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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平第十六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20 · 한자 5,339자 · 낭독 21.4분

「정관정요」 공평 「公平第十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太宗初即位,中書令房玄齡奏言:「秦府舊左右未得官者,並怨前宮及齊府左右處分之先己。」太宗曰:「古稱至公者,蓋謂平恕無私。丹朱、商均,子也,而堯、舜廢之。管叔、蔡叔,兄弟也,而周公誅之。故知君人者,以天下為公,無私於物。昔諸葛孔明,小國之相,猶曰『吾心如稱,不能為人作輕重』,況我今理大國乎?朕與公等衣食出於百姓,此則人力已奉於上,而上恩未被於下,今所以擇賢才者,蓋為求安百姓也。用人但問堪否,豈以新故異情?凡一面尚且相親,況舊人而頓忘也!才若不堪,亦豈以舊人而先用?今不論其能不能,而直言其嗟怨,豈是至公之道耶?」

태종이 처음 자리에 올랐을 때 중서령 방현령이 아뢰었다.

「진왕부의 옛 좌우 가운데 아직 벼슬을 얻지 못한 이들이 아울러 앞 궁과 제왕부의 좌우를 저보다 먼저 처분하신 것을 원망합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옛날에 지극히 공정하다 일컬은 것은 대개 고르고 너그러워 사사로움이 없음을 이른다. 단주와 상균은 아들인데도 요임금과 순임금이 그들을 폐하였고, 관숙과 채숙은 형제인데도 주공이 그들을 베었다. 그러므로 사람을 다스리는 이는 천하로 공정함을 삼고 사물에 사사로움이 없어야 함을 안다.

옛날 제갈공명은 작은 나라의 재상이었는데도 오히려 『내 마음이 저울과 같아 남을 위해 가볍고 무겁게 할 수 없다』 하였는데, 하물며 내가 이제 큰 나라를 다스림에랴. 짐과 공들의 옷과 밥이 백성에게서 나오니, 이는 곧 사람의 힘이 이미 위에 받들어졌으나 위의 은혜는 아직 아래에 덮이지 않은 것이다. 이제 어질고 재주 있는 이를 고르는 까닭은 대개 백성을 편안케 하기를 구함이다. 사람을 씀에 다만 감당할지 못할지를 물을 뿐이니 어찌 새롭고 오램으로 정을 달리하겠는가. 무릇 한 번 낯을 본 사이라도 오히려 서로 가까이하는데, 하물며 옛사람을 문득 잊겠는가. 재주가 만약 감당하지 못하면 또한 어찌 옛사람이라 하여 먼저 쓰겠는가. 이제 그가 능한지 능하지 못한지를 논하지 않고 다만 그 탄식과 원망만 곧게 말하니 어찌 지극히 공정한 도이겠는가.」

貞觀元年,有上封事者,請秦府舊兵並授以武職,追入宿衛。太宗謂曰:「朕以天下為家,不能私於一物,惟有才行是任,豈以新舊為差?況古人云:『兵猶火也,弗戢將自焚。』汝之此意,非益政理。」

정관 원년에 봉한 글을 올린 이가 있어, 진왕부의 옛 군사에게 아울러 무관 직을 주어 불러들여 숙위하게 하기를 청하였다. 태종이 말하였다.

「짐은 천하로 집을 삼으니 한 가지 사물에 사사로울 수 없다. 오직 재주와 행실만이 맡기는 바이니 어찌 새롭고 오램으로 차등을 두겠는가. 하물며 옛사람이 이르기를 『군사는 불과 같아 거두지 않으면 장차 스스로 태운다』 하였다. 너의 이 뜻은 정사와 다스림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貞觀元年,吏部尚書長孫無忌嘗被召,不解佩刀入東上閣門,出閣門後,監門校尉始覺。尚書右仆射封德彜議,以監門校尉不覺,罪當死,無忌誤帶刀入,徒二年,罰銅二十斤。太宗從之。大理少卿戴胄駁曰:「校尉不覺,無忌帶刀入內,同為誤耳。夫臣子之於尊極,不得稱誤,準律云:『供御湯藥、飲食、舟船,誤不如法者,皆死。』陛下若錄其功,非憲司所決;若當據法,罰銅未為得理。」太宗曰:「法者非朕一人之法,乃天下之法,何得以無忌國之親戚,便欲撓法耶?」更令定議。德彜執議如初太宗將從其議,胄又駁奏曰:「校尉緣無忌以致罪,於法當輕,若論其過誤,則為情一也,而生死頓殊,敢以固請。」太宗乃免校尉之死。

정관 원년에 이부상서 장손무기가 일찍이 부름을 받았는데, 찬 칼을 풀지 않고 동상각문에 들어갔다가 각문을 나온 뒤에야 감문교위가 비로소 알아차렸다. 상서우복야 봉덕이가 의논하여, 감문교위가 알아차리지 못하였으니 죄가 죽음에 마땅하고 무기는 잘못 칼을 차고 들어갔으니 도형 이 년에 구리 스무 근을 벌로 매기자 하였다. 태종이 이를 좇았다. 대리소경 대주가 논박하였다.

「교위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과 무기가 칼을 차고 안에 들어간 것은 함께 잘못일 뿐입니다. 무릇 신하와 자식이 지극히 높은 이에게 잘못이라 일컬을 수 없습니다. 율에 견주어 이르기를 『임금께 올리는 탕약과 마시고 먹는 것과 배는 잘못하여 법대로 하지 않은 이는 다 죽인다』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만약 그 공을 적으신다면 법을 맡은 관사가 결단할 바가 아니요, 만약 법에 따르셔야 한다면 구리로 벌하는 것은 이치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법은 짐 한 사람의 법이 아니라 곧 천하의 법이다. 어찌 무기가 나라의 인척이라 하여 곧 법을 굽히려 하겠는가.」

다시 의논을 정하게 하였다. 덕이가 처음처럼 의논을 고집하여 태종이 그 의논을 좇으려 하니 대주가 또 논박하여 아뢰었다.

「교위는 무기로 말미암아 죄에 이르렀으니 법으로는 마땅히 가벼워야 합니다. 만약 그 허물과 잘못을 논하면 곧 실정이 하나인데 살고 죽음이 문득 갈리니 감히 굳이 청합니다.」

태종이 이에 교위의 죽음을 면해 주었다.

是時,朝廷大開選舉,或有詐偽階資者,太宗令其自首,不首,罪至於死。俄有詐偽者事泄,胄據法斷流以奏之。太宗曰:「朕初下敕,不首者死,今斷從法,是示天下以不信矣。」胄曰:「陛下當即殺之,非臣所及,既付所司,臣不敢虧法。」太宗曰:「卿自守法,而令朕失信耶?」胄曰:「法者國家所以布大信於天下,言者當時喜怒之所發耳!陛下發一朝之忿,而許殺之,既知不可,而寘之以法,此乃忍小忿而存大信,臣竊為陛下惜之。」太宗曰:「朕法有所失,卿能正之,朕復何憂也?」

이때 조정이 뽑아 들이기를 크게 열었는데, 더러 품계와 이력을 속여 꾸민 이가 있었다. 태종이 스스로 자백하게 하고 자백하지 않으면 죄가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이윽고 속여 꾸민 이가 있어 일이 드러나자 대주가 법에 따라 귀양으로 끊어 아뢰었다. 태종이 말하였다.

「짐이 처음 칙명을 내려 자백하지 않는 이는 죽인다 하였는데, 이제 법에 따라 끊으니 이는 천하에 믿음직하지 못함을 보이는 것이다.」

대주가 말하였다.

