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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神訓

회남자 淮南子 · 유안(劉安)과 문객들 · 기원전 139년 무렵 · 단락 17 · 한자 4,593자 · 낭독 18.4분

「회남자」 정신훈 「精神訓」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나라 회남왕 유안이 문객들과 함께 엮은 책이다. 도덕경·장자·열자에 이은 도가의 넷째 자리에 놓이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손이 나누어 쓴 백과에 가깝다. 하늘과 땅의 얼개(천문·지형·시칙), 사람의 정신과 다스림, 병법과 잠언까지 한 집에 다 들여놓았다. 항아가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처음 적힌 곳이 남명훈이다. 지금 전하는 달 신화의 뿌리가 여기 한 줄이다. 설산훈과 설림훈 두 편은 짧은 잠언을 줄줄이 늘어놓았고, 도응훈은 이야기 쉰다섯 도막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로 끝을 맺는다. 옛 이야기를 도덕경 구절에 하나씩 맞춰 본 셈이다. 시칙훈은 동방의 끝을 「갈석산을 지나 조선을 지난다」로 잡고, 인간훈은 진 시황이 긴 성을 쌓아 「동으로 조선에 맺었다」고 적는다. 한나라 초에 조선이 어디쯤으로 여겨졌는지 보여 주는 두 자리다.

古未有天地之時,惟像無形,窈窈冥冥,芒芠漠閔,澒濛鴻洞,莫知其門。有二神混生,經天營地,孔乎莫知其所終極,滔乎莫知其所止息,於是乃別為陰陽,離為八極,剛柔相成,萬物乃形,煩氣為蟲,精氣為人。是故精神,天之有也;而骨骸者,地之有也。精神入其門,而骨骸反其根,我尚何存?是故聖人法天順情,不拘於俗,不誘於人,以天為父,以地為母,陰陽為綱,四時為紀。天靜以清,地定以寧,萬物失之者死,法之者生。夫靜漠者,神明之定也;虛無者,道之所居也。是故或求之於外者,失之於內;有守之於內者,失之於外。譬猶本與末也,從本引之,千枝萬葉,莫不隨也。

옛날 하늘과 땅이 있기 전에 오직 모양만 있고 꼴이 없어 그윽하고 어두우며 아득하고 막막하며 섞이고 텅 비어 그 문을 아는 이가 없었다. 두 신이 섞여 나서 하늘을 다스리고 땅을 경영하니 깊어 그 마치는 바를 알 수 없고 넘쳐 그 그치는 바를 알 수 없으며 이에 곧 갈라 음양이 되고 떨어져 여덟 끝이 되며 굳셈과 부드러움이 서로 이루어 만물이 곧 꼴을 이루니 번거로운 기운은 벌레가 되고 정한 기운은 사람이 되었다. 이 때문에 정신은 하늘의 소유요 뼈는 땅의 소유다. 정신이 그 문에 들고 뼈가 그 뿌리로 돌아가면 내가 오히려 어디 남겠는가. 이 때문에 성인은 하늘을 본받고 정을 따라 풍속에 갇히지 않고 사람에게 꾀이지 않아 하늘을 아비로 삼고 땅을 어미로 삼으며 음양을 벼리로 삼고 사철을 기강으로 삼는다. 하늘은 고요하여 맑고 땅은 정하여 편안하니 만물이 이를 잃으면 죽고 본받으면 산다. 무릇 고요하고 막막함은 신명의 정함이요 비고 없음은 도가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혹 밖에서 구하는 이는 안에서 잃고 안에서 지킴이 있는 이는 밖에서 잃는다. 비유하면 근본과 끝 같으니 근본에서 당기면 천 가지 만 잎이 따르지 않음이 없다.

夫精神者,所受於天也;而形體者,所稟於地也。故曰: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萬物背陰而抱陽,沖氣以為和。故曰:一月而膏,二月而胅,三月而胎,四月而肌,五月而筋,六月而骨,七月而成,八月而動,九月而躁,十月而生。形體以成,五臟乃形。是故肺主目,腎主鼻,膽主口,肝主耳,外為表而內為裡,開閉張歙,各有經紀。故頭之圓也象天,足之方也象地。天有四時、五行、九解、三百六十六日,人亦有四支、五藏、九竅、三百六十六節。天有風雨寒暑,人亦有取與喜怒。故膽為雲,肺為氣,肝為風,腎為雨,脾為雷,以與天地相參也,而心為之主。是故耳目者,日月也;血氣者,風雨也。日中有踆烏,而月中有蟾蜍。日月失其行,薄蝕無光;風雨非其時,毀折生災;五星失其行,州國受殃。

무릇 정신은 하늘에서 받은 것이요 몸은 땅에서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 한다. 만물은 음을 등지고 양을 안으며 빈 기운으로 화함을 삼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한 달에 기름이 되고 두 달에 살덩이가 되며 석 달에 태가 되고 넉 달에 살이 되며 다섯 달에 힘줄이 되고 여섯 달에 뼈가 되며 일곱 달에 이루어지고 여덟 달에 움직이며 아홉 달에 조급하고 열 달에 난다 한다. 몸이 이루어져 오장이 곧 꼴을 이룬다. 이 때문에 폐는 눈을 주관하고 신장은 코를 주관하며 쓸개는 입을 주관하고 간은 귀를 주관하니 밖은 겉이 되고 안은 속이 되어 열고 닫고 펴고 오므림에 저마다 벼리가 있다. 그러므로 머리가 둥긂은 하늘을 본뜨고 발이 모남은 땅을 본뜬다. 하늘에 사철·오행·구해·삼백육십육 일이 있고 사람에게도 네 팔다리·오장·아홉 구멍·삼백육십육 마디가 있다. 하늘에 바람과 비와 추위와 더위가 있고 사람에게도 취하고 줌과 기쁨과 노함이 있다. 그러므로 쓸개는 구름이 되고 폐는 기운이 되며 간은 바람이 되고 신장은 비가 되며 지라는 우레가 되어 하늘과 땅과 서로 참여하니 마음이 그 주인이 된다. 이 때문에 귀와 눈은 해와 달이요 혈기는 바람과 비다. 해 가운데 세 발 까마귀가 있고 달 가운데 두꺼비가 있다. 해와 달이 그 다님을 잃으면 먹혀 빛이 없고 바람과 비가 그 때가 아니면 헐고 꺾여 재앙이 나며 다섯 별이 그 다님을 잃으면 주와 나라가 재앙을 받는다.

