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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山訓

회남자 淮南子 · 유안(劉安)과 문객들 · 기원전 139년 무렵 · 단락 18 · 한자 5,807자 · 낭독 23.2분

「회남자」 설산훈 「說山訓」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나라 회남왕 유안이 문객들과 함께 엮은 책이다. 도덕경·장자·열자에 이은 도가의 넷째 자리에 놓이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손이 나누어 쓴 백과에 가깝다. 하늘과 땅의 얼개(천문·지형·시칙), 사람의 정신과 다스림, 병법과 잠언까지 한 집에 다 들여놓았다. 항아가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처음 적힌 곳이 남명훈이다. 지금 전하는 달 신화의 뿌리가 여기 한 줄이다. 설산훈과 설림훈 두 편은 짧은 잠언을 줄줄이 늘어놓았고, 도응훈은 이야기 쉰다섯 도막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로 끝을 맺는다. 옛 이야기를 도덕경 구절에 하나씩 맞춰 본 셈이다. 시칙훈은 동방의 끝을 「갈석산을 지나 조선을 지난다」로 잡고, 인간훈은 진 시황이 긴 성을 쌓아 「동으로 조선에 맺었다」고 적는다. 한나라 초에 조선이 어디쯤으로 여겨졌는지 보여 주는 두 자리다.

魄問於魂曰:「道何以為體?」曰:「以無有為體。」魄曰:「無有有形乎?」魂曰:「無有。」「何得而聞也?」魂曰:「吾直有所遇之耳!視之無形,聽之無聲,謂之幽冥。幽冥者,所以喻道,而非道也。」魄曰:「吾聞得之矣!乃內視而自反也。」魂曰:「凡得道者,形不可得而見,名不可得而揚。今汝已有形名矣,何道之所能乎!」魄曰:「言者,獨何為者?」「吾將反吾宗矣。」魄反顧,魂忽然不見,反而自存,亦以淪於無形矣。人不小學,不大迷;不小慧,不大愚。人莫鑑於沫雨,而鑑於澄水者,以其休止不蕩也。詹公之釣,千歲之鯉不能避;曾子攀柩車,引輴者為之止也;老母行歌而動申喜,精之至也。瓠巴鼓瑟,而淫魚出聽;伯牙鼓琴,駟馬仰秣;介子歌龍蛇,而文君垂泣。

백이 혼에게 물었다. 「도는 무엇으로 몸을 삼는가?」 말하였다. 「있음 없음으로 몸을 삼는다.」 백이 말하였다. 「있음 없음에 꼴이 있는가?」 혼이 말하였다. 「있음이 없다.」 「어떻게 얻어 들었는가?」 혼이 말하였다. 「내 다만 만난 바가 있을 뿐이다! 보아도 꼴이 없고 들어도 소리가 없음을 그윽하고 어둡다 한다. 그윽하고 어두움이란 도를 깨우치는 까닭이요 도가 아니다.」 백이 말하였다. 「내 얻어 들었다! 곧 안으로 보아 스스로 돌이키겠다.」 혼이 말하였다. 「무릇 도를 얻은 이는 꼴을 얻어 볼 수 없고 이름을 얻어 드날릴 수 없다. 이제 너는 이미 꼴과 이름이 있으니 어느 도를 할 수 있으랴!」 백이 말하였다. 「말하는 것은 홀로 무엇을 하는 것인가?」 「내 장차 내 종주로 돌아가겠다.」 백이 돌아보니 혼이 홀연히 보이지 않아 돌아와 스스로 살피니 또한 꼴 없음에 잠겼다. 사람은 조금 배우지 않으면 크게 홀리지 않고 조금 지혜롭지 않으면 크게 어리석지 않다. 사람이 거품 이는 빗물에 비추어 보지 않고 맑은 물에 비추어 봄은 그것이 쉬어 그쳐 흔들리지 않아서다. 첨공의 낚시는 천 해 묵은 잉어도 피할 수 없었고 증자가 널 실은 수레를 붙들자 상여 끄는 이가 그 때문에 그쳤으며 늙은 어미가 노래하며 가서 신희를 움직였으니 정성의 지극함이다. 호파가 비파를 타자 물에 잠긴 고기가 나와 들었고 백아가 거문고를 타자 네 말이 고개를 들고 꼴을 먹었으며 개자추가 용과 뱀을 노래하자 문공이 눈물을 드리웠다.

故玉在山而草木潤,淵生珠而岸不枯。螾無筋骨之強,爪牙之利,上食晞堁,下飲黃泉,用心一也。清之為明,杯水見眸子;濁之為闇,河水不見太山。視日者眩,聽雷者聾,人無為則治,有為則傷。無為而治者,載無也。為者,不能有也;不能無為者,不能有為也。人無言而神,有言者則傷。無言而神者載無,有言則傷其神。之神者,鼻之所以息,耳之所以聽,終以其無用者為用矣。物莫不因其所有而用其所無,以為不信,視籟與竽。念慮者不得臥,止念慮,則有為其所止矣。兩者俱忘,則至德純矣。聖人終身言治,所用者非其言也,用所以言也。歌者有詩,然使人善之者,非其詩也。鸚鵡能言,而不可使長。是何則?得其所言,而不得其所以言。

그러므로 옥이 산에 있으면 풀과 나무가 윤택하고 못에 구슬이 나면 언덕이 마르지 않는다. 지렁이는 힘줄과 뼈의 강함과 발톱과 어금니의 날카로움이 없으나 위로 마른 흙을 먹고 아래로 누런 샘을 마시니 마음 씀이 하나여서다. 맑으면 밝음이 되어 잔 물에도 눈동자가 보이고 흐리면 어두움이 되어 하수의 물에도 태산이 보이지 않는다. 해를 보는 이는 아찔하고 우레를 듣는 이는 귀먹으니 사람은 함이 없으면 다스려지고 함이 있으면 상한다. 함이 없어 다스려지는 이는 없음을 싣는다. 하는 이는 둘 수 없고 함이 없을 수 없는 이는 함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은 말이 없으면 신령하고 말이 있으면 상한다. 말이 없어 신령한 이는 없음을 싣고 말이 있으면 그 신을 상한다. 그 신이란 코가 숨 쉬는 까닭이요 귀가 듣는 까닭이니 마침내 그 쓸모없는 것으로 쓰임을 삼는다. 물건은 그 있는 바를 따라 그 없는 바를 쓰지 않음이 없으니 믿지 않겠거든 피리와 우를 보라. 생각하고 헤아리는 이는 눕지 못하니 생각과 헤아림을 그치면 그 그친 바를 함이 있다. 둘 다 잊으면 지극한 덕이 순수하다. 성인이 종신토록 다스림을 말하나 쓰는 바는 그 말이 아니라 말하는 까닭을 쓴다. 노래하는 이에게 시가 있으나 사람으로 좋아하게 하는 것은 그 시가 아니다. 앵무는 말할 수 있으나 길게 하게 할 수 없다. 이는 어째서인가. 그 말하는 바는 얻고 그 말하는 까닭은 얻지 못해서다.

