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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諫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11 · 한자 4,184자 · 낭독 16.7분

「정관정요」 곧은 간언 — 덧붙임 「直諫」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二年,隋通事舍人鄭仁基女年十六七,容色絕姝,當時莫及。文德皇后訪求得之,請備嬪御。太宗乃聘為充華。詔書已出,策使未發。魏徵聞其已許嫁陸氏,方遽進而言曰:「陛下為人父母,撫愛百姓,當憂其所憂,樂其所樂。自古有道之主,以百姓之心為心,故君處臺榭,則欲民有棟宇之安;食膏粱,則欲民無饑寒之患;顧嬪御,則欲民有室家之歡。此人主之常道也。今鄭氏之女,久已許人,陛下取之不疑,無所顧問,播之四海,豈為民父母之道乎?臣傳聞雖或未的,然恐虧損聖德,情不敢隱。君舉必書,所願特留神慮。」太宗聞之大驚,手詔答之,深自克責,遂停策使,乃令女還舊夫。左僕射房玄齡、中書令溫彥博、禮部尚書王珪、御史大夫韋挺等云:「女適陸氏,無顯然之狀,大禮既行,不可中止。」又陸氏抗表云:「某父康在日,與鄭家往還,時相贈遺資財,初無婚姻交涉親戚。」並云:「外人不知,妄有此說。」大臣又勸進。太宗於是頗以為疑,問徵曰:「群臣或順旨,陸氏何為過爾分疏?」徵曰:「以臣度之,其意可識,將以陛下同於太上皇。」太宗曰:「何也?」徵曰:「太上皇初平京城,得辛處儉婦,稍蒙寵遇。處儉時為太子舍人,太上皇聞之不悅,遂令出東宮為萬年縣,每懷戰懼,常恐不全首領。陸爽以為陛下今雖容之,恐後陰加譴謫,所以反覆自陳,意在於此,不足為怪。」太宗笑曰:「外人意見,或當如此。然朕之所言,未能使人必信。」乃出敕曰:「今聞鄭氏之女,先已受人禮聘,前出文書之日,事不詳審,此乃朕之不是,亦為有司之過。授充華者宜停。」時莫不稱嘆!

정관 이 년에 수나라 통사사인 정인기의 딸이 나이 열예닐곱에 얼굴빛이 빼어나 그때 미칠 이가 없었다. 문덕황후가 찾아 얻어 후궁으로 갖추기를 청하니 태종이 이에 맞아들여 충화로 삼았다. 조서가 이미 나갔으나 책명을 가진 사신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위징이 그 딸이 이미 육씨에게 시집가기로 허락되었다는 말을 듣고 바로 급히 나아가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백성의 부모가 되어 어루만져 사랑하시니, 마땅히 그들이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거워하셔야 합니다. 예로부터 도가 있는 임금은 백성의 마음으로 제 마음을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누대에 있으면 백성에게도 집의 편안함이 있기를 바라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백성에게 굶주림과 추위의 근심이 없기를 바라며, 후궁을 돌아보면 백성에게도 집안의 즐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임금의 떳떳한 도입니다.

이제 정씨의 딸은 이미 남에게 허락된 지 오래인데, 폐하께서 의심 없이 취하시고 돌아보아 묻지 않으신 채 이를 사해에 펴신다면 어찌 백성의 부모 된 도이겠습니까. 신이 전해 들은 것이 비록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성스러운 덕을 이지러뜨릴까 두려워 정으로 감히 숨기지 못합니다. 임금의 거둥은 반드시 적히니, 특별히 마음을 두어 헤아리시기를 바랍니다.」

태종이 듣고 크게 놀라 손수 조서로 답하여 깊이 스스로를 꾸짖고, 마침내 책명 사신을 멈추게 하고 그 딸을 옛 남편에게 돌려보내게 하였다.

좌복야 방현령과 중서령 온언박과 예부상서 왕규와 어사대부 위정 등이 말하였다.

「딸이 육씨에게 시집가기로 하였다는 뚜렷한 자취가 없고, 큰 예가 이미 행해졌으니 중간에 그칠 수 없습니다.」

또 육씨가 표를 올려 말하였다.

「저의 아버지 육강이 살아 있을 때 정씨 집안과 오갔고 때로 서로 재물을 주고받았을 뿐, 애초에 혼인으로 친척이 되는 왕래는 없었습니다.」

아울러 말하기를 「바깥사람이 알지 못하고 함부로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하였다. 대신들이 또 나아가기를 권하였다. 태종이 이에 자못 의심하여 위징에게 물었다.

「뭇 신하가 더러 뜻을 좇는다 하나, 육씨는 어찌하여 이토록 지나치게 갈라 밝히는가?」

위징이 말하였다.

「신이 헤아리건대 그 뜻을 알 만합니다. 폐하를 태상황과 같이 여기려는 것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어찌된 일인가?」

위징이 말하였다.

「태상황께서 처음 서울을 평정하셨을 때 신처검의 아내를 얻어 자못 총애하셨습니다. 처검은 그때 태자사인이었는데, 태상황께서 이를 들으시고 기뻐하지 않아 마침내 동궁에서 내보내 만년현의 현령으로 삼으시니, 늘 두려움을 품어 목숨을 온전히 하지 못할까 걱정하였습니다. 육상은 폐하께서 지금은 비록 용납하시더라도 뒤에 몰래 꾸짖고 내치실까 두려워, 그래서 되풀이하여 스스로 밝히는 것이니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괴이할 것이 못 됩니다.」

태종이 웃으며 말하였다.

「바깥사람의 뜻이 더러 이러하겠다. 그러나 짐이 말한 바가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믿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이에 칙서를 내렸다.

