封建第八
貞觀元年,封中書令房玄齡為邗國公,兵部尚書杜如晦為蔡國公,吏部尚書長孫無忌為齊國公,並為第一等,食邑實封一千三百戶。皇從父淮安王神通上言:「義旗初起,臣率兵先至,今玄齡等刀筆之人,功居第一,臣竊不服。」太宗曰:「國家大事,惟賞與罰。賞當其勞,無功者自退。罰當其罪,為惡者咸懼。則知賞罰不可輕行也。今計勛行賞,玄齡等有籌謀帷幄,畫定社稷之功,所以漢之蕭何,雖無汗馬,指蹤推轂,故得功居第一。叔父於國至親,誠無愛惜,但以不可緣私濫與勛臣同賞矣!」由是諸功臣自相謂曰:「陛下以至公,賞不私其親,吾屬何可妄訴。」初,高祖舉宗正籍,弟侄、再從、三從孩童已上封王者數十人。至是,太宗謂群臣曰:「自兩漢已降,惟封子及兄弟,其疏遠者,非有大功,如漢之賈、澤,並不得受封。若一切封王,多給力役,乃至勞苦萬姓,以養已之親屬。」於是宗室先封郡王其間無功者,皆降為縣公。
정관 원년에 중서령 방현령을 한국공으로, 병부상서 두여회를 채국공으로, 이부상서 장손무기를 제국공으로 봉하여 아울러 첫째 등급으로 삼고 식읍 실봉 천삼백 호를 주었다. 임금의 종숙부 회안왕 이신통이 아뢰었다.
「의로운 깃발이 처음 일어났을 때 신이 군사를 이끌고 먼저 이르렀습니다. 이제 현령 등 붓과 칼을 쥔 사람들이 공이 첫째에 있으니 신은 가만히 엎드릴 수 없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나라의 큰일은 오직 상과 벌이다. 상이 그 수고에 마땅하면 공 없는 이가 절로 물러나고, 벌이 그 죄에 마땅하면 모진 일을 하는 이가 다 두려워한다. 그러니 상과 벌은 가벼이 행할 수 없음을 안다. 이제 공훈을 셈하여 상을 행하매 현령 등은 장막 안에서 꾀를 내고 사직을 그어 정한 공이 있다. 그래서 한나라의 소하가 비록 땀 흘린 말이 없었으나 자취를 가리키고 수레를 밀어 준 것으로 공이 첫째에 있게 된 것이다. 숙부는 나라에 지극히 가까운 사이라 참으로 아끼는 바가 없으나, 다만 사사로움에 기대어 함부로 공훈 있는 신하와 같은 상을 줄 수 없을 뿐이다.」
이로 말미암아 여러 공신이 스스로 서로 말하였다.
「폐하께서 지극한 공정함으로 상을 주시고 그 친척을 사사로이 하지 않으시니 우리들이 어찌 함부로 하소연하겠는가.」
처음에 고조가 종실의 문서를 들어 아우와 조카와 재종과 삼종의 어린아이 이상으로 왕에 봉한 이가 수십 사람이었다. 이때에 이르러 태종이 뭇 신하에게 말하였다.
「두 한나라 이래로 오직 아들과 형제만 봉하였고, 그 멀고 성근 이는 큰 공이 있지 않으면 한나라의 유가와 유택처럼 아울러 봉함을 받지 못하였다. 만약 모두 왕으로 봉하면 힘든 부역을 많이 주게 되고 마침내 온 백성을 수고롭고 괴롭게 하여 제 친척을 기르는 데 이른다.」
이에 종실로서 앞서 군왕에 봉해진 이 가운데 공 없는 이는 다 낮추어 현공으로 삼았다.
