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擇官第七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15 · 한자 3,165자 · 낭독 12.7분

「정관정요」 벼슬아치를 고르다 「擇官第七」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元年,太宗謂房玄齡等曰:「致治之本,惟在於審。量才授職,務省官員。故《書》稱:『任官惟賢才。』又云:『官不必備,惟其人。』若得其善者,雖少亦足矣。其不善者,縱多亦奚為?古人亦以官不得其才,比於畫地作餅,不可食也。《詩》曰:『謀夫孔多,是用不就。』又孔子曰:『官事不攝,焉得儉?』且『千羊之皮,不如一狐之腋。』此皆載在經典,不能具道。當須更並省官員,使得各當所任,則無為而治矣。卿宜詳思此理,量定庶官員位。」玄齡等由是所置文武總六百四十員。太宗從之,因謂玄齡曰:「自此儻有樂工雜類,假使術逾儕輩者,只可特賜錢帛以賞其能,必不可超授官爵,與夫朝賢君子比肩而立,同坐而食,遺諸衣冠以為恥累。」

정관 원년에 태종이 방현령 등에게 말하였다.

「다스림에 이르는 근본은 오직 살피는 데 있다. 재주를 헤아려 직분을 주되 벼슬아치의 수를 덜기에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서경』에 일컫기를 『벼슬을 맡김은 오직 어질고 재주 있는 이라야 한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벼슬은 반드시 갖출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이라야 한다』 하였다. 만약 그 좋은 이를 얻으면 비록 적어도 넉넉하고, 그 좋지 못한 이라면 비록 많아도 무엇하겠는가. 옛사람도 벼슬에 그 재주를 얻지 못한 것을 두고 땅에 그린 떡에 견주어 먹을 수 없다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꾀하는 사내가 매우 많으니 이 때문에 이루지 못한다』 하였고, 또 공자가 말하기를 『벼슬의 일을 겸하지 않으면 어찌 검소함을 얻겠는가』 하였다. 또 『천 마리 양의 가죽이 여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만 못하다』 하였다. 이것이 다 경전에 실려 있어 다 말할 수 없다. 마땅히 다시 벼슬아치의 수를 아울러 덜어 저마다 맡은 바에 맞게 한다면 곧 함이 없이도 다스려질 것이다. 경은 마땅히 이 이치를 자세히 생각하여 뭇 벼슬의 자릿수를 헤아려 정하라.」

현령 등이 이로 말미암아 문무를 아울러 모두 육백사십 자리로 두었다. 태종이 이를 좇고 이어 현령에게 말하였다.

「이로부터 만약 악공이나 잡다한 무리로서 설사 재주가 또래보다 뛰어난 이가 있더라도, 다만 특별히 돈과 비단을 내려 그 재능을 상 줄 수 있을 뿐이요 결코 벼슬과 작위를 뛰어넘어 주어서는 안 된다. 저 조정의 어진 군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서고 함께 앉아 먹게 하여 여러 관리에게 부끄러움과 누가 되게 하지 말라.」

貞觀二年,太宗謂房玄齡、杜如晦曰:「公為僕射,當助朕憂勞,廣聞耳目,求訪賢哲。比聞公等聽受辭訟,日有數百。此則讀符牒不暇,安能助朕求賢哉?」因敕尚書省,細碎務皆付左右丞,惟冤滯大事合聞奏者,關於僕射。

정관 이 년에 태종이 방현령과 두여회에게 말하였다.

「공들이 복야가 되었으니 마땅히 짐의 걱정과 수고를 도와 널리 듣고 보아 어질고 슬기로운 이를 찾아야 한다. 요사이 들으니 공들이 송사를 듣고 받는 것이 날마다 수백 건이라 한다. 이러면 곧 문서 읽을 겨를도 없을 터이니 어찌 짐을 도와 어진 이를 구하겠는가.」

이에 상서성에 칙명하여 자잘한 일은 다 좌승과 우승에게 맡기고, 오직 억울하게 막힌 큰일로 아뢰어야 마땅한 것만 복야에게 걸리게 하였다.

