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尊敬師傅第十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11 · 한자 1,719자 · 낭독 6.9분

「정관정요」 스승을 높이다 「尊敬師傅第十」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三年,太子少師李綱,有腳疾,不堪踐履。太宗賜步輿,令三衛轝入東宮,詔皇太子引上殿,親拜之,大見崇重。綱為太子陳君臣父子之道,問寢視膳之方,理順辭直,聽者忘倦。太子嘗商略古來君臣名教,竭忠盡節之事。綱懍然曰:「讬六尺之孤,寄百里之命,古人以為難,綱以為易。」每吐論發言,皆辭色慷慨,有不可奪之志,太子未嘗不聳然禮敬。

정관 삼 년에 태자소사 이강이 다리에 병이 있어 걸어 다니지 못하였다. 태종이 걸어 메는 가마를 내리고 삼위로 하여금 메고 동궁에 들게 하였으며, 황태자에게 조서하여 이끌어 전에 오르게 하고 몸소 절하게 하니 크게 높고 무겁게 대접받았다.

이강이 태자를 위해 임금과 신하, 아비와 아들의 도와 잠자리를 묻고 수라를 살피는 법을 이야기하였는데, 이치가 순하고 말이 곧아 듣는 이가 지침을 잊었다. 태자가 일찍이 예로부터의 임금과 신하의 이름과 가르침, 충성을 다하고 절개를 다한 일을 헤아려 이야기하였다. 이강이 늠름하게 말하였다.

「여섯 자 되는 어린 임금을 맡기고 백 리의 명을 부치는 일을 옛사람은 어렵다 여겼으나 저는 쉽다 여깁니다.」

의논을 토하고 말을 낼 때마다 말과 낯빛이 다 강개하여 빼앗을 수 없는 뜻이 있었으니, 태자가 우뚝 일어나 예로 공경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貞觀六年,詔曰:「朕比尋討經史,明王聖帝,曷嘗無師傅哉?前所進令遂不睹三師之位,意將未可。何以然?黃帝學大顛,顓頊學錄圖,堯學尹壽,舜學務成昭,禹學西王國,湯學威子伯,文王學子期,武王學虢叔。前代聖王,未遭此師,則功業不著乎天下,名譽不傳乎載籍。況朕接百王之末,智不同聖人,其無師傅,安可以臨兆民者哉?《詩》不云乎:『不愆不忘,率由舊章。』夫不學,則不明古道,而能政致太平者未之有也!可即著令,置三師之位。」

정관 육 년에 조서를 내렸다.

「짐이 요사이 경서와 사서를 찾아보건대 밝은 왕과 성스러운 임금에게 어찌 스승이 없었던 적이 있는가. 앞서 올린 법령에 마침내 삼사의 자리가 보이지 않으니 뜻이 옳지 않다. 어찌 그러한가.

황제는 대전에게 배웠고, 전욱은 녹도에게 배웠고, 요임금은 윤수에게 배웠고, 순임금은 무성소에게 배웠고, 우임금은 서왕국에게 배웠고, 탕임금은 위자백에게 배웠고, 문왕은 자기에게 배웠고, 무왕은 괵숙에게 배웠다. 앞선 세상의 성스러운 왕이 이런 스승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곧 공업이 천하에 드러나지 못하고 이름과 기림이 기록에 전해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물며 짐은 백 왕의 끝에 이어져 슬기가 성인과 같지 않은데, 그 스승이 없이 어찌 뭇 백성에게 임할 수 있겠는가. 『시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어그러지지 않고 잊지 않음은 다 옛 법을 좇는 데서 말미암는다』 하였다. 무릇 배우지 않으면 곧 옛 도에 밝지 못하니, 그러고서 정사로 태평에 이른 이는 있어 본 적이 없다. 곧 법령에 적어 삼사의 자리를 두게 하라.」

貞觀八年,太宗謂侍臣曰:「上智之人,自無所染,但中智之人無恒,從教而變,況太子師保,古難其選。成王幼小,周、召為保傅。左右皆賢,日聞雅訓,足以長仁益德,使為聖君。秦之胡亥,用趙高作傅,教以刑法,及其嗣位,誅功臣,殺親族,酷暴不已,旋踵而亡。故知人之善惡誠由近習。朕今為太子、諸王精選師傅,令其式瞻禮度,有所裨益。公等可訪正直忠信者,各舉三兩人。」