「이제 들으니 정씨의 딸이 앞서 이미 남에게 예를 갖추어 청혼받았다 한다. 앞서 문서를 낸 날 일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였으니 이는 곧 짐의 잘못이요 또한 맡은 관사의 허물이다. 충화를 주는 일은 마땅히 그치라.」

그때 일컬어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貞觀三年,詔關中免二年租稅,關東給復一年。尋有敕:已役已納,並遣輸納,明年總為準折。給事中魏徵上書曰:「伏見八月九日詔書,率土皆給復一年。老幼相歡,或歌且舞。又聞有敕,丁已配役,即令役滿折造,餘物亦遣輸了,待明年總為準折。道路之人,咸失所望。此誠平分百姓,均同七子。但下民難與圖始,日用不足,皆以國家追悔前言,二三其德。臣竊聞之,天之所輔者仁,人之所助者信。今陛下初膺大寶,億兆觀德。始發大號,便有二言。生八表之疑心,失四時之大信。縱國家有倒懸之急,猶必不可。況以泰山之安,而輒行此事!為陛下為此計者,於財利小益,於德義大損。臣誠智識淺短,竊為陛下惜之。伏願少覽臣言,詳擇利益。冒昧之罪。臣所甘心。」

정관 삼 년에 조서를 내려 관중은 두 해 조세를 면하고 관동은 한 해 복호를 주게 하였다. 이윽고 칙서가 있어, 이미 부역한 것과 이미 바친 것은 아울러 다 바치게 하고 이듬해에 통틀어 셈하여 제하겠다 하였다. 급사중 위징이 글을 올렸다.

「엎드려 팔월 초아흐레 조서를 뵈오니 온 땅에 다 한 해 복호를 주신다 하였습니다. 늙은이와 어린이가 서로 기뻐하여 더러는 노래하고 춤추었습니다. 그런데 또 들으니 칙서가 있어, 장정으로 이미 부역에 배정된 이는 곧 부역을 채우게 하고 나중에 셈하여 제하며, 나머지 물건도 또한 다 바치게 하고 이듬해를 기다려 통틀어 셈하여 제한다 하였습니다. 길 가는 사람들이 다 바라던 바를 잃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백성을 고르게 나누어 일곱 자식을 한결같이 대하시려는 것입니다. 다만 아랫백성은 함께 처음을 꾀하기 어렵고 날마다 쓰는 것이 넉넉하지 못하니, 다들 나라가 앞서 한 말을 뉘우쳐 그 덕이 두셋으로 갈린다 여깁니다.

신이 가만히 듣건대 하늘이 돕는 것은 어짊이요 사람이 돕는 것은 믿음입니다. 이제 폐하께서 처음 큰 자리에 오르시매 억조 백성이 그 덕을 보고 있습니다. 큰 호령을 처음 내시면서 곧 두 말이 있으니, 온 세상에 의심하는 마음을 낳고 네 철의 큰 믿음을 잃는 것입니다. 설사 나라에 거꾸로 매달린 듯한 급함이 있더라도 오히려 반드시 해서는 안 될 일인데, 하물며 태산 같은 편안함으로 문득 이 일을 행하시겠습니까.

폐하를 위하여 이 계책을 낸 자는 재물의 이로움에는 조금 보탬이 되나 덕과 의로움에는 크게 덜어 냅니다. 신이 참으로 슬기와 앎이 얕고 짧으나 가만히 폐하를 위하여 이를 아깝게 여깁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신의 말을 조금이라도 살피시어 이로움을 자세히 가리소서. 무릅쓴 죄는 신이 달게 여기는 바입니다.」

簡點使右僕射封德彜等,並欲中男十八已上,簡點入軍。敕三四出,徵執奏以為不可。德彜重奏:「今見簡點者云,次男內大有壯者。」太宗怒,乃出敕:「中男已上,雖未十八,身形壯大,亦取。」徵又不從,不肯署敕。太宗召徵及王珪,作色而待之,曰:「中男若實小,自不點入軍。若實大,亦可簡取。於君何嫌?過作如此固執,朕不解公意!」徵正色曰:「臣聞竭澤取魚,非不得魚,明年無魚。焚林而畋,非不獲獸,明年無獸。若次男已上,盡點入軍,租賦雜徭,將何取給?且比年國家衛士,不堪攻戰。豈為其少,但為禮遇失所,遂使人無鬥心。若多點取人,還充雜使,其數雖眾,終是無用。若精簡壯健,遇之以禮,人百其勇,何必在多?陛下每云,我之為君,以誠信待物,欲使官人百姓,並無矯偽之心。自登極已來,大事三數件,皆是不信,復何以取信於人?」太宗愕然曰:「所云不信,是何等也?」徵曰:「陛下初即位,詔書曰:『逋私宿債,欠負官物,並悉原免。』即令所司,列為事條,秦府國司,亦非官物,陛下自秦王為天子,國司不為官物,其餘物復何所有?又關中免二年租調,關外給復一年。百姓蒙恩,無不歡悅。更有敕旨:『今年白丁多已役訖,若從此放免,並是虛荷國恩,若已折已輸,令總納取了,所免者皆以來年為始。』散還之後,方更徵收,百姓之心,不能無怪,已徵得物,便點入軍,來年為始,何以取信?又共理所寄,在於刺史、縣令,常年貌稅,並悉委之。至於簡點,即疑其詐偽。望下誠信,不亦難乎?」太宗曰:「我見君固執不已,疑君蔽此事。今論國家不信,乃人情不通。我不尋思,過亦深矣。行事往往如此錯失,若為致理?」乃停中男,賜金甕一口,賜珪絹五十匹。

간점사 우복야 봉덕이 등이 아울러 열여덟 살 이상의 중남을 골라 군에 넣고자 하였다. 칙서가 서너 번 나왔으나 위징이 붙들고 아뢰어 안 된다고 하였다. 봉덕이가 거듭 아뢰었다.