故循跡者,非能生跡者也。神蛇能斷而復續,而不能使人勿斷也。神龜能見夢元王,而不能自出漁者之籠。四方皆道之門戶牖嚮也,在所從闚之。故釣可以教騎,騎可以教御,御可以教刺舟。越人學遠射,參天而發,適在五步之內,不易儀也。世已變矣,而守其故,譬猶越人之射也。月望,日奪其光,陰不可以乘陽也。日出星不見,不能與之爭光也。故末不可以強於本,指不可以大於臂。下輕上重,其覆必易。一淵不兩鮫。水定則清正,動則失平。故惟不動,則所以無不動也。江、河所以能長百谷者,能下之也。夫惟能下之,是以能上之。天下莫相憎於膠漆,而莫相愛於冰炭。膠漆相賊,冰炭相息也。牆之壞,愈其立也,冰之泮,愈其凝也,以其反宗。泰山之容,巍巍然高,去之千里,不見埵堁,遠之故也。秋豪之末,淪於不測。

그러므로 자취를 따르는 이는 자취를 낼 수 있는 이가 아니다. 신령한 뱀은 끊겨도 다시 이을 수 있으나 사람이 끊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신령한 거북은 원왕에게 꿈에 보일 수 있으나 스스로 어부의 광주리를 나올 수 없다. 사방이 다 도의 문과 지게문과 창과 향함이니 좇아 엿보는 바에 있다. 그러므로 낚시로 말타기를 가르칠 수 있고 말타기로 수레몰이를 가르칠 수 있으며 수레몰이로 배 젓기를 가르칠 수 있다. 월나라 사람이 멀리 쏘기를 배워 하늘을 참고하여 발하는데 마침 다섯 걸음 안에 있어도 그 겨눔을 바꾸지 않았다. 세상이 이미 변하였는데 그 옛것을 지킴은 비유하면 월나라 사람의 쏨과 같다. 달이 보름이면 해가 그 빛을 빼앗으니 음은 양을 탈 수 없다. 해가 나면 별이 보이지 않으니 더불어 빛을 다툴 수 없다. 그러므로 끝은 근본보다 강할 수 없고 손가락은 팔보다 클 수 없다. 아래가 가볍고 위가 무거우면 그 엎어짐이 반드시 쉽다. 한 못에 두 교룡이 없다. 물이 정해지면 맑고 바르며 움직이면 평평함을 잃는다. 그러므로 오직 움직이지 않아야 움직이지 않음이 없는 까닭이 된다. 강과 하수가 온갖 골짜기의 어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낮출 수 있어서다. 무릇 오직 낮출 수 있으므로 이 때문에 오를 수 있다. 천하에 아교와 옻보다 서로 미워하는 것이 없고 얼음과 숯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없다. 아교와 옻은 서로 해치고 얼음과 숯은 서로 그치게 한다. 담이 무너짐이 그 섬보다 낫고 얼음이 풀림이 그 엉김보다 나음은 그 종주로 돌아가서다. 태산의 모습은 우뚝하여 높으나 천 리를 떠나면 흙무더기도 보이지 않으니 멀어서다. 가을 터럭의 끝은 헤아릴 수 없음에 잠긴다.

是故小不可以為內者,大不可以為外矣。蘭生幽谷,不為莫服而不芳。舟在江海,不為莫乘而不浮。君子行義,不為莫知而止休。夫玉潤澤而有光,其聲舒揚,渙乎其有似也。無內無外,不匿瑕穢,近之而濡,望之而隧。夫照鏡見眸子,微察秋豪,明照晦冥。故和氏之璧,隨侯之珠,出於山淵之精,君子服之,順祥以安寧,侯王寶之,為天下正。陳成子恒之劫子淵捷也,子罕之辭其所不欲而得其所欲,孔子之見黏蟬者,白公勝之倒杖策也,衛姬之請罪於桓公,子見子夏曰「何肥也」,魏文侯見之反被裘而負芻也,兒說之為宋王解閉結也,此皆微眇可以觀論者。人有嫁其子而教之曰:「爾行矣,慎無為善!」曰:「不為善,將為不善邪?」應之曰:「善且由弗為,況不善乎!」此全其天器者。拘囹圄者以日為脩,當死市者以日為短。日之脩短有度也,有所在而短,有所在而脩也,則中不平也。

이 때문에 작아서 안이 될 수 없는 것은 커서 밖이 될 수 없다. 난초가 그윽한 골짜기에 나되 입는 이가 없다고 향기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배가 강과 바다에 있되 타는 이가 없다고 뜨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군자가 의를 행함은 아는 이가 없다고 그쳐 쉬지 않는다. 무릇 옥은 윤택하고 빛이 있으며 그 소리가 펴져 드날려 환하게 그 닮음이 있다. 안도 없고 밖도 없어 티와 더러움을 숨기지 않고 가까이하면 젖고 바라보면 깊다. 무릇 거울에 비추면 눈동자를 보고 가을 터럭을 미세히 살피며 밝음이 어둠을 비춘다. 그러므로 화씨의 벽옥과 수후의 구슬은 산과 못의 정에서 나 군자가 차면 상서로움에 순하여 편안하고 후와 왕이 보배로 여기면 천하의 바름이 된다. 진성자 항이 자연첩을 겁박한 일과 자한이 그 바라지 않는 바를 사양하고 그 바라는 바를 얻은 일과 공자가 매미 붙이는 이를 본 일과 백공승이 지팡이를 거꾸로 짚은 일과 위희가 환공에게 죄를 청한 일과 공자가 자하를 보고 「어찌 살쪘는가」 한 일과 위 문후가 갖옷을 뒤집어 입고 꼴을 진 이를 본 일과 아열이 송나라 왕을 위해 얽힌 매듭을 푼 일 이는 다 미세하되 보아 논할 만한 것이다. 사람이 그 딸을 시집보내며 가르쳐 말하였다. 「너는 가라. 삼가 착함을 하지 말라!」 말하였다. 「착함을 하지 않으면 장차 착하지 않음을 하리까?」 응하여 말하였다. 「착함도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물며 착하지 않음이랴!」 이는 그 하늘의 그릇을 온전히 한 이다. 감옥에 갇힌 이는 날을 길다 여기고 저자에서 죽을 이는 날을 짧다 여긴다. 날의 길고 짧음에 도량이 있으나 있는 곳에 따라 짧고 있는 곳에 따라 길다 하니 곧 가운데가 평평하지 않아서다.

故以不平為平者,其平不平也。嫁女於病消者,夫死則後難復處也。故沮舍之下不可以坐,倚牆之傍不可以立。執獄牢者無病,罪當死者肥澤,刑者多壽,心無累也。良醫者,常治無病之病,故無病。聖人者,常治無患之患,故無患也。夫至巧不用劍,善閉者不用關楗。淳于髡之告失火者,此其類。以清入濁必困辱,以濁入清必覆傾。君子之於善也,猶采薪者見一芥掇之,見青蔥則拔之。天二氣則成虹,地二氣則泄藏,人二氣則成病。陰陽不能且冬且夏;月不知晝,日不知夜。善射者發不失的,善於射矣,而不善所射。善釣者無所失,善於釣矣,而不善所釣。故有所善,則不善矣。鐘之與磬也,近之則鐘音充,遠之則磬音章,物固有近不若遠,遠不若近者。

그러므로 평평하지 않음으로 평평함을 삼는 이는 그 평평함이 평평하지 않다. 딸을 소갈병 든 이에게 시집보내면 남편이 죽어 뒤에 다시 처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무너지는 집 아래 앉을 수 없고 기운 담 곁에 설 수 없다. 옥을 맡은 이는 병이 없고 죄가 죽음에 마땅한 이는 살찌고 윤택하며 형벌 받은 이는 흔히 오래 사니 마음에 얽매임이 없어서다. 좋은 의원은 늘 병 없는 병을 다스리므로 병이 없고 성인은 늘 근심 없는 근심을 다스리므로 근심이 없다. 무릇 지극히 교묘한 이는 검을 쓰지 않고 잘 닫는 이는 빗장을 쓰지 않는다. 순우곤이 불 낼 이를 일러 준 일이 이 무리다. 맑음으로 흐림에 들면 반드시 곤하고 욕되며 흐림으로 맑음에 들면 반드시 엎어진다. 군자가 착함에 대함은 오히려 섶 캐는 이가 겨자 하나를 보아도 줍고 푸른 파를 보면 뽑음 같다. 하늘에 두 기운이 있으면 무지개를 이루고 땅에 두 기운이 있으면 감춤을 새며 사람에게 두 기운이 있으면 병을 이룬다. 음양은 겨울이면서 여름일 수 없고 달은 낮을 알지 못하며 해는 밤을 알지 못한다. 잘 쏘는 이는 발하여 과녁을 잃지 않으니 쏘기에 잘하나 쏘는 바에 잘하지 못한다. 잘 낚는 이는 잃는 바가 없으니 낚기에 잘하나 낚는 바에 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잘하는 바가 있으면 잘하지 못한다. 종과 경은 가까이하면 종소리가 차고 멀리하면 경소리가 밝으니 물건에 본디 가까움이 멂만 못하고 멂이 가까움만 못한 것이 있다.