夫天地之道,至紘以大,尚猶節其章光,愛其神明,人之耳目曷能久熏勞而不息乎?精神何能久馳騁而不既乎?是故血氣者,人之華也,而五藏者,人之精也。夫血氣能專于五藏而不外越,則胸腹充而嗜欲省矣;胸腹充而嗜欲省,則耳目清、聽視達矣。耳目清,聽視達,謂之明。五藏能屬於心而乖,則㪍志勝而行不僻矣;㪍志勝而行之不僻,則精神盛而氣不散矣。精神盛而氣不散則理,理則均,均則通,通則神,神則以視無不見,以聽無不聞也,以為無不成也。是故憂患不能入也,而邪氣不能襲。故事有求之于四海之外而不能遇,或守之於形骸之內而不見也。故所求多者所得少,所見大者所知小。夫孔竅者,精神之戶牖也,而氣志者,五藏之使候也。耳目淫于聲色之樂,則五藏搖動而不定矣;五藏搖動而不不定,則血氣滔蕩而不休矣;血氣滔蕩而不休,則精神馳騁於外而不守矣;精神馳騁於外而不守,則禍福之至,雖如丘山,無由識之矣。使耳目精明玄達而無誘慕,氣志虛靜恬愉而省嗜欲,五藏定寧充盈而不泄,精神內守形骸而不外越,則望於往世之前,而視於來事之後,猶未足為也,豈直禍福之間哉?

무릇 하늘과 땅의 도는 지극히 넓고 크나 오히려 그 빛을 절제하고 그 신명을 아끼는데 사람의 귀와 눈이 어찌 오래 수고롭히고 쉬지 않을 수 있으며 정신이 어찌 오래 달리고 다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 때문에 혈기는 사람의 꽃이요 오장은 사람의 정이다. 무릇 혈기가 오장에 오로지하여 밖으로 넘지 않으면 가슴과 배가 차고 즐기고 바람이 덜리며 가슴과 배가 차고 즐기고 바람이 덜리면 귀와 눈이 맑고 듣고 봄이 통달한다. 귀와 눈이 맑고 듣고 봄이 통달함을 밝음이라 한다. 오장이 마음에 딸려 어긋나지 않으면 뜻이 이기고 행실이 치우치지 않으며 뜻이 이기고 행실이 치우치지 않으면 정신이 성하고 기운이 흩어지지 않는다. 정신이 성하고 기운이 흩어지지 않으면 다스려지고 다스려지면 고르며 고르면 통하고 통하면 신령하며 신령하면 봄에 보지 못함이 없고 들음에 듣지 못함이 없으며 함에 이루지 못함이 없다. 이 때문에 근심과 환난이 들어올 수 없고 사악한 기운이 엄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에 사해 밖에서 구하여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있고 혹 몸 안에서 지켜도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구하는 바가 많은 이는 얻는 바가 적고 보는 바가 큰 이는 아는 바가 작다. 무릇 구멍은 정신의 문과 창이요 기운과 뜻은 오장의 사자와 척후다. 귀와 눈이 소리와 빛의 즐거움에 음탕하면 오장이 흔들려 정해지지 않고 오장이 흔들려 정해지지 않으면 혈기가 넘쳐 쉬지 않으며 혈기가 넘쳐 쉬지 않으면 정신이 밖으로 달려 지키지 않고 정신이 밖으로 달려 지키지 않으면 화복의 이름이 비록 언덕과 산 같아도 알 길이 없다. 귀와 눈이 정하고 밝고 검게 통달하여 꾀이고 사모함이 없고 기운과 뜻이 비고 고요하고 편안하고 즐거워 즐기고 바람을 덜며 오장이 정하고 편안하고 차서 새지 않고 정신이 안으로 몸을 지켜 밖으로 넘지 않게 하면 지난 세상 앞을 바라보고 올 일의 뒤를 봄도 오히려 하기에 넉넉하지 않은데 어찌 다만 화복의 사이뿐이랴.

故曰:其出彌遠者,其知彌少。以言乎精神之不可使外淫也。是故五色亂目,使目不明;五聲嘩耳,使耳不聰;五味亂口,使口爽傷;趣舍滑心,使行飛揚。此四者,天下之所養性也,然皆人累也。故曰:嗜欲者,使人之氣越;而好憎者,使人之心勞;弗疾去,則志氣日耗。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나감이 멀수록 그 앎이 적다 하니 정신을 밖으로 넘치게 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다섯 빛이 눈을 어지럽혀 눈을 밝지 않게 하고 다섯 소리가 귀에 시끄러워 귀를 총명하지 않게 하며 다섯 맛이 입을 어지럽혀 입을 상하게 하고 나아가고 버림이 마음을 어지럽혀 행실을 날리게 한다. 이 넷은 천하가 성품을 기르는 바이나 그러나 다 사람의 누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즐기고 바람은 사람의 기운을 넘치게 하고 좋아하고 미워함은 사람의 마음을 수고롭게 하니 빨리 버리지 않으면 뜻과 기운이 날로 소모된다 한다.