「폐하께서 그때 곧 죽이셨다면 신이 미칠 바가 아니오나, 이미 맡은 관사에 부치셨으니 신은 감히 법을 이지러뜨리지 못합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경은 스스로 법을 지키면서 짐으로 하여금 믿음을 잃게 하는가?」

대주가 말하였다.

「법이란 나라가 큰 믿음을 천하에 펴는 바요, 말이란 그때의 기쁨과 노여움이 나온 것일 뿐입니다. 폐하께서 하루아침의 분함을 내시어 죽이기를 허락하셨다가, 이미 옳지 않음을 아시고 법으로 처리하시니 이는 곧 작은 분함을 참고 큰 믿음을 남기는 것입니다. 신이 가만히 폐하를 위해 이를 아깝게 여깁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짐의 법에 잃은 바가 있어도 경이 이를 바로잡을 수 있으니 짐이 다시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貞觀二年,太宗謂房玄齡等曰:「朕比見隋代遺老,咸稱高颎善為相者,遂觀其本傳,可謂公平正直,尤識治體,隋室安危,系其存沒。煬帝無道,枉見誅夷,何嘗不想見此人,廢書欽嘆!又漢、魏以來,諸葛亮為丞相,亦甚平直,嘗表廢廖立、李嚴於南中,立聞亮卒,泣曰:『吾其左衽矣!』嚴聞亮卒,發病而死。故陳壽稱『亮之為政,開誠心,布公道,盡忠益時者,雖讎必賞;犯法怠慢者,雖親必罰。』卿等豈可不企慕及之?朕今每慕前代帝王之善者,卿等亦可慕宰相之賢者,若如是,則榮名高位,可以長守。」玄齡對曰:「臣聞理國要道,在於公平正直,故《尚書》云:『無偏無黨,王道蕩蕩。無黨無偏,王道平平。』又孔子稱『舉直錯諸枉,則民服』。今聖慮所尚,誠足以極政教之源,盡至公之要,囊括區宇,化成天下。」太宗曰:「此直朕之所懷,豈有與卿等言之而不行也?」

정관 이 년에 태종이 방현령 등에게 말하였다.

「짐이 요사이 수나라 때의 남은 늙은이를 보건대 다 고경이 재상 노릇을 잘하였다 일컫는다. 마침내 그 본전을 보니 공평하고 바르고 곧으며 더욱 다스림의 요체를 알았다 이를 만하다. 수나라 왕실의 편안함과 위태로움이 그의 있고 없음에 매였다. 양제가 도가 없어 억울하게 베임을 당하였으니, 어찌 이 사람을 만나 보고 싶어 책을 놓고 우러러 탄식하지 않은 적이 있었겠는가.

또 한나라와 위나라 이래로 제갈량이 승상이 되었는데 또한 몹시 고르고 곧았다. 일찍이 표를 올려 요립과 이엄을 남중으로 폐하였는데, 요립은 제갈량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울며 『내가 이제 오랑캐가 되겠구나』 하였고, 이엄은 제갈량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병이 나서 죽었다. 그러므로 진수가 일컫기를 『제갈량이 정사를 함에 정성된 마음을 열고 공정한 도를 펴, 충성을 다해 때에 보탬이 되는 이는 비록 원수라도 반드시 상 주고 법을 범하고 게으른 이는 비록 가까워도 반드시 벌하였다』 하였다. 공들이 어찌 우러러 사모하여 미치려 하지 않겠는가.

짐이 이제 앞선 세상 제왕 가운데 착한 이를 사모할 때마다, 공들도 또한 재상 가운데 어진 이를 사모할 만하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곧 영화로운 이름과 높은 자리를 길이 지킬 수 있다.」

현령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건대 나라를 다스리는 요긴한 도가 공평하고 바르고 곧음에 있다 합니다. 그러므로 『상서』에 이르기를 『치우침이 없고 무리 지음이 없으면 왕의 도가 넓고 넓다. 무리 지음이 없고 치우침이 없으면 왕의 도가 고르고 고르다』 하였습니다. 또 공자가 일컫기를 『곧은 이를 들어 굽은 이 위에 두면 곧 백성이 복종한다』 하였습니다. 이제 성스러운 생각이 높이시는 바가 참으로 정사와 가르침의 근원을 다하고 지극히 공정함의 요긴함을 다하시니, 온 누리를 주머니에 넣고 교화가 천하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이는 다만 짐이 품은 바이니 어찌 공들과 이를 말하고서 행하지 않겠는가.」

長樂公主,文德皇后所生也。貞觀六年將出降,敕所司資送倍於長公主。魏徵奏言:「昔漢明帝欲封其子,帝曰:『朕子豈得同於先帝子乎?可半楚、淮陽王。』前史以為美談。天子姊妹為長公主,天子之女為公主,既加長字,良以尊於公主也,情雖有殊,義無等別。若令公主之禮有過長公主,理恐不可,實願陛下思之。」太宗稱善。乃以其言告後,後嘆曰:「嘗聞陛下敬重魏徵,殊未知其故,而今聞其諫,乃能以義制人王之情,真社稷臣矣!妾與陛下結發為夫妻,曲蒙禮敬,情義深重,每將有言,必俟顏色,尚不敢輕犯威嚴,況在臣下,情疏禮隔?故韓非謂之說難,東方朔稱其不易,良有以也,忠言逆耳而利於行,有國有家者深所要急,納之則世治,杜之則政亂,誠願陛下詳之,則天下幸甚!」因請遣中使賫帛五百匹,詣徵宅以賜之。

장락공주는 문덕황후가 낳은 이다. 정관 육 년에 시집보내려 하면서 맡은 관사에 칙명하여 딸려 보내는 물자를 장공주의 곱절로 하게 하였다. 위징이 아뢰었다.

「옛날 한 명제가 그 아들을 봉하려 할 때 황제가 이르기를 『짐의 아들이 어찌 앞선 황제의 아들과 같을 수 있겠는가. 초왕과 회양왕의 반으로 하라』 하였고, 앞선 역사가 이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삼았습니다. 천자의 손위 누이와 손아래 누이가 장공주가 되고 천자의 딸이 공주가 되는데, 「장」 자를 더하였으니 참으로 공주보다 높은 것입니다. 정으로는 비록 다름이 있으나 의로움에는 등급의 가름이 없습니다. 만약 공주의 예가 장공주를 지나치게 하시면 이치가 옳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참으로 폐하께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태종이 좋다 일컫고 이에 그 말을 황후에게 알렸다. 황후가 탄식하였다.

「일찍이 폐하께서 위징을 공경하고 무겁게 여기신다는 말을 듣고도 자못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는데, 이제 그 간언을 들으니 곧 의로움으로 사람의 왕 된 이의 정을 눌렀습니다. 참으로 사직의 신하입니다.

제가 폐하와 머리를 맺어 부부가 되어 굽어 예와 공경을 입고 정과 의로움이 깊고 무거우나, 말씀드릴 것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낯빛을 기다리고도 오히려 감히 가벼이 위엄을 범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아랫신하로서 정이 성글고 예가 막혀 있음에랴. 그러므로 한비가 이를 「달래기 어려움」이라 하고 동방삭이 그 쉽지 않음을 일컬은 것이 참으로 까닭이 있습니다.

충성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로우니 나라를 두고 집을 둔 이에게 깊이 요긴하고 급한 바입니다. 이를 받아들이면 곧 세상이 다스려지고 이를 막으면 곧 정사가 어지러워집니다. 참으로 폐하께서 이를 자세히 살피시기를 바라니 그러면 천하가 몹시 다행입니다.」

이에 중사를 보내 비단 오백 필을 가지고 위징의 집에 가서 내리게 하기를 청하였다.

