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納諫第五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14 · 한자 2,278자 · 낭독 9.1분

「정관정요」 간언을 받아들이다 「納諫第五」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初,太宗與黃門侍郎王珪宴語,時有美人侍側,本廬江王瑗之姬也,瑗敗,籍沒入宮。太宗指示珪曰:「廬江不道,賊殺其夫而納其室。暴虐之甚,何有不亡者乎!」珪避席曰:「陛下以廬江取之為是邪,為非邪?」太宗曰:「安有殺人而取其妻,卿乃問朕是非,何也?」珪對曰:「臣聞於《管子》曰:『齊桓公之郭國,問其父老曰:「郭何故亡?」父老曰:「以其善善而惡惡也。」桓公曰:「若子之言,乃賢君也,何至於亡?」父老曰:「不然,郭君善善而不能用,惡惡而不能去,所以亡也。」』今此婦人尚在左右,臣竊以為聖心是之,陛下若以為非,所謂知惡而不去也。」太宗大悅,稱為至善,遽令以美人還其親族。

정관 초에 태종이 황문시랑 왕규와 잔치하며 이야기할 때, 아름다운 여인이 곁에서 모시고 있었으니 본디 여강왕 이원의 첩이었다. 이원이 무너지자 적몰되어 궁에 들어온 이였다. 태종이 가리켜 왕규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여강왕이 무도하여 그 남편을 죽이고 그 아내를 들였다. 사납고 모짊이 심하니 어찌 망하지 않는 일이 있겠는가.」

왕규가 자리를 피하며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여강왕이 그 여인을 취한 것을 옳다 여기십니까, 그르다 여기십니까?」

태종이 말하였다.

「어찌 사람을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하는 일이 옳겠는가. 경이 도리어 짐에게 옳고 그름을 묻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왕규가 대답하였다.

「신이 『관자』에서 듣건대, 제 환공이 곽나라에 가서 그 부로에게 묻기를 『곽나라가 무슨 까닭으로 망하였는가?』 하니 부로가 『착한 것을 착하다 하고 악한 것을 악하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였습니다. 환공이 『그대의 말과 같다면 어진 임금인데 어찌 망함에 이르렀는가?』 하니, 부로가 『그렇지 않습니다. 곽나라 임금은 착한 것을 착하다 하면서도 쓰지 못하고 악한 것을 악하다 하면서도 없애지 못하였으니, 그래서 망한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이제 이 여인이 아직 곁에 있으니, 신은 속으로 성스러운 마음이 그것을 옳게 여기시는가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만약 그르다 여기신다면, 이른바 악을 알면서 없애지 못하는 것입니다.」

태종이 크게 기뻐하여 지극히 좋다 일컫고, 곧 그 여인을 그 친족에게 돌려보내게 하였다.

貞觀四年,詔發卒修洛陽之乾元殿以備巡狩。給事中張玄素上書諫曰:

정관 사 년에 조서를 내려 군사를 내어 낙양의 건원전을 손질하여 순수에 대비하게 하였다. 급사중 장현소가 글을 올려 간하였다.

陛下智周萬物,囊括四海。令之所行,何往不應?誌之所欲,何事不從?微臣竊思秦始皇之為君也,藉周室之餘,因六國之盛,將貽之萬葉,及其子而亡,諒由逞嗜奔欲,逆天害人者也。是知天下不可以力勝,神祇不可以親恃。惟當弘儉約,薄賦斂,慎終始,可以永固。

폐하께서는 슬기가 만물에 두루 미치고 사해를 주머니에 넣듯 하십니다. 명령을 내리면 어디인들 응하지 않겠으며, 뜻으로 바라시면 무슨 일인들 따르지 않겠습니까.

미천한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진시황이 임금 노릇 할 때 주나라의 남은 것을 빌리고 여섯 나라의 성함을 이어 만대에 물려주려 하였으나 그 아들에 이르러 망하였습니다. 참으로 즐기고 바라는 것을 마음대로 좇아 하늘을 거스르고 사람을 해쳤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천하는 힘으로 이길 수 없고 신령은 가까이하여 믿을 수 없음을 알겠습니다. 오직 검약을 넓히고 부세를 얇게 하며 처음과 끝을 삼가야 길이 굳을 수 있습니다.

