으며 굽은 꾀와 옳고 그름으로 서로 탓하지 않아 아득하고 아득하니 이를 큰 다스림이라 한다. 이에 윗자리에 있는 이가 좌우로 부리되 그 성품을 어지럽히지 않고 진정하여 어루만져 가지되 그 덕을 옮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의를 펴지 않아도 만물이 번식하고 상벌을 베풀지 않아도 천하가 손님으로 복종하였다. 그 도는 큰 아름다움으로 일으킬 수 있으나 셈하고 꾀함으로 들기 어렵다. 이 때문에 날로 셈하면 모자라나 해로 셈하면 남는다.

夫魚相忘於江湖,人相忘於道術。古之真人,立於天地之本,中至優游,抱德煬和,而萬物雜累焉,孰肯解構人間之事,以物煩其性命乎!夫道有經紀條貫,得一之道,連千枝萬葉。是故貴有以行令,賤有以忘卑,貧有以樂業,困有以處危。夫大寒至,霜雪降,然後知松柏之茂也。據難履危,利害陳于前,然後知聖人之不失道也。是故能戴大員者履大方,鏡太清者視大明,立太平者處大堂,能游冥冥者與日月同光。是故以道為竿,以德為綸,禮樂為鉤,仁義為餌,投之於江,浮之於海,萬物紛紛,孰非其有!

무릇 고기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 잊고 사람은 도술에서 서로 잊는다. 옛 진인은 하늘과 땅의 근본에 서서 가운데가 지극히 넉넉하게 노닐며 덕을 안고 화함을 데우니 만물이 섞여 쌓여도 누가 기꺼이 인간의 일을 풀어 얽어 물건으로 그 성품과 명을 번거롭히겠는가! 무릇 도에 벼리와 조리가 있으니 하나의 도를 얻으면 천 가지 만 잎을 잇는다. 이 때문에 귀함에 명령을 행할 것이 있고 천함에 낮음을 잊을 것이 있으며 가난함에 업을 즐길 것이 있고 곤함에 위태함에 처할 것이 있다. 무릇 큰 추위가 이르러 서리와 눈이 내린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무성함을 안다. 어려움에 근거하고 위태함을 밟아 이해가 앞에 벌여진 뒤에야 성인이 도를 잃지 않음을 안다. 이 때문에 큰 둥긂을 일 수 있는 이는 큰 모남을 밟고 태청을 거울 삼는 이는 큰 밝음을 보며 태평을 세우는 이는 큰 당에 처하고 어둡고 어두운 데 노닐 수 있는 이는 해와 달과 빛을 같이한다. 이 때문에 도로 낚싯대를 삼고 덕으로 줄을 삼으며 예악으로 낚시를 삼고 인의로 미끼를 삼아 강에 던지고 바다에 띄우면 만물이 어지러워도 어느 것인들 그 가진 것이 아니겠는가!

夫挾依於跂躍之術,提挈人間之際,撢掞挺挏世之風俗,以摸蘇牽連物之微妙,猶得肆其志,充其欲,何況懷瑰瑋之道,忘肝膽,遺耳目,獨浮游無方之外,不與物相弊摋,中徙倚無形之域而和以天地者乎!若然者,偃其聰明而抱其太素,以利害為塵垢,以死生為晝夜,是故目觀玉輅琬象之狀,耳聽白雪、清角之聲,不能以亂其神。登千仞之谿,臨蝯眩之岸,不足以滑其和。譬若鍾山之玉,炊以鑪炭,三日三夜而色澤不變。則至德天地之精也。是故生不足以使之,利何足以動之;死不足以禁之,害何足以恐之。明於死生之分,達於利害之變,雖以天下之大,易骭之一毛,無所概於志也。

무릇 발돋움하고 뛰는 술에 기대어 인간의 즈음을 끌고 세상의 풍속을 흔들고 뒤흔들며 물건의 미묘함을 더듬고 이어도 오히려 그 뜻을 펴고 그 바람을 채울 수 있는데 하물며 크고 아름다운 도를 품고 간과 쓸개를 잊고 귀와 눈을 버리며 홀로 방향 없는 밖에 떠다니며 물건과 서로 해치지 않고 꼴 없는 지경을 옮겨 다니며 하늘과 땅과 화하는 이랴! 이 같은 이는 그 총명을 누이고 그 큰 바탕을 안아 이해를 티끌로 여기고 죽고 삶을 낮과 밤으로 여기니 이 때문에 눈으로 옥 수레와 옥과 상아의 모양을 보고 귀로 백설·청각의 소리를 들어도 그 신을 어지럽힐 수 없다. 천 길 시내에 오르고 원숭이도 아찔한 언덕에 임하여도 그 화함을 어지럽히기에 넉넉하지 않다. 비유하면 종산의 옥은 화로 숯으로 불려도 사흘 밤낮에 빛깔이 변하지 않음과 같다. 곧 지극한 덕은 하늘과 땅의 정이다. 이 때문에 삶도 그를 부리기에 넉넉하지 않은데 이익이 어찌 그를 움직이기에 넉넉하며 죽음도 그를 금하기에 넉넉하지 않은데 해가 어찌 그를 두렵게 하기에 넉넉하겠는가. 죽고 삶의 나뉨에 밝고 이해의 변화에 통달하면 비록 천하의 큼으로 정강이의 털 하나와 바꾸어도 뜻에 개의하는 바가 없다.

夫貴賤之於身也,猶條風之時麗也;毀譽之於己,猶蚊虻之一過也。夫秉皓白而不黑,行純粹而不糅,處玄冥而不闇,休于天鈞而不䃣,孟門、終隆之山不能禁,雖體道能不敗,湍瀨旋淵、呂梁之深不能留也,太行石澗、飛狐、句望之險不能難也。是故身處江海之上,而神游魏闕之下。非得一原,孰能至於此哉!

