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教戒太子諸王第十一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9 · 한자 1,993자 · 낭독 8.0분

「정관정요」 태자와 여러 왕을 가르치고 경계하다 「教戒太子諸王第十一」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七年,太宗謂太子左庶子于志寧、杜正倫曰:「卿等輔導太子,常須為說百姓間利害事。朕年十八,猶在人間,百姓艱難,無不諳練。及居帝位,每商量處置,或時有乖疏,得人諫諍,方始覺悟。若無忠諫者為說,何由行得好事?況太子生長深宮,百姓艱難,都不聞見乎?且人主安危所系,不可輒為驕縱。但出敕云,有諫者即斬,必知天下士庶無敢更發直言。故克己勵精,容納諫諍,卿等常須以此意共其談說。每見有不是事,宜極言切諫,令有所裨益也。」

정관 칠 년에 태종이 태자좌서자 우지녕과 두정륜에게 말하였다.

「경들이 태자를 돕고 이끄니 늘 모름지기 백성 사이의 이롭고 해로운 일을 말해 주어야 한다. 짐은 나이 열여덟에도 아직 사람들 사이에 있었으므로 백성의 어려움을 익히 알지 못한 것이 없다. 황제의 자리에 있게 되어서도 헤아려 처치할 때마다 더러 어그러지고 성근 데가 있어, 남의 간쟁을 얻고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만약 충성되게 간하는 이가 말해 주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좋은 일을 행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태자는 깊은 궁궐에서 나고 자라 백성의 어려움을 도무지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음에랴.

또 임금은 편안함과 위태로움이 매인 바이니 문득 교만하고 방자해서는 안 된다. 다만 칙서를 내어 간하는 이가 있으면 곧 벤다 하면, 천하의 선비와 백성이 반드시 감히 다시 곧은 말을 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몸을 이겨 정신을 다잡고 간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경들은 늘 모름지기 이 뜻으로 그와 함께 이야기하라. 옳지 않은 일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마땅히 지극히 말하고 간절히 간하여 도움 되는 바가 있게 하라.」

貞觀十八年,太宗謂侍臣曰:「古有胎教世子,朕則不暇。但近自建立太子,遇物必有誨諭,見其臨食將飯,謂曰:『汝知飯乎?』對曰:『不知。』曰:『凡稼穡艱難,皆出人力,不奪其時,常有此飯。』見其乘馬,又謂曰:『汝知馬乎?』對曰:『不知。』曰:『能代人勞苦者也,以時消息,不盡其力,則可以常有馬也。』見其乘舟,又謂曰:『汝知舟乎?』對曰:『不知。』曰:『舟所以比人君,水所以比黎庶,水能載舟,亦能覆舟。爾方為人主,可不畏懼!』見其休於曲木之下,又謂曰:『汝知此樹乎?』對曰:『不知。』曰:『此木雖曲,得繩則正,為人君雖無道,受諫則聖。此傅說所言,可以自鑒。』」

정관 십팔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옛날에는 세자를 뱃속에서부터 가르치는 일이 있었으나 짐은 곧 겨를이 없었다. 다만 요사이 태자를 세운 뒤로는 사물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가르쳐 깨우친다.

그가 밥상에 임하여 밥을 먹으려는 것을 보고 이르기를 『너는 밥을 아느냐』 하니 『알지 못합니다』 하기에, 『무릇 심고 거두는 어려움은 다 사람의 힘에서 나온다. 그 때를 빼앗지 않아야 늘 이 밥이 있다』 하였다.

그가 말을 타는 것을 보고 또 이르기를 『너는 말을 아느냐』 하니 『알지 못합니다』 하기에, 『사람을 대신하여 수고할 수 있는 것이다. 때에 맞추어 쉬게 하고 그 힘을 다하지 않아야 곧 늘 말이 있을 수 있다』 하였다.

그가 배를 타는 것을 보고 또 이르기를 『너는 배를 아느냐』 하니 『알지 못합니다』 하기에, 『배는 임금에 견주는 것이요 물은 백성에 견주는 것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또한 배를 엎을 수도 있다. 네가 바야흐로 임금이 될 터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였다.

그가 굽은 나무 아래에서 쉬는 것을 보고 또 이르기를 『너는 이 나무를 아느냐』 하니 『알지 못합니다』 하기에, 『이 나무가 비록 굽었어도 먹줄을 얻으면 곧 바르게 된다. 임금 된 이가 비록 도가 없어도 간언을 받으면 곧 성스러워진다. 이는 부열이 말한 바이니 스스로 거울로 삼을 만하다』 하였다.」

貞觀七年,太宗謂侍中魏徵曰:「自古侯王能自保全者甚少,皆由生長富貴,好尚驕逸,多不解親君子遠小人故爾。朕所有子弟欲使見前言往行,冀其以為規範。」因命徵錄古來帝王子弟成敗事,名為《自古諸侯王善惡錄》,以賜諸王。其序曰:

정관 칠 년에 태종이 시중 위징에게 말하였다.