貞觀二年,太宗謂侍臣曰:「朕每夜恒思百姓間事,或至夜半不寐。惟恐都督、刺史堪養百姓以否。故於屏風上錄其姓名,坐臥恒看,在官如有善事,亦具列於名下。朕居深宮之中,視聽不能及遠,所委者惟都督、刺史,此輩實治亂所系,尤須得人。」

정관 이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짐이 밤마다 늘 백성 사이의 일을 생각하여 더러 밤중에 이르도록 잠들지 못한다. 오직 도독과 자사가 백성을 기를 만한지 아닌지가 걱정될 뿐이다. 그래서 병풍 위에 그 이름을 적어 두고 앉으나 누우나 늘 보며, 벼슬에 있으면서 좋은 일이 있으면 또한 그 이름 아래에 갖추어 적는다. 짐이 깊은 궁궐 안에 있어 보고 듣는 것이 멀리 미치지 못하니 맡긴 이는 오직 도독과 자사뿐이다. 이 무리가 참으로 다스림과 어지러움이 매인 바이니 더욱 사람을 잘 얻어야 한다.」

貞觀二年,太宗謂右僕射封德彜曰:「致安之本,惟在得人。比來命卿舉賢,未嘗有所推薦。天下事重,卿宜分朕憂勞,卿既不言,朕將安寄?」對曰:「臣愚豈敢不盡情,但今未見有奇才異能。」太宗曰:「前代明王使人如器,皆取士於當時,不借才於異代。豈得待夢傅說,逢呂尚,然後為政乎?且何代無賢,但患遺而不知耳!」德彜慚赧而退。

정관 이 년에 태종이 우복야 봉덕이에게 말하였다.

「편안함에 이르는 근본은 오직 사람을 얻는 데 있다. 요사이 경에게 어진 이를 천거하라 하였는데 아직 천거한 바가 있지 않다. 천하의 일이 무거우니 경은 마땅히 짐의 걱정과 수고를 나누어야 한다. 경이 이미 말하지 않으니 짐은 장차 어디에 부치겠는가.」

대답하였다.

「신이 어리석으나 어찌 감히 정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지금 남다른 재주와 남다른 재능을 가진 이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앞선 세상의 밝은 임금은 사람 쓰기를 그릇 쓰듯 하여 다 그때의 선비에서 취하고 다른 시대에서 재주를 빌리지 않았다. 어찌 부열을 꿈꾸기를 기다리고 여상을 만나기를 기다린 뒤에야 정사를 하겠는가. 또 어느 시대에 어진 이가 없었겠는가. 다만 빠뜨려 알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덕이가 부끄러워 낯을 붉히고 물러갔다.

貞觀三年,太宗謂吏部尚書杜如晦曰:「比見吏部擇人,惟取其言詞刀筆,不悉其景行。數年之後,惡跡始彰,雖加刑戮,而百姓已受其弊。如何可獲善人?」如晦對曰:「兩漢取人,皆行著鄉閭,州郡貢之,然後入用,故當時號為多士。今每年選集,向數千人,厚貌飾詞,不可知悉,選司但配其階品而已。銓簡之理,實所未精,所以不能得才。」太宗乃將依漢時法令,本州辟召,會功臣等將行世封事,遂止。

정관 삼 년에 태종이 이부상서 두여회에게 말하였다.

「요사이 보건대 이부가 사람을 고를 때 오직 그 말솜씨와 글재주만 취하고 그 평소 행실은 알지 못한다. 몇 해 뒤에야 모진 자취가 비로소 드러나 비록 형벌과 죽임을 더하나 백성은 이미 그 해를 입은 뒤다. 어찌하면 좋은 사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여회가 대답하였다.

「두 한나라가 사람을 취할 때는 다 행실이 마을에 드러나면 주와 군이 이를 바치고 그런 뒤에 들여 썼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는 선비가 많다고 일컬어졌습니다. 이제는 해마다 뽑아 모으는 것이 수천 사람에 가까운데, 낯빛을 두터이 하고 말을 꾸미니 다 알 수 없어 뽑는 관사는 다만 그 품계를 맞추어 줄 뿐입니다. 가려 뽑는 이치가 참으로 정밀하지 못하니 그래서 재주를 얻지 못합니다.」

태종이 이에 한나라 때의 법령을 따라 본주에서 불러 쓰게 하려 하였으나, 마침 공신 등에게 대대로 봉하는 일을 행하려던 때라 마침내 그쳤다.

