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繆稱訓

회남자 淮南子 · 유안(劉安)과 문객들 · 기원전 139년 무렵 · 단락 17 · 한자 5,957자 · 낭독 23.8분

「회남자」 무칭훈 「繆稱訓」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나라 회남왕 유안이 문객들과 함께 엮은 책이다. 도덕경·장자·열자에 이은 도가의 넷째 자리에 놓이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손이 나누어 쓴 백과에 가깝다. 하늘과 땅의 얼개(천문·지형·시칙), 사람의 정신과 다스림, 병법과 잠언까지 한 집에 다 들여놓았다. 항아가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처음 적힌 곳이 남명훈이다. 지금 전하는 달 신화의 뿌리가 여기 한 줄이다. 설산훈과 설림훈 두 편은 짧은 잠언을 줄줄이 늘어놓았고, 도응훈은 이야기 쉰다섯 도막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로 끝을 맺는다. 옛 이야기를 도덕경 구절에 하나씩 맞춰 본 셈이다. 시칙훈은 동방의 끝을 「갈석산을 지나 조선을 지난다」로 잡고, 인간훈은 진 시황이 긴 성을 쌓아 「동으로 조선에 맺었다」고 적는다. 한나라 초에 조선이 어디쯤으로 여겨졌는지 보여 주는 두 자리다.

道至高無上,至深無下,平乎准,直乎繩,圓乎規,方乎矩,包裹宇宙而無表裏,洞同覆載而無所礙。是故體道者,不哀不樂,不喜不怒,其坐無慮,其寢無夢,物來而名,事來而應。主者,國之心,心治則百節皆安,心擾則百節皆亂。故其心治者,支體相遺也;其國治者,君臣相忘也。黃帝曰:「芒芒昧昧,從天之道,與元同氣。」故至德者,言同略,事同指,上下一心,無岐道旁見者,遏障之於邪,開道之於善,而民鄉方矣。故《易》曰:「同人於野,利涉大川。」道者,物之所導也;德者,性之所扶也;仁者,積恩之見證也;義者,比于人心而合於眾適者也。故道滅而德用,德衰而仁義生。故上世體道而不德,中世守德而弗壞也,末世繩繩乎唯恐失仁義。君子非仁義無以生,失仁義,則失其所以生;小人非嗜欲無以活,失嗜欲,則失其所以活。故君子懼失仁義,小人懼失利。觀其所懼,知各殊矣。《易》曰:「即鹿無虞,惟入于林中,君子幾不如舍,往吝。」其施厚者其報美,其怨大者其禍深。薄施而厚望,畜怨而無患者,古今未之有也。是故聖人察其所以往,則知其所以來者。聖人之道,猶中衢而致尊邪:過者斟酌,多少不同,各得其所宜。是故得一人,所以得百人也。人以其所願於上,以交其下,誰弗戴?以其所欲於下,以事其上,誰弗喜?《詩》雲:「媚茲一人,應侯慎德。」慎德大矣,一人小矣。能善小,其能善大矣。

도는 지극히 높아 위가 없고 지극히 깊어 아래가 없으며 수준기처럼 평평하고 먹줄처럼 곧으며 그림쇠처럼 둥글고 곱자처럼 모나며 우주를 싸안아 겉과 속이 없고 덮고 실음에 훤히 같아 거리끼는 바가 없다. 이 때문에 도를 몸 삼은 이는 슬퍼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노하지도 않으며 그 앉음에 생각이 없고 그 잠에 꿈이 없으며 물건이 오면 이름하고 일이 오면 응한다. 임금은 나라의 마음이니 마음이 다스려지면 온갖 마디가 다 편안하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온갖 마디가 다 어지럽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다스려진 이는 팔다리가 서로 잊고 그 나라가 다스려진 이는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잊는다. 황제가 말하였다. 「아득하고 어두워 하늘의 도를 따르고 으뜸과 기운을 같이한다.」 그러므로 지극한 덕은 말이 요령을 같이하고 일이 가리킴을 같이하며 위와 아래가 한마음이라 갈림길로 곁을 보는 이가 없으니 사악함에서 막고 착함으로 길을 열어 백성이 방향으로 향한다. 그러므로 「역」에 이르기를 「들에서 사람과 같이하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하였다. 도는 물건이 이끌리는 바요 덕은 성품이 붙들리는 바며 인은 은혜를 쌓은 증거요 의는 사람 마음에 견주어 뭇 알맞음에 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 없어지자 덕이 쓰이고 덕이 쇠하자 인의가 났다. 그러므로 상세는 도를 몸 삼고 덕으로 여기지 않았고 중세는 덕을 지켜 무너뜨리지 않았으며 말세는 조심조심 오직 인의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군자는 인의가 아니면 살 수 없어 인의를 잃으면 그 사는 까닭을 잃고 소인은 즐기고 바람이 아니면 살 수 없어 즐기고 바람을 잃으면 그 사는 까닭을 잃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인의 잃음을 두려워하고 소인은 이익 잃음을 두려워한다. 그 두려워하는 바를 보면 저마다 다름을 안다. 「역」에 이르기를 「사슴을 좇되 몰이꾼이 없어 숲속으로 들어갈 뿐이니 군자는 낌새를 알아 버림만 못하니 가면 부끄럽다」 하였다. 그 베풂이 두터운 이는 그 갚음이 아름답고 그 원망이 큰 이는 그 화가 깊다. 얇게 베풀고 두터이 바라며 원망을 쌓고 근심이 없는 이는 고금에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성인은 그 가는 까닭을 살펴 곧 그 오는 까닭을 안다. 성인의 도는 네거리 가운데 술동이를 둠과 같아 지나는 이가 떠 마시되 많고 적음이 같지 않아 저마다 그 마땅한 바를 얻는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을 얻음이 백 사람을 얻는 까닭이다. 사람이 그 위에 바라는 바로 그 아래와 사귀면 누가 받들지 않겠는가. 그 아래에 바라는 바로 그 위를 섬기면 누가 기뻐하지 않겠는가. 「시」에 이르기를 「이 한 사람을 사랑하니 후에 응하여 덕을 삼가네」 하였다. 덕을 삼감은 크고 한 사람은 작다. 작은 것을 잘하면 큰 것도 잘할 수 있다.

君子見過忘罰,故能諫;見賢忘賤,故能讓;見不足忘貧,故能施。情系於中,行形於外。凡行戴情,雖過無怨;不戴其情,雖忠來惡。后稷廣利天下,猶不自矜。禹無廢功,無廢財,自視猶觖如也。滿如陷,實如虛,盡之者也。凡人各賢其所說,而說其所快。世莫不舉賢,或以治,或以亂,非自遁,求同乎己者也。己未必得賢,而求與己同者,而欲得賢,亦不幾矣!使堯度舜則可,使桀度堯,是猶以升量石也。今謂狐狸,則必不知狐,又不知狸。非未嘗見狐者,必未嘗見狸也。狐、狸非異,同類也。而謂狐狸,則不知狐、狸。是故謂不肖者賢,則必不知賢;謂賢者不肖,則必不知不肖者矣。

군자는 허물을 보면 벌을 잊으므로 간할 수 있고 어진 이를 보면 천함을 잊으므로 사양할 수 있으며 모자람을 보면 가난을 잊으므로 베풀 수 있다. 정이 안에 매이면 행실이 밖에 드러난다. 무릇 행실이 정을 실으면 비록 허물이 있어도 원망이 없고 그 정을 싣지 않으면 비록 충성하여도 미움이 온다. 후직은 천하를 널리 이롭게 하고도 오히려 스스로 뽐내지 않았다. 우는 폐한 공이 없고 폐한 재물이 없었으나 스스로 보기를 오히려 모자란 듯하였다. 가득하되 빠진 듯하고 차되 빈 듯함은 다한 이다. 무릇 사람은 저마다 제가 기뻐하는 이를 어질다 하고 제가 즐거운 바를 기뻐한다. 세상이 어진 이를 들지 않음이 없으나 혹은 다스려지고 혹은 어지러움은 스스로 속임이 아니라 저와 같은 이를 구해서다. 저도 반드시 어진 이를 얻지 못하였는데 저와 같은 이를 구하며 어진 이를 얻으려 함은 또한 어림없다! 요로 순을 헤아리게 함은 옳으나 걸로 요를 헤아리게 함은 됫박으로 섬을 됨과 같다. 이제 여우살쾡이라 하면 반드시 여우도 모르고 또 살쾡이도 모른다. 일찍이 여우를 본 적이 없는 이가 아니면 반드시 일찍이 살쾡이를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여우와 살쾡이는 다르지 않아 같은 무리다. 그러나 여우살쾡이라 하면 여우와 살쾡이를 모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못난 이를 어질다 하면 반드시 어진 이를 모르고 어진 이를 못났다 하면 반드시 못난 이를 모른다.