「예로부터 제후와 왕으로 스스로를 지켜 온전히 할 수 있었던 이가 몹시 적다. 다 넉넉하고 귀한 데서 나고 자라 교만하고 게으름을 좋아하며 흔히 군자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할 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짐의 모든 자제로 하여금 앞선 말과 지난 행실을 보게 하여 그것을 법도로 삼기를 바란다.」

이에 위징에게 명하여 예로부터의 제왕 자제의 이룸과 무너짐의 일을 적게 하고 이름을 『예로부터의 제후왕 착함과 모짊의 기록』이라 하여 여러 왕에게 내렸다. 그 서문은 이러하다.

觀夫膺期受命,握圖御宇,咸建懿親,藩屏王室,布在方策,可得而言。自軒分二十五子,舜舉一十六族,爰歷周、漢,以逮陳、隋,分裂山河,大啟磐石者眾矣。或保乂王家,與時升降;或失其土宇,不祀忽諸。然考其隆替,察其興滅,功成名立,咸資始封之君,國喪身亡,多因繼體之後。其故何哉?始封之君,時逢草昧,見王業之艱阻,知父兄之憂勤。是以在上不驕,夙夜匪懈,或設醴以求賢;或吐飱而接士。故甘忠言之逆耳,得百姓之懽心。樹至德於生前,流遺愛於身後。暨夫子孫繼體,多屬隆平,生自深宮之中,長居婦人之手,不以高危為憂懼,豈知稼穡之艱難?昵近小人,疏遠君子,綢繆哲婦,傲狠明德。犯義悖禮,淫荒無度,不遵典憲,僣差越等。恃一顧之權寵,便懷匹嫡之心;矜一事之微勞,遂有無厭之望。棄忠貞之正路,蹈奸宄之迷塗。愎諫違卜,往而不返。雖梁孝、齊冏之勛庸,淮南、東阿之才俊,摧摩霄之逸翮,成窮轍之涸鱗,棄桓、文之大功,就梁、董之顯戮。垂為炯戒,可不惜乎?皇帝以聖哲之資,拯傾危之運,耀七德以清六合,總萬國而朝百靈,懷柔四荒,親睦九族。念華萼於《棠棣》,寄維城於宗子。心乎愛矣,靡日不思,爰命下臣,考覽載籍,博求鑒鏡,貽厥孫謀。臣輒竭愚誠,稽諸前訓。凡為藩為翰,有國有家者,其興也必由於積善,其亡也皆在於積惡。故知善不積不足以成名,惡不積不足以滅身。然則禍福無門,吉兇由己,惟人所召,豈徒言哉!今錄自古諸王行事得失,分其善惡各為一篇,名曰:《諸王善惡錄》,欲使見善思齊,足以揚名不朽;聞惡能改,庶得免乎大過。從善則有譽,改過則無咎。興亡是系,可不勉歟?

무릇 때에 응하여 명을 받고 도록을 잡아 세상을 다스리매, 다 아름다운 친척을 세워 왕실의 울타리로 삼은 일이 방책에 널려 있으니 얻어 말할 수 있다.

헌원이 스물다섯 아들을 나누고 순임금이 열여섯 겨레를 든 이래로 주나라와 한나라를 지나 진나라와 수나라에 이르기까지, 산과 하수를 나누어 반석 같은 봉국을 크게 연 일이 많았다. 더러는 왕가를 지키고 다스려 때와 더불어 오르내렸고 더러는 그 땅을 잃어 제사가 문득 끊겼다.

그러나 그 성함과 쇠함을 살피고 그 흥함과 멸함을 살펴보면, 공이 이루어지고 이름이 선 것은 다 처음 봉해진 임금에 힘입었고, 나라가 없어지고 몸이 망한 것은 흔히 몸을 이은 뒤에 말미암았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처음 봉해진 임금은 때가 어둡고 어지러운 시절을 만나 왕업의 어렵고 막힘을 보고 아비와 형의 걱정과 부지런함을 알았다. 그래서 위에 있으면서 교만하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게으르지 않았으며, 더러는 단술을 베풀어 어진 이를 구하고 더러는 먹던 것을 뱉고 선비를 맞았다. 그러므로 귀에 거슬리는 충성된 말을 달게 여기고 백성의 기뻐하는 마음을 얻었다. 지극한 덕을 살아서 심고 남긴 사랑을 죽은 뒤에 흘렸다.