貞觀十一年,太宗以周封子弟,八百餘年,秦罷諸侯,二世而滅,呂後欲危劉氏,終賴宗室獲安,封建親賢,當是子孫長久之道。乃定制,以子弟荊州都督荊王元景、安州都督吳王恪等二十一人,又以功臣司空趙州刺史長孫無忌、尚書左僕射宋州刺史房玄齡等一十四人,並為世襲刺史。禮部侍郎李百藥奏論駮世封事曰:
정관 십일 년에 태종은 주나라가 자제를 봉하여 팔백 남짓 해를 갔고 진나라는 제후를 없애 이 대에 망하였으며 여후가 유씨를 위태롭게 하려 하였을 때 끝내 종실에 힘입어 편안함을 얻은 것을 두고, 가까운 이와 어진 이를 봉하여 세우는 것이 마땅히 자손이 길고 오래갈 도라 여겼다. 이에 제도를 정하여 자제인 형주도독 형왕 이원경과 안주도독 오왕 이각 등 스물한 사람과, 또 공신인 사공 조주자사 장손무기와 상서좌복야 송주자사 방현령 등 열네 사람을 아울러 대대로 물려받는 자사로 삼았다. 예부시랑 이백약이 대대로 봉하는 일을 논박하여 아뢰었다.
臣聞經國庇民,王者之常制;尊主安上,人情之大方。思聞理定之規,以弘長世之業,萬古不易,百慮同歸。然命歷有餘促之殊,邦家有理亂之異。遐觀載籍,論之詳矣。咸云周過其數,秦不及期,存亡之理,在於郡國。周氏以鑒夏、殷之長久,遵皇王之並建,維城磐石,深根固本,雖王綱弛廢,而枝幹相持,故使逆節不生,宗祀不絕。秦氏背師古之訓,棄先王之道,踐華恃險,罷侯置守,子弟無尺土之邑,兆庶罕共治之憂,故一夫號呼而七廟隳圮。
신이 듣건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덮어 주는 것은 왕 된 이의 떳떳한 제도요, 임금을 높이고 위를 편안케 하는 것은 사람 마음의 큰 방향입니다. 이치를 정하는 법도를 듣고 길이 갈 업을 넓히려는 것은 만고에 바뀌지 않고 온갖 생각이 한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하늘이 준 햇수에 넉넉함과 촉박함의 다름이 있고 나라에 다스림과 어지러움의 다름이 있습니다.
멀리 옛 기록을 보건대 이를 논한 것이 자세합니다. 다들 이르기를 주나라는 그 셈한 햇수를 넘겼고 진나라는 그 기약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살아남고 망하는 이치가 군현이냐 봉국이냐에 있다 합니다. 주씨는 하나라와 은나라가 길고 오래갔음을 거울로 삼아 임금들이 아울러 세운 법을 좇아, 성을 얽고 반석을 삼아 뿌리를 깊이 하고 밑동을 굳혔습니다. 그래서 왕의 벼리가 느슨해지고 무너져도 가지와 줄기가 서로 버텨 반역이 생기지 않고 종묘의 제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진씨는 옛것을 스승 삼는 가르침을 등지고 앞선 왕의 도를 버려, 화산을 딛고 험함을 믿어 제후를 없애고 수령을 두었습니다. 자제에게 한 자의 땅도 없고 뭇 백성에게 함께 다스린다는 걱정이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내가 소리쳐 부르자 일곱 사당이 무너졌습니다.
臣以為自古皇王,君臨宇內,莫不受命上玄,冊名帝錄,締構遇興王之運,殷憂屬啟聖之期。雖魏武攜養之資,漢高徒役之賤,非止意有覬覦,推之亦不能去也。若其獄訟不歸,菁華已竭,雖帝堯之光被四表,大舜之上齊七政,非止情存揖讓,守之亦不可焉!以放勛、重華之德,尚不能克昌厥後。是知祚之長短,必在於天時,政或興衰,有關於人事。隆周卜世三十,卜年七百,雖淪胥之道斯極,而文、武之器尚存,斯龜鼎之祚,已懸定於杳冥也。至使南征不返,東遷避逼,禋祀闕如,郊畿不守,此乃陵夷之漸,有累於封建焉。暴秦運距閏餘,數終百六。受命之主,德異禹、湯,繼世之君,才非啟、誦。借使李斯、王綰之輩盛開四履,將閭、子嬰之徒俱啟千乘,豈能逆帝子之勃興,抗龍顏之基命者也!