夫人之所以不能終其壽命,而中道夭于刑戮者,何也?以其生生之厚。夫惟能無以生為者,則所以修得生也。夫天地運而相通,萬物總而為一。能知一,則無一之不知也;不能知一,則無一之能知也。譬吾處於天下也,亦為一物矣,不識天下之以我備其物與?且惟無我而物無不備者乎?然則我亦物也,物亦物也,物之與物也,又何以相物也?雖然,其生我也,將以何益?其殺我也,將以何損?夫造化者既以我為坯矣,將無所違之矣。吾安知夫刺灸而欲生者之非惑也?又安知夫絞經而求死者之非福也?或者生乃徭役也?而死乃休息也?天下茫茫,孰知之哉?其生我也不強求已,其殺我也不強求止。欲生而不事,憎死而不辭,賤之而弗憎,貴之而弗喜,隨其天資而安之不極。吾生也有七尺之形,吾死也有一棺之土。吾生之比於有形之類,猶吾死之淪於無形之中也。然則吾生也物不以益眾,吾死也土不以加厚,吾又安知所喜憎利害其間者乎?夫造化者之攫援物也,譬猶陶人之埏埴也,其取之地而已為盆盎也,與其未離於地也無以異,其已成器而破碎漫瀾而複歸其故也,與其為盆盎亦無以異矣。夫臨江之鄉,居人汲水以浸其園,江水弗憎也;苦洿之家,決洿而注之江,洿水弗樂也。是故其在江也,無以異其浸園也;其在洿也,亦無以異其在江也。是故聖人因時以安其位,當世而樂其業。

무릇 사람이 그 수명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형벌과 죽임에 일찍 죽는 까닭은 어째서인가. 그 삶을 삶이 두터워서다. 무릇 오직 삶으로 삼음이 없을 수 있는 이라야 삶을 닦아 얻는 까닭이다. 무릇 하늘과 땅이 운행하여 서로 통하고 만물이 모여 하나가 된다. 하나를 알 수 있으면 하나도 알지 못함이 없고 하나를 알 수 없으면 하나도 알 수 있음이 없다. 비유하면 내가 천하에 처함도 또한 한 물건이니 천하가 나로 그 물건을 갖춤을 알지 못하는가. 또 오직 내가 없어야 물건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는가. 그러면 나도 물건이요 물건도 물건이니 물건과 물건이 또 무엇으로 서로 물건 삼겠는가. 비록 그러나 그 나를 낳음이 장차 무엇을 더하며 그 나를 죽임이 장차 무엇을 덜겠는가. 무릇 조화하는 이가 이미 나를 질그릇 감으로 삼았으니 장차 어길 바가 없다. 내가 어찌 찌르고 뜸떠 살려는 이가 홀림이 아님을 알며 또 어찌 목매어 죽음을 구하는 이가 복이 아님을 알겠는가. 혹 삶은 곧 부역이고 죽음은 곧 쉼인가. 천하가 아득하니 누가 알겠는가. 그 나를 낳음에 억지로 그만두기를 구하지 않고 그 나를 죽임에 억지로 그치기를 구하지 않는다. 살려 하되 일삼지 않고 죽음을 미워하되 사양하지 않으며 천하게 여겨도 미워하지 않고 귀하게 여겨도 기뻐하지 않으며 그 하늘의 바탕을 따라 편안히 여겨 극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서 일곱 자 꼴이 있고 내가 죽어서 한 관의 흙이 있다. 내 삶이 꼴 있는 무리에 견줌은 내 죽음이 꼴 없는 가운데 잠김과 같다. 그러면 내가 살아도 물건이 더 많아지지 않고 내가 죽어도 흙이 더 두터워지지 않는데 내가 또 어찌 그 사이에 기뻐하고 미워하고 이롭고 해로운 바를 알겠는가. 무릇 조화하는 이가 물건을 잡아 끎은 비유하면 질그릇장이가 흙을 이김과 같아 그 땅에서 취하여 이미 동이가 되어도 그 아직 땅에서 떠나지 않음과 다를 것이 없고 그 이미 그릇을 이루었다가 깨져 흩어져 다시 그 옛것으로 돌아감도 그 동이 됨과 또한 다를 것이 없다. 무릇 강가 고을에 사는 사람이 물을 길어 그 동산에 적셔도 강물이 미워하지 않고 괸 웅덩이 집이 웅덩이를 터서 강에 부어도 웅덩이 물이 즐거워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 강에 있음은 그 동산을 적심과 다를 것이 없고 그 웅덩이에 있음도 그 강에 있음과 다를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성인은 때에 따라 그 자리를 편안히 하고 세상을 당하여 그 업을 즐긴다.

夫悲樂者,德之邪也;而喜怒者,道之過也;好憎者,心之暴也。故曰:其生也,天行;其死也,物化。靜則與陰俱閉,動則與陽俱開。精神澹然無極,不與物散,而天下自服。故心者,形之主也;而神者,心之寶也。形勞而不休則蹶,精用而不已則竭。是故聖人貴而尊之,不敢越也。夫有夏後氏之璜者,匣匱而藏之,寶之至也。夫精神之可寶也,非直夏後氏之璜也。是故聖人以無應有,必究其理;以虛受實,必窮其節;恬愉虛靜,以終其命。是故無所甚疏,而無所甚親。抱德煬和,以順於天。與道為際,與德為鄰,不為福始,不為禍先,魂魄處其宅,而精神守其根,死生無變於己,故曰至神。所謂真人者也,性合於道也。故有而若無,實而若虛;處其一不知其二,治其內不識其外。明白太素,無為複樸,體本抱神,以游于天地之樊。芒然仿佯於塵垢之外,而消搖於無事之業。浩浩蕩蕩乎,機械之巧弗載於心。

무릇 슬픔과 즐거움은 덕의 사악함이요 기쁨과 노함은 도의 허물이며 좋아하고 미워함은 마음의 사나움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삶은 하늘의 운행이요 그 죽음은 물건의 변화라 한다. 고요하면 음과 함께 닫히고 움직이면 양과 함께 열린다. 정신이 담담하여 끝이 없고 물건과 흩어지지 않으면 천하가 절로 복종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꼴의 주인이요 신은 마음의 보배다. 꼴이 수고롭고 쉬지 않으면 넘어지고 정이 쓰여 그치지 않으면 다한다. 이 때문에 성인이 귀하게 여겨 높이고 감히 넘지 않는다. 무릇 하후씨의 황을 가진 이는 상자에 넣어 감추니 보배로 여김의 지극함이다. 무릇 정신의 보배로 여길 만함은 다만 하후씨의 황뿐이 아니다. 이 때문에 성인은 없음으로 있음에 응하여 반드시 그 이치를 캐고 빔으로 실을 받아 반드시 그 마디를 다하며 편안하고 즐겁고 비고 고요하여 그 명을 마친다. 이 때문에 매우 소원한 바가 없고 매우 친한 바가 없다. 덕을 안고 화함을 데워 하늘에 순한다. 도와 사귀고 덕과 이웃하며 복의 시작이 되지 않고 화의 앞이 되지 않으며 혼백이 그 집에 처하고 정신이 그 뿌리를 지켜 죽고 삶이 저를 변하게 하지 않으므로 지극한 신이라 한다. 이른바 진인이란 성품이 도에 맞은 이다. 그러므로 있으면서 없는 듯하고 실하면서 빈 듯하며 그 하나에 처하여 그 둘을 알지 못하고 그 안을 다스려 그 밖을 알지 못한다. 밝고 흰 큰 바탕으로 함이 없이 질박함으로 돌아가고 근본을 몸 삼고 신을 안아 하늘과 땅의 울타리에 노닌다. 아득히 티끌 밖에 방황하고 일 없는 업에 소요한다. 넓고 넓어 기계의 교묘함이 마음에 실리지 않는다.