그 자손이 몸을 이음에 이르러서는 흔히 융성하고 태평한 때에 붙어, 깊은 궁궐 안에서 나고 아녀자의 손에서 자라 높고 위태로움을 걱정과 두려움으로 삼지 않으니 어찌 심고 거두는 어려움을 알겠는가. 소인을 가까이하고 군자를 멀리하며, 슬기로운 척하는 여자와 얽히고 밝은 덕에 오만하고 사납게 굴었다. 의로움을 범하고 예를 어기며 음란하고 거칠어 헤아림이 없고, 법도를 좇지 않고 어긋나 등급을 넘었다. 한 번 돌아보아 준 권세와 총애를 믿고 곧 적자에 맞서려는 마음을 품고, 한 가지 일의 작은 수고를 뽐내어 마침내 싫증 없는 바람을 가졌다. 충성되고 곧은 바른길을 버리고 간사하고 도적 같은 미혹의 길을 밟았다. 간언을 어기고 점을 어겨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비록 양 효왕과 제왕 사마경의 공로와 회남왕과 동아왕의 재주와 뛰어남으로도, 하늘을 문지르던 빼어난 깃을 꺾어 마른 바퀴자국의 물 마른 물고기가 되었고, 제 환공과 진 문공의 큰 공을 버리고 양기와 동탁의 드러난 죽음으로 나아갔다. 밝은 경계로 드리워지니 아깝지 않은가.

황제께서 성스럽고 슬기로운 바탕으로 기울고 위태로운 운수를 건지시고, 일곱 덕을 빛내어 여섯 방위를 맑게 하시고 만국을 아울러 온갖 신령의 조회를 받으셨다. 사방 거친 곳을 품어 부드럽게 하시고 아홉 겨레를 가까이 화목하게 하셨다. 『당체』의 꽃받침을 생각하시어 성을 잇는 일을 종실의 아들에게 부치셨다. 마음에 사랑하시어 하루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어, 이에 아랫신하에게 명하여 옛 기록을 살펴보고 널리 거울이 될 것을 구하여 그 손자에게 남길 꾀를 삼게 하셨다.

신이 문득 어리석은 정성을 다하여 앞선 가르침을 상고하였다. 무릇 울타리가 되고 기둥이 되어 나라를 두고 집을 둔 이는, 그 흥함이 반드시 착함을 쌓은 데서 말미암고 그 망함이 다 모짊을 쌓은 데 있다. 그러므로 착함은 쌓지 않으면 이름을 이루기에 넉넉하지 않고 모짊은 쌓지 않으면 몸을 없애기에 넉넉하지 않음을 안다. 그러한즉 재앙과 복은 들어오는 문이 따로 없고 길함과 흉함은 제게서 말미암아 오직 사람이 부르는 것이니 어찌 한갓 말뿐이겠는가.

이제 예로부터의 여러 왕이 일을 행한 얻음과 잃음을 적어 그 착함과 모짊을 나누어 저마다 한 편으로 삼고 이름을 『제후왕 착함과 모짊의 기록』이라 하였다. 착함을 보면 같아지기를 생각하여 이름을 드날려 썩지 않게 하기에 넉넉하고, 모짊을 들으면 고칠 수 있어 거의 큰 허물을 면하게 하려 함이다. 착함을 좇으면 곧 기림이 있고 허물을 고치면 곧 허물이 없다. 흥함과 망함이 여기에 매였으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太宗覽而稱善,謂諸王曰:「此宜置於座右,用為立身之本。」

태종이 보고 좋다 일컬으며 여러 왕에게 말하였다.

「이것을 마땅히 자리 오른쪽에 두고 몸을 세우는 근본으로 삼으라.」

貞觀十年,太宗謂荊王元景、漢王元昌、吳王恪、魏王泰等曰:「自漢已來,帝弟帝子,受茅土、居榮貴者甚眾,惟東平及河間王最有令名,得保其祿位。如楚王瑋之徒,覆亡非一,並為生長富貴,好自驕逸所致。汝等鑒誡,宜熟思之。揀擇賢才,為汝師友,須受其諫諍,勿得自專。我聞以德服物,信非虛說。比嘗夢中見一人云虞舜,我不覺竦然敬異,豈不為仰其德也!向若夢見桀、紂,必應斫之。桀、紂雖是天子,今若相喚作桀、紂,人必大怒。顏回、閔子騫、郭林宗、黃叔度,雖是布衣,今若相稱贊道類此四賢,必當大喜。故知人之立身,所貴者惟在德行,何必要論榮貴。汝等位列藩王,家食實封,更能克修德行,豈不具美也?且君子小人本無常,行善事則為君子,行惡事則為小人,當須自克勵,使善事日聞,勿縱欲肆情,自陷刑戮。」

정관 십 년에 태종이 형왕 이원경과 한왕 이원창과 오왕 이각과 위왕 이태 등에게 말하였다.