刑部尚書張亮坐謀反下獄,詔令百官議之,多言亮當誅,惟殿中少監李道裕奏亮反形未具,明其無罪。太宗既盛怒,竟殺之。俄而刑部侍郎有闕,令宰相妙擇其人,累奏不可。太宗曰:「吾已得其人矣,往者李道裕議張亮云『反形未具』,可謂公平矣。當時雖不用其言,至今追悔。」遂授道裕刑部侍郎。

형부상서 장량이 모반에 걸려 옥에 갇히자 조서로 온갖 벼슬아치에게 의논하게 하였는데 흔히 장량이 베임에 마땅하다 말하였다. 오직 전중소감 이도유만이 장량의 반역한 모양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 아뢰어 그 죄 없음을 밝혔다. 태종이 이미 크게 노한 터라 마침내 그를 죽였다.

이윽고 형부시랑 자리가 비어 재상에게 그 사람을 오묘히 고르게 하였는데, 여러 번 아뢴 이가 옳지 않았다. 태종이 말하였다.

「내가 이미 그 사람을 얻었다. 지난날 이도유가 장량을 의논하여 『반역한 모양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 하였으니 공평하다 이를 만하다. 그때 비록 그 말을 쓰지 않았으나 지금까지 뉘우친다.」

마침내 도유에게 형부시랑을 주었다.

貞觀初,太宗謂侍臣曰:「朕今孜孜求士,欲專心政道,聞有好人,則抽擢驅使。而議者多稱『彼者皆宰臣親故』,但公等至公,行事勿避此言,便為形跡。古人『內舉不避親,外舉不避讎』,而為舉得其真賢故也。但能舉用得才,雖是子弟及有讎嫌,不得不舉。」

정관 처음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짐이 이제 부지런히 선비를 구하여 마음을 정사의 도에 오로지하려 한다. 좋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곧 뽑아 올려 부린다. 그런데 의논하는 이들이 흔히 『저들은 다 재상의 친척이나 옛 친구다』 일컫는다. 다만 공들이 지극히 공정하면 일을 행하는 데 이 말을 피하지 말라. 그러면 곧 자취가 될 뿐이다. 옛사람이 『안으로 천거함에 친척을 피하지 않고 밖으로 천거함에 원수를 피하지 않는다』 한 것은 천거하여 참으로 어진 이를 얻었기 때문이다. 다만 천거하여 재주 있는 이를 얻을 수 있다면, 비록 자제이거나 원수로 꺼리는 사이라도 천거하지 않을 수 없다.」

貞觀十一年,時屢有閹宦充外使,妄有奏,事發,太宗怒。魏徵進曰:「閹豎雖微,狎近左右,時有言語,輕而易信,浸潤之譖,為患特深。今日之明,必無此慮,為子孫教,不可不杜絕其源。」太宗曰:「非卿,朕安得聞此語?自今已後,充使宜停。」魏徵因上疏曰:

정관 십일 년에 그때 여러 번 환관이 밖으로 나가는 사신에 채워졌는데 함부로 아뢴 것이 있어 일이 드러나자 태종이 노하였다. 위징이 나아가 말하였다.

「환관이 비록 하찮으나 좌우에 익숙히 가까이 있어 때로 하는 말이 가벼운데도 쉽게 믿습니다. 물이 스미듯 하는 헐뜯음은 걱정됨이 특히 깊습니다. 오늘의 밝으심에는 반드시 이런 걱정이 없겠으나 자손을 위한 가르침으로는 그 근원을 막아 끊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경이 아니면 짐이 어찌 이 말을 들었겠는가. 이제부터 뒤로는 사신에 채우는 일을 마땅히 그치라.」

위징이 이에 상소하였다.

臣聞為人君者,在乎善善而惡惡,近君子而遠小人。善善明,則君子進矣;惡惡著,則小人退矣。近君子,則朝無粃政;遠小人,則聽不私邪。小人非無小善,君子非無小過。君子小過,蓋白玉之微瑕;小人小善,乃鉛刀之一割。鉛刀一割,良工之所不重,小善不足以掩眾惡也;白玉微瑕,善賈之所不棄,小疵不足以妨大美也。善小人之小善,謂之善善,惡君子之小過,謂之惡惡,此則蒿蘭同臭,玉石不分,屈原所以沈江,卞和所以泣血者也。既識玉石之分,又辨蒿蘭之臭,善善而不能進,惡惡而不能去,此郭氏所以為墟,史魚所以遺恨也。

신이 듣건대 남의 임금 된 이는 착함을 착하다 하고 모짊을 미워하며 군자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하는 데 있다 합니다. 착함을 착하다 함이 밝으면 곧 군자가 나아오고, 모짊을 미워함이 드러나면 곧 소인이 물러납니다. 군자를 가까이하면 곧 조정에 쭉정이 같은 정사가 없고, 소인을 멀리하면 곧 들음이 그릇된 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소인이라고 작은 착함이 없는 것이 아니요 군자라고 작은 허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군자의 작은 허물은 대개 흰 옥의 작은 티요, 소인의 작은 착함은 곧 납칼의 한 번 벰입니다. 납칼의 한 번 벰은 좋은 장인이 무겁게 여기지 않는 바이니 작은 착함이 뭇 모짊을 가리기에 넉넉하지 않고, 흰 옥의 작은 티는 좋은 장사꾼이 버리지 않는 바이니 작은 흠이 큰 아름다움을 방해하기에 넉넉하지 않습니다.

소인의 작은 착함을 좋다 하는 것을 착함을 착하다 함이라 이르고, 군자의 작은 허물을 미워하는 것을 모짊을 미워함이라 이른다면, 이는 곧 쑥과 난초가 냄새를 같이하고 옥과 돌이 갈리지 않는 것이니, 굴원이 강에 빠지고 변화가 피눈물을 흘린 까닭입니다. 이미 옥과 돌의 가름을 알고 또 쑥과 난초의 냄새를 가리면서도, 착함을 착하다 하면서 나아가게 하지 못하고 모짊을 미워하면서 없애지 못한다면, 이는 곽씨가 폐허가 된 까닭이요 사어가 한을 남긴 까닭입니다.

陛下聰明神武,天姿英睿,志存泛愛,引納多塗,好善而不甚擇人,疾惡而未能遠佞。又出言無隱,疾惡太深,聞人之善或未全信,聞人之惡以為必然。雖有獨見之明,猶恐理或未盡。何則?君子揚人之善,小人訐人之惡。聞惡必信則小人之道長矣,聞善或疑則君子之道消矣。為國家者急於進君子而退小人,乃使君子道消,小人道長,則君臣失序,上下否隔,亂亡不恤,將何以治乎?且世俗常人,心無遠慮,情在告訐,好言朋黨。夫以善相成謂之同德,以惡相濟謂之朋黨,今則清濁共流,善惡無別,以告訐為誠直,以同德為朋黨。以之為朋黨,則謂事無可信;以之為誠直,則謂言皆可取。此君恩所以不結於下,臣忠所以不達於上。大臣不能辯正,小臣莫之敢論,遠近承風,混然成俗,非國家之福,非為治之道。適足以長奸邪,亂視聽,使人君不知所信,臣下不得相安。若不遠慮,深絕其源,則後患未之息也。今之幸而未敗者,由乎君有遠慮,雖失之於始,必得之於終故也。若時逢少隳,往而不返,雖欲悔之,必無所及。既不可以傳諸後嗣,復何以垂法將來?且夫進善黜惡,施於人者也;以古作鑒,施於己者也。鑒貌在乎止水,鑒已在乎哲人。能以古之哲王,鑒於己之行事,則貌之妍醜宛然在目,事之善惡自得於心,無勞司過之史,不假芻蕘之議,巍巍之功日著,赫赫之名彌遠。為人君者可不務乎?

