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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臣鑒戒第六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13 · 한자 3,048자 · 낭독 12.2분

「정관정요」 임금과 신하가 거울로 삼을 일 「君臣鑒戒第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三年,太宗謂侍臣曰:「君臣本同治亂,共安危,若主納忠諫,臣進直言,斯故君臣合契,古來所重。若君自賢,臣不匡正,欲不危亡,不可得也。君失其國,臣亦不能獨全其家。至如隋煬帝暴虐,臣下鉗口,卒令不聞其過,遂至滅亡,虞世基等尋亦誅死。前事不遠,朕與卿等可得不慎,無為後所嗤!」

정관 삼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임금과 신하는 본디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함께하고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함께한다. 만약 임금이 충성된 간언을 받아들이고 신하가 곧은 말을 올린다면 이는 임금과 신하가 서로 들어맞는 것이니 예로부터 무겁게 여긴 바다. 만약 임금이 스스로 어질다 하고 신하가 바로잡지 않는다면 위태롭고 망하지 않으려 해도 될 수 없다. 임금이 그 나라를 잃으면 신하 또한 홀로 그 집을 온전히 하지 못한다.

수 양제의 사나움 같은 데 이르러서는 아랫신하가 입에 재갈을 물려 끝내 그 허물을 듣지 못하게 하였고, 마침내 멸망에 이르러 우세기 등도 이윽고 죽임을 당하였다. 앞의 일이 멀지 않으니 짐이 경들과 더불어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뒷사람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지 말라.」

貞觀四年,太宗論隋日。魏徵對曰:「臣往在隋朝,會聞有盜發,煬帝令於士澄捕逐。但有疑似,苦加拷掠,枉承賊者二千餘人,並令同日斬決。大理丞張元濟怪之,試尋其狀,乃有六七人,盜發之日,先禁他所,被放才出,亦遭推勘,不勝苦痛,自誣行盜。元濟因此更事究尋,二千人內惟九人逗遛不明。官人有諳識者,就九人內四人非賊。有司以煬帝已令斬決,遂不執奏,並殺之。」太宗曰:「非是煬帝無道,臣下亦不盡心,須相匡諫,不避誅戮,豈得惟行諂佞,茍求悅譽。君臣如此,何得不敗?朕賴公等共相輔佐,遂令囹圄空虛,願公等善始克終,恒如今日!」

정관 사 년에 태종이 수나라 때의 일을 논하였다. 위징이 대답하였다.

「신이 지난날 수나라 조정에 있을 때 도둑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양제가 우사징에게 뒤쫓아 잡게 하였습니다. 다만 비슷하다는 의심만 있으면 모질게 매질을 더하여, 억울하게 도둑임을 받아들인 이가 이천여 사람인데 아울러 같은 날 목 베어 처결하게 하였습니다. 대리승 장원제가 이를 괴이하게 여겨 그 실상을 찾아보니, 예닐곱 사람은 도둑이 일어난 날에 먼저 다른 곳에 갇혀 있다가 놓여나 겨우 나왔는데 또한 캐물음을 당하여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도둑질하였다 무고한 것이었습니다. 원제가 이로 인해 다시 캐어 찾으니 이천 사람 안에 오직 아홉 사람만이 머뭇거려 밝지 못하였습니다. 벼슬아치 가운데 아는 이가 있어 아홉 사람 안에서도 네 사람은 도둑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맡은 관사가 양제가 이미 목 베어 처결하라 하였다 하여 마침내 붙들어 아뢰지 않고 아울러 다 죽였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양제가 도가 없었을 뿐 아니라 아랫신하도 또한 마음을 다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서로 바로잡아 간하기를 죽임도 피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찌 오직 아첨만 행하여 구차히 기쁨과 기림을 구할 수 있겠는가. 임금과 신하가 이러하니 어찌 무너지지 않겠는가. 짐이 공들이 함께 도와주는 데 힘입어 마침내 옥이 텅 비게 되었다. 바라건대 공들은 처음을 잘하고 끝을 마쳐 늘 오늘과 같으라.」