신이 생각하건대 예로부터 임금이 천하에 임함에 위 하늘에게 명을 받고 제왕의 기록에 이름이 적히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얽어 세움은 왕이 일어나는 운수를 만나야 하고 깊은 걱정은 성인이 열리는 때에 붙습니다. 비록 위 무제가 데려다 기른 집안의 밑천이고 한 고조가 부역하던 천한 몸이었으나, 다만 뜻에 넘겨다봄이 있었을 뿐 아니라 밀어 주어도 또한 물러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옥송이 돌아오지 않고 꽃다움이 이미 다하였다면, 비록 요임금의 빛이 사방 밖까지 덮이고 순임금의 밝음이 위로 일곱 별을 가지런히 하였더라도, 다만 정에 사양함이 있었을 뿐 아니라 지키려 해도 또한 지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방훈과 중화의 덕으로도 오히려 그 뒤를 창성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로써 복의 길고 짧음은 반드시 하늘의 때에 있고 정사의 흥함과 쇠함은 사람의 일에 걸림을 압니다.
융성하던 주나라는 대를 서른, 햇수를 칠백으로 점쳤습니다. 비록 서로 빠져드는 길이 다하였어도 문왕과 무왕의 그릇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 이 거북과 솥의 복은 이미 아득한 데서 정해져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남쪽으로 정벌 나가 돌아오지 못하고 동쪽으로 옮겨 핍박을 피하며 제사가 빠지고 서울 언저리를 지키지 못하는 데 이르렀으니, 이는 곧 차츰 무너져 내린 것이니 봉건에 매인 바가 있습니다.
사나운 진나라는 운수가 윤달 남짓에 그치고 셈이 백여섯에서 끝났습니다. 명을 받은 임금은 덕이 우임금과 탕임금과 달랐고 대를 이은 임금은 재주가 계와 송이 아니었습니다. 설사 이사와 왕관의 무리가 사방 땅을 크게 열고 장려와 자영의 무리가 다 천 대의 수레를 열었더라도, 어찌 황제 아들의 벌떡 일어남을 거스르고 용의 얼굴이 터를 받은 명에 맞설 수 있었겠습니까.
然則得失成敗,各有由焉。而著述之家,多守常轍,莫不情忘今古,理蔽澆淳,欲以百王之季,行三代之法,天下五服之內,盡封諸侯,王畿千里之間,俱為采地。是則以結繩之化行虞、夏之朝,用象刑之典治劉、曹之末,紀綱弛紊,斷可知焉。鍥船求劍,未見其可;膠柱成文,彌多所惑。徒知問鼎請隧,有懼霸王之師;白馬素車,無復藩維之援。不悟望夷之釁,未堪羿、浞之災;既罹高貴之殃,寧異申、繒之酷。此乃欽明昏亂,自革安危,固非守宰公侯,以成興廢。且數世之後,王室浸微,始自藩屏,化為仇敵。家殊俗,國異政,強陵弱,眾暴寡,疆場彼此,幹戈侵伐。狐駘之役,女子盡髽;崤陵之師,只輪不反。斯蓋略舉一隅,其餘不可勝數。陸士衡方規規然云:「嗣王委其九鼎,兇族據其天邑,天下晏然,以治待亂。」何斯言之謬也!而設官分職,任賢使能,以循良之才,膺共治之寄,刺舉分竹,何世無人?至使地或呈祥,天不愛寶,民稱父母,政比神明。曹元首方區區然稱:「與人共其樂者人必憂其憂,與人同其安者人必拯其危。」豈容以為侯伯則同其安危,任之牧宰則殊其憂樂?何斯言之妄也!