폐하께서는 총명하고 신령하고 굳세시며 하늘이 준 바탕이 뛰어나고 슬기로우시어, 뜻이 널리 사랑함에 있고 이끌어 받아들이는 길이 많으십니다. 그러나 착함을 좋아하시되 사람을 몹시 가리지는 않으시고, 모짊을 미워하시되 아첨하는 이를 멀리하지는 못하십니다. 또 말을 내심에 숨기심이 없고 모짊 미워하기가 너무 깊으시어, 남의 착함을 들으면 더러 온전히 믿지 않으시고 남의 모짊을 들으면 반드시 그러하다 여기십니다. 비록 홀로 보시는 밝음이 있으나 오히려 이치가 더러 다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어찌해서입니까. 군자는 남의 착함을 드날리고 소인은 남의 모짊을 들춥니다. 모짊을 들으면 반드시 믿으신다면 곧 소인의 도가 자라고, 착함을 들으면 더러 의심하신다면 곧 군자의 도가 사라집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는 군자를 나아가게 하고 소인을 물리치기에 급한데, 도리어 군자의 도를 사라지게 하고 소인의 도를 자라게 한다면 곧 임금과 신하가 차례를 잃고 위아래가 막혀 갈리니, 어지러움과 망함을 걱정하지 않고 장차 무엇으로 다스리겠습니까.

또 세속의 예사 사람은 마음에 먼 헤아림이 없고 정이 남 들추는 데 있어 무리 지었다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무릇 착함으로 서로 이루는 것을 덕을 같이한다 이르고 모짊으로 서로 돕는 것을 무리 지었다 이르는데, 이제는 곧 맑음과 흐림이 함께 흐르고 착함과 모짊에 가름이 없어, 들추는 것을 정성되고 곧다 하고 덕을 같이하는 것을 무리 지었다 합니다. 무리 지었다 하면 곧 일이 믿을 만한 것이 없다 이르고, 정성되고 곧다 하면 곧 말이 다 취할 만하다 이릅니다. 이것이 임금의 은혜가 아래에 맺히지 않고 신하의 충성이 위에 이르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대신이 가려 바로잡지 못하고 작은 신하가 감히 논하지 못하며, 멀고 가까운 데서 바람을 받아 뒤섞여 풍속을 이루니, 나라의 복이 아니요 다스림의 도가 아닙니다. 마침 간사하고 그릇됨을 자라게 하고 보고 듣는 것을 어지럽혀, 임금으로 하여금 믿을 바를 알지 못하게 하고 아랫신하로 하여금 서로 편안할 수 없게 하기에 넉넉할 뿐입니다. 만약 멀리 헤아려 그 근원을 깊이 끊지 않으시면 곧 뒷걱정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다행히 무너지지 않은 것은 임금께 먼 헤아림이 있어, 비록 처음에 잃었어도 반드시 끝에 얻은 까닭입니다. 만약 때가 조금이라도 무너짐을 만나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비록 뉘우치려 하여도 반드시 미칠 바가 없습니다. 이미 뒤를 잇는 이에게 전할 수도 없는데 다시 무엇으로 앞날에 법을 드리우겠습니까.

또 무릇 착한 이를 나아가게 하고 모진 이를 물리치는 것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요, 옛것으로 거울을 삼는 것은 제게 베푸는 것입니다. 모습을 비추는 것은 멎은 물에 있고 저를 비추는 것은 슬기로운 이에게 있습니다. 옛 슬기로운 왕으로 제가 일을 행한 것을 비추어 볼 수 있으면, 곧 모습의 곱고 미움이 완연히 눈에 있고 일의 착함과 모짊이 절로 마음에 얻어집니다. 허물을 맡은 사관을 수고롭게 할 것도 없고 꼴 베는 이의 의논을 빌릴 것도 없이, 높고 높은 공이 날로 드러나고 빛나고 빛나는 이름이 더욱 멀리 갑니다. 남의 임금 된 이가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臣聞道德之厚,莫尚於軒、唐;仁義之隆,莫彰於舜、禹。欲繼軒、唐之風,將追舜、禹之跡,必鎮之以道德,弘之以仁義,舉善而任之,擇善而從之。不擇善任能,而委之俗吏,既無遠度,必失大體,惟奉三尺之律,以繩四海之人,欲求垂拱無為,不可得也。故聖哲君臨,移風易俗,不資嚴刑峻法,在仁義而已。故非仁無以廣施,非義無以正身。惠下以仁,正身以義,則其政不嚴而理,其教不肅而成矣。然則仁義,理之本也;刑罰,理之末也。為理之有刑罰,猶執御之有鞭策也,人皆從化,而刑罰無所施;馬盡其力,則有鞭策無所用。由此言之,刑罰不可致理,亦己明矣。故《潛夫論》曰:「人君之理莫大於道德教化也。民有性、有情、有化、有俗。情性者,心也,本也;俗化者,行也,末也。是以上君撫世,先其本而後其末,順其心而履其行。心情茍正,則奸慝無所生,邪意無所載矣。是故上聖無不務理民心,故曰『聽訟,吾猶人也,必也使無訟乎?』道之以禮,務厚其性而明其情。民相愛,則無相傷害之意;動思義,則無畜奸邪之心。若此,非律令之所理也,此乃教化之所致也。聖人甚尊德禮而卑刑罰,故舜先敕契以敬敷五教,而後任咎繇以五刑也。凡立法者,非以司民短,而誅過誤也,乃以防奸惡,而救禍患,檢淫邪,而內正道。民蒙善化,則人有士君子之心;被惡政,則人有懷奸亂之慮。故善化之養民,猶工之為曲豉也。六合之民,猶一蔭也,黔首之屬,猶豆麥也,變化雲為,在將者耳!遭良吏,則懷忠信而履仁厚;遇惡吏,則懷奸邪而行淺薄。忠厚積,則致太平;淺薄積,則致危亡。是以聖帝明王,皆敦德化而薄威刑也。德者,所以循己也,威者,所以治人也。民之生也,猶鑠金在爐,方圓薄厚,隨镕制耳!是故世之善惡,俗之薄厚,皆在於君。世之主誠能使六合之內、舉世之人,感忠厚之情而無淺薄之惡,各奉公正之心,而無奸險之慮,則醇釅之俗,復見於茲矣。」後王雖未能遵,專尚仁義,當慎刑恤典,哀敬無私,故管子曰:「聖君任法不任智,任公不任私。」故王天下,理國家。

신이 듣건대 도덕의 두터움은 헌원과 요임금보다 높은 이가 없고 어짊과 의로움의 융성함은 순임금과 우임금보다 드러난 이가 없다 합니다. 헌원과 요임금의 풍모를 잇고 순임금과 우임금의 자취를 좇으려 하시면, 반드시 도덕으로 진정하고 어짊과 의로움으로 넓히며 착한 이를 들어 맡기고 착한 것을 가려 좇으셔야 합니다.

착한 것을 가리고 능한 이에게 맡기지 않고 속된 벼슬아치에게 맡기면, 이미 먼 헤아림이 없어 반드시 큰 줄기를 잃습니다. 오직 석 자의 율만 받들어 사해의 사람을 묶으면서 옷깃을 드리우고 함이 없기를 구하려 한들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스럽고 슬기로운 이가 임금으로 임하여 풍속을 옮기고 바꿀 때 엄한 형벌과 매운 법에 힘입지 않고 어짊과 의로움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짊이 아니면 널리 베풀 수 없고 의로움이 아니면 몸을 바르게 할 수 없습니다. 어짊으로 아래에 은혜를 베풀고 의로움으로 몸을 바르게 하면, 곧 그 정사가 엄하지 않아도 다스려지고 그 가르침이 엄숙하지 않아도 이루어집니다.

