求諫第四
太宗威容儼肅,百僚進見者,皆失其舉措。太宗知其若此,每見人奏事,必假顏色,冀聞諫諍,知政教得失。貞觀初,嘗謂公卿曰:「人欲自照,必須明鏡;主欲知過,必藉忠臣。主若自賢,臣不匡正,欲不危敗,豈可得乎?故君失其國,臣亦不能獨全其家。至於隋煬帝暴虐,臣下鉗口,卒令不聞其過,遂至滅亡,虞世基等,尋亦誅死。前事不遠,公等每看事有不利於人,必須極言規諫。」
태종은 위엄 있는 모습이 엄숙하여 온갖 관료로서 나아가 뵙는 이가 다 몸가짐을 잃었다. 태종이 그러함을 알고, 사람이 일을 아뢰는 것을 볼 때마다 반드시 낯빛을 부드럽게 하여 간하여 다투는 말을 듣고 정사와 가르침의 잘잘못을 알기를 바랐다. 정관 초에 일찍이 공경들에게 말하였다.
「사람이 스스로를 비추려면 반드시 밝은 거울이 있어야 하고, 임금이 제 허물을 알려면 반드시 충성된 신하에 힘입어야 한다. 임금이 만약 스스로 어질다 하고 신하가 바로잡지 않는다면, 위태롭고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들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임금이 그 나라를 잃으면 신하 또한 홀로 그 집을 온전히 할 수 없다.
수 양제가 사납고 모질어 신하들이 입을 다물어 마침내 제 허물을 듣지 못하고 멸망에 이르렀으며, 우세기 등도 이윽고 죽임을 당하였다. 앞의 일이 멀지 않으니, 공들은 일에 사람에게 이롭지 않은 것이 있음을 볼 때마다 반드시 다 말하여 바로잡아 간하라.」
貞觀元年,太宗謂侍臣曰:「正主任邪臣,不能致理,正臣事邪主,亦不能致理。惟君臣相遇,有同魚水,則海內可安。朕雖不明,幸諸公數相匡救,冀憑直言鯁議,致天下太平。」諫議大夫王珪對曰:「臣聞木從繩則正,後從諫則聖。是故古者聖主必有爭臣七人,言而不用,則相繼以死。陛下開聖慮,納芻蕘,愚臣處不諱之朝,實願罄其狂瞽。」太宗稱善,詔令自是宰相入內平章國計,必使諫官隨入,預聞政事。有所開說,必虛己納之。
정관 원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바른 임금이 사악한 신하를 맡기면 다스림에 이를 수 없고, 바른 신하가 사악한 임금을 섬겨도 또한 다스림에 이를 수 없다. 오직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 물고기와 물 같음이 있어야 온 나라가 편안할 수 있다. 짐이 비록 밝지 못하나 다행히 여러 공이 자주 바로잡아 구해 주니, 곧은 말과 굳센 의논에 힘입어 천하가 태평해지기를 바란다.」
간의대부 왕규가 대답하였다.
「신이 듣건대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바르게 되고 임금은 간언을 따르면 성스러워진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성스러운 임금에게는 반드시 다투는 신하 일곱이 있어, 말하여 쓰이지 않으면 잇달아 죽음으로 갔습니다. 폐하께서 성스러운 생각을 여시고 나무꾼의 말까지 받아들이시니, 어리석은 신이 꺼림 없는 조정에 있어 참으로 그 미친 소경의 말을 다 쏟기를 바랍니다.」
태종이 좋다 하고, 조서를 내려 이로부터 재상이 안에 들어와 나라의 계책을 논할 때는 반드시 간관을 따라 들어오게 하여 정사를 미리 듣게 하였다. 펴서 말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제 몸을 비워 받아들였다.
