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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應訓

회남자 淮南子 · 유안(劉安)과 문객들 · 기원전 139년 무렵 · 단락 55 · 한자 9,963자 · 낭독 39.9분

「회남자」 도응훈 「道應訓」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나라 회남왕 유안이 문객들과 함께 엮은 책이다. 도덕경·장자·열자에 이은 도가의 넷째 자리에 놓이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손이 나누어 쓴 백과에 가깝다. 하늘과 땅의 얼개(천문·지형·시칙), 사람의 정신과 다스림, 병법과 잠언까지 한 집에 다 들여놓았다. 항아가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처음 적힌 곳이 남명훈이다. 지금 전하는 달 신화의 뿌리가 여기 한 줄이다. 설산훈과 설림훈 두 편은 짧은 잠언을 줄줄이 늘어놓았고, 도응훈은 이야기 쉰다섯 도막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로 끝을 맺는다. 옛 이야기를 도덕경 구절에 하나씩 맞춰 본 셈이다. 시칙훈은 동방의 끝을 「갈석산을 지나 조선을 지난다」로 잡고, 인간훈은 진 시황이 긴 성을 쌓아 「동으로 조선에 맺었다」고 적는다. 한나라 초에 조선이 어디쯤으로 여겨졌는지 보여 주는 두 자리다.

太淸問於無窮子曰:「子知道乎?」無窮子曰:「吾弗知也。」又問於無爲「吾知道有數。」曰:「其數奈何?」無爲曰:「吾知道之可以弱,可以強;可以柔,可以剛;可以陰,可以陽;可以窈,可以明;可以包裹天地,可以應待無方。此吾所以知道之數也。」太淸又問於無始曰:「向者,吾道於無窮,曰:『吾弗知之。」又問於無爲,無爲曰:『吾知道。』曰:『子之知道,亦有數乎?』無爲曰:『吾知道有數。』曰:『其數奈何?』無爲曰:『吾知道之可以弱,可以強;可以柔,可以剛;可以陰,可以陽;可以窈,可以明;可以包裹天地,可以應待無方。吾所以知道之數也。』若是,則無爲知與無窮之弗知,孰是孰非?」無始曰:「弗知之深,而知之淺;弗知内,而知之外;弗知精,而知之粗。」太淸仰而歎曰:「然則不知乃知邪?知乃不知邪?孰知知之爲弗知,弗知之爲知邪?」無始曰:「道不可聞,聞而非也;道不可見,見而非也;道不可言,言而非也。孰知形之不形者乎?」故老子曰:「天下皆知善之爲善,斯不善也。」故「知者不言,言者不知」也。

태청이 무궁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도를 아는가?」 무궁자가 말하였다. 「나는 알지 못한다.」 또 무위에게 물으니 「나는 도를 앎에 수가 있다」 하였다. 말하였다. 「그 수가 어떠한가?」 무위가 말하였다. 「나는 도가 약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으며 부드러울 수도 있고 굳셀 수도 있으며 음일 수도 있고 양일 수도 있으며 그윽할 수도 있고 밝을 수도 있으며 하늘과 땅을 싸안을 수도 있고 방향 없음에 응할 수도 있음을 안다. 이것이 내가 도의 수를 아는 까닭이다.」 태청이 또 무시에게 물었다. 「아까 내가 무궁에게 도를 물으니 『나는 알지 못한다』 하였다. 또 무위에게 물으니 무위가 『나는 도를 안다』 하기에 『그대가 도를 앎에 또한 수가 있는가?』 하니 무위가 『나는 도를 앎에 수가 있다』 하였다. 『그 수가 어떠한가?』 하니 무위가 『나는 도가 약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으며 부드러울 수도 있고 굳셀 수도 있으며 음일 수도 있고 양일 수도 있으며 그윽할 수도 있고 밝을 수도 있으며 하늘과 땅을 싸안을 수도 있고 방향 없음에 응할 수도 있음을 안다. 내가 도의 수를 아는 까닭이다』 하였다. 이 같으면 무위의 앎과 무궁의 알지 못함 가운데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무시가 말하였다. 「알지 못함은 깊고 앎은 얕으며 알지 못함은 안이고 앎은 밖이며 알지 못함은 정밀하고 앎은 거칠다.」 태청이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였다. 「그러면 알지 못함이 곧 앎인가. 앎이 곧 알지 못함인가. 누가 앎이 알지 못함이 되고 알지 못함이 앎이 됨을 알겠는가?」 무시가 말하였다. 「도는 들을 수 없으니 들으면 그르고 도는 볼 수 없으니 보면 그르며 도는 말할 수 없으니 말하면 그르다. 누가 꼴이 꼴 아님을 알겠는가?」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천하가 다 착함이 착함 됨을 아니 이는 착하지 않다」 하였다. 그러므로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이는 알지 못한다」 하였다.

白公問於孔子曰:「人可以微言?」孔子不應。白公曰:「若以石投水中,何如?」曰:「呉、越之善沒者能取之矣。」曰:「若以水投水,何如?」孔子曰:「菑、澠之水合,易牙嘗而知之。」白公曰:「然則人固不可以微言乎?」孔子曰:「何謂不可?誰知言之謂者乎?夫知言之謂者,不以言言也。爭魚者濡,逐獸者趨,非樂之也。故至言去言,至爲無爲,夫淺知之所爭者,末矣。」白公不得也,故死於浴室。故老子曰:「言有宗,事有君。夫唯無知,是以不吾知也。」白公之謂也。

백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사람이 은밀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응하지 않았다. 백공이 말하였다. 「돌을 물 가운데 던짐 같으면 어떻습니까?」 말하였다. 「오·월의 잘 자맥질하는 이가 취할 수 있다.」 말하였다. 「물을 물에 던짐 같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치수와 승수의 물이 합하여도 역아는 맛보고 안다.」 백공이 말하였다. 「그러면 사람은 본디 은밀한 말을 할 수 없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어찌 할 수 없다 하겠는가. 누가 말의 뜻하는 바를 알겠는가. 무릇 말의 뜻하는 바를 아는 이는 말로 말하지 않는다. 고기를 다투는 이는 젖고 짐승을 쫓는 이는 달리니 즐거워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극한 말은 말을 버리고 지극한 함은 함이 없으니 무릇 얕은 슬기가 다투는 바는 끝이다.」 백공이 얻지 못하였으므로 욕실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말에 종주가 있고 일에 임금이 있다. 무릇 오직 앎이 없으니 이 때문에 나를 알지 못한다」 하였다. 백공을 이름이다.

惠子爲惠王爲國法,已成而示諸先生,先生皆善之,奏之惠王。惠王甚説之。以示翟煎,曰:「善」!惠王曰:「善,可行乎?」翟煎曰:「不可。」惠王曰:「善而不可行,何也?」翟煎對曰:「今夫舉大木者,前呼邪許,後亦應之。此舉重勸力之歌也,豈無鄭、衞激楚之音哉?然而不用者,不若此其宜也。治國有禮,不在文辯。」故老子曰:「法令滋彰,盜賊多有。」此之謂也。

혜자가 혜왕을 위해 나라 법을 만들어 이미 이루자 여러 선생에게 보이니 선생들이 다 좋다 하여 혜왕에게 아뢰었다. 혜왕이 매우 기뻐하였다. 적전에게 보이니 「좋습니다!」 하였다. 혜왕이 말하였다. 「좋으면 행할 만한가?」 적전이 말하였다. 「행할 수 없습니다.」 혜왕이 말하였다. 「좋은데 행할 수 없음은 어째서인가?」 적전이 대답하였다. 「이제 무릇 큰 나무를 드는 이가 앞에서 어여차 하고 외치면 뒤에서도 응합니다. 이는 무거운 것을 들며 힘을 권하는 노래인데 어찌 정·위와 격초의 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쓰지 않음은 이것이 그 마땅함만 못해서입니다. 나라 다스림에 예가 있고 글의 변론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법령이 밝을수록 도적이 많이 있다」 하였다. 이를 이름이다.

田駢以道術説齊王,王應之曰:「寡人所有,齊國也。道術雖以除患,願聞國之政。」田駢對曰:「臣之言無政,而可以爲政。譬之若林木無材,而可以爲材。願王察其所謂,而自取齊國之政焉已。雖無除其患害,天地之間,六合之内,可陶冶而變化也。齊國之政,何足問哉!」此老聃之所謂「無狀之狀,無物之象」者也。若王之所問者,齊也;田駢所稱者,材也。材不及林,林不及雨,雨不及陰陽,陰陽不及和,和不及道。

전병이 도술로 제나라 왕을 달래니 왕이 응하여 말하였다. 「과인이 가진 바는 제나라다. 도술이 비록 근심을 없앨 수 있어도 나라의 정사를 듣기 바란다.」 전병이 대답하였다. 「신의 말은 정사가 없으나 정사를 할 수 있습니다. 비유하면 숲의 나무가 재목이 아니나 재목이 될 수 있음과 같습니다. 왕께서 그 이르는 바를 살펴 스스로 제나라의 정사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그 근심과 해를 없앰이 없어도 하늘과 땅 사이 육합 안을 빚어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제나라의 정사가 어찌 물을 것이 되겠습니까!」 이는 노담이 이른바 「모양 없는 모양이요 물건 없는 형상」이다. 왕이 물은 바 같은 것은 제나라요 전병이 일컬은 바는 재목이다. 재목은 숲에 미치지 못하고 숲은 비에 미치지 못하며 비는 음양에 미치지 못하고 음양은 화함에 미치지 못하며 화함은 도에 미치지 못한다.

白公勝得荊國,不能以府庫分人。七日,石乙入曰:「不義得之,又不能佈施,患必至矣!不能予人,不若焚之,毋令人害我!」白公弗聽也。九日,葉公入,乃發大府之貨以予衆,出髙庫之兵以賦民,因而攻之。十有九日而禽白公。夫國非其有也,而欲有之,可謂至貪也;不能爲人,又無以自爲,可謂至愚矣!譬白公之嗇也,何以異於梟之愛其子也?故老子曰:「持而盈之,不如其已。揣而鋭之,不可長保也。」

백공승이 초나라를 얻었으나 곳간을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었다. 이레 만에 석을이 들어와 말하였다. 「의롭지 않게 얻고 또 베풀 수 없으면 근심이 반드시 이릅니다! 남에게 줄 수 없으면 태우느니만 못하니 사람들이 나를 해치게 하지 마십시오!」 백공이 듣지 않았다. 아흐레 만에 섭공이 들어와 곧 큰 곳간의 재화를 내어 무리에게 주고 높은 창고의 병기를 내어 백성에게 나누어 주어 그로써 쳤다. 열아홉 날 만에 백공을 사로잡았다. 무릇 나라가 제 것이 아닌데 두려 함은 지극히 탐한다 할 만하고 남을 위할 수 없고 또 스스로 위할 것도 없으니 지극히 어리석다 할 만하다! 비유하면 백공의 인색함이 어찌 올빼미가 그 새끼를 사랑함과 다르랴.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가지고 채움은 그침만 못하고 갈아 날카롭게 함은 오래 보전할 수 없다」 하였다.

趙簡子以襄子爲後,董閼於曰:「無恤賤,今以爲後,何也?」簡子曰:「是爲人也,能爲社稷忍羞。」異日,知伯與襄子飲,而批襄子之首。大夫請殺之。襄子曰:「先君之立我也,曰:能爲社稷忍羞。豈曰能刺人哉!」處十月,知伯圍襄子於晉陽,襄子疎隊而撃之,大敗知伯,破其首以爲飲器。故老子曰:「知其雄,守其雌,其爲天下谿。」

조간자가 양자를 후계로 삼으니 동알우가 말하였다. 「무휼은 천한데 이제 후계로 삼음은 어째서입니까?」 간자가 말하였다. 「이 사람됨은 사직을 위해 부끄러움을 참을 수 있다.」 다른 날 지백이 양자와 마시다가 양자의 머리를 쳤다. 대부가 죽이기를 청하였다. 양자가 말하였다. 「선군이 나를 세움에 말하기를 사직을 위해 부끄러움을 참을 수 있다 하였다. 어찌 남을 찌를 수 있다 하였겠는가!」 열 달 지나 지백이 양자를 진양에서 에워싸니 양자가 대오를 흩어 쳐 지백을 크게 깨뜨리고 그 머리를 쪼개 마시는 그릇을 삼았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그 수컷을 알고 그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시내가 된다」 하였다.