무릇 귀하고 천함이 몸에 대함은 동풍이 때로 붙음 같고 헐뜯고 기림이 저에게 대함은 모기와 등에가 한 번 지나감 같다. 무릇 흰 것을 잡고 검어지지 않으며 순수함을 행하고 섞이지 않으며 검고 어두운 데 처하여 어둡지 않고 하늘의 고름에 쉬어 흔들리지 않으니 맹문·종륭의 산도 금할 수 없고 비록 도를 몸 삼아 패하지 않을 수 있어 여울과 돌아드는 못과 여량의 깊음도 머물게 할 수 없고 태행의 돌 골짜기와 비호·구망의 험함도 어렵게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몸은 강과 바다 위에 처하나 신은 위궐 아래 노닌다. 한 근원을 얻지 않고서 누가 여기에 이를 수 있겠는가!

是故與至人居,使家忘貧,使王公簡其富貴而樂卑賤,勇者衰其氣,貪者消其欲。坐而不教,立而不議,虛而往者實而歸,故不言而能飲人以和。是故至道無為,一龍一蛇,盈縮卷舒,與時變化。外從其風,內守其性,耳目不燿,思慮不營。其所居神者,臺簡以游太清,引楯萬物,群美萌生。是故事其神者神去之,休其神者神居之。道出一原,通九門,散六衢,設於無垓坫之宇,寂漠以虛無。非有為於物也,物以有為於己也。是故舉事而順于道者,非道之所為也,道之所施也。

이 때문에 지극한 사람과 함께 살면 집이 가난을 잊게 하고 왕공이 그 부귀를 간략히 하고 낮고 천함을 즐기게 하며 용맹한 이가 그 기운을 쇠하게 하고 탐하는 이가 그 바람을 없애게 한다. 앉아서 가르치지 않고 서서 의논하지 않아도 비어서 간 이가 차서 돌아오므로 말하지 않고도 사람에게 화함을 마시게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극한 도는 함이 없어 한 번 용이 되고 한 번 뱀이 되며 차고 줄고 말고 펴서 때와 함께 변화한다. 밖으로 그 바람을 따르고 안으로 그 성품을 지켜 귀와 눈이 빛나지 않고 생각이 경영하지 않는다. 그 신을 두는 곳이 크고 간략하여 태청에 노닐고 만물을 이끌어 뭇 아름다움이 싹터 난다. 이 때문에 그 신을 일삼는 이는 신이 떠나고 그 신을 쉬게 하는 이는 신이 머문다. 도는 한 근원에서 나와 아홉 문에 통하고 여섯 거리에 흩어져 끝없는 집에 베풀어져 고요히 비고 없다. 물건에 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저에게 함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을 들어 도에 순한 것은 도가 하는 바가 아니라 도가 베푸는 바다.

夫天之所覆,地之所載,六合所包,陰陽所呴,雨露所濡,道德所扶,此皆生一父母而閱一和也。是故槐榆與橘柚合而為兄弟,有苗與三危通為一家。夫目視鴻鵠之飛,耳聽琴瑟之聲,而心在雁門之間,一身之中,神之分離剖判,六合之內,一舉而千萬里。是故自其異者視之,肝膽胡、越;自其同者視之,萬物一圈也。百家異說,各有所出,若夫墨、楊、申、商之於治道,猶蓋之無一橑,而輪之無一輻,有之可以備數,無之未有害於用也。己自以為獨擅之,不通之于天地之情也。今夫治工之鑄器,金踊躍于鑪中,必有波溢而播棄者,其中地而凝滯,亦有以象於物者矣。其形雖有所小用哉,然未可以保於周室之九鼎也,又況比於規形者乎?其與道相去亦遠矣!

무릇 하늘이 덮는 바와 땅이 싣는 바와 육합이 싸는 바와 음양이 부는 바와 비와 이슬이 적시는 바와 도덕이 붙드는 바는 다 한 부모에서 나서 한 화함을 지난 것이다. 이 때문에 홰나무와 느릅나무가 귤과 유자와 합하여 형제가 되고 유묘와 삼위가 통하여 한 집이 된다. 무릇 눈으로 기러기와 고니의 낢을 보고 귀로 거문고와 비파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은 안문 사이에 있으니 한 몸 가운데 신이 나뉘고 갈라져 육합 안을 한 번 들어 천만 리다. 이 때문에 그 다른 것으로 보면 간과 쓸개가 호와 월이요 그 같은 것으로 보면 만물이 한 우리다. 백가의 다른 설이 저마다 나온 바가 있으니 저 묵·양·신·상의 다스리는 도에 대함은 덮개에 살대 하나가 없고 바퀴에 바큇살 하나가 없음과 같아 있으면 수를 갖출 수 있고 없어도 쓰임에 해가 있지 않다. 스스로 홀로 오로지한다 여기니 하늘과 땅의 정에 통하지 않는다. 이제 무릇 대장장이가 그릇을 부음에 쇠가 화로 속에서 뛰어오르면 반드시 물결쳐 넘쳐 흩어져 버려지는 것이 있고 그 땅에 떨어져 엉겨 막히면 또한 물건을 본뜬 것이 있다. 그 꼴이 비록 작은 쓰임이 있으나 주나라 왕실의 아홉 솥에 견줄 수 없는데 또 하물며 그림쇠로 만든 꼴에 견줌이랴. 그 도와 서로 떨어짐이 또한 멀다!