今曰稻生於水,而不能生於湍瀨之流;紫芝生於山,而不能生於盤石之上;慈石能引鐵,及其於銅,則不行也。水廣者魚大,山高者木脩。廣其地而薄其德,譬猶陶人為器也,揲挻其土而不益厚,破乃愈疾。聖人不先風吹,不先雷毀,不得已而動,故無累。月盛衰於上,則蠃蛖應於下,同氣相動,不可以為遠。執彈而招鳥,揮梲而呼狗,欲致之,顧反走。故魚不可以無餌釣也,獸不可以虛氣召也。剝牛皮,鞟以為鼓,正三軍之眾,然為牛計者,不若服於軛也。狐白之裘,天子被之而坐廟堂,然為狐計者,不若走於澤。亡羊而得牛,則莫不利失也;斷指而免頭,則莫不利為也。故人之情,於利之中則爭取大焉,於害之中則爭取小焉。將軍不敢騎白馬,亡者不敢夜揭炬,保者不敢畜噬狗。雞知將旦,鶴知夜半,而不免於鼎俎。山有猛獸,林木為之不斬;園有螫蟲,藜藿為之不采。為儒而踞里閭,為墨而朝吹竽,欲滅跡而走雪中,拯溺者而欲無濡,是非所行而行所非。

이제 벼가 물에서 나되 여울 흐름에서는 날 수 없고 자줏빛 지초가 산에서 나되 너럭바위 위에서는 날 수 없으며 자석이 무쇠를 끌 수 있으나 구리에 이르러서는 행해지지 않는다. 물이 넓은 데는 고기가 크고 산이 높은 데는 나무가 길다. 그 땅을 넓히고 그 덕을 얇게 함은 비유하면 옹기장이가 그릇을 만듦 같아 그 흙을 늘여 펴되 두터움을 더하지 않으면 깨짐이 곧 더 빠르다. 성인은 바람에 앞서 불지 않고 우레에 앞서 헐지 않으며 마지못하여 움직이므로 얽매임이 없다. 달이 위에서 차고 이지러지면 소라와 조개가 아래에서 응하니 같은 기운이 서로 움직임은 멀다 할 수 없다. 탄환을 잡고 새를 부르며 몽둥이를 휘두르고 개를 부르니 이르게 하려 하나 도리어 달아난다. 그러므로 고기는 미끼 없이 낚을 수 없고 짐승은 빈 기운으로 부를 수 없다. 소가죽을 벗겨 다듬어 북을 만들면 삼군의 무리를 바로잡으나 소를 위해 헤아리는 이라면 멍에에 매임만 못하다. 흰 여우 갖옷을 천자가 입고 묘당에 앉으나 여우를 위해 헤아리는 이라면 못으로 달아남만 못하다. 양을 잃고 소를 얻으면 잃음을 이롭게 여기지 않음이 없고 손가락을 끊어 머리를 면하면 함을 이롭게 여기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정은 이익 가운데서 큰 것을 다투어 취하고 해 가운데서 작은 것을 다투어 취한다. 장군은 감히 흰말을 타지 않고 도망하는 이는 감히 밤에 횃불을 들지 않으며 지키는 이는 감히 무는 개를 기르지 않는다. 닭은 새벽을 알고 학은 한밤을 아나 솥과 도마를 면하지 못한다. 산에 맹수가 있으면 숲의 나무가 그 때문에 베이지 않고 동산에 쏘는 벌레가 있으면 명아주와 콩잎이 그 때문에 캐이지 않는다. 유자가 되어 마을에 걸터앉고 묵자가 되어 아침에 우를 불며 자취를 없애려 하면서 눈 속을 달리고 빠진 이를 건지면서 젖지 않으려 함은 행할 바가 아닌데 행하고 그르다 하는 바를 행함이다.

今夫闇飲者,非嘗不遺飲也,使之自以平,則雖愚無失矣。是故不同于和而可以成事者,天下無之矣。求美則不得美,不求美則美矣;求醜則不得醜,求不醜則有醜矣;不求美又不求醜,則無美無醜矣,是謂玄同。申徒狄負石自沉於淵,而溺者不可以為抗;弦高誕而存鄭,誕者不可以為常。事有一應,而不可循行。人有多言者,猶百舌之聲。人有少言者,猶不脂之戶也。六畜生多耳目者不詳,讖書著之。百人抗浮,不若一人挈而趨。物固有眾而不若少者,引車者二六而後之。事固有相待而成者,兩人俱溺,不能相拯,一人處陸則可矣。故同不可相治,必待異而後成。千年之松,下有茯苓,上有兔絲;上有叢蓍,下有伏龜;聖人從外知內,以見知隱也。喜武非俠也,喜文非儒也,好方非醫也,好馬非騶也,知音非瞽也,知味非庖也,此有一概而未得主名也。被甲者,非為十步之內也,百步之外則爭深淺,深則達五藏,淺則至膚而止矣。死生相去,不可為道里。楚王亡其猿,而林木為之殘;宋君亡其珠,池中魚為之殫;故澤失火而林憂。上求材,臣殘木;上求魚,臣乾谷。上求楫,而下致船;上言若絲,下言若綸。

이제 무릇 어둠 속에서 마시는 이가 일찍이 마심을 흘리지 않음이 아니나 스스로 고르게 하게 하면 비록 어리석어도 잃음이 없다. 이 때문에 화함과 같지 않고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천하에 없다. 아름다움을 구하면 아름다움을 얻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구하지 않으면 아름다우며 추함을 구하면 추함을 얻지 못하고 추하지 않음을 구하면 추함이 있으니 아름다움도 구하지 않고 또 추함도 구하지 않으면 아름다움도 없고 추함도 없다. 이를 검게 같음이라 한다. 신도적이 돌을 지고 스스로 못에 잠겼으나 빠진 이를 겨룸으로 삼을 수 없고 현고가 속여 정나라를 남겼으나 속임을 늘 그러함으로 삼을 수 없다. 일에 한 번 응함이 있으나 따라 행할 수 없다. 말 많은 사람이 있음은 오히려 온갖 혀의 소리 같고 말 적은 사람이 있음은 오히려 기름 치지 않은 지게문 같다. 여섯 짐승이 나면서 귀와 눈이 많은 것은 상서롭지 않다고 참서에 적혀 있다. 백 사람이 들어 뜨는 것이 한 사람이 들어 달림만 못하다. 물건에 본디 많음이 적음만 못한 것이 있으니 수레 끄는 이는 열둘이면 뒤진다. 일에 본디 서로 기다려 이루는 것이 있으니 두 사람이 함께 빠지면 서로 건질 수 없고 한 사람이 뭍에 있으면 된다. 그러므로 같음은 서로 다스릴 수 없고 반드시 다름을 기다린 뒤에 이루어진다. 천 해 묵은 소나무는 아래에 복령이 있고 위에 새삼이 있으며 위에 시초 떨기가 있으면 아래에 엎드린 거북이 있으니 성인은 밖에서 안을 알고 보임으로 숨음을 안다. 무를 좋아함이 협객이 아니요 문을 좋아함이 유자가 아니며 방술을 좋아함이 의원이 아니요 말을 좋아함이 마부가 아니며 음을 앎이 소경 악사가 아니요 맛을 앎이 요리사가 아니니 이는 한 가닥이 있으나 아직 주인 될 이름을 얻지 못한 것이다. 갑옷을 입는 이는 열 걸음 안을 위해서가 아니니 백 걸음 밖이면 깊고 얕음을 다투어 깊으면 오장에 이르고 얕으면 살갗에 이르러 그친다. 죽고 삶의 서로 떨어짐은 길의 이수로 삼을 수 없다. 초나라 왕이 그 원숭이를 잃자 숲의 나무가 그 때문에 헐리고 송나라 임금이 그 구슬을 잃자 못 가운데 고기가 그 때문에 다하였으니 그러므로 못에 불이 나면 숲이 근심한다. 위가 재목을 구하면 신하가 나무를 헐고 위가 고기를 구하면 신하가 골짜기를 마르게 한다. 위가 노를 구하면 아래가 배를 이르게 하고 위가 실 같이 말하면 아래가 노끈 같이 말한다.