그러한즉 어짊과 의로움은 다스림의 밑동이요 형벌은 다스림의 끝입니다. 다스림에 형벌이 있는 것은 마치 말 모는 이에게 채찍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다 교화를 좇으면 형벌은 베풀 데가 없고, 말이 그 힘을 다하면 채찍이 있어도 쓸 데가 없습니다. 이로 말하면 형벌로 다스림에 이를 수 없음이 또한 이미 밝습니다.

그러므로 『잠부론』에 이르기를 「임금의 다스림은 도덕과 가르침보다 큰 것이 없다. 백성에게는 성품이 있고 정이 있고 교화가 있고 풍속이 있다. 정과 성품은 마음이요 밑동이며, 풍속과 교화는 행실이요 끝이다. 그래서 웃임금이 세상을 어루만짐에 그 밑동을 먼저 하고 그 끝을 뒤로 하며, 그 마음을 순히 하고 그 행실을 밟게 한다. 마음과 정이 진실로 바르면 곧 간사하고 사특함이 생길 데가 없고 그릇된 뜻이 실릴 데가 없다.

그래서 위없는 성인이 백성의 마음을 다스리기에 힘쓰지 않은 이가 없다. 그러므로 『송사를 듣는 것은 나도 남과 같으나 반드시 송사가 없게 하리라』 하였다. 예로 이끌어 그 성품을 두터이 하고 그 정을 밝히기에 힘쓴다. 백성이 서로 사랑하면 곧 서로 다치게 할 뜻이 없고, 움직임에 의로움을 생각하면 곧 간사하고 그릇된 마음을 쌓지 않는다. 이와 같으면 율령으로 다스릴 바가 아니니 이는 곧 가르침이 이룬 것이다.

성인은 덕과 예를 몹시 높이고 형벌을 낮게 여겼다. 그러므로 순임금이 먼저 설에게 칙명하여 다섯 가르침을 공경히 펴게 하고 그 뒤에 고요에게 다섯 형벌을 맡겼다. 무릇 법을 세우는 것은 백성의 모자람을 맡아 잘못을 베려는 것이 아니라, 곧 간사함과 모짊을 막아 재앙과 걱정을 건지고 음란함과 그릇됨을 살펴 바른 도로 들이려는 것이다.

백성이 착한 교화를 입으면 곧 사람에게 선비와 군자의 마음이 있고, 모진 정사를 입으면 곧 사람에게 간사함과 어지러움을 품는 헤아림이 있다. 그러므로 착한 가르침이 백성을 기르는 것은 마치 장인이 누룩과 메주를 만드는 것과 같다. 여섯 어울림의 백성은 마치 한 그늘 같고 검은 머리 무리는 마치 콩과 보리 같으니, 변화가 오직 이끄는 이에게 있을 뿐이다. 좋은 벼슬아치를 만나면 곧 충성과 믿음을 품고 어질고 두터움을 밟으며, 모진 벼슬아치를 만나면 곧 간사함과 그릇됨을 품고 얄팍함을 행한다. 충성과 두터움이 쌓이면 곧 태평에 이르고 얄팍함이 쌓이면 곧 위태로움과 망함에 이른다. 그래서 성스러운 황제와 밝은 왕이 다 덕으로 가르치기를 도타이 하고 위엄 있는 형벌을 엷게 하였다.

덕은 저를 좇게 하는 바요 위엄은 남을 다스리는 바이다. 백성이 살아감은 마치 녹인 쇠가 화로에 있는 것과 같아서, 모나고 둥글고 엷고 두터움이 거푸집을 따를 뿐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착함과 모짊과 풍속의 엷음과 두터움이 다 임금에게 있다. 세상의 임금이 참으로 여섯 어울림 안과 온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충성되고 두터운 정을 느껴 얄팍한 모짊이 없게 하고, 저마다 공정한 마음을 받들어 간사하고 험한 헤아림이 없게 할 수 있다면, 곧 순수하고 진한 풍속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뒷 왕이 비록 이를 좇아 오로지 어짊과 의로움만 높이지는 못하더라도, 마땅히 형벌을 삼가고 법전을 가엾이 여겨 슬퍼하고 공경하며 사사로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관자가 말하기를 「성스러운 임금은 법에 맡기고 슬기에 맡기지 않으며, 공정함에 맡기고 사사로움에 맡기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에 왕 노릇 하고 나라를 다스립니다.

貞觀之初,志存公道,人有所犯,一一於法。縱臨時處斷或有輕重,但見臣下執論,無不忻然受納。民知罪之無私,故甘心而不怨;臣下見言無忤,故盡力以效忠。頃年以來,意漸深刻,雖開三面之網,而察見淵中之魚,取舍在於愛憎,輕重由乎喜怒。愛之者,罪雖重而強為之辭;惡之者,過雖小而深探其意。法無定科,任情以輕重;人有執論,疑之以阿偽。故受罰者無所控告,當官者莫敢正言。不服其心,但窮其口,欲加之罪,其無辭乎?又五品已上有犯,悉令曹司聞奏。本欲察其情狀,有所哀矜;今乃曲求小節,或重其罪,使人攻擊惟恨不深。事無重條,求之法外所加,十有六七,故頃年犯者懼上聞,得付法司,以為多幸。告訐無已,窮理不息,君私於上,吏奸於下,求細過而忘大體,行一罰而起眾奸,此乃背公平之道,乖泣辜之意,欲其人和訟息,不可得也。

정관 처음에는 뜻이 공정한 도에 있어 사람이 범한 바가 있으면 하나하나 법으로 하셨습니다. 설사 때에 임하여 처단하심에 더러 가볍고 무거움이 있더라도, 다만 아랫신하가 붙들어 논하는 것을 보면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백성은 죄줌에 사사로움이 없음을 알았으므로 달게 여겨 원망하지 않았고, 아랫신하는 말하여도 거스름이 없음을 보았으므로 힘을 다하여 충성을 바쳤습니다.

요 몇 해 이래로 뜻이 차츰 깊고 모질어져, 비록 세 면의 그물을 여신다 하면서도 못 속의 고기까지 살펴보시고, 취하고 버림이 사랑과 미움에 있으며 가볍고 무거움이 기쁨과 노여움에서 말미암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죄가 비록 무거워도 억지로 그를 위해 말을 만들고, 미워하는 이는 허물이 비록 작아도 그 뜻을 깊이 캡니다.

법에 정해진 조목이 없이 정을 따라 가볍게도 무겁게도 하고, 사람이 붙들어 논하는 것이 있으면 아첨하고 거짓되다 의심하십니다. 그러므로 벌 받는 이는 하소연할 데가 없고 벼슬에 있는 이는 감히 바른말을 못합니다. 그 마음을 복종시키지 않고 다만 그 입만 막으니, 죄를 더하려 하면 어찌 말이 없겠습니까.

또 오품 이상이 범한 것이 있으면 다 관사로 하여금 아뢰게 하십니다. 본디 그 실정을 살펴 가엾이 여기는 바가 있으려 하신 것인데, 이제는 곧 자잘한 흠을 굽혀 구하여 더러 그 죄를 무겁게 하시니, 사람으로 하여금 치고 때리기를 오직 깊지 못할까 한스러워하게 합니다. 일에 무거운 조목이 없는데 법 밖에서 구하여 더하는 것이 열에 예닐곱입니다. 그러므로 요 몇 해 범한 이는 위에 들릴까 두려워하고 법사에 부쳐지면 몹시 다행이라 여깁니다.

들추기가 그치지 않고 캐어 다스리기가 쉬지 않아, 임금은 위에서 사사로이 하고 벼슬아치는 아래에서 간사하며, 잔 허물을 구하고 큰 줄기를 잊고 한 번 벌하고 뭇 간사함을 일으킵니다. 이는 곧 공평한 도를 등지고 죄인을 보고 울던 뜻과 어긋난 것이니, 그 사람들이 화하고 송사가 그치기를 바란들 얻을 수 없습니다.