今夫萬物之疏躍枝舉,百事之莖葉條蘖,皆本於一根,而條循千萬也。若此則有所受之矣,而非所授者。所受者無授也而無不受也。無不受也者,譬若周雲之蘢蓯,遼巢彭濞而為雨,沈溺萬物而不與為溼焉。今夫善射者有儀表之度,如工匠有規矩之數,此皆所得以至於妙。然而奚仲不能為逢蒙,造父不能為伯樂者,是曰諭於一曲,而不通于萬方之際也。今以涅染緇則黑於涅,以藍染青則青於藍。涅非緇也,青非藍也,茲雖遇其母而無能復化已。是何則?以諭其轉而益薄也。何況夫未始有涅藍造化之者乎,其為化也,雖鏤金石,書竹帛,何足以舉其數!由此觀之,物莫不生於有也,小大優游矣。

이제 무릇 만물의 트이고 뛰고 가지 뻗음과 백 가지 일의 줄기와 잎과 가지와 움이 다 한 뿌리에 근본하여 가지가 천만으로 따른다. 이 같으면 받은 바가 있어서지 준 것이 아니다. 받은 바는 줌이 없으면서 받지 않음이 없다. 받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비유하면 두루 구름이 무성하여 넓게 모이고 큰 물결 쳐 비가 되어 만물을 잠기게 하면서 젖음에 함께하지 않음과 같다. 이제 무릇 활 잘 쏘는 이에게 표와 도가 있음은 공장에게 그림쇠와 곱자의 수가 있음 같으니 이는 다 얻어서 묘함에 이르는 바다. 그러나 해중이 봉몽이 될 수 없고 조보가 백락이 될 수 없음은 이를 한 굽음에 깨닫고 만 방향의 즈음에 통하지 못함이라 한다. 이제 개흙으로 검은 것을 물들이면 개흙보다 검고 쪽으로 푸름을 물들이면 쪽보다 푸르다. 개흙은 검은 것이 아니요 푸름은 쪽이 아니니 이는 비록 그 어미를 만나도 다시 변할 수 없다. 이는 어째서인가. 그 굴러서 더욱 얇아짐을 깨우쳐서다. 하물며 무릇 아직 개흙과 쪽이 있지 않은 조화의 것이랴, 그 변화 됨은 비록 쇠와 돌에 새기고 대와 비단에 써도 어찌 그 수를 들기에 넉넉하겠는가! 이로써 보면 물건은 있음에서 나지 않음이 없으니 작고 큼이 넉넉히 노닌다.

夫秋豪之末,淪於無間而復歸於大矣;蘆苻之厚,通於無㙬而復反於敦龐。若夫無秋豪之微,蘆苻之厚,四達無境,通于無圻,而莫之要御夭遏者,其襲微重妙,挺挏萬物,揣丸變化,天地之間何足以論之!夫疾風绗木,而不能拔毛髮;雲臺之高,墮者折脊碎腦,而鶫劲適足以翱翔。夫與蚑蟯同乘天機,夫受形於一圈,飛輕微細者,猶足以脫其命,又況未有類也?由此觀之,無形而生有形,亦明矣。是故聖人託其神於靈府,而歸於萬物之初,視於冥冥,聽於無聲,冥冥之中獨見曉焉,寂漠之中獨有照焉。其用之也以不用,其不用也而後能用之;其知也乃不知,其不知也而後能知之也。

무릇 가을 터럭의 끝은 틈 없는 데 잠겼다가 다시 큼으로 돌아가고 갈대 껍질의 두께는 두께 없음에 통하였다가 다시 두텁고 큼으로 돌아온다. 저 가을 터럭의 작음과 갈대 껍질의 두께도 없이 사방으로 통하여 지경이 없고 끝없음에 통하여 막고 꺾고 가로막는 이가 없는 것은 그 미묘함을 잇고 묘함을 거듭하여 만물을 흔들고 변화를 빚으니 하늘과 땅 사이가 어찌 논하기에 넉넉하겠는가! 무릇 빠른 바람이 나무를 꺾어도 털을 뽑을 수 없고 운대의 높음에 떨어지는 이는 등뼈가 꺾이고 뇌가 부서지나 모기와 작은 벌레는 마침 날기에 넉넉하다. 무릇 발 달린 벌레와 하늘의 틀을 함께 타고 무릇 한 우리에서 꼴을 받아 날고 가볍고 작은 것도 오히려 그 명을 벗기에 넉넉한데 또 하물며 아직 무리가 있지 않은 것이랴. 이로써 보면 꼴 없음이 꼴 있음을 낳음이 또한 분명하다. 이 때문에 성인은 그 신을 신령한 곳간에 의탁하여 만물의 처음으로 돌아가 어둡고 어두운 데서 보고 소리 없는 데서 들으니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 홀로 밝음을 보고 고요하고 고요한 가운데 홀로 비춤이 있다. 그 씀은 쓰지 않음으로 하고 쓰지 않은 뒤에야 쓸 수 있으며 그 앎은 곧 알지 않음이요 알지 않은 뒤에야 알 수 있다.

夫天不定,日月無所載;地不定,草木無所植;所立於身者不寧,是非無所形。是故有真人然後有真知。其所持者不明,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歟?今夫積惠重厚,累愛襲恩,以聲華嘔苻嫗掩萬民百姓,使知之訢訢然,人樂其性者,仁也。舉大功,立顯名,體君臣,正上下,明親疏,等貴賤,存危國,繼絕世,決挐治煩,興毀宗,立無後者,義也。閉九竅,藏心志,棄聰明,反無識,芒然仿佯于塵埃之外,而消搖于無事之業,含陰吐陽,而萬物和同者,德也。是故道散而為德,德溢而為仁義,仁義立而道德廢矣。

무릇 하늘이 정해지지 않으면 해와 달이 실릴 바가 없고 땅이 정해지지 않으면 풀과 나무가 심길 바가 없으며 몸에 선 바가 편안하지 않으면 옳고 그름이 꼴을 이룰 바가 없다. 이 때문에 진인이 있은 뒤에야 참된 앎이 있다. 그 지닌 바가 밝지 않으면 어찌 내가 이른바 앎이 알지 못함이 아님을 알겠는가. 이제 무릇 은혜를 쌓고 두터움을 거듭하며 사랑을 쌓고 은혜를 이어 소리와 빛으로 만민과 백성을 어루만지고 덮어 알게 하기를 기뻐하며 사람이 그 성품을 즐기게 함은 인이다. 큰 공을 들고 드러난 이름을 세우며 임금과 신하를 몸 삼고 위와 아래를 바로잡으며 친하고 멂을 밝히고 귀하고 천함을 차등 지으며 위태한 나라를 보존하고 끊어진 세대를 이으며 얽힘을 결단하고 번거로움을 다스리며 헐린 종족을 일으키고 뒤 없는 이를 세움은 의다. 아홉 구멍을 닫고 마음과 뜻을 감추며 총명을 버리고 앎 없음으로 돌아가 아득히 티끌 밖에 방황하고 일 없는 업에 소요하며 음을 머금고 양을 토하여 만물이 화하여 같아짐은 덕이다. 이 때문에 도가 흩어져 덕이 되고 덕이 넘쳐 인의가 되니 인의가 서면 도덕이 폐한다.

