要略
夫作為書論者,所以紀綱道德,經緯人事,上考之天,下揆之地,中通諸理,雖未能抽引玄妙之中才,繁然足以觀終始矣。總要舉凡,而語不剖判純樸,靡𢿱大宗,懼為人之惽惽然弗能知也;故多為之辭,博為之說,又恐人之離本就末也。故言道而不言事,則無以與世浮沉;言事而不言道,則無以與化遊息。故著二十篇,有《原道》、有《俶真》、有《天文》、有《墜形》、有《時則》、有《覽冥》、有《精神》、有《本經》、有《主術》、有《繆稱》、有《齊俗》、有《道應》、有《氾論》、有《詮言》、有《兵略》、有《說山》、有《說林》、有《人間》、有《修務》、有《泰族》也。
무릇 글과 논을 지음은 도덕을 벼리 짓고 사람의 일을 날줄 씨줄 삼으며 위로 하늘에서 상고하고 아래로 땅에서 헤아리며 가운데로 여러 이치에 통하려 함이니 비록 현묘한 가운데의 재주를 뽑아낼 수는 없어도 번다하게나마 마침과 시작을 보기에는 넉넉하다. 요긴함을 총괄하고 대강을 들되 말이 순박함을 쪼개어 가르고 큰 종주를 흩뜨리지 않으면 사람이 어리둥절하여 알 수 없을까 두려우므로 말을 많이 하고 설을 넓게 하였으며 또 사람이 근본을 떠나 끝에 나아갈까 두렵다. 그러므로 도를 말하고 일을 말하지 않으면 세상과 더불어 뜨고 잠길 길이 없고 일을 말하고 도를 말하지 않으면 변화와 더불어 노닐고 쉴 길이 없다. 그러므로 스무 편을 지으니 「원도」가 있고 「숙진」이 있으며 「천문」이 있고 「지형」이 있으며 「시칙」이 있고 「남명」이 있으며 「정신」이 있고 「본경」이 있으며 「주술」이 있고 「무칭」이 있으며 「제속」이 있고 「도응」이 있으며 「범론」이 있고 「전언」이 있으며 「병략」이 있고 「설산」이 있으며 「설림」이 있고 「인간」이 있으며 「수무」가 있고 「태족」이 있다.
《原道》者,盧牟六合,混沌萬物,象太一之容,測窈冥之深,以翔虛無之軫,托小以苞大,守約以治廣,使人知先後之禍富,動靜之利害。誠通其志,浩然可以大觀矣。欲一言而寤,則尊天而保真;欲再言而通,則賤物而貴身;欲參言而究,則外物而反情。執其大指,以內治五藏,瀸濇肌膚,被服法則,而與之終身,所以應待萬方,鑒耦百變也。若轉丸掌中,足以自樂也。
「원도」란 육합을 우리 짓고 만물을 뒤섞으며 태일의 모습을 본뜨고 그윽하고 어두움의 깊이를 재어 비고 없음의 굴대에 날며 작음에 맡겨 큼을 싸고 간략함을 지켜 넓음을 다스려 사람으로 먼저와 뒤의 화와 복과 움직임과 고요함의 이롭고 해로움을 알게 함이다. 참으로 그 뜻에 통하면 넓게 크게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깨닫고자 하면 하늘을 높이고 참을 지킴이요 두 마디로 통하고자 하면 물건을 천히 여기고 몸을 귀히 여김이며 세 마디로 궁구하고자 하면 물건을 밖으로 하고 정에 돌이킴이다. 그 큰 가리킴을 잡아 안으로 오장을 다스리고 살갗에 적시며 법칙을 입어 더불어 종신하면 만 방향에 응하여 기다리고 온갖 변화를 거울처럼 짝하는 까닭이다. 구슬을 손바닥에서 굴림 같아 스스로 즐기기에 넉넉하다.
《俶真》者,窮逐終始之化,嬴垀有無之精,離別萬物之變,合同死生之形。使人遺物反己,審仁義之間,通同異之理,觀至德之統,知變化之紀,說符玄妙之中,通回造化之母也。
「숙진」이란 마침과 시작의 변화를 궁구히 쫓고 있음과 없음의 정을 채우며 만물의 변화를 갈라 나누고 죽음과 삶의 꼴을 합하여 같이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물건을 버리고 저에게 돌이키며 인의의 사이를 살피고 같고 다름의 이치에 통하며 지극한 덕의 거느림을 보고 변화의 벼리를 알며 현묘한 가운데의 부합을 말하고 조화의 어미를 통하여 돌게 한다.