故《體論》云:「夫淫泆盜竊,百姓之所惡也,我從而刑罰之,雖過乎當,百姓不以我為暴者,公也。怨曠饑寒,亦百姓之所惡也,遁而陷之法,我從而寬宥之,百姓不以我為偏者,公也。我之所重,百姓之所憎也;我之所輕,百姓之所憐也。是故賞輕而勸善,刑省而禁奸。」由此言之,公之於法,無不可也,過輕亦可。私之於法無可也,過輕則縱奸,過重則傷善。聖人之於法也公矣,然猶懼其未也,而救之以化,此上古所務也。後之理獄者則不然:未訊罪人,則先為之意,及其訊之,則驅而致之意,謂之能;不探獄之所由,生為之分,而上求人主之微旨以為制,謂之忠。其當官也能,其事上也忠,則名利隨而與之,驅而陷之,欲望道化之隆,亦難矣。

그러므로 『체론』에 이르기를 「무릇 음란함과 도둑질은 백성이 미워하는 바다. 내가 좇아 형벌하면 비록 마땅함을 지나쳐도 백성이 나를 사납다 하지 않는 것은 공정하기 때문이다. 홀로 됨과 굶주림과 추위 또한 백성이 미워하는 바다. 숨었다가 법에 빠지면 내가 좇아 너그러이 용서하는데, 백성이 나를 치우쳤다 하지 않는 것은 공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겁게 여기는 바는 백성이 미워하는 바요, 내가 가벼이 여기는 바는 백성이 가엾이 여기는 바다. 그러므로 상이 가벼워도 착함을 권하고 형벌이 적어도 간사함을 금한다」 하였습니다.

이로 말하면 공정함이 법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없어 지나치게 가벼워도 또한 좋습니다. 사사로움이 법에 있어서는 될 것이 없어, 지나치게 가벼우면 곧 간사함을 놓아주고 지나치게 무거우면 곧 착함을 다칩니다. 성인이 법에 공정하였으나 오히려 그것으로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교화로 건졌으니, 이것이 아득한 옛날에 힘쓰던 바입니다.

뒷날 옥사를 다스리는 이는 곧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을 아직 묻지 않고 먼저 뜻을 정하고, 묻는 데 이르러서는 곧 몰아서 그 뜻에 이르게 하는 것을 능하다 하고, 옥사가 말미암은 바를 캐어 살려 줄 몫을 삼지 않고 위로 임금의 은미한 뜻을 구하여 판단으로 삼는 것을 충성이라 합니다. 그 벼슬에 있음에 능하다 하고 그 위를 섬김에 충성이라 하여 이름과 이로움이 따라 주어지니, 몰아서 빠뜨리면서 도와 교화가 융성하기를 바란들 또한 어렵습니다.

凡聽訟理獄,必原父子之親,立君臣之義,權輕重之序,測淺深之量。悉其聰明,致其忠愛,疑則與眾共之。疑則從輕者,所以重之也,故舜命咎繇曰:「汝作士,惟刑之恤。」又復加之以三訊,眾所善,然後斷之。是以為法,參之人情。故《傳》曰:「小大之獄,雖不能察,必以情。」而世俗拘愚苛刻之吏,以為情也者取貨者也,立愛憎者也,右親戚者也,陷怨讎者也。何世俗小吏之情,與夫古人之懸遠乎?有司以此情疑之群吏,人主以此情疑之有司,是君臣上下通相疑也,欲其盡忠立節,難矣。

무릇 송사를 듣고 옥사를 다스릴 때는 반드시 아비와 아들의 친함에 바탕을 두고 임금과 신하의 의로움을 세우며, 가볍고 무거움의 차례를 저울질하고 얕고 깊음의 헤아림을 재야 합니다. 그 총명함을 다하고 그 충성과 사랑을 이루며, 의심스러우면 뭇사람과 함께합니다. 의심스러우면 가벼운 쪽을 좇는 것은 이를 무겁게 여기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순임금이 고요에게 명하기를 「너는 사가 되었으니 오직 형벌을 가엾이 여기라」 하였습니다. 또 다시 세 번 묻기를 더하여 뭇사람이 좋다 한 뒤에야 끊었습니다. 그래서 법을 삼음에 사람의 정을 참고합니다. 그러므로 『전』에 이르기를 「크고 작은 옥사를 비록 다 살피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실정으로 한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속의 얽매이고 어리석고 가혹한 벼슬아치는 실정이라는 것을 재물 받는 것이라 하고, 사랑과 미움을 세우는 것이라 하고, 친척을 편드는 것이라 하고, 원수를 빠뜨리는 것이라 합니다. 어찌 세속 작은 벼슬아치의 실정이 옛사람과 이토록 아득히 멉니까. 맡은 관사가 이 실정으로 뭇 벼슬아치를 의심하고 임금이 이 실정으로 맡은 관사를 의심하면, 이는 임금과 신하, 위아래가 통틀어 서로 의심하는 것이니 그들이 충성을 다하고 절개를 세우기를 바란들 어렵습니다.

凡理獄之情,必本所犯之事以主,不敢訊,不旁求,不貴多端,以見聰明,故律正其舉劾之法,參伍其辭,所以求實也,非所以飾實也,但當參伍明聽之耳,不使獄吏鍛煉飾理成辭於手。孔子曰:「古之聽獄,求所以生之也;今之聽獄,求所以殺之也。」故析言以破律,任案以成法,執左道以必加也。又《淮南子》曰:「灃水之深十仞,金鐵在焉,則形見於外。非不深且清,而魚鱉莫之歸也。」故為者以苛為察,以功為明,以刻下為忠,以訐多為功,譬猶廣革,大則大矣,裂之道也。夫賞宜從重,罰宜從輕,君居其厚,百王通制。刑之輕重,恩之厚薄,見思與見疾,其可同日言哉!且法,國之權衡也,時之準繩也。權衡所以定輕重,準繩所以正曲直,今作法貴其寬平,罪人欲其嚴酷,喜怒肆志,高下在心,是則舍準繩以正曲直,棄權衡而定輕重者也。不亦惑哉?諸葛孔明,小國之相,猶曰:「吾心如秤,不能為人作輕重。」況萬乘之主,當可封之日,而任心棄法,取怨於人乎?

무릇 옥사를 다스리는 실정은 반드시 범한 바 일에 바탕을 두어 주장을 삼고, 감히 다그쳐 묻지 않고 곁으로 구하지 않으며, 실마리를 많이 벌여 총명함을 보이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율이 그 들추어 탄핵하는 법을 바르게 하고 그 말을 셋 다섯으로 참고하게 한 것은 실상을 구하려 함이요 실상을 꾸미려 함이 아니니, 다만 마땅히 참고하여 밝게 들을 뿐이요 옥리로 하여금 손에서 벼려 꾸며 말을 이루게 해서는 안 됩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옛날에 옥사를 들음은 살릴 바를 구함이요, 지금 옥사를 들음은 죽일 바를 구함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쪼개어 율을 깨뜨리고 문안에 맡겨 법을 이루며, 그릇된 길을 잡아 반드시 더합니다.

또 『회남자』에 이르기를 「풍수의 깊이가 열 길이라 쇠와 철이 그 안에 있어도 모양이 밖에서 보인다. 깊지 않고 맑지 않은 것이 아니나 고기와 자라가 돌아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이가 가혹함을 살핌이라 하고 공을 밝음이라 하며, 아래를 모질게 하는 것을 충성이라 하고 많이 들추는 것을 공이라 하니, 비유하자면 가죽을 넓히는 것과 같아 크기는 커도 찢어지는 길입니다.