齧缺問道於被衣,被衣曰:「正女形,壹女視,天和將至。攝女知,正女度,神將來舍。德將來附若美,而道將爲女居。憃乎若新生之犢,而無求其故。」言未卒,齧缺繼以仇夷。被衣行歌而去,曰:「形若槁骸,心如死灰。直實不知,以故自持。墨墨恢恢,無心可與謀。彼何人哉!」故老子曰:「明白四達。能以無知乎!」

설결이 피의에게 도를 물으니 피의가 말하였다. 「네 꼴을 바르게 하고 네 봄을 하나로 하면 하늘의 화함이 장차 이를 것이다. 네 슬기를 거두고 네 도량을 바르게 하면 신이 장차 와서 깃들 것이다. 덕이 장차 와서 붙어 네가 아름다워지고 도가 장차 너를 위해 거처가 될 것이다. 어리숙하기가 갓 난 송아지 같아 그 까닭을 구하지 말라.」 말이 마치기 전에 설결이 이어 잠들었다. 피의가 노래하며 떠나 말하였다. 「꼴은 마른 뼈 같고 마음은 죽은 재 같다. 곧고 참되어 알지 못하며 그로써 스스로 지킨다. 어둡고 어두우며 넓고 넓어 마음이 없으니 더불어 꾀할 수 없다. 저이는 어떤 사람인가!」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밝게 사방에 통달하니 앎 없이 할 수 있는가!」 하였다.

趙襄子攻翟而勝之,取尤人、終人。使者來謁之,襄子方將食,而有憂色。左右曰:「一朝而兩城下,此人之所喜也。今君有憂色,何也?」襄子曰:「江、河之大也,不過三日,飄風暴雨,日中不須臾。今趙氏之德行無所積,今一朝兩城下,亡其及我乎!」孔子聞之,曰:「趙氏其昌乎!」夫憂,所以爲昌也;而喜,所以爲亡也。勝非其難也,持之者其難也。賢主以此持勝,故其福及後世。齊、楚、呉、越,皆嘗勝矣,然而卒取亡焉,不能乎持勝也。唯有道之主能持勝。孔子勁杓國門之關,而不肯以力聞。墨子爲守攻,公輸般服,而不肯以兵知。善持勝者,以強爲弱。故老子曰:「道沖,而用之又弗盈也。」

조양자가 적을 쳐 이기고 우인과 종인을 취하였다. 사자가 와서 아뢰니 양자가 바야흐로 먹으려다가 근심하는 빛이 있었다. 좌우가 말하였다. 「하루아침에 두 성이 내렸으니 이는 사람이 기뻐할 바입니다. 이제 임금께서 근심하는 빛이 있음은 어째서입니까?」 양자가 말하였다. 「강과 하수의 큼도 사흘을 넘지 않고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도 한낮에 잠깐을 넘지 않는다. 이제 조씨의 덕행이 쌓인 바가 없는데 하루아침에 두 성이 내렸으니 망함이 내게 미칠까!」 공자가 듣고 말하였다. 「조씨는 창성하겠구나!」 무릇 근심은 창성하는 까닭이요 기쁨은 망하는 까닭이다. 이김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지킴이 어려운 것이다. 어진 임금은 이로써 이김을 지키므로 그 복이 후세에 미친다. 제·초·오·월이 다 일찍이 이겼으나 마침내 망함을 취하였으니 이김을 지킬 수 없어서다. 오직 도 있는 임금만 이김을 지킬 수 있다. 공자는 굳세어 나라 성문 빗장을 들었으나 힘으로 알려지기를 즐기지 않았다. 묵자는 지킴과 침을 하여 공수반을 복종시켰으나 군사로 알려지기를 즐기지 않았다. 이김을 잘 지키는 이는 강함을 약함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도는 비었으되 써도 차지 않는다」 하였다.

惠孟見宋康王,蹀足謦欬,疾言曰:「寡人所説者,勇有功也,不説爲仁義者也客將何以教寡人?」惠孟對曰:「臣有道於此,人雖勇,刺之不入。雖巧有力,撃之不中。大王獨無意邪?」宋王曰:「善。此寡人之所欲聞也。」惠孟曰:「夫刺之而不入,撃之而不中,此猶辱也。臣有道於此,使人雖有勇弗敢刺,雖有力不敢撃,夫不敢刺不敢撃,非無其意也。臣有道於此,使人本無其意也。夫無其意,未有愛利之也。臣有道於此,使天下丈夫、女子,莫不歡然皆欲愛利之心。此其賢於勇有力也,四累之上也。大王獨無意邪!」宋王曰:「此寡人所欲得也。」惠孟對曰:「孔、墨是已。孔丘、墨翟,無地而爲君,無官而爲長。天下丈夫、女子,莫不延頸舉踵,而願安利之者。今大王,萬乘之主也。誠有其志,則四境之内皆得其利矣。此賢於孔、墨也遠矣。」宋王無以應。惠孟出。宋王謂左右曰:「辯矣!客之以説勝寡人也。」故老子曰:「勇於不敢則活。」由此觀之,大勇反爲不勇耳。昔堯之佐九人,舜之佐七人,武王之佐五人;堯、舜、武王於九、七、五者,不能一事焉。然而垂拱受成功者,善乘人之資耳。故人與驥逐走,則不勝驥;託於車上,則驥不能勝人。北方有獸,其名曰蹶,鼠前而兔後,趨則頓,走則顛,常爲蛩蛩駏驉取甘草以與之。蹶有患害,蛩蛩駏驉必負而走。此以其能,託其所不能。故老子曰:「夫代大匠斫者,希不傷其手。」

혜맹이 송 강왕을 뵈니 발을 구르고 기침하며 급히 말하였다. 「과인이 기뻐하는 바는 용맹하고 공 있음이요 인의를 하는 이를 기뻐하지 않는다. 손은 장차 무엇으로 과인을 가르치겠는가?」 혜맹이 대답하였다. 「신에게 여기 도가 있으니 사람이 비록 용맹하여도 찔러 들지 않고 비록 교묘하고 힘이 있어도 쳐서 맞지 않게 합니다. 대왕께서 홀로 뜻이 없으십니까?」 송왕이 말하였다. 「좋다. 이는 과인이 듣고자 하는 바다.」 혜맹이 말하였다. 「무릇 찔러도 들지 않고 쳐도 맞지 않음은 이는 오히려 욕됨입니다. 신에게 여기 도가 있으니 사람이 비록 용맹이 있어도 감히 찌르지 못하고 비록 힘이 있어도 감히 치지 못하게 합니다. 무릇 감히 찌르지 못하고 감히 치지 못함은 그 뜻이 없음이 아닙니다. 신에게 여기 도가 있으니 사람이 본디 그 뜻이 없게 합니다. 무릇 그 뜻이 없음은 아직 사랑하고 이롭게 함이 있지 않습니다. 신에게 여기 도가 있으니 천하의 장부와 여자가 기꺼이 다 사랑하고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음이 없게 합니다. 이는 용맹하고 힘 있음보다 어질어 네 겹의 위입니다. 대왕께서 홀로 뜻이 없으십니까!」 송왕이 말하였다. 「이는 과인이 얻고자 하는 바다.」 혜맹이 대답하였다. 「공자와 묵자가 이것입니다. 공구·묵적은 땅 없이 임금 노릇 하고 벼슬 없이 어른 노릇 하였습니다. 천하의 장부와 여자가 목을 늘이고 발꿈치를 들어 편안히 하고 이롭게 하기를 바라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이제 대왕은 만승의 임금입니다. 참으로 그 뜻이 있으면 사방 지경 안이 다 그 이로움을 얻을 것입니다. 이는 공자와 묵자보다 어짊이 멉니다.」 송왕이 응할 것이 없었다. 혜맹이 나가자 송왕이 좌우에게 말하였다. 「말을 잘하는구나! 손이 설로 과인을 이겼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감히 하지 않음에 용맹하면 산다」 하였다. 이로써 보면 큰 용맹은 도리어 용맹하지 않음이 될 뿐이다. 옛날 요의 도움이 아홉 사람이요 순의 도움이 일곱 사람이며 무왕의 도움이 다섯 사람이었다. 요·순·무왕은 아홉·일곱·다섯 사람에 대하여 한 가지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옷깃을 드리우고 팔짱 끼고 이룬 공을 받음은 남의 바탕을 잘 타서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준마와 다투어 달리면 준마를 이기지 못하나 수레 위에 맡기면 준마가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북방에 짐승이 있어 그 이름을 궐이라 하는데 앞은 쥐요 뒤는 토끼라 종종걸음 하면 넘어지고 달리면 자빠지니 늘 공공거허를 위해 단 풀을 취해 준다. 궐에게 근심과 해가 있으면 공공거허가 반드시 업고 달린다. 이는 그 능함으로 그 능하지 못한 바를 맡김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무릇 큰 장인을 대신하여 깎는 이는 그 손을 상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 하였다.

薄疑説衞嗣君以王術。嗣君應之曰:「予所有者,千乘也。願以受教。」薄疑對曰:「烏獲舉千鈞,又況一斤乎?」杜赫以安天下説周昭文君,文君謂杜赫曰:「願學所以安周。」赫對曰:「臣之所言不可,則不能安周;臣之所言可,則周自安矣。」此所謂弗安而安者也。故老子曰:「大制無割,故致數輿無輿也。」

박의가 위 사군을 왕의 술로 달랬다. 사군이 응하여 말하였다. 「내가 가진 것은 천 승이다. 이로써 가르침 받기 바란다.」 박의가 대답하였다. 「오획이 천 균을 드는데 또 하물며 한 근이겠습니까?」 두혁이 천하를 편안히 함으로 주 소문군을 달래니 문군이 두혁에게 말하였다. 「주나라를 편안히 할 바를 배우기 바란다.」 혁이 대답하였다. 「신의 말이 옳지 않으면 주나라를 편안히 할 수 없고 신의 말이 옳으면 주나라가 절로 편안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편안히 하지 않고 편안한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큰 마름질은 가름이 없으니 그러므로 수레를 세는 데 이르면 수레가 없다」 하였다.

魯國之法,魯人爲人妾於諸侯,有能贖之者,取金於府。子贛贖魯人於諸侯。來,而辭不受金。孔子曰:「賜失之矣。夫聖人之舉事也,可以移風易俗,而受教順可施後世,非獨以適身之行也。今國之富者寡而貧者衆,贖而受金,則爲不廉;不受金,則不復贖人。自今以來,魯人不復贖人於諸侯矣。」孔子亦可謂知禮矣。故老子曰:「見小曰明。」

노나라 법에 노나라 사람이 제후에게 첩이 되었을 때 속량할 수 있는 이는 관청에서 돈을 취하게 하였다. 자공이 노나라 사람을 제후에게서 속량하였다. 돌아와 사양하고 돈을 받지 않았다. 공자가 말하였다. 「사가 잘못하였다. 무릇 성인이 일을 듦은 풍속을 옮겨 바꿀 수 있고 가르침을 받아 순함이 후세에 베풀어질 수 있어야 하니 홀로 제 몸의 행실에 맞게 함이 아니다. 이제 나라에 부유한 이가 적고 가난한 이가 많은데 속량하고 돈을 받으면 청렴하지 않음이 되고 돈을 받지 않으면 다시는 사람을 속량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노나라 사람은 다시 제후에게서 사람을 속량하지 않을 것이다.」 공자는 또한 예를 안다 할 만하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작은 것을 봄을 밝음이라 한다」 하였다.

魏武侯問於李克曰:「呉之所以亡者,何也?」李克對曰:「數戰而數勝。」武侯曰:「數戰數勝,國之福。其獨以亡,何故也?」對曰:「數戰則民疲,數勝則主驕。以驕主使疲民,而國不亡者,天下鮮矣!驕則恣,恣則極物;疲則怨,怨則極慮;上下倶極,呉之亡猶晩矣!夫差之所以自剄於幹遂也。」老子曰:「功成名遂,身退,天之道也。」

위 무후가 이극에게 물었다. 「오나라가 망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극이 대답하였다. 「자주 싸워 자주 이겨서입니다.」 무후가 말하였다. 「자주 싸워 자주 이김은 나라의 복이다. 그것만으로 망함은 무슨 까닭인가?」 대답하였다. 「자주 싸우면 백성이 지치고 자주 이기면 임금이 교만합니다. 교만한 임금으로 지친 백성을 부리면서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일은 천하에 드뭅니다! 교만하면 방자하고 방자하면 물건을 다하며 지치면 원망하고 원망하면 생각을 다하니 위와 아래가 함께 다하면 오나라의 망함은 오히려 늦은 것입니다! 부차가 간수에서 스스로 목을 벤 까닭입니다.」 노자가 말하기를 「공이 이루어지고 이름이 이루어지면 몸이 물러남이 하늘의 도다」 하였다.