《天文》者,所以和陰陽之氣,理日月之光,節開塞之時,列星辰之行,知逆順之變,避忌諱之殃,順時運之應,法五神之常,使人有以仰天承順,而不亂其常者也。
「천문」이란 음양의 기운을 화하고 해와 달의 빛을 다스리며 열고 막음의 때를 절제하고 별의 다님을 벌이며 거스름과 순함의 변화를 알고 꺼림의 재앙을 피하며 때 운행의 응함을 따르고 다섯 신의 늘 그러함을 본받아 사람으로 하늘을 우러러 순함을 받들고 그 늘 그러함을 어지럽히지 않게 하는 까닭이다.
《地形》者,所以窮南北之修,極東西之廣,經山陵之形,區川谷之居,明萬物之主,知生類之眾,列山淵之數,規遠近之路。使人通回周備,不可動以物,不可驚以怪者也。
「지형」이란 남북의 길이를 궁구하고 동서의 넓음을 극하며 산과 언덕의 꼴을 날줄 삼고 내와 골짜기의 자리를 구획하며 만물의 주인을 밝히고 살아 있는 무리의 많음을 알며 산과 못의 수를 벌이고 멀고 가까운 길을 그림쇠 짓는 까닭이다. 사람으로 통하여 두루 돌아 갖추게 하여 물건으로 움직일 수 없고 괴이함으로 놀라게 할 수 없는 것이다.
《時則》者,所以上因天時,下盡地力,據度行當,合諸人則,形十二節,以為法式,終而複始,轉於無極,因循仿依,以知禍福,操舍開塞,各有龍忌,發號施令,以時教期。使君人者知所以從事。
「시칙」이란 위로 하늘의 때를 따르고 아래로 땅의 힘을 다하며 도량에 근거하여 마땅함을 행하고 여러 사람의 법칙에 합하며 열두 마디를 꼴 지어 법식으로 삼고 마치면 다시 비롯하여 다함없이 돌며 따르고 의지하여 화와 복을 알고 잡고 놓고 열고 막음에 저마다 꺼림이 있어 호령을 내고 명령을 베풂에 때로 가르치고 기약하는 까닭이다. 사람의 임금 된 이로 일하는 바를 알게 한다.
《覽冥》者,所以言至精之通九天也,至微之淪無形也,純粹之入至清也,昭昭之通冥冥也。乃始攬物引類,覽取撟掇,浸想宵類,物之可以喻意象形者,乃以穿通窘滯,決瀆壅塞,引人之意,系之無極,乃以明物類之感,同氣之應,陰陽之合,形埒之朕,所以令人遠觀博見者也。
「남명」이란 지극한 정이 구천에 통하고 지극한 미세함이 꼴 없음에 잠기며 순수함이 지극한 맑음에 들고 밝고 밝음이 어둡고 어두움에 통함을 말하는 까닭이다. 이에 비로소 물건을 잡고 무리를 끌며 보아 취하고 들어 주우며 생각을 적시고 비슷함을 본떠 물건 가운데 뜻을 깨우치고 꼴을 본뜰 수 있는 것으로 곧 막히고 걸린 것을 뚫고 통하며 막힌 도랑을 터 사람의 뜻을 끌어 다함없음에 매고 이에 물건 무리의 느낌과 같은 기운의 응함과 음양의 합함과 꼴과 테두리의 조짐을 밝히니 사람으로 멀리 보고 널리 보게 하는 까닭이다.
《精神》者,所以原本人之所由生,而曉寤其形骸九竅,取象與天,合同其血氣,與雷霆風雨比類其喜怒,與晝宵寒暑並明,審死生之分,別同異之跡,節動靜之機,以反其性命之宗,所以使人愛養其精神,撫靜其魂魄,不以物易己,緊守虛無之宅者也。
「정신」이란 사람이 말미암아 난 바에 근원하여 그 몸과 아홉 구멍을 깨닫게 하고 하늘에서 형상을 취하여 그 피와 기운을 합하여 같이하며 우레와 바람과 비와 더불어 그 기쁨과 노함을 무리 지어 견주고 낮과 밤과 추위와 더위와 아울러 밝히며 죽음과 삶의 나뉨을 살피고 같고 다름의 자취를 가르며 움직임과 고요함의 틀을 절제하여 그 성품과 명의 종주로 돌이키니 사람으로 그 정신을 아껴 기르고 그 혼백을 어루만져 고요히 하며 물건으로 저를 바꾸지 않고 비고 없음의 집을 굳게 지키게 하는 까닭이다.
《本經》者,所以明大聖之德,通維初之道,埒略衰世古今之變,以褒先世之隆盛,而貶末世之曲政也。所以使人黜耳目之聰明,精神之感動,樽流遁之觀,節養性之和,分帝王之操,列小大之差者也。
「본경」이란 큰 성인의 덕을 밝히고 처음을 벼리 짓는 도에 통하며 쇠한 세상과 옛과 이제의 변화를 대략 테두리 지어 앞선 세상의 성함을 기리고 말세의 굽은 정사를 낮추는 까닭이다. 사람으로 귀와 눈의 총명과 정신의 감동을 물리치고 흘러 달아나는 봄을 그치게 하며 성품 기르는 화함을 절제하고 제왕의 잡음을 나누며 작고 큼의 차이를 벌이게 하는 까닭이다.