貞觀六年,太宗謂侍臣曰:「朕聞周、秦初得天下,其事不異。然周則惟善是務,積功累德,所以能保八百之基。秦乃恣其奢淫,好行刑罰,不過二世而滅。豈非為善者福祚延長,為惡者降年不永?朕又聞桀、紂,帝王也,以匹夫比之,則以為辱。顏、閔匹夫也,以帝王比之,則以為榮。此亦帝王深恥也。朕每將此事以為鑒戒,常恐不逮,為人所笑。」魏徵對曰:「臣聞魯哀公謂孔子曰:『有人好忘者,移宅乃忘其妻。』孔子曰:『又有好忘甚於此者,丘見桀、紂之君乃忘其身。』願陛下每以此為慮,庶免後人笑爾!」

정관 육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짐이 듣건대 주나라와 진나라가 처음 천하를 얻었을 때 그 일이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주나라는 오직 착함에만 힘써 공을 쌓고 덕을 포개었으니 그래서 팔백 년의 터를 지킬 수 있었다. 진나라는 그 사치와 음탕을 마음껏 하고 형벌 행하기를 좋아하여 이 대를 넘기지 못하고 망하였다. 어찌 착한 일을 하는 이는 복이 길게 이어지고 모진 일을 하는 이는 내리는 해가 길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짐이 또 듣건대 걸왕과 주왕은 제왕이었으나 여느 사내를 그들에게 견주면 그 사내가 욕으로 여기고, 안회와 민자건은 여느 사내였으나 제왕을 그들에게 견주면 그 제왕이 영광으로 여긴다 한다. 이 또한 제왕의 깊은 부끄러움이다. 짐이 늘 이 일을 거울과 경계로 삼으면서도 늘 미치지 못하여 남에게 비웃김이 될까 두려워한다.」

위징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건대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이르기를 『잘 잊는 사람이 있어 집을 옮기다가 그 아내를 잊었습니다』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또 이보다 심하게 잊는 이가 있으니, 제가 보건대 걸왕과 주왕 같은 임금은 곧 제 몸을 잊었습니다』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늘 이것을 걱정으로 삼으신다면 거의 뒷사람의 비웃음을 면하실 것입니다.」

貞觀十四年,太宗以高昌平,召侍臣賜宴於兩儀殿,謂房玄齡曰:「高昌若不失臣禮,豈至滅亡?朕平此一國,甚懷危懼,惟當戒驕逸以自防,納忠謇以自正。黜邪佞,用賢良,不以小人之言而議君子,以此慎守,庶幾於獲安也。」魏徵進曰:「臣觀古來帝王撥亂創業,必自戒慎,采芻蕘之議,從忠讜之言。天下既安,則恣情肆欲,甘樂諂諛,惡聞正諫。張子房,漢王計畫之臣,及高祖為天子,將廢嫡立庶,子房曰:『今日之事,非口舌所能爭也。』終不敢復有開說。況陛下功德之盛,以漢祖方之,彼不足準。即位十有五年,聖德光被,今又平殄高昌。屢以安危系意,方欲納用忠良,開直言之路,天下幸甚。昔齊桓公與管仲、鮑叔牙、寧戚四人飲,桓公謂叔牙曰:『盍起為寡人壽乎?』叔牙奉觴而起曰:『願公無忘出在莒時,使管仲無忘束縛於魯時,使寧戚無忘飯牛車下時。』桓公避席而謝曰:『寡人與二大夫能無忘夫子之言,則社稷不危矣!』」太宗謂徵曰:「朕必不敢忘布衣時,公不得忘叔牙之為人也。」

정관 십사 년에 태종이 고창이 평정되었으므로 곁에서 모시는 신하를 불러 양의전에서 잔치를 내리고 방현령에게 말하였다.

「고창이 만약 신하의 예를 잃지 않았다면 어찌 멸망에 이르렀겠는가. 짐이 이 한 나라를 평정하고서 몹시 위태로움과 두려움을 품는다. 오직 마땅히 교만과 게으름을 경계하여 스스로 막고 충성되고 곧은 말을 받아들여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 간사하고 아첨하는 이를 물리치고 어질고 좋은 이를 쓰며, 소인의 말로 군자를 논하지 않으리라. 이로써 삼가 지키면 거의 편안함을 얻을 것이다.」

위징이 나아가 말하였다.