그러한즉 얻고 잃음과 이루고 무너짐에는 저마다 말미암은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글 짓는 이들은 흔히 늘 가던 바퀴자국만 지켜, 정으로는 옛날과 지금을 잊고 이치로는 얄팍함과 도타움에 가리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백 왕이 지나간 끝에 삼대의 법을 행하고자 하여, 천하 다섯 복 안을 다 제후로 봉하고 왕의 서울 천 리 사이를 모두 채지로 삼으려 합니다. 이는 곧 노끈 매던 시절의 다스림으로 우나라와 하나라의 조정을 행하고, 그림 옷으로 벌하던 법으로 유씨와 조씨의 끝 세상을 다스리려는 것이니, 벼리가 느슨해지고 어지러워질 것을 딱 잘라 알 수 있습니다.
배에 새겨 칼을 찾는 일은 옳음을 보지 못하겠고, 기둥을 붙여 놓고 글을 이루는 일은 미혹만 더합니다. 한갓 솥의 무게를 묻고 길 뚫기를 청하는 데 패왕의 군사를 두려워함이 있음만 알고, 흰 말과 흰 수레에 다시 울타리가 되어 줄 도움이 없음만 압니다. 망이궁의 틈이 예와 착의 재앙을 감당하지 못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고귀향공의 재앙을 만난 것이 어찌 신후와 증나라의 모짊과 다르겠습니까. 이는 곧 임금이 밝은가 어두운가에서 스스로 편안함과 위태로움이 갈리는 것이지, 참으로 수령이냐 제후냐로 흥하고 폐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몇 대 뒤에는 왕실이 차츰 미약해져 처음에는 울타리였던 이들이 바뀌어 원수가 됩니다. 집마다 풍속이 다르고 나라마다 정사가 다르며, 강한 이가 약한 이를 업신여기고 무리가 적은 이를 사납게 굴며, 이쪽저쪽 지경에서 창칼로 서로 칩니다. 호태의 싸움에서는 여자들이 다 머리를 깎아 상투를 틀었고, 효산의 군사는 수레바퀴 하나도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한 모퉁이만 들었을 뿐 그 나머지는 이루 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육사형은 바야흐로 딱하게도 이르기를 「대를 이은 왕이 그 아홉 솥을 버리고 흉악한 무리가 그 하늘의 서울을 차지하였으나, 천하가 편안하여 다스림으로 어지러움을 기다렸다」 하였으니, 어찌 이 말이 이리도 그릇되었습니까.
또 벼슬을 베풀고 직분을 나누어 어진 이에게 맡기고 능한 이를 부려, 좇아 어진 재주로 함께 다스리는 소임을 받게 하고 자사와 태수를 나누어 세우니, 어느 시대에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땅이 더러 상서로움을 드러내고 하늘이 보배를 아끼지 않으며, 백성이 부모라 일컫고 정사가 신명에 견주어지는 데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조원수는 바야흐로 구구하게 일컫기를 「남과 그 즐거움을 함께하는 이는 남이 반드시 그 걱정을 걱정해 주고, 남과 그 편안함을 함께하는 이는 남이 반드시 그 위태로움을 건져 준다」 하였습니다. 어찌 제후와 백작이 되면 그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함께하고, 수령을 맡기면 그 걱정과 즐거움이 달라진다 하겠습니까. 어찌 이 말이 이리도 망령됩니까.
