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友第十五
司空房玄齡事繼母,能以色養,恭謹過人。其母病,請醫人至門,必迎拜垂泣。及居喪,尤甚柴毀。太宗命散騎常侍劉洎就加寬譬,遺寢床、粥食、鹽菜。
사공 방현령은 계모를 섬김에 낯빛을 부드러이 하여 봉양할 수 있었고 공손하고 삼감이 남보다 뛰어났다. 그 어머니가 병들어 의원을 청하여 문에 이르면 반드시 맞아 절하며 눈물을 흘렸다. 상을 당해서는 더욱 심하게 여위어 몸을 상하였다. 태종이 산기상시 유계에게 명하여 나아가 너그러이 타이르게 하고 침상과 죽과 소금과 나물을 보냈다.
虞世南,初仕隋,歷起居舍人,宇文化及殺逆之際,其兄世基時為內史侍郎,將被誅,世南抱持號泣,請以身代死,化及竟不納。世南自此哀毀骨立者數載,時人稱重焉。
우세남은 처음 수나라에 벼슬하여 기거사인을 지냈다. 우문화급이 임금을 죽일 때 그 형 우세기가 그때 내사시랑이었는데 베임을 당하게 되었다. 세남이 붙들고 소리 내어 울며 제 몸으로 대신 죽기를 청하였으나 화급이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남이 이로부터 여러 해 슬퍼 여위어 뼈만 앙상하니 그때 사람들이 무겁게 여겼다.
韓王元嘉,貞觀初,為潞州刺史。時年十五,在州聞太妃有疾,便涕泣不食,及至京師發喪,哀毀過禮。太宗嘉其至性,屢慰勉之。元嘉閨門修整,有類寒素士大夫,與其弟魯哀王靈夔甚相友愛,兄弟集見,如布衣之禮。其修身潔已,內外如一,當代諸王莫能及者。
한왕 이원가는 정관 처음에 노주자사가 되었다. 그때 나이 열다섯이었는데 고을에서 태비가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 곧 눈물을 흘리며 먹지 않았고, 서울에 이르러 상을 발할 때는 슬퍼 여윔이 예를 지나쳤다. 태종이 그 지극한 성품을 아름답게 여겨 여러 번 위로하고 힘쓰게 하였다.
원가는 안방의 문이 가지런하여 가난한 선비 같은 데가 있었고, 그 아우 노애왕 이영기와 몹시 서로 우애하여 형제가 모여 볼 때 베옷 입은 사람의 예같이 하였다. 그 몸을 닦고 제 몸을 깨끗이 하여 안팎이 한결같으니 그때의 여러 왕이 미칠 수 없었다.
霍王元軌,武德中,初封為吳王,貞觀七年,為壽州刺史。屬高祖崩,去職,毀瘠過禮。自後常衣布服,示有終身之戚。太宗嘗問侍臣曰:「朕子弟孰賢?」侍中魏徵對曰:「臣愚暗,不盡知其能,惟吳王數與臣言,臣未嘗不自失。」太宗曰:「卿以為前代誰比?」徵曰:「經學文雅,亦漢之間、平,至如孝行,乃古之曾、閔也。」由是寵遇彌厚,因令妻徵女焉。
곽왕 이원궤는 무덕 연간에 처음 오왕으로 봉해졌고 정관 칠 년에 수주자사가 되었다. 고조가 돌아가시자 벼슬을 떠났는데 여위고 야윔이 예를 지나쳤다. 그 뒤로는 늘 베옷을 입어 몸이 다하도록 슬퍼함이 있음을 보였다.
태종이 일찍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물었다.
「짐의 자제 가운데 누가 어진가?」
시중 위징이 대답하였다.
「신이 어리석고 어두워 그 능함을 다 알지 못합니다. 오직 오왕이 여러 번 신과 이야기하였는데 신이 스스로 모자람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경은 앞선 세상의 누구에 견주는가?」
위징이 말하였다.
「경학과 문아로는 또한 한나라의 하간왕과 동평왕이요, 효도의 행실로 말하면 곧 옛날의 증삼과 민자건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총애와 대접이 더욱 두터워졌고, 이에 위징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貞觀中,有突厥史行昌直玄武門,食而舍肉,人問其故,曰:「歸以奉母。」太宗聞而嘆曰:「仁孝之性,豈隔華夷?」賜尚乘馬一疋,詔令給其母肉料。
정관 연간에 돌궐 사람 사행창이 현무문에서 번을 섰는데, 밥을 먹으면서 고기를 남겨 두었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였다.
「돌아가 어머니께 드리려 합니다.」
태종이 듣고 감탄하여 말하였다.
「어질고 효성스러운 성품에 어찌 중화와 오랑캐의 사이가 있겠는가.」
상승의 말 한 필을 내리고 조서로 그 어머니에게 고기를 대어 주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