上有一善,下有二譽;上有三衰,下有九殺。大夫種知所以強越,而不知所以存身;萇弘知周之所存,而不知身所以亡;知遠而不知近。畏馬之辟也不敢騎,懼車之覆也不敢乘,是以虛禍距公利也。不孝弟者或詈父母,生子者所不能任其必孝也,然猶養而長之。范氏之敗,有竊其鐘,負而走者,鎗然有聲,懼人聞之,遽掩其耳。憎人聞之,可也;自掩其耳,悖矣。升之不能大於石也,升在石之中;夜之不能修其歲也,夜在歲之中;仁義之不能大於道德也,仁義在道德之包。先針而後縷,可以成帷;先縷而後針,不可以成衣。針成幕,蔂成城。事之成敗,必由小生,言有漸也。染者先青而後黑則可,先黑而後青則不可。工人下漆而上丹則可,下丹而上漆則不可。萬事由此,所先後上下,不可不審。水濁而魚噞,形勞則神亂。

위에 한 착함이 있으면 아래에 두 기림이 있고 위에 세 쇠함이 있으면 아래에 아홉 죽임이 있다. 대부 종은 월나라를 강하게 할 바는 알았으나 몸을 남길 바는 알지 못하였고 장홍은 주나라가 남을 바는 알았으나 몸이 망할 바는 알지 못하였으니 멂을 알고 가까움을 알지 못한 것이다. 말이 물까 두려워 감히 타지 않고 수레가 엎어질까 겁내어 감히 타지 않음은 헛된 화로 공변된 이익을 막음이다. 효도하고 공손하지 않은 이는 혹 부모를 꾸짖는데 자식을 낳는 이는 그가 반드시 효도할 것을 맡길 수 없으나 오히려 길러 자라게 한다. 범씨가 패할 때 그 종을 훔쳐 지고 달아난 이가 있었는데 쨍하고 소리가 나자 남이 들을까 겁내어 갑자기 그 귀를 막았다. 남이 들음을 미워함은 옳으나 스스로 그 귀를 막음은 어그러졌다. 되가 섬보다 클 수 없음은 되가 섬 가운데 있어서요 밤이 해보다 길 수 없음은 밤이 해 가운데 있어서며 인의가 도덕보다 클 수 없음은 인의가 도덕의 쌈 속에 있어서다. 바늘을 먼저 하고 실을 뒤에 하면 휘장을 이룰 수 있으나 실을 먼저 하고 바늘을 뒤에 하면 옷을 이룰 수 없다. 바늘로 장막을 이루고 삼태기로 성을 이룬다. 일의 이루고 패함은 반드시 작음에서 나니 말에 점차가 있다. 물들이는 이가 푸른 것을 먼저 하고 검은 것을 뒤에 하면 되나 검은 것을 먼저 하고 푸른 것을 뒤에 하면 안 된다. 공인이 옻을 아래에 하고 붉은 것을 위에 하면 되나 붉은 것을 아래에 하고 옻을 위에 하면 안 된다. 온갖 일이 이로 말미암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하고 위에 하고 아래에 하는 바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물이 흐리면 고기가 입을 벌리고 꼴이 수고로우면 신이 어지럽다.

故國有賢君,折衝萬里。因媒而嫁,而不因媒而成;因人而交,不因人而親。行合趨同,千里相從;行不合趨不同,對門不通。海水雖大,不受胔芥。日月不應非其氣,君子不容非其類也。人不愛倕之手,而愛己之指;不愛江、漢之珠,而愛己之鉤。以束薪為鬼,以火煙為氣。以束薪為鬼,朅而走;以火煙為氣,殺豚烹狗。先事如此,不如其後。巧者善度,知者善豫。羿死桃部,不給射;慶忌死劍鋒,不給搏。滅非者戶告之曰:「我實不與我諛亂。」謗乃愈起。止言以言,止事以事,譬猶揚堁而弭塵,抱薪而救火。流言雪汙,譬猶以涅拭素也。矢之於十步貫兕甲,於三百步不能入魯縞;騏驥一日千里,其出致釋駕而僵。大家攻小家則為暴,大國并小國則為賢。小馬非大馬之類也,小知非大知之類也。被羊裘而賃,固其事也;貂裘而負籠,甚可怪也。以潔白為汙辱,譬猶沐浴而抒溷,薰燧而負彘。治疽不擇善惡醜肉而并割之,農夫不察苗莠而并耘之,豈不虛哉!壞塘以取龜,發屋而求狸,掘室而求鼠,割唇而治齲,桀、跖之徒,君子不與。殺戎馬而求狐狸,援兩鱉而失靈龜,斷右臂而爭一毛,折鏌邪而爭錐刀,用智如此,豈足高乎!

그러므로 나라에 어진 임금이 있으면 만 리에서 부딪침을 꺾는다. 중매로 시집가되 중매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람으로 사귀되 사람으로 친해지지 않는다. 행실이 합하고 나아감이 같으면 천 리에서 서로 따르고 행실이 합하지 않고 나아감이 같지 않으면 문을 마주해도 통하지 않는다. 바닷물이 비록 커도 썩은 고기와 티끌을 받지 않는다. 해와 달은 그 기운 아닌 것에 응하지 않고 군자는 그 무리 아닌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이 수의 손을 사랑하지 않고 제 손가락을 사랑하며 강과 한수의 구슬을 사랑하지 않고 제 갈고리를 사랑한다. 묶은 섶을 귀신이라 여기고 불 연기를 기운이라 여긴다. 묶은 섶을 귀신이라 여겨 떠나 달아나고 불 연기를 기운이라 여겨 돼지를 잡고 개를 삶는다. 일을 앞서 함이 이 같으면 그 뒤만 못하다. 교묘한 이는 헤아리기를 잘하고 슬기로운 이는 미리 하기를 잘한다. 예는 복숭아 몽둥이에 죽으매 쏠 겨를이 없었고 경기는 칼끝에 죽으매 칠 겨를이 없었다. 그름을 없애려 집집이 알려 「나는 참으로 아첨하여 어지럽힘에 관여하지 않았다」 하면 헐뜯음이 곧 더 인다. 말로 말을 그치게 하고 일로 일을 그치게 함은 비유하면 티끌을 날려 먼지를 그치게 하고 섶을 안고 불을 끔과 같다. 흐르는 말로 더러움을 씻음은 비유하면 검은 물감으로 흰 것을 닦음과 같다. 화살이 열 걸음에서는 무소 갑옷을 꿰나 삼백 걸음에서는 노나라 흰 비단도 들어가지 못한다. 준마가 하루 천 리를 가나 그 나감이 다하면 멍에를 풀고 쓰러진다. 큰 집이 작은 집을 치면 사납다 하고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아우르면 어질다 한다. 작은 말은 큰 말의 무리가 아니요 작은 슬기는 큰 슬기의 무리가 아니다. 양 갖옷을 입고 품 파는 것은 본디 그 일이나 담비 갖옷으로 광주리를 지면 매우 괴이하다. 깨끗하고 흼으로 더럽고 욕됨을 삼음은 비유하면 목욕하고 뒷간을 치며 향을 피우고 돼지를 짊어짐과 같다. 부스럼을 다스림에 좋고 나쁘고 추한 살을 가리지 않고 아울러 베며 농부가 싹과 가라지를 살피지 않고 아울러 김매면 어찌 헛되지 않으랴! 둑을 헐어 거북을 취하고 지붕을 벗겨 살쾡이를 구하며 방을 파서 쥐를 구하고 입술을 베어 벌레 먹은 이를 다스림은 걸과 도척의 무리라 군자가 함께하지 않는다. 군마를 죽여 여우와 살쾡이를 구하고 두 자라를 잡으려다 신령한 거북을 잃으며 오른팔을 끊어 터럭 하나를 다투고 막야를 꺾어 송곳과 칼을 다툼은 슬기 씀이 이 같으면 어찌 높다 하기에 넉넉하랴!