「이제 가려 뽑는 이들이 말하기를, 중남 가운데 튼튼한 이가 많다 합니다.」

태종이 노하여 이에 칙서를 냈다.

「중남 이상은 비록 열여덟이 되지 않았어도 몸이 크고 튼튼하면 또한 취하라.」

위징이 또 따르지 않고 칙서에 서명하려 하지 않았다. 태종이 위징과 왕규를 불러 낯빛을 붉히고 대하며 말하였다.

「중남이 만약 참으로 작다면 절로 뽑아 군에 넣지 않을 것이고, 만약 참으로 크다면 또한 가려 취할 수 있다. 그대에게 무엇이 꺼릴 것인가. 지나치게 이렇게 고집하니 짐은 공의 뜻을 알 수 없다.」

위징이 낯빛을 바르게 하여 말하였다.

「신이 듣건대 못을 말려 고기를 잡으면 고기를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듬해에 고기가 없고, 숲을 태워 사냥하면 짐승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듬해에 짐승이 없다 합니다. 만약 중남 이상을 다 뽑아 군에 넣는다면 조세와 부역은 장차 어디서 대겠습니까.

게다가 요 몇 해 나라의 위사가 싸움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그 수가 적어서이겠습니까. 다만 예로 대하는 것이 자리를 잃어 마침내 사람들에게 싸울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을 많이 뽑아 도로 잡일에 채운다면 그 수가 비록 많아도 끝내 쓸모가 없습니다. 만약 튼튼한 이를 정밀히 가려 예로 대한다면 사람마다 그 용기가 백 배가 될 터이니 어찌 반드시 수가 많아야 하겠습니까.

폐하께서 늘 이르시기를 『내가 임금 노릇 함에 정성과 믿음으로 사물을 대하여 벼슬아치와 백성으로 하여금 아울러 거짓된 마음이 없게 하려 한다』 하셨습니다. 자리에 오르신 뒤로 큰일 서너 가지가 다 믿음직하지 못하였으니 다시 무엇으로 사람에게 믿음을 얻으시겠습니까.」

태종이 놀라 말하였다.

「이른바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위징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처음 즉위하셨을 때 조서에 이르기를 『숨긴 사사로운 묵은 빚과 관가의 물건을 진 것을 아울러 다 없애 준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곧 맡은 관사로 하여금 조목을 벌여 놓게 하니, 진왕부의 국사도 관가의 물건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진왕에서 천자가 되셨는데 국사가 관가의 물건이 아니라면 그 나머지 물건인들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 관중은 두 해 조세를 면하고 관외는 한 해 복호를 주니 백성이 은혜를 입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칙지가 있어 『올해 백정으로 이미 부역을 마친 이가 많은데, 만약 이로부터 놓아준다면 아울러 헛되이 나라의 은혜를 입는 것이다. 만약 이미 셈하고 이미 바쳤다면 다 거두어 마치게 하고, 면해 주는 것은 다 다음 해를 처음으로 삼는다』 하셨습니다. 흩어 돌려준 뒤에 다시 거두시니 백성의 마음이 괴이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거두어 얻은 물건을 두고 곧 뽑아 군에 넣으면서 다음 해를 처음으로 삼는다 하시니 무엇으로 믿음을 얻으시겠습니까.

또 함께 다스리는 일을 맡긴 데는 자사와 현령이니, 해마다 얼굴을 보고 매기는 세금을 아울러 다 그들에게 맡기십니다. 그런데 가려 뽑는 데 이르러서는 곧 그 속임을 의심하십니다. 정성과 믿음을 아래에 내리시기를 바라기가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태종이 말하였다.

「내가 그대가 고집하기를 그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대가 이 일을 가린다고 의심하였다. 이제 나라가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논하니 곧 인정이 통하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으니 허물이 또한 깊다. 일을 행함이 이따금 이처럼 그르치니 어찌 다스림에 이르겠는가.」

이에 중남 뽑기를 그치고 금 항아리 하나를 내렸으며 왕규에게 비단 오십 필을 내렸다.

貞觀五年,持書侍御史權萬紀、侍御史李仁發,俱以告訐譖毀,數蒙引見,任心彈射,肆其欺罔,令在上震怒,臣下無以自安。內外知其不可,而莫能論諍。給事中魏徵正色而奏之曰:「權萬紀、李仁發並是小人,不識大體,以譖毀為是,告訐為直,凡所彈射,皆非有罪。陛下掩其所短,收其一切。乃騁其奸計,附下罔上,多行無禮,以取強直之名。誣房玄齡,斥退張亮,無所肅厲,徒損聖明。道路之人,皆興謗議。臣伏度聖心,必不以為謀慮深長,可委以棟梁之任,將以其無所避忌,欲以警厲群臣。若信狎回邪,猶不可以小謀大,群臣素無矯偽,空使臣下離心。以玄齡、亮之徒,猶不可得伸其枉直,其餘疏賤,孰能免其欺罔?伏願陛下留意再思。自驅使二人以來,有一弘益,臣即甘心斧鉞,受不忠之罪。陛下縱未能舉善以崇德,豈可進奸而自損乎?」太宗欣然納之,賜徵絹五百匹。其萬紀又奸狀漸露,仁發亦解黜,萬紀貶連州司馬。朝廷咸相慶賀焉。

정관 오 년에 지서시어사 권만기와 시어사 이인발이 다 남을 들추어 헐뜯는 것으로 여러 번 불려 뵙고, 마음대로 탄핵하며 그 속임을 마음껏 부려 위에서는 크게 노하게 하고 아래 신하는 스스로 편안할 수 없게 하였다. 안팎이 그 옳지 않음을 알았으나 아무도 논하여 다투지 못하였다. 급사중 위징이 낯빛을 바르게 하여 아뢰었다.