百圍之木,斬而為犧尊,鏤之以剞𠜾,雜之以青黃,華藻鎛鮮,龍蛇虎豹,曲成文章,然其斷在溝中,壹比犧尊、溝中之斷,則醜美有間矣,然而失木性,鈞也。是故神越者其言華,德蕩者其行偽。至精亡於中,而言行觀於外,此不免以身役物矣。夫趨舍行偽者,為精求于外也,精有湫盡,而行無窮極,則滑心濁神,而惑亂其本矣。其所守者不定,而外淫於世俗之風,所斷差跌者,而內以濁其清明,是故躊躇以終,而不得須臾恬澹矣。

백 아름의 나무를 베어 희준을 만들어 조각칼로 새기고 푸르고 누런 빛을 섞어 꽃무늬가 곱고 용과 뱀과 범과 표범이 굽어 문장을 이루었으나 그 잘린 것은 도랑 속에 있으니 한 번 희준과 도랑 속의 잘린 것을 견주면 추하고 아름다움에 사이가 있으나 나무의 성품을 잃음은 같다. 이 때문에 신이 넘치는 이는 그 말이 화려하고 덕이 흔들리는 이는 그 행실이 거짓되다. 지극한 정이 가운데에서 없어지고 말과 행실이 밖에 보이니 이는 몸으로 물건에 부려짐을 면하지 못한다. 무릇 나아가고 버리며 거짓을 행하는 이는 정을 밖에서 구함이니 정에 다함이 있고 행실에 끝이 없으면 마음을 어지럽히고 신을 흐려 그 근본을 홀리고 어지럽힌다. 그 지키는 바가 정해지지 않고 밖으로 세속의 풍에 빠지며 끊고 어긋나 넘어진 바로 안으로 그 맑고 밝음을 흐리니 이 때문에 머뭇거리며 마치고 잠시도 편안하고 담담함을 얻지 못한다.

是故聖人內修道術,而不外飾仁義,不知耳目之宣,而游于精神之和。若然者,下揆三泉,上尋九天,橫廓六合,揲貫萬物,此聖人之游也。若夫真人,則動溶于至虛,而游于滅亡之野,騎蜚廉而從敦圄,馳於外方,休乎宇內,燭十日而使風雨,臣雷公,役夸父,妾宓妃,妻織女,天地之間,何足以留其志!是故虛無者道之舍,平易者道之素。

이 때문에 성인은 안으로 도술을 닦고 밖으로 인의를 꾸미지 않으며 귀와 눈의 펴짐을 알지 않고 정신의 화함에 노닌다. 이 같은 이는 아래로 세 샘을 헤아리고 위로 구천을 찾으며 육합을 가로질러 넓히고 만물을 세어 꿰니 이것이 성인의 노닒이다. 저 진인은 지극한 빔에 움직여 녹고 없어짐의 들에 노닐며 비렴을 타고 돈어를 따르고 바깥 방향으로 달리고 우주 안에서 쉬며 열 해를 밝히고 바람과 비를 부리며 뇌공을 신하 삼고 과보를 부리며 복비를 첩 삼고 직녀를 아내 삼으니 하늘과 땅 사이가 어찌 그 뜻을 머물게 하기에 넉넉하겠는가! 이 때문에 비고 없음은 도의 집이요 평평하고 쉬움은 도의 바탕이다.

夫人之事其神而嬈其精,營慧然而有求於外,此皆失其神明而離其宅也。是故凍者假兼衣于春,而暍者望冷風于秋,夫有病於內者必有色於外矣。夫梣木色青翳,而蠃瘉蝸睆,此皆治目之藥也。人無故求此物者,必有蔽其明者。聖人之所以駭天下者,真人未嘗過焉;賢人之所以矯世俗者,聖人未嘗觀焉。夫牛蹄之涔,無尺之鯉;塊阜之山,無丈之材。所以然者何也?皆其營宇狹小,而不能容巨大也。又況乎以無裹之者邪!此其為山淵之勢亦遠矣。夫人之拘於世也,必形繫而神泄,故不免於虛。使我可係羈者,必其有命在於外也。

무릇 사람이 그 신을 일삼고 그 정을 어지럽히며 경영하고 슬기로워 밖에 구함이 있음은 이는 다 그 신명을 잃고 그 집을 떠남이다. 이 때문에 언 이는 봄에 겹옷을 빌리고 더위 먹은 이는 가을에 찬바람을 바라니 무릇 안에 병이 있는 이는 반드시 밖에 빛이 있다. 무릇 물푸레나무는 빛이 푸르고 어두우며 달팽이는 낫게 하고 우렁이는 밝게 하니 이는 다 눈을 다스리는 약이다. 사람이 까닭 없이 이 물건을 구하는 이는 반드시 그 밝음을 가린 것이 있다. 성인이 천하를 놀라게 하는 까닭을 진인은 일찍이 지나지 않았고 어진 이가 세속을 바로잡는 까닭을 성인은 일찍이 보지 않았다. 무릇 소 발굽의 고인 물에 한 자의 잉어가 없고 흙무더기 산에 한 길의 재목이 없다. 그러한 까닭은 어째서인가. 다 그 집이 좁고 작아 거대한 것을 담을 수 없어서다. 또 하물며 없음으로 싸는 것이랴! 이는 그 산과 못의 형세에 또한 멀다. 무릇 사람이 세상에 갇힘은 반드시 꼴이 매이고 신이 새므로 빔을 면하지 못한다. 나를 매어 얽을 수 있는 이는 반드시 그 명이 밖에 있음이다.