方今承百王之末,屬雕弊之餘,必欲節以禮制,陛下宜以身為先。東都未有幸期,即令補葺;諸王今並出藩,又須營構。興發數多,豈疲人之所望?其不可一也。陛下初平東都之始,層樓廣殿,皆令撤毀,天下翕然,同心傾仰。豈有初則惡其侈靡,今乃襲其雕麗?其不可二也,每承音旨,未即巡幸,此乃事不急之務,成虛費之勞。國無兼年之積,何用兩都之好?勞役過度,怨讟將起。其不可三也。百姓承亂離之後,財力雕盡,天恩含育,粗見存立,饑寒猶切,生計未安,三五年間,未能復舊。奈何營未幸之都,而奪疲人之力?其不可四也。昔漢高祖將都洛陽,婁敬一言,即日西駕。豈不知地惟土中,貢賦所均,但以形勝不如關內也。伏惟陛下化雕飏之人,革澆漓之俗,為日尚淺,未甚淳和,斟酌事宜,詎可東幸?其不可五也。

이제 온갖 임금의 끝을 이어받고 시들고 피폐한 뒤에 처하였으니, 반드시 예의 제도로 절제하려 하신다면 폐하께서 마땅히 몸소 먼저 하셔야 합니다.

동도에 거둥할 기약이 아직 없는데 곧 손질하게 하시고, 여러 왕이 이제 다 봉지로 나가니 또 지어야 합니다. 일으키는 일이 여러 번이니 어찌 지친 백성이 바라는 바이겠습니까. 그 안 될 것이 첫째입니다.

폐하께서 동도를 처음 평정하셨을 때 층층한 누각과 넓은 전각을 다 헐게 하시니, 천하가 한결같이 마음을 같이하여 우러렀습니다. 어찌 처음에는 그 사치함을 미워하시고 이제는 도리어 그 꾸밈을 이어받으시겠습니까. 그 안 될 것이 둘째입니다.

말씀을 받들 때마다 곧 거둥하지 않으신다 하시니, 이는 곧 급하지 않은 일이라 헛된 수고로 낭비를 이루는 것입니다. 나라에 두 해 치 쌓임도 없는데 어찌 두 서울의 좋음을 쓰겠습니까. 부역이 지나치면 원망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안 될 것이 셋째입니다.

백성이 난리 뒤를 이어 재물과 힘이 다 시들었는데, 하늘 같은 은혜로 머금어 길러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굶주림과 추위가 아직 절박하고 살길이 편안하지 않아 서너 해 사이에 옛날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찌 거둥하지도 않을 도읍을 지어 지친 백성의 힘을 빼앗겠습니까. 그 안 될 것이 넷째입니다.

옛날 한 고조가 낙양에 도읍하려 하였는데 누경의 한마디에 그날로 서쪽으로 수레를 몰았습니다. 어찌 그 땅이 나라의 한가운데라 공물과 세금이 고르게 되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다만 지세의 좋음이 관중만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 시들고 흩어진 사람을 교화하고 경박한 풍속을 고치신 지 날이 아직 얕아 몹시 순박하고 화하지 못하니, 일의 마땅함을 헤아려 보건대 어찌 동쪽으로 거둥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안 될 것이 다섯째입니다.

臣嘗見隋室初造此殿,楹棟宏壯,大木非近道所有,多自豫章采來,二千人拽一柱,其下施轂,皆以生鐵為之,中間若用木輪,動即火出。略計一柱,已用數十萬,則餘費又過倍於此。臣聞阿房成,秦人散;章華就,楚眾離;乾元畢工,隋人解體。且以陛下今時功力,何如隋日?承雕殘之後,役瘡痍之人,費億萬之功,襲百王之弊,以此言之,恐甚於煬帝遠矣。深願陛下思之,無為由余所笑,則天下幸甚矣。

신이 일찍이 수나라 왕실이 처음 이 전각을 지을 때를 보았습니다. 기둥과 마룻대가 크고 웅장하여 큰 나무를 가까운 데서 얻을 수 없어 흔히 예장에서 캐어 왔는데, 이천 사람이 기둥 하나를 끌었습니다. 그 아래에 바퀴통을 놓았는데 다 무쇠로 만들었으니, 그 사이에 나무 바퀴를 쓰면 움직이자마자 불이 났기 때문입니다. 대략 기둥 하나를 헤아려도 이미 수십만이 들었으니 나머지 비용은 또 이보다 갑절이 넘었습니다.