정관 팔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가장 슬기로운 사람은 절로 물드는 바가 없으나, 다만 중간쯤 슬기로운 사람은 한결같음이 없어 가르침을 좇아 바뀐다. 하물며 태자의 사부는 예로부터 그 고름이 어려웠다. 성왕이 어리고 작을 때 주공과 소공이 사부가 되었다. 좌우가 다 어질어 날마다 바른 가르침을 들었으니 어짊을 자라게 하고 덕을 더하여 성스러운 임금이 되게 하기에 넉넉하였다. 진나라의 호해는 조고를 스승으로 삼아 형법으로 가르쳤는데, 그가 자리를 잇자 공신을 베고 친족을 죽여 모질고 사나움을 그치지 않아 발꿈치를 돌리자마자 망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의 착함과 모짊이 참으로 가까이 익히는 데서 말미암음을 안다.

짐이 이제 태자와 여러 왕을 위해 사부를 정밀히 고르려 하니, 그들로 하여금 예의 법도를 우러러보고 도움 되는 바가 있게 하라. 공들은 바르고 곧으며 충성되고 믿음직한 이를 찾아 저마다 두세 사람씩 천거하라.」

貞觀十一年,以禮部尚書王珪兼為魏王師。太宗謂尚書左仆射房玄齡曰:「古來帝子,生於深宮,及其成人,無不驕逸,是以傾覆相踵,少能自濟。我今嚴教子弟,欲皆得安全。王珪我久驅使,甚知剛直,志存忠孝,選為子師。卿宜語泰,每對王珪,如見我面,宜加尊敬,不得懈怠。」珪亦以師道自處,時議善之也。

정관 십일 년에 예부상서 왕규를 겸하여 위왕의 스승으로 삼았다. 태종이 상서좌복야 방현령에게 말하였다.

「예로부터 황제의 아들은 깊은 궁궐에서 나서 어른이 되어서는 교만하고 게으르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래서 기울여 엎어짐이 잇달았고 스스로 건널 수 있는 이가 적었다. 내가 이제 자제를 엄히 가르쳐 다 안전함을 얻게 하려 한다. 왕규는 내가 오래 부려 굳세고 곧으며 뜻이 충성과 효도에 있음을 잘 아니 아들의 스승으로 골랐다. 경은 마땅히 이태에게 일러, 왕규를 대할 때마다 내 얼굴을 보듯 하여 마땅히 높이고 공경하며 게을리하지 말라 하라.」

왕규 또한 스승의 도로 스스로 처신하니 그때의 의논이 좋게 여겼다.

貞觀十七年,太宗謂司徒長孫無忌、司空房玄齡曰:「三師以德道人者也。若師體卑,太子無所取則。」於是詔令撰太子接三師儀註。太子出殿門迎,先拜三師,三師答拜,每門讓三師。三師坐,太子乃坐。與三師書,前名惶恐,後名惶恐再拜。

정관 십칠 년에 태종이 사도 장손무기와 사공 방현령에게 말하였다.

「삼사는 덕으로 사람을 이끄는 이다. 만약 스승의 자리가 낮으면 태자가 본받을 바가 없다.」

이에 조서하여 태자가 삼사를 맞는 의례를 짓게 하였다. 태자는 전문을 나가 맞고 먼저 삼사에게 절하며 삼사가 답절한다. 문마다 삼사에게 사양한다. 삼사가 앉은 뒤에 태자가 앉는다. 삼사에게 글을 보낼 때는 이름 앞에 「황공」이라 쓰고 이름 뒤에 「황공재배」라 쓴다.

貞觀十八年,高宗初立為皇太子,尚未尊賢重道,太宗又嘗令太子居寢殿之側,絕不往東宮。散騎常侍劉洎上書曰:

정관 십팔 년에 고종이 처음 황태자로 세워졌는데 아직 어진 이를 높이고 도를 무겁게 여기지 않았고, 태종이 또 일찍이 태자로 하여금 침전 곁에 있게 하여 아주 동궁에 가지 않았다. 산기상시 유계가 글을 올렸다.