是故死生亦大矣,而不為變。雖天地覆育,亦不與之摟抱矣。審乎無瑕,而不與物糅;見事之亂,而能守其宗。若然者,正肝膽,遺耳目,心志專于內,通達耦于一,居不知所為,行不知所之,渾然而往,逯然而來,形若槁木,心若死灰。忘其五藏,損其形骸。不學而知,不視而見,不為而成,不治而辯,感而應,迫而動,不得已而往,如光之耀,如景之放,以道為紃,有待而然。抱其太清之本,而無所容與,而物無能營。廓惝而虛,清靖而無思慮。大澤焚而不能熱,河、漢涸而不能寒也。大雷毀山而不能驚也,大風晦日而不能傷也。是故視珍寶珠玉,猶石礫也;視至尊窮寵,猶行客也;視毛嬙、西施,猶䫏醜也。以死生為一化,以萬物為一方,同精於太清之本,而游于忽區之旁。有精而不使,有神而不行,契大渾之樸,而立至清之中。

이 때문에 죽고 삶도 크나 변하지 않는다. 비록 하늘과 땅이 덮어 길러도 또한 더불어 끌어안지 않는다. 흠 없음을 살펴 물건과 섞이지 않고 일의 어지러움을 보되 그 종주를 지킬 수 있다. 이 같은 이는 간과 쓸개를 바로잡고 귀와 눈을 버리며 마음과 뜻이 안에 오로지하고 통달하여 하나에 짝하며 살아도 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다녀도 가는 바를 알지 못하며 흐리게 가고 느긋하게 오며 꼴은 마른 나무 같고 마음은 죽은 재 같다. 그 오장을 잊고 그 몸을 던다. 배우지 않아도 알고 보지 않아도 보며 하지 않아도 이루고 다스리지 않아도 가리며 느껴 응하고 다가와 움직이며 마지못해 가니 빛이 비추듯 그림자가 놓이듯 도를 실로 삼아 기다림이 있어 그러하다. 그 태청의 근본을 안고 용납하여 더불 바 없어 물건이 경영할 수 없다. 텅 비어 트이고 맑고 고요하여 생각이 없다. 큰 못이 타도 뜨겁게 할 수 없고 하수·한수가 말라도 차게 할 수 없다. 큰 우레가 산을 헐어도 놀라게 할 수 없고 큰 바람이 해를 어둡게 하여도 상하게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진귀한 보배와 구슬과 옥을 봄이 돌과 자갈 같고 지극히 높고 궁극의 총애를 봄이 지나가는 나그네 같으며 모장·서시를 봄이 추한 이 같다. 죽고 삶을 한 변화로 삼고 만물을 한 방향으로 삼아 태청의 근본에 정을 같이하고 문득한 지경 곁에 노닌다. 정이 있으나 부리지 않고 신이 있으나 행하지 않으며 큰 섞임의 질박함에 맞고 지극히 맑은 가운데 선다.

是故其寢不夢,其智不萌,其魄不抑,其魂不騰。反覆終始,不知其端緒,甘暝太宵之宅,而覺視於昭昭之宇,休息於無委曲之隅,而游敖於無形埒之野。居而無容,處而無所,其動無形,其靜無體,存而若亡,生而若死,出入無間,役使鬼神。淪于不測,入於無間,以不同形相嬗也,終始若環,莫得其倫。此精神之所以能登假於道也。是故真人之所游。若吹呴呼吸,吐故內新,熊經鳥伸,鳧浴蝯躩,鴟視虎顧,是養形之人也,不以滑心。使神滔蕩而不失其充,日夜無傷而與物為春,則是合而生時於心也。

이 때문에 그 잠에 꿈꾸지 않고 그 슬기가 싹트지 않으며 그 백이 눌리지 않고 그 혼이 오르지 않는다. 시작과 끝을 되풀이하여 그 실마리를 알지 못하고 큰 밤의 집에 달게 잠들고 밝고 밝은 집에서 깨어 보며 굽이 없는 모퉁이에서 쉬고 꼴과 지경 없는 들에서 노닌다. 살되 모습이 없고 처하되 곳이 없으며 그 움직임에 꼴이 없고 그 고요함에 몸이 없으며 있으면서 없는 듯하고 살면서 죽은 듯하며 틈 없는 데 드나들고 귀신을 부린다. 헤아릴 수 없음에 잠기고 틈 없는 데 들어 같지 않은 꼴로 서로 이어 시작과 끝이 고리 같아 그 차례를 얻을 수 없다. 이것이 정신이 도에 올라갈 수 있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진인이 노니는 바다. 저 불고 내쉬고 숨 쉬며 묵은 것을 토하고 새것을 들이며 곰처럼 매달리고 새처럼 펴며 오리처럼 목욕하고 원숭이처럼 뛰며 올빼미처럼 보고 범처럼 돌아봄은 꼴을 기르는 사람이니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신이 넘실거리면서 그 채움을 잃지 않고 밤낮으로 상함이 없이 물건과 봄이 되게 하면 이는 합하여 마음에 때를 낳음이다.