貞觀二年,太宗謂侍臣曰:「明主思短而益善,暗主護短而永愚。隋煬帝好自矜誇,護短拒諫,誠亦實難犯忤。虞世基不敢直言,或恐未為深罪。昔箕子佯狂自全,孔子亦稱其仁。及煬帝被殺,世基合同死否?」杜如晦對曰:「天子有諍臣,雖無道不失其天下。仲尼稱:『直哉史魚,邦有道如矢,邦無道如矢。』世基豈得以煬帝無道,不納諫諍,遂杜口無言?偷安重位,又不能辭職請退,則與箕子佯狂而去,事理不同。昔晉惠帝賈後將廢湣懷太子,司空張華竟不能苦爭,阿意茍免。及趙王倫舉兵廢後,遣使收華,華曰:『將廢太子日,非是無言,當不被納用。』其使曰:『公為三公,太子無罪被廢,言既不從,何不引身而退?』華無辭以答,遂斬之,夷其三族。古人有云:『危而不持,顛而不扶,則將焉用彼相?』故『君子臨大節而不可奪也。』張華既抗直不能成節,遜言不足全身,王臣之節固已墜矣。虞世基位居宰輔,在得言之地,竟無一言諫諍,誠亦合死。」太宗曰:「公言是也。人君必須忠良輔弼,乃得身安國寧。煬帝豈不以下無忠臣,身不聞過,惡積禍盈,滅亡斯及。若人主所行不當,臣下又無匡諫,茍在阿順,事皆稱美,則君為暗主,臣為諛臣,君暗臣諛,危亡不遠。朕今誌在君臣上下,各盡至公,共相切磋,以成治道。公等各宜務盡忠讜,匡救朕惡,終不以直言忤意,輒相責怒。」
정관 이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밝은 임금은 제 모자람을 생각하여 더욱 좋아지고, 어두운 임금은 제 모자람을 감싸 길이 어리석어진다. 수 양제는 스스로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모자람을 감싸며 간언을 막았으니 참으로 또한 거스르기 어려웠다. 우세기가 감히 곧은 말을 하지 못한 것은 아마 깊은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옛날 기자는 거짓 미쳐 스스로를 온전히 하였는데 공자 또한 그 어짊을 일컬었다. 양제가 죽임을 당하였을 때 우세기가 함께 죽어야 마땅한가 아닌가?」
두여회가 대답하였다.
「천자에게 다투는 신하가 있으면 비록 도가 없어도 그 천하를 잃지 않습니다. 중니가 일컫기를 『곧구나 사어여. 나라에 도가 있어도 화살 같고 나라에 도가 없어도 화살 같다』 하였습니다. 우세기가 어찌 양제가 무도하여 간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여 마침내 입을 막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높은 자리에 구차히 편안히 있으면서 또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기를 청하지도 못하였으니, 기자가 거짓 미쳐 떠난 것과는 일의 이치가 같지 않습니다.
옛날 진 혜제의 가후가 민회태자를 폐하려 할 때 사공 장화가 끝내 괴로이 다투지 못하고 뜻에 아부하여 구차히 면하였습니다. 조왕 윤이 군사를 일으켜 가후를 폐하고 사신을 보내 장화를 잡을 때, 장화가 말하기를 『태자를 폐하려던 날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다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그 사신이 말하기를 『공은 삼공이면서 태자가 죄 없이 폐해지는데 말이 이미 좇아지지 않았다면 어찌 몸을 이끌어 물러나지 않았는가』 하니, 장화가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를 베고 그 삼족을 멸하였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위태로운데 붙들지 못하고 넘어지는데 부축하지 못한다면 저 재상을 어디에 쓰겠는가』 하였고, 또 『군자는 큰 절개에 다다라 빼앗기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장화는 꼿꼿하고 곧게 절개를 이루지도 못하고 겸손한 말로 몸을 온전히 하지도 못하였으니, 왕의 신하 된 절개가 이미 떨어졌습니다. 우세기는 자리가 재상에 있어 말할 수 있는 데 있었는데 끝내 한마디도 간쟁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또한 죽어 마땅합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공의 말이 옳다. 임금은 반드시 충성되고 어진 이의 도움이 있어야 몸이 편안하고 나라가 편안하다. 양제가 어찌 아래에 충신이 없고 제 몸이 허물을 듣지 못하여, 악이 쌓이고 화가 가득 차 멸망이 이에 미친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임금이 행하는 바가 마땅하지 않은데 신하가 또 바로잡아 간하지 않고 구차히 아부하여 따르며 일마다 다 아름답다 한다면, 임금은 어두운 임금이 되고 신하는 아첨하는 신하가 된다. 임금이 어둡고 신하가 아첨하면 위태롭고 망함이 멀지 않다.