甯越欲干齊桓公,困窮無以自達,於是爲商旅,將任車,以商於齊,暮宿於郭門之外。桓公郊迎客,夜開門,辟任車,爝火甚盛,從者甚衆,甯越飯牛車下,望見桓公而悲。撃牛角而疾商歌。桓公聞之,撫其僕之手曰:「異哉!歌者非常人也。」命後車載之。桓公及至,從者以請。桓公贛之衣冠而見,説以爲天下。桓公大説,將任之。君臣爭之曰:「客,衞人也。衞之去齊不遠,君不若使人問之。問之而故賢者也,用之未晩。」桓公曰:「不然。問之,患其有小惡也。以人之小惡而忘人之大美,此人主之所以失天下之士也。」凡聽必有驗,一聽而弗復問,合其所以也。且人固難合也,權而用其長者而已矣。當是舉也,桓公得之矣。故老子曰:「天大、地大、道大、王亦大,域中有四大,而王處其一焉。」以言其能包裹之也。

영월이 제 환공에게 나아가려 하였으나 곤궁하여 스스로 이를 길이 없었다. 이에 장사꾼이 되어 짐수레를 끌고 제나라에서 장사하며 저녁에 성곽 문 밖에서 묵었다. 환공이 교외에서 손을 맞으려고 밤에 문을 열어 짐수레를 물리는데 횃불이 매우 성하고 따르는 이가 매우 많았다. 영월이 수레 아래서 소를 먹이다가 환공을 바라보고 슬퍼하여 소뿔을 치며 급히 상가를 불렀다. 환공이 듣고 그 마부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이상하다! 노래하는 이가 보통 사람이 아니다.」 뒷수레에 태우라 명하였다. 환공이 이르자 따르는 이가 청하였다. 환공이 옷과 관을 주어 보고 천하로 달래니 환공이 크게 기뻐하여 장차 맡기려 하였다. 뭇 신하가 다투어 말하였다. 「손은 위나라 사람입니다. 위나라가 제나라에서 멀지 않으니 임금께서 사람을 시켜 물어보심이 낫습니다. 물어 참으로 어진 이면 써도 늦지 않습니다.」 환공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물으면 그 작은 허물이 있을까 근심된다. 남의 작은 허물로 남의 큰 아름다움을 잊음은 이것이 임금이 천하의 선비를 잃는 까닭이다.」 무릇 들음에는 반드시 증험이 있는데 한 번 듣고 다시 묻지 않음은 그 까닭에 맞아서다. 또 사람은 본디 맞추기 어려우니 저울질하여 그 긴 것을 쓸 뿐이다. 이 거동에 있어 환공이 얻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도도 크고 왕도 또한 크다. 지경 안에 네 큰 것이 있는데 왕이 그 하나에 처한다」 하였다. 그 싸안을 수 있음을 말한다.

大王亶父居邠,翟人攻之。事之以皮帛、珠玉而弗受。曰「翟人之所求者地。無以財物爲也。」大王亶父曰:「與人之兄居而殺其弟,與人之父處而殺其子,吾弗爲。皆勉處矣!爲吾臣,與翟人奚以異?且吾聞之也,不以其所養害其養。」杖策而去。民相連而從之,遂成國於岐山之下。大王亶父可謂能保生矣。雖富貴,不以養傷身;雖貧賤,不以利累形。今受其先人之爵祿,則必重失之。所自來者久矣,而輕失之,豈不惑哉!故老子曰:「貴以身爲天下,焉可以託天下;愛以身爲天下,焉可以寄天下矣!」

대왕 단보가 빈에 살 때 적인이 쳤다. 가죽과 비단과 구슬과 옥으로 섬겨도 받지 않고 말하였다. 「적인이 구하는 바는 땅이다. 재물로 할 것이 아니다.」 대왕 단보가 말하였다. 「남의 형과 살면서 그 아우를 죽이고 남의 아비와 처하면서 그 자식을 죽임을 나는 하지 않는다. 다들 힘써 여기 처하라! 내 신하가 됨이 적인과 무엇이 다르랴. 또 내 들으니 그 기르는 바로 그 기름을 해치지 않는다 한다.」 지팡이를 짚고 떠나니 백성이 서로 이어 따라 마침내 기산 아래에 나라를 이루었다. 대왕 단보는 삶을 보전할 수 있었다 할 만하다. 비록 부유하고 귀하여도 기름으로 몸을 상하지 않고 비록 가난하고 천하여도 이익으로 꼴을 얽지 않는다. 이제 그 선인의 작위와 녹을 받으면 반드시 그것 잃음을 무겁게 여긴다. 말미암아 온 바가 오래인데 가벼이 잃으니 어찌 홀리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몸을 귀히 여겨 천하를 위하면 천하를 맡길 만하고 몸을 사랑하여 천하를 위하면 천하를 부칠 만하다」 하였다.

中山公子牟謂詹子曰:「身處江海之上,心在魏闕之下,爲之奈何?」詹子曰:「重生。重生則輕利。」中山公子牟曰:「雖知之,猶不能自勝。」詹子曰:「不能自勝,則從之;從之,神無怨乎!不能自勝而強弗從者,此之謂重傷。重傷之人,無壽類矣。」故老子曰:「知和曰常,知常曰明,益生曰祥,心使氣曰強。」是故「用其光,復歸其明也。」

중산 공자 모가 첨자에게 말하였다. 「몸은 강과 바다 위에 처하나 마음은 위나라 대궐 아래 있으니 어찌하리까?」 첨자가 말하였다. 「삶을 무겁게 여기시오. 삶을 무겁게 여기면 이익을 가벼이 여기오.」 중산 공자 모가 말하였다. 「비록 알아도 오히려 스스로 이길 수 없습니다.」 첨자가 말하였다. 「스스로 이길 수 없으면 따르시오. 따르면 신이 원망함이 없소! 스스로 이길 수 없는데 억지로 따르지 않는 것 이를 거듭 상함이라 하오. 거듭 상한 사람은 오래 살 무리가 없소.」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화함을 앎을 늘 그러함이라 하고 늘 그러함을 앎을 밝음이라 하며 삶을 더함을 요사함이라 하고 마음이 기운을 부림을 강함이라 한다」 하였다. 이 때문에 「그 빛을 쓰고 그 밝음에 돌아간다」 하였다.

楚莊王問詹何曰:「治國奈何?」對曰:「何明於治身,而不明於治國?」楚王曰:「寡人得立宗廟社稷,願學所以守之。」詹何對曰:「臣未嘗聞身治而國亂者也,未嘗聞身亂而國治者也。故本任於身,不敢對以末。」楚王曰:「善。」故老子曰:「修之身,其德乃眞也。」

초 장왕이 첨하에게 물었다. 「나라 다스림은 어찌합니까?」 대답하였다. 「어찌 몸 다스림에 밝으면서 나라 다스림에 밝지 못하겠습니까?」 초왕이 말하였다. 「과인이 종묘와 사직을 세움을 얻었으니 지킬 바를 배우기 바랍니다.」 첨하가 대답하였다. 「신은 일찍이 몸이 다스려지는데 나라가 어지럽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일찍이 몸이 어지러운데 나라가 다스려진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이 몸에 맡겨지니 감히 끝으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초왕이 말하였다. 「좋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몸에 닦으면 그 덕이 곧 참되다」 하였다.

桓公讀書於堂,輪扁斫輪於堂下。釋其椎鑿,而問桓公曰:「君之所讀者,何書也?」桓公曰:「聖人之書。」輪扁曰:「其人焉在?」桓公曰:「已死矣。」輪扁曰:「是直聖人之糟粕耳。」桓公曰悖然作色而怒曰:「寡人讀書,工人焉得而譏之哉!有説則可,無説則死!」輪扁曰:「然。有説。臣試以臣之斫輪語之。大疾則苦而不入,大徐則甘而不固,不甘不苦,應於手,厭於心,而可以至妙者,臣不能以教臣之子,而臣之子亦不能得之於臣。是以行年七十,老而爲輪。今聖人之所言者,亦以懷其實,窮而死,獨其糟粕在耳。」故老子曰:「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

환공이 당에서 글을 읽는데 윤편이 당 아래서 바퀴를 깎고 있었다. 그 망치와 끌을 놓고 환공에게 물었다. 「임금께서 읽으시는 것은 무슨 글입니까?」 환공이 말하였다. 「성인의 글이다.」 윤편이 말하였다. 「그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환공이 말하였다. 「이미 죽었다.」 윤편이 말하였다. 「이는 다만 성인의 지게미일 뿐입니다.」 환공이 발끈 낯빛을 지으며 노하여 말하였다. 「과인이 글을 읽는데 공인이 어찌 나무랄 수 있는가! 설이 있으면 되나 설이 없으면 죽으리라!」 윤편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설이 있습니다. 신이 시험 삼아 신의 바퀴 깎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빠르면 껄끄러워 들지 않고 너무 더디면 헐거워 굳지 않으니 헐겁지도 껄끄럽지도 않아 손에 응하고 마음에 흡족하여 지극한 묘함에 이를 수 있음은 신이 신의 자식에게 가르칠 수 없고 신의 자식도 신에게서 얻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나이 일흔에 늙어서도 바퀴를 만듭니다. 이제 성인이 말한 바도 또한 그 실을 품고 궁하여 죽었으니 홀로 그 지게미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요 이름할 수 있는 이름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하였다.

昔者,司城子罕相宋,謂宋君曰:「夫國家之安危,百姓之治亂,在君行賞罰。夫爵賞賜予,民之所好也,君自行之;殺戮刑罰,民之所怨也,臣請當之。」宋君曰:「善。寡人當其美,子受其怨。寡人自知不爲諸侯笑矣。」國人皆知殺戮之專,制在子罕也,大臣親之,百姓畏之,居不至期年,子罕遂卻宋君而專其政。故老子曰:「魚不可脱於淵,國之利器,不可以示人。」

옛날 사성 자한이 송나라 재상이 되어 송나라 임금에게 말하였다. 「무릇 나라의 편안함과 위태함과 백성의 다스림과 어지러움은 임금이 상벌을 행함에 있습니다. 무릇 작위와 상과 내려 줌은 백성이 좋아하는 바니 임금께서 스스로 행하시고 죽이고 형벌함은 백성이 원망하는 바니 신이 맡기를 청합니다.」 송나라 임금이 말하였다. 「좋다. 과인이 그 아름다움을 맡고 그대가 그 원망을 받으면 과인이 제후의 웃음이 되지 않을 줄 스스로 안다.」 나라 사람이 다 죽이고 형벌함을 오로지함과 제어함이 자한에게 있음을 알아 대신이 그를 친히 하고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니 한 해가 못 되어 자한이 마침내 송나라 임금을 물리치고 그 정사를 오로지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고기는 못에서 벗어날 수 없고 나라의 이로운 그릇은 남에게 보일 수 없다」 하였다.

王壽負書而行,見徐馮於周,徐馮曰:「事者,應變而動,變生於時,故知時者無常行。書者,言之所出也。言出於知者,知者藏書。」於是王壽乃焚書而舞之。故老子曰:「多言數窮,不如守中。」

왕수가 글을 지고 가다가 서풍을 주나라에서 만나니 서풍이 말하였다. 「일이란 변화에 응하여 움직이고 변화는 때에서 나므로 때를 아는 이는 늘 그러한 행함이 없다. 글이란 말이 나온 바다. 말은 아는 이에게서 나오는데 아는 이는 글을 감추지 않는다.」 이에 왕수가 곧 글을 태우고 춤추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하니 가운데를 지킴만 못하다」 하였다.

令尹子佩請飲莊王。莊王許諾。子佩疎揖,北面立於殿下。曰:「昔者君王許之,今不果往。意者臣有罪乎?」莊王曰:「吾聞子具於強臺。強臺者,南望料山,以臨方皇,左江而右淮,其樂忘死,若吾薄德之人,不可以當此樂也。恐留而不能反。」故老子曰:「不見可欲,使心不亂。」

영윤 자패가 장왕에게 마시기를 청하니 장왕이 허락하였다. 자패가 성기게 읍하고 북면하여 전각 아래 서서 말하였다. 「지난번 임금께서 허락하셨는데 이제 과연 가지 않으시니 생각건대 신에게 죄가 있습니까?」 장왕이 말하였다. 「내 들으니 그대가 강대에 차렸다 한다. 강대라는 곳은 남으로 요산을 바라보고 방황에 임하며 왼쪽에 강이 있고 오른쪽에 회수가 있어 그 즐거움이 죽음을 잊게 하니 나같이 덕이 얇은 사람은 이 즐거움을 감당할 수 없다. 머물러 돌아오지 못할까 두렵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바랄 만한 것을 보이지 않아 마음을 어지럽지 않게 한다」 하였다.