貞觀六年,太宗謂魏徵曰:「古人云,王者須為官擇人,不可造次即用。朕今行一事,則為天下所觀;出一言,則為天下所聽。用得正人,為善者皆勸;誤用惡人,不善者競進。賞當其勞,無功者自退;罰當其罪,為惡者戒懼。故知賞罰不可輕行,用人彌須慎擇。」徵對曰:「知人之事,自古為難,故考績黜陟,察其善惡。今欲求人,必須審訪其行。若知其善,然後用之。設令此人不能濟事,只是才力不及,不為大害。誤用惡人,假令強幹,為害極多。但亂世惟求其才,不顧其行。太平之時,必須才行俱兼,始可任用。」

정관 육 년에 태종이 위징에게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왕 된 이는 모름지기 벼슬을 위해 사람을 고를 것이요 갑작스레 곧 써서는 안 된다 하였다. 짐이 이제 한 가지 일을 행하면 곧 천하가 보는 바가 되고, 한마디 말을 내면 곧 천하가 듣는 바가 된다. 바른 사람을 얻어 쓰면 착한 일을 하는 이가 다 힘쓰고, 그릇되이 모진 사람을 쓰면 착하지 못한 이가 다투어 나아온다. 상이 그 수고에 마땅하면 공 없는 이가 절로 물러나고, 벌이 그 죄에 마땅하면 모진 일을 하는 이가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상과 벌은 가벼이 행할 수 없고 사람 씀은 더욱 삼가 골라야 함을 안다.」

위징이 대답하였다.

「사람을 아는 일은 예로부터 어려운 일이라 그러므로 공적을 살펴 물리고 올려 그 착함과 모짊을 살폈습니다. 이제 사람을 구하고자 하시면 반드시 그 행실을 살펴 물으셔야 합니다. 만약 그 착함을 알면 그런 뒤에 쓰십시오. 설사 이 사람이 일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다만 재주와 힘이 미치지 못할 뿐이라 큰 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진 사람을 그릇 쓰면 설사 굳세고 잘한다 해도 해로움이 지극히 많습니다. 다만 어지러운 세상에는 오직 그 재주만 구하고 그 행실을 돌아보지 않으나, 태평한 때에는 반드시 재주와 행실을 아울러 갖추어야 비로소 맡겨 쓸 수 있습니다.」

貞觀十一年,侍御史馬周上疏曰:「治天下者以人為本。欲令百姓安樂,惟在刺史、縣令。縣令既眾,不能皆賢,若每州得良刺史,則合境蘇息。天下刺史悉稱聖意,則陛下可端拱巖廊之上,百姓不慮不安。自古郡守、縣令,皆妙選賢德,欲有遷擢為將相,必先試以臨人,或從二千石入為丞相及司徒、太尉者。朝廷必不可獨重內臣,外刺史、縣令,遂輕其選。所以百姓未安,殆由於此。」太宗因謂侍臣曰:「刺史朕當自簡擇;縣令詔京官五品已上,各舉一人。」

정관 십일 년에 시어사 마주가 상소하였다.

「천하를 다스리는 이는 사람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백성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려면 오직 자사와 현령에 달렸습니다. 현령은 이미 수가 많아 다 어질 수 없으나, 만약 고을마다 좋은 자사를 얻으면 곧 온 지경이 되살아납니다. 천하의 자사가 다 성스러운 뜻에 맞으면 폐하께서는 높은 마루 위에 손을 모으고 계셔도 백성이 편안하지 않을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군수와 현령은 다 어질고 덕 있는 이를 잘 골랐고, 옮겨 뽑아 장수나 재상으로 삼으려 하면 반드시 먼저 사람을 다스리는 일로 시험하였으며, 더러는 이천석에서 들어와 승상이나 사도나 태위가 되었습니다. 조정은 결코 안의 신하만 무겁게 여기고 밖의 자사와 현령은 마침내 그 뽑음을 가벼이 해서는 안 됩니다. 백성이 편안하지 못한 까닭이 아마 여기에서 말미암을 것입니다.」

태종이 이로 인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자사는 짐이 마땅히 스스로 가려 뽑겠다. 현령은 서울 벼슬 오품 이상에게 저마다 한 사람씩 천거하라 조서하라.」