至德之世,甘瞑于溷澖之域,而徙倚于汗漫之宇,提挈天地而委萬物,以鴻濛為景柱,而浮揚乎無畛崖之際。是故聖人呼吸陰陽之氣,而群生莫不顒顒然,仰其德以和順。當此之時,莫之領理,決離隱密而自成,渾渾蒼蒼,純樸未散,旁薄為一,而萬物大優,是故雖有羿之知而無所用之。

지극한 덕의 세상은 흐리고 넓은 지경에 달게 잠들고 넓고 아득한 집에 옮겨 기대며 하늘과 땅을 끌어 만물을 맡기고 홍몽을 그림자 기둥으로 삼아 두둑과 벼랑 없는 즈음에 떠서 날았다. 이 때문에 성인이 음양의 기운을 숨 쉬니 뭇 생명이 우러르지 않음이 없어 그 덕을 우러러 화하고 순하였다. 이때를 당하여 거느려 다스리는 이가 없고 갈라지고 은밀함을 결단하여 절로 이루어 섞이고 푸르러 순박함이 아직 흩어지지 않고 두루 부딪쳐 하나가 되어 만물이 크게 넉넉하니 이 때문에 비록 예의 앎이 있어도 쓸 데가 없었다.

及世之衰也,至伏羲氏,其道昧昧芒芒然,吟德懷和,被施頗烈,而知乃始昧昧晽晽,皆欲離其童蒙之心,而覺視於天地之間,是故其德煩而不能一。乃至神農、黃帝,剖判大宗,竅領天地,襲九竅,重九窽,提挈陰陽,嫥捖剛柔,枝解葉貫,萬物百族,使各有經紀條貫,於此萬民睢睢盱盱然,莫不竦身而載聽視,是故治而不能和下。棲遲至於昆吾、夏后之世,嗜欲連於物,聰明誘於外,而性命失其得。施及周室之衰,澆淳散樸,雜道以偽,儉德以行,而巧故萌生。周室衰而王道廢,儒墨乃始列道而議,分徒而訟。於是博學以疑聖,華誣以脅眾,弦歌鼓舞,緣飾《詩》、《書》以買名譽於天下。繁登降之禮,飾紱冕之服,聚眾不足以極其變,積財不足以贍其費,於是萬民乃始慲觟離跂,各欲行其知偽,以求鑿枘於世而錯擇名利,是故百姓曼衍於淫荒之陂,而失其大宗之本。夫世之所以喪性命,有衰漸以然,所由來者久矣。

세상이 쇠함에 미쳐 복희씨에 이르러 그 도가 어둑어둑하고 아득하여 덕을 읊고 화함을 품어 베풀어짐이 자못 매웠으나 앎이 곧 비로소 어둑어둑 밝아지려 하여 다 그 어린 마음을 떠나 하늘과 땅 사이를 깨달아 보려 하니 이 때문에 그 덕이 번거로워 하나 될 수 없었다. 신농·황제에 이르러 큰 종주를 갈라 하늘과 땅을 구멍 내어 거느리고 아홉 구멍을 잇고 아홉 빈 데를 거듭하며 음양을 끌고 굳셈과 부드러움을 다듬어 가지를 풀고 잎을 꿰어 만물과 온갖 겨레가 저마다 벼리와 조리가 있게 하니 이에 만민이 눈을 부릅뜨고 우러러 몸을 세워 듣고 보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 때문에 다스려지되 아래를 화하게 할 수 없었다. 곤오·하후의 세상에 머물러 이르러 즐기고 바람이 물건에 이어지고 총명이 밖에 꾀여 성품과 명이 그 얻음을 잃었다. 주나라 왕실의 쇠함에 베풀어 미쳐 순박함을 얇게 하고 질박함을 흩으며 도를 거짓과 섞고 덕을 행실로 검약하니 교묘한 꾀가 싹텄다. 주나라 왕실이 쇠하고 왕도가 폐하자 유가와 묵가가 곧 비로소 도를 벌여 의논하고 무리를 나누어 송사하였다. 이에 널리 배워 성인을 의심하고 화려한 속임으로 무리를 위협하며 현악과 노래와 북과 춤으로 「시」·「서」를 꾸며 천하에 명예를 샀다. 오르내리는 예를 번거로이 하고 인끈과 면류관의 옷을 꾸미니 무리를 모아도 그 변화를 다하기에 넉넉하지 않고 재물을 쌓아도 그 비용을 넉넉히 하기에 넉넉하지 않았다. 이에 만민이 곧 비로소 어그러지고 갈라져 저마다 그 앎과 거짓을 행하여 세상에 장부와 촉꽂이 맞기를 구하고 이름과 이익을 잘못 골랐으니 이 때문에 백성이 음란하고 거친 언덕에 뻗어 그 큰 종주의 근본을 잃었다. 무릇 세상이 성품과 명을 잃는 까닭은 쇠함이 점차 그러하니 말미암아 온 것이 오래다.

是故聖人之學也,欲以返性於初,而游心於虛也。達人之學也,欲以通性於遼廓,而覺於寂漠也。若夫俗世之學也則不然,握德𢶊性,內愁五藏,外勞耳目,乃始招蟯振繾物之豪芒,搖消掉捎仁義禮樂,暴行越智於天下,以招號名聲於世。此我所羞而不為也。

이 때문에 성인의 배움은 성품을 처음으로 돌리고 마음을 빔에 노닐게 하려 함이다. 통달한 사람의 배움은 성품을 넓고 트인 데 통하게 하고 고요하고 고요한 데서 깨달으려 함이다. 저 속세의 배움은 그렇지 않아 덕을 잡고 성품을 흔들며 안으로 오장을 근심하고 밖으로 귀와 눈을 수고롭히며 곧 비로소 물건의 터럭과 까끄라기를 흔들어 떨치고 인의와 예악을 흔들어 없애며 사나운 행실과 지나친 앎을 천하에 베풀어 세상에 이름과 소리를 부른다. 이는 내가 부끄러워하여 하지 않는 바다.