晉公子重耳出亡,過曹,無禮焉。厘負羈之妻謂厘負羈曰:「君無禮於晉公子,吾觀其從者,皆賢人也。若以相夫子反晉國,必伐曹,子何不先加德焉?」厘負羈遺之壺飯而加璧焉。重耳受其飯而反其璧。及其反國,起師伐曹,克之。令三軍無入厘負羈之里。故老子曰:「曲則全,枉則正。」

진 공자 중이가 달아나 조나라를 지나니 예가 없었다. 희부기의 아내가 희부기에게 말하였다. 「임금이 진나라 공자에게 예가 없었으나 제가 그 따르는 이를 보니 다 어진 사람입니다. 만약 서로 도와 저 사람이 진나라로 돌아가면 반드시 조나라를 칠 것이니 당신은 어찌 먼저 덕을 더하지 않습니까?」 희부기가 병에 담은 밥을 보내고 벽옥을 더하였다. 중이가 그 밥은 받고 그 벽옥은 돌려주었다. 그 나라로 돌아감에 미쳐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쳐 이겼다. 삼군에게 희부기의 마을에 들지 말라 명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굽으면 온전하고 휘면 바르다」 하였다.

越王勾踐與呉戰而不勝,國破身亡,困於會稽。忿心張膽,氣如湧泉,選練甲卒,赴火若滅。然而請身爲臣,妻爲妾,親執戈,爲呉兵先馬走,果禽之於幹遂。故老子曰:「柔之勝剛也,弱之勝強也,天下莫不知,而莫之能行。」越王親之,故霸中國。

월왕 구천이 오나라와 싸워 이기지 못하고 나라가 깨지고 몸이 망하여 회계에서 곤하였다. 분한 마음에 담이 부풀고 기운이 솟는 샘 같아 갑옷 입은 군졸을 골라 훈련하여 불에 나아가 꺼뜨릴 듯하였다. 그러나 몸은 신하가 되고 아내는 첩이 되기를 청하며 몸소 창을 잡고 오나라 군사의 말 앞에서 달렸고 과연 간수에서 사로잡았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기고 약함이 강함을 이김을 천하가 알지 못함이 없으나 행할 수 있는 이가 없다」 하였다. 월왕이 몸소 하였으므로 중국에 패자가 되었다.

趙簡子死,未葬,中牟入齊。已葬五日,襄子起兵攻圍之。未合而城自壞者數十丈。襄子撃金而退之。軍吏諫曰:「君誅中牟之罪,而城自壞,是天助我,何故去之?」襄子曰:「吾聞之叔向曰:『君子不乘人於利,不迫人於險。』使之治城,城治而後攻之。」中牟聞其義,乃請降。故老子曰:「夫唯不爭,故天下莫能與之爭。」

조간자가 죽어 아직 장사하지 않았는데 중모가 제나라에 들어갔다. 장사한 지 닷새 만에 양자가 군사를 일으켜 쳐 에워쌌다. 아직 합하기 전에 성이 절로 무너진 것이 수십 길이었다. 양자가 징을 쳐 물렸다. 군의 아전이 간하였다. 「임금께서 중모의 죄를 베시는데 성이 절로 무너짐은 이는 하늘이 우리를 도움이니 무슨 까닭으로 떠나십니까?」 양자가 말하였다. 「내 숙향에게 들으니 『군자는 이로움에서 남을 타지 않고 험함에서 남을 다그치지 않는다』 하였다. 성을 다스리게 하여 성이 다스려진 뒤에 치리라.」 중모가 그 의를 듣고 곧 항복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무릇 오직 다투지 않으므로 천하가 더불어 다툴 수 없다」 하였다.

秦穆公謂伯樂曰:「子之年長矣。子姓有可使求馬者乎?」對曰:「良馬者,可以形容筋骨相也。相天下之馬者,若滅若失,若亡其一。若此馬者,絶塵弭轍。臣之子皆下材也,可告以良馬,而不可告以天下之馬。臣有所與供儋纏采薪者方九堙,此其於馬,非臣之下也。請見之。」穆公見之,使之求馬。三月而反報曰:「已得馬矣。在於沙丘。」穆公曰:「何馬也?」對曰:「牡而黃。」使人往取之,牝而驪。穆公不説。召伯樂而問之曰:「敗矣。子之所使求者。毛物、牝牡弗能知,又何馬之能知?」伯樂喟然大息曰:「一至此乎!是乃其所以千萬臣而無數者也。若堙之所觀者,天機也。得其精而忘其粗,在内而忘其外,見其所見而不見其所不見,視其所視而遺其所不視。若彼之所相者,乃有貴乎馬者!」馬至,而果千里之馬。故老子曰:「大直若屈,大巧若拙。」

진 목공이 백락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나이가 많다. 그대 자손에 말 구하는 일을 시킬 만한 이가 있는가?」 대답하였다. 「좋은 말은 꼴과 모습과 힘줄과 뼈로 볼 수 있습니다. 천하의 말을 보는 이는 없는 듯 잃은 듯하여 그 하나를 잊은 듯합니다. 이 같은 말은 티끌을 끊고 바퀴 자국을 없앱니다. 신의 자식은 다 아래 재목이라 좋은 말은 일러 줄 수 있으나 천하의 말은 일러 줄 수 없습니다. 신에게 함께 짐을 지고 섶을 캐던 이로 구방인이 있는데 이는 말에 대하여 신의 아래가 아닙니다. 뵙기를 청합니다.」 목공이 보고 말을 구하게 하였다. 석 달 만에 돌아와 아뢰었다. 「이미 말을 얻었습니다. 사구에 있습니다.」 목공이 말하였다. 「무슨 말인가?」 대답하였다. 「수컷이요 누렇습니다.」 사람을 보내 취하니 암컷이요 검었다. 목공이 기뻐하지 않았다. 백락을 불러 물었다. 「낭패다. 그대가 시켜 구하게 한 이는 털빛과 암수도 알지 못하니 또 무슨 말을 알 수 있겠는가?」 백락이 한숨 쉬고 크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한결같이 여기 이르렀습니까! 이것이 곧 신보다 천만 배여서 셀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인이 보는 바 같은 것은 하늘의 기틀입니다. 그 정밀함을 얻고 그 거침을 잊으며 안에 있고 그 밖을 잊으며 그 볼 바를 보고 그 보지 않을 바를 보지 않으며 그 살필 바를 살피고 그 살피지 않을 바를 버립니다. 저이가 보는 바 같은 것은 곧 말보다 귀함이 있습니다!」 말이 이르니 과연 천 리 말이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크게 곧음은 굽은 듯하고 큰 교묘함은 서툰 듯하다」 하였다.

呉起爲楚令尹,適魏。問屈宜若曰:「王不知起之不肖,而以爲令尹。先生試觀起之爲人也。」屈子曰:「將奈何?」呉起曰:「將衰楚國之爵,而平其制祿;損其有餘,而綏其不足;砥礪甲兵,時爭利於天下。」屈子曰:「宜若聞之,昔善治國家者,不變其故,不易其常。今子將衰楚國之爵,而平其制祿;損其有餘,而綏其不足;是變其故,易其常也。行之者不利。宜若聞之曰:『怒者,逆德也,兵者兇器也。爭者人之所本也。』今子陰謀逆德,好用㐫器,始人之所本,逆之至也。且子用魯兵,不宜得志於齊,而行志焉;子用魏兵,不宜得志於秦,而得志焉。宜若聞之,非禍人不能成禍。吾固惑吾王之數逆天道,戾人理,至今無禍。差須夫子也。」呉起惕然曰:「尚可更乎?」屈子曰:「成形之徒,不可更也。子不若敦愛而篤行之。」老子曰:「挫其鋭,解其紛,和其光,同其塵。」

오기가 초나라 영윤이 되어 위나라에 갔다. 굴의약에게 물었다. 「왕이 기의 못남을 알지 못하고 영윤으로 삼았습니다. 선생께서 시험 삼아 기의 사람됨을 보십시오.」 굴자가 말하였다. 「장차 어찌하려는가?」 오기가 말하였다. 「장차 초나라의 작위를 덜고 그 녹 제도를 고르게 하며 그 남는 것을 덜어 그 모자람을 편안히 하고 갑옷과 병기를 갈아 때로 천하에 이익을 다투려 합니다.」 굴자가 말하였다. 「의약이 들으니 옛날 나라와 집을 잘 다스린 이는 그 옛것을 변하지 않고 그 늘 그러함을 바꾸지 않았다 한다. 이제 그대는 장차 초나라의 작위를 덜고 그 녹 제도를 고르게 하며 그 남는 것을 덜어 그 모자람을 편안히 하려 하니 이는 그 옛것을 변하고 그 늘 그러함을 바꿈이다. 행하는 이가 이롭지 않다. 의약이 들으니 『노함은 덕을 거스름이요 병기는 흉한 그릇이며 다툼은 사람이 근본으로 삼는 바다』 하였다. 이제 그대가 그늘로 덕을 거스름을 꾀하고 흉한 그릇 쓰기를 좋아하며 사람이 근본으로 삼는 바를 비롯하니 거스름이 지극하다. 또 그대가 노나라 군사를 써서 제나라에 뜻을 얻음이 마땅하지 않은데 뜻을 행하였고 그대가 위나라 군사를 써서 진나라에 뜻을 얻음이 마땅하지 않은데 뜻을 얻었다. 의약이 들으니 남에게 화를 입히지 않으면 화를 이룰 수 없다 한다. 나는 본디 우리 왕이 자주 하늘의 도를 거스르고 사람의 이치를 어그러뜨리면서 지금까지 화가 없음을 의아히 여겼다. 아마 그대를 기다린 듯하다.」 오기가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오히려 고칠 수 있습니까?」 굴자가 말하였다. 「꼴을 이룬 무리는 고칠 수 없다. 그대는 도타이 사랑하고 두터이 행함만 못하다.」 노자가 말하기를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얽힘을 풀며 그 빛을 화하게 하고 그 티끌과 같이한다」 하였다.

晉伐楚,三舍不止。大夫請撃之。莊王曰:「先君之時,晉不伐楚。及孤之身,而晉伐楚,是孤之過也。若何其辱群大夫?」曰:「先臣之時,晉不伐楚。今臣之身,而晉伐楚,此臣之罪也。請三撃之。」王俯而泣,涕沾襟,起而拜群大夫。晉人聞之,曰:「君臣爭以過爲在己,且輕下其臣,不可伐也。」夜還師而歸。老子曰:「能受國之垢,是謂社稷主。」

진나라가 초나라를 쳐 세 사를 가고도 그치지 않았다. 대부가 치기를 청하였다. 장왕이 말하였다. 「선군 때에는 진나라가 초나라를 치지 않았다. 내 몸에 미쳐 진나라가 초나라를 치니 이는 내 허물이다. 어찌 여러 대부를 욕되게 하랴?」 말하였다. 「선신 때에는 진나라가 초나라를 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신의 몸에 진나라가 초나라를 치니 이는 신의 죄입니다. 세 번 치기를 청합니다.」 왕이 구부려 울어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일어나 여러 대부에게 절하였다. 진나라 사람이 듣고 말하였다. 「임금과 신하가 다투어 허물이 저에게 있다 하고 또 가벼이 그 신하에게 낮추니 칠 수 없다.」 밤에 군사를 돌려 돌아갔다. 노자가 말하기를 「나라의 더러움을 받을 수 있으면 이를 사직의 주인이라 한다」 하였다.