무릇 상은 마땅히 무거운 쪽을 좇고 벌은 마땅히 가벼운 쪽을 좇아 임금이 그 두터운 데 있는 것이 백 왕의 통하는 제도입니다. 형벌의 가볍고 무거움과 은혜의 두텁고 엷음, 그리움을 받음과 미움을 받음을 어찌 같은 날에 말하겠습니까.

또 법은 나라의 저울이요 때의 먹줄입니다. 저울은 가볍고 무거움을 정하는 바요 먹줄은 굽고 곧음을 바르게 하는 바입니다. 이제 법을 지을 때는 그 너그럽고 고름을 귀히 여기면서 사람에게 죄줄 때는 그 엄하고 모질기를 바라, 기쁨과 노여움에 뜻을 마음껏 하고 높고 낮음이 마음에 있습니다. 이는 곧 먹줄을 버리고 굽고 곧음을 바르게 하고 저울을 버리고 가볍고 무거움을 정하는 것이니 또한 미혹되지 않습니까.

제갈공명은 작은 나라의 재상이었는데도 오히려 「내 마음이 저울과 같아 남을 위해 가볍고 무겁게 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하물며 만승의 임금으로 봉할 만한 세상을 만나 마음에 맡기고 법을 버려 사람에게 원망을 사시겠습니까.

又時有小事,不欲人聞,則暴作威怒,以弭謗議。若所為是也,聞於外,其何傷?若所為非也,雖掩之,何益?故諺曰:「欲人不知,莫若不為;欲人不聞,莫若勿言。」為之而欲人不知,言之而欲人不聞,此猶捕雀而掩目,盜鐘而掩耳者,只以取誚,將何益乎?臣又聞之,無常亂之國,無不可理之民者。夫民之善惡由乎化之薄厚,故禹、湯以之理,桀、紂以之亂;文、武以之安,幽、厲以之危。是以古之哲王,盡己而不以尤人,求身而不以責下。故曰:「禹、湯罪己,其興也勃焉;桀、紂罪人,其亡也忽焉。」為之無已,深乖惻隱之情,實啟奸邪之路。溫舒恨於曩日,臣亦欲惜不用,非所不聞也。臣聞堯有敢諫之鼓,舜有誹謗之木,湯有司過之史,武有戒慎之銘。此則聽之於無形,求之於未有,虛心以待下,庶下情之達上,上下無私,君臣合德者也。魏武帝云:「有德之君樂聞逆耳之言、犯顏之諍,親忠臣,厚諫士,斥讒慝,遠佞人者,誠欲全身保國,遠避滅亡者也。」凡百君子,膺期統運,縱未能上下無私,君臣合德,可不全身保國,遠避滅亡乎?然自古聖哲之君,功成事立,未有不資同心,予違汝弼者也。

또 때로 작은 일이 있어 남이 듣기를 바라지 않으시면 곧 사납게 위엄과 노여움을 지어 헐뜯는 의논을 그치게 하십니다. 만약 하신 바가 옳으면 밖에 들린들 무엇이 다치겠으며, 만약 하신 바가 그르면 비록 이를 가린들 무슨 보탬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말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하였습니다. 하고서 남이 알지 못하기를 바라고 말하고서 남이 듣지 못하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참새를 잡으면서 눈을 가리고 종을 훔치면서 귀를 막는 것과 같으니 다만 비웃음을 살 뿐 무슨 보탬이 있겠습니까.

신이 또 듣건대 늘 어지러운 나라도 없고 다스릴 수 없는 백성도 없다 합니다. 무릇 백성의 착함과 모짊은 교화의 엷음과 두터움에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우임금과 탕임금은 이로써 다스렸고 걸왕과 주왕은 이로써 어지러웠으며, 문왕과 무왕은 이로써 편안하였고 유왕과 여왕은 이로써 위태로웠습니다. 그래서 옛 슬기로운 왕은 저를 다하고 남을 탓하지 않으며 몸에서 구하고 아래를 꾸짖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우임금과 탕임금은 제게 죄를 물으니 그 흥함이 발끈하였고, 걸왕과 주왕은 남에게 죄를 물으니 그 망함이 홀연하였다」 하였습니다.

이를 그침 없이 하시면 가엾이 여기는 정에 깊이 어긋나고 참으로 간사하고 그릇된 길을 엽니다. 노온서가 지난날을 한스러워하였는데 신 또한 쓰이지 못함을 아깝게 여기려는 것이지 듣지 못한 바가 아닙니다.

신이 듣건대 요임금에게는 감히 간하는 북이 있었고 순임금에게는 헐뜯는 나무가 있었으며, 탕임금에게는 허물을 맡은 사관이 있었고 무왕에게는 경계하고 삼가는 새김이 있었다 합니다. 이는 곧 모양 없는 데서 듣고 아직 있지 않은 데서 구하며, 마음을 비워 아래를 기다려 아랫사람의 정이 위에 이르기를 바란 것이니, 위아래가 사사로움이 없고 임금과 신하가 덕을 합한 것입니다.

위 무제가 이르기를 「덕 있는 임금이 귀에 거슬리는 말과 낯을 범하는 간쟁 듣기를 즐기고, 충성된 신하를 가까이하고 간하는 선비를 두터이 하며, 헐뜯고 사특한 이를 물리치고 아첨하는 이를 멀리하는 것은, 참으로 몸을 온전히 하고 나라를 지켜 멸망을 멀리 피하려 함이다」 하였습니다. 무릇 온갖 군자가 때에 응하여 운수를 이었으니, 설사 위아래가 사사로움이 없고 임금과 신하가 덕을 합하지는 못할지라도, 몸을 온전히 하고 나라를 지켜 멸망을 멀리 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로부터 성스럽고 슬기로운 임금이 공을 이루고 일을 세움에 마음을 같이하여 「내가 어기거든 네가 바로잡으라」 함에 힘입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昔在貞觀之初,側身勵行,謙以受物。蓋聞善必改,時有小過,引納忠規,每聽直言,喜形顏色。故凡在忠烈,咸竭其辭。自頃年海內無虞,遠夷懾服,志意盈滿,事異厥初。高談疾邪,而喜聞順旨之說;空論忠讜,而不悅逆耳之言。私嬖之徑漸開,至公之道日塞,往來行路,咸知之矣。邦之興衰,實由斯道。為人上者,可不勉乎?臣數年以來,每奉明旨,深懼群臣莫肯盡言。臣竊思之,自比來人或上書,事有得失,惟見述其所短,未有稱其所長。又天居自高,龍鱗難犯,在於造次,不敢盡言,時有所陳,不能盡意,更思重竭,其道無因。且所言當理,未必加於寵秩,意或乖忤,將有恥辱隨之,莫能盡節,實由於此。雖左右近侍,朝夕階墀,事或犯顏,咸懷顧望。況疏遠不接,將何以極其忠款哉?又時或宣言云:「臣下見事,只可來道,何因所言,即望我用?」此乃拒諫之辭,誠非納忠之意。何以言之?犯主嚴顏,獻可替否,所以成主之美,匡主之過。若主聽則惑,事有不行,使其盡忠讜之言,竭股肱之力,猶恐臨時恐懼,莫肯效其誠款。若如明詔所道,便是許其面從,而又責其盡言,進退將何所據?欲必使乎致諫,在乎好之而已。故齊桓好服紫,而合境無異色;楚王好細腰,而後宮多餓死。夫以耳目之玩,人猶死而不違,況聖明之君求忠正之士,千里斯應,信不為難。若徒有其言,而內無其實,欲其必至,不可得也。

옛날 정관 처음에는 몸을 낮추어 행실에 힘쓰시고 겸손함으로 사물을 받으셨습니다. 대개 착함을 들으면 반드시 고치시고, 때로 작은 허물이 있으면 충성된 법도를 이끌어 받아들이시며, 곧은 말을 들을 때마다 기쁨이 낯빛에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충성되고 매운 이들이 다 그 말을 다하였습니다.

