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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子諸王定分第九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4 · 한자 976자 · 낭독 3.9분

「정관정요」 태자와 여러 왕의 분수를 정하다 「太子諸王定分第九」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七年,授吳王恪齊州都督。太宗謂侍臣曰:「父子之情,豈不欲常相見耶!但家國事殊,須出作藩屏。且令其早有定分,絕覬覦之心,我百年後,使其兄弟無危亡之患也。」

정관 칠 년에 오왕 이각에게 제주도독을 주었다.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아비와 아들의 정에 어찌 늘 서로 보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집과 나라의 일이 다르니 모름지기 나가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또 그로 하여금 일찍 정해진 분수가 있게 하여 넘겨다보는 마음을 끊게 하면, 내가 백 년 뒤에 그 형제가 위태롭고 망하는 걱정이 없게 될 것이다.」

貞觀十一年,侍御史馬周上疏曰:「漢、晉以來,諸王皆為樹置失宜,不預立定分,以至於滅亡。人主熟知其然,但溺於私愛,故前車既覆而後車不改轍也。今諸王承寵遇之恩有過厚者,臣之愚慮,不惟慮其恃恩驕矜也。昔魏武帝寵樹陳思,及文帝即位,防守禁閉,有同獄囚,以先帝加恩太多,故嗣王從而畏之也。此則武帝之寵陳思,適所以苦之也。且帝子何患不富貴,身食大國,封戶不少,好衣美食之外,更何所須?而每年別加優賜,會無紀極。俚語曰:『貧不學儉,富不學奢。』言自然也。今陛下以大聖創業,豈惟處置見在子弟而已,當須制長久之法,使萬代遵行。」疏奏,太宗甚嘉之,賜物百段。

정관 십일 년에 시어사 마주가 상소하였다.

「한나라와 진나라 이래로 여러 왕은 다 세워 두기를 마땅함을 잃고 미리 정한 분수를 세우지 않아 멸망에 이르렀습니다. 임금이 그러함을 익히 알면서도 다만 사사로운 사랑에 빠지는 까닭에, 앞 수레가 이미 엎어졌는데도 뒤 수레가 바퀴자국을 고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 왕이 총애와 대접의 은혜를 받는 것이 지나치게 두터운 이가 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걱정은 그들이 은혜를 믿고 교만해질까 걱정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옛날 위 무제가 진사왕을 총애하여 세웠는데 문제가 자리에 오르자 막고 지켜 가두어 옥에 갇힌 죄수와 같게 하였습니다. 앞선 임금이 은혜를 더한 것이 너무 많았으므로 대를 이은 왕이 그를 좇아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는 곧 무제가 진사왕을 총애한 것이 마침 그를 괴롭게 한 것입니다.

또 황제의 아들이 어찌 넉넉하고 귀하지 못할까 걱정하겠습니까. 몸이 큰 나라를 먹고 봉해진 호수가 적지 않으니 좋은 옷과 아름다운 음식 밖에 다시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해마다 따로 넉넉히 내리는 것을 더하여 끝내 끝이 없습니다. 상말에 이르기를 『가난하면 검소함을 배우지 않고 넉넉하면 사치를 배우지 않는다』 하였으니, 절로 그러함을 말한 것입니다.

이제 폐하께서 크게 성스러움으로 업을 여셨으니, 어찌 오직 지금 있는 자제를 처치하는 데 그치겠습니까. 마땅히 길고 오랜 법을 지어 만대에 좇아 행하게 하셔야 합니다.」

상소가 아뢰어지자 태종이 몹시 아름답게 여겨 물건 백 단을 내렸다.

貞觀十三年,諫議大夫褚遂良以每日特給魏王泰府料物,有逾於皇太子,上疏諫曰:「昔聖人制禮,尊嫡卑庶。謂之儲君,道亞霄極,甚為崇重,用物不計,泉貨財帛,與王者共之。庶子體卑,不得為例,所以塞嫌疑之漸,除禍亂之源。而先王必本於人情,然後制法,知有國家,必有嫡庶。然庶子雖愛,不得超越嫡子,正禮特須尊崇。如不能明立定分,遂使當親者疏,當尊者卑,則佞巧之徒,乘機而動,私恩害公,或至亂國。伏惟陛下功超萬古,道冠百王,發施號令,為世作法。一日萬幾或未盡美,臣職諫諍,無容靜默。伏見儲君料物,翻少魏王,朝野見聞,不以為是。《傳》曰:『臣聞愛子教以義方。』忠、孝、恭、儉,義方之謂。昔漢竇太後及景帝並不識義方之理,遂驕恣梁孝王,封四十餘城,苑方三百里,大營宮室,復道彌望,積財鏹巨萬計,出警入蹕,小不得意,發病而死。宣帝亦驕恣淮陽王,幾至於敗,賴其輔以退讓之臣,僅乃獲免。且魏王既新出閤,伏願恒存禮訓,妙擇師傅,示其成敗;既敦之以節儉,又勸之以文學。惟忠惟孝,因而獎之道德齊禮,乃為良器。此所謂聖人之教,不肅而成者也。」太宗深納其言。

정관 십삼 년에 간의대부 저수량이 날마다 위왕 이태의 부에 특별히 주는 물자가 황태자보다 넘는 것을 두고 상소하여 간하였다.