신이 듣건대 아방궁이 이루어지자 진나라 사람이 흩어지고, 장화대가 이루어지자 초나라 무리가 떠났으며, 건원전이 공을 마치자 수나라 사람이 무너졌다 합니다. 또 폐하의 지금 공력이 수나라 때와 견주어 어떠합니까. 시들고 상한 뒤를 이어 상처 입은 사람을 부리고 억만의 공력을 써서 온갖 임금의 폐단을 이어받는다면, 이로 말하건대 양제보다 훨씬 심할까 두렵습니다. 폐하께서 깊이 생각하시어 유여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신다면 천하가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太宗謂玄素曰:「卿以我不如煬帝,何如桀、紂?」對曰:「若此殿卒興,所謂同歸於亂。」太宗嘆曰:「我不思量,遂至於此。」顧謂房玄齡曰:「今玄素上表,洛陽實亦未宜修造,後必事理須行,露坐亦復何苦?所有作役,宜即停之。然以卑干尊,古來不易,非其忠直,安能如此?且眾人之唯唯,不如一士之諤諤。可賜絹二百匹。」魏徵嘆曰:「張公遂有回天之力,可謂仁人之言,其利溥哉!」

태종이 현소에게 말하였다.

「경은 내가 양제만 못하다 하는데 걸왕이나 주왕과 견주면 어떠한가?」

대답하였다.

「만약 이 전각이 끝내 지어진다면 이른바 함께 어지러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태종이 탄식하여 말하였다.

「내가 헤아리지 못하여 마침내 여기에 이르렀다.」

돌아보며 방현령에게 말하였다.

「이제 현소가 표를 올렸으니 낙양은 참으로 아직 지어서는 안 되겠다. 뒤에 반드시 일의 이치가 행해야 할 것이라면 한데 앉은들 또한 무엇이 괴롭겠는가. 벌인 모든 역사를 곧 그치게 하라. 그러나 낮은 이로서 높은 이를 범하는 일은 예로부터 쉽지 않으니, 그 충직함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뭇사람의 예예 하는 것은 한 선비의 곧은 말만 못하다. 비단 이백 필을 내리라.」

위징이 탄식하여 말하였다.

「장공이 마침내 하늘을 돌리는 힘을 가졌으니, 어진 사람의 말은 그 이로움이 넓다 할 만하다.」

太宗有一駿馬,特愛之,恒於宮中養飼,無病而暴死。太宗怒養馬宮人,將殺之。皇後諫曰:「昔齊景公以馬死殺人,晏子請數其罪云:『爾養馬而死,爾罪一也。使公以馬殺人,百姓聞之,必怨吾君,爾罪二也。諸侯聞之,必輕吾國,爾罪三也。』公乃釋罪。陛下嘗讀書見此事,豈忘之邪?」太宗意乃解。又謂房玄齡曰,皇後庶事相啟沃,極有利益爾。

태종에게 준마 한 마리가 있어 특히 사랑하여 늘 궁 안에서 길렀는데 병 없이 갑자기 죽었다. 태종이 말 기르던 궁인에게 노하여 죽이려 하니 황후가 간하였다.

「옛날 제 경공이 말이 죽었다 하여 사람을 죽이려 하니 안자가 그 죄를 세어 보기를 청하여 말하기를 『네가 말을 기르다 죽였으니 네 죄가 하나요, 공으로 하여금 말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하여 백성이 들으면 반드시 우리 임금을 원망할 터이니 네 죄가 둘이요, 제후가 들으면 반드시 우리 나라를 가벼이 여길 터이니 네 죄가 셋이다』 하였습니다. 공이 이에 죄를 놓아주었습니다. 폐하께서 일찍이 글을 읽어 이 일을 보셨는데 어찌 잊으셨습니까?」

태종의 마음이 이에 풀렸다. 또 방현령에게 말하기를, 황후가 여러 일에 서로 깨우쳐 주니 지극히 이로움이 있다 하였다.