寧百刺以針,無一刺以刀;寧一引重,無久持輕;寧一月饑,無一旬餓。萬人之蹪,愈於一人之隧。有譽人之力儉者,舂至旦,不中員呈,猶謫之。察之,乃其母也。故小人之譽人,反為損。東家母死,其子哭之不哀。西家子見之,歸謂其母曰:「社何愛速死,吾必悲哭社。」夫欲其母之死者,雖死亦不能悲哭矣。謂學不暇者,雖暇亦不能學矣。見窾木浮而知為舟,見飛蓬轉而知為車,見鳥跡而知著書,以類取之。以非義為義,以非禮為禮,譬猶裸走而追狂人,盜財而予乞者,竊簡而寫法律,蹲踞而誦詩、書。割而舍之,鏌邪不斷肉;執而不釋,馬氂截玉。聖人無止,無以歲賢昔,日愈昨也。馬之似鹿者千金,天下無千金之鹿;玉待礛諸而成器,有千金之璧而無錙錘之礛諸。受光於隙照一隅,受光於牖照北壁,受光於戶照室中無遺物,況受光於宇宙乎?天下莫不藉明於其前矣!

차라리 바늘로 백 번 찌를지언정 칼로 한 번 찌르지 말고 차라리 한 번 무거운 것을 끌지언정 오래 가벼운 것을 지니지 말며 차라리 한 달을 주릴지언정 열흘을 굶지 말라. 만 사람의 넘어짐이 한 사람의 떨어짐보다 낫다. 사람의 힘과 검소함을 기리는 이가 있어 방아 찧기를 아침까지 하여도 정한 수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꾸짖었다. 살펴보니 곧 그 어미였다. 그러므로 소인이 사람을 기림은 도리어 덜어 냄이 된다. 동쪽 집 어미가 죽어 그 자식이 곡하되 슬퍼하지 않았다. 서쪽 집 아들이 보고 돌아가 그 어미에게 말하였다. 「어머니는 어찌 빨리 죽기를 아끼십니까. 저는 반드시 슬피 곡하겠습니다.」 무릇 그 어미의 죽음을 바라는 이는 비록 죽어도 또한 슬피 곡할 수 없다. 배울 겨를이 없다 하는 이는 비록 겨를이 있어도 배울 수 없다. 빈 나무가 뜸을 보고 배 만들 줄 알고 나는 쑥이 구르는 것을 보고 수레 만들 줄 알며 새 자취를 보고 글 지을 줄 앎은 무리로 취한 것이다. 의 아닌 것을 의로 삼고 예 아닌 것을 예로 삼음은 비유하면 벗고 달려 미친 사람을 쫓고 재물을 훔쳐 빌어먹는 이에게 주며 죽간을 훔쳐 법률을 베끼고 걸터앉아 「시」와 「서」를 욈과 같다. 베다가 놓으면 막야도 고기를 끊지 못하고 잡고 놓지 않으면 말 갈기로도 옥을 끊는다. 성인은 그침이 없으니 해로 옛것을 어질다 하지 않고 오늘이 어제보다 낫다. 사슴 비슷한 말은 천금인데 천하에 천금짜리 사슴은 없다. 옥은 숫돌을 기다려 그릇을 이루는데 천금의 벽옥은 있어도 저울눈만 한 숫돌은 없다. 틈에서 빛을 받으면 한 모퉁이를 비추고 창에서 빛을 받으면 북쪽 벽을 비추며 지게문에서 빛을 받으면 방 안을 비추어 남긴 물건이 없는데 하물며 우주에서 빛을 받음이랴. 천하가 그 앞에서 밝음을 빌리지 않음이 없다!

由此觀之,所受者小則所見者淺,所受者大則所照者博。江出岷山,河出昆侖,濟出王屋,潁出少室,漢出嶓冢,分流舛馳,注於東海,所行則異,所歸則一。通於學者若車軸,轉□之中,不運於己,與之致千里,終而復始,轉無窮之源。不通於學者若迷惑,告之以東西南北,所居聆聆,背而不得,不知凡要。寒不能生寒,熱不能生熱,不寒不熱能生寒熱。故有形出於無形,未有天地能生天地者也,至深微廣大矣!雨之集無能霑,待其止而能有濡;矢之發無能貫,待其止而能有穿;唯止能止眾止。因高而為臺,就下而為池,各就其勢,不敢更為。聖人用物,若用朱絲約芻狗,若為土龍以求雨。芻狗待之而求福,土龍待之而得食。魯人身善制冠,妻善織履,往徙於越而大困窮。以其所修而遊不用之鄉,譬若樹荷山上,而畜火井中。操釣上山,揭斧人淵,欲得所求,難也。方車而蹠越,乘桴而入胡,欲無窮,不可得也。楚王有白蝯,王自射之,則搏矢而熙;使養由基射之,始調弓矯矢,未發而蝯擁柱號矣,有先中中者也。咼氏之璧,夏后之璜,揖讓而進之,以合歡;夜以投入,則為怨;時與不時。畫西施之面,美而不可說;規孟賁之目,大而不可畏;君形者亡焉。

이로써 보면 받는 바가 작으면 보는 바가 얕고 받는 바가 크면 비추는 바가 넓다. 강은 민산에서 나오고 하수는 곤륜에서 나오며 제수는 왕옥에서 나오고 영수는 소실에서 나오며 한수는 파총에서 나와 흐름을 나누어 어긋나 달리되 동해로 흘러드니 다니는 바는 다르나 돌아가는 바는 하나다. 배움에 통한 이는 수레 굴대 같아 바퀴통 가운데서 돌되 저에게서 운행하지 않고 더불어 천 리에 이르며 마치면 다시 비롯하여 다함없는 근원에서 돈다. 배움에 통하지 않은 이는 홀린 것 같아 동서남북을 알려 주어도 있는 곳에서 뚜렷하다가 등지면 얻지 못하고 무릇 요긴함을 알지 못한다. 추위는 추위를 낳을 수 없고 더위는 더위를 낳을 수 없으며 춥지도 덥지도 않음이 추위와 더위를 낳을 수 있다. 그러므로 꼴 있음은 꼴 없음에서 나오니 하늘과 땅이 있기 전에 하늘과 땅을 낳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았으매 지극히 깊고 미세하고 넓고 크다! 비는 모임에 적실 수 없고 그 그침을 기다려 젖게 할 수 있으며 화살은 발함에 꿸 수 없고 그 그침을 기다려 뚫을 수 있으니 오직 그침만이 뭇 그침을 그치게 할 수 있다. 높음을 따라 대를 삼고 낮음에 나아가 못을 삼음은 저마다 그 세에 나아가 감히 고쳐 하지 않음이다. 성인이 물건을 씀은 붉은 실로 짚 개를 묶는 것 같고 흙 용을 만들어 비를 구함 같다. 짚 개는 그것을 기다려 복을 구하고 흙 용은 그것을 기다려 먹을 것을 얻는다. 노나라 사람이 몸소 관 만들기를 잘하고 아내가 신 짜기를 잘하였는데 월나라로 옮겨 가 크게 곤궁하였다. 그 닦은 바로 쓰이지 않는 고을에 노닒은 비유하면 연을 산 위에 심고 불을 우물 속에 기름 같다. 낚싯대를 잡고 산에 오르고 도끼를 들고 못에 들어 구하는 바를 얻으려 하면 어렵다. 수레를 나란히 하여 월나라로 가고 뗏목을 타고 오랑캐 땅에 들어 궁하지 않으려 하면 얻을 수 없다. 초나라 왕에게 흰 원숭이가 있어 왕이 스스로 쏘면 화살을 잡고 희롱하였는데 양유기에게 쏘게 하니 비로소 활을 고르고 화살을 바로잡아 아직 발하지 않았는데 원숭이가 기둥을 안고 울부짖었으니 맞기 전에 맞음이 있어서다. 화씨의 벽옥과 하후의 황옥도 읍하고 사양하며 나아가면 기쁨을 합하나 밤에 던져 넣으면 원망이 되니 때와 때 아님이다. 서시의 얼굴을 그리면 아름다우나 기뻐할 수 없고 맹분의 눈을 그리면 크나 두려워할 수 없으니 꼴을 주장하는 것이 없어서다.