짐이 이제 뜻을 임금과 신하와 위아래가 저마다 지극한 공정함을 다하여 함께 서로 갈고 다듬어 다스리는 도를 이루는 데 둔다. 공들은 저마다 마땅히 충성되고 곧음을 다하여 짐의 악을 바로잡아 구하라. 끝내 곧은 말이 뜻을 거슬렀다 하여 문득 꾸짖고 노하지 않겠다.」
貞觀三年,太宗謂司空裴寂曰:「比有上書奏事,條數甚多,朕總黏之屋壁,出入觀省。所以孜孜不倦者,欲盡臣下之情。每一思政理,或三更方寢。亦望公輩用心不倦,以副朕懷也。」
정관 삼 년에 태종이 사공 배적에게 말하였다.
「근래 글을 올려 일을 아뢴 것이 조목이 몹시 많아 짐이 다 벽에 붙여 두고 드나들며 보고 살핀다. 부지런히 게을리하지 않는 까닭은 신하들의 뜻을 다하게 하려 함이다. 정사의 이치를 한 번 생각할 때마다 더러 삼경에야 잠자리에 든다. 또한 공들도 마음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아 짐의 뜻에 맞기를 바란다.」
貞觀五年,太宗謂房玄齡等曰:「自古帝王多任情喜怒,喜則濫賞無功,怒則濫殺無罪。是以天下喪亂,莫不由此。朕今夙夜未嘗不以此為心,恒欲公等盡情極諫。公等亦須受人諫語,豈得以人言不同己意,便即護短不納?若不能受諫,安能諫人?」
정관 오 년에 태종이 방현령 등에게 말하였다.
「예로부터 제왕이 흔히 정에 맡겨 기뻐하고 노하니, 기쁘면 공 없는 이에게 함부로 상 주고 노하면 죄 없는 이를 함부로 죽였다. 이로써 천하가 무너지고 어지러워진 것이 다 여기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다. 짐이 이제 밤낮으로 이것을 마음에 두지 않은 적이 없으며, 늘 공들이 뜻을 다하여 끝까지 간하기를 바란다.
공들 또한 남의 간하는 말을 받아야 한다. 어찌 남의 말이 제 뜻과 같지 않다 하여 곧 모자람을 감싸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간언을 받지 못한다면 어찌 남에게 간할 수 있겠는가.」
貞觀六年,太宗以御史大夫韋挺、中書侍郎杜正倫、秘書少監虞世南、著作郎姚思廉等上封事稱旨,召而謂曰:「朕歷觀自古人臣立忠之事,若值明主,便宜盡誠規諫,至如龍逄、比干,不免孥戮。為君不易,為臣極難。朕又聞龍可擾而馴,然喉下有逆鱗。卿等遂不避犯觸,各進封事。常能如此,朕豈慮宗社之傾敗!每思卿等此意,不能暫忘,故設宴為樂。」仍賜絹有差。
정관 육 년에 태종이 어사대부 위정과 중서시랑 두정륜과 비서소감 우세남과 저작랑 요사렴 등이 봉한 글을 올린 것이 뜻에 맞았다 하여, 불러 말하였다.
「짐이 예로부터 신하가 충성을 세운 일을 두루 보건대, 밝은 임금을 만나면 곧 마땅히 정성을 다하여 바로잡아 간하였으나, 관룡방과 비간 같은 이에 이르러서는 처자까지 죽임을 면하지 못하였다. 임금 노릇도 쉽지 않고 신하 노릇도 몹시 어렵다. 짐이 또 듣건대 용은 길들여 부릴 수 있으나 목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이 있다 한다.
경들이 마침내 거스름을 피하지 않고 저마다 봉한 글을 올렸다. 늘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짐이 어찌 종묘와 사직이 기울어 무너질까 걱정하겠는가. 경들의 이 뜻을 생각할 때마다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잔치를 베풀어 즐기는 것이다.」
그러고는 비단을 차등 있게 내렸다.