封君列國,藉其門資,忘其先業之艱難,輕其自然之崇貴,莫不世增淫虐,代益驕侈。離宮別館,切漢淩雲,或刑人力而將盡,或召諸侯而共樂。陳靈則君臣悖禮,共侮徵舒;衛宣則父子聚麀,終誅壽、朔。乃云為己思治,豈若是乎?內外群官,選自朝廷,擢士庶以任之,澄水鏡以鑒之,年勞優其階品,考績明其黜陟。進取事切,砥礪情深,或俸祿不入私門,妻子不之官舍。班條之貴,食不舉火;剖符之重,居惟飲水。南陽太守,弊布裹身;萊蕪縣長,凝塵生甑。專云為利圖物,何其爽歟!總而言之,爵非世及,用賢之路斯廣;民無定主,附下之情不固。此乃愚知所辨,安可惑哉?至如滅國弒君,亂常幹紀,春秋二百年間,略無寧歲。次睢咸秩,遂用玉帛之君;魯道有蕩,每等衣裳之會。縱使西漢哀、平之際,東洛桓、靈之時,下吏淫暴,必不至此。為政之理,可以一言蔽焉。
나라에 봉해진 임금들은 그 문벌의 밑천에 기대어 앞선 이의 업이 어려웠음을 잊고 절로 얻은 높음과 귀함을 가벼이 여겨, 대마다 음란함과 사나움을 더하고 대마다 교만과 사치를 더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딴 궁궐과 딴 집이 하늘에 닿고 구름을 넘어, 혹은 사람의 힘을 다 부려 없애고 혹은 제후를 불러 함께 즐깁니다. 진 영공은 임금과 신하가 예를 어그러뜨려 함께 하징서를 업신여겼고, 위 선공은 아비와 아들이 같은 여자를 취하여 끝내 급수와 삭을 죽였습니다. 이러고서 제 몸을 위해 다스림을 생각한다 하니 어찌 이와 같겠습니까.
안팎의 뭇 벼슬아치는 조정에서 뽑으니, 선비와 백성에서 뽑아 맡기고 맑은 거울로 비추어 살피며, 햇수와 수고로 그 품계를 넉넉히 하고 공적을 살펴 그 물리고 올림을 밝힙니다. 나아가 취하려는 일이 간절하고 갈고닦는 정이 깊어, 혹은 녹이 사삿집에 들어가지 않고 아내와 자식이 관사에 가지 않습니다. 조목을 벌여 놓은 귀한 자리에서도 밥에 불을 때지 못하고, 부절을 쪼갠 무거운 자리에서도 사는 것이 오직 물 마시는 것뿐입니다. 남양태수는 해진 베로 몸을 감쌌고 내무현장은 엉긴 먼지가 시루에 생겼습니다. 오로지 이로움을 위해 물건을 꾀한다 하니 어찌 이리도 어긋납니까.
통틀어 말하면, 작위가 대대로 미치지 않으면 어진 이를 쓰는 길이 넓어지고, 백성에게 정해진 주인이 없으면 아래에 붙는 정이 굳지 않습니다. 이는 곧 어리석은 이와 슬기로운 이가 함께 가릴 수 있는 것이니 어찌 미혹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를 없애고 임금을 죽이며 떳떳함을 어지럽히고 벼리를 범한 일 같은 것은 춘추 이백 년 사이에 거의 편안한 해가 없었습니다. 차수의 제사에서는 마침내 옥과 비단을 든 임금을 희생으로 썼고, 노나라의 도가 흔들려 늘 옷자락 스치는 모임 따위나 하였습니다. 설사 서한의 애제와 평제 즈음이나 동락의 환제와 영제 때라 하더라도 아래 벼슬아치의 음란함과 사나움이 반드시 여기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정사를 하는 이치는 한마디로 덮을 수 있습니다.