《主術》者,君人之事也。所以因作任督責,使群臣各盡其能也。明攝權操柄,以制群下,提名責實,考之參伍,所以使人主秉數持要,不妄喜怒也。其數直施而正邪,外私而立公,使百官條通而輻輳,各務其業,人致其功。此主術之明也。
「주술」이란 남의 임금 된 이의 일이다. 지음을 따라 살피고 꾸짖음에 맡겨 뭇 신하로 저마다 그 능함을 다하게 하는 까닭이다. 권세를 잡고 자루를 쥠을 밝혀 뭇 아래를 제어하고 이름을 들어 실을 책하며 셋과 다섯으로 상고하니 임금으로 수를 잡고 요긴함을 지녀 망령되이 기뻐하고 노하지 않게 하는 까닭이다. 그 수는 곧게 베풀어 사악함을 바로잡고 사사로움을 밖으로 하여 공변됨을 세우며 백관으로 조리 있게 통하여 바퀴살처럼 모여 저마다 그 업에 힘쓰고 사람마다 그 공을 이르게 한다. 이것이 임금 술의 밝음이다.
《繆稱》者,破碎道德之論,差次仁義之分,略雜人間之事,總同乎神明之德,假像取耦,以相譬喻,斷短為節,以應小具。所以曲說攻論,應感而不匱者也。
「무칭」이란 도덕의 논을 부수어 쪼개고 인의의 나뉨을 차례 지으며 사람 사이의 일을 대략 섞고 신명의 덕에 총괄하여 같이하며 형상을 빌리고 짝을 취하여 서로 비유하고 짧게 끊어 마디를 삼아 작은 갖춤에 응하는 것이다. 굽은 설과 침노하는 논으로 느낌에 응하되 모자라지 않게 하는 까닭이다.
《齊俗》者,所以一群生之短修,同九夷之風氣,通古今之論,貫萬物之理,財制禮義之宜,擘畫人事之終始者也。
「제속」이란 뭇 삶의 짧고 긺을 하나로 하고 구이의 풍조와 기운을 같이하며 옛과 이제의 논에 통하고 만물의 이치를 꿰며 예의의 마땅함을 마름질하고 사람 일의 마침과 시작을 그려 나누는 까닭이다.
《道應》者,攬掇遂事之蹤,追觀往古之跡,察禍福利害之反,考驗乎老莊之術,而以合得失之勢者也。
「도응」이란 이루어진 일의 자취를 잡아 줍고 지난 옛의 자취를 쫓아 보며 화와 복과 이로움과 해로움의 뒤집힘을 살피고 노자와 장자의 술에서 상고하여 증험하며 그로써 얻고 잃음의 세에 합하는 것이다.
《氾論》者,所以箴縷縩繺之間,攕揳唲齵之郤也。接徑直施,以推本樸,而兆見得失之變,利病之反,所以使人不妄沒於勢利,不誘惑於事態,有符曮晲,兼稽時勢之變,而與化推移者也。
「범론」이란 성긴 비단 사이를 바늘로 꿰매고 어긋난 이 사이의 틈을 메우는 까닭이다. 지름길을 이어 곧게 베풀어 근본과 순박함을 밀고 얻고 잃음의 변화와 이롭고 병듦의 뒤집힘을 조짐으로 보이니 사람으로 세와 이익에 망령되이 빠지지 않고 일의 모양에 꾀어 홀리지 않으며 부합함이 어렴풋이 있어 때와 세의 변화를 겸하여 상고하고 변화와 더불어 밀어 옮기게 하는 까닭이다.
《詮言》者,所以譬類人事之指,解喻治亂之體也。差擇微言之眇,詮以至理之文,而補縫過失之闕者也。
「전언」이란 사람 일의 가리킴을 무리로 비유하고 다스림과 어지러움의 몸을 풀어 깨우치는 까닭이다. 미세한 말의 묘함을 가려 뽑고 지극한 이치의 글로 풀이하여 허물과 잃음의 이지러짐을 기워 메우는 것이다.
《兵略》者,所以明戰勝攻取之數,形機之勢,詐譎之變,體因循之道,操持後之論也。所以知戰陣分爭之非道不行也,知攻取堅守之非德不強也。誠明其意,進退左右無所失擊危,乘勢以為資,清靜以為常,避實就虛,若驅群羊,此所以言兵者也。
「병략」이란 싸워 이기고 쳐서 취하는 수와 꼴과 틀의 세와 속임과 거짓의 변화를 밝히고 따르는 도를 몸 삼으며 뒤를 지니는 논을 잡는 까닭이다. 싸우고 진 치고 나누어 다툼이 도가 아니면 행해지지 않음을 알고 치고 취하며 굳게 지킴이 덕이 아니면 강하지 않음을 아는 까닭이다. 참으로 그 뜻을 밝히면 나아가고 물러나고 왼쪽 오른쪽에 위태함을 침에 잃는 바가 없고 세를 타 밑천으로 삼으며 맑고 고요함을 늘 그러함으로 삼아 참을 피하고 빔에 나아감이 양 떼를 몲 같으니 이것이 군사를 말하는 까닭이다.