「신이 보건대 예로부터 제왕이 어지러움을 다스려 업을 여는 때에는 반드시 스스로 경계하고 삼가 꼴 베고 나무하는 이의 의논도 캐어 듣고 충성되고 곧은 말을 좇았습니다. 그러다 천하가 이미 편안해지면 곧 정을 마음껏 하고 욕심을 부려 아첨을 달게 즐기고 바른 간언 듣기를 미워하였습니다. 장자방은 한왕의 계책을 세운 신하였으나 고조가 천자가 되어 맏아들을 폐하고 서자를 세우려 하자 자방이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입과 혀로 다툴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하고 끝내 감히 다시 열어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물며 폐하의 공과 덕이 성하여 한 고조를 견주어도 그가 견줄 만하지 못합니다. 자리에 오르신 지 열다섯 해에 성스러운 덕이 빛나 덮이고 이제 또 고창을 평정하셨습니다. 여러 번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마음에 매어 두시고 바야흐로 충성되고 좋은 이를 받아들여 쓰며 곧은 말의 길을 여시려 하니 천하가 몹시 다행합니다.

옛날 제 환공이 관중과 포숙아와 영척 네 사람과 더불어 술을 마셨습니다. 환공이 숙아에게 이르기를 『어찌 일어나 과인을 위해 축수하지 않는가』 하니, 숙아가 잔을 받들고 일어나 말하기를 『바라건대 공께서는 거나라에 나가 계시던 때를 잊지 마시고, 관중으로 하여금 노나라에 묶여 있던 때를 잊지 말게 하시고, 영척으로 하여금 수레 아래에서 소를 먹이던 때를 잊지 말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환공이 자리를 피하여 사례하기를 『과인과 두 대부가 그대의 말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사직이 위태롭지 않으리라』 하였습니다.」

태종이 위징에게 말하였다.

「짐은 반드시 감히 베옷 입던 때를 잊지 않겠으니, 공은 숙아의 사람됨을 잊지 말라.」

貞觀十四年,特進魏徵上疏曰:

정관 십사 년에 특진 위징이 상소하였다.

臣聞君為元首,臣作股肱,齊契同心,合而成體,體或不備,未有成人。然則首雖尊高。必資手足以成體,君雖明哲,必藉股肱以致治。《禮》云:「民以君為心,君以民為體,心莊則體舒,心肅則容敬。」《書》云:「元首明哉,股肱良哉,庶事康哉。」「元首叢脞哉,股肱惰哉,萬事墮哉。」然則委棄股肱,獨任胸臆,具體成理,非所聞也。

신이 듣건대 임금은 머리가 되고 신하는 팔다리가 되어, 뜻이 가지런하고 마음이 같아 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 합니다. 몸에 혹 갖추어지지 않은 데가 있으면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한즉 머리가 비록 높고 귀하나 반드시 손과 발에 힘입어야 몸을 이루고, 임금이 비록 밝고 슬기로우나 반드시 팔다리를 빌려야 다스림에 이릅니다.

『예기』에 이르기를 「백성은 임금을 마음으로 삼고 임금은 백성을 몸으로 삼으니, 마음이 씩씩하면 몸이 펴지고 마음이 엄숙하면 모습이 공경스럽다」 하였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머리가 밝으면 팔다리가 좋고 뭇일이 편안하다」 하였고, 「머리가 자질구레하면 팔다리가 게으르고 만사가 무너진다」 하였습니다. 그러한즉 팔다리를 맡겨 버리고 홀로 제 가슴속만 믿으면서 몸을 갖추고 이치를 이루었다는 말은 들은 바가 없습니다.