「권만기와 이인발은 아울러 소인이라 큰 줄기를 알지 못하고, 헐뜯는 것을 옳다 하고 들추는 것을 곧다 하니, 무릇 탄핵하는 바가 다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폐하께서 그 모자람을 가리시고 그 모든 것을 거두시니, 이에 그 간사한 꾀를 부려 아래에 붙고 위를 속이며 무례한 짓을 많이 하여 굳세고 곧다는 이름을 얻습니다. 방현령을 무고하고 장량을 내쫓았으나 엄숙해진 바가 없고 다만 성스러운 밝음을 덜었을 뿐입니다. 길 가는 사람들이 다 헐뜯는 의논을 일으킵니다.

신이 엎드려 성스러운 마음을 헤아리건대, 반드시 그들의 헤아림이 깊고 길어 마룻대와 들보의 소임을 맡길 만하다 여기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꺼리는 바가 없음을 가지고 뭇 신하를 깨우쳐 힘쓰게 하려 하신 것일 터입니다. 만약 간사하고 그릇된 이를 믿고 가까이하신다면, 오히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꾀할 수 없고 뭇 신하가 본디 거짓이 없는데 공연히 신하들의 마음을 떠나게 할 뿐입니다. 현령과 장량 같은 이들도 오히려 그 굽고 곧음을 펴지 못하는데, 그 나머지 멀고 천한 이들이 누가 그 속임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서 마음을 두어 다시 생각하소서. 두 사람을 부린 뒤로 한 가지라도 크게 보탬이 있었다면 신은 곧 도끼를 달게 여겨 불충의 죄를 받겠습니다. 폐하께서 비록 착한 이를 들어 덕을 높이지 못하실지언정, 어찌 간사한 이를 나아가게 하여 스스로 덜겠습니까.」

태종이 기꺼이 받아들여 위징에게 비단 오백 필을 내렸다. 그 만기는 또 간사한 자취가 차츰 드러났고 인발도 벼슬에서 풀려 쫓겨났으며 만기는 연주사마로 깎여 내려갔다. 조정이 다 서로 기뻐하였다.

貞觀六年,有人告尚書右丞魏徵,言其阿黨親戚。太宗使御史大夫溫彥博案驗其事,乃言者不直。彥博奏稱,徵既為人所道,雖在無私,亦有可責。遂令彥博謂徵曰:「爾諫正我數百條,豈以此小事,便損眾美。自今已後,不得不存形跡。」居數日,太宗問徵曰:「昨來在外,聞有何不是事?」徵曰:「前日令彥博宣敕語臣云:『因何不存形跡?』此言大不是。臣聞君臣同氣,義均一體。未聞不存公道,惟事形跡。若君臣上下,同遵此路,則邦國之興喪,或未可知!」太宗矍然改容曰:「前發此語,尋已悔之。實大不是,公亦不得遂懷隱避。」徵乃拜而言曰:「臣以身許國,直道而行,必不敢有所欺負。但願陛下使臣為良臣,勿使臣為忠臣。」太宗曰:「忠良有異乎?」徵曰:「良臣使身獲美名,君受顯號。子孫傳世,福祿無疆。忠臣身受誅夷,君陷大惡。家國並喪,獨有其名。以此而言,相去遠矣。」太宗曰:「君但莫違此言,我必不忘社稷之計。」乃賜絹二百匹。

정관 육 년에 어떤 사람이 상서우승 위징을 고발하여 친척을 두둔한다고 말하였다. 태종이 어사대부 온언박을 시켜 그 일을 조사하게 하니 고발한 이의 말이 곧지 않았다. 언박이 아뢰기를, 위징이 이미 남에게 말거리가 되었으니 비록 사사로움이 없다 하더라도 또한 꾸짖을 만하다 하였다. 마침내 언박에게 위징에게 이르게 하였다.

「그대가 나에게 간하여 바로잡은 것이 수백 조목인데, 어찌 이런 작은 일로 뭇 아름다움을 덜겠는가. 이제부터는 자취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있다가 태종이 위징에게 물었다.

「어제 밖에 있으면서 무슨 옳지 않은 일이 있다고 들었는가?」

위징이 말하였다.

「전날 언박에게 칙명을 펴 신에게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자취를 살피지 않는가』 하셨습니다. 이 말은 크게 옳지 않습니다. 신이 듣건대 임금과 신하는 기운이 같고 의리가 한 몸과 같다 합니다. 공정한 도를 지키지 않고 오직 자취만 일삼는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임금과 신하, 위아래가 함께 이 길을 좇는다면 나라의 흥함과 망함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태종이 놀라 낯빛을 고치며 말하였다.

「앞서 이 말을 낸 뒤에 이윽고 이미 뉘우쳤다. 참으로 크게 옳지 않았다. 공도 마침내 숨기고 피하려는 마음을 품지 말라.」

위징이 이에 절하고 말하였다.

「신이 몸을 나라에 허락하여 곧은 도로 행하니 반드시 감히 속이고 저버리는 바가 없겠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폐하께서 신을 어진 신하로 삼으시고 충성된 신하로 삼지 마소서.」

태종이 말하였다.

「충성과 어짊에 다름이 있는가?」

위징이 말하였다.

「어진 신하는 제 몸이 아름다운 이름을 얻고 임금은 드러난 칭호를 받으며 자손이 대를 이어 복록이 끝없습니다. 충성된 신하는 제 몸이 죽임을 받고 임금은 큰 악에 빠지며 집과 나라가 아울러 무너지고 홀로 그 이름만 남습니다. 이로 말하면 서로 거리가 멉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그대는 다만 이 말을 어기지 말라. 나는 반드시 사직의 계책을 잊지 않겠다.」

이에 비단 이백 필을 내렸다.