《說山》、《說林》者,所以竅窕穿鑿百事之壅遏,而通行貫扃萬物之窒塞者也。假譬取象,異類殊形,以領理人之意,解除結細,說捍摶囷而以明事埒事者也。
「설산」과 「설림」이란 온갖 일의 막힘을 뚫고 파며 만물의 막힘을 꿰뚫어 다니고 빗장을 꿰는 까닭이다. 비유를 빌리고 형상을 취하여 무리를 달리하고 꼴을 달리하며 사람의 뜻을 거느려 다스리고 잘게 맺힌 것을 풀며 뭉치고 얽힌 것을 막아 일과 일의 테두리를 밝히는 것이다.
《人間》者,所以觀禍福之變,察利害之反,鑽脈得失之跡,標舉終始之壇也。分別百事之微,敷陳存亡之機,使人知禍之為福,亡之為得,成之為敗,利之為害也。誠喻至意,則有以傾側偃仰世俗之間,而無傷乎讒賊螫毒者也。
「인간」이란 화와 복의 변화를 보고 이로움과 해로움의 뒤집힘을 살피며 얻고 잃음의 자취를 뚫어 맥을 짚고 마침과 시작의 단을 들어 표하는 까닭이다. 온갖 일의 미세함을 갈라 나누고 남고 망함의 틀을 펴서 벌여 사람으로 화가 복이 되고 망함이 얻음이 되며 이룸이 패함이 되고 이익이 해가 됨을 알게 한다. 참으로 지극한 뜻을 깨우치면 세속 사이에서 기울고 눕고 우러르되 참소하고 해치고 쏘는 독에 상함이 없다.
《修務》者,所以為人之於道未淹,味論未深,見其文辭,反之以清靜為常,恬淡為本,則懈墮分學,縱欲適情,欲以偷自佚,而塞于大道也。今夫狂者無憂,聖人亦無憂。聖人無憂,和以德也;狂者無憂,不知禍福也。故通而無為也,與塞而無為也同;其無為則同,其所以無為則異。故為之浮稱流說其所以能聽,所以使學者孳孳以自幾也。
「수무」란 사람이 도에 아직 잠기지 않고 논을 맛봄이 아직 깊지 않아 그 글과 말을 보고 도리어 맑고 고요함을 늘 그러함으로 삼고 담담함을 근본으로 삼으면 곧 게을러 배움을 나누고 바람을 놓아 정에 맞추며 구차히 스스로 편안하고자 하여 큰 도에 막히기 때문이다. 이제 무릇 미친 이는 근심이 없고 성인도 또한 근심이 없다. 성인이 근심 없음은 덕으로 화해서요 미친 이가 근심 없음은 화와 복을 알지 못해서다. 그러므로 통하여 함이 없음과 막혀 함이 없음이 같으니 그 함이 없음은 같으나 그 함이 없는 까닭은 다르다. 그러므로 그를 위해 뜬 일컬음과 흐르는 설을 하여 들을 수 있게 하니 배우는 이로 부지런히 스스로 가까이하게 하는 까닭이다.
《泰族》者,橫八極,致高乘,上明三光,下和水土,經古今之道,治倫理之序,總萬方之指,而歸之一本,以經緯治道,紀綱王事,乃原心術,理性情,以館清平之靈,澄澈神明之精,以與天和相嬰薄,所以覽五帝三王,懷天氣,抱天心,執中含和,德形於內,以莙凝天地,發起陰陽,序四時,正流方,綏之斯寧,推之斯行,乃以陶冶萬物,遊化群生,唱而和,動而隨,四海之內,一心同歸。故景星見,祥風至,黃龍下,鳳巢列樹,麟止郊野。德不內形,而行其法藉,專用制度,神祇弗應,福祥不歸,四海不賓,兆民弗化。故德形於內,治之大本。此《鴻烈》之《泰族》也。
「태족」이란 여덟 끝을 가로지르고 높은 타기를 이르게 하며 위로 세 빛을 밝히고 아래로 물과 흙을 화하며 옛과 이제의 도를 날줄 삼고 윤리의 차례를 다스리며 만 방향의 가리킴을 총괄하여 한 근본에 돌아가게 하고 다스리는 도를 날줄 씨줄 삼으며 왕의 일을 벼리 짓고 곧 마음의 술에 근원하며 성품과 정을 다스려 맑고 평평한 신령을 머무르게 하고 신명의 정을 맑게 하여 하늘의 화함과 서로 얽히게 하니 오제와 삼왕을 보아 하늘 기운을 품고 하늘 마음을 안으며 가운데를 잡고 화함을 머금어 덕이 안에 꼴 지어 하늘과 땅을 엉기게 하고 음양을 발하여 일으키며 사철을 차례 짓고 흐르는 방향을 바로잡아 편안히 하면 이에 편안하고 밀면 이에 행해져 곧 만물을 빚어 다듬고 뭇 삶을 노닐게 하며 부르면 화하고 움직이면 따라 사해 안이 한마음으로 같이 돌아간다. 그러므로 경성이 보이고 상서로운 바람이 이르며 누런 용이 내리고 봉황이 늘어선 나무에 둥지 틀며 기린이 교외 들에 머문다. 덕이 안에 꼴 지지 않고 그 법과 서적을 행하며 오로지 제도만 쓰면 신령이 응하지 않고 복과 상서가 돌아오지 않으며 사해가 손님으로 오지 않고 억조 백성이 교화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덕이 안에 꼴 짐이 다스림의 큰 근본이다. 이것이 「홍렬」의 「태족」이다.