夫君臣相遇,自古為難。以石投水,千載一合,以水投石,無時不有。其能開至公之道,申天下之用,內盡心膂,外竭股肱,和若鹽梅,固同金石者,非惟高位厚秩,在於禮之而已。昔周文王遊於鳳皇之墟,襪系解,顧左右莫可使者,乃自結之。豈周文之朝盡為俊乂,聖明之代獨無君子者哉?但知與不知,禮與不禮耳!是以伊尹,有莘之媵臣,韓信,項氏之亡命,殷湯致禮,定王業於南巢,漢祖登壇,成帝功於垓下。若夏桀不棄於伊尹,項羽垂恩於韓信,寧肯敗已成之國為滅亡之虜乎?又微子,骨肉也,受茅土於宋,箕子,良臣也,陳《洪範》於周。仲尼稱其仁,莫有非之者。《禮記》稱:「魯穆公問於子思曰:『為舊君反服,古歟?』子思曰:『古之君子,進人以禮,退人以禮,故有舊君反服之禮也。今之君子,進人若將加諸膝,退人若將隊諸淵。毋為戎首,不亦善乎,又何反服之禮之有?』」齊景公問於晏子曰:「忠臣之事君如之何?」晏子對曰:「有難不死,出亡不送。」公曰:「裂地以封之,疏爵而待之,有難不死,出亡不送,何也?」晏子曰:「言而見用,終身無難,臣何死焉?諫而見納,終身不亡,臣何送焉?若言不見用,有難而死,是妄死也。諫不見納,出亡而送,是詐忠也。」《春秋左氏傳》曰:「崔杼弒齊莊公,晏子立於崔氏之門外,其人曰:『死乎?』曰:『獨吾君也乎哉!吾死也?』曰:『行乎?』曰:『吾罪也乎哉!吾亡也?故君為社稷死,則死之,為社稷亡,則亡之。若為己死,為己亡,非其親暱,誰敢任之。』門啟而入,枕屍股而哭,興,三踴而出。」孟子曰:「君視臣如手足,臣視君如腹心;君視臣如犬馬,臣視君如國人;君視臣如糞土,臣視君如寇讎。」雖臣之事君無二志,至於去就之節,當緣恩之厚薄,然則為人主者,安可以無禮於下哉!

무릇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는 것은 예로부터 어려운 일입니다. 돌을 물에 던지듯 하는 만남은 천 년에 한 번이요, 물을 돌에 던지듯 하는 만남은 없는 때가 없습니다. 지극히 공정한 도를 열어 천하의 쓰임을 펴고, 안으로 마음과 등뼈를 다하며 밖으로 팔다리를 다하여, 어울리기를 소금과 매실같이 하고 굳기를 쇠와 돌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높은 자리와 두터운 녹 때문이 아니라 예로 대하는 데 있을 따름입니다.

옛날 주 문왕이 봉황의 옛터에 노닐다가 버선끈이 풀렸는데, 좌우를 돌아보아 시킬 만한 이가 없어 이에 스스로 매었습니다. 어찌 주 문왕의 조정이 다 뛰어난 이뿐이고 성스럽고 밝은 세상에 홀로 군자가 없어서이겠습니까. 다만 알아보느냐 알아보지 못하느냐, 예로 대하느냐 예로 대하지 않느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윤은 유신씨의 잉신이었고 한신은 항씨에게서 달아난 이였으나, 은 탕왕이 예를 다하여 남소에서 왕업을 정하였고 한 고조가 단에 올려 해하에서 제업을 이루었습니다. 만약 하 걸이 이윤을 버리지 않았고 항우가 한신에게 은혜를 드리웠다면, 어찌 이미 이룬 나라를 무너뜨려 멸망한 사로잡힌 이가 되기를 즐겼겠습니까.

또 미자는 골육인데 송에서 땅을 받았고 기자는 좋은 신하인데 주나라에 『홍범』을 폈습니다. 중니가 그 어짊을 일컬었고 그르다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예기』에 일컫기를 「노 목공이 자사에게 묻기를 『옛 임금을 위해 도로 상복을 입는 것이 옛 법인가』 하니, 자사가 말하기를 『옛 군자는 사람을 나아가게 함에 예로 하고 사람을 물러나게 함에도 예로 하였으므로 옛 임금을 위해 도로 상복을 입는 예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군자는 사람을 나아가게 할 때는 무릎 위에 올려놓을 듯이 하고 물러나게 할 때는 못에 떨어뜨릴 듯이 합니다. 싸움의 앞장이 되지 않는 것만도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또 무슨 도로 상복 입는 예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하였습니다.