是故與其有天下也,不若有說也;與其有說也,不若尚羊物之終始也,而條達有無之際。是故舉世而譽之不加勸,舉世而非之不加沮,定于死生之境,而通于榮辱之理,雖有炎火洪水彌靡於天下,神無虧缺於胸臆之中矣。若然者,視天下之間,猶飛羽浮芥也,孰肯分分然以物為事也!水之性真清而土汨之,人性安靜而嗜欲亂之。夫人之所受於天者,耳目之於聲色也,口鼻之於芳臭也,肌膚之於寒燠,其情一也,或通於神明,或不免於癡狂者,何也?其所為制者異也。是故神者智之淵也,淵清則智明矣;智者心之府也,智公則心平矣。

이 때문에 천하를 둠보다 기쁨을 둠이 낫고 기쁨을 둠보다 물건의 시작과 끝에 노닐며 있음과 없음의 즈음에 조리 있게 통달함이 낫다. 이 때문에 온 세상이 기려도 더 권해지지 않고 온 세상이 그르다 해도 더 꺾이지 않으며 죽고 삶의 지경에 정해지고 영광과 욕됨의 이치에 통하니 비록 타는 불과 홍수가 천하에 두루 하여도 신이 가슴속에서 이지러짐이 없다. 이 같은 이는 천하 사이를 봄이 나는 깃과 뜬 티끌 같으니 누가 기꺼이 부산히 물건을 일삼겠는가! 물의 성품은 참으로 맑은데 흙이 흐리고 사람의 성품은 편안하고 고요한데 즐기고 바람이 어지럽힌다. 무릇 사람이 하늘에서 받은 것은 귀와 눈이 소리와 빛에, 입과 코가 향기와 냄새에, 살갗이 추위와 더위에 대함이 그 정이 하나인데 혹은 신명에 통하고 혹은 어리석고 미침을 면하지 못함은 어째서인가. 그 제어하는 바가 달라서다. 이 때문에 신은 앎의 못이니 못이 맑으면 앎이 밝고 앎은 마음의 곳간이니 앎이 공변되면 마음이 평안하다.

人莫鑑於流沫,而鑑於止水者,以其靜也;莫窺形於生鐵,而窺於明鏡者,以睹其易也。夫唯易且靜,形物之性也。由此觀之,用也必假之於弗用也,是故虛室生白,吉祥止也。夫鑑明者塵垢弗能薶,神清者嗜欲弗能亂。精神已越於外,而事復返之,是失之於本,而求之於末也。外內無符而欲與物接,弊其玄光而求知之于耳目,是釋其炤炤,而道其冥冥也,是之謂失道。心有所至而神喟然在之,反之於虛則消鑠滅息,此聖人之游也。故古之治天下也,必達乎性命之情。其舉錯未必同也,其合於道一也。

사람이 흐르는 거품에 비추지 않고 고인 물에 비춤은 그 고요함 때문이요 산 쇠에 꼴을 엿보지 않고 밝은 거울에 엿봄은 그 평평함을 보아서다. 무릇 오직 평평하고 또 고요함이 꼴과 물건의 성품이다. 이로써 보면 씀은 반드시 쓰지 않음에서 빌리니 이 때문에 빈 방에 흰빛이 나고 길한 상서가 머문다. 무릇 거울이 밝은 이는 티끌이 묻을 수 없고 신이 맑은 이는 즐기고 바람이 어지럽힐 수 없다. 정신이 이미 밖으로 넘었는데 일이 다시 돌이키려 함은 이는 근본에서 잃고 끝에서 구함이다. 밖과 안에 부절이 없으면서 물건과 접하려 하며 그 검은 빛을 가리고 앎을 귀와 눈에서 구함은 이는 그 밝게 비춤을 놓고 그 어둡고 어두움을 따름이니 이를 도를 잃음이라 한다. 마음에 이른 바가 있으면 신이 문득 거기 있고 빔으로 돌이키면 녹아 사라지고 없어져 쉬니 이것이 성인의 노닒이다. 그러므로 옛날에 천하를 다스림에 반드시 성품과 명의 정에 통달하였다. 그 거동이 반드시 같지는 않으나 그 도에 맞음은 하나다.

夫夏日之不被裘者,非愛之也,燠有餘於身也。冬日之不用翣者,非簡之也,清有餘於適也。夫聖人量腹而食,度形而衣,節於己而已,貪污之心奚由生哉!故能有天下者,必無以天下為也;能有名譽者,必無以趨行求者也。聖人有所于達,達則嗜欲之心外矣;孔、墨之弟子,皆以仁義之術教導於世,然而不免於儡。身猶不能行也,又況所教乎?是何則?其道外也。夫以末求返於本,許由不能行也,又況齊民乎!誠達于性命之情,而仁義固附矣,趨舍何足以滑心!

무릇 여름날 갖옷을 입지 않음은 아끼는 것이 아니라 더위가 몸에 남아서다. 겨울날 부채를 쓰지 않음은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라 서늘함이 알맞음에 남아서다. 무릇 성인은 배를 헤아려 먹고 몸을 재어 입어 저에게 절제할 뿐이니 탐하고 더러운 마음이 어디서 나겠는가! 그러므로 천하를 둘 수 있는 이는 반드시 천하로 삼지 않고 명예를 둘 수 있는 이는 반드시 달려 행하여 구하지 않는다. 성인은 통달한 바가 있으니 통달하면 즐기고 바라는 마음이 밖에 있다. 공·묵의 제자가 다 인의의 술로 세상을 가르치고 이끌었으나 지침을 면하지 못하였다. 몸도 오히려 행할 수 없는데 또 하물며 가르치는 바이랴. 이는 어째서인가. 그 도가 밖이어서다. 무릇 끝으로 근본에 돌이키기를 구함은 허유도 행할 수 없는데 또 하물며 보통 백성이랴! 참으로 성품과 명의 정에 통달하면 인의가 본디 붙으니 나아가고 버림이 어찌 마음을 어지럽히기에 넉넉하겠는가!