凡屬書者,所以窺道開塞,庶後世使知舉錯取捨之宜適,外與物接而不眩,內有以處神養氣,宴煬至和,而己自樂所受乎天地者也。故言道而不明終始,則不知所仿依;言終始而不明天地四時,則不知所避諱;言天地四時而不引譬援類,則不知精微;言至精而不原人之神氣,則不知養生之機;原人情而不言大聖之德,則不知五行之差;言帝道而不言君事,則不知小大之衰;言君事而不為稱喻,則不知動靜之宜;言稱喻而不言俗變,則不知合同大指;已言俗變而不言往事,則不知道德之應;知道德而不知世曲,則無以耦萬方;知氾論而不知詮言,則無以從容;通書文而不知兵指,則無以應卒已;知大略而不知譬喻,則無以推明事;知公道而不知人間,則無以應禍福;知人間而不知修務,則無以使學者勸力。欲強省其辭,覽總其要,弗曲行區入,則不足以窮道德之意。故著書二十篇,則天地之理究矣,人間之事接矣,帝王之道備矣!
무릇 글을 엮음은 도의 열림과 막힘을 엿보아 후세로 들고 놓고 취하고 버림의 마땅함을 알아 밖으로 물건과 접하되 아찔하지 않고 안으로 신을 처하게 하고 기운을 길러 지극한 화함에 편안히 쬐어 하늘과 땅에서 받은 바를 스스로 즐기게 하려 함이다. 그러므로 도를 말하되 마침과 시작을 밝히지 않으면 의지할 바를 알지 못하고 마침과 시작을 말하되 하늘과 땅과 사철을 밝히지 않으면 꺼려 피할 바를 알지 못하며 하늘과 땅과 사철을 말하되 비유를 끌고 무리를 당기지 않으면 정하고 미세함을 알지 못하고 지극한 정을 말하되 사람의 신과 기운에 근원하지 않으면 삶 기르는 틀을 알지 못하며 사람의 정에 근원하되 큰 성인의 덕을 말하지 않으면 오행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제왕의 도를 말하되 임금의 일을 말하지 않으면 작고 큼의 차등을 알지 못하며 임금의 일을 말하되 일컬어 비유하지 않으면 움직임과 고요함의 마땅함을 알지 못하고 일컬어 비유하되 풍속의 변화를 말하지 않으면 큰 가리킴에 합하여 같이함을 알지 못하며 이미 풍속의 변화를 말하되 지난 일을 말하지 않으면 도덕의 응함을 알지 못하고 도덕을 알되 세상의 굽음을 알지 못하면 만 방향에 짝할 길이 없으며 범론을 알되 전언을 알지 못하면 조용할 길이 없고 글의 문에 통하되 군사의 가리킴을 알지 못하면 갑작스러움에 응할 길이 없으며 큰 대략을 알되 비유를 알지 못하면 일을 밀어 밝힐 길이 없고 공변된 도를 알되 사람 사이를 알지 못하면 화와 복에 응할 길이 없으며 사람 사이를 알되 힘써 닦음을 알지 못하면 배우는 이로 힘쓰게 할 길이 없다. 그 말을 억지로 덜고 그 요긴함을 보아 총괄하려 하되 굽이굽이 다니고 나누어 들지 않으면 도덕의 뜻을 궁구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그러므로 글 스무 편을 지으니 하늘과 땅의 이치가 궁구되고 사람 사이의 일이 이어졌으며 제왕의 도가 갖추어졌다!