且人有戒形而無損於心,有綴宅而無耗精。夫癩者趨不變,狂者形不虧,神將有所遠徙,孰暇知其所為!故形有摩而神未嘗化者,以不化應化,千變萬化,而未始有極。化者,複歸於無形也;不化者,與天地俱生也。夫木之死也,青青去之也。夫使木生者豈木也?猶充形者之非形也。故生生者未嘗死也,其所生則死矣;化物者未嘗化也,其所化則化矣。輕天下,則神無累矣;細萬物,則心不惑矣;齊死生,則志不懾矣;同變化,則明不眩矣。眾人以為虛言,吾將舉類而實之。

또 사람에게 꼴을 경계하되 마음에 덜함이 없고 집을 얽되 정을 소모함이 없음이 있다. 무릇 문둥이는 달림이 변하지 않고 미친 이는 꼴이 이지러지지 않으니 신이 장차 멀리 옮길 바가 있음에 누가 그 하는 바를 알 겨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꼴에 닳음이 있어도 신이 일찍이 변하지 않는 이는 변하지 않음으로 변함에 응하여 천 번 변하고 만 번 변하여도 아직 끝이 있지 않다. 변하는 것은 다시 꼴 없음으로 돌아가고 변하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과 함께 난다. 무릇 나무가 죽음은 푸름이 떠남이다. 무릇 나무를 살게 하는 것이 어찌 나무겠는가. 꼴을 채우는 것이 꼴이 아님과 같다. 그러므로 삶을 낳는 것은 일찍이 죽지 않고 그 낳은 바는 죽으며 물건을 변화시키는 것은 일찍이 변하지 않고 그 변화시킨 바는 변한다. 천하를 가벼이 여기면 신에 누가 없고 만물을 작게 여기면 마음이 홀리지 않으며 죽고 삶을 가지런히 하면 뜻이 겁내지 않고 변화를 같이하면 밝음이 어지럽지 않다. 뭇사람은 헛말이라 여기니 내가 장차 무리를 들어 실답게 하겠다.

人之所以樂為人主者,以其窮耳目之欲,而適躬體之便也。今高臺層榭,人之所麗也;而堯樸桷不斫,素題不枅。珍怪奇異,人之所美也;而堯糲粢之飯,藜藿之羹。文繡狐白,人之所好也;而堯布衣掩形,鹿裘禦寒。養性之具不加厚,而增之以任重之憂。故舉天下而傳之於舜,若解重負然。非直辭讓,誠無以為也。此輕天下之具也。禹南省方,濟于江,黃龍負舟,舟中之人五色無主,禹乃熙笑而稱曰:「我受命於天,竭力而勞萬民,生寄也,死歸也,何足以滑和?」視龍猶蝘蜓,顏色不變,龍乃弭耳掉尾而逃。禹之視物亦細矣。鄭之神巫相壺子林,見其徵,告列子。列子行泣報壺子。壺子持以天壤,名實不入,機發於踵。壺子之視死生亦齊矣。子求行年五十有四,而病傴僂,脊管高於頂,〈月曷〉下迫頤,兩脾在上,燭營指天。匍匐自窺于井,曰:「偉哉!造化者其以我為此拘拘邪?」此其視變化亦同矣。故睹堯之道,乃知天下之輕也;觀禹之志,乃知天下之細也;原壺子之論,乃知死生之齊也;見子求之行,乃知變化之同也。

사람이 임금 되기를 즐기는 까닭은 그 귀와 눈의 바람을 다하고 몸의 편함에 맞아서다. 이제 높은 대와 층층 누각은 사람이 곱게 여기는 바인데 요는 서까래를 다듬지 않고 흰 기둥 머리에 두공을 하지 않았다. 진귀하고 괴이하고 기이함은 사람이 아름답게 여기는 바인데 요는 거친 기장밥과 명아주와 콩잎 국을 먹었다. 무늬 수와 여우 흰 갖옷은 사람이 좋아하는 바인데 요는 베옷으로 몸을 가리고 사슴 갖옷으로 추위를 막았다. 성품을 기르는 갖춤이 더 두터워지지 않고 무거운 짐의 근심만 더하였다. 그러므로 천하를 들어 순에게 전함이 무거운 짐을 벗는 듯하였다. 다만 사양함이 아니라 참으로 할 것이 없어서다. 이것이 천하를 가벼이 여기는 갖춤이다. 우가 남으로 순수하다가 강을 건너는데 누런 용이 배를 지니 배 가운데 사람이 다섯 빛이 주인을 잃었으나 우가 곧 기쁘게 웃으며 일컬었다. 「내가 하늘에서 명을 받아 힘을 다하여 만민을 위해 수고하니 삶은 붙임이요 죽음은 돌아감이라 어찌 화함을 어지럽히기에 넉넉하겠는가.」 용을 봄이 도마뱀 같아 낯빛이 변하지 않으니 용이 곧 귀를 늘어뜨리고 꼬리를 흔들며 달아났다. 우가 물건을 봄이 또한 작았다. 정나라의 신령한 무당이 호자림을 관상하고 그 징조를 보고 열자에게 알렸다. 열자가 가서 울며 호자에게 알렸다. 호자가 하늘과 땅으로 지니니 이름과 실이 들지 않고 틀이 발꿈치에서 발하였다. 호자가 죽고 삶을 봄이 또한 가지런하였다. 자구가 나이 쉰넷에 곱사병이 들어 등뼈가 정수리보다 높고 〈月曷〉이 아래로 턱을 누르며 두 넓적다리가 위에 있고 촉영이 하늘을 가리켰다. 엎드려 기어 스스로 우물에 비추어 보고 말하였다. 「위대하도다! 조화하는 이가 나를 이렇게 굽게 만들었는가?」 이는 그 변화를 봄이 또한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요의 도를 보고 곧 천하의 가벼움을 알고 우의 뜻을 보고 곧 천하의 작음을 알며 호자의 논을 미루고 곧 죽고 삶의 가지런함을 알고 자구의 행실을 보고 곧 변화의 같음을 안다.