貞觀十一年,治書侍御史劉洎以為左右丞宜特加精簡,上疏曰:「臣聞尚書萬機,實為政本,伏尋此選,授任誠難。是以八座比於文昌,二丞方於管轄,爰至曹郎,上應列宿,茍非稱職,竊位興譏。伏見比來尚書省詔敕稽停,文案壅滯,臣誠庸劣,請述其源。貞觀之初,未有令、僕,於時省務繁雜,倍多於今。而左丞戴胄,右丞魏徵,並曉達吏方,質性平直,事應彈舉,無所回避,陛下又假以恩慈,自然肅物。百司匪懈,抑此之由。及杜正倫續任右丞,頗亦厲下。比者綱維不舉,並為勛親在位,器非其任,功勢相傾。凡在官寮,未循公道,雖欲自強,先懼囂謗。所以郎中予奪,惟事諮稟;尚書依違,不能斷決。或紏彈聞奏,故事稽延,案雖理窮,仍更盤下。去無程限,來不責遲,一經出手,便涉年載。或希旨失情,或避嫌抑理。勾司以案成為事了,不究是非;尚書用便僻為奉公,莫論當否。互相姑息,惟事彌縫。且選眾授能,非才莫舉,天工人代,焉可妄加?至於懿戚元勛,但宜優其禮秩,或年高及耄,或積病智昏,既無益於時宜,當置之以閑逸。久妨賢路,殊為不可。將救茲弊,且宜精簡尚書左右丞及左右郎中。如並得人,自然綱維備舉,亦當矯正趨競,豈惟息其稽滯哉!」疏奏。尋以洎為尚書左丞。

정관 십일 년에 치서시어사 유계가 좌승과 우승은 마땅히 특별히 정밀하게 가려야 한다 여겨 상소하였다.

「신이 듣건대 상서성의 온갖 일이 참으로 정사의 근본이 된다 합니다. 엎드려 이 뽑음을 살피건대 소임을 주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여덟 자리를 문창성에 견주고 두 승을 굴대에 견주며, 조랑에 이르러서도 위로 별자리에 응한다 하니, 만일 직분에 걸맞지 않으면 자리를 훔쳤다는 비웃음을 일으킵니다.

엎드려 보건대 요사이 상서성에서 조칙이 지체되고 문서가 막혀 있습니다. 신이 참으로 못나고 못하나 청컨대 그 근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관 처음에는 상서령과 복야가 없었고 그때 성의 일이 번잡하기가 지금보다 곱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좌승 대주와 우승 위징이 아울러 벼슬아치의 방도에 밝고 성품이 고르고 곧아, 일이 탄핵하여 들 만하면 피하는 바가 없었으며 폐하께서 또 은혜와 사랑을 빌려 주시니 절로 온갖 일이 엄숙해졌습니다. 온갖 관사가 게으르지 않은 것이 이 때문이었습니다. 두정륜이 이어 우승이 되어서도 자못 아래를 다잡았습니다.

요사이 벼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울러 공훈 있는 친척이 자리에 있어 그릇이 그 소임이 아니면서 공과 세력으로 서로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벼슬아치들이 공정한 도를 좇지 않아, 비록 스스로 굳세고자 하여도 먼저 시끄러운 헐뜯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낭중은 주고 뺏는 것을 오직 물어 여쭙기만 하고, 상서는 이러니저러니 하며 끊어 결단하지 못합니다. 혹 들추어 아뢰어도 짐짓 늦추어 끌고, 문안이 비록 이치가 다하였어도 여전히 다시 아래로 돌립니다. 가는 데 정한 기한이 없고 오는 데 늦음을 꾸짖지 않아, 한 번 손을 떠나면 곧 해를 넘깁니다. 혹은 뜻을 살피느라 실정을 잃고 혹은 혐의를 피하느라 이치를 누릅니다. 맡은 관사는 문안이 이루어진 것으로 일이 끝났다 하고 옳고 그름을 캐지 않으며, 상서는 편하고 치우친 것을 공무를 받든다 하고 마땅한지 아닌지를 논하지 않습니다. 서로 봐주기만 하고 오직 얽어 메우기만 일삼습니다.

또 무리에서 골라 능한 이에게 맡기되 재주가 아니면 천거하지 않아야 하니, 하늘의 일을 사람이 대신하는 것을 어찌 함부로 더할 수 있겠습니까. 아름다운 인척과 으뜸가는 공훈에 이르러서는 다만 마땅히 그 예와 녹을 넉넉히 할 것이요, 혹 나이가 많아 늙었거나 혹 병이 쌓여 슬기가 어두워졌다면 이미 그때에 보탬이 없으니 마땅히 한가한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오래 어진 이의 길을 막는 것은 자못 옳지 않습니다.

이 폐단을 건지려면 또한 마땅히 상서 좌우승과 좌우낭중을 정밀히 가려야 합니다. 만약 아울러 사람을 얻는다면 절로 벼리가 갖추어 들리고 또한 마땅히 다투어 좇는 버릇을 바로잡을 터이니, 어찌 다만 그 지체됨만 그치겠습니까.」

상소가 아뢰어졌다. 이윽고 유계를 상서좌승으로 삼았다.