제 경공이 안자에게 묻기를 「충신이 임금 섬김은 어떠한가」 하니, 안자가 대답하기를 「어려움이 있어도 죽지 않고 달아나 나가도 배웅하지 않습니다」 하였습니다. 공이 말하기를 「땅을 갈라 봉해 주고 벼슬을 나누어 대접하는데, 어려움이 있어도 죽지 않고 달아나 나가도 배웅하지 않음은 어찌된 일인가」 하니, 안자가 말하기를 「말하여 쓰임을 받으면 몸이 다하도록 어려움이 없을 터이니 신이 무엇 때문에 죽겠습니까. 간하여 받아들여지면 몸이 다하도록 달아나지 않을 터이니 신이 무엇 때문에 배웅하겠습니까. 만약 말이 쓰이지 않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하여 죽으면 이는 헛된 죽음이요,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달아나는 것을 배웅하면 이는 거짓 충성입니다」 하였습니다.

『춘추좌씨전』에 이르기를 「최저가 제 장공을 죽이자 안자가 최씨의 문 밖에 섰다. 그 사람이 『죽으시렵니까』 하니 『홀로 나의 임금이던가. 내가 죽으랴』 하였다. 『가시렵니까』 하니 『내 죄인가. 내가 달아나랴. 그러므로 임금이 사직을 위해 죽으면 그를 위해 죽고 사직을 위해 달아나면 그를 위해 달아난다. 만약 제 몸을 위해 죽고 제 몸을 위해 달아난 것이라면 그와 가까이 사랑하던 이가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맡겠는가』 하였다. 문이 열리자 들어가 주검을 넓적다리에 베고 곡하였으며, 일어나 세 번 뛰고 나갔다」 하였습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임금이 신하 보기를 손발같이 하면 신하는 임금 보기를 배와 가슴같이 하고, 임금이 신하 보기를 개와 말같이 하면 신하는 임금 보기를 길 가는 사람같이 하며, 임금이 신하 보기를 거름흙같이 하면 신하는 임금 보기를 원수같이 한다」 하였습니다.

비록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두 마음이 없어야 하나, 떠나고 머무는 절도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은혜의 두텁고 엷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한즉 남의 임금 된 이가 어찌 아래에 예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竊觀在朝群臣,當主樞機之寄者,或地鄰秦、晉,或業與經綸,並立事立功,皆一時之選,處之衡軸,為任重矣。任之雖重,信之未篤,則人或自疑。人或自疑,則心懷茍且。心懷茍且,則節義不立。節義不立,則名教不興。名教不興,而可與固太平之基,保七百之祚,未之有也。又聞國家重惜功臣,不念舊惡,方之前聖,一無所間。然但寬於大事,急於小罪,臨時責怒,未免愛憎之心,不可以為政。君嚴其禁,臣或犯之,況上啟其源,下必有甚,川壅而潰,其傷必多,欲使凡百黎元,何所措其手足!此則君開一源,下生百端之變,無不亂者也。《禮記》曰:「愛而知其惡,憎而知其善。」若憎而不知其善,則為善者必懼。愛而不知其惡,則為惡者實繁。《詩》曰:「君子如怒,亂庶遄沮。」然則古人之震怒,將以懲惡,當今之威罰,所以長奸,此非唐、虞之心也,非禹、湯之事也。《書》曰:「撫我則後,虐我則讎。」荀卿子曰:「君,舟也。民,水也。水所以載舟,亦所以覆舟。」故孔子曰:「魚失水則死,水失魚猶為水也。」故唐、虞戰戰栗栗,日慎一日。安可不深思之乎?安可不熟慮之乎?