太常卿韋挺嘗上疏陳得失,太宗賜書曰:「所上意見,極是讜言,辭理可觀,甚以為慰。昔齊境之難,夷吾有射鉤之罪,蒲城之役,勃鞮為斬袂之仇。而小白不以為疑,重耳待之若舊。豈非各吠非主,誌在無二。卿之深誠,見於斯矣。若能克全此節,則永保令名。如其怠之,可不惜也。勉勵終始,垂範將來,當使後之視今,亦猶今之視古,不亦美乎?朕比不聞其過,未睹其闕,賴竭忠懇,數進嘉言,用沃朕懷,一何可道!」
태상경 위정이 일찍이 상소를 올려 잘잘못을 아뢰니 태종이 글을 내렸다.
「올린 뜻이 지극히 곧은 말이요 말과 이치가 볼 만하니 매우 위로가 된다. 옛날 제나라의 어려움에 이오는 띠고리를 쏜 죄가 있었고, 포성의 싸움에 발제는 소매를 벤 원수였다. 그런데 소백은 의심하지 않았고 중이는 옛 벗처럼 대하였다. 이 어찌 저마다 제 주인이 아니면 짖는 것이요 뜻이 두 마음 없는 데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경의 깊은 정성이 여기에 보인다.
만약 이 절개를 온전히 지킬 수 있다면 길이 아름다운 이름을 지킬 것이요, 만약 게을리한다면 아깝지 않겠는가. 처음과 끝을 힘써 뒷날에 본을 드리우고, 뒷사람이 오늘을 보는 것이 오늘 옛날을 보는 것과 같게 한다면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짐이 근래 그 허물을 듣지 못하고 그 모자람을 보지 못하였는데, 충성되고 간절함을 다하여 자주 아름다운 말을 올려 짐의 마음을 적셔 주니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貞觀八年,太宗謂侍臣曰:「朕每閒居靜坐,則自內省。恒恐上不稱天心,下為百姓所怨。但思正人匡諫,欲令耳目外通,下無怨滯。又比見人來奏事者,多有怖懾,言語致失次第。尋常奏事,情猶如此,況欲諫諍,必當畏犯逆鱗。所以每有諫者,縱不合朕心,朕亦不以為忤。若即嗔責,深恐人懷戰懼,豈肯更言!」
정관 팔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짐이 한가히 있어 고요히 앉을 때마다 스스로 안을 살핀다. 늘 위로는 하늘의 마음에 맞지 않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원망받을까 두렵다. 다만 바른 사람이 바로잡아 간하기를 생각하여, 귀와 눈이 밖으로 통하고 아래에 원망과 막힘이 없게 하려 한다.
또 근래 사람이 와서 일을 아뢰는 것을 보면 흔히 두려워 떨어 말이 차례를 잃는다. 예사로 일을 아뢰는 데도 마음이 오히려 이러한데, 하물며 간하여 다투려 하면 반드시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릴까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간하는 이가 있을 때마다 비록 짐의 마음에 맞지 않아도 짐은 또한 거슬린다 여기지 않는다. 만약 곧 성내고 꾸짖는다면 사람들이 두려움을 품어 어찌 다시 말하려 하겠는가.」
貞觀十五年,太宗問魏徵曰:「比來朝臣都不論事,何也?」徵對曰:「陛下虛心采納,誠宜有言者。然古人云:『未信而諫,則以為謗己;信而不諫,則謂之屍祿。』但人之才器,各有不同。懦弱之人,懷忠直而不能言;疏遠之人,恐不信而不得言;懷祿之人,慮不便身而不敢言。所以相與緘默,俯仰過日。」太宗曰:「誠如卿言。朕每思之,人臣欲諫,輒懼死亡之禍,與夫赴鼎鑊、冒白刃,亦何異哉?故忠貞之臣,非不欲竭誠。竭誠者,乃是極難。所以禹拜昌言,豈不為此也!朕今開懷抱,納諫諍。卿等無勞怖懼,遂不極言。」
정관 십오 년에 태종이 위징에게 물었다.