聖人在上,則民樂其治;在下,則民慕其意。小人在上位,如寢關曝纊,不得須臾寧。故《易》曰:「乘馬班如,泣血漣如。」言小人處非其位,不可長也。物莫無所不用,天雄烏喙,藥之凶毒也,良醫以活人;侏儒鼓師,人之困慰者也,人主以備樂。是故聖人制其剟材,無所不用矣。勇士一呼,三軍皆辟,其出之也誠。故倡而不和,意而不戴,中心必有不合者也。故舜不降席而王天下者,求諸己也。故上多故,則民多詐矣,身曲而景直者,未之聞也。說之所不至者,容貌至焉;容貌之所不至者,感忽至焉。感乎心,明乎智,發而成形,精之至也。可以形勢接,而不可以昭誋。戎、翟之馬,皆可以馳驅,或近或遠,唯造父能盡其力;三苗之民,皆可使忠信,或賢或不肖,唯唐、虞能齊其美。必有不傳者。中行繆伯手搏虎,而不能生也,蓋力優而克不能及也。用百人之所能,則得百人之力;舉千人之所愛,則得千人之心。辟若伐樹而引其本,千枝萬葉則莫得弗從也。慈父之愛子,非為報也,不可內解於心;聖人之養民,非求用也,性不能已。若火之自熱,冰之自寒。夫有何修焉!及恃其力,賴其功者,若失火舟中。故君子見始,其知終矣。媒妁譽人,而莫之德也;取庸而強飯之,莫之愛也。雖親父慈母,不加於此,有以為,則恩不接矣。故送往者,非所以迎來也;施死者,非專為生也。誠出於己,則所動者遠矣。錦繡登廟,貴文也;圭璋在前,尚質也。文不勝質,之謂君子。故終年為車,無三寸之鎋,不可以驅馳;匠人斫戶,無一尺之楗,不可以閉藏。故君子行斯乎其所結。心之精者,可以神化,而不可以導人;目之精者,可以消澤,而不可以昭誋。在混冥之中,不可諭於人。故舜不降席而天下治,桀不下陛而天下亂,蓋情甚乎叫呼也。無諸己,求諸人,古今未之聞也。

성인이 위에 있으면 백성이 그 다스림을 즐기고 아래에 있으면 백성이 그 뜻을 사모한다. 소인이 윗자리에 있으면 관문에서 자고 햇볕에 솜을 말림 같아 잠깐도 편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역」에 이르기를 「말을 타고 머뭇거리니 피눈물이 줄줄 흐른다」 하니 소인이 제 자리 아닌 데 처하면 오래갈 수 없음을 말한다. 물건에 쓰이지 않는 것이 없으니 천웅과 오훼는 약의 흉한 독이나 좋은 의원은 사람을 살리고 난쟁이와 북 치는 악사는 사람 가운데 곤궁하고 위로할 이나 임금은 악에 갖춘다. 이 때문에 성인은 그 자투리 재목을 제어하여 쓰이지 않는 바가 없다. 용사가 한 번 외치면 삼군이 다 물러남은 그 나옴이 정성되어서다. 그러므로 부르되 화답하지 않고 뜻하되 싣지 않으면 마음속에 반드시 합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순이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천하에 왕 노릇 함은 저에게서 구해서다. 그러므로 위가 까닭이 많으면 백성이 속임이 많으니 몸이 굽었는데 그림자가 곧음은 들은 적이 없다. 말이 이르지 못하는 바는 얼굴 모습이 이르고 얼굴 모습이 이르지 못하는 바는 느낌이 홀연히 이른다. 마음에 느끼고 슬기에 밝아 발하여 꼴을 이룸은 정의 지극함이다. 형세로 접할 수 있으나 밝게 깨우쳐 줄 수 없다. 융·적의 말은 다 달리게 할 수 있으나 혹 가깝고 혹 멀되 오직 조보만 그 힘을 다하게 하고 삼묘의 백성은 다 충성되고 미덥게 할 수 있으나 혹 어질고 혹 못나되 오직 당·우만 그 아름다움을 가지런히 한다. 반드시 전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중항무백이 손으로 범을 잡았으나 살릴 수 없었으니 힘은 넉넉하나 이김이 미칠 수 없어서다. 백 사람의 능함을 쓰면 백 사람의 힘을 얻고 천 사람의 사랑하는 바를 들면 천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비유하면 나무를 베어 그 밑동을 당기면 천 가지 만 잎이 따르지 않을 수 없음과 같다. 자애로운 아비가 자식을 사랑함은 갚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풀 수 없어서요 성인이 백성을 기름은 쓰임을 구해서가 아니라 성품이 그칠 수 없어서다. 불이 절로 뜨겁고 얼음이 절로 참과 같다. 무릇 무슨 닦음이 있겠는가! 그 힘을 믿고 그 공을 의지함에 이르러서는 배 안에서 불을 낸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군자는 시작을 보면 그 마침을 안다. 중매가 사람을 기려도 덕으로 여기는 이가 없고 품꾼을 취하여 억지로 먹여도 사랑하는 이가 없다. 비록 친아비 자애로운 어미라도 이보다 더하지 않으나 함이 있으면 은혜가 잇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는 이를 보냄은 오는 이를 맞는 까닭이 아니요 죽은 이에게 베풂은 오로지 산 이를 위함이 아니다. 정성이 저에게서 나오면 움직이는 바가 멀다. 비단 수가 사당에 오름은 문을 귀히 여김이요 규장이 앞에 있음은 바탕을 숭상함이다. 문이 바탕을 이기지 않음을 군자라 한다. 그러므로 한 해 내내 수레를 만들어도 세 치 굴대 빗장이 없으면 달릴 수 없고 장인이 문짝을 깎아도 한 자 빗장이 없으면 닫아 감출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의 행실은 그 맺는 바에 있다. 마음의 정한 것은 신령히 화할 수 있으나 남을 이끌 수 없고 눈의 정한 것은 녹여 윤택하게 할 수 있으나 밝게 깨우쳐 줄 수 없다. 섞여 어두운 가운데 있어 남에게 깨우칠 수 없다. 그러므로 순이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천하가 다스려지고 걸이 섬돌을 내려가지 않고 천하가 어지러워짐은 정이 외침보다 심해서다. 저에게 없는데 남에게 구함은 고금에 들은 적이 없다.