「옛날 성인이 예를 지을 때 적자를 높이고 서자를 낮추었습니다. 저군이라 일컫는 이는 도가 하늘 끝에 버금가 몹시 높고 무거우니, 쓰는 물건을 셈하지 않고 돈과 재물과 비단을 왕 된 이와 함께합니다. 서자는 몸이 낮아 이를 본보기로 삼을 수 없으니, 그로써 혐의의 싹을 막고 재앙과 어지러움의 근원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선 왕은 반드시 사람의 정에 바탕을 둔 뒤에 법을 지었으니, 나라가 있으면 반드시 적자와 서자가 있음을 안 것입니다. 그러나 서자가 비록 사랑스러워도 적자를 뛰어넘을 수 없고 바른 예는 특별히 높이 받들어야 합니다.

만약 정해진 분수를 밝게 세우지 못하여 마침내 가까워야 할 이가 멀어지고 높아야 할 이가 낮아지면, 곧 아첨하고 교묘한 무리가 틈을 타 움직여 사사로운 은혜가 공정함을 해쳐 혹 나라를 어지럽히는 데 이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의 공은 만고를 넘고 도는 백 왕에 으뜸이시어, 호령을 내시면 세상의 법이 됩니다. 하루에 만 가지 정사 가운데 혹 아름다움을 다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신은 직분이 간쟁하는 자리라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엎드려 보건대 저군의 물자가 도리어 위왕보다 적어 조정과 들에서 보고 듣고는 옳다 여기지 않습니다.

『전』에 이르기를 『신이 듣건대 아들을 사랑하거든 의로운 방도로 가르친다』 하였습니다. 충성과 효도와 공경과 검소가 의로운 방도를 이릅니다. 옛날 한나라 두태후와 경제가 아울러 의로운 방도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마침내 양 효왕을 교만하고 방자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십여 성을 봉하고 동산이 사방 삼백 리였으며, 궁실을 크게 지어 겹길이 눈에 가득하고, 쌓은 재물이 거만으로 셈하였으며, 나갈 때 길을 트고 들어올 때 길을 치웠습니다. 그러다 조금 뜻대로 되지 않자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선제 또한 회양왕을 교만하고 방자하게 하여 거의 무너지는 데 이르렀는데, 물러나 사양하는 신하로 돕게 한 데 힘입어 겨우 면할 수 있었습니다.

또 위왕이 이미 새로 궁을 나갔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늘 예의 가르침을 두시고 스승을 오묘하게 골라 그 이룸과 무너짐을 보이소서. 이미 절약과 검소로 도탑게 하시고 또 글과 학문으로 권하시며, 오직 충성과 오직 효도로 인하여 기려 주시어 도덕으로 이끌고 예로 가지런히 하시면 곧 좋은 그릇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성인의 가르침이 엄하게 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태종이 그 말을 깊이 받아들였다.

貞觀十六年,太宗謂侍臣曰:「當今國家何事最急?各為我言之。」尚書右仆射高士廉曰:「養百姓最急。」黃門侍郎劉洎曰:「撫四夷急。」中書侍郎岑文本曰:「《傳》稱:『道之以德,齊之以禮。』由斯而言,禮義為急。」諫議大夫褚遂良曰:「即日四方仰德,不敢為非,但太子、諸王,須有定分,陛下宜為萬代法以遺子孫,此最當今日之急。」太宗曰:「此言是也。朕年將五十,已覺衰怠。既以長子守器東宮,諸弟及庶子數將四十,心常憂慮在此耳。但自古嫡庶無良佐,何嘗不傾敗家國。公等為朕搜訪賢德,以輔儲宮,爰及諸王,咸求正士。且官人事王,不宜歲久。歲久則分義情深,非意闚𨵦,多由此作。其王府官寮,勿令過四考。」

정관 십육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지금 나라에 무슨 일이 가장 급한가. 저마다 나를 위해 말하라.」

상서우복야 고사렴이 말하였다.

「백성을 기르는 것이 가장 급합니다.」

황문시랑 유계가 말하였다.

「사방 오랑캐를 어루만지는 일이 급합니다.」

중서시랑 잠문본이 말하였다.

「『전』에 일컫기를 『덕으로 이끌고 예로 가지런히 한다』 하였습니다. 이로 말하면 예와 의로움이 급합니다.」

간의대부 저수량이 말하였다.

「요즘 사방이 덕을 우러러 감히 그른 짓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태자와 여러 왕에게 모름지기 정해진 분수가 있어야 하니, 폐하께서 마땅히 만대의 법을 지어 자손에게 물려주셔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오늘의 급한 일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이 말이 옳다. 짐이 나이가 쉰에 가까워 이미 쇠하고 게을러짐을 느낀다. 이미 맏아들로 동궁에서 그릇을 지키게 하였고 여러 아우와 서자가 수가 마흔에 가까우니 마음에 늘 걱정이 여기에 있을 뿐이다. 다만 예로부터 적자와 서자에게 좋은 도움이 없으면 어찌 집과 나라를 기울여 무너뜨리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공들은 짐을 위해 어질고 덕 있는 이를 찾아 물어 저궁을 돕게 하고, 여러 왕에 이르러서도 다 바른 선비를 구하라. 또 벼슬아치가 왕을 섬김에 해가 오래되어서는 마땅하지 않다. 해가 오래되면 곧 분수와 의리의 정이 깊어져 뜻 아닌 엿봄이 흔히 여기서 일어난다. 그 왕부의 벼슬아치는 네 번 고과를 넘기게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