伏惟陛下握紀御天,膺期啟聖,救億兆之焚溺,掃氛祲於寰區。創業垂統,配二儀以立德;發號施令,妙萬物而為言。獨照神衷,永懷前古。將復五等而修舊制,建萬國以親諸侯。竊以漢、魏以還,餘風之弊未盡;勛華既往,至公之道斯乖。況晉氏失馭,宇縣崩離;後魏乘時,華夷雜處。重以關河分阻,吳、楚懸隔,習文者學長短從橫之術,習武者盡幹戈戰爭之心,畢為狙詐之階,彌長澆浮之俗。開皇在運,因藉外家。驅御群英,任雄猜之數;坐移明運,非克定之功。年逾二紀,民不見德。及大業嗣立,世道交喪,一時人物,掃地將盡。雖天縱神武,削平寇虐,兵威不息,勞止未康。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께서는 벼리를 잡아 하늘을 부리시고 때에 응하여 성스러움을 여시어, 억조 백성을 불과 물에서 건지고 사나운 기운을 온 누리에서 쓸어 내셨습니다. 업을 열고 큰 줄기를 드리워 두 거동에 맞추어 덕을 세우시고, 호령을 내시매 만물을 오묘하게 하여 말씀으로 삼으셨습니다. 홀로 신령한 속마음으로 비추어 길이 옛날을 그리시고, 장차 다섯 등급을 되살려 옛 제도를 닦고 만국을 세워 제후를 가까이하려 하십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한나라와 위나라 이래로 남은 풍속의 폐단이 아직 다하지 않았고, 요임금과 순임금이 이미 지나간 뒤로 지극히 공정한 도가 어그러졌습니다. 하물며 진씨가 다스림을 잃어 온 나라가 무너져 흩어지고, 후위가 때를 타서 중화와 오랑캐가 섞여 살았습니다. 거듭 관과 하수로 갈려 막히고 오나라와 초나라가 아득히 떨어져, 글을 익힌 이는 짧고 긴 종횡의 술수를 배우고 무예를 익힌 이는 창칼로 싸우는 마음만 다하니, 다 속임수의 계단이 되고 얄팍하고 뜬 풍속을 더욱 자라게 하였습니다.
개황 연간이 운수를 타서 외척의 집에 기대었습니다. 뭇 영웅을 몰아 부리는 데 사납고 시새우는 술수를 쓰고, 앉아서 밝은 운수를 옮긴 것이지 이겨 평정한 공이 아니었습니다. 햇수가 두 기를 넘도록 백성이 덕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대업 연간에 이르러 대를 이으매 세상의 도가 아울러 무너져 한때의 인물이 땅을 쓸 듯 다 없어졌습니다. 비록 하늘이 내신 신령한 무예로 도적의 사나움을 깎아 평정하셨으나, 군사의 위세가 그치지 않아 수고로움이 아직 편안해지지 못하였습니다.
自陛下仰順聖慈,嗣膺寶歷,情深致治,綜覈前王。雖至道無名,言象所紀,略陳梗概,實所庶幾。愛敬烝烝,勞而不倦,大舜之孝也。訪安內豎,親嘗御膳,文王之德也。每憲司讞罪,尚書奏獄,大小必察,枉直咸舉,以斷趾之法,易大辟之刑,仁心隱惻,貫徹幽顯,大禹之泣辜也。正色直言,虛心受納,不簡鄙訥,無棄芻蕘,帝堯之求諫也。弘獎名教,勸勵學徒,既擢明經於青紫,將升碩儒於卿相,聖人之善誘也。群臣以宮中暑濕,寢饍或乖,請移御高明,營一小閣。遂惜十家之產,竟抑子來之願,不吝陰陽之感,以安卑陋之居。頃歲霜儉,普天饑饉。喪亂甫爾,倉廩空虛。聖情矜湣,勤加賑恤,竟無一人流離道路,猶且食惟藜藿,樂徹簨虡。言必淒動,貌成臒瘦.公旦喜於重譯。文命矜其即敘.陛下每見四夷款附,萬里歸仁,必退思進省,凝神動慮,恐妄勞中國,以求遠方,不藉萬古之英聲,以存一時之茂實。心切憂勞,志絕遊幸,每旦視朝,聽受無倦,智周於萬物,道濟於天下。罷朝之後,引進名臣,討論是非,備盡肝膈,惟及政事,更無異辭。才日昃,必命才學之士,賜以清閑,高談典籍,雜以文詠,間以玄言,乙夜忘疲,中宵不寐。此之四道,獨邁往初,斯實生民以來,一人而已。弘茲風化,昭示四方,信可以期月之間,彌綸天壤。而淳粹尚阻,浮詭未移,此由習之久,難以卒變。請待斫雕成器,以質代文,刑措之教一行,登封之禮云畢,然後定疆理之制,議山河之賞,未為晚焉。《易》稱:「天地盈虛,與時消息,況於人乎?」美哉斯言也。
폐하께서 우러러 성스러운 자애를 좇아 보배로운 자리를 이어 받으신 뒤로, 정이 다스림에 이르기를 깊이 하시고 앞선 왕들을 모아 따져 보셨습니다. 비록 지극한 도는 이름이 없어 말과 모양으로 적을 바가 아니나, 대략 그 큰 줄기를 아뢰건대 참으로 거의 가까우십니다.