同言而民信,信在言前也;同令而民化,誠在令外也。聖人在上,民遷而化,情以先之也。動于上,不應於下者,情與令殊也。故《易》曰:「亢龍有悔。」三月嬰兒,未知利害也,而慈母之愛諭焉者,情也。故言之用者,昭昭乎小哉!不言之用者,曠曠乎大哉!身君子之言,信也;中君子之意,忠也。忠信形于內,感動應於外,故禹執干戚,舞於兩階之間,而三苗服。鷹翔川,魚鱉沈,飛鳥揚,必遠害也。子之死父也,臣之死君也,世有行之者矣,非出死以要名也,恩心之藏於中,而不能違其難也。故人之甘甘,非正為蹠也,而蹠焉往。君子之慘怛,非正為偽形也,諭乎人心。非從外入,自中出者也。義正乎君,仁親乎父。故君之於臣也,能死生之,不能使為苟簡易;父之于子也,能發起之,不能使無憂尋。故義勝君,仁勝父,則君尊而臣忠,父慈而子孝。聖人在上,化育如神。太上曰:「我其性與!」其次曰:「微彼,其如此乎!」故《詩》曰:「執轡如組。」《易》曰:「含章可貞。」運于近,成文於遠。

같은 말인데 백성이 믿음은 믿음이 말 앞에 있어서요 같은 명령인데 백성이 교화됨은 정성이 명령 밖에 있어서다. 성인이 위에 있으면 백성이 옮겨 교화됨은 정으로 앞세워서다. 위에서 움직이되 아래에서 응하지 않음은 정과 명령이 달라서다. 그러므로 「역」에 이르기를 「높이 오른 용은 뉘우침이 있다」 하였다. 석 달 된 아기는 이해를 알지 못하나 자애로운 어미의 사랑이 깨우쳐짐은 정이다. 그러므로 말의 쓰임은 밝고 밝으나 작도다! 말하지 않음의 쓰임은 넓고 넓어 크도다! 군자의 말을 몸소 함은 믿음이요 군자의 뜻에 맞음은 충성이다. 충성과 믿음이 안에 꼴 지어 감동이 밖에 응하므로 우가 방패와 도끼를 잡고 두 섬돌 사이에서 춤추니 삼묘가 복종하였다. 매가 내에 날면 고기와 자라가 잠기고 나는 새가 오름은 반드시 해를 멀리해서다. 자식이 아비를 위해 죽고 신하가 임금을 위해 죽음은 세상에 행한 이가 있으나 죽음을 내어 이름을 구함이 아니라 은혜의 마음이 안에 감추어져 그 어려움을 어길 수 없어서다. 그러므로 사람이 단것을 달게 여김은 바로 발꿈치를 위해서가 아닌데 발꿈치가 간다. 군자의 참담함은 바로 거짓 꼴을 위해서가 아니나 사람 마음에 깨우쳐진다. 밖에서 들어옴이 아니라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다. 의는 임금보다 바르고 인은 아비보다 친하다. 그러므로 임금이 신하에 대하여 죽이고 살릴 수 있으나 구차하고 간략하게 할 수 없고 아비가 자식에 대하여 일으킬 수 있으나 근심을 없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의가 임금을 이기고 인이 아비를 이기면 임금이 높고 신하가 충성되며 아비가 자애롭고 자식이 효도한다. 성인이 위에 있으면 교화하고 기름이 신 같다. 가장 위는 말하기를 「내 성품일진저!」 하고 그다음은 말하기를 「저이가 아니면 어찌 이러하랴!」 한다. 그러므로 「시」에 이르기를 「고삐 잡음이 끈 짜듯 하네」 하고 「역」에 이르기를 「무늬를 머금으니 곧을 만하다」 하니 가까움에서 운행하여 멂에 문을 이룬다.

夫察所夜行,周公慚乎景,故君子慎其獨也。釋近斯遠,塞矣。聞善易,以正身難。夫子見禾之三變也,滔滔然曰:「狐向丘而死,我其首禾乎!」故君子見善則痛其身焉。身苟正,懷遠易矣。故《詩》曰:「弗躬弗親,庶民弗信。」小人之從事也,曰苟得,君子曰苟義。所求者同,所期者異乎!擊舟水中,魚沈而鳥揚,同聞而殊事,其情一也。僖負羈以壺餐表其閭。趙宣孟以束脯免其軀,禮不隆,而德有餘,仁心之感恩接而憯怛生。故其入人深。俱之叫呼也,在家老則為恩厚,其在責人則生爭鬥。故曰:兵莫憯于意志,莫邪為下;寇莫大於陰陽,枹鼓為小。聖人為善,非以求名,而名從之。名不與利期,而利歸之。故人之憂喜,非為蹗,蹗焉往生也。故至人不容。故若眯而撫,若跌而據。聖人之為治,漠然不見賢焉,終而後知其可大也。若日之行,騏驥不能與之爭遠。

무릇 밤에 다닌 바를 살펴 주공은 그림자에 부끄러워하였으므로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간다. 가까움을 놓고 멂을 이르면 막힌다. 착함을 듣기는 쉬우나 몸을 바르게 하기는 어렵다. 부자가 벼의 세 번 변함을 보고 도도히 말하였다. 「여우도 언덕을 향해 죽는데 내 벼에 머리를 둘까!」 그러므로 군자는 착함을 보면 그 몸에 아프게 여긴다. 몸이 진실로 바르면 먼 이를 품기 쉽다. 그러므로 「시」에 이르기를 「몸소 하지 않고 친히 하지 않으면 서민이 믿지 않네」 하였다. 소인이 일함은 말하기를 구차히 얻음이라 하고 군자는 말하기를 구차히 의라 한다. 구하는 바는 같으나 기약하는 바가 다르구나! 물 가운데서 배를 치면 고기가 잠기고 새가 오르니 같이 듣되 일을 달리하나 그 정은 하나다. 희부기는 병에 담은 밥으로 그 마을에 표하였다. 조선맹은 묶은 포로 그 몸을 면하였으니 예가 성대하지 않으나 덕에 남음이 있고 어진 마음이 은혜에 느껴 이어져 참담함이 난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 들어감이 깊다. 같은 외침이라도 집안 어른에게 있으면 은혜가 두터움이 되고 그 남을 꾸짖음에 있으면 다툼이 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병기에 뜻보다 참혹한 것이 없으니 막야가 아래가 되고 도적에 음양보다 큰 것이 없으니 북채와 북이 작다 한다. 성인이 착함을 함은 이름을 구해서가 아닌데 이름이 따른다. 이름은 이익과 기약하지 않으나 이익이 돌아온다. 그러므로 사람의 근심과 기쁨은 발꿈치를 위해서가 아닌데 발꿈치가 가서 난다. 그러므로 지극한 사람은 꾸미지 않는다. 그러므로 눈에 티 들면 어루만지고 넘어지면 짚음과 같다. 성인이 다스림은 막연히 어짊을 보이지 않으나 마친 뒤에 그 큼을 알 수 있다. 해의 다님 같아 기기도 더불어 멂을 다툴 수 없다.

今夫夜有求,與瞽師併,東方開,斯照矣。動而有益,則損隨之。故《易》曰:「剝之不可遂盡也。故受之以複。」積薄為厚,積卑為高,故君子日孳孳以成輝,小人日怏怏以至辱。其消息也,離朱弗能見也。文王聞善如不及,宿不善如不祥。非為日不足也,其憂尋推之也。故《詩》曰:「周雖舊邦,其命維新。」懷情抱質,天弗能殺,地弗能霾也。聲揚天地之間,配日月之光,甘樂之者也。苟向善,雖過無怨;苟不向善,雖忠來患。故怨人不如自怨,求諸人不如求諸己得也。聲自召也,貌自示也,名自命也,文自官也,無非己者。操銳以刺,操刃以擊,何怨乎人?故管子文錦也,雖醜登廟;子產練染也,美而不尊。虛而能滿,淡而有味,被褐懷玉者。故兩心不可以得一人,一心可以得百人。男子樹蘭,美而不芳,繼子得食,肥而不澤,情不相與往來也。