人有昆弟相分者,無量,而眾稱義焉。夫惟無量,故不可得而量也。登高使人欲望,臨深使人欲闚,處使然也。射者使人端,釣者使人恭,事使然也。曰殺罷牛可以贖良馬之死,莫之為也。殺牛,必亡之數,以必亡贖不必死,未能行之者矣。季孫氏劫公家,孔子說之,先順其所為,而後與之入政,曰:「舉枉與直,如何而不得?舉直與枉,勿與遂往。」此所謂同污而異塗者。眾曲不容直,眾枉不容正,故人眾則食狼,狼眾則食人。欲為邪者必相明正,欲為曲者必相達直。公道不立,私欲得容者,自古及今,未嘗聞也。此以善託其醜。眾議成林,無翼而飛,三人成市虎,一里能撓椎。夫游沒者,不求沐浴,已自足其中矣。故食草之獸不疾易藪,水居之蟲不疾易水,行小變而不失常。信有非禮而失禮:尾生死其梁柱之下,此信之非也;孔氏不喪出母,此禮之失者。曾子立孝,不過勝母之閭;墨子非樂,不入朝歌之邑;曾子立廉,不飲盜泉;所謂養志者也。紂為象箸而箕子唏,魯以偶人葬而孔子嘆,故聖人見霜而知冰。有鳥將來,張羅而待之,得鳥者,羅之一目也;今為一目之羅,則無時得鳥矣。

사람에 형과 아우가 서로 나누는 이가 있어 헤아림이 없었으나 무리가 의롭다 일컬었다. 무릇 오직 헤아림이 없으므로 얻어 헤아릴 수 없다. 높은 데 오르면 사람으로 바라보고자 하게 하고 깊은 데 임하면 사람으로 엿보고자 하게 하니 처함이 그렇게 시킴이다. 쏘는 이는 사람으로 단정하게 하고 낚는 이는 사람으로 공손하게 하니 일이 그렇게 시킴이다. 지친 소를 죽여 좋은 말의 죽음을 속량할 수 있다 하여도 아무도 하지 않는다. 소를 죽임은 반드시 잃는 수이니 반드시 잃음으로 반드시 죽지는 않는 것을 속량함은 행할 수 있는 이가 없다. 계손씨가 공가를 겁박하니 공자가 달래되 먼저 그 하는 바를 따르고 뒤에 더불어 정사에 들며 말하였다. 「굽은 이를 들어 곧은 이와 함께하면 어찌 얻지 못하랴. 곧은 이를 들어 굽은 이와 함께하면 더불어 끝내 가지 말라.」 이것이 이른바 더러움을 같이하되 길을 달리한 것이다. 뭇 굽음은 곧음을 용납하지 않고 뭇 휨은 바름을 용납하지 않으므로 사람이 많으면 이리를 먹고 이리가 많으면 사람을 먹는다. 사악함을 하려는 이는 반드시 서로 바름을 밝히고 굽음을 하려는 이는 반드시 서로 곧음을 통한다. 공변된 도가 서지 않고 사사로운 바람이 용납됨을 얻은 일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 이는 착함으로 그 추함을 맡긴 것이다. 뭇 의논이 숲을 이루고 날개 없이 날며 세 사람이 저자의 범을 이루고 한 마을이 몽둥이를 휘게 할 수 있다. 무릇 헤엄쳐 잠기는 이는 목욕을 구하지 않으니 이미 그 가운데서 스스로 넉넉하다. 그러므로 풀 먹는 짐승은 늪 바꿈을 괴로워하지 않고 물에 사는 벌레는 물 바꿈을 괴로워하지 않으니 작은 변화를 행하되 늘 그러함을 잃지 않아서다. 믿음에 예 아니어서 예를 잃음이 있으니 미생이 그 다리 기둥 아래서 죽음 이는 믿음의 그름이요 공씨가 쫓겨난 어미의 상을 입지 않음 이는 예의 잃음이다. 증자가 효를 세워 승모의 마을을 지나지 않고 묵자가 악을 그르다 하여 조가의 고을에 들지 않으며 증자가 청렴을 세워 도천의 물을 마시지 않음 이른바 뜻을 기른 이다. 주가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가 흐느끼고 노나라가 나무 인형으로 장사하자 공자가 탄식하였으니 그러므로 성인은 서리를 보고 얼음을 안다. 새가 장차 오려 하매 그물을 펴 기다려 새를 얻는 것은 그물의 한 눈이나 이제 한 눈의 그물을 만들면 새를 얻을 때가 없다.

今被甲者,以備矢之至;若使人必知所集,則懸一札而已矣。事或不可前規,物或不可慮,卒然不戒而至,故聖人畜道以待時。髡屯犁牛,既犐以㹋,決鼻而羈,生子而犧,尸祝齊戒以沉諸河,河伯豈羞其所從出,辭而不享哉!得萬人之兵,不如聞一言之當。得隋侯之珠,不若得事之所由。得咼氏之璧,不若得事之所適。撰良馬者,非以逐狐狸,將以射麋鹿。砥利劍者,非以斬縞衣,將以斷兕犀。故「高山仰止,景行行止」,鄉者其人。見彈而求鴞炙,見卵而求晨夜,見黂而求成布,雖其理哉,亦不病暮。象解其牙,不憎人之利之也;死而棄其招簀,不怨人取之。人能以所不利利人,則可。狂者東走,逐者亦東走,東走則同,所以東走則異。溺者入水,拯之者亦入水,入水則同,所以入水者則異。

이제 갑옷을 입는 이는 화살이 이름에 대비하는데 만약 사람으로 반드시 모이는 곳을 알게 하면 조각 하나를 걸 뿐이다. 일은 혹 미리 그림쇠 지을 수 없고 물건은 혹 헤아릴 수 없어 갑자기 경계하지 않았는데 이르므로 성인은 도를 쌓아 때를 기다린다. 털 깎인 얼룩소가 이미 뿔이 없어 흔들리고 코를 뚫려 굴레 씌워졌어도 새끼를 낳아 희생이 되면 시축이 재계하여 하수에 잠그니 하백이 어찌 그 나온 바를 부끄러워하여 사양하고 흠향하지 않으랴! 만 사람의 군사를 얻음이 한마디 말의 마땅함을 들음만 못하다. 수후의 구슬을 얻음이 일이 말미암는 바를 얻음만 못하다. 화씨의 벽옥을 얻음이 일이 맞는 바를 얻음만 못하다. 좋은 말을 고르는 이는 여우와 살쾡이를 쫓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차 사슴을 쏘려 함이다. 날카로운 검을 가는 이는 흰 비단옷을 베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차 무소를 끊으려 함이다. 그러므로 「높은 산을 우러르고 큰 길을 간다」 하니 그 사람을 향함이다. 탄환을 보고 올빼미 구이를 구하며 알을 보고 새벽 알림을 구하고 삼 씨를 보고 이룬 베를 구함은 비록 그 이치라도 또한 저녁을 앓지 않는다. 코끼리는 그 어금니를 풀어도 사람이 그것을 이롭게 씀을 미워하지 않고 죽어 그 대자리를 버려도 사람이 취함을 원망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롭지 않은 바로 남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된다. 미친 이가 동쪽으로 달리매 쫓는 이도 동쪽으로 달리니 동쪽으로 달림은 같으나 동쪽으로 달리는 까닭은 다르다. 빠진 이가 물에 들매 건지는 이도 물에 드니 물에 듦은 같으나 물에 드는 까닭은 다르다.

故聖人同死生,愚人亦同死生,聖人之同死生通於分理,愚人之同死生不知利害所在。徐偃王以仁義亡國,國亡者非必仁義;比干以忠靡其體,被誅者非必忠也。故寒顫,懼者亦顫,此同名而異實。明月之珠出於蛖蜄,周之簡圭生於垢石,大蔡神龜出於溝壑。萬乘之主,冠錙錘之冠,履百金之車。牛皮為賤,正三軍之眾。欲學歌謳者,必先徵羽樂風;欲美和者,必先始於陽阿、采菱;此皆學其所不學,而欲至其所欲學者。燿蟬者務在明其火,釣魚者務在芳其餌。明其火者,所以燿而致之也;芳其餌者,所以誘而利之也。欲致魚者先通水,欲致鳥者先樹木。水積而魚聚,木茂而鳥集。好弋者先具繳與矰,好魚者先具罟與罛,未有無其具而得其利。遺人馬而解其羈,遺人車而稅其𨏢,所愛者少而所亡者多,故里人諺曰:「烹牛而不鹽,敗所為也。」堯有遺道,嫫母有所美,西施有所醜。

