脩務訓
或曰:「無為者,寂然無聲,漠然不動,引之不來,推之不往。如此者,乃得道之像。」吾以為不然。嘗試問之矣:「若夫神農、堯、舜、禹、湯,可謂聖人乎?」有論者必不能廢。以五聖觀之,則莫得無為,明矣。古者,民茹草飲水,采樹木之實,食蠃蠬之肉。時多疾病毒傷之害,於是神農乃始教民播種五穀,相土地宜,燥濕肥墝高下,嘗百草之滋味,水泉之甘苦,令民知所辟就。當此之時,一日而遇七十毒。堯立孝慈仁愛,使民如子弟。西教沃民,東至黑齒,北撫幽都,南道交趾。放讙兜於崇山,竄三苗于三危,流共工於幽州,殛鯀於羽山。舜作室,築牆茨屋,辟地樹穀,令民皆知去岩穴,各有家室。南征三苗,道死蒼梧。禹沐浴霪雨,櫛扶風,決江疏河,鑿龍門,辟伊闕,修彭蠡之防,乘四載,隨山刊木,平治水土,定千八百國。湯夙興夜寐,以致聰明,輕賦薄斂,以寬民氓,布德施惠,以振困窮,吊死問疾,以養孤孀。百姓親附,政令流行,乃整兵鳴條,困夏南巢,譙以其過,放之曆山。此五聖者,天下之盛主,勞形盡慮,為民興利除害而不懈。奉一爵酒不知於色,挈一石之尊則白汗交流,又況贏天下之憂,而海內事者乎?其重於尊亦遠也!且夫聖人者,不恥身之賤,而愧道之不行;不憂命之短,而憂百姓之窮。是故禹之為水,以身解于陽盱之河。湯旱,以身禱于桑山之林。聖人憂民,如此其明也,而稱以「無為」,豈不悖哉!
혹 말하기를 「함이 없음이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아득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끌어도 오지 않고 밀어도 가지 않는다. 이 같은 것이 곧 도를 얻은 모습이다」 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시험 삼아 물어보자. 「무릇 신농·요·순·우·탕 같은 이는 성인이라 할 만한가?」 논하는 이가 있어도 반드시 폐할 수 없다. 다섯 성인으로 보면 곧 함이 없음을 얻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옛날에 백성이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나무의 열매를 따고 소라와 조개의 살을 먹었다. 때로 병들고 독에 상하는 해가 많으매 이에 신농이 곧 비로소 백성에게 오곡 뿌려 심기를 가르치고 흙과 땅의 마땅함과 마르고 젖고 기름지고 메마르고 높고 낮음을 보며 온갖 풀의 맛과 샘물의 달고 씀을 맛보아 백성으로 피하고 나아갈 바를 알게 하였다. 이때를 당하여 하루에 일흔 독을 만났다. 요는 효도와 자애와 어짊과 사랑을 세워 백성을 자식과 아우같이 하였다. 서로 옥민을 가르치고 동으로 흑치에 이르며 북으로 유도를 어루만지고 남으로 교지에 이르렀다. 환두를 숭산에 내치고 삼묘를 삼위에 숨기며 공공을 유주로 흘려보내고 곤을 우산에서 베었다. 순은 집을 지어 담을 쌓고 지붕을 이으며 땅을 열어 곡식을 심어 백성으로 다 바위굴을 떠나 저마다 집이 있을 줄 알게 하였다. 남으로 삼묘를 정벌하다 길에서 창오에 죽었다. 우는 장맛비에 머리 감고 회오리바람에 빗질하며 강을 트고 하수를 소통하고 용문을 뚫고 이궐을 열며 팽려의 둑을 닦고 네 가지 탈것을 타며 산을 따라 나무를 베고 물과 흙을 평정하여 천팔백 나라를 정하였다. 탕은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총명을 이르게 하고 부세를 가벼이 하며 거둠을 얇게 하여 백성을 너그럽게 하고 덕을 펴고 은혜를 베풀어 곤하고 궁한 이를 떨치며 죽은 이를 조문하고 병든 이를 물어 외롭고 홀로 된 이를 길렀다. 백성이 친히 붙고 정사와 명령이 흘러 행해지매 곧 군사를 정돈하여 명조에서 하나라를 남소에 곤하게 하고 그 허물을 꾸짖어 역산에 내쳤다. 이 다섯 성인은 천하의 성한 임금인데 꼴을 수고롭히고 헤아림을 다하여 백성을 위해 이익을 일으키고 해를 없애며 게으르지 않았다. 술 한 잔을 받들면 낯빛에 드러나지 않으나 한 섬들이 술동이를 들면 흰 땀이 흘러 사귀는데 또 하물며 천하의 근심을 지고 해내를 일함이랴. 그 무거움이 술동이보다 또한 멀다! 또 무릇 성인은 몸의 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며 목숨의 짧음을 근심하지 않고 백성의 궁함을 근심한다. 이 때문에 우가 물을 다스릴 때 몸으로 양우의 하수에서 풀었고 탕이 가물 때 몸으로 상산의 숲에서 빌었다. 성인이 백성을 근심함이 이같이 밝은데 「함이 없음」이라 일컬으면 어찌 어그러지지 않으랴!
且古之立帝王者,非以奉養其欲也;聖人踐位者,非以逸樂其身也。為天下強掩弱,眾暴寡,詐欺愚,勇侵怯,懷知而不以相教,積財而不以相分,故立天子以齊一之。為一人聰明而不足以遍照海內,故立三公九卿以輔翼之。絕國殊俗、僻遠幽間之處,不能被德承澤,故立諸侯以教誨之。是以地無不任,時無不應,官無隱事,國無遺利。所以衣寒食饑,養老弱而息勞倦也。若以布衣徒步之人觀之,則伊尹負鼎而幹湯,呂望鼓刀而入周,百里奚轉鬻,管仲束縛,孔子無黔𥥍,墨子無暖席。是以聖人不高山,不廣河,蒙恥辱以幹世主,非以貪祿慕位,欲事起天下利,而除萬民之害。蓋聞傳書曰:「神農憔悴,堯瘦臞,舜黴黑,禹胼胝。」由此觀之,則聖人之憂勞百姓甚矣。故自天子以下至於庶人,四胑不動,思慮不用,事治求澹者,未之聞也。
또 옛날 제왕을 세움은 그 바람을 받들어 기르기 위해서가 아니요 성인이 자리를 밟음은 그 몸을 편안히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천하에 강한 이가 약한 이를 덮고 많은 이가 적은 이를 사납게 하며 속이는 이가 어리석은 이를 속이고 용맹한 이가 겁 많은 이를 침노하며 앎을 품고 서로 가르치지 않고 재물을 쌓고 서로 나누지 않으므로 천자를 세워 가지런히 하나로 하였다. 한 사람의 총명으로 해내를 두루 비추기에 넉넉하지 않으므로 삼공과 구경을 세워 돕게 하였다. 끊어진 나라와 다른 풍속과 치우쳐 멀고 그윽한 곳은 덕을 입고 은택을 받을 수 없으므로 제후를 세워 가르치게 하였다. 이로써 땅에 맡기지 않음이 없고 때에 응하지 않음이 없으며 벼슬에 숨은 일이 없고 나라에 남긴 이익이 없다. 추운 이를 입히고 주린 이를 먹이며 늙고 약한 이를 기르고 수고롭고 지친 이를 쉬게 하는 까닭이다. 만약 베옷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으로 보면 이윤은 솥을 지고 탕에게 나아갔고 여망은 칼을 두드리다 주나라에 들었으며 백리해는 굴러 팔렸고 관중은 묶였으며 공자는 굴뚝이 검을 겨를이 없고 묵자는 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었다. 이 때문에 성인은 산을 높다 하지 않고 하수를 넓다 하지 않으며 부끄럽고 욕됨을 무릅쓰고 세상 임금에게 나아감은 녹을 탐하고 자리를 사모해서가 아니라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고 만민의 해를 없애기를 일하려 함이다. 대개 듣건대 전하는 글에 이르기를 「신농이 초췌하고 요가 야위었으며 순이 검게 그을고 우가 손발에 못이 박혔다」 하였다. 이로써 보면 곧 성인이 백성을 근심하고 수고로움이 심하다. 그러므로 천자로부터 아래로 서인에 이르기까지 팔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헤아림을 쓰지 않으며 일이 다스려지고 구함이 넉넉한 이는 듣지 못하였다.