이제 무릇 밤에 구함이 있으면 소경 악사와 나란하나 동방이 열리면 비춘다. 움직여 더함이 있으면 덞이 따른다. 그러므로 「역」에 이르기를 「박은 마침내 다할 수 없으므로 복으로 받는다」 하였다. 얇음을 쌓아 두터움이 되고 낮음을 쌓아 높음이 되므로 군자는 날마다 부지런하여 빛남을 이루고 소인은 날마다 원망하여 욕됨에 이른다. 그 사라지고 자람은 이주도 볼 수 없다. 문왕은 착함을 듣기를 미치지 못할 듯하고 착하지 않음에 묵기를 상서롭지 않은 듯하였다. 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근심이 밀어서다. 그러므로 「시」에 이르기를 「주가 비록 옛 나라나 그 명이 새롭네」 하였다. 정을 품고 바탕을 안으면 하늘이 죽일 수 없고 땅이 묻을 수 없다. 소리가 하늘과 땅 사이에 드날리고 해와 달의 빛에 짝함은 달게 즐긴 이다. 진실로 착함을 향하면 비록 허물이 있어도 원망이 없고 진실로 착함을 향하지 않으면 비록 충성하여도 근심이 온다. 그러므로 남을 원망함은 스스로 원망함만 못하고 남에게 구함은 저에게 구하여 얻음만 못하다. 소리는 스스로 부르고 모습은 스스로 보이며 이름은 스스로 이름하고 문은 스스로 벼슬하니 저 아님이 없다. 날카로운 것을 잡고 찌르고 칼을 잡고 치니 어찌 남을 원망하랴. 그러므로 관자는 무늬 비단이라 비록 추하여도 사당에 오르고 자산은 익힌 물들임이라 아름다우나 높지 않다. 비되 채울 수 있고 담담하되 맛이 있음은 갈옷을 입고 옥을 품은 이다. 그러므로 두 마음으로는 한 사람도 얻을 수 없고 한마음으로는 백 사람을 얻을 수 있다. 남자가 난초를 심으면 아름답되 향기롭지 않고 의붓자식이 먹을 것을 얻으면 살찌되 윤택하지 않으니 정이 서로 오가지 않아서다.

生所假也,死所歸也。故宏演直仁而立死,王子閭張掖而受刃,不以所托害所歸也。故世治則以義衛身,世亂則以身衛義。死之日,行之終也,故君子慎一用之。無勇者,非先懾也,難至而失其守也;貪婪者,非先欲也,見利而忘其害也。虞公見垂棘之璧,而不知虢禍之及己也。故至道之人,不可遏奪也。人之欲榮也,以為己也,于彼何益?聖人之行義也,其憂尋出乎中也,於己何以利?故帝王者多矣,而三王獨稱;貧賤者多矣,而伯夷獨舉。以貴為聖乎?則聖者眾矣;以賤為仁乎?則賤者多矣。何聖人之寡也。獨專之意樂哉!忽乎日滔滔以自新,忘老之及己也。始乎叔季,歸乎伯孟,必此積也。不身遁,斯亦不遁人。故若行獨梁,不為無人不兢其容。故使人信己者易,而蒙衣自信者難。情先動,動無不得;無不得,則無莙,發莙而後快。故唐、虞之舉錯也,非以偕情也,快己而天下治;桀、紂非正賊之也,快己而百事廢。喜憎議而治亂分矣。

삶은 빌린 바요 죽음은 돌아가는 바다. 그러므로 굉연은 곧게 어질어 서서 죽었고 왕자 려는 겨드랑이를 벌리고 칼날을 받았으니 맡긴 바로 돌아가는 바를 해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상이 다스려지면 의로 몸을 지키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몸으로 의를 지킨다. 죽는 날은 행실의 마침이므로 군자는 삼가 한 번 쓴다. 용맹 없는 이는 먼저 겁낸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이르러 그 지킴을 잃음이요 탐하는 이는 먼저 바란 것이 아니라 이익을 보고 그 해를 잊음이다. 우공은 수극의 벽옥을 보고 괵의 화가 저에게 미침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지극한 도의 사람은 막고 빼앗을 수 없다. 사람이 영화를 바람은 저를 위해서니 저에게 무슨 이익이랴. 성인이 의를 행함은 그 근심이 가운데서 나오니 저에게 무엇으로 이롭겠는가. 그러므로 제왕이 많으나 삼왕만 일컬어지고 가난하고 천한 이가 많으나 백이만 들린다. 귀함으로 성인이라 하는가. 그러면 성인이 많다. 천함으로 어질다 하는가. 그러면 천한 이가 많다. 어찌 성인이 적은가. 홀로 오로지하는 뜻이 즐겁도다! 홀연히 날마다 도도히 스스로 새로워 늙음이 저에게 미침을 잊는다. 막내에서 비롯하여 맏이에 돌아감은 반드시 이 쌓음이다. 몸을 속이지 않으면 이 또한 남을 속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나무다리를 감과 같아 사람이 없다고 그 모습을 삼가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남이 저를 믿게 함은 쉬우나 옷을 뒤집어쓰고 스스로 믿음은 어렵다. 정이 먼저 움직이면 움직여 얻지 못함이 없고 얻지 못함이 없으면 근심이 없으니 근심을 발한 뒤에 시원하다. 그러므로 당·우의 거동은 정을 함께해서가 아니라 저를 시원하게 하여 천하가 다스려졌고 걸·주는 바로 해친 것이 아니라 저를 시원하게 하여 온갖 일이 폐하였다. 기쁨과 미움을 의논하니 다스림과 어지러움이 나뉜다.

聖人之行,無所合,無所離,譬若鼓,無所與調,無所不比。絲管金石,小大修短有敘,異聲而和;君臣上下,官職有差,殊事而調。夫織者日以進,耕者日以卻,事相反,成功一也。申喜聞乞人之歌而悲,出而視之,其母也。艾陵之戰也,夫差曰:「夷聲陽,句吳其庶乎!」同是聲而取信焉異。有諸情也。故心哀而歌不樂,心樂而哭不哀。夫子曰:「弦則是也,其聲非也。」文者,所以接物也,情系於中而欲發外者也。以文滅情,則失情;以情滅文,則失文。文情理通,則鳳麟極矣。言至德之懷遠也。輸子陽謂其子曰:「良工漸乎矩鑿之中。」矩鑿之中,固無物而不周。聖王以治民,造父以治馬,醫駱以治病。同材而各自取焉。上意而民載,誠中者也。未言而信,弗召而至,或先之也,忣於不己知者,不自知也。矜怛生於不足,華誣生於矜。誠中之人,樂而不忣,如鴞好聲,熊之好經。夫有誰為矜。春女思,秋士悲,而知物化矣。號而哭,嘰而哀,而知聲動矣;容貌顏色,理詘𠈐倨佝,徇知情偽矣。故聖人栗栗乎其內,而至乎至極矣。

성인의 행실은 합하는 바도 없고 떠나는 바도 없으니 비유하면 북 같아 더불어 고르는 바가 없으나 어울리지 않음이 없다. 실과 관과 쇠와 돌은 크고 작고 길고 짧음에 차례가 있어 소리를 달리하되 화하고 임금과 신하와 위와 아래는 벼슬과 직책에 차이가 있어 일을 달리하되 고르다. 무릇 짜는 이는 날마다 나아가고 가는 이는 날마다 물러나 일이 서로 반대이나 공을 이룸은 하나다. 신희가 거지의 노래를 듣고 슬퍼하여 나가 보니 그 어미였다. 애릉의 싸움에 부차가 말하였다. 「이의 소리가 양이니 구오는 거의 되겠구나!」 같은 소리인데 믿음을 취함이 다르다. 정에 있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슬프면 노래하여도 즐겁지 않고 마음이 즐거우면 곡하여도 슬프지 않다. 부자가 말하였다. 「줄은 옳으나 그 소리는 그르다.」 문은 물건을 접하는 까닭이니 정이 안에 매여 밖에 발하려는 것이다. 문으로 정을 없애면 정을 잃고 정으로 문을 없애면 문을 잃는다. 문과 정이 이치로 통하면 봉황과 기린이 지극히 온다. 지극한 덕이 먼 이를 품음을 말한다. 수자양이 그 아들에게 말하였다. 「좋은 공인은 곱자와 끌의 가운데에 젖는다.」 곱자와 끌의 가운데는 본디 물건마다 두루 하지 않음이 없다. 성왕은 백성을 다스리고 조보는 말을 다스리며 의락은 병을 다스린다. 같은 재료에서 저마다 스스로 취한다. 위가 뜻하면 백성이 싣는 것은 가운데가 정성되어서다. 말하지 않아도 믿어지고 부르지 않아도 이름은 혹 앞선 것이 있어서요 저를 알아주지 않음에 급함은 스스로 알지 못해서다. 뽐내고 애태움은 모자람에서 나고 화려한 거짓은 뽐냄에서 난다. 가운데가 정성된 사람은 즐거워하되 급하지 않으니 올빼미가 소리를 좋아하고 곰이 매달리기를 좋아함 같다. 무릇 누가 뽐냄이 있으랴. 봄 여인이 그리워하고 가을 선비가 슬퍼하니 물건의 변화를 안다. 부르짖어 곡하고 흐느껴 슬퍼하니 소리의 움직임을 알고 얼굴 모습과 낯빛과 결과 굽히고 거만하고 구부림으로 정의 참과 거짓을 두루 안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 안에서 조심조심하여 지극한 극에 이른다.