宋景公之時,熒惑在心。公懼,召子韋而問焉。曰:「熒惑在心,何也?」子韋曰:「熒惑,天罰也;心,宋分野,禍且當君。雖然,可移於宰相。」公曰:「宰相,所使治國家也。而移死焉。不祥。」子韋曰:「可移於民。」公曰:「民死,寡人誰爲君乎?寧獨死耳!」子韋曰:「可移於歳。」公曰「歳,民之命;歳饑,民必死矣。爲人君而欲殺其民以自活也,其誰以我爲君者乎?是寡人之命,固已盡矣!子韋無復言矣。」子韋還走,北面再拜曰:「敢賀君。天之處髙而聽卑。君有君人之言三,天必有三賞君。今夕星必徙三舍,君延年二十一歳。」公曰:「子奚以知之?」對曰:「君有君人之言三,故有三賞,星必三徙舍。舍行七里,三七二十一,故君移年二十一歳。臣請伏於陛下以伺之。星不徙,臣請死之。」公曰:「可」。是夕也,星果三徙舍。故老子曰:「能受國之不祥,是謂天下王。」

송 경공 때 형혹성이 심수에 있었다. 공이 두려워 자위를 불러 물었다. 「형혹이 심수에 있음은 어째서인가?」 자위가 말하였다. 「형혹은 하늘의 벌이요 심수는 송나라의 분야이니 화가 장차 임금께 해당합니다. 비록 그러나 재상에게 옮길 수 있습니다.」 공이 말하였다. 「재상은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이다. 그런데 죽음을 옮김은 상서롭지 않다.」 자위가 말하였다. 「백성에게 옮길 수 있습니다.」 공이 말하였다. 「백성이 죽으면 과인이 누구의 임금이 되겠는가. 차라리 홀로 죽겠다!」 자위가 말하였다. 「해에 옮길 수 있습니다.」 공이 말하였다. 「해는 백성의 목숨이다. 해가 흉년들면 백성이 반드시 죽는다. 사람의 임금이 되어 그 백성을 죽여 스스로 살려 하면 그 누가 나를 임금이라 하겠는가. 이는 과인의 명이 본디 이미 다한 것이다! 자위는 다시 말하지 말라.」 자위가 돌아 달려 북면하여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감히 임금께 하례합니다. 하늘은 높은 데 처하되 낮은 데를 듣습니다. 임금께 사람의 임금다운 말이 셋 있으니 하늘이 반드시 임금께 세 번 상 주실 것입니다. 오늘 저녁 별이 반드시 세 사를 옮기고 임금께서 나이를 스물한 해 늘리실 것입니다.」 공이 말하였다. 「그대가 어찌 그것을 아는가?」 대답하였다. 「임금께 사람의 임금다운 말이 셋 있으므로 세 상이 있어 별이 반드시 세 사를 옮깁니다. 한 사가 일곱 리를 가니 삼칠은 이십일이므로 임금께서 나이를 스물한 해 옮기십니다. 신은 섬돌 아래 엎드려 살피기를 청합니다. 별이 옮기지 않으면 신은 죽기를 청합니다.」 공이 말하였다. 「좋다.」 이날 저녁 별이 과연 세 사를 옮겼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나라의 상서롭지 못함을 받을 수 있으면 이를 천하의 왕이라 한다」 하였다.

昔者,公孫龍在趙之時,謂弟子曰:「人而無能者,龍不能與遊。」有客衣褐帶索而見曰:「臣能呼。」公孫龍顧謂弟子曰:「門下故有能呼者乎?」對曰:「無有。」公孫龍曰:「與之弟子籍。」後數日,往説燕王。至於河上,而航在一汜,使善呼者呼之。一呼而航來。故曰:聖人之處世,不逆有伎能之士。故老子曰:「人無棄人,物無棄物,是謂襲明。」

옛날 공손룡이 조나라에 있을 때 제자에게 말하였다. 「사람으로서 능함이 없는 이와는 용이 더불어 노닐 수 없다.」 갈옷을 입고 새끼를 띤 손이 있어 뵙고 말하였다. 「신은 부를 수 있습니다.」 공손룡이 돌아보며 제자에게 말하였다. 「문하에 본디 부를 수 있는 이가 있는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공손룡이 말하였다. 「제자 명부를 주라.」 며칠 뒤 연나라 왕을 달래러 갔다. 물가에 이르니 배가 한쪽 물가에 있어 잘 부르는 이에게 부르게 하였다. 한 번 부르니 배가 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성인이 세상에 처함에 재주와 능함 있는 선비를 거스르지 않는다 한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사람에 버릴 사람이 없고 물건에 버릴 물건이 없으니 이를 밝음을 이음이라 한다」 하였다.

子發攻蔡,逾之。宣王郊迎,列田百頃,而封之執圭。子發辭不受。曰:「治國立政,諸侯入賓,此君之德也;發號施令,師未合而失敵遁,此將軍之威也;兵陳戰而勝敵者,此庶民之力也。夫乘民之功勞,而取其爵祿者,非仁義之道也。」故辭而弗受。故老子曰:「功成而不居。夫惟不居,是以不去。」

자발이 채나라를 쳐 넘었다. 선왕이 교외에서 맞아 밭 백 이랑을 벌여 주고 집규에 봉하였다. 자발이 사양하고 받지 않으며 말하였다. 「나라를 다스리고 정사를 세워 제후가 손으로 들어옴은 이는 임금의 덕입니다. 호령을 내고 명령을 베풀어 군사가 아직 합하지 않았는데 적이 달아남은 이는 장군의 위엄입니다. 군사가 진 치고 싸워 적을 이김은 이는 서민의 힘입니다. 무릇 백성의 공로를 타고 그 작위와 녹을 취함은 인의의 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공이 이루어도 거하지 않는다. 무릇 오직 거하지 않으므로 이 때문에 떠나지 않는다」 하였다.

晉文公伐原,與大夫期三日。三日而原不降。文公令去之。軍吏曰:「原不過一二日將降矣。」君曰:「吾不知原三日而不得下也。以與大夫期,盡而不疲,失信得原,吾弗爲也。」原人聞之,曰:「有君若此,可弗降也?」遂降。温人聞,亦請降。故老子曰:「窈兮冥兮,其中有精,其精甚眞,其中有信。」故「美言可以市尊,美行可以加人」。

진 문공이 원을 치며 대부와 사흘을 기약하였다. 사흘인데 원이 항복하지 않았다. 문공이 떠나라 명하였다. 군의 아전이 말하였다. 「원이 하루 이틀 지나지 않아 항복할 것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나는 원이 사흘에 내려지지 않을 줄 알지 못하였다. 대부와 기약하였는데 다하였어도 지치지 않았다. 믿음을 잃고 원을 얻음을 나는 하지 않겠다.」 원 사람이 듣고 말하였다. 「이 같은 임금이 있는데 항복하지 않을 수 있으랴?」 마침내 항복하였다. 온 사람이 듣고 또한 항복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그윽하고 어두워도 그 가운데 정밀함이 있고 그 정밀함이 매우 참되어 그 가운데 믿음이 있다」 하였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말은 높음을 살 수 있고 아름다운 행실은 남에게 더할 수 있다」 하였다.

公儀休相魯,而嗜魚。一國獻魚,公儀子弗受。其弟子諫曰:「夫子嗜魚。弗受,何也?」答曰:「夫唯嗜魚,故弗受。夫受魚而免於相,雖嗜魚,不能自給魚;毋受魚而不免於相,則能長自給魚。」此明於爲人爲己者也。故老子曰:「後其身而身先,外其身而身存。非以其無私邪?故能成其私。」一曰:知足不辱。

공의휴가 노나라 재상이 되었는데 고기를 즐겼다. 온 나라가 고기를 바쳤으나 공의자가 받지 않았다. 그 제자가 간하였다. 「부자께서 고기를 즐기시는데 받지 않으심은 어째서입니까?」 대답하였다. 「무릇 오직 고기를 즐기므로 받지 않는다. 무릇 고기를 받고 재상에서 면해지면 비록 고기를 즐겨도 스스로 고기를 댈 수 없고 고기를 받지 않고 재상에서 면해지지 않으면 오래 스스로 고기를 댈 수 있다.」 이는 남을 위함과 저를 위함에 밝은 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그 몸을 뒤로 하되 몸이 앞서고 그 몸을 밖으로 하되 몸이 남는다. 그 사사로움이 없어서가 아닌가. 그러므로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 하였다. 하나는 이르기를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는다 한다.

狐丘丈人謂孫叔敖曰:「人有三怨,子知之乎?」孫叔敖曰:「何謂也?」對曰:「爵髙者,士妬之;官大者,主惡之;祿厚者,怨處之。」孫叔敖曰:「吾爵益髙,吾志益下;吾官益大,吾心益小;吾祿益厚,吾施益博。是以免三怨,可乎?」故老子曰:「貴必以賤爲本,髙必以下爲基。」

호구 장인이 손숙오에게 말하였다. 「사람에게 세 원망이 있는데 그대는 그것을 아는가?」 손숙오가 말하였다. 「무엇을 이릅니까?」 대답하였다. 「작위가 높은 이는 선비가 시기하고 벼슬이 큰 이는 임금이 미워하며 녹이 두터운 이는 원망이 거기 처한다.」 손숙오가 말하였다. 「내 작위가 더 높을수록 내 뜻이 더 낮아지고 내 벼슬이 더 클수록 내 마음이 더 작아지며 내 녹이 더 두터울수록 내 베풂이 더 넓어집니다. 이로써 세 원망을 면함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귀함은 반드시 천함을 근본으로 삼고 높음은 반드시 낮음을 터로 삼는다」 하였다.

大司馬捶鉤者,年八十矣,而不失鉤芒。大司馬曰:「子巧邪?有道邪?」曰:「臣有守也。臣年二十好捶鉤,於物無視也。非鉤無察也。」是以用之者,必假於弗用也,而以長得其用。而況持而不用者乎?物孰不濟焉!故老子曰:「從事於道者,同於道。」

대사마의 갈고리 두드리는 이가 나이 여든인데 갈고리의 날을 잃지 않았다. 대사마가 말하였다. 「그대가 교묘한가. 도가 있는가?」 말하였다. 「신에게 지킴이 있습니다. 신은 나이 스물에 갈고리 두드리기를 좋아하여 물건에 보는 바가 없고 갈고리가 아니면 살피는 바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쓰는 이는 반드시 쓰지 않음에 빌려 오래 그 쓰임을 얻는다. 또 하물며 가지고 쓰지 않는 이랴. 물건이 무엇인들 건너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도에 일을 좇는 이는 도와 같아진다」 하였다.

文王砥德修政,三年而天下二垂歸之。紂聞而患之,曰:「余夙興夜寐,與之競行,則苦心勞形,縱而置之,恐伐余一人。」崇侯虎曰:「周伯昌行仁義而善謀,太子發勇敢而不疑,中子旦恭儉而知時。若與之從,則不堪其殃;縱而赦之,身必危亡。冠雖弊,必加於頭。及未成,請圖之。」屈商乃拘文王於羑里。於是散宜生乃以千金求天下之珍怪,得騶虞、鷄斯之乘,玄玉百工,大貝百朋,玄豹、黃羆、靑豻、白虎文皮千合,以獻於紂。因費仲而通。紂見而説之,乃免其身,殺牛而賜之。文王歸,乃爲玉門,築靈臺,相女童,撃鐘鼓,以待紂之失也。紂聞之,曰:「周伯昌改道易行,吾無憂矣。」乃爲炮烙,剖比干,剔孕婦,殺諫者。文王乃遂其謀。故老子曰:「知其榮,守其辱,爲天下穀。」

문왕이 덕을 갈고 정사를 닦아 세 해에 천하의 두 자락이 돌아왔다. 주가 듣고 근심하여 말하였다. 「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더불어 다투어 행하면 마음이 괴롭고 꼴이 수고롭고 놓아두면 나 한 사람을 칠까 두렵다.」 숭후 호가 말하였다. 「주백 창은 인의를 행하고 꾀를 잘하며 태자 발은 용감하여 의심하지 않고 둘째 아들 단은 공손하고 검소하며 때를 압니다. 만약 그들과 따르면 그 재앙을 감당하지 못하고 놓아 용서하면 몸이 반드시 위태하고 망할 것입니다. 관이 비록 해어져도 반드시 머리에 씁니다. 이루기 전에 도모하기를 청합니다.」 굴상이 곧 문왕을 유리에 가두었다. 이에 산의생이 곧 천금으로 천하의 진귀하고 괴이한 것을 구하여 추우와 계사의 수레와 검은 옥 백 벌과 큰 조개 백 붕과 검은 표범과 누런 큰곰과 푸른 들개와 흰 범의 무늬 가죽 천 짝을 얻어 주에게 바쳤다. 비중을 통해 통하니 주가 보고 기뻐하여 곧 그 몸을 면하게 하고 소를 잡아 주었다. 문왕이 돌아가 곧 옥문을 만들고 영대를 쌓으며 여자아이를 뽑고 종과 북을 쳐서 주의 잘못을 기다렸다. 주가 듣고 말하였다. 「주백 창이 도를 고치고 행실을 바꾸었으니 내 근심이 없다.」 곧 포락을 만들고 비간을 가르며 밴 부인을 째고 간하는 이를 죽였다. 문왕이 곧 그 꾀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그 영화로움을 알고 그 욕됨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하였다.