夫地勢,水東流,人必事焉,然後水潦得穀行。禾稼春生,人必加功焉,故五穀得遂長。聽其自流,待其自生,則鯀、禹之功不立,而后稷之智不用。若吾所謂無為者,私志不得入公道,嗜欲不得枉正術,循理而舉事,因資而立,權自然之勢,而曲故不得容者,事成而身弗伐,功立而名弗有,非謂其感而不應,攻而不動者。若夫以火熯井,以淮灌山,此用己而背自然,故謂之有為。若夫水之用舟,沙之用鳩,泥之用輴,山之用蔂,夏瀆而冬陂,因高為田,因下為池,此非吾所謂為之。聖人之從事也,殊體而合於理,其所由異路而同歸,其存危定傾若一,志不忘於欲利人也。何以明之?昔者楚欲攻宋,墨子聞而悼之,自魯趨而十日十夜,足重趼而不休息,裂衣裳裹足,至於郢,見楚王。曰:「臣聞大王舉兵將攻宋,計必得宋而後攻之乎?亡其苦眾勞民,頓兵挫銳,負天下以不義之名,而不得咫尺之地,猶且攻之乎?」王曰:「必不得宋,又且為不義,曷為攻之!」墨子曰:「臣見大王之必傷義而不得宋。」王曰:「公輸,天下之巧士,作雲梯之械,設以攻宋,曷為弗取!」墨子曰:「令公輸設攻,臣請守之。」於是公輸般設攻宋之械,墨子設守宋之備,九攻而墨子九卻之,弗能入。於是乃偃兵,輟不攻宋。段干木辭祿而處家,魏文侯過其閭而軾之。其仆曰:「君何為軾?」文侯曰:「段干木在,是以軾。」其仆曰:「段干木布衣之士,君軾其閭,不已甚乎?」文侯曰:「段干木不趨勢利,懷君子之道,隱處窮巷,聲施千里,寡人敢勿軾乎!段干木光於德,寡人光於勢;段干木富於義,寡人富於財。勢不若德尊,財不若義高。干木雖以己易寡人不為。吾日悠慚於影,子何以輕之哉!」其後秦將起兵伐魏,司馬庾諫曰:「段干木賢者,其君禮之,天下莫不知,諸侯莫不聞,舉兵伐之,無乃妨於義乎!」於是秦乃偃兵,輟不攻魏。
무릇 땅의 형세는 물이 동으로 흐르나 사람이 반드시 일한 뒤에 물이 골짜기로 다닐 수 있다. 벼가 봄에 나나 사람이 반드시 공을 더하므로 오곡이 마침내 자랄 수 있다. 그 절로 흐름을 듣고 그 절로 남을 기다리면 곤과 우의 공이 서지 않고 후직의 슬기가 쓰이지 않는다. 내가 이른바 함이 없음이란 사사로운 뜻이 공변된 도에 들 수 없고 즐기고 바람이 바른 술을 굽힐 수 없으며 이치를 따라 일을 들고 밑천을 따라 세우며 절로 그러한 세를 저울질하여 굽은 옛것이 용납될 수 없어 일이 이루어져도 몸이 자랑하지 않고 공이 서도 이름을 두지 않음이니 느껴도 응하지 않고 쳐도 움직이지 않음을 이름이 아니다. 만약 불로 우물을 말리고 회수로 산에 물 대면 이는 저를 쓰고 절로 그러함을 등짐이므로 함이 있다 한다. 무릇 물에 배를 쓰고 모래에 나막신을 쓰며 진흙에 썰매를 쓰고 산에 삼태기를 쓰며 여름에 도랑 내고 겨울에 둑 쌓으며 높음을 따라 밭을 만들고 낮음을 따라 못을 만듦 이는 내가 이른바 함이 아니다. 성인이 일함은 몸을 달리하되 이치에 합하고 그 말미암는 바가 길을 달리하되 돌아감을 같이하며 그 위태함을 남기고 기움을 정함이 하나 같아 뜻이 사람을 이롭게 하려 함을 잊지 않는다. 무엇으로 그것을 밝히는가. 옛날 초나라가 송나라를 치려 하매 묵자가 듣고 슬퍼하여 노나라에서 종종걸음으로 열흘 밤낮을 발에 거듭 못이 박혀도 쉬지 않고 옷을 찢어 발을 싸고 영에 이르러 초나라 왕을 보았다. 말하였다. 「신이 들으니 대왕께서 군사를 들어 장차 송나라를 치려 하신다는데 헤아림에 반드시 송나라를 얻은 뒤에 치려 하십니까. 아니면 무리를 괴롭히고 백성을 수고롭히며 군사를 무디게 하고 날카로움을 꺾어 천하에 의롭지 않은 이름을 지고도 한 자 땅도 얻지 못하는데 오히려 또 치려 하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반드시 송나라를 얻지 못하고 또 의롭지 않음이 된다면 어찌 치겠는가!」 묵자가 말하였다. 「신은 대왕께서 반드시 의를 상하고 송나라를 얻지 못하실 것을 봅니다.」 왕이 말하였다. 「공수는 천하의 교묘한 선비로 구름사다리 기계를 지었으니 그것으로 송나라를 치면 어찌 취하지 못하겠는가!」 묵자가 말하였다. 「공수에게 침을 베풀게 하십시오. 신이 지키기를 청합니다.」 이에 공수반이 송나라 치는 기계를 베풀고 묵자가 송나라 지키는 대비를 베풀어 아홉 번 치되 묵자가 아홉 번 물리쳐 들어갈 수 없었다. 이에 곧 군사를 눕히고 그쳐 송나라를 치지 않았다. 단간목이 녹을 사양하고 집에 처하매 위 문후가 그 마을을 지나며 수레 앞턱에 절하였다. 그 종이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어찌 절하십니까?」 문후가 말하였다. 「단간목이 있으니 이 때문에 절한다.」 그 종이 말하였다. 「단간목은 베옷 입은 선비인데 임금께서 그 마을에 절하심은 이미 심하지 않습니까?」 문후가 말하였다. 「단간목은 세와 이익에 나아가지 않고 군자의 도를 품어 궁벽한 거리에 숨어 처하되 소리가 천 리에 베풀어지니 과인이 감히 절하지 않으랴! 단간목은 덕에 빛나고 과인은 세에 빛나며 단간목은 의에 부유하고 과인은 재물에 부유하다. 세는 덕의 높음만 못하고 재물은 의의 높음만 못하다. 간목이 비록 저를 과인과 바꾸어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날마다 그림자에 부끄러운데 그대가 어찌 가벼이 여기는가!」 그 뒤 진나라 장수가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치려 하매 사마유가 간하여 말하였다. 「단간목은 어진 이라 그 임금이 예우함을 천하가 알지 못함이 없고 제후가 듣지 못함이 없는데 군사를 들어 치면 의에 방해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진나라가 곧 군사를 눕히고 그쳐 위나라를 치지 않았다.