功名遂成,天也;循理受順,人也。太公望、周公旦,天非為武王造之也;崇侯、惡來,天非為紂生之也;有其世,有其人也。教本乎君子,小人被其澤;利本乎小人,君子享其功。昔東戶季子之世,道路不拾遺,耒耜餘糧宿諸畮首,使君子小人各得其宜也。故一人有慶,兆民賴之。凡高者貴其左,故下之于上曰左之,臣辭也;下者貴其右,故上之於下曰右之,君讓也。故上左遷,則失其所尊也;臣右還,則失其所貴矣。小快害道,斯須害儀。子產騰辭,獄繁而無邪,失諸情者,則塞於辭矣。成國之道,工無偽事,農無遺力,士無隱行,官無失法。譬若設網者,引其綱而萬目開矣。舜、禹不再受命,堯、舜傳大焉,先形乎小也。刑于寡妻,至於兄弟,禪于家國,而天下從風。故戎兵以大知小,人以小知大。君子之道,近而不可以至,卑而不可以登,無載焉而不勝,大而章,遠而隆,知此之道,不可求於人,斯得諸己也。釋己而求諸人,去之遠矣。

공명이 마침내 이루어짐은 하늘이요 이치를 따라 순함을 받음은 사람이다. 태공망·주공단은 하늘이 무왕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요 숭후·오래는 하늘이 주를 위해 낳은 것이 아니라 그 세상이 있고 그 사람이 있었다. 가르침은 군자에 근본하되 소인이 그 은택을 입고 이익은 소인에 근본하되 군자가 그 공을 누린다. 옛날 동호계자의 세상에는 길에서 떨어진 것을 줍지 않고 쟁기와 남은 양식을 이랑 머리에 묵혀 두어 군자와 소인이 저마다 그 마땅함을 얻게 하였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 경사가 있으면 만민이 의지한다. 무릇 높은 이는 그 왼쪽을 귀히 여기므로 아래가 위에 대하여 「좌지」라 함은 신하의 말이요 낮은 이는 그 오른쪽을 귀히 여기므로 위가 아래에 대하여 「우지」라 함은 임금의 사양이다. 그러므로 위가 왼쪽으로 옮기면 그 높은 바를 잃고 신하가 오른쪽으로 돌면 그 귀한 바를 잃는다. 작은 시원함이 도를 해치고 잠깐이 위의를 해친다. 자산이 말을 날려 옥사가 번거로우나 사악함이 없었으니 정에서 잃은 이는 말에 막힌다. 나라를 이루는 도는 공인에 거짓 일이 없고 농부에 남긴 힘이 없으며 선비에 숨긴 행실이 없고 벼슬에 잃은 법이 없다. 비유하면 그물을 치는 이가 그 벼리를 당기면 만 눈이 열림과 같다. 순·우는 두 번 명을 받지 않았고 요·순이 큰 것을 전함은 먼저 작은 것에 꼴 지어서다. 아내에게 본이 되고 형제에 이르러 집과 나라에 선양하니 천하가 바람처럼 따랐다. 그러므로 군사는 큼으로 작음을 알고 사람은 작음으로 큼을 안다. 군자의 도는 가까우나 이를 수 없고 낮으나 오를 수 없으며 실음이 없어도 이기지 못함이 없고 크되 빛나며 멀되 높으니 이 도를 앎은 남에게 구할 수 없고 저에게서 얻는다. 저를 놓고 남에게 구하면 떠남이 멀다.

君子者,樂有餘而名不足,小人樂不足而名有餘。觀于有餘不足之相去,昭然遠矣。含而弗吐,在情而不萌者,未之聞也。君子思義而不慮利,小人貪利而不顧義。子曰:「鈞之哭也,曰:『子予奈何兮乘我何』其哀則同,其所以哀則異。」故哀樂之襲人情也深矣。鑿地漂池,非止以勞苦民也。各從其蹠而亂生焉。其載情一也,施人則異矣。故唐、虞日孳孳以致于王,桀、紂日怏怏以致於死,不知後世之譏己也。凡人情,說其所苦即樂,失其所樂則哀。故知生之樂,必知死之哀。有義者不可欺以利,有勇者不可劫以懼,如饑渴者不可欺以虛器也。人多欲虧義,多憂害智,多懼害勇。嫚生乎小人,蠻夷皆能之;善生乎君子,誘然與日月爭光,天下弗能遏奪。故治國樂其所以存,亡國亦樂其所以亡也。金錫不消釋則不流刑,上憂尋不誠則不法民。憂尋不在民,則是絕民之系也。君反本,而民系固也。至德小節備,大節舉。齊桓舉而不密,晉文密而不舉。晉文得之乎閨內,失之乎境外;齊桓失之乎閨內,而得之乎本朝。

군자는 즐거움이 남고 이름이 모자라며 소인은 즐거움이 모자라고 이름이 남는다. 남음과 모자람의 서로 떨어짐을 보면 뚜렷이 멀다. 머금고 토하지 않으며 정에 있되 싹트지 않음은 들은 적이 없다. 군자는 의를 생각하고 이익을 생각하지 않으며 소인은 이익을 탐하고 의를 돌아보지 않는다. 자가 말하였다. 「같은 곡이라도 「그대는 나를 어찌하려 하는가」 하니 그 슬픔은 같으나 그 슬퍼하는 까닭은 다르다.」 그러므로 슬픔과 즐거움이 사람 정에 스밈이 깊다. 땅을 파고 못을 만듦은 백성을 수고롭게 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그 발꿈치를 따라 어지러움이 난다. 그 정을 실음은 하나이나 남에게 베풀면 다르다. 그러므로 당·우는 날마다 부지런하여 왕에 이르고 걸·주는 날마다 원망하여 죽음에 이르렀으니 후세가 저를 나무랄 줄 알지 못하였다. 무릇 사람의 정은 그 괴로운 바를 기뻐하면 곧 즐겁고 그 즐거운 바를 잃으면 슬프다. 그러므로 삶의 즐거움을 알면 반드시 죽음의 슬픔을 안다. 의 있는 이는 이익으로 속일 수 없고 용맹 있는 이는 두려움으로 겁줄 수 없으니 주리고 목마른 이를 빈 그릇으로 속일 수 없음 같다. 사람이 바람이 많으면 의를 이지러뜨리고 근심이 많으면 슬기를 해치며 두려움이 많으면 용맹을 해친다. 게으름은 소인에게서 나니 만이도 다 할 수 있고 착함은 군자에게서 나니 빛나 해와 달과 빛을 다투어 천하가 막고 빼앗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다스려지는 나라는 그 남는 까닭을 즐기고 망하는 나라도 그 망하는 까닭을 즐긴다. 쇠와 주석은 녹지 않으면 틀에 흐르지 않고 위가 근심함이 정성되지 않으면 백성이 본받지 않는다. 근심이 백성에게 있지 않으면 이는 백성의 매임을 끊음이다. 임금이 근본에 돌이키면 백성의 매임이 굳다. 지극한 덕은 작은 절개가 갖추어지고 큰 절개가 들린다. 제 환공은 들되 치밀하지 않았고 진 문공은 치밀하되 들지 않았다. 진 문공은 규방 안에서 얻고 지경 밖에서 잃었으며 제 환공은 규방 안에서 잃고 본조에서 얻었다.