夫至人倚不拔之柱,行不關之塗,稟不竭之府,學不死之師。無往而不遂,無至而不通。生不足以掛志,死不足以幽神,屈伸俯仰,抱命而婉轉。禍福利害,千變萬化,孰足以患心!若此人者,抱素守精,蟬蛻蛇解,游於太清,輕舉獨往,忽然入冥。鳳凰不能與之儷,而況斥鷃乎!勢位爵祿,何足以概志也!晏子與崔杼盟,臨死地而不易其義。殖、華將戰而死,莒君厚賂而止之,不改其行。故晏子可迫以仁,而不可劫以兵;殖、華可止以義,而不可縣以利。君子義死,而不可以富貴留也;義為,而不可以死亡恐也。彼則直為義耳,而尚猶不拘於物,又況無為者矣。

무릇 지극한 사람은 뽑히지 않는 기둥에 기대고 닫히지 않는 길을 다니며 다하지 않는 곳간에서 받고 죽지 않는 스승에게 배운다. 감에 이루지 못함이 없고 이름에 통하지 못함이 없다. 삶도 뜻에 걸기에 넉넉하지 않고 죽음도 신을 어둡게 하기에 넉넉하지 않으며 굽히고 펴고 굽어보고 우러르며 명을 안고 완연히 돈다. 화복과 이해가 천 번 변하고 만 번 변한들 누가 마음을 근심하기에 넉넉하겠는가! 이 같은 사람은 바탕을 안고 정을 지켜 매미가 허물 벗듯 뱀이 풀리듯 태청에 노닐고 가벼이 들어 홀로 가며 문득 어두운 데 든다. 봉황도 더불어 짝할 수 없는데 하물며 메추라기랴! 세와 자리와 작위와 녹이 어찌 뜻에 개의하기에 넉넉하겠는가! 안자가 최저와 맹세함에 죽을 자리에 임하여도 그 의를 바꾸지 않았다. 식·화가 장차 싸워 죽으려 함에 거나라 임금이 두터운 뇌물로 그치게 하였으나 그 행실을 고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안자는 어짊으로 다그칠 수 있으나 군사로 겁줄 수 없고 식·화는 의로 그치게 할 수 있으나 이익으로 매달 수 없다. 군자는 의로 죽되 부귀로 머물게 할 수 없고 의를 행하되 죽음으로 두렵게 할 수 없다. 저들은 다만 의를 할 뿐인데도 오히려 물건에 갇히지 않는데 또 하물며 함이 없는 이랴.

堯不以有天下為貴,故授舜。公子劄不以有國為尊,故讓位。子罕不以玉為富,故不受寶。務光不以生害義,故自投於淵。由此觀之,至貴不待爵,至富不待財。天下至大矣,而以與佗人;身至親矣,而棄之淵;外此,其餘無足利矣。此之謂無累之人,無累之人,不以天下為貴矣!上觀至人之論,深原道德之意,以下考世俗之行,乃足羞也。故通許由之意,《金滕》、《豹韜》廢矣;延陵季子不受吳國,而訟間田者慚矣;子罕不利寶玉,而爭券契者愧矣;務光不汙於世,而貪利偷生者悶矣。故不觀大義者,不知生之不足貪也;不聞大言者,不知天下之不足利也。

요는 천하 둠을 귀히 여기지 않았으므로 순에게 주었다. 공자 찰은 나라 둠을 높이 여기지 않았으므로 자리를 사양하였다. 자한은 옥을 부유함으로 여기지 않았으므로 보배를 받지 않았다. 무광은 삶으로 의를 해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못에 몸을 던졌다. 이로써 보면 지극한 귀함은 작위를 기다리지 않고 지극한 부유함은 재물을 기다리지 않는다. 천하가 지극히 크되 남에게 주고 몸이 지극히 친하되 못에 버리니 이 밖에 그 나머지는 이로울 것이 없다. 이를 누 없는 사람이라 하니 누 없는 사람은 천하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 위로 지극한 사람의 논을 보고 도덕의 뜻을 깊이 캐어 아래로 세속의 행실을 살피면 곧 부끄러워하기에 넉넉하다. 그러므로 허유의 뜻에 통하면 「금등」·「표도」가 폐하고 연릉 계자가 오나라를 받지 않으니 한 뙈기 밭을 다투는 이가 부끄러워하며 자한이 보옥을 이롭게 여기지 않으니 문서를 다투는 이가 부끄러워하고 무광이 세상에 더럽혀지지 않으니 이익을 탐하여 구차히 사는 이가 민망해한다. 그러므로 큰 의를 보지 못한 이는 삶이 탐하기에 넉넉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큰 말을 듣지 못한 이는 천하가 이롭게 여기기에 넉넉하지 않음을 알지 못한다.

今夫窮鄙之社也,叩盆拊瓴,相和而歌,自以為樂矣。嘗試為之擊建鼓,撞巨鐘,乃性仍仍然,知其盆瓴之足羞也。藏《詩》、《書》,修文學,而不知至論之旨,則拊盆叩瓴之徒也。夫以天下為者,學之建鼓矣。尊勢厚利,人之所貪也;使之左據天下圖,而右手刎其喉,愚夫不為。由此觀之,生尊於天下也。聖人食足以接氣,衣足以蓋形,適情不求餘,無天下不虧其性,有天下不羨其和。有天下,無天下,一實也。今贛人敖倉,予人河水,饑而餐之,渴而飲之,其入腹者不過簞食瓢漿,則身飽而敖倉不為之減也。腹滿而河水不為之竭也。有之不加飽,無之不為之饑,與守其篅𥫱、有其井,一實也。人大怒破陰,大喜墜陽,大憂內崩,大怖生狂。除穢去累,莫若未始出其宗,乃為大通。清目而不以視,靜耳而不以聽,鉗口而不以言,委心而不以慮。棄聰明而反太素,休精神而棄知故,覺而若昧,以生而若死,終則反本未生之時,而與化為一體。死之與生,一體也。