夫墨子跌蹄而趨千里,以存楚、宋;段干木闔門不出,以安秦、魏。夫行與止也,其勢相反,而皆可以存國,此所謂異路而同歸者也。今夫救火者,汲水而趨之,或以甕瓴,或以盆盂,其方員銳橢不同,盛水各異,其於滅火鈞也。故秦、楚、燕、魏之歌也,異轉而皆樂;九夷八狄之哭也,殊聲而皆悲;一也。夫歌者,樂之徵也;哭者,悲之效也。憤于中則應於外,故在所以感。夫聖人之心,日夜不忘於欲利人,其澤之所及者,效亦大矣。
무릇 묵자는 발꿈치가 부르트도록 천 리를 달려 초나라와 송나라를 남겼고 단간목은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아 진나라와 위나라를 편안히 하였다. 무릇 다님과 그침은 그 세가 서로 반대이나 다 나라를 남길 수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길을 달리하되 돌아감을 같이함이다. 이제 무릇 불을 구하는 이가 물을 길어 달려가되 혹 옹기와 두레박으로 하고 혹 동이와 사발로 하여 그 모나고 둥글고 뾰족하고 길쭉함이 같지 않고 물 담김이 저마다 다르나 그 불 끔에서는 고르다. 그러므로 진나라와 초나라와 연나라와 위나라의 노래가 굴림을 달리하되 다 즐겁고 구이와 팔적의 곡이 소리를 달리하되 다 슬픔은 하나다. 무릇 노래란 즐거움의 조짐이요 곡이란 슬픔의 나타남이다. 가운데 분하면 밖에 응하므로 느끼는 바에 있다. 무릇 성인의 마음은 밤낮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려 함을 잊지 않으니 그 은택이 미치는 바가 나타남 또한 크다.
世俗廢衰,而非學者多。「人性各有所修短,若魚之躍,若鵲之駁,此自然者,不可損益。」吾以為不然。夫魚者躍,鵲者駁也,猶人馬之為人馬,筋骨形體,所受於天,不可變。以此論之,則不類矣。夫馬之為草駒之時,跳躍揚蹄,翹尾而走,人不能制,齧咋足以噆肌碎骨,蹶蹄足以破顱陷匈;及至圉人擾之,良禦教之,掩以衡扼,連以轡銜,則雖歷險超塹弗敢辭。故其形之為馬,馬不可化;其可駕禦,教之所為也。馬,聾蟲也,而可以通氣志,猶待教而成,又況人乎!且夫身正性善,發憤而成仁,帽憑而為義,性命可說,不待學問而合於道者,堯、舜、文王也;沉湎耽荒,不可教以道,不可喻以德,嚴父弗能正,賢師不能化者,丹朱、商均也。曼頰皓齒,形誇骨佳,不待脂粉芳澤而性可說者,西施、陽文也;啳𦝢哆噅,籧蒢戚施,雖粉白黛黑弗能為美者,嫫母、仳倠也。夫上不及堯、舜,下不及商均,美不及西施,惡不若嫫母,此教訓之所諭也,而芳澤之所施。且子有弑父者,然而天下莫疏其子,何也?愛父者眾也。儒有邪辟者,而先王之道不廢,何也?其行之者多也。今以為學者之有過而非學者,則是以一飽之故,絕穀不食,以一蹪之難,輟足不行,惑也。
세속이 폐하고 쇠하여 배움을 그르다 하는 이가 많다. 「사람의 성품에 저마다 길고 짧은 바가 있음이 고기가 뜀 같고 까치가 얼룩짐 같아 이는 절로 그러한 것이라 덜고 더할 수 없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무릇 고기가 뛰고 까치가 얼룩짐은 오히려 사람과 말이 사람과 말 됨 같아 힘줄과 뼈와 꼴과 몸은 하늘에서 받은 바라 변할 수 없다. 이로써 논하면 곧 무리가 아니다. 무릇 말이 풀밭 망아지일 때는 뛰고 굽을 들며 꼬리를 세우고 달려 사람이 제어할 수 없고 물면 살을 씹고 뼈를 부수기에 넉넉하며 굽으로 차면 머리뼈를 깨고 가슴을 꺼뜨리기에 넉넉하나 마부가 길들이고 좋은 몰이꾼이 가르쳐 멍에와 액을 덮고 고삐와 재갈을 이음에 미쳐서는 곧 비록 험한 데를 지나고 참호를 넘어도 감히 사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꼴이 말 됨은 말이 변화할 수 없으나 그 멍에하고 몰 수 있음은 가르침이 하는 바다. 말은 귀먹은 벌레인데도 기운과 뜻을 통할 수 있어 오히려 가르침을 기다려 이루어지는데 또 하물며 사람이랴! 또 무릇 몸이 바르고 성품이 착하여 분을 발하여 인을 이루고 힘써 의를 하며 성품과 명이 기쁠 만하여 배우고 묻기를 기다리지 않고 도에 합하는 이는 요·순·문왕이요 잠기고 빠지고 거칠어 도로 가르칠 수 없고 덕으로 깨우칠 수 없으며 엄한 아비도 바로잡을 수 없고 어진 스승도 화하게 할 수 없는 이는 단주·상균이다. 매끄러운 뺨과 흰 이에 꼴이 자랑스럽고 뼈가 아름다워 연지와 분과 향기로운 기름을 기다리지 않고도 성품이 기쁠 만한 이는 서시·양문이요 눈이 사팔뜨고 입이 비뚤며 곱사등이 되어 비록 흰 분과 검은 눈썹먹으로도 아름답게 할 수 없는 이는 모모·비수다. 무릇 위로 요·순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 상균에 미치지 않으며 아름다움이 서시에 미치지 못하고 나쁨이 모모만 못한 이 이는 가르침이 깨우치는 바요 향기로운 기름이 베풀어지는 바다. 또 자식으로 아비를 죽인 이가 있으나 천하가 그 자식을 멀리하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아비를 사랑하는 이가 많아서다. 유가에 사악하고 치우친 이가 있으나 선왕의 도가 폐하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그것을 행하는 이가 많아서다. 이제 배우는 이에게 허물이 있다 하여 배우는 이를 그르다 하면 이는 한 번 배부른 까닭으로 곡식을 끊고 먹지 않으며 한 번 넘어진 어려움으로 발을 그쳐 다니지 않음이니 홀림이다.