其言有小有巨,有微有粗,指奏卷異,各有為語。今專言道,則無不在焉,然而能得本知末者,其唯聖人也。今學者無聖人之才,而不為詳說,則終身顛頓乎混溟之中,而不知覺寤乎昭明之術矣。今《易》之《乾》、《坤》,足以窮道通義也,八卦可以識吉凶、知禍福矣,然而伏羲為之六十四變,周室增以六爻,所以原測淑清之道,而扌麏逐萬物之祖也。夫五音之數不過宮商角徵羽,然而五弦之琴不可鼓也。必有細大駕和,而後可以成曲。今畫龍首,觀者不知其何獸也,具其形,則不疑矣。今謂之道則多,謂之物則少,謂之術則博,謂之事則淺,推之以論,則無可言者,所以為學者,固欲致之不言而已也。夫道論至深,故多為之辭,以抒其情;萬物至眾,故博為之說,以通其意。辭雖壇卷連漫,絞紛遠緩,所以洮汰滌蕩至意,使之無凝竭底滯,卷握而不散也。夫江河之腐胔,不可勝數,然祭者汲焉,大也。一杯酒白,蠅漬其中,匹夫弗嘗者,小也。誠通乎二十篇之論,睹凡得要,以通九野,徑十門,外天地,捭山川,其於逍遙一世之間,宰匠萬物之形,亦優遊矣。若然者,挾日月而不烑,潤萬物而不秏。曼兮洮兮,足以覽矣,藐兮浩兮,曠曠兮,可以遊矣。
그 말에 작음이 있고 큼이 있으며 미세함이 있고 거침이 있어 가리켜 아룀이 편마다 달라 저마다 하려는 말이 있다. 이제 오로지 도만 말하면 있지 않은 데가 없으나 근본을 얻어 끝을 알 수 있는 이는 오직 성인이다. 이제 배우는 이가 성인의 재주가 없는데 자세히 설하지 않으면 종신토록 어둡고 아득한 가운데 넘어지고 밝은 술에서 깨어날 줄 알지 못한다. 이제 「역」의 건과 곤이 도를 궁구하고 의에 통하기에 넉넉하며 여덟 괘로 길하고 흉함을 알고 화와 복을 알 만한데 그러나 복희가 예순넷으로 변하게 하고 주나라 왕실이 여섯 효를 더한 것은 맑고 맑은 도를 근원하여 재고 만물의 조상을 쫓는 까닭이다. 무릇 다섯 음의 수가 궁·상·각·치·우를 넘지 않으나 다섯 줄의 거문고로는 탈 수 없다. 반드시 가늘고 큰 것이 더불어 화한 뒤에 곡을 이룰 수 있다. 이제 용의 머리를 그리면 보는 이가 그것이 무슨 짐승인지 알지 못하나 그 꼴을 갖추면 의심하지 않는다. 이제 도라 하면 많고 물건이라 하면 적으며 술이라 하면 넓고 일이라 하면 얕아 밀어 논하면 말할 것이 없으니 배우는 이가 되는 까닭은 본디 말하지 않음에 이르게 하려 함일 뿐이다. 무릇 도의 논이 지극히 깊으므로 말을 많이 하여 그 정을 펴고 만물이 지극히 많으므로 설을 넓게 하여 그 뜻을 통한다. 말이 비록 얽히고 흩어지며 어지럽고 멀고 느려도 지극한 뜻을 씻고 흔들어 엉겨 막히고 걸려 손에 쥐어 흩어지지 않음이 없게 하는 까닭이다. 무릇 강과 하수의 썩은 뼈를 이루 셀 수 없으나 제사하는 이가 거기서 물을 길음은 커서다. 한 잔 흰 술에 파리가 그 가운데 젖으면 필부도 맛보지 않음은 작아서다. 참으로 스무 편의 논에 통하여 대강을 보고 요긴함을 얻어 아홉 들에 통하고 열 문을 지나며 하늘과 땅을 밖으로 하고 산과 내를 헤치면 한 세상 사이에서 거니는 데와 만물의 꼴을 다스려 다듬음에 또한 넉넉히 노닌다. 그러하면 해와 달을 끼고도 뜨겁지 않고 만물을 적시고도 마르지 않는다. 넓고 아득하니 보기에 넉넉하고 멀고 넓고 훤하니 노닐 만하다.
文王之時,紂為天子,賦斂無度,殺戮無止,康梁沉湎,宮中成市,作為炮烙之刑,刳諫者,剔孕婦,天下同心而苦之。文王四世累善,修德行義,處岐周之間,地方不過百里,天下二垂歸之。文王欲以卑弱制強暴,以為天下去殘除賊而成王道,故太公之謀生焉。
문왕 때에 주가 천자가 되어 거둠에 도량이 없고 죽임에 그침이 없으며 편안히 술에 잠기고 궁중에 저자를 이루며 포락의 형벌을 만들고 간하는 이를 가르며 밴 부인을 째매 천하가 마음을 같이하여 괴로워하였다. 문왕이 네 대에 걸쳐 착함을 쌓고 덕을 닦고 의를 행하여 기주 사이에 처하매 땅이 사방 백 리에 지나지 않았으나 천하의 두 자락이 돌아왔다. 문왕이 낮고 약함으로 강하고 사나움을 제어하며 천하를 위해 해침을 없애고 도적을 없애 왕도를 이루려 하였으므로 태공의 꾀가 났다.