「한나라 이래로 황제의 아우와 황제의 아들로서 띠와 흙을 받고 영화롭고 귀한 데 있던 이가 몹시 많으나, 오직 동평왕과 하간왕이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있어 그 녹과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초왕 사마위의 무리 같은 이들은 엎어져 망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니, 아울러 넉넉하고 귀한 데서 나고 자라 스스로 교만하고 게으르기를 좋아한 데서 온 것이다. 너희는 거울과 경계로 삼아 마땅히 익히 생각하라. 어질고 재주 있는 이를 가려 뽑아 너희 스승과 벗으로 삼고 모름지기 그 간쟁을 받아 스스로 오로지 하지 말라.

내가 듣건대 덕으로 사물을 복종시킨다 하니 참으로 헛된 말이 아니다. 요사이 일찍이 꿈속에서 한 사람을 보았는데 순임금이라 하였다. 내가 나도 모르게 우뚝 일어나 공경하고 남달리 여겼으니 어찌 그 덕을 우러른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꿈에 걸왕이나 주왕을 보았다면 반드시 베었으리라. 걸왕과 주왕이 비록 천자였으나 지금 서로 걸이나 주라 부르면 사람이 반드시 크게 노한다. 안회와 민자건과 곽임종과 황숙도가 비록 베옷 입은 이였으나, 지금 서로 기려 이 네 어진 이 같다고 말하면 반드시 크게 기뻐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몸을 세움에 귀한 바는 오직 덕과 행실에 있음을 아니, 어찌 반드시 영화와 귀함을 논하겠는가.

너희는 자리가 번왕에 벌여 있고 집에서 실봉을 먹는데, 다시 덕과 행실을 잘 닦을 수 있다면 어찌 아름다움을 갖추지 않겠는가. 또 군자와 소인은 본디 정해짐이 없다. 착한 일을 행하면 곧 군자가 되고 모진 일을 행하면 곧 소인이 된다. 마땅히 스스로 이겨 힘써 착한 일이 날마다 들리게 하고, 욕심을 놓아두고 정을 마음껏 하여 스스로 형벌과 죽임에 빠지지 말라.」

貞觀十年,太宗謂房玄齡曰:「朕歷觀前代撥亂創業之主,生長人間,皆識達情偽,罕至於敗亡。逮乎繼世守文之君,生而富貴,不知疾苦,動至夷滅,朕少小以來,經營多難,備知天下之事,猶恐有所不逮。至於荊王諸弟,生自深宮,識不及遠,安能念此哉?朕每一食,便念稼穡之艱難;每一衣,則思紡績之辛苦。諸弟何能學朕乎?選良佐以為藩弼,庶其習近善人,得免於愆過爾。」

정관 십 년에 태종이 방현령에게 말하였다.

「짐이 앞선 세상의 어지러움을 다스려 업을 연 임금들을 두루 보건대, 사람들 사이에서 나고 자라 다 실정과 거짓을 알아 무너져 망함에 이른 이가 드물었다. 대를 이어 글을 지키는 임금에 이르러서는 나면서 넉넉하고 귀하여 괴로움을 알지 못하니 움직이면 멸망에 이른다. 짐은 어릴 적부터 여러 어려움을 겪어 천하의 일을 갖추어 알면서도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을까 두렵다. 형왕과 여러 아우에 이르러서는 깊은 궁궐에서 났고 앎이 멀리 미치지 못하니 어찌 이것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짐은 한 번 밥을 먹을 때마다 곧 심고 거두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한 번 옷을 입을 때마다 곧 실 잣고 베 짜는 고생을 생각한다. 여러 아우가 어찌 짐을 배울 수 있겠는가. 좋은 도움을 골라 울타리의 보좌로 삼아, 거의 착한 사람을 가까이 익혀 허물을 면하게 하려 할 뿐이다.」

貞觀十一年,太宗謂吳王恪曰:「父之愛子,人之常情,非待教訓而知也。子能忠孝則善矣!若不遵誨誘,忘棄禮法,必自致刑戮,父雖愛之,將如之何?昔漢武帝既崩,昭帝嗣立,燕王旦素驕縱,诪張不服,霍光遣一折簡誅之,則身死國除。夫為臣子不得不慎。」

정관 십일 년에 태종이 오왕 이각에게 말하였다.