貞觀六年,匄奴克平,遠夷入貢,符瑞日至,年穀頻登。嶽牧等屢請封禪,群臣等又稱述功德,以為「時不可失,天不可違,今行之,臣等猶謂其晚」。惟魏徵以為不可。太宗曰:「朕欲得卿直言之,勿有所隱。朕功不高耶?」曰:「高矣。」「德未厚耶?」曰:「厚矣。」「華夏未安耶?」曰:「安矣。」「遠夷未慕耶?」曰:「慕矣」「符瑞未至耶?」曰:「至矣。」「年穀未登耶?」曰:「登矣。」「然則何為不可?」對曰:「陛下功高矣,民未懷惠。德厚矣,澤未旁流。華夏安矣,未足以供事。遠夷慕矣,無以供其求。符瑞雖臻,而罻羅猶密。積歲豐稔,而倉廩尚虛。此臣所以竊謂未可。臣未能遠譬,且借近喻於人。有人長患疼痛,不能任持,療理且愈,皮骨僅存,便欲負一石米,日行百里,必不可得。隋氏之亂,非止十年。陛下為之良醫,除其疾苦,雖已乂安,未甚充實,告成天地,臣竊有疑。且陛下東封,萬國咸萃,要荒之外,莫不奔馳。今自伊、洛之東,暨乎海、岱,萑莽巨澤,茫茫千里,人煙斷絕,雞犬不聞,道路蕭條,進退艱阻。寧可引彼戎狄,示以虛弱?竭財以賞,未厭遠人之望;加年給復,不償百姓之勞。或遇水旱之災,風雨之變,庸夫邪議,悔不可追。豈獨臣之誠懇,亦有輿人之論。」太宗稱善,於是乃止。

정관 육 년에 흉노를 쳐서 평정하고 먼 오랑캐가 조공을 들이며 상서로운 조짐이 날마다 이르고 해마다 곡식이 거듭 여물었다. 사방을 맡은 이들이 여러 번 봉선을 청하고 뭇 신하가 또 공덕을 일컬어 「때를 잃을 수 없고 하늘을 어길 수 없으니 이제 행하여도 신들은 오히려 늦다 하겠습니다」 하였다. 오직 위징만이 안 된다 하였다. 태종이 말하였다.

「짐이 경의 곧은 말을 듣고자 하니 숨기는 바가 없게 하라. 짐의 공이 높지 않은가?」

「높습니다.」

「덕이 두텁지 않은가?」

「두텁습니다.」

「화하가 편안하지 않은가?」

「편안합니다.」

「먼 오랑캐가 사모하지 않는가?」

「사모합니다.」

「상서로운 조짐이 이르지 않았는가?」

「이르렀습니다.」

「해마다 곡식이 여물지 않았는가?」

「여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안 된다 하는가?」

대답하였다.

「폐하의 공이 높으나 백성이 아직 은혜를 품지 못하였고, 덕이 두터우나 은택이 아직 두루 흐르지 못하였습니다. 화하가 편안하나 아직 일을 대기에 넉넉하지 못하고, 먼 오랑캐가 사모하나 그 구하는 것을 댈 것이 없습니다. 상서로운 조짐이 비록 이르렀으나 그물은 아직 촘촘하고, 여러 해 풍년이 들었으나 곳간은 아직 비었습니다. 이것이 신이 가만히 아직 안 된다 하는 까닭입니다.

신이 멀리 견주지는 못하고 가까이 사람에게서 빗대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래 아픔을 앓아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치료하여 나아 가죽과 뼈만 겨우 남았는데, 곧 쌀 한 섬을 지고 하루에 백 리를 가려 한다면 반드시 얻지 못할 것입니다. 수나라의 어지러움이 십 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그 좋은 의원이 되어 그 병과 괴로움을 없애시니 비록 이미 다스려 편안해졌으나 아직 몹시 넉넉하지는 않은데, 하늘과 땅에 이룸을 고하는 일은 신이 가만히 의심이 있습니다.

게다가 폐하께서 동쪽으로 봉선하시면 만국이 다 모이고 먼 변방 밖에서도 달려오지 않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이수와 낙수의 동쪽으로부터 바다와 태산에 이르기까지 갈대와 덤불과 큰 늪이 아득히 천 리인데, 사람의 연기가 끊어지고 닭과 개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길이 쓸쓸하여 나아가고 물러남이 어렵고 막힙니다. 어찌 저 오랑캐를 끌어들여 허약함을 보이겠습니까. 재물을 다하여 상을 주어도 먼 사람의 바람을 채우지 못하고, 해를 더하고 복호를 주어도 백성의 수고를 갚지 못합니다. 혹 물과 가뭄의 재앙이나 바람과 비의 변고를 만나면 못난 자들이 그릇된 의논을 하리니 뉘우쳐도 따를 수 없습니다. 어찌 홀로 신의 간절한 정성뿐이겠습니까. 또한 수레 끄는 이들의 의논도 있습니다.」

태종이 좋다 일컫고 이에 그쳤다.