成王問政於尹佚曰:「吾何德之行,而民親其上?」對曰:「使之時而敬順之。」王曰:「其度安在?」曰:「如臨深淵,如履薄冰。」王曰:「懼哉!王人乎。」尹佚曰:「天地之間,四海之内,善之則吾畜也,不善則吾仇也。昔夏、商之臣反仇桀、紂,而臣湯、武,宿沙之民皆自攻其君,而歸神農,此世之所明知也。如何其無懼也?」故老子曰:「人之所畏,不可不畏也。」

성왕이 윤일에게 정사를 물었다. 「내가 무슨 덕을 행하여야 백성이 그 위를 친히 하겠는가?」 대답하였다. 「때에 맞게 부리고 공경하여 따르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그 도량이 어디 있는가?」 말하였다. 「깊은 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은 듯하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두렵도다! 사람의 왕 노릇 함이.」 윤일이 말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 사해 안이 착하게 대하면 내 기름이요 착하지 않게 대하면 내 원수입니다. 옛날 하·상의 신하가 도리어 걸·주를 원수로 삼고 탕·무에게 신하 노릇 하였으며 숙사의 백성이 다 스스로 그 임금을 치고 신농에게 돌아갔으니 이는 세상이 밝게 아는 바입니다. 어찌 두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두려워하는 바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蹠之徒問蹠曰:「盜亦有盜乎?」蹠曰:「奚適其無道也!夫意而中藏者,聖也;入先者,勇也;出後者,義也;分均者,仁也;知可否者,智也。五者不備,而能成大盜者,天下無之。」由此觀之,盜賊之心,必托聖人之道而後可行。故老子曰:「絶聖棄智,民利百倍。」

도척의 무리가 도척에게 물었다. 「도적에게도 도가 있습니까?」 도척이 말하였다. 「어디 간들 그 도가 없겠는가! 무릇 뜻하여 감춘 것을 맞힘은 성스러움이요 먼저 듦은 용맹이며 뒤에 나옴은 의요 고르게 나눔은 인이며 될지 안 될지 앎은 슬기다. 이 다섯이 갖추어지지 않고 큰 도적을 이룰 수 있는 이는 천하에 없다.」 이로써 보면 도적의 마음도 반드시 성인의 도에 맡긴 뒤에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성스러움을 끊고 슬기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가 된다」 하였다.

楚將子發好求技道之士。楚有善爲偸者,往見曰:「聞君求技道之士。臣,偸也,願以技齎一卒。」子發聞之,衣不給帶,冠不暇正,出見而禮之。左右諫曰:「偸者,天下之盜也。何爲之禮?」君曰:「此非左右之所得與。」後無幾何,齊興兵伐楚,子發將師以當之,兵三卻。楚賢良大夫皆盡其計而悉其誠,齊師愈強。於是市偸進請曰:「臣有薄技,願爲君行之。」子發曰:「諾」。不問其辭而遣之。偸則夜解齊將軍之幬帳而獻之。子發因使人歸之。曰:「卒有出薪者,得將軍之帷,使歸之於執事。」明又復往,取其枕。子發又使人歸之。明日又復往,取其簪。子發又使歸之。齊師聞之,大駭。將軍與軍吏謀曰:「今日不去,楚君恐取吾頭。」乃還師而去。故曰:無細而能薄,在人君用之也。故老子曰:「不善人,善人之資也。」

초나라 장수 자발이 재주와 도 있는 선비 구하기를 좋아하였다. 초나라에 도둑질을 잘하는 이가 있어 가서 뵙고 말하였다. 「듣건대 임금께서 재주와 도 있는 선비를 구하신다 합니다. 신은 도둑입니다. 재주로 한 군졸에 이바지하기 바랍니다.」 자발이 듣고 옷에 띠를 매지 못하고 관을 바로 할 겨를도 없이 나와 보고 예우하였다. 좌우가 간하였다. 「도둑은 천하의 도적입니다. 어찌 예우하십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이는 좌우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제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치니 자발이 군사를 거느려 맞섰으나 군사가 세 번 물러났다. 초나라의 어질고 좋은 대부가 다 그 꾀를 다하고 그 정성을 다하였으나 제나라 군사가 더욱 강하였다. 이에 저자의 도둑이 나아가 청하였다. 「신에게 얇은 재주가 있으니 임금을 위해 행하기 바랍니다.」 자발이 말하였다. 「그리하라.」 그 말을 묻지 않고 보냈다. 도둑이 곧 밤에 제나라 장군의 휘장을 풀어 바쳤다. 자발이 이에 사람을 시켜 돌려주며 말하였다. 「군졸로 섶하러 나간 이가 있어 장군의 휘장을 얻었기에 일 맡은 이에게 돌려보냅니다.」 이튿날 또 가서 그 베개를 취하니 자발이 또 사람을 시켜 돌려주었다. 이튿날 또 가서 그 비녀를 취하니 자발이 또 돌려주게 하였다. 제나라 군사가 듣고 크게 놀랐다. 장군이 군의 아전과 꾀하여 말하였다. 「오늘 떠나지 않으면 초나라 임금이 내 머리를 취할까 두렵다.」 곧 군사를 돌려 떠났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가늘고 얇아도 능할 수 있음은 임금이 씀에 있다 한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착하지 않은 사람은 착한 사람의 밑천이다」 하였다.

顏回謂仲尼曰:「回益矣。」仲尼曰:「何謂也?」曰:「回忘禮樂矣。」仲尼曰:「可矣。猶未也。」異日復見,曰:「回益矣。」仲尼曰:「何謂也?」曰:「回忘仁義也。」仲尼曰:「可矣。猶未也。」異日復見。曰:「回坐忘矣。」仲尼遽然曰:「何謂坐忘?」顏回曰:「墮支體,黜聰明,離形去知,洞於化通。是謂坐忘。」仲尼曰:「洞則無善也,化則無常矣。而夫子薦賢。丘請從之後。」故老子曰:「載營魄抱一,能無離乎!專氣至柔,能如嬰兒乎!」

안회가 중니에게 말하였다. 「회가 나아졌습니다.」 중니가 말하였다. 「무엇을 이르는가?」 말하였다. 「회가 예악을 잊었습니다.」 중니가 말하였다. 「되었다. 오히려 아직이다.」 다른 날 다시 뵙고 말하였다. 「회가 나아졌습니다.」 중니가 말하였다. 「무엇을 이르는가?」 말하였다. 「회가 인의를 잊었습니다.」 중니가 말하였다. 「되었다. 오히려 아직이다.」 다른 날 다시 뵙고 말하였다. 「회가 앉아서 잊었습니다.」 중니가 흠칫하여 말하였다. 「무엇을 앉아서 잊음이라 하는가?」 안회가 말하였다. 「팔다리를 떨어뜨리고 총명을 물리치며 꼴을 떠나고 앎을 버려 변화에 훤히 통합니다. 이를 앉아서 잊음이라 합니다.」 중니가 말하였다. 「훤하면 착함이 없고 변화하면 늘 그러함이 없다. 그런데 부자가 어진 이를 천거하니 구는 그 뒤를 따르기를 청한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혼백을 싣고 하나를 안아 떠나지 않을 수 있는가! 기운을 오로지하고 지극히 부드러워 아기 같을 수 있는가!」 하였다.

秦穆公興師,將以襲鄭。蹇叔曰:「不可。臣聞襲國者,以車不過百里,以人不過三十里,爲其謀未及發洩也,甲兵未及鋭弊也,糧食未及乏絶也,人民未及疲病也。皆以其氣之髙與其力之盛至,是以犯敵能威。今行數千里,又數絶諸侯之地;以襲國,臣不知其可也。君重圖之。」穆公不聽。蹇叔送師,衰絰而哭之。師遂行,過周而東。鄭賈人絃髙矯鄭伯之命,以十二牛勞秦師而賓之。三師乃懼而謀曰:「吾行數千里以襲人,未至而人已知之。其備必先成,不可襲也。」還師而去。當此之時,晉文公適薨,未葬。先軫言於襄公曰:「昔吾先君與穆公交,天下莫不聞,諸侯莫不知,今君薨未葬,而不吊吾喪,而不假道,是死吾君而弱吾孤也。請撃之。」襄公許諾。先軫舉兵而與秦師遇於殽。大破之,禽其三帥以歸。穆公聞之,素服廟臨,以説於衆。故老子曰:「知而不知,尚矣;不知而知,病也!」

진(秦) 목공이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엄습하려 하였다. 건숙이 말하였다. 「안 됩니다. 신이 들으니 나라를 엄습하는 이는 수레로 백 리를 넘지 않고 사람으로 삼십 리를 넘지 않는다 합니다. 그 꾀가 아직 새지 않고 갑옷과 병기가 아직 날이 닳지 않으며 양식이 아직 다하지 않고 백성이 아직 지쳐 병들지 않게 함입니다. 다 그 기운의 높음과 그 힘의 성함으로 이르니 이 때문에 적을 범하여 위엄이 있습니다. 이제 수천 리를 가고 또 여러 제후의 땅을 지나 나라를 엄습함은 신은 그 옳음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임금께서는 거듭 헤아리십시오.」 목공이 듣지 않았다. 건숙이 군사를 보내며 상복과 질을 하고 곡하였다. 군사가 마침내 가서 주나라를 지나 동쪽으로 갔다. 정나라 장사꾼 현고가 정백의 명이라 꾸며 열두 소로 진(秦)나라 군사를 위로하고 손으로 대접하였다. 세 장수가 곧 두려워 꾀하여 말하였다. 「우리가 수천 리를 가서 남을 엄습하는데 이르기 전에 남이 이미 알았다. 그 대비가 반드시 먼저 이루어졌으니 엄습할 수 없다.」 군사를 돌려 떠났다. 이때를 당하여 진(晉) 문공이 마침 죽어 아직 장사하지 않았다. 선진이 양공에게 말하였다. 「옛날 우리 선군이 목공과 사귐을 천하가 듣지 않음이 없고 제후가 알지 못함이 없습니다. 이제 임금께서 돌아가시어 아직 장사하지 않았는데 우리 상에 조문하지 않고 길을 빌리지도 않으니 이는 우리 임금을 죽은 것으로 여기고 우리 고아를 약하게 여김입니다. 치기를 청합니다.」 양공이 허락하였다. 선진이 군사를 들어 진(秦)나라 군사와 효에서 만나 크게 깨뜨리고 그 세 장수를 사로잡아 돌아왔다. 목공이 듣고 흰옷으로 사당에 임하여 무리에게 사죄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알면서 알지 못한다 함은 높고 알지 못하면서 안다 함은 병이다!」 하였다.

齊王后死,王欲置後而未定。使群臣議。薛公欲中王之意,因獻十珥而美其一。旦日,因問美珥之所在。因勸立以爲王后。齊王大説,遂尊重薛公。故人主之意欲見於外,則爲人臣之所制。故老子曰:「塞其兌,閉其門,終身不勤。」

제나라 왕후가 죽어 왕이 후비를 두려 하였으나 아직 정하지 못하였다. 뭇 신하에게 의논하게 하였다. 설공이 왕의 뜻에 맞추려 하여 이에 귀고리 열 벌을 바치되 그 하나를 아름답게 하였다. 이튿날 아름다운 귀고리가 있는 곳을 물었다. 그로써 세워 왕후로 삼기를 권하였다. 제나라 왕이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설공을 높이고 무겁게 하였다. 그러므로 임금의 뜻과 바람이 밖에 보이면 신하 된 이에게 제어된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으면 종신토록 수고롭지 않다」 하였다.