今有良馬,不待策錣而行,駑馬,雖兩錣之不能進,為此不用策錣而禦,則愚矣。夫怯夫操利劍,擊則不能斷,刺則不能入,及至勇武攘卷一搗,則摺肋傷幹,為此棄幹將、鏌邪而以手戰,則悖矣。所謂言者,齊於眾而同於俗。今不稱九天之頂,則言黃泉之底,是兩末之端議,何可以公論乎!夫橘柚冬生,而人曰冬死,死者眾;薺麥夏死,人曰夏生,生者眾。江、河之回曲,亦時有南北者,而人謂江、河東流;攝提鎮星日月東行,而人謂星辰日月西移者;以大氐為本。胡人有知利者,而人謂之駤;越人有重遲者,而人謂之訬;以多者名之。若夫堯眉八彩,九竅通洞,而公正無私,一言而萬民齊;舜二瞳子,是謂重明,作事成法,出言成章;禹耳參漏,是謂大通,興利除害,疏河決江;文王四乳,是謂大仁,天下所歸,百姓所親;皋陶馬喙,是謂至信,決獄明白,察於人情;禹生於石;契生於卵;史皇產而能書;羿左臂修而善射。若此九賢者,千歲而一出,猶繼踵而生。今無五聖之天奉,四俊之才難,欲棄學而循性,是謂猶釋船欲蹍水也。
이제 좋은 말이 있으면 채찍을 기다리지 않고 다니고 노둔한 말은 비록 두 채찍이라도 나아가게 할 수 없는데 이 때문에 채찍을 쓰지 않고 몰면 어리석다. 무릇 겁 많은 사내가 날카로운 검을 잡으면 쳐도 끊을 수 없고 찔러도 들어갈 수 없으나 용맹한 무사가 소매를 걷고 한 번 침에 미쳐서는 갈비를 꺾고 몸통을 상하는데 이 때문에 간장과 막야를 버리고 손으로 싸우면 어그러졌다. 이른바 말이란 무리에 가지런하고 풍속에 같다. 이제 아홉 하늘의 꼭대기를 일컫지 않으면 누런 샘의 밑을 말하니 이는 두 끝의 끄트머리 의논이라 어찌 공변되이 논할 수 있으랴! 무릇 귤과 유자는 겨울에 나는데 사람이 겨울에 죽는다 함은 죽는 것이 많아서요 냉이와 보리는 여름에 죽는데 사람이 여름에 난다 함은 나는 것이 많아서다. 강과 하수의 굽이가 또한 때로 남북으로 흐름이 있으나 사람이 강과 하수가 동으로 흐른다 하고 섭제와 진성과 해와 달이 동으로 다니나 사람이 별과 해와 달이 서로 옮긴다 함은 대체로를 근본으로 삼아서다. 오랑캐 사람에 이로움을 아는 이가 있으나 사람이 그를 미련하다 하고 월나라 사람에 무겁고 더딘 이가 있으나 사람이 그를 경솔하다 함은 많은 것으로 이름해서다. 무릇 요는 눈썹이 여덟 빛이고 아홉 구멍이 통하여 공변되고 바르며 사사로움이 없어 한마디에 만민이 가지런하였고 순은 눈동자가 둘이라 이를 거듭 밝음이라 하며 일을 지어 법을 이루고 말을 내어 문장을 이루었으며 우는 귀에 세 구멍이 있어 이를 큰 통함이라 하며 이익을 일으키고 해를 없애며 하수를 소통하고 강을 텄고 문왕은 젖이 넷이라 이를 큰 어짊이라 하며 천하가 돌아가고 백성이 친하였으며 고요는 입이 말 같아 이를 지극한 믿음이라 하며 옥사를 결단함이 밝고 희며 사람의 정에 살폈고 우는 돌에서 났으며 설은 알에서 났고 사황은 나면서 글을 쓸 수 있었으며 예는 왼팔이 길어 잘 쏘았다. 이 같은 아홉 어진 이는 천 해에 한 번 나오는데 오히려 발꿈치를 이어 났다. 이제 다섯 성인의 하늘이 받든 바가 없고 네 뛰어난 이의 재주도 어려운데 배움을 버리고 성품을 따르려 함 이는 배를 놓고 물을 밟으려 함이라 한다.
夫純鉤、魚腸之始下型,擊則不能斷,刺則不能入,及加之以砥礪,摩其鋒鍔,則水斷龍舟,陸剸犀甲。明鏡之始下型,矇然未見形容,及其粉以玄錫,摩以白旃,鬢眉微豪,可得而察。夫學,亦人之砥錫也,而謂學無益者,所以論之過。知者之所短,不若愚者之所修;賢者之所不足,不若眾人之有餘。何以知其然?夫宋畫吳冶,刻刑鏤法,亂修曲出,其為微妙,堯、舜之聖不能及。蔡之幼女,衛之稚質,梱纂組,雜奇彩,抑墨質,揚赤文,禹、湯之智不能逮。夫天之所覆,地之所載,包於六合之內,托於宇宙之間,陰陽之所生,血氣之精,含牙戴角,前爪後距,奮翼攫肆,蚑行蟯動之蟲,喜而合,怒而鬥,見利而就,避害而去,其情一也。雖所好惡,其與人無以異。然其爪牙雖利,筋骨雖強,不免制於人者,知不能相通,才力不能相一也。各有其自然之勢,無稟受於外,故力竭功沮。
무릇 순구와 어장이 처음 거푸집에서 나왔을 때는 쳐도 끊을 수 없고 찔러도 들어갈 수 없으나 숫돌을 더하고 그 칼날을 갊에 미쳐서는 물에서 용 배를 끊고 뭍에서 무소 갑옷을 벤다. 밝은 거울이 처음 거푸집에서 나왔을 때는 흐릿하여 모습이 보이지 않으나 검은 주석으로 갈고 흰 모직으로 문지름에 미쳐서는 살쩍과 눈썹의 미세한 터럭도 살필 수 있다. 무릇 배움도 또한 사람의 숫돌과 주석인데 배움이 이익 없다 하는 이는 그 논함이 지나친 까닭이다. 슬기로운 이의 짧은 바는 어리석은 이의 뛰어난 바만 못하고 어진 이의 모자란 바는 뭇사람의 남음 있음만 못하다. 무엇으로 그러함을 아는가. 무릇 송나라의 그림과 오나라의 대장장이가 꼴을 새기고 법을 아로새겨 어지러이 뛰어나고 굽이굽이 나오니 그 미묘함은 요·순의 성스러움도 미칠 수 없다. 채나라의 어린 여자와 위나라의 앳된 바탕이 끈을 짜고 기이한 채색을 섞어 검은 바탕을 누르고 붉은 무늬를 드날림은 우·탕의 슬기도 미칠 수 없다. 무릇 하늘이 덮는 바와 땅이 싣는 바로 육합 안에 싸이고 우주 사이에 맡겨져 음양이 낳은 바요 피와 기운의 정으로 어금니를 머금고 뿔을 이며 앞에 발톱이 있고 뒤에 며느리발톱이 있어 날개를 떨치고 움키며 기고 꿈틀거리는 벌레가 기뻐서 합하고 노하여 싸우며 이익을 보면 나아가고 해를 피해 떠남은 그 정이 하나다. 비록 좋아하고 미워하는 바가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발톱과 어금니가 비록 날카롭고 힘줄과 뼈가 비록 강해도 사람에게 제어됨을 면하지 못함은 앎을 서로 통할 수 없고 재주와 힘을 서로 하나로 할 수 없어서다. 저마다 그 절로 그러한 세가 있고 밖에서 받음이 없으므로 힘이 다하고 공이 막힌다.