「아비가 아들을 사랑함은 사람의 떳떳한 정이라 가르침을 기다려 아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충성하고 효도할 수 있으면 곧 좋다. 만약 가르쳐 이끄는 것을 좇지 않고 예와 법을 잊고 버리면 반드시 스스로 형벌과 죽임에 이르리니, 아비가 비록 사랑한들 장차 어찌하겠는가.

옛날 한 무제가 이미 돌아가고 소제가 자리를 이었을 때, 연왕 유단이 본디 교만하고 방자하여 함부로 속이고 복종하지 않으니 곽광이 접은 편지 한 장을 보내 베어 곧 몸은 죽고 나라는 없어졌다. 무릇 신하 되고 자식 된 이는 삼가지 않을 수 없다.」

貞觀中,皇子年小者多授以都督刺史,諫議大夫褚遂良上疏諫曰:「昔兩漢以郡國治人,除郡以外,分立諸子,割土封疆,雜用周制。皇唐郡縣,粗依秦法。皇子幼年,或授刺史。陛下豈不以王之骨肉,鎮扞四方,聖人造制,道高前古?臣愚見有小未盡。何者?刺史師帥,人仰以安。得一善人,部內蘇息;遇一不善人,闔州勞弊。是以人君愛恤百姓,常為擇賢。或稱河潤九里,京師蒙福;或與人興詠,生為立祠。漢宣帝云:『與我共理者,惟良二千石乎!』如臣愚見,陛下子內年齒尚幼,未堪臨民者,請且留京師,教以經學。一則畏天之威,不敢犯禁;二則觀見朝儀,自然成立。因此積習,自知為人,審堪臨州,然後遣出。臣謹按漢明、章、和三帝,能友愛子弟,自茲以降,以為準的。封立諸王,雖各有土,年尚幼小者,各留京師,訓以禮法,垂以恩惠。訖三帝世,諸王數十百人,惟二王稍惡,自餘皆沖和深粹。惟陛下詳察。」太宗嘉納其言。

정관 연간에 황자로 나이가 어린 이에게 흔히 도독이나 자사를 주었다. 간의대부 저수량이 상소하여 간하였다.

「옛날 두 한나라는 군과 봉국으로 사람을 다스렸는데, 군 밖에는 여러 아들을 나누어 세우고 땅을 갈라 봉하여 주나라 제도를 섞어 썼습니다. 당나라의 군현은 대략 진나라 법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황자가 어린 나이에 더러 자사를 받습니다. 폐하께서 어찌 왕의 골육으로 사방을 진압하여 막게 하시는 것이 아니겠으며, 성인이 지으신 제도가 도로는 옛날보다 높지 않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에 조금 다하지 못한 바가 있습니다.

어찌해서입니까. 자사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라 사람이 우러러 편안해집니다. 착한 사람 하나를 얻으면 관내가 되살아나고, 착하지 못한 사람 하나를 만나면 온 고을이 수고롭고 피폐해집니다. 그래서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늘 어진 이를 골랐습니다. 더러는 하수의 젖음이 구 리에 미쳐 서울이 복을 입었다 일컬어졌고, 더러는 사람들이 노래를 일으켜 살아 있는 동안에 사당을 세워 주었습니다. 한 선제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다스릴 이는 오직 좋은 이천석이로다』 하였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폐하의 아들 가운데 나이가 아직 어려 백성에게 임하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는 청컨대 잠시 서울에 머무르게 하고 경학을 가르치소서. 하나는 곧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감히 금함을 범하지 않을 것이요, 둘은 곧 조정의 거동을 보아 절로 이루어 설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익힘이 쌓여 절로 사람 노릇할 줄 알게 되고, 고을에 임할 만한지 살핀 뒤에 내보내십시오.

신이 삼가 살피건대 한나라 명제와 장제와 화제 세 황제는 자제를 우애할 수 있었고, 이로부터 내려와 이를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여러 왕을 봉하여 세우되 비록 저마다 땅이 있었으나 나이가 아직 어리고 작은 이는 저마다 서울에 머무르게 하여 예와 법으로 가르치고 은혜를 드리웠습니다. 세 황제의 대가 끝나기까지 여러 왕이 수십 수백 사람이었으나 오직 두 왕만이 조금 모질었고 나머지는 다 화하고 깊고 순수하였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자세히 살피소서.」

태종이 그 말을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