가만히 조정에 있는 뭇 신하를 보건대, 정사의 요긴한 자리를 맡은 이들은 더러 진(秦)나라와 진(晉)나라가 대대로 혼인하던 것처럼 인척으로 이웃하고 더러 업을 함께 다스려 왔으며, 아울러 일을 세우고 공을 세워 다 한때의 가려 뽑은 이들입니다. 저울대와 굴대의 자리에 두었으니 맡김이 무겁습니다. 맡김이 비록 무거우나 믿음이 도탑지 못하면 곧 사람이 혹 스스로 의심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면 마음에 구차함을 품고, 마음에 구차함을 품으면 절개와 의로움이 서지 않고, 절개와 의로움이 서지 않으면 이름과 가르침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름과 가르침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태평의 터를 굳히고 칠백 년의 복을 지킬 수 있다는 일은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또 듣건대 나라가 공신을 무겁게 아끼고 옛 미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신다 하니, 앞의 성인에 견주어도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큰일에는 너그럽고 작은 죄에는 급하시며, 때에 임하여 꾸짖고 성내심에 사랑과 미움의 마음을 면하지 못하시니 이로써는 정사를 할 수 없습니다. 임금이 그 금함을 엄하게 해도 신하가 혹 범하는데, 하물며 위에서 그 근원을 열면 아래에는 반드시 더 심함이 있습니다. 내가 막히면 터지고 그 다침이 반드시 많으니,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어디에 손발을 두게 하시겠습니까. 이는 곧 임금이 한 근원을 열어 아래에서 백 가지 변고가 생기는 것이니 어지럽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예기』에 이르기를 「사랑하되 그 모진 것을 알고 미워하되 그 착한 것을 안다」 하였습니다. 만약 미워하여 그 착한 것을 알지 못하면 착한 일을 하는 이가 반드시 두려워하고, 사랑하여 그 모진 것을 알지 못하면 모진 일을 하는 이가 참으로 번성합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군자가 노하면 어지러움이 거의 빨리 그친다」 하였습니다. 그러한즉 옛사람의 떨쳐 노함은 모진 것을 징계하려는 것인데 지금의 위엄과 벌은 간사함을 자라게 하는 바이니, 이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마음이 아니요 우임금과 탕임금의 일이 아닙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나를 어루만지면 임금이요 나를 사납게 하면 원수다」 하였고, 순경자가 말하기를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는 바이나 또한 배를 엎는 바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고기가 물을 잃으면 죽고, 물이 고기를 잃어도 여전히 물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요임금과 순임금이 벌벌 떨며 날마다 하루씩 삼갔습니다.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어찌 익히 헤아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夫委大臣以大體,責小臣以小事,為國之常也,為治之道也。今委之以職,則重大臣而輕小臣;至於有事,則信小臣而疑大臣。信其所輕,疑其所重,將求至治豈可得乎?又政貴有恒,不求屢易。今或責小臣以大體,或責大臣以小事,小臣乘非所據,大臣失其所守,大臣或以小過獲罪,小臣或以大體受罰。職非其位,罰非其辜,欲其無私,求其盡力,不亦難乎?小臣不可委以大事,大臣不可責以小罪。任以大官,求其細過,刀筆之吏,順旨承風,舞文弄法,曲成其罪。自陳也,則以為心不伏辜;不言也,則以為所犯皆實。進退惟谷,莫能自明,則茍求免禍。大臣茍免,則譎詐萌生。譎詐萌生,則矯偽成俗。矯偽成俗,則不可以臻至治矣!

무릇 대신에게는 큰일을 맡기고 작은 신하에게는 작은 일을 맡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떳떳함이요 다스림의 도입니다. 이제 직분을 맡기실 때는 곧 대신을 무겁게 하고 작은 신하를 가볍게 하시면서, 일이 생기는 데 이르러서는 곧 작은 신하를 믿고 대신을 의심하십니다. 그 가벼이 여기는 바를 믿고 그 무겁게 여기는 바를 의심하시니, 지극한 다스림을 구한들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또 정사는 한결같음을 귀히 여기고 자주 바꾸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이제 더러 작은 신하에게 큰일을 꾸짖고 더러 대신에게 작은 일을 꾸짖으시니, 작은 신하는 제 자리 아닌 것을 타고 대신은 그 지킬 바를 잃습니다. 대신이 더러 작은 허물로 죄를 얻고 작은 신하가 더러 큰일로 벌을 받습니다. 직분이 그 자리가 아니고 벌이 그 허물이 아닌데, 그들에게 사사로움이 없기를 바라고 그들이 힘을 다하기를 구하는 것이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작은 신하에게는 큰일을 맡길 수 없고 대신에게는 작은 죄를 꾸짖을 수 없습니다. 큰 벼슬을 맡기고서 그 자잘한 허물을 찾으면, 붓과 칼을 쥔 벼슬아치가 뜻을 좇고 바람을 받아 글을 놀리고 법을 희롱하여 그 죄를 굽혀 이룹니다. 스스로 밝히면 곧 마음이 죄에 엎드리지 않는다 여기고, 말하지 않으면 곧 범한 바가 다 사실이라 여깁니다. 나아가고 물러남이 다 골짜기라 스스로 밝힐 수 없으니 곧 구차히 화 면하기를 구합니다. 대신이 구차히 면하려 하면 곧 속임과 거짓이 싹트고, 속임과 거짓이 싹트면 곧 꾸미고 거짓됨이 풍속을 이루며, 꾸미고 거짓됨이 풍속을 이루면 지극한 다스림에 이를 수 없습니다.