臣聞郊迎四方,孟侯所以成德;齒學三讓,元良由是作貞。斯皆屈主祀之尊,申下交之義。故得芻言咸薦,睿問旁通,不出軒庭,坐知天壤,率由茲道,永固鴻基者焉。至若生乎深宮之中,長乎婦人之手,未曾識憂懼,無由曉風雅。雖復神機不測,天縱生知,而開物成務,終由外獎。匪夫崇彼幹籥,聽茲謠頌,何以辨章庶類,甄覈彜倫?歷考聖賢,咸資琢玉。是故周儲上哲,師望、奭而加裕;漢嗣深仁,引園、綺而昭德。原夫太子,宗祧是系,善惡之際,興亡斯在,不勤於始,將悔於終。是以晁錯上書,令通政術;賈誼獻策,務知禮教。竊惟皇太子玉裕挺生,金聲夙振,明允篤誠之美,孝友仁義之方,皆挺自天姿,非勞審諭,固以華夷仰德,翔泳希風矣。然則寢門視膳,已表於三朝;藝宮論道,宜弘於四術。雖富於春秋,飭躬有漸,實恐歲月易往,墮業興譏,取適晏安,言從此始。臣以愚短,幸參侍從,思廣儲明,暫願聞徹,不敢曲陳故事,切請以聖德言之。

신이 듣건대 사방을 교외에서 맞이한 것은 맹후가 덕을 이룬 까닭이요, 배움에서 나이 차례를 따르고 세 번 사양한 것은 원량이 이로 말미암아 곧음을 지은 까닭입니다. 이는 다 임금이 제사를 주관하는 높음을 굽혀 아래와 사귀는 의로움을 편 것입니다. 그러므로 꼴 베는 이의 말도 다 천거되고 슬기로운 물음이 두루 통하여, 수레와 뜰을 나가지 않고도 앉아서 하늘과 땅을 알았으니, 이 도를 좇아 큰 터를 길이 굳힌 것입니다.

깊은 궁궐 안에서 나고 아녀자의 손에서 자란 이 같으면, 일찍이 걱정과 두려움을 알지 못하고 바람과 우아함을 밝힐 길이 없습니다. 비록 신령한 낌새를 헤아릴 수 없고 하늘이 내신 나면서 아는 이라 하더라도, 사물을 열어 일을 이루는 것은 끝내 밖에서 도와주는 데서 말미암습니다. 저 방패와 피리를 높이고 이 노래와 기림을 듣지 않고서야, 무엇으로 뭇 무리를 가려 밝히고 떳떳한 인륜을 가려 따지겠습니까.

성현을 두루 살펴보건대 다 옥을 쪼는 데 힘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나라의 저군은 가장 밝은 이였으나 태공망과 소공석을 스승으로 삼아 넉넉함을 더하였고, 한나라의 후사는 어짊이 깊었으나 동원공과 기리계를 이끌어 덕을 밝혔습니다.

무릇 태자는 종묘가 매인 바라 착함과 모짊의 사이에 흥함과 망함이 여기에 있으니, 처음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장차 끝에 뉘우칩니다. 그래서 조착이 글을 올려 정사의 술법을 통하게 하였고, 가의가 계책을 바쳐 예와 가르침을 알게 하는 데 힘썼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황태자께서는 옥 같은 넉넉함으로 빼어나게 나시고 쇠 같은 소리가 일찍 떨쳐, 밝고 미쁘고 도탑고 정성스러운 아름다움과 효도와 우애와 어짊과 의로움의 방도가 다 하늘이 준 바탕에서 빼어나 살펴 깨우쳐 드리는 수고를 빌리지 않으셨습니다. 참으로 중화와 오랑캐가 덕을 우러르고 나는 것과 헤엄치는 것이 바람을 바랍니다. 그러한즉 침문에서 수라를 살피는 일은 이미 세 조정에 드러났으니, 예의 궁궐에서 도를 논하는 일도 마땅히 네 가지 학술에 넓혀야 합니다.