夫雁順風,以愛氣力,銜蘆而翔,以備矰弋。螘知為垤,獾貉為曲穴,虎豹有茂草,野彘有艽莦,槎櫛堀虛,連比以像宮室,陰以防雨,景以蔽日。此亦鳥獸之所以知求合於其所利。今使人生於辟陋之國,長於窮櫩漏室之下,長無兄弟,少無父母,目未嘗見禮節,耳未嘗聞先古,獨守專室而不出門,使其性雖不愚,然其知者必寡矣。昔者,蒼頡作書,容成造曆,胡曹為衣,后稷耕稼,儀狄作酒,奚仲為車,此六人者,皆有神明之道,聖智之跡,故人作一事而遺後世,非能一人而獨兼有之。各悉其知,貴其所欲達,遂為天下備。今使六子者易事,而明弗能見者何?萬物至眾,而知不足以奄之。周室以後,無六子之賢,而皆修其業;當世之人,無一人之才,而知其六賢之道者何?教順施續,而知能流通。由此觀之,學不可已,明矣!
무릇 기러기는 바람을 따라 기운과 힘을 아끼고 갈대를 물고 날아 주살에 대비한다. 개미는 개미둑 만들 줄 알고 담비는 굽은 굴을 만들며 범과 표범은 무성한 풀이 있고 멧돼지는 잠자리가 있어 나뭇가지를 얽고 빈 구덩이를 파며 이어 견주어 궁실을 본떠 그늘로 비를 막고 볕을 가린다. 이 또한 새와 짐승이 그 이로운 바에 합함을 구할 줄 아는 것이다. 이제 사람으로 하여금 치우치고 좁은 나라에 나고 궁벽한 처마와 새는 방 아래서 자라며 자라서 형과 아우가 없고 어려서 아비와 어미가 없어 눈이 일찍이 예절을 보지 못하고 귀가 일찍이 옛것을 듣지 못하며 홀로 한 방을 지켜 문을 나가지 않게 하면 그 성품이 비록 어리석지 않아도 그 앎은 반드시 적을 것이다. 옛날 창힐이 글을 짓고 용성이 역법을 만들며 호조가 옷을 만들고 후직이 갈아 심으며 의적이 술을 만들고 해중이 수레를 만들었으니 이 여섯 사람이 다 신명한 도와 성스럽고 슬기로운 자취가 있으므로 사람마다 한 가지 일을 지어 후세에 남겼으니 한 사람이 홀로 겸하여 둘 수 있어서가 아니다. 저마다 그 앎을 다하여 그 통달하려는 바를 귀히 여겨 마침내 천하의 갖춤이 되었다. 이제 여섯 사람에게 일을 바꾸게 하면 밝음이 볼 수 없음은 어째서인가. 만물이 지극히 많아 앎이 덮기에 넉넉하지 않아서다. 주나라 왕실 뒤로 여섯 사람의 어짊이 없으나 다 그 업을 닦고 당세의 사람이 한 사람의 재주도 없으나 그 여섯 어진 이의 도를 앎은 어째서인가. 가르침이 순히 베풀어져 이어지고 앎이 흘러 통해서다. 이로써 보면 배움을 그만둘 수 없음이 분명하다!
今夫盲者目不能別晝夜,分白黑,然而搏琴撫弦,參彈複徽,攫援摽拂,手若蔑蒙,不失一弦。使未嘗鼓瑟者,雖有離朱之明,攫掇之捷,猶不能屈伸其指。何則?服習積貫之所致。故弓待檠而後能調,劍待砥而後能利。玉堅無敵,鏤以為獸,首尾成形,礛諸之功。木直中繩,揉以為輪,其曲中規,檃括之力。唐碧堅忍之類,猶可刻鏤,揉以成器用,又況心意乎!且夫精神滑淖纖微,倏忽變化,與物推移,雲蒸風行,在所設施。君子有能精搖摩監,砥礪其才,自試神明,覽物之博,通物之壅,觀始卒之端,見無外之境,以逍遙仿佯於塵埃之外,超然獨立,卓然離世,此聖人之所以游心。若此而不能,間居靜思,鼓琴讀書,追觀上古及賢大夫,學問講辯,日以自娛,蘇援世事,分白黑利害,籌策得失,以觀禍福,設儀立度,可以為法則,窮道本末,究事之情,立是廢非,明示後人,死有遺業,生有榮名。如此者,人才之所能逮。然而莫能至焉者,偷慢懈惰,多不暇日之故。夫瘠地之民多有心力者,勞也;沃地之民多不才者,饒也。由此觀之,知人無務,不若愚而好學。自人君公卿至於庶人,不自強而功成者,天下未之有也。《詩》雲:「日就月將,學有緝熙于光明。」此之謂也。名可務立,功可強成,故君子積志委正,以趣明師,勵節亢高,以絕世俗。
이제 무릇 소경은 눈이 낮과 밤을 가르고 희고 검음을 나눌 수 없으나 거문고를 잡고 줄을 어루만져 뜯고 짚고 다시 휘를 짚으며 움키고 당기고 치고 떨침이 손이 어른거리는 듯하되 한 줄도 잃지 않는다. 일찍이 비파를 타지 않은 이는 비록 이주의 밝음과 움켜쥐는 빠름이 있어도 오히려 그 손가락을 굽히고 펼 수 없다. 어째서인가. 익히고 거듭 꿴 바가 이르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활은 도지개를 기다린 뒤에 고를 수 있고 검은 숫돌을 기다린 뒤에 날카로울 수 있다. 옥이 굳어 맞설 것이 없으나 새겨 짐승을 만들어 머리와 꼬리가 꼴을 이룸은 숫돌의 공이다. 나무가 곧아 먹줄에 맞으나 휘어 바퀴를 만들어 그 굽음이 그림쇠에 맞음은 도지개의 힘이다. 당벽처럼 굳고 질긴 무리도 오히려 새기고 휘어 그릇으로 쓸 수 있는데 또 하물며 마음과 뜻이랴! 또 무릇 정신은 미끄럽고 미세하며 홀연히 변화하여 물건과 더불어 밀어 옮기고 구름처럼 오르고 바람처럼 다녀 베푸는 바에 있다. 군자가 정하게 흔들고 갈아 살피며 그 재주를 갈고 갈아 스스로 신명을 시험하고 물건의 넓음을 보며 물건의 막힘을 통하고 처음과 끝의 실마리를 보며 밖 없는 지경을 보아 티끌 밖에서 거닐고 노닐며 뛰어나 홀로 서고 우뚝하여 세상을 떠날 수 있음 이는 성인이 마음을 노니는 까닭이다. 만약 이같이 할 수 없으면 한가히 살며 고요히 생각하고 거문고를 타고 글을 읽으며 상고와 어진 대부를 미루어 보고 배우고 묻고 강론하고 변론하며 날마다 스스로 즐기고 세상일을 이끌어 희고 검음과 이롭고 해로움을 나누며 얻고 잃음을 산가지로 헤아려 화와 복을 보고 위의를 베풀고 도량을 세워 법칙이 될 만하게 하며 도의 근본과 끝을 궁구하고 일의 정을 궁구하며 옳음을 세우고 그름을 폐하여 뒷사람에게 밝게 보이면 죽어 남긴 업이 있고 살아 영화로운 이름이 있다. 이 같은 것은 사람의 재주가 미칠 수 있는 바다. 그러나 이를 수 있는 이가 없음은 구차하고 게을러 날이 넉넉하지 않다는 까닭이 많아서다. 무릇 메마른 땅의 백성에 마음과 힘 있는 이가 많음은 수고로워서요 기름진 땅의 백성에 재주 없는 이가 많음은 넉넉해서다. 이로써 보면 슬기로우면서 힘씀이 없음은 어리석으면서 배움을 좋아함만 못하다. 임금과 공경으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힘쓰지 않고 공을 이룬 이는 천하에 있지 않았다. 「시」에 이르기를 「날로 나아가고 달로 나아가 배움이 이어져 밝음에 빛나네」 하니 이를 이름이다. 이름은 힘써 세울 수 있고 공은 억지로 이룰 수 있으므로 군자는 뜻을 쌓고 바름을 맡겨 밝은 스승에게 나아가고 절개를 갈고 높음을 겨루어 세속과 끊는다.