사랑과 공경이 도타워 수고로워도 게으르지 않으시니 순임금의 효도입니다. 안부를 살피러 내시를 보내고 몸소 수라를 맛보시니 문왕의 덕입니다. 헌사가 죄를 아뢰고 상서가 옥사를 아뢸 때마다 크고 작음을 반드시 살펴 굽고 곧음을 다 드시고, 발을 자르는 법으로 목 베는 형벌을 바꾸시어 어진 마음이 숨어 아파하며 그윽한 데와 드러난 데를 꿰뚫으시니 우임금이 죄인을 보고 우신 일입니다. 낯빛을 바르게 하여 곧게 말하게 하고 마음을 비워 받아들이시며, 낮고 어눌한 이를 가리지 않고 꼴 베는 이의 말도 버리지 않으시니 요임금이 간언을 구한 일입니다. 이름과 가르침을 크게 기리고 배우는 무리를 권하여 힘쓰게 하시어, 이미 경에 밝은 이를 높은 벼슬에 뽑고 장차 큰 선비를 경상에 올리려 하시니 성인이 잘 이끄는 일입니다.
뭇 신하가 궁중이 덥고 눅눅하여 잠자리와 수라가 더러 어그러지겠다 하여 높고 밝은 데로 옮기시기를 청하며 작은 누각 하나를 지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열 집의 재산을 아끼시어 끝내 아들처럼 달려와 짓겠다는 바람을 누르시고, 그늘과 볕의 다침을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낮고 좁은 거처에 편안히 계셨습니다.
지난 몇 해 서리가 내려 흉년이 들어 온 하늘 아래가 굶주렸습니다. 어지러움이 겨우 그친 참이라 곳간이 텅 비었습니다. 성스러운 정으로 가엾이 여기시어 부지런히 진휼을 더하시니, 마침내 한 사람도 길에 떠도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잡수시는 것은 오직 명아주와 콩잎이요 풍류는 걸이까지 거두셨습니다. 말씀은 반드시 처연히 움직이고 낯빛은 여위셨습니다.
주공은 거듭 통역해 온 것을 기뻐하였고 우임금은 그 차례를 좇음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사방 오랑캐가 정성으로 붙좇고 만 리에서 어짊에 돌아오는 것을 보실 때마다, 반드시 물러나 생각하고 나아가 살피시며 정신을 엉기게 하고 생각을 움직이시어, 함부로 중국을 수고롭게 하여 먼 곳을 구할까 두려워하시고, 만고의 꽃다운 이름에 기대어 한때의 무성한 실속을 두려 하지 않으십니다.
마음은 걱정과 수고에 간절하고 뜻은 놀러 다님을 끊으시어, 아침마다 조회를 보시고 듣고 받으심에 게으르지 않으시니, 슬기가 만물에 두루 미치고 도가 천하를 건집니다. 조회를 파하신 뒤에는 이름난 신하를 이끌어 들여 옳고 그름을 따지시고 속마음을 다 갖추어 오직 정사에만 미치고 다시 다른 말이 없습니다. 해가 기울면 반드시 재주와 학문 있는 선비를 불러 한가한 때를 내리시고, 전적을 높이 이야기하며 글과 시를 섞고 그윽한 말을 끼워, 이경에도 지침을 잊고 한밤중에도 잠들지 않으십니다.