요 몇 해 이래로 나라 안에 걱정이 없고 먼 오랑캐가 두려워 복종하매 뜻이 가득 차서 일이 그 처음과 달라졌습니다. 높이 그릇됨을 미워한다 말씀하시면서도 뜻을 좇는 말 듣기를 기뻐하시고, 헛되이 충성되고 곧음을 논하시면서도 귀에 거슬리는 말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사로이 아끼는 샛길이 차츰 열리고 지극히 공정한 도가 날로 막히니, 오가는 길 위의 사람들도 다 이를 압니다. 나라의 흥함과 쇠함이 참으로 이 도에서 말미암습니다. 남의 위가 된 이가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몇 해 이래로 밝은 뜻을 받들 때마다, 뭇 신하가 말을 다하려 하지 않을까 깊이 두려워합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요사이 사람이 더러 글을 올려 일에 얻고 잃음이 있어도 오직 그 짧은 바를 말하는 것만 보이고 그 긴 바를 일컫는 것은 있지 않습니다. 또 하늘 같은 자리가 절로 높고 용의 비늘은 범하기 어려워, 갑작스러운 자리에서는 감히 말을 다하지 못하고 때로 아뢰는 바가 있어도 뜻을 다하지 못하며, 다시 거듭 다하려 생각하여도 그 길이 없습니다. 또 말한 바가 이치에 마땅해도 반드시 총애와 벼슬이 더해지지 않고, 뜻이 더러 어그러지면 장차 부끄러움과 욕됨이 따를 터이니, 절개를 다하지 못함이 참으로 여기서 말미암습니다.

비록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며 아침저녁으로 섬돌에 있는 이라도 일이 더러 낯을 범하면 다 돌아보고 바라는 마음을 품습니다. 하물며 성글고 멀어 만나지 못하는 이가 장차 무엇으로 그 충성된 정성을 다하겠습니까.

또 때로 혹 말씀을 펴 이르시기를 「아랫신하가 일을 보면 다만 와서 말할 수 있을 뿐인데, 어찌하여 말한 바를 곧 내가 쓰기를 바라는가」 하십니다. 이는 곧 간언을 막는 말이요 참으로 충성을 받아들이는 뜻이 아닙니다.

어찌 이를 말하겠습니까. 임금의 엄한 낯을 범하여 옳은 것을 바치고 그른 것을 바꾸는 것은 임금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임금의 허물을 바로잡는 까닭입니다. 만약 임금이 듣고서 미혹되어 일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그들로 하여금 충성되고 곧은 말을 다하고 팔다리의 힘을 다하게 하여도, 오히려 때에 임하여 두려워 그 정성을 바치려 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만약 밝으신 조서에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곧 낯 앞에서 좇는 것을 허락하시면서 또 말 다하기를 꾸짖으시는 것이니, 나아가고 물러남을 장차 어디에 근거하겠습니까.

반드시 간언에 이르게 하려면 이를 좋아하시는 데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제 환공이 자줏빛 옷 입기를 좋아하매 온 지경에 다른 빛깔이 없었고, 초왕이 가는 허리를 좋아하매 후궁에 굶어 죽는 이가 많았습니다. 무릇 귀와 눈의 즐거움으로도 사람이 오히려 죽으면서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성스럽고 밝은 임금이 충성되고 바른 선비를 구하시면 천 리에서 이에 응할 것이니 참으로 어렵지 않습니다. 만약 한갓 그 말만 있고 안에 그 실속이 없으면, 그들이 반드시 이르기를 바란들 얻을 수 없습니다.

太宗手詔曰:

태종이 손수 조서를 내렸다.

省前後諷諭,皆切至之意,固所望於卿也。朕昔在衡門,尚惟童幼,未漸師保之訓,罕聞先達之言。值隋主分崩,萬邦塗炭,惵々黔黎,庇身無所。朕自二九之年,有懷拯溺,發憤投袂,便提幹戈,蒙犯霜露,東西征伐,日不暇給,居無寧歲。降蒼昊之靈,稟廟堂之略,義旗所指,觸向平夷。弱水、流沙,並通輶軒之使;被發左衽,皆為衣冠之域。正朔所班,無遠不屆。及恭承寶歷,寅奉帝圖,垂拱無為,氛埃靖息,於茲十有餘年。斯蓋股肱罄帷幄之謀,爪牙竭熊羆之力,協德同心,以致於此。自惟寡薄,厚享斯休,每以撫大神器,憂深責重,常懼萬幾多曠,四聰不達,戰戰兢兢,坐以待旦。詢於公卿,以至隸皂,推以赤心。庶幾明賴,一動以鍾石;淳風至德,永傳於竹帛。克播鴻名,常為稱首。朕以虛薄,多慚往代,若不任舟楫,豈得濟彼巨川?不藉鹽梅,安得調夫五味?賜絹三百匹。

앞뒤로 넌지시 깨우친 것을 살펴보니 다 간절하고 지극한 뜻이라 참으로 경에게 바라던 바다.

짐이 옛날 가로 막대 문에 있을 때는 아직 어린아이여서 사부의 가르침을 차츰 익히지 못하였고 앞선 이의 말을 듣는 일도 드물었다. 수나라 임금이 나뉘어 무너지고 온 나라가 진흙과 숯에 빠져 두려워 떠는 검은 머리 백성이 몸을 덮을 데가 없음을 만났다. 짐이 열여덟 나이부터 물에 빠진 이를 건지려는 마음을 품어, 분함을 내고 소매를 떨쳐 곧 창을 들고 서리와 이슬을 무릅쓰고 동서로 정벌하느라 날에 겨를이 없고 편안한 해가 없었다.

푸른 하늘의 신령함을 내려 주시고 조정의 지략을 받아, 의로운 깃발이 가리키는 곳마다 향하는 대로 평정되었다. 약수와 유사에도 아울러 가벼운 수레의 사신이 통하고,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던 땅이 다 옷과 갓의 땅이 되었다. 정삭이 반포되는 곳은 아무리 멀어도 이르지 않은 데가 없었다.

보배로운 자리를 공손히 잇고 제왕의 도모를 삼가 받들어, 옷깃을 드리우고 함이 없이 하매 흐린 티끌이 고요히 그친 지 이제 열 해 남짓이다. 이는 대개 팔다리 같은 이들이 장막 안의 꾀를 다하고 손톱과 이빨 같은 이들이 곰 같은 힘을 다하여, 덕을 맞추고 마음을 같이하여 여기에 이른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매 적고 엷은 몸으로 이 아름다움을 두터이 누리니, 큰 그릇을 어루만짐에 걱정이 깊고 소임이 무거움을 늘 여겨, 만 가지 정사에 빈 데가 많고 네 방향의 들음이 이르지 않을까 늘 두려워하여, 벌벌 떨며 앉아서 아침을 기다린다. 공경에게 묻고 종에 이르기까지 붉은 마음으로 미룬다. 거의 밝게 힘입어 한 번 움직임이 종과 돌로 울리고, 순수한 풍속과 지극한 덕이 길이 죽간과 비단에 전해지기를 바란다. 큰 이름을 잘 펴서 늘 으뜸으로 일컬어지기를 바란다.

짐이 비고 엷은 몸으로 지난 시대에 부끄러움이 많으니, 만약 배와 노에 맡기지 않으면 어찌 저 큰 내를 건널 수 있으며, 소금과 매실을 빌리지 않으면 어찌 저 다섯 맛을 고를 수 있겠는가.

비단 삼백 필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