文王業之而不卒,武王繼文王之業,用太公之謀,悉索薄賦,躬擐甲胄,以伐無道而討不義,誓師牧野,以踐天子之位。天下未定,海內未輯,武王欲昭文王之令德,使夷狄各以其賄來貢,遼遠未能至,故治三年之喪,殯文王於兩楹之間,以俟遠方。武王立三年而崩,成王在褓繈之中,未能用事,蔡叔、管叔,輔公子祿父而欲為亂,周公繼文王之業,持天子之政,以股肱周室,輔翼成王,懼爭道之不塞,臣下之危上也,故縱馬華山,放牛桃林,敗鼓折枹,搢笏而朝,以寧靜王室,鎮撫諸侯。成王既壯,能從政事,周公受封于魯,以此移風易俗。孔子修成、康之道,述周公之訓,以教七十子,使服其衣冠,修其篇籍,故儒者之學生焉。
문왕이 업을 이루고 마치지 못하매 무왕이 문왕의 업을 이어 태공의 꾀를 쓰고 부세를 다 찾아 얇게 하며 몸소 갑옷과 투구를 꿰고 도 없음을 치고 의롭지 않음을 쳐 목야에서 군사에게 맹세하고 천자의 자리를 밟았다. 천하가 아직 정해지지 않고 해내가 아직 모이지 않으매 무왕이 문왕의 아름다운 덕을 밝혀 이적으로 저마다 그 재화로 와 바치게 하려 하였으나 멀어 이를 수 없었으므로 삼년상을 다스려 문왕을 두 기둥 사이에 빈소 하여 먼 지방을 기다렸다. 무왕이 선 지 세 해에 죽고 성왕이 포대기 가운데 있어 일할 수 없으매 채숙과 관숙이 공자 녹보를 도와 난을 일으키려 하니 주공이 문왕의 업을 이어 천자의 정사를 지니고 주나라 왕실의 팔다리가 되어 성왕을 도우며 다투는 길이 막히지 않고 신하가 위를 위태롭게 할까 두려워하였으므로 말을 화산에 놓고 소를 도림에 놓으며 북을 헐고 북채를 꺾고 홀을 꽂고 조회하여 왕실을 편안하고 고요히 하며 제후를 눌러 어루만졌다. 성왕이 이미 자라 정사를 좇을 수 있으매 주공이 노나라에 봉을 받아 이로써 풍속을 옮기고 바꾸었다. 공자가 성왕과 강왕의 도를 닦고 주공의 가르침을 서술하여 일흔 제자를 가르치며 그 옷과 관을 입게 하고 그 편과 서적을 닦게 하였으므로 유자의 배움이 났다.
墨子學儒者之業,受孔子之術,以為其禮煩擾而不說,厚葬靡財而貧民,服傷生而害事,故背周道而行夏政。禹之時,天下大水,禹身執蔂垂,以為民先,剔河而道九岐,鑿江而通九路,辟五湖而定東海,當此之時,燒不暇撌,濡不給扢,死陵者葬陵,死澤者葬澤,故節財、薄葬、閑服生焉。
묵자가 유자의 업을 배우고 공자의 술을 받았으나 그 예가 번거롭고 시끄러워 기쁘지 않고 두터운 장사가 재물을 허비하여 백성을 가난하게 하며 상복이 삶을 상하고 일을 해친다 여겼으므로 주나라 도를 등지고 하나라 정사를 행하였다. 우 때에 천하에 큰물이 지매 우가 몸소 삼태기를 잡고 백성의 앞이 되어 하수를 쳐서 아홉 갈래로 이끌고 강을 뚫어 아홉 길에 통하며 다섯 호수를 열어 동해를 정하니 이때를 당하여 데어도 문지를 겨를이 없고 젖어도 닦을 겨를이 없으며 언덕에서 죽은 이는 언덕에 장사하고 못에서 죽은 이는 못에 장사하였으므로 재물을 절제하고 장사를 얇게 하며 상복을 간략히 함이 났다.