貞觀十三年,太宗謂侍臣曰:「朕聞太平後必有大亂,大亂後必有太平。大亂之後,即是太平之運也。能安天下者,惟在用得賢才。公等既不知賢,朕又不可遍識。日復一日,無得人之理。今欲令人自舉,於事何如?」魏徵對曰:「知人者智,自知者明。知人既以為難,自知誠亦不易。且愚暗之人,皆矜能伐善,恐長澆競之風,不可令其自舉。」

정관 십삼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짐이 듣건대 태평한 뒤에는 반드시 큰 어지러움이 있고 큰 어지러움 뒤에는 반드시 태평이 있다 한다. 큰 어지러움 뒤가 곧 태평의 운수다. 천하를 편안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질고 재주 있는 이를 얻어 쓰는 데 있다. 공들이 이미 어진 이를 알지 못하고 짐 또한 두루 알 수 없다. 날이 가고 또 가도 사람 얻을 이치가 없다. 이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천거하게 하려 하는데 일에 어떠하겠는가?」

위징이 대답하였다.

「남을 아는 이는 슬기롭고 저를 아는 이는 밝습니다. 남을 아는 것도 이미 어려운데 저를 아는 것 또한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리석고 어두운 사람은 다 재능을 자랑하고 착함을 뽐내니, 얄팍하게 다투는 풍조를 자라게 할까 두렵습니다. 스스로 천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貞觀十四年,特進魏徵上疏曰:

정관 십사 년에 특진 위징이 상소하였다.

臣聞知臣莫若君,知子莫若父。父不能知其子,則無以睦一家;君不能知其臣,則無以齊萬國。萬國咸寧,一人有慶,必藉忠良作弼,俊乂在官,則庶績其凝,無為而化矣。故堯、舜、文、武見稱前載,咸以知人則哲,多士盈朝,元、凱翼巍巍之功,周、召光煥乎之美。然則四嶽、九官、五臣、十亂,豈惟生之於曩代,而獨無於當今者哉?在乎求與不求,好與不好耳!何以言之?夫美玉明珠,孔翠犀象,大宛之馬,西旅之獒,或無足也,或無情也,生於八荒之表,塗遙萬里之外,重譯入貢,道路不絕者,何哉?蓋由乎中國之所好也。況從仕者懷君之榮,食君之祿,率之以義,將何往而不至哉?臣以為與之為孝,則可使同乎會參、子騫矣。與之為忠,則可使同乎龍逄、比幹矣。與之為信,則可使同乎尾生、展禽矣。與之為廉,則可使同乎伯夷、叔齊矣。

신이 듣건대 신하를 아는 데는 임금만 한 이가 없고 아들을 아는 데는 아비만 한 이가 없다 합니다. 아비가 그 아들을 알지 못하면 곧 한 집을 화목하게 할 수 없고, 임금이 그 신하를 알지 못하면 곧 만국을 가지런히 할 수 없습니다. 만국이 다 편안하고 한 사람에게 경사가 있으려면 반드시 충성되고 좋은 이를 빌려 도움으로 삼아야 합니다. 뛰어난 이가 벼슬에 있으면 곧 뭇 공적이 엉기고 함이 없이도 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요임금과 순임금과 문왕과 무왕이 앞선 기록에 일컬어진 것은 다 사람을 알아 슬기로웠기 때문이니, 많은 선비가 조정에 가득하여 팔원과 팔개가 높고 높은 공을 도왔고 주공과 소공이 빛나는 아름다움을 밝혔습니다. 그러한즉 사악과 아홉 벼슬아치와 다섯 신하와 열 사람의 다스리는 이가 어찌 오직 지난 시대에만 나고 홀로 오늘에는 없겠습니까. 구하느냐 구하지 않느냐,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에 달렸을 뿐입니다.

무엇으로 이를 말하겠습니까. 무릇 아름다운 옥과 밝은 구슬, 공작과 물총새와 무소와 코끼리, 대완의 말과 서쪽 나라의 개는 더러 발이 없고 더러 정이 없으며 여덟 거친 땅 밖에서 나서 길이 만 리 밖으로 아득한데도, 거듭 통역하여 조공으로 들어와 길에 끊이지 않는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대개 중국이 좋아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벼슬하는 이는 임금의 영화를 품고 임금의 녹을 먹으니, 의로움으로 이끌면 장차 어디에 이르지 못하겠습니까.