貞觀七年,太宗將幸九成宮,散騎常侍姚思廉進諫曰:「陛下高居紫極,寧濟蒼生,應須以欲從人,不可以人從欲。然則離宮遊幸,此秦皇、漢武之事,故非堯、舜、禹、湯之所為也。」言甚切至。太宗諭之曰:「朕有氣疾,熱便頓劇,故非情好遊幸,甚嘉卿意。」因賜帛五十段。

정관 칠 년에 태종이 구성궁에 거둥하려 하니 산기상시 요사렴이 나아가 간하였다.

「폐하께서는 대궐 높은 자리에 앉아 백성을 편안케 하고 건지시니, 마땅히 욕심을 사람에게 따르게 하실 것이요 사람을 욕심에 따르게 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이궁으로 놀러 거둥하는 것은 진시황과 한 무제의 일이지 요임금과 순임금과 우임금과 탕임금이 한 바가 아닙니다.」

말이 몹시 간절하고 지극하였다. 태종이 깨우쳐 말하였다.

「짐에게 숨이 차는 병이 있어 더우면 문득 심해지므로 정이 놀러 거둥하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경의 뜻이 매우 아름답다.」

그러고는 비단 오십 단을 내렸다.

貞觀三年,李大亮為涼州都督,嘗有臺使至州境,見有名鷹,諷大亮獻之。大亮密表曰:「陛下久絕畋獵,而使者求鷹。若是陛下之意,深乖昔旨;如其自擅,便是使非其人。」太宗下書曰:「以卿兼資文武,誌懷貞確,故委藩牧,當茲重寄。比在州鎮,聲績遠彰,念此忠勤,豈忘寤寐?使遣獻鷹,遂不曲順,論今引古,遠獻直言。披露腹心,非常懇到,覽用嘉嘆,不能已已。有臣若此,朕復何憂!宜守此誠,終始若一。《詩》云:『靖恭爾位,好是正直。神之聽之,介爾景福。』古人稱一言之重,侔於千金,卿之所言,深足貴矣。今賜卿金壺瓶、金碗各一枚,雖無千鎰之重,是朕自用之物,卿立誌方直,竭節至公,處職當官,每副所委,方大任使,以申重寄。公事之閒,宜觀典籍。兼賜卿荀悅《漢紀》一部,此書敘致簡要,論議深博,極為政之體,盡君臣之義,今以賜卿,宜加尋閱。」

정관 삼 년에 이대량이 양주도독이 되었다. 일찍이 대에서 온 사신이 고을 지경에 이르러 이름난 매가 있는 것을 보고 대량에게 넌지시 바치게 하려 하였다. 대량이 은밀히 표를 올렸다.

「폐하께서 사냥을 끊으신 지 오래인데 사신이 매를 구합니다. 만약 폐하의 뜻이라면 지난날의 뜻과 크게 어긋나고, 만약 제멋대로 한 것이라면 곧 사람을 잘못 부린 것입니다.」

태종이 글을 내렸다.

「경은 문무를 아울러 갖추고 뜻이 곧고 굳으므로 변방을 맡겨 이 무거운 부탁을 지웠다. 근래 고을과 진에 있으면서 소리와 공적이 멀리 드러나니, 이 충성과 부지런함을 생각하매 어찌 자나 깨나 잊겠는가. 사신을 보내 매를 바치게 하였는데 마침내 굽혀 따르지 않고, 오늘을 논하고 옛날을 끌어 멀리 곧은 말을 바쳤다. 뱃속 마음을 드러낸 것이 예사롭지 않게 간절하니, 보고 나서 기려 탄식하기를 그칠 수 없다. 이런 신하가 있으니 짐이 다시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마땅히 이 정성을 지켜 처음과 끝이 한결같으라. 『시』에 이르기를 『네 자리를 고요히 공경하고 바르고 곧은 것을 좋아하라. 신이 그것을 들으면 너에게 큰 복을 주리라』 하였다. 옛사람이 한마디 말의 무거움이 천금과 같다 일컬었으니 경의 말이 참으로 귀하다.