이제 무릇 궁벽한 시골의 사제에서 동이를 두드리고 항아리를 치며 서로 화답하여 노래하며 스스로 즐겁다 여긴다. 시험 삼아 그를 위해 큰 북을 치고 큰 종을 울리면 곧 성품이 시무룩하여 그 동이와 항아리가 부끄러워할 만함을 안다. 「시」·「서」를 감추고 문학을 닦으면서 지극한 논의 뜻을 알지 못하면 동이를 치고 항아리를 두드리는 무리다. 무릇 천하로 하는 이는 배움의 큰 북이다. 높은 세와 두터운 이익은 사람이 탐하는 바나 왼손으로 천하 지도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 목을 베게 하면 어리석은 지아비도 하지 않는다. 이로써 보면 삶이 천하보다 높다. 성인은 먹음이 기운을 잇기에 넉넉하고 입음이 꼴을 덮기에 넉넉하며 정에 맞추고 남음을 구하지 않아 천하가 없어도 그 성품을 이지러뜨리지 않고 천하가 있어도 그 화함을 넘치게 하지 않는다. 천하가 있음과 천하가 없음이 한 실상이다. 이제 사람에게 오창을 주고 사람에게 하수를 주어도 주리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니 그 배에 드는 것은 한 대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에 지나지 않아 몸이 배불러도 오창이 그 때문에 줄지 않고 배가 차도 하수가 그 때문에 다하지 않는다. 있어도 더 배부르지 않고 없어도 그 때문에 주리지 않으니 그 곳간을 지키고 그 우물을 둠과 한 실상이다. 사람이 크게 노하면 음을 깨뜨리고 크게 기뻐하면 양을 떨어뜨리며 크게 근심하면 안이 무너지고 크게 두려우면 미침이 난다. 더러움을 없애고 누를 버림은 아직 그 종주에서 나오지 않음만 못하니 곧 큰 통함이 된다. 눈을 맑게 하되 보지 않고 귀를 고요히 하되 듣지 않으며 입을 다물어 말하지 않고 마음을 맡겨 생각하지 않는다. 총명을 버리고 큰 바탕으로 돌아가며 정신을 쉬게 하고 앎과 꾀를 버려 깨어도 어두운 듯하고 살아도 죽은 듯하니 마치면 근본인 아직 나지 않은 때로 돌아가 변화와 한 몸이 된다. 죽음과 삶은 한 몸이다.

今夫繇者揭钁臿,負籠土,鹽汗交流,喘息薄喉。當此之時,得茠越下,則脫然而喜矣。岩穴之間,非直越下之休也。病疵瘕者,捧心抑腹,膝上叩頭,踡跼而諦,通夕不寐。當此之時,噲然得臥,則親戚兄弟歡然而喜,夫修夜之寧,非直一噲之樂也。故知宇宙之大,則不可劫以死生;知養生之和,則不可縣以天下;知未生之樂,則不可畏以死;知許由之貴於舜,則不貪物。牆之立,不若其偃也,又況不為牆乎!冰之凝,不若其釋也,又況不為冰乎!自無蹠有,自有蹠無,終始無端,莫知其所萌,非通於外內,孰能無好憎?無外之外,至大也;無內之內,至貴也;能知大貴,何往而不遂!衰世湊學,不知原心反本,直雕琢其性,矯拂其情,以與世交。故目雖欲之,禁之以度;心雖樂之,節之以禮。趨翔周旋,詘節卑拜,肉凝而不食,酒澄而不飲,外束其形,內總其德,鉗陰陽之和,而迫性命之情,故終身為悲人。達至道者則不然,理情性,治心術,養以和,持以適,樂道而忘賤,安德而忘貧。性有不欲,無欲而不得;心有不樂,無樂而不為。無益情者不以累德,而便性者不以滑和。故縱體肆意,而度制可以為天下儀。

이제 무릇 부역하는 이가 괭이와 삽을 들고 흙 삼태기를 지며 짠 땀이 뒤섞여 흐르고 숨이 목구멍에 박찬다. 이때를 당하여 나무 그늘 아래 쉬면 후련히 기뻐한다. 바위 굴 사이는 다만 나무 그늘의 쉼뿐이 아니다. 뱃병 앓는 이가 가슴을 움키고 배를 누르며 무릎 위에 머리를 조아리고 웅크려 신음하며 밤새 자지 못한다. 이때를 당하여 잠시 누울 수 있으면 친척과 형제가 기뻐하니 무릇 긴 밤의 편안함은 다만 한 번 누움의 즐거움뿐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큼을 알면 죽고 삶으로 겁줄 수 없고 삶을 기르는 화함을 알면 천하로 매달 수 없으며 아직 나지 않음의 즐거움을 알면 죽음으로 두렵게 할 수 없고 허유가 순보다 귀함을 알면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 담이 섬은 그 눕느니만 못한데 또 하물며 담이 되지 않음이랴! 얼음이 엉김은 그 풀리느니만 못한데 또 하물며 얼음이 되지 않음이랴! 없음에서 있음으로 가고 있음에서 없음으로 가서 시작과 끝이 끝이 없어 그 싹튼 바를 아는 이가 없으니 밖과 안에 통하지 않고서 누가 좋아하고 미워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밖 없는 밖은 지극히 큼이요 안 없는 안은 지극히 귀함이니 크고 귀함을 알 수 있으면 어디 간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쇠한 세상의 모인 배움은 마음을 캐어 근본으로 돌이킬 줄 모르고 다만 그 성품을 새기고 쪼며 그 정을 굽히고 거슬러 세상과 사귄다. 그러므로 눈이 비록 바라도 법도로 금하고 마음이 비록 즐거워도 예로 절제한다. 달리고 돌며 마디를 굽혀 낮게 절하고 고기가 엉겨도 먹지 않고 술이 맑아도 마시지 않으며 밖으로 그 꼴을 묶고 안으로 그 덕을 거두며 음양의 화함에 재갈 물리고 성품과 명의 정을 다그치므로 종신토록 슬픈 사람이 된다. 지극한 도에 통달한 이는 그렇지 않아 정과 성품을 다스리고 마음의 술을 다스리며 화함으로 기르고 알맞음으로 지녀 도를 즐겨 천함을 잊고 덕에 편안하여 가난을 잊는다. 성품에 바라지 않음이 있어 바람 없이 얻지 못함이 없고 마음에 즐기지 않음이 있어 즐거움 없이 하지 않음이 없다. 정에 이익 없는 것으로 덕을 누 끼치지 않고 성품에 편한 것으로 화함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몸을 놓고 뜻을 펴도 법도와 제도가 천하의 본이 될 수 있다.