又委任大臣,欲其盡力,每官有所避忌不言,則為不盡。若舉得其人,何嫌於故舊。若舉非其任,何貴於疏遠。待之不盡誠信,何以責其忠恕哉!臣雖或有失之,君亦未為得也。夫上之不信於下,必以為下無可信矣。若必下無可信,則上亦有可疑矣!《禮》曰:「上人疑,則百姓惑。下難知,則君長勞。」上下相疑,則不可以言至治矣。當今群臣之內,遠在一方,流言三至而不投杼者,臣竊思度,未見其人。夫以四海之廣,士庶之眾,豈無一二可信之人哉?蓋信之則無不可,疑之則無可信者,豈獨臣之過乎?夫以一介庸夫結為交友,以身相許,死且不渝,況君臣契合,寄同魚水。若君為堯、舜,臣為稷、契,豈有遇小事則變志,見小利則易心哉!此雖下之立忠未有明著,亦由上懷不信,待之過薄之所致也。豈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乎?以陛下之聖明,以當今之功業,誠能博求時俊,上下同心,則三皇可追而四,五帝可俯而六矣。夏、殷、周、漢,夫何足數。」

또 대신에게 맡기심은 그들이 힘을 다하기를 바라시는 것인데, 벼슬마다 꺼리고 피하여 말하지 않는 바가 있으면 곧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천거한 이가 그 사람을 얻었다면 옛 친구인들 무엇을 꺼리겠으며, 만약 천거한 이가 그 소임에 맞지 않다면 멀고 성근 사이인들 무엇이 귀하겠습니까. 대하기를 정성과 믿음을 다하지 않으시면서 무엇으로 그 충성과 너그러움을 꾸짖으시겠습니까. 신하가 비록 더러 잘못하는 바가 있으나 임금 또한 잘한 것이 아닙니다.

무릇 위에서 아래를 믿지 않으면 반드시 아래에 믿을 만한 이가 없다 여기는 것입니다. 만약 반드시 아래에 믿을 만한 이가 없다면 곧 위에도 의심할 만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예기』에 이르기를 「윗사람이 의심하면 백성이 미혹하고, 아래를 알기 어려우면 임금이 수고롭다」 하였습니다. 위아래가 서로 의심하면 지극한 다스림을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뭇 신하 가운데 멀리 한 지방에 있으면서 헐뜯는 말이 세 번 이르러도 북을 던지지 않게 할 이가 누구인지, 신이 가만히 헤아려 보아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무릇 사해의 넓음과 선비와 백성의 많음으로 어찌 한둘 믿을 만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대개 믿으면 안 될 것이 없고 의심하면 믿을 만한 이가 없으니 어찌 홀로 신하의 허물이겠습니까.

무릇 한낱 예사 사내끼리도 벗을 맺으면 몸으로 서로 허락하여 죽어도 바꾸지 않는데, 하물며 임금과 신하가 뜻이 들어맞아 물과 고기같이 붙어 있음이겠습니까. 만약 임금이 요임금과 순임금이 되고 신하가 후직과 설이 된다면, 어찌 작은 일을 만났다 하여 뜻을 바꾸고 작은 이로움을 보았다 하여 마음을 고치겠습니까. 이는 비록 아래에서 충성을 세움이 아직 뚜렷하지 못한 탓도 있으나, 또한 위에서 믿지 않는 마음을 품고 대하기를 지나치게 엷게 하신 데서 온 것입니다. 어찌 임금이 신하를 예로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는 것이겠습니까.

폐하의 성스럽고 밝으심과 지금의 공업으로, 참으로 널리 그때의 뛰어난 이를 구하여 위아래가 마음을 같이할 수 있다면, 삼황에 쫓아 넷이 되고 오제에 굽어 여섯이 될 것입니다. 하나라와 은나라와 주나라와 한나라야 어찌 셀 것이 되겠습니까.

太宗深嘉納之。

태종이 깊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다.