若夫神無所掩,心無所載,通洞條達,恬漠無事,無所凝滯,虛寂以待,勢利不能誘也,辯者不能說也,聲色不能淫也,美者不能濫也,智者不能動也,勇者不能恐也,此真人之道也。若然者,陶冶萬物,與造化者為人,天地之間,宇宙之內,莫能夭遏。夫化生者不死,而化物者不化,神經於驪山、太行而不能難,入於四海九江而不能濡,處小隘而不塞,橫扃天地之間而不窕。不通此者,雖目數千羊之群,耳分八風之調,足蹀陽阿之舞,而手會綠水之趨,智終天地,明照日月,辯解連環,澤潤玉石,猶無益於治天下也。靜漠恬澹,所以養性也;和愉虛無,所以養德也。外不滑內,則性得其宜;性不動和,則德安其位。養生以經世,抱德以終年,可謂能體道矣。若然者,血脈無鬱滯,五藏無蔚氣,禍福弗能撓滑,非譽弗能塵垢,故能致其極。非有其世,孰能濟焉?有其人不遇其時,身猶不能脫,又況無道乎?且人之情,耳目應感動,心志知憂樂,手足之㩌疾𧒃、辟寒暑,所以與物接也。蜂蠆螫指而神不能憺,蚉蝱噆膚而知不能平,夫憂患之來,攖人心也,非直蜂蠆之螫毒而蚊劲之慘怛也,而欲靜漠虛無,柰之何哉!

저 신이 가리는 바 없고 마음이 싣는 바 없어 통하고 트여 조리 있게 통달하며 편안하고 고요하여 일이 없고 엉기고 막히는 바 없이 비고 고요히 기다리면 세와 이익이 꾀지 못하고 변론하는 이가 설득하지 못하며 소리와 빛이 음탕하게 하지 못하고 아름다움이 넘치게 하지 못하며 슬기로운 이가 움직이지 못하고 용맹한 이가 두렵게 하지 못하니 이것이 진인의 도다. 이 같은 이는 만물을 빚어 조화하는 이와 벗이 되니 하늘과 땅 사이와 우주 안에서 막고 꺾을 수 있는 이가 없다. 무릇 변화를 낳는 이는 죽지 않고 물건을 변화시키는 이는 변하지 않으니 신이 여산·태행을 지나도 어렵게 할 수 없고 사해와 구강에 들어도 적실 수 없으며 작고 좁은 데 처하여도 막히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를 가로질러 막아도 헐렁하지 않다. 이에 통하지 않은 이는 비록 눈으로 수천 양의 떼를 세고 귀로 여덟 바람의 가락을 나누며 발로 양아의 춤을 밟고 손으로 녹수의 박자에 맞추며 앎이 하늘과 땅을 다하고 밝음이 해와 달을 비추며 변론이 연환을 풀고 은택이 옥과 돌을 적셔도 오히려 천하를 다스림에 이익이 없다. 고요하고 담담함은 성품을 기르는 까닭이요 화하고 즐겁고 비고 없음은 덕을 기르는 까닭이다. 밖이 안을 어지럽히지 않으면 성품이 그 마땅함을 얻고 성품이 화함을 움직이지 않으면 덕이 그 자리에 편안하다. 삶을 길러 세상을 다스리고 덕을 안고 해를 마치면 도를 몸 삼을 수 있다 할 만하다. 이 같은 이는 혈맥에 막힘이 없고 오장에 답답한 기운이 없어 화복이 흔들어 어지럽힐 수 없고 헐뜯고 기림이 티끌 묻힐 수 없으므로 그 지극함에 이를 수 있다. 그 세상이 있지 않으면 누가 건질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있어도 그 때를 만나지 못하면 몸도 오히려 벗어날 수 없는데 또 하물며 도가 없음이랴. 또 사람의 정은 귀와 눈이 느껴 움직임에 응하고 마음과 뜻이 근심과 즐거움을 알며 손발이 가려움을 긁고 추위와 더위를 피함은 물건과 접하는 까닭이다. 벌과 전갈이 손가락을 쏘면 신이 편안할 수 없고 모기와 등에가 살갗을 물면 앎이 평안할 수 없으니 무릇 근심과 환난이 옴에 사람 마음을 흔듦은 다만 벌과 전갈의 쏘는 독과 모기와 등에의 아픔뿐이 아닌데 고요하고 담담하고 비고 없으려 한들 어찌하겠는가!

夫目察秋豪之末,耳不聞雷霆之聲;耳調玉石之聲,目不見太山之高。何則?小有所志而大有所忘也。今萬物之來,擢拔吾性,攓取吾情,有若泉源,雖欲勿稟,其可得邪!今夫樹木者,灌以瀿水,疇以肥壤,一人養之,十人拔之,則必無餘蘖,又況與一國同伐之哉?雖欲久生,豈可得乎!今盆水在庭,清之終日,未能見眉睫;濁之不過一撓,而不能察方員。人神易濁而難清,猶盆水之類也,況一世而撓滑之,曷得須臾平乎!

무릇 눈이 가을 터럭의 끝을 살피면 귀가 우레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귀가 옥과 돌의 소리를 고르면 눈이 태산의 높음을 보지 못한다. 어째서인가. 작은 데 뜻하는 바가 있으면 큰 데 잊는 바가 있어서다. 이제 만물의 옴이 내 성품을 뽑고 내 정을 빼앗음이 샘의 근원 같으니 비록 받지 않으려 한들 얻을 수 있겠는가! 이제 무릇 나무를 심는 이가 넘치는 물을 대고 기름진 흙을 북돋아도 한 사람이 기르고 열 사람이 뽑으면 반드시 남은 움이 없을 터인데 또 하물며 한 나라와 함께 베는 것이랴. 비록 오래 살려 한들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이제 동이의 물이 뜰에 있어 종일 맑혀도 눈썹을 볼 수 없고 흐리게 함은 한 번 휘저음에 지나지 않아 모나고 둥긂을 살필 수 없다. 사람의 신은 흐려지기 쉽고 맑아지기 어려움이 동이 물의 무리와 같은데 하물며 한 세상이 휘저어 어지럽힘에 어찌 잠시라도 평안할 수 있겠는가!