이제 경에게 금 호리병과 금 사발을 하나씩 내린다. 비록 천 일의 무게는 없으나 짐이 스스로 쓰던 물건이다. 경은 뜻을 세운 것이 바르고 곧으며 절개를 다하여 지극히 공정하고, 직임에 있어 벼슬을 맡을 때마다 맡긴 바에 맞았으므로, 바야흐로 크게 맡겨 무거운 부탁을 거듭 펴려 한다. 공무의 틈에 마땅히 전적을 보라. 아울러 경에게 순열의 『한기』 한 벌을 내린다. 이 책은 서술이 간결하고 요긴하며 논의가 깊고 넓어, 다스림의 요체를 다하고 임금과 신하의 의를 다하였다. 이제 경에게 내리니 마땅히 살펴 읽으라.」

貞觀八年,陜縣丞皇甫德參上書忤旨,太宗以為訕謗。侍中魏徵進言曰:「昔賈誼當漢文帝上書云云『可為痛哭者一,可為長嘆息者六。』自古上書,率多激切。若不激切,則不能起人主之心。激切即似訕謗,惟陛下詳其可否。」太宗曰:「非公無能道此者。」令賜德參帛二十段。

정관 팔 년에 섬현승 황보덕참이 글을 올렸는데 뜻을 거슬러 태종이 헐뜯는 것이라 여겼다. 시중 위징이 나아가 말하였다.

「옛날 가의가 한 문제 때 글을 올려 『통곡할 만한 것이 하나요, 길게 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글을 올리는 것은 대개 격하고 간절합니다. 만약 격하고 간절하지 않으면 임금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격하고 간절하면 곧 헐뜯는 것 같으니, 오직 폐하께서 그 옳고 그름을 자세히 살피소서.」

태종이 말하였다.

「공이 아니면 이것을 말할 이가 없다.」

덕참에게 비단 이십 단을 내리게 하였다.

貞觀十五年,遣使詣西域立葉護可汗,未還,又令人多賫金帛,歷諸國市馬。魏徵諫曰:「今發使以立可汗為名,可汗未定立,即詣諸國市馬,彼必以為意在市馬,不為專立可汗。可汗得立,則不甚懷恩,不得立,則生深怨。諸蕃聞之,且不重中國。但使彼國安寧,則諸國之馬,不求自至。昔漢文帝有獻千里馬者,曰:『吾吉行日三十,兇行日五十,鸞輿在前,屬車在後,吾獨乘千里馬,將安之乎?』乃償其道里所費而返之。又光武有獻千里馬及寶劍者,馬以駕鼓車,劍以賜騎士。今陛下凡所施為,皆邈過三王之上,奈何至此欲為孝文、光武之下乎?又魏文帝求市西域大珠,蘇則曰:『若陛下惠及四海,則不求自至,求而得之,不足貴也。』陛下縱不能慕漢文之高行,可不畏蘇則之正言耶?」太宗遽令止之。

정관 십오 년에 사신을 서역에 보내 엽호가한을 세우게 하였는데, 돌아오기 전에 또 사람에게 금과 비단을 많이 지니게 하여 여러 나라를 돌며 말을 사게 하였다. 위징이 간하였다.

「이제 사신을 보내며 가한을 세우는 것으로 이름을 삼았는데, 가한이 아직 정해져 서지도 않았는데 곧 여러 나라에 가서 말을 산다면, 저들은 반드시 뜻이 말을 사는 데 있고 오로지 가한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여길 것입니다. 가한이 서게 되면 은혜를 그리 품지 않을 것이고, 서지 못하면 깊은 원망이 생길 것입니다. 여러 오랑캐가 들으면 또한 중국을 무겁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저 나라를 편안케 하면 여러 나라의 말은 구하지 않아도 절로 이릅니다.