水下流而廣大,君下臣而聰明。君不與臣爭功,而治道通矣。管夷吾、百里奚經而成之,齊桓、秦穆受而聽之。照惑者,以東為西,惑也;見日而寤矣。衛武侯謂其臣曰:「小子無謂我老而羸我,有過必謁之。」是武侯如弗羸之必得羸。故老而弗舍,通乎存亡之論者也。人無能作也,有能為也;有能為也,而無能成也。人之為,天成之。終身為善,非天不行;終身為不善,非天不亡。故善否,我也;禍福,非我也。故君子順其在己者而已矣。性者,所受於天也;命者,所遭于時也。有其材,不遇其世,天也。太公何力,比干何罪,循性而行指,或害或利。求之有道,得之在命。故君子能為善,而不能必其得福;不忍為非,而未能必免其禍。君,根本也;臣,枝葉也。根本不美,枝葉茂者,未之聞也。有道之世,以人與國;無道之世,以國與人。堯王天下而憂不解,授舜而憂釋。憂而守之,而樂與賢終,不私其利矣。

물은 아래로 흘러 넓고 크며 임금은 신하에게 낮추어 총명하다. 임금이 신하와 공을 다투지 않으면 다스리는 도가 통한다. 관이오·백리해가 경영하여 이루고 제 환공·진 목공이 받아 들었다. 홀린 이를 비추면 동을 서로 삼음은 홀림이니 해를 보면 깨어난다. 위 무후가 그 신하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나를 늙었다 하여 내치지 말라.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아뢰라.」 이는 무후가 내치지 않음과 같이 반드시 내침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늙어도 버리지 않음은 남고 망하는 논에 통한 이다. 사람은 지을 수 없으나 할 수는 있고 할 수는 있으나 이룰 수는 없다. 사람이 함은 하늘이 이룬다. 종신토록 착함을 하여도 하늘이 아니면 행해지지 않고 종신토록 착하지 않음을 하여도 하늘이 아니면 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착하고 아님은 나요 화와 복은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저에게 있는 것을 따를 뿐이다. 성품은 하늘에서 받은 바요 명은 때에 만나는 바다. 그 재주가 있어도 그 세상을 만나지 못함은 하늘이다. 태공이 무슨 힘이며 비간이 무슨 죄인가. 성품을 따라 가리킴을 행하되 혹 해롭고 혹 이롭다. 구함에 도가 있고 얻음은 명에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착함을 할 수 있으나 그 복 얻음을 반드시 할 수 없고 그름을 차마 하지 않으나 그 화를 반드시 면할 수 없다. 임금은 뿌리요 신하는 가지와 잎이다. 뿌리가 아름답지 않은데 가지와 잎이 무성함은 들은 적이 없다. 도 있는 세상은 사람으로 나라에 주고 도 없는 세상은 나라로 사람에게 준다. 요가 천하에 왕 노릇 하며 근심이 풀리지 않다가 순에게 주고 근심이 풀렸다. 근심하며 지키다가 즐거이 어진 이와 마쳤으니 그 이로움을 사사로이 하지 않았다.

凡萬物有所施之,無小不可;為無所用之,碧瑜糞土也。人之情,於害之中爭取小焉,於利之中爭取大焉。故同味而嗜厚膊者,必其甘之者也;同師而超群者,必其樂之者也。弗甘弗樂,而能為表者,未之聞也。君子時則進,得之以義,何幸之有!不時則退,讓之以義,何不幸之有!故伯夷餓死首陽之下,猶不自悔,棄其所賤,得其所貴也。福之萌也綿綿,禍之生也分分。禍福之始萌微,故民嫚之。唯聖人見其始而知其終。故傳曰:「魯酒薄而邯鄲圍,羊羹不斟而宋國危。」明主之賞罰,非以為己也,以為國也。適於己而無功于國者,不施賞焉;逆于己便於國者,不加罰焉。故楚莊謂共雍曰:「有德者受吾爵祿,有功者受吾田宅。是二者,女無一焉,吾無以與女。」可謂不逾於理乎!其謝之也,猶未之莫與。周政至,殷政善,夏政行。行政善,善未必至也。至至之人,不慕乎行,不慚乎善。含德履道,而上下相樂也,不知其所由然。有國者多矣,而齊桓、晉文獨名;泰山之上有七十壇焉,而三王獨道。君不求諸臣,臣不假之君,修近彌遠,而後世稱其大。不越鄰而成章,而莫能至焉。故孝己之禮可為也,而莫能奪之名也。必不得其所懷也。

무릇 만물은 베풀 데가 있으면 작아도 안 될 것이 없고 쓸 데가 없으면 벽옥도 똥과 흙이다. 사람의 정은 해 가운데서 작은 것을 다투어 취하고 이익 가운데서 큰 것을 다투어 취한다. 그러므로 같은 맛인데 두터운 포를 즐기는 이는 반드시 그것을 달게 여기는 이요 같은 스승인데 무리를 넘는 이는 반드시 그것을 즐기는 이다. 달지 않고 즐겁지 않으면서 표가 될 수 있는 이는 들은 적이 없다. 군자는 때이면 나아가되 의로 얻으니 무슨 요행이 있으며 때가 아니면 물러나되 의로 사양하니 무슨 불행이 있으랴! 그러므로 백이는 수양산 아래서 주려 죽어도 오히려 스스로 뉘우치지 않았으니 그 천히 여기는 바를 버리고 그 귀히 여기는 바를 얻어서다. 복의 싹틈은 가늘고 가늘며 화의 남은 어지럽고 어지럽다. 화와 복의 처음 싹틈이 미세하므로 백성이 게을리한다. 오직 성인만 그 시작을 보고 그 마침을 안다. 그러므로 전에 이르기를 「노나라 술이 얇아 한단이 에워싸이고 양 국을 뜨지 않아 송나라가 위태하였다」 하였다. 밝은 임금의 상벌은 저를 위함이 아니라 나라를 위함이다. 저에게 맞아도 나라에 공이 없으면 상을 베풀지 않고 저에게 거슬려도 나라에 편하면 벌을 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초 장왕이 공옹에게 말하였다. 「덕 있는 이는 내 작위와 녹을 받고 공 있는 이는 내 밭과 집을 받는다. 이 둘에 그대는 하나도 없으니 내 그대에게 줄 것이 없다.」 이치를 넘지 않았다 할 만하다! 그 사양함이 오히려 주지 않음만 못하였다. 주나라 정사는 지극하고 은나라 정사는 착하며 하나라 정사는 행해졌다. 행해진 정사는 착하나 착함이 반드시 지극하지는 않다. 지극하고 지극한 사람은 행함을 사모하지 않고 착함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덕을 머금고 도를 밟아 위와 아래가 서로 즐기니 그 말미암아 그러한 바를 알지 못한다. 나라를 가진 이가 많으나 제 환공·진 문공만 이름나고 태산 위에 일흔 단이 있으나 삼왕만 말해진다. 임금이 신하에게 구하지 않고 신하가 임금에게 빌리지 않으며 가까움을 닦아 멀리 가득하니 후세가 그 큼을 일컫는다. 이웃을 넘지 않고 문장을 이루니 이를 수 있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효기의 예는 할 수 있으나 그 이름을 빼앗을 수 있는 이가 없다. 반드시 그 품은 바를 얻지 못해서다.