貞觀七年,蜀王妃父楊譽,在省競婢,都官郎中薛仁方留身勘問,未及予奪。其子為千牛,於殿庭陳訴,云:「五品以上非反逆不合留身,以是國親,故生節目,不肯決斷,淹留歲月。」太宗聞之,怒曰:「知是我親戚,故作如此艱難。」即令杖仁方一百,解所任官。魏徵進曰:「城狐社鼠皆微物,為其有所憑恃,故除之猶不易。況世家貴戚,舊號難理,漢、晉以來,不能禁御,武德之中,已多驕縱,陛下登極,方始蕭條。仁方既是職司,能為國家守法,豈可枉加刑罰,以成外戚之私乎!此源一開,萬端爭起,後必悔之,將無所及。自古能禁斷此事,惟陛下一人。備豫不虞,為國常道。豈可以水未橫流,便欲自毀隄防?臣竊思度,未見其可。」太宗曰:「誠如公言,鄉者不思。然仁方輒禁不言,頗是專權,雖不合重罪,宜少加懲肅。」乃令杖二十而赦之。

정관 칠 년에 촉왕비의 아버지 양예가 관사에서 계집종을 두고 다투었다. 도관낭중 설인방이 몸을 붙들어 두고 물었으나 아직 처결하지 못하였다. 그 아들이 천우가 되어 대궐 뜰에서 하소연하기를 「오품 이상은 반역이 아니면 몸을 붙들어 두지 못하는데, 나라의 인척이라 하여 일부러 트집을 잡아 결단하려 하지 않고 세월을 끕니다」 하였다. 태종이 듣고 노하여 말하였다.

「내 친척인 줄 알고 일부러 이렇게 어렵게 구는구나.」

곧 인방을 곤장 백 대 치고 맡은 벼슬을 풀게 하였다. 위징이 나아가 말하였다.

「성벽의 여우와 사당의 쥐는 다 작은 것이나 의지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없애기가 오히려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세도가와 귀한 인척은 예로부터 다스리기 어렵다 일컬어졌습니다. 한나라와 진나라 이래로 금하고 막지 못하였고 무덕 연간에도 이미 교만하고 방자함이 많았는데, 폐하께서 자리에 오르시고서야 비로소 쓸쓸해졌습니다. 인방은 이미 맡은 직분으로 나라를 위해 법을 지킬 수 있었는데, 어찌 굽혀 형벌을 더하여 외척의 사사로움을 이루게 하겠습니까.

이 근원이 한 번 열리면 만 갈래로 다투어 일어날 터이니 뒤에 반드시 뉘우치더라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예로부터 이 일을 금하여 끊을 수 있는 이는 오직 폐하 한 분입니다. 뜻밖의 일에 미리 갖추는 것이 나라의 떳떳한 도인데, 어찌 물이 아직 넘치지 않았다 하여 곧 스스로 둑을 헐려 하십니까. 신이 가만히 헤아려 보건대 그 옳음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참으로 공의 말과 같다. 지난번에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인방이 문득 붙들어 두고 말하지 않은 것은 자못 권한을 마음대로 한 것이라, 비록 무거운 죄에 맞지는 않으나 마땅히 조금 징계하여 엄숙하게 해야 하겠다.」

이에 곤장 스무 대를 치고 놓아주게 하였다.

貞觀八年,左僕射房玄齡、右僕射高士廉於路逢少府監竇德素,問北門近來更何營造。德素以聞。太宗乃謂玄齡曰:「君但知南衙事,我北門少有營造,何預君事?」玄齡等拜謝。魏徵進曰:「臣不解陛下責,亦不解玄齡、士廉拜謝。玄齡既任大臣,即陛下股肱耳目,有所營造,何容不知?責其訪問官司,臣所不解。且所為有利害,役工有多少,陛下所為善,當助陛下成之,所為不是,雖營造,當奏陛下罷之。此乃君使臣、臣事君之道。玄齡等問既無罪,而陛下責之,臣所不解;玄齡等不識所守,但知拜謝,臣亦不解。」太宗深愧之。

정관 팔 년에 좌복야 방현령과 우복야 고사렴이 길에서 소부감 두덕소를 만나, 북문에 근래 또 무엇을 짓느냐고 물었다. 덕소가 이를 아뢰었다. 태종이 이에 현령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다만 남아의 일을 알면 된다. 내가 북문에 조금 짓는 것이 그대 일과 무슨 상관인가?」

현령 등이 절하고 사죄하였다. 위징이 나아가 말하였다.

「신은 폐하께서 꾸짖으신 것도 알지 못하겠고 현령과 사렴이 절하고 사죄한 것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현령은 이미 대신을 맡았으니 곧 폐하의 팔다리요 귀와 눈입니다. 짓는 바가 있으면 어찌 알지 못하는 것을 용납하겠습니까. 관사에 물은 것을 꾸짖으시니 신이 알지 못하는 바입니다.

게다가 하는 일에 이롭고 해로움이 있고 부리는 공역에 많고 적음이 있으니, 폐하께서 하시는 바가 좋으면 마땅히 폐하를 도와 이루게 하고, 하시는 바가 옳지 않으면 비록 짓는 중이라도 마땅히 폐하께 아뢰어 그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도입니다. 현령 등이 물은 것은 이미 죄가 없는데 폐하께서 꾸짖으시니 신이 알지 못하는 바요, 현령 등이 지킬 바를 알지 못하고 다만 절하고 사죄할 줄만 아니 신 또한 알지 못하겠습니다.」

태종이 깊이 부끄러워하였다.