今夫儒者不本其所以欲,而禁其所欲;不原其所以樂,而閉其所樂。是猶決江河之源,而障之以手也。夫牧民者,猶畜禽獸也,不塞其囿垣,使有野心,系絆其足,以禁其動,而欲修生壽終,豈可得乎!夫顏回、季路、子夏、冉伯牛,孔子之通學也,然顏淵夭死,季路菹于衛,子夏失明,冉伯牛為厲。此皆迫性拂情,而不得其和也。故子夏見曾子,一臞一肥。曾子問其故,曰:「出見富貴之樂而欲之,入見先王之道又說之。兩者心戰,故臞;先王之道勝,故肥。」推其志,非能貪富貴之位,不便侈靡之樂,直宜迫性閉欲,以義自防也。雖情心鬱殪,形性屈竭,猶不得已自強也。故莫能終其天年。

이제 무릇 유자는 그 바라는 까닭에 근본하지 않고 그 바람을 금하며 그 즐기는 까닭을 캐지 않고 그 즐김을 닫는다. 이는 강과 하수의 근원을 터놓고 손으로 막음과 같다. 무릇 백성을 기름은 새와 짐승을 기름과 같으니 그 동산 담을 막지 않고 들 마음이 있게 하며 그 발을 묶어 그 움직임을 금하면서 삶을 닦고 수명을 마치려 한들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무릇 안회·계로·자하·염백우는 공자의 통달한 제자이나 안연은 일찍 죽고 계로는 위나라에서 젓 담기고 자하는 눈이 멀고 염백우는 문둥이가 되었다. 이는 다 성품을 다그치고 정을 거슬러 그 화함을 얻지 못해서다. 그러므로 자하가 증자를 봄에 한 번 여위고 한 번 살쪘다. 증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였다. 「나가서 부귀의 즐거움을 보고 바랐고 들어와 선왕의 도를 보고 또 기뻐하였습니다. 둘이 마음에서 싸웠으므로 여위었고 선왕의 도가 이겼으므로 살쪘습니다.」 그 뜻을 미루면 부귀의 자리를 탐할 수 있고 사치한 즐거움을 편하게 여기지 않음이 아니라 다만 마땅히 성품을 다그치고 바람을 닫아 의로 스스로 막은 것이다. 비록 정과 마음이 답답하고 꼴과 성품이 굽히고 다하여도 오히려 마지못해 스스로 힘썼다. 그러므로 그 천년을 마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若夫至人,量腹而食,度形而衣,容身而遊,適情而行,餘天下而不貪,委萬物而不利,處大廓之宇,遊無極之野,登太皇,馮太一,玩天地於掌握之中。夫豈為貧富肥臞哉!故儒者非能使人弗欲,而能止之;非能使人勿樂,而能禁之。夫使天下畏刑而不敢盜,豈若能使無有盜心哉!越人得髯蛇,以為上肴,中國得之而棄之無用。故知其無所用,貪者能辭之;不知其無所用,廉者不能讓也。夫人主之所以殘亡其國家,損棄其社稷,身死於人手,為天下笑,未嘗非為非欲也。夫仇由貪大鐘之賂而亡其國,虞君利垂棘之璧而禽其身,獻公豔驪姬之美而亂四世,桓公甘易牙之和而不以時葬,胡王淫女樂之娛而亡上地。使此五君者適情辭餘,以己為度,不隨物而動,豈有此大患哉!

저 지극한 사람은 배를 헤아려 먹고 꼴을 재어 입으며 몸을 용납하여 노닐고 정에 맞추어 다니며 천하를 남겨 두고 탐하지 않고 만물을 맡기고 이롭게 여기지 않으며 큰 트임의 집에 처하고 끝없는 들에 노닐며 태황에 오르고 태일에 기대어 하늘과 땅을 손바닥 안에서 논다. 무릇 어찌 가난하고 부유하고 살찌고 여윔을 하겠는가! 그러므로 유자는 사람으로 바라지 않게 할 수 없고 그치게 할 수 있으며 사람으로 즐기지 않게 할 수 없고 금할 수 있다. 무릇 천하로 형벌을 두려워하여 감히 훔치지 않게 함이 어찌 훔치는 마음이 없게 할 수 있음만 하겠는가! 월나라 사람이 수염 뱀을 얻으면 으뜸 안주로 삼는데 중국이 얻으면 버려 쓸모없다. 그러므로 그 쓸모없음을 알면 탐하는 이도 사양할 수 있고 그 쓸모없음을 알지 못하면 청렴한 이도 사양할 수 없다. 무릇 임금이 그 나라를 잔멸하고 그 사직을 덜어 버리며 몸이 남의 손에 죽어 천하의 웃음이 되는 까닭은 일찍이 그른 바람 때문이 아님이 없다. 무릇 구유는 큰 종의 뇌물을 탐하여 그 나라를 잃었고 우나라 임금은 수극의 옥을 이롭게 여겨 그 몸이 사로잡혔으며 헌공은 여희의 아름다움을 탐하여 네 세대를 어지럽혔고 환공은 역아의 조미를 달게 여겨 때에 장사되지 못하였으며 호왕은 여악의 즐거움에 빠져 상지를 잃었다. 이 다섯 임금이 정에 맞추고 남음을 사양하며 저로 법도를 삼아 물건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큰 환난이 있었겠는가!

故射者非矢不中也,學射者不治矢也;禦者非轡不行,學禦者不為轡也。知冬日之箑、夏日之裘無用於己,則萬物之變為塵埃矣。故以湯止沸,沸乃不止,誠知其本,則去火而已矣。

그러므로 쏘는 이는 화살이 아니면 맞히지 못하나 쏘기 배우는 이는 화살을 다스리지 않고 모는 이는 고삐가 아니면 다니지 못하나 몰기 배우는 이는 고삐를 하지 않는다. 겨울날의 부채와 여름날의 갖옷이 저에게 쓸모없음을 알면 만물의 변화가 티끌이 된다. 그러므로 끓는 물로 끓음을 그치면 끓음이 곧 그치지 않으니 참으로 그 근본을 알면 불을 없앨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