義載乎宜之謂君子,宜遺乎義之謂小人。通智得而不勞,其次勞而不病,其下病而不勞。古人味而弗貪也,今人貪而弗味。歌之修其音也,音之不足於其美者也。金石絲竹,助而奏之,猶未足以至於極也。人能尊道行義,喜怒取予,欲如草之從風。召公桑蠶耕種之時,馳獄出拘,使百姓皆得反業修職。文王辭千里之地,而請去炮烙之刑。故聖人之舉事也,進退不失時,若夏就絺綌,上車授綏之謂也。老子學商容,見舌而知守柔矣;列子學壺子,觀景柱而知持後矣。故聖人不為物先,而常制之,其類若積薪樵,後者在上。人以義愛,以黨群,以群強。是故德之所施者博,則威之所行者遠;義之所加者淺,則武之所制者小矣。鐸以聲自毀,膏濁以明自鑠,虎豹之文來射,猿狖之捷來措。故子路以勇死,萇弘以智困。能以智知,而未能以智不知也。故行險者不得履繩,出林者不得直道,夜行瞑目而前其手,事有所至,而明有所害。人能貫冥冥入於昭昭,可與言至矣。鵲巢知風之所起,獺穴知水之高下,暉目知晏,陰諧知雨,為是謂人智不如鳥獸,則不然。故通於一伎,察於一辭,可與曲說,未可與廣應也。甯戚擊牛角而歌,桓公舉以大政;雍門子以哭見孟嘗君,涕流沾纓。歌哭,眾人之所能為也,一發聲,入人耳,感人心,情之至者也。故唐、虞之法可效也。其諭人心,不可及也。簡公以懦殺,子陽以猛劫,皆不得其道者也。故歌而不比於律者,其清濁一也;繩之外與繩之內,皆失直者也。紂為象箸而箕子嘰,魯以偶人葬而孔子歎,見所始則知所終。故水出於山,入於海;稼生乎野,而藏乎倉。聖人見其所生,則知其所歸矣。

의가 마땅함에 실림을 군자라 하고 마땅함이 의를 버림을 소인이라 한다. 슬기에 통한 이는 얻되 수고롭지 않고 그다음은 수고롭되 병들지 않으며 그 아래는 병들되 수고롭지 않다. 옛사람은 맛보되 탐하지 않았고 지금 사람은 탐하되 맛보지 않는다. 노래가 그 음을 닦음은 음이 그 아름다움에 넉넉하지 않아서다. 쇠와 돌과 실과 대로 도와 연주하여도 오히려 극에 이르기에 넉넉하지 않다. 사람이 도를 높이고 의를 행할 수 있으면 기쁨과 노함과 취함과 줌과 바람이 풀이 바람을 따르듯 한다. 소공은 뽕 치고 누에 치고 갈고 심는 때에 옥사를 달려 갇힌 이를 내어 백성이 다 생업에 돌아가 직책을 닦게 하였다. 문왕은 천 리 땅을 사양하고 포락의 형벌을 없애기를 청하였다. 그러므로 성인이 일을 듦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때를 잃지 않음은 여름에 갈포 옷을 입고 수레에 올라 끈을 줌과 같음을 이른다. 노자는 상용에게 배워 혀를 보고 부드러움 지킴을 알았고 열자는 호자에게 배워 그림자 기둥을 보고 뒤에 처함을 알았다. 그러므로 성인은 물건에 앞서지 않되 늘 제어하니 그 무리가 섶을 쌓음 같아 뒤의 것이 위에 있다. 사람은 의로 사랑하고 무리로 모이며 무리로 강하다. 이 때문에 덕이 베풀어지는 바가 넓으면 위엄이 행해지는 바가 멀고 의가 더해지는 바가 얕으면 무력이 제어하는 바가 작다. 방울은 소리로 스스로 헐고 기름은 밝음으로 스스로 녹으며 범과 표범의 무늬는 쏨을 오게 하고 원숭이의 빠름은 잡힘을 오게 한다. 그러므로 자로는 용맹으로 죽고 장홍은 슬기로 곤하였다. 슬기로 알 수는 있으나 슬기로 알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험한 데를 가는 이는 먹줄을 밟을 수 없고 숲을 나서는 이는 곧은 길을 얻을 수 없으며 밤에 다니면 눈을 감고 손을 앞세우니 일에 이르는 바가 있으면 밝음에 해롭히는 바가 있다. 사람이 어둡고 어두움을 꿰뚫어 밝고 밝음에 들 수 있으면 더불어 지극함을 말할 수 있다. 까치 둥지는 바람이 이는 곳을 알고 수달 굴은 물의 높낮이를 알며 휘목은 갬을 알고 음해는 비를 아니 이로써 사람의 슬기가 새와 짐승만 못하다 하면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한 재주에 통하고 한 말에 살핌은 더불어 굽은 설을 할 수 있으나 널리 응함은 할 수 없다. 영척이 소뿔을 치며 노래하니 환공이 들어 큰 정사를 맡겼고 옹문자가 곡으로 맹상군을 뵈니 눈물이 흘러 갓끈을 적셨다. 노래와 곡은 뭇사람이 할 수 있는 바이나 한 번 소리를 내어 사람 귀에 들어 사람 마음을 느끼게 함은 정의 지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우의 법은 본받을 수 있다. 그 사람 마음을 깨우침은 미칠 수 없다. 간공은 나약함으로 죽고 자양은 사나움으로 겁탈당하였으니 다 그 도를 얻지 못한 이다. 그러므로 노래하되 율에 견주지 않으면 그 맑고 흐림이 한가지요 먹줄 밖과 먹줄 안은 다 곧음을 잃은 것이다. 주가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가 흐느꼈고 노나라가 나무 인형으로 장사하자 공자가 탄식하였으니 시작하는 바를 보고 마치는 바를 안 것이다. 그러므로 물은 산에서 나서 바다로 들고 곡식은 들에서 나서 곳간에 감춘다. 성인은 그 나는 바를 보고 그 돌아가는 바를 안다.

水濁者魚噞,令苛者民亂。城峭者必崩,岸青者必陀。故商鞅立法而支解,吳起刻削而車裂。治國譬若張瑟,大絃絚,則小絃絕矣。故急轡數策者,非千里之禦也。有聲之聲,不過百里;無聲之聲,施于四海。是故祿過其功者損,名過其實者蔽。情行合而名副之,禍福不虛至矣。身有醜夢,不勝正行;國有妖祥,不勝善政。是故前有軒冕之賞,不可以無功取也;後有斧鉞之禁,不可以無罪蒙也。素修正者,弗離道也。君子不謂小善不足為也而舍之,小善積而為大善;不謂小不善為無傷也而為之,小不善積而為大不善。是故積羽沈舟,群輕折軸。故君子禁于微。壹快不足以成善,積快而為德;壹恨不足以成非,積恨而成怨。故三代之稱,千歲之積譽也;桀、紂之謗,千歲之積毀也。

물이 흐리면 고기가 입을 벌리고 명령이 가혹하면 백성이 어지럽다. 성이 가파르면 반드시 무너지고 언덕이 가파르면 반드시 무너진다. 그러므로 상앙은 법을 세우고 사지가 찢겼고 오기는 깎아 내고 거열되었다. 나라 다스림은 비유하면 비파를 매김 같아 큰 줄을 팽팽히 하면 작은 줄이 끊어진다. 그러므로 고삐를 급히 하고 채찍을 자주 함은 천 리의 몰이가 아니다. 소리 있는 소리는 백 리를 넘지 못하나 소리 없는 소리는 사해에 베풀어진다. 이 때문에 녹이 그 공을 넘는 이는 덜리고 이름이 그 실을 넘는 이는 가려진다. 정과 행실이 합하여 이름이 걸맞으면 화와 복이 헛되이 이르지 않는다. 몸에 추한 꿈이 있어도 바른 행실을 이기지 못하고 나라에 요사한 조짐이 있어도 착한 정사를 이기지 못한다. 이 때문에 앞에 헌면의 상이 있어도 공 없이 취할 수 없고 뒤에 도끼의 금함이 있어도 죄 없이 입을 수 없다. 본디 바름을 닦은 이는 도를 떠나지 않는다. 군자는 작은 착함이 할 만하지 않다 하여 버리지 않으니 작은 착함이 쌓여 큰 착함이 되고 작은 착하지 않음이 해롭지 않다 하여 하지 않으니 작은 착하지 않음이 쌓여 큰 착하지 않음이 된다. 이 때문에 쌓인 깃이 배를 가라앉히고 뭇 가벼움이 굴대를 꺾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미세함에서 금한다. 한 번 시원함이 착함을 이루기에 넉넉하지 않으나 시원함을 쌓아 덕이 되고 한 번 한이 그름을 이루기에 넉넉하지 않으나 한을 쌓아 원망이 된다. 그러므로 삼대의 일컬음은 천 해 쌓인 기림이요 걸·주의 헐뜯음은 천 해 쌓인 헐뜯음이다.