「근래 조정 신하가 도무지 일을 논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위징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마음을 비워 받아들이시니 참으로 말하는 이가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옛사람이 이르기를 『믿음을 얻지 못하고 간하면 저를 헐뜯는다 여기고, 믿음을 얻고도 간하지 않으면 자리만 차지하고 녹을 먹는다 한다』 하였습니다. 다만 사람의 재주와 그릇이 저마다 같지 않습니다. 나약한 사람은 충성되고 곧은 마음을 품고도 말하지 못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믿어지지 않을까 두려워 말하지 못하며, 녹을 아끼는 사람은 제 몸에 이롭지 않을까 염려하여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서로 입을 다물고 굽어보고 우러르며 날을 보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참으로 경의 말과 같다. 짐이 늘 생각하거니와, 신하가 간하려 하면 문득 죽는 화를 두려워하니 저 가마솥에 나아가고 흰 칼날을 무릅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충성되고 곧은 신하가 정성을 다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하는 것이 곧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임금이 좋은 말에 절한 것도 어찌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짐이 이제 가슴을 열어 간쟁을 받아들이니, 경들은 두려워하느라 끝까지 말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라.」
貞觀十六年,太宗謂房玄齡等曰:「自知者明,信為難矣。如屬文之士,伎巧之徒,皆自謂己長,他人不及。若名工文匠,商略詆訶,蕪詞拙跡,於是乃見。由是言之,人君須得匡諫之臣,舉其愆過。一日萬機,一人聽斷,雖復憂勞,安能盡善?常念魏徵隨事諫正,多中朕失,如明鏡鑒形,美惡必見。」因舉觴賜玄齡等數人勖之。
정관 십육 년에 태종이 방현령 등에게 말하였다.
「스스로를 아는 이가 밝다 하나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글 짓는 선비나 재주 부리는 무리 같은 이들은 다 스스로 제가 낫고 남이 미치지 못한다 여긴다. 그러나 이름난 장인과 문장가가 헤아려 꾸짖으면 거친 말과 서투른 자취가 이에 드러난다.
이로 말하면 임금은 바로잡아 간하는 신하를 얻어 그 허물을 들추게 해야 한다. 하루에 만 가지 정사를 한 사람이 듣고 결단하니, 비록 다시 걱정하고 수고한들 어찌 다 좋을 수 있겠는가. 늘 생각하거니와 위징이 일마다 간하여 바로잡은 것이 짐의 잘못에 맞는 일이 많았으니, 밝은 거울이 모습을 비추어 아름다움과 추함이 반드시 드러나는 것과 같았다.」
이에 잔을 들어 현령 등 몇 사람에게 내려 힘쓰게 하였다.
貞觀十七年,太宗問諫議大夫褚遂良曰:「昔舜造漆器,禹雕其俎,當時諫者十有餘人。食器之間,何須苦諫?」遂良對曰:「雕琢害農事,纂組傷女工。首創奢淫,危亡之漸。漆器不已,必金為之。金器不已,必玉為之。所以諍臣必諫其漸,及其滿盈,無所復諫。」太宗曰:「卿言是矣,朕所為事,若有不當,或在其漸,或已將終,皆宜進諫。比見前史,或有人臣諫事,遂答云『業已為之』,或道『業已許之』,竟不為停改。此則危亡之禍,可反手而待也。」
정관 십칠 년에 태종이 간의대부 저수량에게 물었다.
「옛날 순임금이 옻칠한 그릇을 만들고 우임금이 그 도마에 새겼을 때, 그때 간한 이가 열 몇 사람이었다 한다. 먹는 그릇 따위에 어찌 그리 괴로이 간할 것이 있는가?」
저수량이 대답하였다.
「쪼고 새기는 일은 농사를 해치고 실을 꼬아 짜는 일은 여자의 일을 상하게 합니다. 사치와 음란을 처음 여는 것이 위태롭고 망하는 조짐입니다. 옻칠한 그릇으로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금으로 만들고, 금 그릇으로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옥으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다투는 신하는 반드시 그 조짐에 간합니다. 가득 차기에 이르면 다시 간할 데가 없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경의 말이 옳다. 짐이 하는 일에 마땅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그것이 조짐에 있든 이미 끝나 가든 다 마땅히 나아가 간하라. 근래 앞선 사서를 보면 더러 신하가 일을 간하였는데 마침내 『이미 하였다』고 답하거나 『이미 허락하였다』고 말하여 끝내 멈추어 고치지 않은 일이 있다. 이는 곧 위태롭고 망하는 화를 손바닥 뒤집듯 기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