신이 생각하건대 그와 더불어 효도를 하면 곧 증삼과 자건과 같아지게 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충성을 하면 곧 용봉과 비간과 같아지게 할 수 있으며, 그와 더불어 믿음을 하면 곧 미생과 전금과 같아지게 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청렴을 하면 곧 백이와 숙제와 같아지게 할 수 있습니다.

然而今之群臣,罕能貞白卓異者,蓋求之不切,勵之未精故也。若勖之以公忠,期之以遠大,各有職分,得行其道。貴則觀其所舉,富則觀其所養,居則觀其所好,習則觀其所言,窮則觀其所不受,賤則觀其所不為。因其材以取之,審其能以任之,用其所長,揜其所短。進之以六正,戒之以六邪,則不嚴而自勵,不勸而自勉矣。故《說苑》曰:「人臣之行,有六正六邪。行六正則榮,犯六邪則辱。何謂六正?一曰,萌芽未動,形兆未見,昭然獨見存亡之機,得失之要,預禁乎未然之前,使主超然立乎顯榮之處,如此者,聖臣也。二曰,虛心盡意,日進善道,勉主以禮義,諭主以長策,將順其美,匡救其惡,如此者,良臣也。三曰,夙興夜寐,進賢不懈,數稱往古之行事,以厲主意,如此者,忠臣也。四曰,明察成敗,早防而救之,塞其間,絕其源,轉禍以為福,使君終以無憂,如此者,智臣也。五曰,守文奉法,任官職事,不受贈遺,辭祿讓賜,飲食節儉,如此者,貞臣也。六曰,家國昏亂,所為不諛,敢犯主之嚴顏,面言主之過失,如此者,直臣也。是謂六正。何謂六邪?一曰,安官食祿,不務公事,與代浮沈,左右觀望,如此者,具臣也。二曰,主所言皆曰善,主所為皆曰可,隱而求主之所好而進之,以快主之耳目,偷合茍容,與主為樂,不顧其後害,如此者,諛臣也。三曰,內實險诐,外貌小謹,巧言令色,妒善嫉賢,所欲進,則明其美、隱其惡,所欲退,則明其過、匿其美,使主賞罰不當,號令不行,如此者,奸臣也。四曰,智足以飾非,辯足以行說,內離骨肉之親,外構朝廷之亂,如此者,讒臣也。五曰,專權擅勢,以輕為重,私門成黨,以富其家,擅矯主命,以自貴顯,如此者,賊臣也。六曰,諂主以佞邪,陷主於不義,朋黨比周,以蔽主明,使白黑無別,是非無間,使主惡布於境內,聞於四鄰,如此者,亡國之臣也。是謂六邪。賢臣處六正之道,不行六邪之術,故上安而下治。生則見樂,死則見思,此人臣之術也。」《禮記》曰:「權衡誠懸,不可欺以輕重。繩墨誠陳,不可欺以曲直。規矩誠設,不可欺以方圓。君子審禮,不可誣以奸詐。」然則臣之情偽,知之不難矣。又設禮以待之,執法以御之,為善者蒙賞,為惡者受罰,安敢不企及乎?安敢不盡力乎?

그러나 지금의 뭇 신하 가운데 곧고 깨끗하여 뛰어난 이가 드문 것은, 대개 구하기를 간절히 하지 않고 힘쓰게 하기를 정밀히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만약 공정함과 충성으로 힘쓰게 하고 멀고 큰 것으로 기약하며 저마다 직분이 있어 그 도를 행할 수 있게 한다면 될 것입니다.

귀하면 그 천거하는 바를 보고, 넉넉하면 그 기르는 바를 보고, 한가히 있으면 그 좋아하는 바를 보고, 익숙해지면 그 말하는 바를 보고, 궁하면 그 받지 않는 바를 보고, 천하면 그 하지 않는 바를 봅니다. 그 재목을 따라 취하고 그 능함을 살펴 맡기며, 그 긴 바를 쓰고 그 짧은 바를 가려 줍니다. 여섯 가지 바름으로 나아가게 하고 여섯 가지 그릇됨으로 경계하면, 곧 엄하게 하지 않아도 스스로 힘쓰고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애씁니다.

그러므로 『설원』에 이르기를 「신하의 행실에 여섯 가지 바름과 여섯 가지 그릇됨이 있다. 여섯 가지 바름을 행하면 영화롭고 여섯 가지 그릇됨을 범하면 욕되다.