古者至德之世,賈便其肆,農樂其業,大夫安其職,而處士脩其道。當此之時,風雨不毀折,草木不夭,九鼎重味,珠玉潤澤,洛出丹書,河出綠圖,故許由、方回、善卷、披衣得達其道。何則?世之主有欲利天下之心,是以人得自樂其間。四子之才,非能盡善,蓋今之世也,然莫能與之同光者,遇唐、虞之時。逮至夏桀、殷紂,燔生人,辜諫者,為炮烙,鑄金柱,剖賢人之心,析才士之脛,醢鬼侯之女,葅梅伯之骸。當此之時,嶢山崩,三川涸,飛鳥鎩翼,走獸擠腳。當此之時,豈獨無聖人哉?然而不能通其道者,不遇其世。夫鳥飛千仞之上,獸走叢薄之中,禍猶及之,又況編戶齊民乎?由此觀之,體道者不專在于我,亦有繫于世矣。

옛날 지극한 덕의 세상에는 장사꾼이 그 가게를 편히 여기고 농부가 그 업을 즐기며 대부가 그 직책에 편안하고 처사가 그 도를 닦았다. 이때를 당하여 바람과 비가 꺾어 헐지 않고 풀과 나무가 일찍 죽지 않으며 아홉 솥이 맛이 무겁고 구슬과 옥이 윤택하며 낙수에서 붉은 글이 나오고 하수에서 푸른 그림이 나왔으므로 허유·방회·선권·피의가 그 도에 통달할 수 있었다. 어째서인가. 세상의 임금에게 천하를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있었으니 이로써 사람이 그 사이에서 스스로 즐길 수 있었다. 네 사람의 재주가 다 착할 수 있음이 아니라 아마 지금의 세상 같은데도 더불어 빛을 같이할 수 있는 이가 없음은 당·우의 때를 만나서다. 하 걸·은 주에 이르러 산 사람을 태우고 간하는 이를 죄주며 포락을 만들고 쇠기둥을 부으며 어진 이의 심장을 가르고 재주 있는 선비의 정강이를 쪼개며 귀후의 딸을 젓 담그고 매백의 뼈를 절였다. 이때를 당하여 요산이 무너지고 세 내가 마르며 나는 새가 날개가 꺾이고 달리는 짐승이 발이 부러졌다. 이때를 당하여 어찌 홀로 성인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 도를 통하게 할 수 없었음은 그 세상을 만나지 못해서다. 무릇 새가 천 길 위를 날고 짐승이 덤불 속을 달려도 화가 오히려 미치는데 또 하물며 호적에 든 보통 백성이랴. 이로써 보면 도를 몸 삼음은 오로지 나에게 있지 않고 또한 세상에 매인 것이 있다.

夫歷陽之都,一夕反而為湖,勇力聖知與罷怯不肖者同命。巫山之上,順風縱火,膏夏紫芝與蕭艾俱死。故河魚不得明目,稚稼不得育時,其所生者然也。故世治則愚者不能獨亂,世亂則智者不能獨治。身蹈于濁世之中,而責道之不行也,是猶兩絆騏驥,而求其致千里也。置猿檻中,則與豚同,非不巧捷也,無所肆其能也。舜之耕陶也,不能利其里;南面王,則德施乎四海,仁非能益也,處便而勢利也。古之聖人,其和愉寧靜,性也;其志得道行,命也。是故性遭命而後能行,命得性而後能明。烏號之弓,谿子之弩,不能無弦而射。越舲蜀艇,不能無水而浮。今矰繳機而在上,罔罟張而在下,雖欲翱翔,其勢焉得?故《詩》云:「采采卷耳,不盈傾筐。嗟我懷人,寘彼周行。」以言慕遠世也。

무릇 역양의 도읍이 하룻저녁에 뒤집혀 호수가 되니 용맹과 힘과 성스러움과 슬기가 지치고 겁 많고 못난 이와 명을 같이하였다. 무산 위에 바람을 따라 불을 놓으니 고하와 자지가 쑥과 함께 죽었다. 그러므로 하수의 고기가 밝은 눈을 얻지 못하고 어린 곡식이 기르는 때를 얻지 못함은 그 나는 바가 그러해서다. 그러므로 세상이 다스려지면 어리석은 이가 홀로 어지럽힐 수 없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슬기로운 이가 홀로 다스릴 수 없다. 몸이 흐린 세상 가운데를 밟으면서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책함은 기기를 두 발 묶어 놓고 천 리에 이르기를 구함과 같다. 원숭이를 우리 속에 두면 돼지와 같아지니 교묘하고 빠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능함을 펼 데가 없어서다. 순이 밭 갈고 질그릇 구움에 그 마을을 이롭게 할 수 없었으나 남면하여 왕 노릇 하니 덕이 사해에 베풀어졌으니 어짊이 더해진 것이 아니라 처함이 편하고 세가 이로워서다. 옛 성인의 화하고 즐겁고 편안하고 고요함은 성품이요 그 뜻을 얻고 도가 행해짐은 명이다. 이 때문에 성품이 명을 만난 뒤에야 행할 수 있고 명이 성품을 얻은 뒤에야 밝을 수 있다. 오호의 활과 계자의 쇠뇌도 시위 없이 쏠 수 없다. 월나라 배와 촉나라 배도 물 없이 뜰 수 없다. 이제 주살과 쇠뇌가 위에 있고 그물이 아래에 벌여져 있으니 비록 날려 한들 그 형세에 어찌 얻겠는가. 그러므로 「시」에 이르기를 「캐고 캐는 권이, 기운 광주리에 차지 않네. 아, 내 그리는 사람이여, 저 큰길에 두노라」 하였으니 먼 세상을 사모함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