盧敖游乎北海,經乎太陰,入乎玄闕,至於蒙穀之上。見一士焉,深目而玄鬢,涙注而鳶肩,豐上而殺下。軒軒然方迎風而舞。顧見盧敖,慢然下其臂,遁逃乎碑。盧敖就而視之,方倦龜殼而食蛤梨。盧敖與之語曰:「唯敖爲背群離黨,窮觀於六合之外者,非敖而已乎?敖幼而好遊,至長不渝。周行四極,唯北陰之未窺。今卒睹夫子於是,子殆可與敖爲友乎?」若士者,齤然而笑曰:「嘻!子,中州之民,寧肯而遠至此,此猶光乎日月而載列星,陰陽之所行,四時之所生,其比夫不名之地,猶窔奧也。若我南遊乎岡㝗之野,北息乎沉墨之鄕,西窮窅冥之党,東關鴻蒙之光,此其下無地而上無天,聽焉無聞,視焉無眴。此其外猶有汰沃之汜。其餘一舉而千萬里,吾猶未能之在。今子游始於此,乃語窮觀,豈不亦遠哉!然子處矣!吾與汗漫期於九垓之外,吾不可以久駐。」若士舉臂而竦身,遂入雲中。盧敖仰而視之,弗見,乃止駕,柸治,悖若有喪也。曰:「吾比夫子,猶黃鵠與壤蟲也。終日行,不離咫尺,而自以爲遠。豈不悲哉!」故莊子曰:「小年不及大年,小知不及大知,朝菌不知晦朔,蟪蛄不知春秋。」此言明之有所不見也。

노오가 북해에 노닐고 태음을 지나 현궐에 들어 몽곡 위에 이르렀다. 한 선비를 보니 눈이 깊고 살쩍이 검으며 눈물이 흐르고 어깨가 솔개 같으며 위가 풍부하고 아래가 깎였다. 훨훨 바야흐로 바람을 맞아 춤추었다. 돌아보아 노오를 보고 느릿하게 그 팔을 내리고 비석 뒤로 달아나 숨었다. 노오가 나아가 보니 바야흐로 거북 껍질에 기대어 조개를 먹고 있었다. 노오가 더불어 말하였다. 「오직 나만이 무리를 등지고 동아리를 떠나 육합 밖을 궁구히 보았으니 나뿐이 아니겠는가? 나는 어려서 노닐기를 좋아하여 자라서도 변하지 않았소. 사방 끝을 두루 다니되 오직 북쪽 그늘만 엿보지 못하였는데 이제 마침내 여기서 부자를 뵈니 그대는 아마 나와 벗이 될 만하지 않겠소?」 그 선비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하였다. 「허! 그대는 중주의 백성인데 어찌 여기까지 멀리 왔는가. 여기는 오히려 해와 달이 빛나고 별을 이며 음양이 다니는 곳이요 사철이 나는 곳이니 그 이름 없는 땅에 견주면 오히려 방구석일 뿐이다. 나 같은 이는 남으로 강랑의 들에 노닐고 북으로 침묵의 고을에 쉬며 서로 요명의 마을을 궁구하고 동으로 홍몽의 빛을 지나니 그 아래에 땅이 없고 위에 하늘이 없어 들어도 들림이 없고 보아도 눈에 띔이 없다. 그 밖에 오히려 태옥의 물가가 있다. 그 나머지는 한 번 들면 천만 리인데 나도 오히려 거기 있을 수 없다. 이제 그대가 노닒이 여기서 비롯하는데 곧 궁구히 보았다 말하니 어찌 또한 멀지 않은가! 그러나 그대는 여기 머무시오! 나는 한만과 구해 밖에서 기약하였으니 오래 머물 수 없소.」 그 선비가 팔을 들고 몸을 솟구쳐 마침내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노오가 우러러보아도 보이지 않아 이에 멍에를 멈추고 넋을 놓아 잃은 듯 어리둥절하여 말하였다. 「내 부자에 견주면 누런 고니와 흙벌레 같다. 종일 가도 지척을 떠나지 못하면서 스스로 멀다 여겼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그러므로 장자가 말하기를 「작은 해는 큰 해에 미치지 못하고 작은 슬기는 큰 슬기에 미치지 못하니 아침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모른다」 하였다. 이는 밝음에 보지 못하는 바가 있음을 말한다.

季子治亶父三年,而巫馬期絻衣短褐,易容貌,往觀化焉。見得魚釋之。巫馬期問焉,曰:「凡子所爲魚者,欲得也。今得而釋之,何也?」漁者對曰:「季子不欲人取小魚也。所得者小魚,是以釋之。」巫馬期歸,以報孔子曰:「季子之德至矣。使人暗行,若有嚴刑在其側者。季子何以至於此?」孔子曰:「丘嘗問之以治,言曰:『誡於此者刑於彼。』季子必行此術也。」故老子曰:「去彼取此。」

계자가 단보를 세 해 다스리니 무마기가 갖옷을 벗고 짧은 갈옷을 입고 얼굴 모습을 바꾸어 가서 교화를 보았다. 고기를 얻고도 놓아주는 것을 보았다. 무마기가 물었다. 「무릇 그대가 고기를 잡는 까닭은 얻으려 함이오. 이제 얻고도 놓아줌은 어째서요?」 고기 잡는 이가 대답하였다. 「계자는 사람이 작은 고기 잡음을 바라지 않소. 얻은 것이 작은 고기라 이 때문에 놓아주오.」 무마기가 돌아가 공자에게 아뢰었다. 「계자의 덕이 지극합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어두운 데서 행하되 엄한 형벌이 그 곁에 있는 듯하게 합니다. 계자가 무엇으로 여기 이르렀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구가 일찍이 다스림을 물었더니 말하기를 『여기서 경계하면 저기서 형벌한다』 하였다. 계자가 반드시 이 술을 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하였다.

罔兩問於景曰:「昭昭者,神明也?」景曰:「非也。」罔兩曰:「子何以知之?」景曰:「扶桑受謝,日照宇宙,昭昭之光,輝燭四海,闔戸塞牖,則無由入矣。若神明,四通並流,無所不極,上際於天,下蟠於地。化育萬物而不可爲象,俯仰之間而撫四海之外。昭昭何足以明之!」故老子曰:「天下之至柔,馳騁天下之至堅。」

망량이 그림자에게 물었다. 「밝고 밝은 것은 신명입니까?」 그림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망량이 말하였다. 「그대는 무엇으로 그것을 아오?」 그림자가 말하였다. 「부상이 물러남을 받아 해가 우주를 비추어 밝고 밝은 빛이 사해를 빛나게 하나 지게문을 닫고 창을 막으면 들어올 길이 없다. 신명 같은 것은 사방에 통하고 아울러 흘러 지극하지 않은 바가 없으니 위로 하늘에 닿고 아래로 땅에 서린다. 만물을 빚어 기르되 형상 지을 수 없고 굽어보고 우러르는 사이에 사해 밖을 어루만진다. 밝고 밝음이 어찌 그것을 밝히기에 넉넉하겠는가!」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움이 천하의 지극히 굳음을 달린다」 하였다.

光耀問於無有曰:」子果有乎?其果無有乎?」無有弗應也。光耀不得問,而就視其狀貌,冥然、忽然,視之不見其形,聽之不聞其聲,搏之不可得,望之不可極也。光耀曰:「貴矣哉!孰能至於此乎!予能有無矣,未能無無也;及其爲無無,又何從至於此哉!」故老子曰:「無有入於無間,吾是以知無爲之有益也。」

광요가 무유에게 물었다. 「그대는 과연 있는가. 그 과연 없는가?」 무유가 응하지 않았다. 광요가 물음을 얻지 못하고 나아가 그 모양과 모습을 보니 어둡고 홀연하여 보아도 그 꼴이 보이지 않고 들어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잡아도 얻을 수 없고 바라보아도 끝이 없었다. 광요가 말하였다. 「귀하도다! 누가 여기 이를 수 있으랴! 나는 없음을 있게 할 수 있으나 아직 없음을 없게 할 수 없다. 그 없음을 없게 함에 미쳐서는 또 어디로부터 여기 이르겠는가!」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있음 없는 것이 틈 없는 데 드니 내 이로써 함이 없음의 이로움을 안다」 하였다.

白公勝慮亂。罷朝而立,倒杖策,錣上貫頤,血流至地而弗知也。鄭人聞之,曰:「頤之忘,將何不忘哉!」此言精神之越於外,智慮之蕩於内,則不能漏理其形也。是故神之所用者遠,則所遺者近也。故老子曰:「不出戸以知天下,不窺牖以見天道。其出彌遠,其知彌少。」此之謂也。

백공승이 난을 꾀하였다. 조회를 마치고 서서 지팡이를 거꾸로 짚어 그 끝이 위로 턱을 꿰어 피가 땅에 흘러도 알지 못하였다. 정나라 사람이 듣고 말하였다. 「턱을 잊었으니 장차 무엇인들 잊지 않겠는가!」 이는 정신이 밖으로 넘고 슬기와 생각이 안에서 흔들리면 그 꼴을 새어 다스릴 수 없음을 말한다. 이 때문에 신이 쓰이는 바가 멀면 버리는 바가 가깝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지게문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알고 창을 엿보지 않고 하늘의 도를 본다. 그 나감이 멀수록 그 앎이 적다」 하였다. 이를 이름이다.

秦皇帝得天下,恐不能守,發邊戍,築長城,修關梁,設障塞,具傳車,置邊吏。然劉氏奪之,若轉閉錘。昔者武王伐紂,破之牧野,乃封比干之墓,表商容之閭,柴箕子之門,朝成湯之廟,發钜橋之粟,散鹿臺之錢,破鼓折枹,馳弓絶絃,去舍露宿以示平易,解劍帶笏以示無仇。於此天下歌謠而樂之,諸侯執幣相朝,三十四世不奪。故老子曰:「善閉者,無關鍵而不可開也;善結者,無繩約而不可解也。」

진 황제가 천하를 얻고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변방 수자리를 내고 장성을 쌓으며 관문과 다리를 닦고 요새를 베풀며 역마 수레를 갖추고 변방 아전을 두었다. 그러나 유씨가 빼앗음이 문빗장 돌리듯 하였다. 옛날 무왕이 주를 쳐 목야에서 깨뜨리고 곧 비간의 무덤을 봉하며 상용의 마을에 표하고 기자의 문에 섶을 쌓아 제사하며 성탕의 사당에 조회하고 거교의 조를 내며 녹대의 돈을 흩고 북을 깨뜨리고 북채를 꺾으며 활을 늦추고 줄을 끊으며 집을 떠나 이슬 아래 자서 평이함을 보이고 검을 풀고 홀을 띠어 원수 없음을 보였다. 이에 천하가 노래하여 즐거워하고 제후가 폐백을 잡고 서로 조회하여 서른네 대에 빼앗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잘 닫는 이는 빗장이 없어도 열 수 없고 잘 매는 이는 노끈 묶음이 없어도 풀 수 없다」 하였다.

尹需學禦,三年而無得焉。私自苦痛,常寢想之。中夜,夢受秋駕於師。明日往朝,師望之,謂之曰:「吾非愛道於子也,恐子不可予也。今日教子以秋駕。」尹需反走,北面再拜曰:「臣有天幸,今夕固夢受之。」故老子曰:「致虚極,守靜篤,萬物並作,吾以觀其復也。」

윤수가 수레 몰기를 배워 세 해에 얻음이 없었다. 남몰래 스스로 괴로워 늘 자면서 그것을 생각하였다. 한밤중에 스승에게 추가를 받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 가서 뵈니 스승이 바라보고 말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도를 아낀 것이 아니라 그대에게 줄 수 없을까 두려웠다. 오늘 그대에게 추가를 가르치겠다.」 윤수가 돌아 물러나 북면하여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신에게 하늘의 다행이 있어 오늘 저녁 본디 꿈에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빔을 이르게 함이 극에 이르고 고요함을 지킴이 도타우면 만물이 아울러 일어나되 내 그 돌아감을 본다」 하였다.

昔孫叔敖三得令尹,無喜志;三去令尹,無憂色。延陵季子,呉人願一以爲王而不肯;許由,讓天下而弗受;晏子與崔杼盟,臨死地不變其儀;此皆有所遠通也。精神通於死生,則物孰能惑之!荊有佽非,得寶劍於干隊,還反度江,至於中流,陽侯之波,兩蛟挾繞其船,佽非謂枻船者曰:「嘗有如此而得活者乎?」對曰:「未嘗見也。」於是佽非瞑目,勃然攘臂拔劍曰:「武士可以仁義之禮説也,不可劫而奪也。此江中之腐肉朽骨,棄劍而已。余有奚愛焉!」赴江刺蛟,遂斷其頭,船中人盡活。風波畢除,荊爵爲執圭。孔子聞之,曰:「夫善哉!腐肉朽骨棄劍者,佽非之謂乎!」故老子曰:「夫唯無以生爲者,是賢於貴生焉。」

옛날 손숙오는 세 번 영윤을 얻어도 기뻐하는 뜻이 없고 세 번 영윤에서 떠나도 근심하는 빛이 없었다. 연릉계자는 오나라 사람이 한결같이 왕 삼기를 바랐으나 즐기지 않았고 허유는 천하를 사양하여도 받지 않았으며 안자는 최저와 맹세하며 죽을 땅에 임하여도 그 위의를 바꾸지 않았다. 이는 다 멀리 통한 바가 있어서다. 정신이 죽음과 삶에 통하면 물건이 무엇이 홀릴 수 있으랴! 초나라에 차비가 있어 간대에서 보검을 얻고 돌아와 강을 건너다가 중류에 이르니 양후의 물결에 두 교룡이 그 배를 끼고 둘렀다. 차비가 배 젓는 이에게 말하였다. 「일찍이 이 같은 일이 있고도 산 이가 있는가?」 대답하였다. 「일찍이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차비가 눈을 감았다가 발끈 팔을 걷고 칼을 뽑아 말하였다. 「무사는 인의의 예로 달랠 수 있으나 겁주어 빼앗을 수 없다. 이는 강 가운데 썩은 살과 삭은 뼈이니 검을 버릴 뿐이다. 내 무엇을 아끼랴!」 강에 뛰어들어 교룡을 찔러 마침내 그 머리를 끊으니 배 안 사람이 다 살았다. 바람과 물결이 다 없어지고 초나라가 작위를 집규로 하였다. 공자가 듣고 말하였다. 「무릇 착하도다! 썩은 살과 삭은 뼈라며 검을 버린 이는 차비를 이름인가!」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무릇 오직 삶을 위함이 없는 이가 삶을 귀히 여김보다 어질다」 하였다.