그러므로 성인이 죽음과 삶을 같이하고 어리석은 이도 죽음과 삶을 같이하나 성인이 죽음과 삶을 같이함은 나뉜 이치에 통해서요 어리석은 이가 죽음과 삶을 같이함은 이해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해서다. 서언왕이 인의로 나라를 망하게 하였으나 나라 망함이 반드시 인의 때문은 아니요 비간이 충성으로 그 몸을 헐었으나 베임을 입음이 반드시 충성 때문은 아니다. 그러므로 추워도 떨고 두려워도 떠니 이는 이름은 같으나 실이 다르다. 밝은 달의 구슬은 조개에서 나오고 주나라의 간규는 때 묻은 돌에서 나며 대채의 신령한 거북은 도랑과 구렁에서 나온다. 만승의 임금이 저울눈만 한 관을 쓰고 백금의 수레를 밟는다. 소가죽은 천한데 삼군의 무리를 바로잡는다. 노래를 배우려는 이는 반드시 먼저 치와 우의 풍조를 즐기고 화함을 아름답게 하려는 이는 반드시 먼저 「양아」와 「채릉」에서 시작하니 이는 다 배우지 않을 바를 배워 배우려는 바에 이르려 함이다. 매미를 잡는 이는 힘씀이 그 불을 밝힘에 있고 고기를 낚는 이는 힘씀이 그 미끼를 향기롭게 함에 있다. 그 불을 밝힘은 비추어 이르게 하는 까닭이요 그 미끼를 향기롭게 함은 꾀어 이롭게 하는 까닭이다. 고기를 이르게 하려는 이는 먼저 물을 통하고 새를 이르게 하려는 이는 먼저 나무를 심는다. 물이 쌓이면 고기가 모이고 나무가 무성하면 새가 모인다. 주살질을 좋아하는 이는 먼저 줄과 주살을 갖추고 고기잡이를 좋아하는 이는 먼저 그물을 갖추니 그 도구 없이 그 이익을 얻은 이가 있지 않았다. 남에게 말을 주면서 그 굴레를 풀고 남에게 수레를 주면서 그 비녀장을 벗김은 아끼는 바는 적고 잃는 바는 많으니 그러므로 마을 사람 속담에 이르기를 「소를 삶고 소금을 치지 않으면 한 바를 패한다」 하였다. 요에게도 빠뜨린 도가 있고 모모에게도 아름다운 바가 있으며 서시에게도 추한 바가 있다.

故亡國之法有可隨者,治國之俗有可非者。琬琰之玉,在洿泥之中,雖廉者弗釋;弊箄甑瓾,在袇茵之上,雖貪者不搏。美之所在,雖污辱,世不能賤;惡之所在,雖高隆,世不能貴。春貸秋賦民皆欣,春賦秋貸眾皆怨;得失同,喜怒為別,其時異也。為魚德者,非挈而入淵,為蝯賜者,非負而緣木,縱之其所而已。貂裘而雜,不若狐裘而粹,故人莫惡於無常行。有相馬而失馬者,然良馬猶在相之中。今人放燒,或操火往益之,或接水往救之,兩者皆未有功,而怨德相去亦遠矣。郢人有買屋棟者,求大三圍之木,而人予車轂,跪而度之,巨雖可,而修不足。蘧伯玉以德化,公孫鞅以刑罪,所極一也。病者寢席,醫之用針石,巫之用糈藉,所救鈞也。貍頭愈鼠,雞頭已瘻,虻散積血,斲木愈齲,此類之推者也。膏之殺鱉,鵲矢中蝟,爛灰生蠅,漆見蟹而不乾,此類之不推者也。推與不推,若非而是,若是而非,孰能通其微!天下無粹白狐,而有粹白之裘,掇之眾白也。善學者,若齊王之食雞,必食其蹠數十而後足。刀便剃毛,至伐大木,非斧不剋,物固有以剋適成不逮者。視方寸於牛,不知其大於羊;總視其體,乃知其大相去之遠。

그러므로 망한 나라의 법에도 따를 만한 것이 있고 다스려진 나라의 풍속에도 그르다 할 만한 것이 있다. 완염의 옥이 더러운 진흙 가운데 있어도 비록 청렴한 이라도 놓지 않고 해어진 시루와 조각이 자리 위에 있어도 비록 탐하는 이라도 잡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있는 곳은 비록 더럽고 욕되어도 세상이 천히 여길 수 없고 나쁨이 있는 곳은 비록 높고 높아도 세상이 귀히 여길 수 없다. 봄에 꾸어 주고 가을에 거두면 백성이 다 기뻐하고 봄에 거두고 가을에 꾸어 주면 무리가 다 원망하니 얻고 잃음은 같으나 기쁨과 노함이 갈림은 그 때가 달라서다. 고기에게 덕을 베푸는 이는 들어다 못에 넣음이 아니요 원숭이에게 주는 이는 업고 나무에 오름이 아니라 그 자리에 놓아줄 뿐이다. 담비 갖옷이 섞이면 여우 갖옷의 순수함만 못하니 그러므로 사람은 늘 그러한 행실 없음보다 나쁜 것이 없다. 말을 보고도 말을 잃은 이가 있으나 좋은 말은 오히려 봄 가운데 있다. 이제 사람이 불을 놓았는데 혹은 불을 잡고 가 더하고 혹은 물을 이어 가 구하니 둘 다 아직 공이 있지 않으나 원망과 덕의 서로 떨어짐이 또한 멀다. 영 사람에 집 마룻대를 사는 이가 있어 세 아름 큰 나무를 구하는데 사람이 수레바퀴통을 주니 꿇어앉아 재어 보매 굵기는 비록 되나 길이가 넉넉하지 않았다. 거백옥은 덕으로 교화하고 공손앙은 형벌로 죄주었으나 극한 바는 하나다. 병든 이가 자리에 누우면 의원은 침과 돌을 쓰고 무당은 쌀과 자리를 쓰나 구하는 바는 같다. 살쾡이 머리가 쥐 물림을 낫게 하고 닭 머리가 부스럼을 그치게 하며 등에가 쌓인 피를 흩고 깎은 나무가 벌레 먹은 이를 낫게 함 이는 무리로 미룬 것이다. 기름이 자라를 죽이고 까치 똥이 고슴도치에 맞으며 문드러진 재가 파리를 낳고 옻이 게를 보면 마르지 않음 이는 무리로 미루지 못하는 것이다. 미룸과 미루지 못함이 그른 듯 옳고 옳은 듯 그르니 누가 그 미세함에 통하랴! 천하에 순수하게 흰 여우가 없으나 순수하게 흰 갖옷이 있음은 뭇 흰 것을 주워 모아서다. 잘 배우는 이는 제나라 왕이 닭을 먹음 같아 반드시 그 발바닥을 수십 개 먹은 뒤에 넉넉하다. 칼은 털 깎기에 편하나 큰 나무 베기에 이르러서는 도끼가 아니면 이기지 못하니 물건에 본디 이김으로 마침 미치지 못함을 이루는 것이 있다. 소에서 사방 한 치를 보면 그 양보다 큼을 알지 못하고 그 몸을 통틀어 보아야 곧 그 큼이 서로 떨어짐이 멂을 안다.