何以明之?昔者南榮疇恥聖道之獨亡於己,身淬霜露,敕蹻趹,跋涉山川,冒蒙荊棘,百舍重跰,不敢休息,南見老聃。受教一言,精神曉泠,純聞條達,欣然七日不食,如饗太牢,是以明照四海,名施後世,達略天地,察分秋豪,稱譽葉語,至今不休。此所謂名可強立者。吳與楚戰,莫囂大心撫其禦之手曰:「今日距強敵,犯白刃,蒙矢石,戰而身死,卒勝民治,全我社稷,可以庶幾乎?」遂入不返,決腹斷頭,不旋踵運軌而死。申包胥竭筋力以赴嚴敵,伏屍流血,不過一卒之才,不如約身卑辭,求于諸侯。於是乃贏糧跣走,跋涉穀行,上峭山,赴深溪,游川水,犯津關,躐蒙籠,蹶沙石,蹠達膝曾繭重胝,七日七夜,至於秦庭。鶴跱而不食,晝吟宵哭,面若死灰,顏色黴墨,涕液交集,以見秦王。曰:「吳為封豨修蛇,蠶食上國,虐始于楚。寡君失社稷,越在草茅,百姓離散,夫婦男女,不遑啟處,使下臣告急。」秦王乃發車千乘,步卒七萬,屬之子虎,逾塞而東,擊吳濁水之上,果大破之,以存楚國。烈藏廟堂,著於憲法。此功之可強成者也。夫七尺之形,心知憂愁勞苦,膚知疾痛寒暑,人情一也。聖人知時之難得,務可趣也,苦身勞形,焦心怖肝,不避煩難,不違危殆。蓋聞子發之戰,進如激矢,合如雷電,解如風雨,員之中規,方之中矩,破敵陷陳,莫能壅禦,澤戰必克,攻城必下。彼非輕身而樂死,務在於前,遺利於後,故名立而不墮。此身強而成功者也。是故田者不強,囷倉不盈;官禦不厲,心意不精;將相不強,功烈不成;侯王懈惰,後世無名。《詩》雲:「我馬唯騏,六轡如絲。載馳載驅,周爰諮謨。」以言人之有所務也。
무엇으로 그것을 밝히는가. 옛날 남영주가 성인의 도가 홀로 저에게 없음을 부끄러워하여 몸이 서리와 이슬에 젖고 짚신을 신고 산과 내를 건너 가시덤불을 무릅쓰며 백 참을 거듭 부르트도록 감히 쉬지 않고 남으로 노담을 뵈었다. 한마디 가르침을 받으매 정신이 밝고 시원하며 순수하게 듣고 조리가 통달하여 기꺼이 이레를 먹지 않아도 큰 희생을 흠향한 듯하였다. 이로써 사해에 밝게 비추고 이름이 후세에 베풀어졌으며 하늘과 땅을 통달하여 다스리고 가을 터럭의 나뉨을 살펴 기림과 말이 지금까지 그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이름을 힘써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오나라와 초나라가 싸울 때 막효 대심이 그 마부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오늘 강한 적에 맞서 흰 날을 범하고 화살과 돌을 무릅쓰며 싸워 몸이 죽어 군졸이 이기고 백성이 다스려져 우리 사직을 온전히 하면 거의 되겠는가?」 마침내 들어가 돌아오지 않고 배가 갈리고 머리가 끊겨 발꿈치를 돌리고 바퀴를 옮기지 않고 죽었다. 신포서가 힘줄과 힘을 다하여 엄한 적에게 나아가 주검을 엎고 피를 흘려도 한 군졸의 재주에 지나지 않으니 몸을 묶고 말을 낮추어 제후에게 구함만 못하였다. 이에 곧 양식을 지고 맨발로 달려 골짜기를 건너 다니고 가파른 산에 오르며 깊은 시내에 나아가고 내를 헤엄쳐 나루와 관문을 범하며 덤불을 밟고 모래와 돌에 넘어져 발바닥이 무릎에 이르도록 거듭 부르트고 못이 박히며 이레 밤낮을 가 진나라 뜰에 이르렀다. 학처럼 서서 먹지 않고 낮에 읊고 밤에 곡하여 낯이 죽은 재 같고 낯빛이 곰팡이처럼 검으며 눈물과 콧물이 사귀어 모인 채 진나라 왕을 뵈었다. 말하였다. 「오나라가 큰 멧돼지와 긴 뱀이 되어 윗나라를 누에처럼 먹으니 학대가 초나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임금이 사직을 잃고 넘어져 풀밭에 있으며 백성이 흩어지고 남편과 아내와 남녀가 편히 처할 겨를이 없어 아래 신하를 시켜 급함을 알립니다.」 진나라 왕이 곧 수레 천 승과 걷는 군졸 칠만을 내어 자호에게 붙여 요새를 넘어 동으로 가 탁수 위에서 오나라를 쳐 과연 크게 깨뜨려 초나라를 남겼다. 그 매서움이 묘당에 감추어지고 헌법에 드러났다. 이것이 공을 억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무릇 일곱 자 꼴에 마음은 근심과 수고로움을 알고 살갗은 아픔과 춥고 더움을 아니 사람의 정은 하나다. 성인은 때를 얻기 어렵고 힘씀은 나아갈 만함을 알아 몸을 괴롭히고 꼴을 수고롭히며 마음을 태우고 간을 떨어 번거롭고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위태함을 어기지 않는다. 대개 듣건대 자발의 싸움은 나아감이 격한 화살 같고 합함이 우레와 번개 같으며 풀림이 바람과 비 같아 둥긂이 그림쇠에 맞고 모남이 곱자에 맞아 적을 깨뜨리고 진을 꺼뜨려 막을 수 있는 이가 없고 못에서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성을 치면 반드시 내렸다. 저가 몸을 가벼이 하고 죽음을 즐겨서가 아니라 힘씀이 앞에 있고 이익을 뒤에 남긴 까닭에 이름이 서고 떨어지지 않았다. 이는 몸이 힘써 공을 이룬 것이다. 이 때문에 밭 가는 이가 힘쓰지 않으면 곳간이 차지 않고 벼슬아치가 갈지 않으면 마음과 뜻이 정하지 않으며 장수와 재상이 힘쓰지 않으면 공과 매서움이 이루어지지 않고 후와 왕이 게으르면 후세에 이름이 없다. 「시」에 이르기를 「내 말은 오직 얼룩말이요 여섯 고삐가 실 같네. 달리고 몰아 두루 물어 꾀하네」 하니 사람에게 힘쓸 바가 있음을 말한다.