齊人淳于髡以從説魏王,魏王辯之。約車十乘,將使荊,辭而行。人以爲從未足也,復以衡説,其辭若然。魏王乃止其行而疎其身。失從心志,而又不能成衡之事。是其所以固也。夫言有宗,事有本,失其宗本,技能雖多,不若其寡也。故周鼎著倕,而使齧其指,先王以見大巧之不可也。故愼子曰:「匠人知爲門,能以門,所以不知門也,故必杜,然後能門」。

제나라 사람 순우곤이 합종으로 위나라 왕을 달래니 위나라 왕이 그것을 옳게 여겼다. 수레 열 승을 매어 장차 초나라에 사신 보내려 하여 하직하고 떠났다. 사람들이 합종이 넉넉하지 않다 여기니 다시 연횡으로 달래는데 그 말이 또한 그러하였다. 위나라 왕이 곧 그 감을 그치게 하고 그 몸을 멀리하였다. 합종의 뜻을 잃고 또 연횡의 일도 이룰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막힌 까닭이다. 무릇 말에 종주가 있고 일에 근본이 있으니 그 종주와 근본을 잃으면 재주와 능함이 비록 많아도 그 적음만 못하다. 그러므로 주나라 솥에 수를 새겨 그 손가락을 물게 하였으니 선왕이 큰 교묘함이 안 됨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말하기를 「장인은 문 만들 줄 알아 문으로 할 수 있으니 문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막은 뒤에 문이 될 수 있다」 하였다.

墨者有田鳩者,欲見秦惠王。約車申轅,留於秦,周年不得見。客有言之楚王者,往見楚王,楚王甚悅之。予以節,使於秦。至,因見。予之將軍之節。惠王見而説之。出舍,喟然而歎,告從者曰:「吾留秦三年不得見,不識道之可以從楚也。」物故有近之而遠,遠之而近者。故大人之行,不掩以繩,至所極而已矣。此所謂《管子》「梟飛而維繩」者。

묵가에 전구라는 이가 있어 진 혜왕을 뵈려 하였다. 수레를 매고 끌채를 폈으나 진나라에 머물러 한 해가 되도록 뵐 수 없었다. 손 가운데 초나라 왕에게 말한 이가 있어 가서 초나라 왕을 뵈니 초나라 왕이 매우 기뻐하였다. 부절을 주어 진나라에 사신 보내니 이르러 그로써 뵈었다. 장군의 부절을 주니 혜왕이 보고 기뻐하였다. 나와 묵으며 한숨 쉬고 탄식하여 따르는 이에게 일렀다. 「내가 진나라에 세 해 머물러도 뵐 수 없었는데 길이 초나라로 좇을 수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물건에 본디 가까우면서 멀고 멀면서 가까운 것이 있다. 그러므로 큰 사람의 행함은 먹줄로 가리지 않고 극한 바에 이를 뿐이다. 이것이 이른바 「관자」의 「올빼미가 날매 노끈을 맨다」는 것이다.

灃水之深千仞,而不受塵垢,投金鐵針焉,則形見於外。非不深且淸也,魚鱉龍蛇莫之肯歸也。是故石上不生五穀,禿山不遊麋鹿,無所陰蔽隱也。昔趙文子問於叔向曰:「晉六將軍,其孰先亡乎?」對曰:「中行、知氏。」文子曰:「何乎?」對曰:「其爲政也,以苛以察,以切爲明,以刻下爲忠,以計多爲功,譬之猶廓革者也。廓之,大則大矣,裂之道也。」故老子曰:「其政悶悶,其民純純,其政察察,其民缺缺。」

풍수의 깊이가 천 길인데 티끌과 때를 받지 않아 쇠 바늘을 던지면 꼴이 밖에 보인다. 깊고 또 맑지 않음이 아니나 고기와 자라와 용과 뱀이 돌아오기를 즐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돌 위에 오곡이 나지 않고 민둥산에 사슴이 노닐지 않으니 그늘로 가려 숨을 데가 없어서다. 옛날 조문자가 숙향에게 물었다. 「진나라 여섯 장군 가운데 누가 먼저 망하겠는가?」 대답하였다. 「중항씨와 지씨입니다.」 문자가 말하였다. 「어째서인가?」 대답하였다. 「그 정사가 가혹함과 살핌으로 하고 절박함을 밝음으로 삼으며 아래를 깎음을 충성으로 삼고 헤아림 많음을 공으로 삼으니 비유하면 가죽을 넓히는 이와 같습니다. 넓히면 크기는 크나 찢어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그 정사가 어수룩하면 그 백성이 순박하고 그 정사가 꼼꼼하면 그 백성이 이지러진다」 하였다.

景公謂太卜曰:「子之道何能?」對曰:「能動地。」晏子往見公,公曰:「寡人問太卜曰:『子之道何能?』對曰:『能動地。』地可動乎?」晏子默然不對。出,見太卜,曰:「昔吾見句星在房、心之間,地其動乎?」太卜曰:「然」。晏子出。太卜走往見公曰:「臣非能動地,地固將動也。」田子陽聞之,曰:「晏子默然不對者,不欲太卜之死;往見太卜者,恐公之欺也。晏子可謂忠於上而惠於下矣。」故老子曰:「方而不割,廉而不劌。」

경공이 태복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도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대답하였다. 「땅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안자가 가서 공을 뵈니 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태복에게 『그대의 도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물으니 『땅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였다. 땅을 움직일 수 있는가?」 안자가 잠잠히 대답하지 않았다. 나가 태복을 보고 말하였다. 「전에 내가 구성이 방수와 심수 사이에 있음을 보았는데 땅이 움직이겠는가?」 태복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안자가 나갔다. 태복이 달려가 공을 뵙고 말하였다. 「신이 땅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이 본디 장차 움직이려는 것입니다.」 전자양이 듣고 말하였다. 「안자가 잠잠히 대답하지 않은 것은 태복이 죽기를 바라지 않아서요 가서 태복을 본 것은 공이 속을까 두려워서다. 안자는 위에 충성되고 아래에 은혜롭다 할 만하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모나되 가르지 않고 청렴하되 상하게 하지 않는다」 하였다.

魏文侯觴諸大夫於曲陽,飲酒酣,文侯喟然歎曰:「吾獨無豫讓以爲臣乎?」蹇重舉白而進之,曰:「請浮君。」君曰:「何也?」對曰:「臣聞之,有命之父母,不知孝子;有道之君,不知忠臣。夫豫讓之君,亦何如哉?」文侯受觴而飲釂不獻。曰:「無管仲、鮑叔以爲臣,故有豫讓之功。」故老子曰:「國家昏亂有忠臣。」

위 문후가 곡양에서 여러 대부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술이 무르익자 문후가 한숨 쉬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나만 홀로 예양 같은 신하가 없는가?」 건중이 흰 잔을 들어 나아가 말하였다. 「임금께 벌주를 드리기를 청합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어째서인가?」 대답하였다. 「신이 들으니 명 있는 부모는 효자를 알지 못하고 도 있는 임금은 충신을 알지 못한다 합니다. 무릇 예양의 임금은 또한 어떠하였습니까?」 문후가 잔을 받아 다 마시고 올리지 않으며 말하였다. 「관중·포숙 같은 신하가 없었으므로 예양의 공이 있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나라와 집이 어둡고 어지러우면 충신이 있다」 하였다.

孔子觀桓公之廟,有器焉,謂之宥巵。孔子曰:善哉!予得見此器。」顧曰:「弟子取水。」水至,灌之。其中則正,其盈則覆。孔子造然革容曰:「善哉,持盈者乎!」子貢在側曰:「請問持盈。」曰:「益而損之。」曰:』何謂益而損之?」曰:「夫物盛而衰,樂極則悲,日中而移,月盈而虧。是故聰明睿智,守之以愚;多聞博辯,守之以陋;武力毅勇,守之以畏;富貴廣大,守之以儉;德施天下,守之以讓。此五者,先王所以守天下而弗失也;反此五者,未嘗不危也。」故老子曰:「服此道者不欲盈。夫唯不盈,故能弊而不新成。」

공자가 환공의 사당을 보는데 그릇이 있어 유치라 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좋구나! 내 이 그릇을 봄을 얻었다.」 돌아보며 말하였다. 「제자는 물을 취하라.」 물이 이르러 부으니 그 가운데면 바르고 그 차면 엎어졌다. 공자가 놀라 낯빛을 고치며 말하였다. 「좋구나, 참을 지킴이여!」 자공이 곁에 있다가 말하였다. 「참을 지킴을 묻습니다.」 말하였다. 「더하면 덜어 낸다.」 말하였다. 「무엇을 더하면 덜어 냄이라 합니까?」 말하였다. 「무릇 물건은 성하면 쇠하고 즐거움이 극하면 슬프며 해는 가운데면 옮기고 달은 차면 이지러진다. 이 때문에 총명하고 슬기로우면 어리석음으로 지키고 널리 듣고 널리 변론하면 좁음으로 지키며 무력이 굳세고 용맹하면 두려움으로 지키고 부귀가 넓고 크면 검소함으로 지키며 덕이 천하에 베풀어지면 사양으로 지킨다. 이 다섯은 선왕이 천하를 지켜 잃지 않은 까닭이요 이 다섯에 반하면 위태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이 도를 입은 이는 채우려 하지 않는다. 무릇 오직 채우지 않으므로 낡아도 새로 이루지 않을 수 있다」 하였다.

武王問太公曰:「寡人伐紂天下,是臣殺其主而下伐其上也。吾恐後世之用兵不休,鬥爭不已,爲之奈何?」太公曰:「甚善,王之問也!夫未得獸者,唯恐其創之小也;已得之,唯恐傷肉之多也。王若欲久持之,則塞民於兌,道全爲無用之事,煩擾之教,彼皆樂其業,供其情,昭昭而道冥冥,於是乃去其瞀而載之木,解其劍而帶之笏。爲之三年之喪,令類不蕃,髙辭卑讓,使民不爭。酒肉以通之,竽瑟以娯之,鬼神以畏之,繁文滋禮以弇其質,厚葬久喪以亶其家,含珠鱗、施綸組以貧其財,深鑿髙壟以盡其力,家貧族少,慮患者貧,以此移風,可以持天下弗失。」故老子曰:「化而欲作,吾將鎭之以無名之樸也。」

무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과인이 주를 쳐 천하를 얻으니 이는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아래가 그 위를 침이다. 나는 후세에 군사 씀이 그치지 않고 다툼이 마지않을까 두려운데 어찌하리까?」 태공이 말하였다. 「매우 좋습니다, 왕의 물으심이! 무릇 아직 짐승을 얻지 못한 이는 오직 그 상처가 작을까 두려워하고 이미 얻으면 오직 살 상함이 많을까 두려워합니다. 왕께서 만약 오래 지니려 하시면 백성을 구멍에서 막고 온전히 쓸모없는 일과 번거로운 가르침으로 이끌어 저들이 다 그 업을 즐기고 그 정에 이바지하게 하며 밝고 밝게 하되 어둡고 어두움으로 이끄십시오. 이에 곧 그 투구를 벗기고 나무를 이게 하며 그 검을 풀고 홀을 띠게 하십시오. 삼년상을 만들어 무리가 번성하지 않게 하고 높이 사양하고 낮추어 겸양하여 백성이 다투지 않게 하십시오. 술과 고기로 통하게 하고 우와 비파로 즐겁게 하며 귀신으로 두렵게 하고 번거로운 글과 불어난 예로 그 바탕을 가리며 두터운 장사와 오랜 상으로 그 집을 다하게 하고 구슬을 물리고 비늘처럼 옥을 베풀며 끈으로 그 재물을 가난하게 하고 깊이 파고 봉분을 높여 그 힘을 다하게 하십시오. 집이 가난하고 겨레가 적어지며 근심을 헤아리는 이가 가난해지니 이로써 풍속을 옮기면 천하를 지녀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변화하며 지으려 하면 내 장차 이름 없는 통나무로 누르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