貞觀十六年,太宗問特進魏徵曰:「朕克己為政,仰企前烈。至於積德、累仁、豐功、厚利,四者常以為稱首,朕皆庶幾自勉。人苦不能自見,不知朕之所行,何等優劣?」徵對曰:「德、仁、功、利,陛下兼而行之。然則內平禍亂,外除戎狄,是陛下之功。安諸黎元,各有生業,是陛下之利。由此言之,功利居多,惟德與仁,願陛下自強不息,必可致也。」

정관 십육 년에 태종이 특진 위징에게 물었다.

「짐이 몸을 이겨 정사를 하며 앞선 이들의 밝은 자취를 우러러 바란다. 덕을 쌓음과 어짊을 포갬과 공을 넉넉히 함과 이로움을 두터이 함, 이 네 가지를 늘 으뜸으로 일컬어 짐이 다 스스로 힘써 보려 한다. 사람은 스스로를 보지 못함을 괴로워하니, 짐이 행한 바가 어느 것이 낫고 못한지 알지 못하겠다.」

위징이 대답하였다.

「덕과 어짊과 공과 이로움을 폐하께서 아울러 행하십니다. 그러한즉 안으로 재앙과 어지러움을 평정하고 밖으로 오랑캐를 없앤 것은 폐하의 공이요, 뭇 백성을 편안케 하여 저마다 살 업을 갖게 한 것은 폐하의 이로움입니다. 이로 말하면 공과 이로움이 많이 자리하고 오직 덕과 어짊은 바라건대 폐하께서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으시면 반드시 이르실 수 있습니다.」

貞觀十七年,太宗謂侍臣曰:「自古草創之主,至於子孫多亂,何也?」司空房玄齡曰:「此為幼主生長深宮,少居富貴,未嘗識人間情偽,理國安危,所以為政多亂。」太宗曰:「公意推過於主,朕則歸咎於臣。夫功臣子弟多無才行,藉祖父資蔭遂處大官,德義不修,奢縱是好。主既幼弱,臣又不才,顛而不扶,豈能無亂?隋煬帝錄宇文述在藩之功,擢化及於高位,不思報效,翻行弒逆。此非臣下之過歟?朕發此言,欲公等戒勖子弟,使無愆過,即家國之慶也。」太宗又曰:「化及與玄感,即隋大臣受恩深者子孫,皆反,其故何也?」岑文本對曰:「君子乃能懷德荷恩,玄感、化及之徒,並小人也。古人所以貴君子而賤小人。」太宗曰:「然。」

정관 십칠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예로부터 처음 나라를 여는 임금은 자손에 이르러 어지러움이 많으니 어찌된 일인가?」

사공 방현령이 말하였다.

「이는 어린 임금이 깊은 궁궐에서 나고 자라 어려서부터 넉넉하고 귀한 데 살아, 인간의 참과 거짓이며 나라를 다스리는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일찍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사를 함에 어지러움이 많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공의 뜻은 허물을 임금에게 미루나 짐은 곧 신하에게 허물을 돌린다. 무릇 공신의 자제는 재주와 행실이 없는 이가 많은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그늘에 기대어 마침내 큰 벼슬에 있으면서 덕과 의로움을 닦지 않고 사치와 방종을 좋아한다. 임금이 이미 어리고 약한데 신하가 또 재주가 없으면 넘어지는데도 붙들지 못하니 어찌 어지러움이 없겠는가.

수 양제는 우문술이 번저에 있을 때의 공을 적어 화급을 높은 자리에 뽑아 올렸는데, 갚아 드릴 것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임금 죽이는 짓을 행하였다. 이것이 아랫신하의 허물이 아니겠는가. 짐이 이 말을 낸 것은 공들이 자제를 경계하고 힘쓰게 하여 허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니, 그것이 곧 집과 나라의 경사다.」

태종이 또 말하였다.

「화급과 현감은 곧 수나라 대신으로 은혜를 깊이 받은 이의 자손인데 다 배반하였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잠문본이 대답하였다.

「군자라야 덕을 품고 은혜를 짊어질 수 있습니다. 현감과 화급의 무리는 아울러 소인입니다. 옛사람이 그래서 군자를 귀히 여기고 소인을 천하게 여겼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