비록 봄가을이 넉넉하시고 몸을 다잡음이 차츰 나아지시나, 참으로 두렵기는 세월이 가기 쉬워 업을 게을리하여 비웃음을 일으키고 편안함에 맞추어 가는 것이 이로부터 시작될까 하는 것입니다. 신이 어리석고 짧은 몸으로 다행히 모시는 자리에 참여하여 저군의 밝음을 넓히려 생각하니, 잠시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히 옛일을 굽혀 늘어놓지 않고 간절히 청컨대 성스러운 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伏惟陛下誕睿膺圖,登庸歷試。多才多藝,道著於匡時;允文允武,功成於纂祀。萬方即敘,九圍清晏。尚且雖休勿休,日慎一日,求異聞於振古,勞睿思於當年。乙夜觀書,事高漢帝;馬上披卷,勤過魏王。陛下自勵如此,而令太子優遊棄日,不習圖書,臣所未諭一也。加以暫屏機務,即寓雕蟲。紆寶思於天文,則長河韜映;摛玉華於仙劄,則流霞成彩。固以錙銖萬代,冠冕百王,屈、宋不足以升堂,鍾、張何階於入室。陛下自好如此,而太子悠然靜處,不尋篇翰,臣所未諭二也。陛下備該眾妙,獨秀寰中,猶晦天聰,俯詢凡識。聽朝之隟,引見群官,降以溫顏,訪以今古。故得朝廷是非,閭里好惡,凡有巨細,必關聞聽。陛下自行如此,而令太子久趨入侍,不接正人,臣所未諭三也。陛下若謂無益,則何事勞神;若謂有成,則宜申貽厥。蔑而不急,未見其可。伏願俯推睿範,訓及儲君,授以良書,娛之嘉客。朝披經史,觀成敗於前蹤;晚接賓遊,訪得失於當代。間以書劄,繼以篇章,則日聞所未聞,日見所未見。副德愈光,群生之福也。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께서는 슬기롭게 나시어 도록을 받으시고 뽑혀 오르사 두루 시험을 겪으셨습니다. 재주도 많고 재예도 많아 도가 때를 바로잡는 데 드러났고, 참으로 문에도 무에도 능하시어 공이 제사를 잇는 데 이루어졌습니다. 만방이 곧 차례를 좇고 아홉 두름이 맑고 편안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워도 아름답다 하지 않으시고 날마다 하루씩 삼가시며, 아득한 옛것에서 남다른 들음을 구하시고 슬기로운 생각을 그해에 수고롭게 하십니다. 이경에 글을 보시니 일이 한나라 황제보다 높고, 말 위에서 책을 펴시니 부지런함이 위나라 왕을 넘습니다. 폐하께서 스스로 힘쓰심이 이러한데 태자로 하여금 한가히 놀며 날을 버리고 그림과 글을 익히지 않게 하시니, 신이 깨닫지 못하는 첫째입니다.

게다가 잠시 정무를 물리치시면 곧 자잘한 글재주에 붙이십니다. 보배로운 생각을 하늘의 무늬에 두르시면 긴 은하수가 빛을 감추고, 옥 같은 꽃을 신선의 편지에 펴시면 흐르는 노을이 무늬를 이룹니다. 참으로 만대를 티끌만큼 여기고 백 왕에 으뜸이시니, 굴원과 송옥으로도 마루에 오르기에 넉넉하지 않고 종요와 장지인들 무슨 계단으로 방에 들겠습니까. 폐하께서 스스로 좋아하심이 이러한데 태자는 아득히 고요히 처하여 글월을 찾지 않으니, 신이 깨닫지 못하는 둘째입니다.

폐하께서는 뭇 오묘함을 다 갖추어 홀로 누리 안에 빼어나신데도 오히려 하늘 같은 귀 밝음을 감추시고 굽혀 평범한 앎을 물으십니다. 조회를 듣는 틈에 뭇 벼슬아치를 이끌어 보시고 따뜻한 낯빛으로 내리시어 옛날과 지금을 물으십니다. 그러므로 조정의 옳고 그름과 마을의 좋아함과 미워함이 무릇 크고 작음이 있어도 반드시 듣는 데 걸립니다. 폐하께서 스스로 행하심이 이러한데 태자로 하여금 오래 달려 들어와 모시게만 하고 바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시니, 신이 깨닫지 못하는 셋째입니다.