이 네 가지 도는 홀로 지난 옛날을 넘어서니, 이는 참으로 백성이 생겨난 뒤로 한 분뿐입니다. 이 풍속과 가르침을 넓혀 사방에 밝게 보이신다면, 참으로 한 달 사이에 하늘과 땅에 두루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탑고 순수함이 아직 막혀 있고 뜨고 속임이 아직 옮겨지지 않았으니, 이는 익혀 온 지 오래라 갑자기 바꾸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청컨대 새김을 깎아 그릇을 이루고 바탕으로 꾸밈을 대신하기를 기다려, 형벌을 버려두는 가르침이 한번 행해지고 봉선의 예가 끝났다 이르거든, 그런 뒤에 지경을 다스리는 제도를 정하고 산과 하수의 상을 의논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주역』에 일컫기를 「하늘과 땅의 참과 빔도 때와 더불어 사그라지고 자라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하였으니, 아름답습니다, 이 말이여.
中書舍人馬周又上疏曰:
중서사인 마주가 또 상소하였다.
伏見詔書令宗室勛賢作鎮藩部,貽厥子孫,嗣守其政,非有大故,無或黜免。臣竊惟陛下封植之者,誠愛之重之,欲其緒裔承守,與國無疆。可則?以堯、舜之父,猶有朱、均之子?況下此以還,而欲以父取兒,恐失之遠矣。儻有孩童嗣職,萬一驕逸,則兆庶被其殃,而國家受其敗。政欲絕之也,則子文之理猶在;政欲留之也,而欒黡之惡已彰。與其毒害於見存之百姓,則寧使割恩於已亡之一臣,明矣。然則鄉之所謂愛之者,乃適所以傷之也。臣謂宜賦以茅土,疇其戶邑,必有材行,隨器方授,則翰翮非強,亦可以獲免尤累。昔漢光武不任功臣以吏事,所以終全其世者,良由得其術也。願陛下深思其宜,使夫得奉大恩,而子孫終其福祿也。
엎드려 보건대 조서로 종실과 공훈 있는 어진 이를 변방 고을에 진을 치게 하고 그 자손에게 물려주어 대를 이어 그 정사를 지키게 하며, 큰 까닭이 있지 않으면 물리거나 면하는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폐하께서 심어 세우신 것은 참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무겁게 여기시어 그 뒤를 이어 지켜 나라와 함께 끝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요임금과 순임금 같은 아비에게도 오히려 단주와 상균 같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이보다 아래로 내려와서 아비로써 아들을 취하려 하시니 잃음이 멀까 두렵습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직분을 잇고 만에 하나 교만하고 게으르면, 곧 뭇 백성이 그 재앙을 입고 나라가 그 무너짐을 받습니다. 정사로 그를 끊으려 하면 곧 자문의 다스림이 아직 남아 있고, 정사로 그를 두려 하면 곧 난염의 모짊이 이미 드러납니다. 지금 살아 있는 백성에게 독과 해를 끼치기보다는 차라리 이미 죽은 한 신하에게 은혜를 베어 내는 것이 낫다는 것이 밝습니다. 그러한즉 앞서 이른바 사랑한다는 것이 곧 마침 그를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이 이르건대 마땅히 띠와 흙을 나누어 주고 그 호구와 고을을 갚아 주되, 반드시 재주와 행실이 있으면 그릇에 따라 바야흐로 맡기신다면, 곧 깃촉이 굳세지 않더라도 또한 허물과 누를 면할 수 있습니다. 옛날 한 광무제가 공신에게 벼슬아치의 일을 맡기지 않아 끝내 그 대를 온전히 한 것은 참으로 그 방법을 얻은 데서 말미암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그 마땅함을 깊이 생각하시어, 그들이 큰 은혜를 받들고 그 자손이 그 복과 녹을 끝까지 누리게 하소서.
太宗並嘉納其言。於是竟罷子弟及功臣世襲刺史。
태종이 아울러 그 말을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다. 이에 마침내 자제와 공신을 대대로 물려받는 자사로 삼는 일을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