通於物者,不可驚以怪;喻於道者,不可動以奇;察於辭者,不可耀以名;審於形者,不可遯以狀。世俗之人,多尊古而賤今,故為道者必托之于神農、黃帝而後能入說。亂世暗主,高遠其所從來,因而貴之。為學者蔽于論而尊其所聞,相與危坐而稱之,正領而誦之。此見是非之分不明。夫無規矩,雖奚仲不能以定方圓;無準繩,雖魯般不能定曲直。是故鍾子期死而伯牙絕弦破琴,知世莫賞也;惠施死而莊子寢說言,見世莫可為語者也。夫項讬七歲為孔子師,孔子有以聽其言也。以年之少,為閭丈人說,救敲不給,何道之能明也?
물건에 통한 이는 괴이함으로 놀라게 할 수 없고 도에 깨우친 이는 기이함으로 움직일 수 없으며 말에 살핀 이는 이름으로 빛나게 할 수 없고 꼴에 살핀 이는 모양으로 달아날 수 없다. 세속의 사람은 흔히 옛것을 높이고 지금을 천히 여기므로 도를 하는 이가 반드시 신농과 황제에 맡긴 뒤에 설에 들 수 있다. 어지러운 세상의 어두운 임금은 그 좇아 온 바를 높고 멀게 하고 그로 인해 귀히 여긴다. 배우는 이는 논에 가려 그 들은 바를 높여 서로 더불어 바로 앉아 일컫고 옷깃을 바로 하고 왼다. 이는 옳고 그름의 나뉨을 봄이 밝지 않음이다. 무릇 그림쇠와 곱자가 없으면 비록 해중이라도 모남과 둥긂을 정할 수 없고 수준기와 먹줄이 없으면 비록 노반이라도 굽고 곧음을 정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종자기가 죽으매 백아가 줄을 끊고 거문고를 깨뜨렸으니 세상에 알아줄 이가 없음을 알아서요 혜시가 죽으매 장자가 설을 그쳤으니 세상에 더불어 말할 만한 이가 없음을 보아서다. 무릇 항탁이 일곱 살에 공자의 스승이 됨은 공자가 그 말을 들을 만함이 있어서다. 나이 어림으로 마을 어른에게 설하면 두들겨 맞음을 구하기에도 넉넉하지 않으니 무슨 도를 밝힐 수 있으랴.
昔者,謝子見於秦惠王,惠王說之,以問唐姑梁,唐姑梁曰:「謝子,山東辯士,固權說以取少主。」惠王因藏怒而待之。後日複見,逆而弗聽也。非其說異也,所以聽者易。夫以徵為羽,非弦之罪;以苦為甘,非味之過。楚國有烹猴而召其鄰人,以為狗羹也,而甘之。後聞其猴也,據地而吐之,盡寫其食。此未始知味者也。邯鄲師有出新曲者,讬之李奇,諸人皆爭學之。後知其非也,而皆棄其曲,此未始知音者也。鄙人有得玉璞者,喜其狀,以為寶而藏之。以示人,人以為石也,因而棄之。此未始知玉者也。故有符於中,則貴是而同今古;無以聽其說,則所從來者遠而貴之耳。此和氏之所以泣血于荊山之下。
옛날 사자가 진 혜왕을 뵈니 혜왕이 기뻐하여 당고량에게 물었다. 당고량이 말하였다. 「사자는 산동의 변론하는 선비라 본디 저울질하는 설로 어린 임금을 취합니다.」 혜왕이 이로 인해 노함을 감추고 기다렸다. 뒷날 다시 뵈매 거슬려 듣지 않았다. 그 설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듣는 이가 바뀌어서다. 무릇 치를 우로 삼음은 줄의 죄가 아니요 쓴 것을 단 것으로 삼음은 맛의 허물이 아니다. 초나라에 원숭이를 삶아 그 이웃 사람을 부른 이가 있는데 개 국인 줄 알고 달게 먹었다. 뒤에 그것이 원숭이임을 듣고 땅을 짚고 토하여 그 먹은 것을 다 쏟았다. 이는 아직 맛을 알지 못하는 이다. 한단의 악사에 새 곡을 낸 이가 있어 이기에게 맡기니 여러 사람이 다 다투어 배웠다. 뒤에 그것이 아님을 알고 다 그 곡을 버렸으니 이는 아직 음을 알지 못하는 이다. 비루한 사람에 옥 원석을 얻은 이가 있어 그 모양을 기뻐하여 보배로 여기고 감추었다. 남에게 보이매 남이 돌이라 여기니 그로 인해 버렸다. 이는 아직 옥을 알지 못하는 이다. 그러므로 가운데 부합함이 있으면 옳음을 귀히 여겨 이제와 옛을 같이하고 그 설을 들을 것이 없으면 좇아 온 바가 먼 것을 귀히 여길 뿐이다. 이것이 화씨가 형산 아래서 피눈물 흘린 까닭이다.
今劍或絕側羸文,齧缺卷銋,而稱以頂襄之劍,則貴人爭帶之;琴或撥刺枉橈,闊解漏越,而稱為楚莊之琴,側室爭鼓之。苗山之鋋,羊頭之銷,雖水斷龍舟,陸剸兕甲,莫之服帶。山桐之琴,澗梓之腹,雖鳴廉修營,唐牙莫之鼓也。通人則不然。服劍者期於銛利,而不期於墨陽、莫邪;乘馬者期於千里,而不期於驊騮、綠耳;鼓琴者期於鳴廉修營,而不期於濫肋、號鍾;誦《詩》、《書》者期於通道略物,而不期於《洪範》、《商頌》。聖人見是非,若白黑之於目辨,清濁之於耳聽。眾人則不然。中無主以受之,譬若遺腹子之上隴,以禮哭泣之,而無所歸心。故夫孿子之相似者,唯其母能知之;玉石之相類者,唯良工能識之;書傳之微者,惟聖人能論之。今取新聖人書,名之孔、墨,則弟子句指而受者必眾矣。故美人者,非必西施之種;通士者,不必孔、墨之類。曉然意有所通於物,故作書以喻意,以為知者也。誠得清明之士,執玄鑒於心,照物明白,不為古今易意,攄書明指以示之,雖闔棺亦不恨矣。
이제 검이 혹 옆이 끊기고 무늬가 여위며 이 빠지고 굽었어도 정양의 검이라 일컬으면 귀인이 다투어 차고 거문고가 혹 어그러지고 굽으며 성기게 갈라지고 새어도 초 장왕의 거문고라 일컬으면 곁방에서 다투어 탄다. 묘산의 창과 양두의 칼은 비록 물에서 용 배를 끊고 뭍에서 무소 갑옷을 베어도 아무도 차지 않는다. 산 오동의 거문고와 시내 가래나무의 배는 비록 소리가 맑고 길게 울려도 당아가 타지 않는다. 통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검을 차는 이는 날카로움을 기약하고 묵양과 막야를 기약하지 않으며 말을 타는 이는 천 리를 기약하고 화류와 녹이를 기약하지 않고 거문고를 타는 이는 맑고 긴 울림을 기약하고 남협과 호종을 기약하지 않으며 「시」와 「서」를 외는 이는 도에 통하고 물건을 다스림을 기약하고 「홍범」과 「상송」을 기약하지 않는다. 성인이 옳고 그름을 봄은 희고 검음을 눈이 가림 같고 맑고 흐림을 귀가 들음 같다. 뭇사람은 그렇지 않다. 가운데 주인이 없어 받으니 비유하면 유복자가 언덕에 올라 예로 곡함 같아 마음 돌아갈 바가 없다. 그러므로 무릇 쌍둥이의 서로 닮음은 오직 그 어미만 알 수 있고 옥과 돌의 서로 비슷함은 오직 좋은 공인만 알 수 있으며 글과 전함의 미세함은 오직 성인만 논할 수 있다. 이제 새 성인의 글을 취하여 공자와 묵자로 이름하면 제자가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받는 이가 반드시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사람이 반드시 서시의 씨가 아니요 통한 선비가 반드시 공자와 묵자의 무리가 아니다. 뚜렷이 뜻이 물건에 통한 바가 있으므로 글을 지어 뜻을 깨우쳐 아는 이로 삼는다. 참으로 맑고 밝은 선비를 얻어 마음에 검은 거울을 잡고 물건을 비춤이 밝고 희며 이제와 옛으로 뜻을 바꾸지 않으면 글을 펴 가리킴을 밝혀 보이니 비록 관을 닫아도 또한 한스럽지 않다.