무엇을 여섯 가지 바름이라 하는가. 첫째, 싹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조짐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는데 밝게 홀로 살아남고 망하는 낌새와 얻고 잃는 요긴함을 보아, 아직 그러하기 전에 미리 막아 임금으로 하여금 뛰어나게 드러나고 영화로운 자리에 서게 하는 이, 이런 이가 성스러운 신하다. 둘째, 마음을 비우고 뜻을 다하여 날마다 착한 도로 나아가게 하고, 임금을 예와 의로움으로 힘쓰게 하며 긴 계책으로 깨우치고, 그 아름다움을 좇아 순히 하고 그 모짊을 바로잡아 건지는 이, 이런 이가 좋은 신하다. 셋째,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어진 이를 나아가게 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여러 번 지난 옛일을 일컬어 임금의 뜻을 다잡는 이, 이런 이가 충성된 신하다. 넷째, 이룸과 무너짐을 밝게 살펴 일찍 막고 건지며, 그 틈을 메우고 그 근원을 끊어 재앙을 돌려 복으로 삼아 임금으로 하여금 끝내 걱정이 없게 하는 이, 이런 이가 슬기로운 신하다. 다섯째, 글을 지키고 법을 받들며 벼슬의 일을 맡되 보내오는 것을 받지 않고 녹을 사양하고 내리는 것을 물리치며 마시고 먹기를 아껴 검소한 이, 이런 이가 곧은 신하다. 여섯째, 집과 나라가 어둡고 어지러울 때 하는 바에 아첨하지 않고, 감히 임금의 엄한 낯을 범하여 낯을 맞대고 임금의 허물을 말하는 이, 이런 이가 곧은 신하다. 이것을 여섯 가지 바름이라 한다.

무엇을 여섯 가지 그릇됨이라 하는가. 첫째, 벼슬에 편안히 있고 녹을 먹으면서 공무에 힘쓰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뜨고 가라앉으며 좌우를 살펴 눈치만 보는 이, 이런 이가 자리만 채우는 신하다. 둘째, 임금이 말하는 바를 다 좋다 하고 임금이 하는 바를 다 옳다 하며, 몰래 임금이 좋아하는 바를 구하여 바쳐 임금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하고, 구차히 맞추고 구차히 받아들여져 임금과 더불어 즐거워하면서 그 뒤의 해로움을 돌아보지 않는 이, 이런 이가 아첨하는 신하다. 셋째, 안으로는 실로 음험하면서 겉모습은 조금 삼가고, 말을 교묘히 하고 낯빛을 꾸미며 착한 이를 시새우고 어진 이를 미워하여, 나아가게 하고 싶으면 곧 그 아름다움을 밝히고 그 모짊을 숨기며, 물러나게 하고 싶으면 곧 그 허물을 밝히고 그 아름다움을 감추어, 임금으로 하여금 상과 벌이 마땅하지 않고 호령이 행해지지 않게 하는 이, 이런 이가 간사한 신하다. 넷째, 슬기가 그름을 꾸미기에 넉넉하고 말재주가 달래기를 행하기에 넉넉하여, 안으로는 골육의 친함을 떼어 놓고 밖으로는 조정의 어지러움을 얽는 이, 이런 이가 헐뜯는 신하다. 다섯째, 권세를 오로지하고 위세를 마음대로 하여 가벼운 것을 무겁다 하고, 사삿집이 무리를 이루어 그 집을 넉넉하게 하며, 마음대로 임금의 명을 거짓 꾸며 스스로 귀하고 드러나게 하는 이, 이런 이가 도적 같은 신하다. 여섯째, 간사하고 그릇된 것으로 임금에게 아첨하여 임금을 의롭지 못한 데 빠뜨리고, 무리를 지어 두루 붙어 임금의 밝음을 가리며, 흰 것과 검은 것에 가름이 없고 옳고 그름에 틈이 없게 하여, 임금의 모짊이 나라 안에 퍼지고 사방 이웃에 들리게 하는 이, 이런 이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신하다. 이것을 여섯 가지 그릇됨이라 한다.

어진 신하는 여섯 가지 바름의 도에 처하고 여섯 가지 그릇됨의 술책을 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가 편안하고 아래가 다스려진다. 살아서는 즐거움을 보고 죽어서는 그리움을 받으니 이것이 신하의 술법이다」 하였습니다.