貞觀十年,越王,長孫皇後所生,太子介弟,聰明絕倫,太宗特所寵異。或言三品以上,皆輕蔑王者,意在譖侍中魏徵等,以激上怒。上御齊政殿,引三品已上入坐定,大怒作色而言曰:「我有一言,向公等道。往前天子,即是天子。今時天子,非天子耶?往年天子兒,是天子兒。今日天子兒,非天子兒耶?我見隋家諸王,達官已下,皆不免被其躓頓。我之兒子,自不許其縱橫,公等所容易過,得相共輕蔑。我若縱之,豈不能躓頓公等!」玄齡等戰栗,皆拜謝。徵正色而諫曰:「當今群臣,必無輕蔑越王者。然在禮,臣、子一例,《傳》稱,王人雖微,列於諸侯之上。諸侯用之為公,即是公;用之為卿,即是卿。若不為公卿,即下士於諸侯也。今三品已上,列為公卿,並天子大臣,陛下所加敬異。縱其小有不是,越王何得輒加折辱?若國家紀綱廢壞,臣所不知。以當今聖明之時,越王豈得如此。且隋高祖不知禮義,寵樹諸王,使行無禮,尋以罪黜,不可為法,亦何足道?」太宗聞其言,喜形於色,謂群臣曰:「凡人言語理到,不可不伏。朕之所言,當身私愛。魏徵所論,國家大法。朕鄉者忿怒,自謂理在不疑。及見魏徵所論,始覺大非道理。為人君言,何可容易!」召玄齡等而切責之,賜徵絹一千匹。

정관 십 년에 월왕은 장손황후가 낳은 이요 태자의 아우로서 총명함이 뛰어나 태종이 특히 남달리 사랑하였다. 어떤 이가 삼품 이상이 다 왕을 가벼이 여긴다고 말하였으니, 뜻은 시중 위징 등을 참소하여 임금의 노여움을 돋우려는 데 있었다. 임금이 제정전에 나아가 삼품 이상을 끌어 앉힌 뒤 크게 노하여 낯빛을 붉히고 말하였다.

「내가 한마디 할 터이니 공들에게 이르노라. 지난날의 천자는 곧 천자였는데 지금의 천자는 천자가 아닌가? 지난해의 천자 아들은 천자의 아들이었는데 오늘의 천자 아들은 천자의 아들이 아닌가? 내가 수나라 집안의 여러 왕을 보건대 높은 벼슬아치 이하가 다 그들에게 넘어뜨림을 당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내 아들에게 스스로 함부로 굴기를 허락하지 않으니 공들이 쉽게 넘기고 서로 함께 가벼이 여기는 것이다. 내가 만약 놓아둔다면 어찌 공들을 넘어뜨리지 못하겠는가.」

현령 등이 벌벌 떨며 다 절하고 사죄하였다. 위징이 낯빛을 바르게 하여 간하였다.

「지금 뭇 신하 가운데 반드시 월왕을 가벼이 여기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에 신하와 자식은 한 가지 예입니다. 『전』에 일컫기를 『왕의 사람은 비록 미천해도 제후의 위에 벌여 놓는다』 하였습니다. 제후가 그를 써서 공으로 삼으면 곧 공이요, 써서 경으로 삼으면 곧 경입니다. 만약 공이나 경이 되지 않으면 곧 제후에게 아래 선비가 됩니다.

이제 삼품 이상은 공경으로 벌여 있고 아울러 천자의 대신이라 폐하께서 공경하고 남달리 대하시는 이들입니다. 설사 그들에게 조금 옳지 않음이 있더라도 월왕이 어찌 문득 꺾고 욕보일 수 있겠습니까. 만약 나라의 기강이 무너졌다면 신이 알지 못하는 바이나, 지금처럼 성스럽고 밝은 때에 월왕이 어찌 이럴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수 고조는 예의를 알지 못하여 여러 왕을 총애하고 세워 무례한 짓을 하게 하였다가 이윽고 죄로 내쫓았으니, 법으로 삼을 수 없거늘 또 무엇을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태종이 그 말을 듣고 기쁨이 낯빛에 드러나 뭇 신하에게 말하였다.

「무릇 사람의 말이 이치에 이르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짐이 말한 바는 제 몸의 사사로운 사랑이요 위징이 논한 바는 나라의 큰 법이다. 짐이 지난번에 성내며 스스로 이치가 의심할 바 없다 여겼는데, 위징이 논한 바를 보고서야 비로소 크게 도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임금 된 이의 말을 어찌 쉽게 할 수 있겠는가.」

현령 등을 불러 간절히 꾸짖고 위징에게 비단 천 필을 내렸다.

貞觀十一年,所司奏淩敬乞貪之狀。太宗責侍中魏徵等濫進人。徵曰:「臣等每蒙顧問,常具言其長短。有學識,強諫諍,是其所長。愛生活,好經營,是其所短。今淩敬為人作碑文,教人讀《漢書》,因茲附托,回易求利,與臣等所說不同。陛下未用其長,惟見其短,以為臣等欺罔,實不敢心伏。」太宗納之。

정관 십일 년에 맡은 관사가 능경이 탐욕을 부린 정상을 아뢰었다. 태종이 시중 위징 등이 사람을 함부로 천거하였다고 꾸짖었다. 위징이 말하였다.

「신들이 물으심을 받을 때마다 늘 그 길고 짧음을 갖추어 말하였습니다. 학식이 있고 굳세게 간쟁하는 것은 그 긴 바요, 살림을 아끼고 경영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짧은 바입니다. 이제 능경이 남을 위해 비문을 짓고 남에게 『한서』를 가르치며 이에 기대어 바꾸어 이익을 구하였다 하니, 신들이 말한 바와 같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그 긴 바를 쓰지 않으시고 오직 그 짧은 바만 보시어 신들이 속였다 여기시니, 참으로 감히 마음으로 엎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태종이 이를 받아들였다.