昔晉平公令官為鍾。鍾成,而示師曠。師曠曰:「鍾音不調。」平公曰:「寡人以示工,工皆以為調。而以為不調,何也?」師曠曰:「使後世無知音者則已,若有知音者,必知鍾之不調。」故師曠之欲善調鍾也,以為後之有知音者也。三代與我同行,五伯與我齊智,彼獨有聖智之實,我曾無有閭裏之聞,窮巷之知者何?彼並身而立節,我誕謾而悠忽。今夫毛嬙、西施,天下之美人,若使之銜腐鼠,蒙蝟皮,衣豹裘,帶死蛇,則布衣韋帶之人過者,莫不左右睥睨而掩鼻。嘗試使之施芳澤,正娥眉,設笄珥,衣阿錫,曳齊紈,粉白黛黑,佩玉環,揄步,雜芝若,籠蒙目視,冶由笑,目流眺,口曾撓,奇牙出,𩉇酺搖,則雖王公大人,有嚴志頡頏之行者,無不憚悇癢心而悅其色矣。今以中人之才,蒙愚惑之智,被污辱之行,無本業所修,方術所務,焉得無有睥面掩鼻之容哉!
옛날 진 평공이 벼슬아치에게 종을 만들게 하였다. 종이 이루어져 사광에게 보였다. 사광이 말하였다. 「종의 음이 고르지 않습니다.」 평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공인에게 보이매 공인이 다 고르다 하는데 고르지 않다 함은 어째서인가?」 사광이 말하였다. 「후세에 음을 아는 이가 없으면 그만이나 만약 음을 아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종이 고르지 않음을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광이 종을 잘 고르려 함은 뒤에 음을 아는 이가 있으리라 여겨서다. 삼대가 나와 행실을 같이하고 오패가 나와 슬기를 가지런히 하였는데 저들만 홀로 성스럽고 슬기로운 실이 있고 내게는 일찍이 마을에 들림도 없고 궁벽한 거리의 앎도 없음은 어째서인가. 저들은 몸을 아울러 절개를 세웠고 나는 속이고 게을러 아득히 지냈다. 이제 무릇 모장과 서시는 천하의 아름다운 사람이나 만약 그들에게 썩은 쥐를 물리고 고슴도치 가죽을 씌우며 표범 갖옷을 입히고 죽은 뱀을 띠게 하면 베옷 입고 가죽 띠 두른 사람이 지나며 좌우로 흘겨보고 코를 막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시험 삼아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고 고운 눈썹을 바로 하며 비녀와 귀고리를 베풀고 아 땅의 가는 옷을 입으며 제나라 비단을 끌고 흰 분과 검은 눈썹먹을 하며 옥 고리를 차고 사뿐히 걸으며 지초와 두약을 섞고 어스름히 눈으로 보며 요염하게 웃고 눈으로 흘겨보며 입을 굽히고 기이한 이를 드러내며 보조개를 흔들게 하면 비록 왕공과 대인으로 엄한 뜻과 겨루는 행실이 있는 이라도 마음이 근질거려 그 빛을 기뻐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제 중간 사람의 재주로 어리석고 홀린 슬기를 쓰고 더럽고 욕된 행실을 입으며 근본 업의 닦은 바와 방술의 힘쓴 바가 없으면 어찌 흘겨보고 코 막는 모습이 없을 수 있으랴!
今鼓舞者,繞身若環,曾撓摩地,扶旋猗那,動容轉曲,便媚擬神。身若秋藥被風,發若結旌,騁馳若騖;木熙者,舉梧檟,據句枉,蝯自縱,好茂葉,龍夭矯,燕枝拘,援豐條,舞扶疏,龍從鳥集,搏援攫肆,蔑蒙踴躍。且夫觀者莫不為之損心酸足,彼乃始徐行微笑,被衣修擢。夫鼓舞者非柔縱,而木熙者非眇勁,淹浸漬漸摩使然也。是故生木之長,莫見其益,有時而修;砥礪靡堅,莫見其損,有時而薄。藜藿之生,蠕蠕然日加數寸,不可以為櫨棟;楩楠豫章之生也,七年而後知,故可以為棺舟。夫事有易成者名小,難成者功大。君子修美,雖未有利,福將在後至。故《詩》雲:「日就月將,學有緝熙于光明。」此之謂也。
이제 북 치고 춤추는 이는 몸을 두름이 고리 같고 굽혀 땅을 문지르며 붙들어 돌고 하늘거리며 모습을 움직이고 굽이를 굴려 곱고 아리따움이 신을 본뜬다. 몸이 가을 작약이 바람 맞음 같고 머리털이 맺은 깃발 같으며 달림이 내닫는 듯하다. 나무에서 노는 이는 오동과 개오동을 들고 굽은 데를 짚으며 원숭이처럼 스스로 놓고 무성한 잎을 좋아하며 용처럼 굽고 제비처럼 가지에 걸리며 풍성한 가지를 당기고 우거진 데서 춤추며 용처럼 따르고 새처럼 모이며 붙들고 당기고 움키고 멋대로 하며 어른거리며 뛴다. 또 무릇 보는 이가 그 때문에 마음을 덜고 발이 시리지 않음이 없는데 저들은 곧 비로소 천천히 걸으며 살짝 웃고 옷을 입고 몸을 뽑는다. 무릇 북 치고 춤추는 이가 부드럽고 늘어져서가 아니요 나무에서 노는 이가 가늘고 굳세어서가 아니라 담그고 적시고 점차 갈아 그렇게 시킨 것이다. 이 때문에 산 나무가 자람은 그 더함을 보는 이가 없어도 때가 있어 길어지고 숫돌이 굳은 것을 갊은 그 덜림을 보는 이가 없어도 때가 있어 얇아진다. 명아주와 콩잎이 남은 꿈틀꿈틀 날마다 몇 치씩 더하나 두공과 마룻대가 될 수 없고 편남과 예장이 남은 일곱 해 뒤에야 알 수 있으므로 관과 배가 될 수 있다. 무릇 일에 이루기 쉬운 것은 이름이 작고 이루기 어려운 것은 공이 크다. 군자가 아름다움을 닦으면 비록 아직 이익이 없어도 복이 장차 뒤에 이른다. 그러므로 「시」에 이르기를 「날로 나아가고 달로 나아가 배움이 이어져 밝음에 빛나네」 하니 이를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