폐하께서 만약 보탬이 없다 하신다면 곧 무엇하러 정신을 수고롭게 하시며, 만약 이룸이 있다 하신다면 곧 마땅히 그 물려주심을 펴셔야 합니다. 업신여겨 급하게 여기지 않으시니 그 옳음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굽혀 슬기로운 법도를 미루시어 가르침이 저군에게 미치게 하시고, 좋은 글을 주시고 아름다운 손님으로 즐겁게 하소서. 아침에는 경서와 사서를 펴 앞선 자취에서 이룸과 무너짐을 보게 하고, 저녁에는 손님과 사귀어 지금 세상에서 얻음과 잃음을 묻게 하며, 사이사이 편지로 하고 이어 글월로 하면, 곧 날마다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날마다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볼 것입니다. 버금 덕이 더욱 빛나는 것이 뭇 백성의 복입니다.

竊以良娣之選,遍於中國。仰惟聖旨,本求典內,冀防微,慎遠慮,臣下所知。暨乎徵簡人物,則與聘納相違,監撫二周,未近一士。愚謂內既如彼,外亦宜然者。恐招物議,謂陛下重內而輕外也。古之太子,問安而退,所以廣敬於君父;異宮而處,所以分別於嫌疑。今太子一侍天闈,動移旬朔,師傅已下,無由接見。假令供奉有隟,暫還東朝,拜謁既疏,且事俯仰,規諫之道,固所未暇。陛下不可以親教,宮寀無因以進言,雖有具寮,竟將何補?

가만히 생각하건대 양제를 고르는 일은 온 나라에 두루 하셨습니다. 우러러 성스러운 뜻을 생각하건대 본디 안을 맡을 이를 구하시어 작은 것을 막고 먼 것을 삼가 헤아리려 하심이니 아랫신하가 아는 바입니다. 그런데 인물을 불러 가리는 데 이르러서는 곧 맞아들이는 일과 어긋나, 나라를 살피고 어루만지신 두 해 동안 한 선비도 가까이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안이 이미 저러하니 밖도 또한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다. 두렵건대 남들의 의논을 불러 폐하께서 안을 무겁게 여기고 밖을 가벼이 여기신다 할까 합니다.

옛날의 태자는 문안하고 물러갔으니 임금이자 아비에게 공경을 넓히는 까닭이요, 궁을 달리하여 지냈으니 혐의를 갈라 나누는 까닭입니다. 이제 태자가 한번 대궐에 모시면 열흘이고 한 달이고 움직여 옮겨 사부 이하가 만날 길이 없습니다. 설사 받들어 모시는 데 틈이 있어 잠시 동궁으로 돌아와도 뵙는 것이 이미 성글고 또 굽어보고 우러르는 일뿐이니, 법도로 간하는 도리를 참으로 겨를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몸소 가르치실 수 없고 궁의 벼슬아치가 말씀드릴 까닭이 없다면, 비록 벼슬아치를 갖추었은들 끝내 무엇을 도우겠습니까.

伏願俯循前躅,稍抑下流,弘遠大之規,展師友之義。則離徽克茂,帝圖斯廣,凡在黎元,孰不慶賴。太子溫良恭儉,聰明睿哲,含靈所悉,臣豈不知。而淺識勤勤,思效愚忠者,願滄溟益潤,日月增華也。

엎드려 바라건대 굽혀 앞선 자취를 좇으시고 조금 아래로 흐름을 누르시어, 멀고 큰 법도를 넓히고 스승과 벗의 의로움을 펴소서. 그러면 곧 아름다움이 크게 성하고 제왕의 도모가 이에 넓어질 터이니, 무릇 뭇 백성으로 누가 다행으로 여겨 힘입지 않겠습니까. 태자께서 따뜻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검소하며 총명하고 슬기로우심은 뜻있는 이가 다 아는 바이니 신인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런데도 얕은 앎으로 부지런히 어리석은 충성을 바치려 생각하는 것은, 넓은 바다가 더욱 젖고 해와 달이 빛을 더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太宗乃令洎與岑文本、馬周遞日往東宮,與皇太子談論。

태종이 이에 유계와 잠문본과 마주로 하여금 날을 갈아 가며 동궁에 가서 황태자와 이야기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