『예기』에 이르기를 「저울을 참으로 달아 두면 가볍고 무거움으로 속일 수 없고, 먹줄을 참으로 벌여 두면 굽고 곧음으로 속일 수 없으며, 그림쇠와 곱자를 참으로 베풀어 두면 모나고 둥근 것으로 속일 수 없다. 군자가 예를 살피면 간사함과 속임으로 무고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한즉 신하의 참과 거짓을 아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또 예를 베풀어 그들을 대접하고 법을 잡아 그들을 부리며, 착한 일을 하는 이는 상을 입고 모진 일을 하는 이는 벌을 받게 한다면, 어찌 감히 미치기를 바라지 않겠으며 어찌 감히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國家思欲進忠良,退不肖,十有餘載矣,徒聞其語,不見其人,何哉?蓋言之是也,行之非也。言之是,則出乎公道,行之非,則涉乎邪徑。是非相亂,好惡相攻。所愛雖有罪,不及於刑。所惡雖無辜,不免於罰。此所謂愛之欲其生,惡之欲其死者也。或以小惡棄大善,或以小過忘大功。此所謂「君之賞不可以無功求,君之罰不可以有罪免」者也。賞不以勸善,罰不以懲惡,而望邪正不惑,其可得乎?若賞不遺疏遠,罰不阿親貴,以公平為規矩,以仁義為準繩,考事以正其名,循名以求其實,則邪正莫隱,善惡自分。然後取其實,不尚其華,處其厚,不居其薄,則不言而化,期月而可知矣!若徒愛美錦,而不為民擇官。有至公之言,無至公之實,愛而不知其惡,憎而遂忘其善。徇私情以近邪佞,背公道而遠忠良,則雖夙夜不怠,勞神苦思,將求至理,不可得也。

나라가 충성되고 좋은 이를 나아가게 하고 못난 이를 물리치려 생각한 지 열 해 남짓인데, 다만 그 말만 들리고 그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어찌해서입니까. 대개 말하는 것은 옳으나 행하는 것이 그르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것이 옳으면 곧 공정한 도에서 나오고, 행하는 것이 그르면 곧 그릇된 샛길로 건너갑니다. 옳고 그름이 서로 어지럽고 좋아함과 미워함이 서로 칩니다. 사랑하는 이는 비록 죄가 있어도 형벌에 미치지 않고, 미워하는 이는 비록 죄가 없어도 벌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면 그가 죽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혹은 작은 모짊으로 큰 착함을 버리고 혹은 작은 허물로 큰 공을 잊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임금의 상은 공 없이 구할 수 없고 임금의 벌은 죄가 있으면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으로 착함을 권하지 않고 벌로 모짊을 징계하지 않으면서 그릇됨과 바름에 미혹되지 않기를 바란들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상이 멀고 성근 이를 빠뜨리지 않고 벌이 가깝고 귀한 이에게 아첨하지 않으며, 공평함을 그림쇠와 곱자로 삼고 어짊과 의로움을 먹줄로 삼아, 일을 살펴 그 이름을 바로잡고 이름을 좇아 그 실상을 구한다면, 곧 그릇됨과 바름이 숨지 못하고 착함과 모짊이 절로 갈립니다. 그런 뒤에 그 실상을 취하고 그 꽃을 높이지 않으며, 그 두터운 데 처하고 그 엷은 데 있지 않으면, 곧 말하지 않아도 되어 가고 한 달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한갓 아름다운 비단만 아끼고 백성을 위해 벼슬아치를 고르지 않는다면, 지극히 공정한 말은 있어도 지극히 공정한 실상이 없고, 사랑하여 그 모짊을 알지 못하고 미워하여 마침내 그 착함을 잊는 것입니다. 사사로운 정을 좇아 간사하고 아첨하는 이를 가까이하고 공정한 도를 등지고 충성되고 좋은 이를 멀리한다면, 비록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게으르지 않고 정신을 수고롭게 하며 애써 생각하여 지극한 다스림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습니다.

書奏,甚嘉納之。

글이 아뢰어지자 몹시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다.

貞觀二十一年,太宗在翠微宮,授司農卿李緯戶部尚書。房玄齡是時留守京城。會有自京師來者,太宗問曰:「玄齡聞李緯拜尚書,如何?」對曰:「但云『李緯大好髭須』,更無他語。」由是改授洛州刺史。

정관 이십일 년에 태종이 취미궁에 있으면서 사농경 이위를 호부상서로 삼았다. 방현령은 그때 서울에 남아 지키고 있었다. 마침 서울에서 온 이가 있어 태종이 물었다.

「현령이 이위가 상서에 임명되었다는 것을 듣고 어떠하던가?」

대답하였다.

「다만 『이위는 수염이 아주 좋다』 하고 다시 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낙주자사로 고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