孕婦見兔而子缺脣,見麋而子四目。小馬大目,不可謂大馬;大馬之目眇,可謂之眇馬;物固有似然而似不然者。故決指而身死,或斷臂而顧活,類不可必推。厲利劍者必以柔砥,擊鐘磬者必以濡木,轂強必以弱輻,兩堅不能相和,兩強不能相服。故梧桐斷角,馬氂截玉。媒但者,非學謾也,但成而生不信。立慬者,非學鬥爭也,慬立而生不讓。故君子不入獄,為其傷恩也;不入市,為其侳廉也;積不可不慎者也。走不以手,縛手走不能疾;飛不以尾,屈尾飛不能遠;物之用者必待不用者。故使之見者,乃不見者也;使鼓鳴者,乃不鳴者也。嘗一臠肉,知一鑊之味;懸羽與炭,而知燥溼之氣;以小明大。見一葉落,而知歲之將暮;睹瓶中之冰,而知天下之寒;以近論遠。三人比肩,不能外出戶;一人相隨,可以通天下。足蹍地而為跡,暴行而為影,此易而難。莊王誅里史,孫叔敖制冠浣衣;文公棄荏席,後黴黑,咎犯辭歸,故桑葉落而長年悲也。鼎錯日用而不足貴,周鼎不爨而不可賤,物固有以不用而為有用者。地平則水不流,重鈞則衡不傾,物之尤必有所感,物固有以不用為大用者。先裸而浴則可,以浴而裸則不可;先祭而後饗則可,先饗而後祭則不可;物之先後各有所宜也。

밴 부인이 토끼를 보면 자식이 언청이가 되고 사슴을 보면 자식이 눈이 넷이 된다. 작은 말이 눈이 크다고 큰 말이라 할 수 없고 큰 말의 눈이 작으면 눈 작은 말이라 할 수 있으니 물건에 본디 그런 듯하되 그렇지 않은 듯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손가락을 터뜨려 몸이 죽기도 하고 혹 팔을 끊고도 도리어 사니 무리를 반드시 미룰 수 없다. 날카로운 검을 가는 이는 반드시 부드러운 숫돌로 하고 종과 경을 치는 이는 반드시 젖은 나무로 하며 바퀴통이 강하면 반드시 약한 바퀴살로 하니 두 굳음은 서로 화할 수 없고 두 강함은 서로 복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동나무가 뿔을 끊고 말 갈기가 옥을 끊는다. 중매쟁이는 속임을 배운 것이 아니나 중매가 이루어지면 믿지 않음이 나고 용맹을 세우는 이는 싸움을 배운 것이 아니나 용맹이 서면 사양하지 않음이 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옥에 들지 않으니 그 은혜를 상할까 해서요 저자에 들지 않으니 그 청렴을 깎을까 해서니 쌓임을 삼가지 않을 수 없다. 달림은 손으로 하지 않으나 손을 묶으면 달림이 빠를 수 없고 낢은 꼬리로 하지 않으나 꼬리를 굽히면 낢이 멀 수 없으니 물건의 쓰이는 것은 반드시 쓰이지 않는 것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보게 하는 것은 곧 보이지 않는 것이요 북을 울리게 하는 것은 곧 울지 않는 것이다. 한 점 고기를 맛보고 한 솥의 맛을 알며 깃과 숯을 달아 마르고 젖은 기운을 아니 작음으로 큼을 밝힘이다. 잎 하나 떨어짐을 보고 해가 장차 저묾을 알며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의 추움을 아니 가까움으로 멂을 논함이다. 세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 지게문을 나갈 수 없고 한 사람이 서로 따르면 천하를 통할 수 있다. 발이 땅을 밟아 자취가 되고 드러나 다녀 그림자가 되니 이는 쉬우면서 어렵다. 장왕이 이사를 베자 손숙오가 관을 만들고 옷을 빨았으며 문공이 부들자리를 버리자 뒤에 곰팡이가 슬고 검어져 구범이 돌아가기를 청하였으니 그러므로 뽕잎이 떨어지면 나이 많은 이가 슬퍼한다. 솥과 시루는 날마다 쓰나 귀하기에 넉넉하지 않고 주나라 솥은 불 때지 않으나 천히 여길 수 없으니 물건에 본디 쓰이지 않음으로 쓰임이 되는 것이 있다. 땅이 평평하면 물이 흐르지 않고 무게가 고르면 저울이 기울지 않으니 물건의 뛰어남은 반드시 느끼는 바가 있어 물건에 본디 쓰이지 않음으로 큰 쓰임을 삼는 것이 있다. 먼저 벗고 목욕하면 되나 목욕하고 벗으면 안 되며 먼저 제사하고 뒤에 흠향하면 되나 먼저 흠향하고 뒤에 제사하면 안 되니 물건의 먼저와 뒤에 저마다 마땅한 바가 있다.

祭之日而言狗生,取婦夕而言衰麻,置酒之日而言上冢,渡江、河而言陽侯之波。或曰知其且赦也而多殺人,或曰知其且赦也而多活人,其望赦同,所利害異。故或吹火而然,或吹火而滅,所以吹者異也。烹牛以饗其里,而罵其東家母,德不報而身見殆。文王污膺,鮑申傴背,以成楚國之治。裨諶出郭而知,以成子產之事。朱儒問徑天高於脩人,脩人曰:「不知。」曰:「子雖不知,猶近之於我。」故凡問事,必於近者。寇難至,躄者告盲者,盲者負而走,兩人皆活,得其所能也。故使盲者語,使躄者走,失其所也。郢人有鬻其母,為請於買者曰:「此母老矣!幸善食之而勿苦。」此行大不義,而欲為小義者。介蟲之動以固,貞蟲之動以毒螫,熊羆之動攫搏,兕牛之動以觝觸,物莫措其所修而用其短也。治國者若鎒田,去害苗者而已。

제사하는 날에 개 낳음을 말하고 아내 맞는 저녁에 상복을 말하며 술 차리는 날에 무덤에 오름을 말하고 강과 하수를 건너며 양후의 물결을 말한다. 혹은 그 장차 용서할 줄 알고 사람을 많이 죽인다 하고 혹은 그 장차 용서할 줄 알고 사람을 많이 살린다 하니 그 용서를 바람은 같으나 이롭고 해로운 바는 다르다. 그러므로 혹은 불을 불어 타게 하고 혹은 불을 불어 끄니 부는 까닭이 달라서다. 소를 삶아 그 마을을 대접하고도 그 동쪽 집 어미를 꾸짖으면 덕이 갚아지지 않고 몸이 위태로움을 본다. 문왕은 가슴이 더럽고 포신은 등이 굽었으나 초나라의 다스림을 이루었다. 비심은 성곽을 나가야 슬기로워 자산의 일을 이루었다. 난쟁이가 하늘 높이를 키 큰 사람에게 물으니 키 큰 사람이 말하였다. 「알지 못한다.」 말하였다. 「그대가 비록 알지 못하여도 오히려 나보다 가깝다.」 그러므로 무릇 일을 물음은 반드시 가까운 이에게 한다. 도적의 난이 이르매 앉은뱅이가 소경에게 알리고 소경이 업고 달려 두 사람이 다 살았으니 그 능한 바를 얻어서다. 그러므로 소경에게 말하게 하고 앉은뱅이에게 달리게 하면 그 자리를 잃음이다. 영 사람에 그 어미를 파는 이가 있어 사는 이에게 청하여 말하였다. 「이 어미는 늙었소! 부디 잘 먹이고 괴롭히지 마시오.」 이는 크게 의롭지 않음을 행하면서 작은 의를 하려는 것이다. 껍질 있는 벌레의 움직임은 굳음으로 하고 쏘는 벌레의 움직임은 독으로 하며 곰의 움직임은 움켜쥠으로 하고 무소와 소의 움직임은 받음으로 하니 물건은 그 뛰어난 바를 놓고 그 짧은 바를 쓰는 것이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는 밭 김맴 같아 싹을 해치는 것을 없앨 뿐이다.

今沐者墮髮,而猶為之不止,以所去者少,所利者多。砥石不利而可以利金,擏不正而可以正弓,物固有不正而可以正,不利而可以利。力貴齊,知貴捷。得之同,速為上;勝之同,遲為下。所以貴鏌邪者,以其應物而斷割也。𠟣靡勿釋,牛車絕轔。為孔子之窮於陳、蔡而廢六藝,則惑;為醫之不能自治其病,病而不就藥,則勃矣。

이제 머리 감는 이가 머리털을 떨구되 오히려 그치지 않음은 버리는 바는 적고 이로운 바는 많아서다. 숫돌은 날카롭지 않으나 쇠를 날카롭게 할 수 있고 도지개는 바르지 않으나 활을 바르게 할 수 있으니 물건에 본디 바르지 않되 바르게 할 수 있고 이롭지 않되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힘은 가지런함을 귀히 여기고 슬기는 빠름을 귀히 여긴다. 얻음이 같으면 빠름이 위가 되고 이김이 같으면 더딤이 아래가 된다. 막야를 귀히 여기는 까닭은 그것이 물건에 응하여 끊고 가름으로써다. 베어 쓰러뜨리며 놓지 않으면 소달구지가 바퀴를 끊는다. 공자가 진·채에서 궁하였다 하여 육예를 폐하면 홀린 것이요 의원이 스스로 그 병을 다스릴 수 없다 하여 병들고도 약에 나아가지 않으면 어그러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