天有四時,人有四用。何謂四用?視而形之,莫明於目;聽而精之,莫聰於耳;重而閉之,莫固於口;含而藏之,莫深於心。目見其形,耳聽其聲,口言其誠,而心致之精,則萬物之化鹹有極矣。地以德廣,君以德尊,上也;地以義廣,君以義尊,次也;地以強廣,君以強尊,下也。故粹者王,駁者霸,無一焉者亡。昔二皇鳳皇至於庭,三代至乎門,周室至乎澤。德彌粗,所至彌遠;德彌精,所至彌近。君子誠仁,施亦仁,不施亦仁;小人誠不仁,施亦不仁,不施亦不仁。善之由我,與其由人若,仁德之盛者也,故情勝欲者昌,欲勝情者亡。欲知天道,察其數;欲行地道,物其樹;欲知人道,從其欲。勿驚勿駭,萬物將自理;勿撓勿攖,萬物將自清。

하늘에 사철이 있고 사람에게 네 쓰임이 있다. 무엇을 네 쓰임이라 하는가. 보아 꼴 지음은 눈보다 밝은 것이 없고 들어 정밀히 함은 귀보다 총명한 것이 없으며 무겁게 닫음은 입보다 굳은 것이 없고 머금어 감춤은 마음보다 깊은 것이 없다. 눈이 그 꼴을 보고 귀가 그 소리를 들으며 입이 그 정성을 말하고 마음이 그 정밀함을 이르면 만물의 변화가 다 극이 있다. 땅이 덕으로 넓고 임금이 덕으로 높음은 위요 땅이 의로 넓고 임금이 의로 높음은 다음이요 땅이 강함으로 넓고 임금이 강함으로 높음은 아래다. 그러므로 순수한 이는 왕 노릇 하고 섞인 이는 패자가 되며 하나도 없는 이는 망한다. 옛날 이황 때 봉황이 뜰에 이르고 삼대에는 문에 이르며 주나라에는 못에 이르렀다. 덕이 거칠수록 이르는 바가 멀고 덕이 정밀할수록 이르는 바가 가깝다. 군자가 정성으로 어질면 베풀어도 어질고 베풀지 않아도 어질며 소인이 정성으로 어질지 않으면 베풀어도 어질지 않고 베풀지 않아도 어질지 않다. 착함이 나로 말미암음이 남으로 말미암음과 같음은 어진 덕의 성함이므로 정이 바람을 이기는 이는 창성하고 바람이 정을 이기는 이는 망한다. 하늘의 도를 알려면 그 수를 살피고 땅의 도를 행하려면 그 나무를 물으며 사람의 도를 알려면 그 바람을 따르라. 놀라게 하지 말고 겁주지 말면 만물이 절로 다스려질 것이요 흔들지 말고 건드리지 말면 만물이 절로 맑아질 것이다.

察一曲者,不可與言化;審一時者,不可與言大。日不知夜,月不知晝,日月為明而弗能兼也,唯天地能函之。能包天地,曰唯無形者也。驕溢之君無忠臣,口慧之人無必信。交拱之木,無把之枝;尋常之溝,無吞舟之魚。根淺則末短,本傷則枝枯。福生於無為,患生於多欲,害生於弗備,穢生於弗耨。聖人為善若恐不及,備禍若恐不免。蒙塵而欲毋眯,涉水而欲無濡,不可得也。是故知己者不怨人,知命者不怨天。福由己發,禍由己生。

한 굽이를 살핀 이는 더불어 변화를 말할 수 없고 한때를 살핀 이는 더불어 큼을 말할 수 없다. 해는 밤을 모르고 달은 낮을 모르니 해와 달이 밝음이 되나 겸할 수 없고 오직 하늘과 땅만 머금을 수 있다. 하늘과 땅을 쌀 수 있음은 오직 꼴 없는 것뿐이라 한다. 교만하고 넘치는 임금에게 충신이 없고 입이 날카로운 사람에게 반드시 믿음이 없다. 두 아름 나무에 한 줌 가지가 없고 심상의 도랑에 배를 삼키는 고기가 없다. 뿌리가 얕으면 끝이 짧고 근본이 상하면 가지가 마른다. 복은 함이 없음에서 나고 근심은 바람 많음에서 나며 해는 대비하지 않음에서 나고 더러움은 김매지 않음에서 난다. 성인은 착함을 하기를 미치지 못할까 하듯 하고 화에 대비하기를 면하지 못할까 하듯 한다. 티끌을 쓰고 눈에 들지 않기를 바라고 물을 건너며 젖지 않기를 바람은 얻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저를 아는 이는 남을 원망하지 않고 명을 아는 이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복은 저에게서 발하고 화는 저에게서 난다.

聖人不求譽,不辟誹,正身直行,眾邪自息。今釋正而追曲,倍是而從眾,是與俗儷走,而內無繩,故聖人反己而弗由也。道之有篇章形埒者,非至者也。嘗之而無味,視之而無形,不可傳於人。大戟去水,亭曆愈張,用之不節,乃反為病。物多類之而非,唯聖人知其微。善禦者不忘其馬,善射者不忘其弩,善為人上者不忘其下。誠能愛而利之,天下可從也。弗愛弗利,親子叛父。天下有至貴而非勢位也,有至富而非金玉也,有至壽而非千歲也。原心反性,則貴矣;適情知足,則富矣;明死生之分,則壽矣。言無常是,行無常宜者,小人也;察于一事,通於一伎者,中人也;兼覆蓋而並有之,度伎能而裁使之者,聖人也。

성인은 기림을 구하지 않고 헐뜯음을 피하지 않으며 몸을 바르게 하고 곧게 행하여 뭇 사악함이 절로 그친다. 이제 바름을 놓고 굽음을 좇으며 옳음을 등지고 무리를 따름은 이는 세속과 나란히 달리며 안에 먹줄이 없음이므로 성인은 저에게 돌이키고 말미암지 않는다. 도에 편장과 꼴과 테두리가 있는 것은 지극한 것이 아니다. 맛보아도 맛이 없고 보아도 꼴이 없어 남에게 전할 수 없다. 대극은 물을 없애고 정력은 부기를 낫게 하나 쓰기를 절제하지 않으면 도리어 병이 된다. 물건에 그것과 비슷하되 아닌 것이 많으니 오직 성인만 그 미세함을 안다. 잘 모는 이는 그 말을 잊지 않고 잘 쏘는 이는 그 쇠뇌를 잊지 않으며 남의 위 노릇을 잘하는 이는 그 아래를 잊지 않는다. 참으로 사랑하여 이롭게 할 수 있으면 천하를 따르게 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고 이롭게 하지 않으면 친자식도 아비를 배반한다. 천하에 지극히 귀함이 있으나 세와 자리가 아니요 지극히 부유함이 있으나 쇠와 옥이 아니며 지극히 오래 삶이 있으나 천 해가 아니다. 마음에 근원하고 성품에 돌이키면 귀하고 정에 맞고 족함을 알면 부유하며 죽고 삶의 나뉨에 밝으면 오래 산다. 말에 늘 옳음이 없고 행실에 늘 마땅함이 없는 이는 소인이요 한 일에 살피고 한 재주에 통한 이는 중인이요 겸하여 덮어 아울러 두고 재주와 능함을 헤아려 마름질하여 부리는 이는 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