貞觀十二年,太宗謂魏徵曰:「比來所行得失政化,何如往前?」對曰:「若恩威所加,遠夷朝貢,比於貞觀之始,不可等級而言。若德義潛通,民心悅服,比於貞觀之初,相去又甚遠。」太宗曰:「遠夷來服,應由德義所加。往前功業,何因益大?」徵曰:「昔者四方未定,常以德義為心,旋以海內無虞,漸加驕奢自溢。所以功業雖盛,終不如往初。」太宗又曰:「所行比往前何為異?」徵曰:「貞觀之初,恐人不言,導之使諫。三年已後,見人諫,悅而從之。一二年來,不悅人諫,雖勉強聽受,而意終不平,諒有難色。」太宗曰:「於何事如此?」對曰:「即位之初,處元律師死罪,孫伏伽諫曰:『法不至死,無容濫加酷罰。』遂賜以蘭陵公主園,直錢百萬。人或曰:『所言乃常事,而所賞太厚。』答曰:『我即位來,未有諫者,所以賞之。』此導之使言。也徐州司戶柳雄於隋資妄加階級。人有告之者,陛下令其自首,不首與罪。遂固言是實,竟不肯首。大理推得其偽,將處雄死罪,少卿戴胄奏法止合徒。陛下曰:『我已與其斷當訖,但當與死罪。』胄曰:『陛下既不然,即付臣法司。罪不合死,不可酷濫。』陛下作色遣殺,胄執之不已,至於四五,然後赦之。乃謂法司曰:『但能為我如此守法,豈畏濫有誅夷。』此則悅以從諫也。往年陜縣丞皇甫德參上書大忤聖旨,陛下以為訕謗。臣奏稱上書不激切,不能起人主意,激切即似訕謗。於時雖從臣言,賞物二十段,意甚不平,難於受諫也。」太宗曰:「誠如公言,非公無能道此者。人皆苦不自覺,公向未道時,都自謂所行不變。及見公論說,過失堪驚。公但存此心,朕終不違公語。」

정관 십이 년에 태종이 위징에게 말하였다.

「근래 행한 정사와 교화의 잘잘못이 지난날과 견주어 어떠한가?」

대답하였다.

「만약 은혜와 위엄이 미쳐 먼 오랑캐가 조공하는 것으로 말하면, 정관 처음에 견주어 등급을 매겨 말할 수 없을 만큼 낫습니다. 만약 덕과 의로움이 은근히 통하여 백성의 마음이 기뻐 복종하는 것으로 말하면, 정관 처음에 견주어 서로 거리가 또한 몹시 멉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먼 오랑캐가 와서 복종하는 것은 마땅히 덕과 의로움을 더한 데서 말미암을 터인데, 지난날의 공업이 무슨 까닭으로 더 커졌는가?」

위징이 말하였다.

「옛날에는 사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늘 덕과 의로움을 마음으로 삼았는데, 이윽고 나라 안에 걱정이 없어지자 차츰 교만과 사치가 스스로 넘쳤습니다. 그래서 공업이 비록 성하나 끝내 처음만 못합니다.」

태종이 또 말하였다.

「행하는 바가 지난날에 견주어 무엇이 다른가?」

위징이 말하였다.

「정관 처음에는 사람이 말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이끌어 간하게 하셨습니다. 삼 년 뒤에는 사람이 간하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여 좇으셨습니다. 한두 해 사이에는 사람이 간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어, 비록 억지로 들어 받으시나 뜻이 끝내 편안하지 않아 참으로 어려운 낯빛이 있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어떤 일에서 그러한가?」

대답하였다.

「즉위하신 처음에 원율사를 죽을죄로 처결하시니 손복가가 간하기를 『법이 죽음에 이르지 않으니 함부로 모진 벌을 더할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마침내 난릉공주의 동산을 내리셨으니 값이 백만 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바는 곧 예사로운 일인데 상 준 것이 너무 두텁습니다』 하니, 답하시기를 『내가 즉위한 뒤로 간하는 이가 없었으므로 상 준 것이다』 하셨습니다. 이는 이끌어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서주 사호 유웅이 수나라 때의 이력에 함부로 품계를 더하였는데 어떤 이가 고발하였습니다. 폐하께서 스스로 자백하게 하고 자백하지 않으면 죄를 주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굳이 사실이라 말하고 끝내 자백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리시가 캐어 그 거짓을 알아내 유웅을 죽을죄로 처결하려 하니, 소경 대주가 법으로는 도형에 그친다고 아뢰었습니다. 폐하께서 『내가 이미 그와 결단을 마쳤으니 다만 죽을죄를 주어야 한다』 하시니, 대주가 『폐하께서 이미 그러지 않으시려거든 곧 신의 법사에 맡기소서. 죄가 죽음에 맞지 않으니 모질고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낯빛을 붉히고 죽이라 보내시니 대주가 붙들기를 그치지 않아 네댓 번에 이른 뒤에야 놓아주셨습니다. 이에 법사에게 이르시기를 『다만 나를 위하여 이처럼 법을 지킬 수 있다면 어찌 함부로 죽이는 일이 있을까 두려워하겠는가』 하셨습니다. 이는 곧 기뻐하여 간언을 좇으신 것입니다.

지난해 섬현승 황보덕참이 글을 올려 성스러운 뜻을 크게 거스르자 폐하께서 헐뜯는 것이라 여기셨습니다. 신이 아뢰기를 글을 올리는 것이 격하고 간절하지 않으면 임금의 뜻을 일으키지 못하고, 격하고 간절하면 곧 헐뜯는 것 같다 하였습니다. 그때 비록 신의 말을 좇아 물건 이십 단을 상 주셨으나 뜻이 몹시 편안하지 않으셨으니, 간언을 받기 어려워하신 것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참으로 공의 말과 같다. 공이 아니면 이것을 말할 이가 없다. 사람이 다 스스로 깨닫지 못함을 괴로워하니, 공이 아직 말하지 않았을 때는 다들 행하는 바가 달라지지 않았다고 여겼다. 공의 논설을 보고서야 허물이 놀랄 만하다. 공은 다만 이 마음을 지니라. 짐은 끝내 공의 말을 어기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