옛날 한 문제에게 천리마를 바친 이가 있었는데 말하기를 『내가 좋은 일로 갈 때는 하루에 삼십 리를 가고 흉한 일로 갈 때는 하루에 오십 리를 간다. 난여가 앞에 있고 딸린 수레가 뒤에 있는데 나 홀로 천리마를 타고 어디로 가겠는가』 하고, 이에 그 오는 길에 든 비용을 갚아 돌려보냈습니다. 또 광무제에게 천리마와 보검을 바친 이가 있었는데, 말은 북 싣는 수레에 매고 검은 기병에게 내렸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다 삼왕의 위를 아득히 넘는데, 어찌 여기에 이르러 한 문제와 광무제의 아래가 되려 하십니까.

또 위 문제가 서역의 큰 구슬을 사려 하니 소칙이 말하기를 『만약 폐하의 은혜가 사해에 미치면 구하지 않아도 절로 이르고, 구하여 얻은 것은 귀하지 않습니다』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비록 한 문제의 높은 행실을 사모하지 못하신다 해도, 소칙의 바른 말을 두려워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태종이 곧 그치게 하였다.

貞觀十七年,太子右庶子高季輔上疏陳得失。特賜鍾乳一劑,謂曰:「卿進藥石之言,故以藥石相報。」

정관 십칠 년에 태자우서자 고계보가 상소를 올려 잘잘못을 아뢰었다. 특별히 종유석 한 제를 내리며 말하였다.

「경이 약돌 같은 말을 올렸으므로 약돌로 갚는다.」

貞觀十八年,太宗謂長孫無忌等曰:「夫人臣之對帝王,多順從而不逆,甘言以取容。朕今發問,不得有隱,宜以次言朕過失。」長孫無忌、唐儉等皆曰:「陛下聖化道致太平,以臣觀之,不見其失。」黃門侍郎劉洎對曰:「陛下撥亂創業,實功高萬古,誠如無忌等言。然頃有人上書,辭理不稱者,或對面窮詰,無不慚退。恐非獎進言者。」太宗曰:「此言是也,當為卿改之。」

정관 십팔 년에 태종이 장손무기 등에게 말하였다.

「무릇 신하가 제왕을 대할 때 흔히 따르기만 하고 거스르지 않으며 단 말로 낯빛을 얻으려 한다. 짐이 이제 물으니 숨김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차례로 짐의 허물을 말하라.」

장손무기와 당검 등이 다 말하였다.

「폐하의 성스러운 교화가 태평에 이르렀으니, 신이 보건대 그 잘못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황문시랑 유계가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어지러움을 다스려 나라를 여신 것은 참으로 공이 만고에 높으니 무기 등의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렸는데 말과 이치가 걸맞지 않으면 더러 낯을 마주하여 끝까지 따지시니, 부끄러워 물러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말하는 이를 권장하는 것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이 말이 옳다. 마땅히 경을 위하여 고치겠다.」

太宗嘗怒苑西監穆裕,命於朝堂斬之,時高宗為皇太子,遽犯顏進諫,太宗意乃解。司徒長孫無忌曰:「自古太子之諫,或乘間從容而言。今陛下發天威之怒,太子申犯顏之諫,誠古今未有。」太宗曰:「夫人久相與處,自然染習。自朕御天下,虛心正直,即有魏徵朝夕進諫,自徵云亡,劉洎、岑文本、馬周、褚遂良等繼之。皇太子幼在朕膝前,每見朕心說諫者,因染以成性,故有今日之諫。」

태종이 일찍이 원서감 목유에게 노하여 조당에서 베라 명하였는데, 그때 고종이 황태자로서 곧 낯을 거스르며 나아가 간하니 태종의 마음이 이에 풀렸다. 사도 장손무기가 말하였다.

「예로부터 태자의 간언은 더러 틈을 타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하늘 같은 위엄의 노여움을 내시는데 태자가 낯을 거스르는 간언을 폈으니, 참으로 예나 이제나 없던 일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무릇 사람이 오래 서로 함께 지내면 절로 물들어 익는다. 짐이 천하를 다스린 뒤로 마음을 비우고 바르고 곧게 하니 곧 위징이 아침저녁으로 나아가 간하였고, 위징이 죽은 뒤로는 유계·잠문본·마주·저수량 들이 이었다. 황태자가 어려서 짐의 무릎 앞에 있으면서 짐이 간하는 이를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을 볼 때마다 물들어 성품을 이루었으므로 오늘의 간언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