齊桓公之時,天子卑弱,諸侯力征,南夷北狄,交伐中國,中國之不絕如線。齊國之地,東負海而北障河,地狹田少,而民多智巧,桓公憂中國之患,苦夷狄之亂,欲以存亡繼絕,崇天子之位,廣文、武之業,故《管子》之書生焉。齊景公內好聲色,外好狗馬,獵射亡歸,好色無辨。作為路寢之台,族鑄大鍾,撞之庭下,郊雉皆呴,一朝用三千鍾贛,梁丘據、子家噲導於左右,故晏子之諫生焉。
제 환공 때에 천자가 낮고 약하며 제후가 힘으로 치고 남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가 사귀어 중국을 치매 중국이 실처럼 끊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제나라 땅은 동으로 바다를 지고 북으로 하수에 막혀 땅이 좁고 밭이 적었으나 백성이 슬기와 교묘함이 많았으니 환공이 중국의 근심을 걱정하고 이적의 어지러움을 괴로워하여 망함을 남기고 끊어짐을 이으며 천자의 자리를 높이고 문왕과 무왕의 업을 넓히려 하였으므로 「관자」의 글이 났다. 제 경공이 안으로 소리와 빛을 좋아하고 밖으로 개와 말을 좋아하며 사냥하고 쏘다가 돌아감을 잊고 빛을 좋아하여 분별이 없었다. 노침의 대를 짓고 무리 지어 큰 종을 부어 뜰 아래서 치매 교외의 꿩이 다 울고 하루아침에 삼천 종의 곡식을 쓰며 양구거와 자가쾌가 좌우에서 이끌었으므로 안자의 간함이 났다.
晚世之時,六國諸侯,溪異谷別,水絕山隔,各自治其境內,守其分地,握其權柄,擅其政令。下無方伯,上無天子,力征爭權,勝者為右,恃連與國,約重致,剖信符,結遠援,以守其國家,持其社稷,故縱橫修短生焉。
늦은 세상의 때에 여섯 나라 제후가 시내와 골짜기로 갈리고 물이 끊고 산이 막아 저마다 그 지경 안을 다스리고 그 나뉜 땅을 지키며 그 권세의 자루를 쥐고 그 정사와 명령을 멋대로 하였다. 아래에 방백이 없고 위에 천자가 없어 힘으로 치고 권세를 다투어 이기는 이가 오른쪽이 되니 잇단 동맹국에 기대어 무거운 언약을 하고 믿음의 부절을 쪼개며 먼 도움을 맺어 그 나라와 집을 지키고 그 사직을 지녔으므로 합종과 연횡과 길고 짧음이 났다.
申子者,朝昭厘之佐,韓、晉別國也。地墽民險,而介於大國之間,晉國之故禮未滅,韓國之新法重出,先君之令未收,後君之令又下,新故相反,前後相繆,百官背亂,不知所用。故刑名之書生焉。
신자는 한 소후와 이후를 도운 이니 한나라는 진나라에서 갈라진 나라다.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험하며 큰 나라 사이에 끼었고 진나라의 옛 예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데 한나라의 새 법이 거듭 나오며 선군의 명령이 아직 거두어지지 않았는데 뒷임금의 명령이 또 내려 새것과 옛것이 서로 반대되고 앞뒤가 서로 얽혀 백관이 등지고 어지러워 쓸 바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형명의 글이 났다.
秦國之俗,貪狼強力,寡義而趨利。可威以刑,而不可化以善;可勸以賞,而不可厲以名。被險而帶河,四塞以為固,地利形便,畜積殷富。孝公欲以虎狼之勢而吞諸侯,故商鞅之法生焉。
진나라의 풍속은 탐하고 사나우며 힘이 강하고 의가 적으며 이익으로 달렸다. 형벌로 위협할 수 있으나 착함으로 교화할 수 없고 상으로 권할 수 있으나 이름으로 갈 수 없었다. 험한 데를 입고 하수를 띠며 사방이 막혀 굳고 땅이 이롭고 꼴이 편하며 쌓음이 넉넉하고 부유하였다. 효공이 범과 이리의 세로 제후를 삼키려 하였으므로 상앙의 법이 났다.
若劉氏之書,觀天地之象,通古今之事,權事而立制,度形而施宜,原道之心,合三王之風,以儲與扈冶。玄眇之中,精搖靡覽,棄其畛挈,斟其淑靜,以統天下,理萬物,應變化,通殊類,非循一跡之路,守一隅之指,拘系牽連之物,而不與世推移也。故置之尋常而不塞,布之天下而不窕。
유씨의 글 같은 것은 하늘과 땅의 형상을 보고 옛과 이제의 일에 통하며 일을 저울질하여 제도를 세우고 꼴을 헤아려 마땅함을 베풀며 도의 마음에 근원하고 삼왕의 풍조에 합하여 넉넉히 다듬었다. 현묘한 가운데 정을 흔들어 두루 보며 그 두렁과 매듭을 버리고 그 맑고 고요함을 떠서 천하를 거느리고 만물을 다스리며 변화에 응하고 다른 무리에 통하니 한 자취의 길을 따르고 한 모퉁이의 가리킴을 지키며 얽매이고 이어진 물건에 붙들려 세상과 밀어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심상에 두어도 막히지 않고 천하에 펴도 헐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