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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謙讓第十九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3 · 한자 598자 · 낭독 2.4분

「정관정요」 겸양을 논하다 「論謙讓第十九」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二年,太宗謂侍臣曰:「人言作天子則得自尊崇,無所畏懼,朕則以為正合自守謙恭,常懷畏懼。昔舜誡禹曰:『汝惟不矜,天下莫與汝爭能;汝惟不伐,天下莫與汝爭功。』又《易》曰:『人道惡盈而好謙。』凡為天子,若惟自尊崇,不守謙恭者,在身倘有不是之事,誰肯犯顏諫奏?朕每思出一言,行一事,必上畏皇天,下懼群臣。天高聽卑,何得不畏?群公卿士,皆見瞻仰,何得不懼?以此思之,但知常謙常懼,猶恐不稱天心及百姓意也。」魏徵曰:「古人云:『靡不有初,鮮克有終。』願陛下守此常謙常懼之道,日慎一日,則宗社永固,無傾覆矣。唐、虞所以太平,實用此法。」

정관 이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천자가 되면 곧 스스로 높이고 받들어져 두려워할 바가 없다 말하나, 짐은 곧 바로 스스로 겸손하고 공손함을 지키며 늘 두려움을 품는 것이 마땅하다 여긴다.

옛날 순임금이 우임금을 경계하기를 『네가 오직 뽐내지 않으면 천하가 너와 능함을 다투지 않고, 네가 오직 자랑하지 않으면 천하가 너와 공을 다투지 않는다』 하였다. 또 『주역』에 이르기를 『사람의 도는 가득 참을 미워하고 겸손함을 좋아한다』 하였다.

무릇 천자가 되어 만약 오직 스스로 높이고 받들며 겸손하고 공손함을 지키지 않는다면, 제 몸에 혹 옳지 않은 일이 있어도 누가 낯을 범하여 간하여 아뢰려 하겠는가. 짐은 한마디 말을 내고 한 가지 일을 행할 때마다 반드시 위로 큰 하늘을 두려워하고 아래로 뭇 신하를 두려워한다. 하늘은 높으나 낮은 데를 들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뭇 공경과 선비가 다 우러러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로써 생각하면 다만 늘 겸손하고 늘 두려워할 줄 알아도 오히려 하늘의 마음과 백성의 뜻에 맞지 않을까 두렵다.」

위징이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처음이 있지 않은 이는 없으나 끝을 잘 마치는 이는 드물다』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이 늘 겸손하고 늘 두려워하는 도를 지키시어 날마다 하루씩 삼가시면, 곧 종묘와 사직이 길이 굳어 기울어 엎어짐이 없을 것입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태평했던 까닭이 참으로 이 법을 쓴 데 있습니다.」

貞觀三年,太宗問給事中孔穎達曰:「《論語》云:『以能問於不能,以多問於寡,有若無,實若虛。』何謂也?」穎達對曰:「聖人設教,欲人謙光。己雖有能,不自矜大,仍就不能之人求訪能事。己之才藝雖多,猶病以為少,仍就寡少之人更求所益。己之雖有,其狀若無,己之雖實,其容若虛。非惟匹庶,帝王之德,亦當如此。夫帝王內蘊神明,外須玄默,使深不可知。故《易》稱『以蒙養正;以明夷蒞眾』。若其位居尊極,炫耀聰明,以才陵人,飾非拒諫,則上下情隔,君臣道乖。自古滅亡,莫不由此也。」太宗曰:「《易》云:『勞謙,君子有終,吉。』誠如卿言。」詔賜物二百段。

정관 삼 년에 태종이 급사중 공영달에게 물었다.

「『논어』에 이르기를 『능함으로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묻고 많음으로 적은 이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듯하고 차 있어도 빈 듯하다』 하였는데 무엇을 이름인가?」

영달이 대답하였다.

「성인이 가르침을 베풂은 사람이 겸손하여 빛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게 비록 능함이 있어도 스스로 뽐내어 크게 여기지 않고, 그대로 능하지 못한 사람에게 나아가 능한 일을 찾아 묻습니다. 제 재주와 재예가 비록 많아도 오히려 적다고 여겨 걱정하며, 그대로 적은 사람에게 나아가 다시 보탤 바를 구합니다. 제게 비록 있어도 그 모양이 없는 듯하고, 제게 비록 차 있어도 그 모습이 빈 듯합니다. 오직 예사 백성뿐 아니라 제왕의 덕도 또한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합니다.

무릇 제왕은 안으로 신명함을 쌓고 밖으로는 모름지기 그윽이 잠잠하여, 깊어서 알 수 없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역』에 일컫기를 『어림으로 바름을 기르고, 밝음을 상하게 함으로 뭇사람에 임한다』 하였습니다. 만약 그 자리가 지극히 높은 데 있으면서 총명함을 뽐내어 빛내고 재주로 남을 업신여기며 그름을 꾸미고 간언을 막으면, 곧 위아래의 정이 막히고 임금과 신하의 도가 어그러집니다. 예로부터 멸망함이 이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주역』에 이르기를 『수고롭되 겸손하면 군자가 끝이 있어 길하다』 하였으니 참으로 경의 말과 같다.」

조서로 물건 이백 단을 내렸다.

河間王孝恭,武德初封為趙郡王,累授東南道行臺尚書左仆射。孝恭既討平蕭銑、輔公祏,遂領江、淮及嶺南、北,皆統攝之。專制一方,威名甚著,累遷禮部尚書。孝恭性惟退讓,無驕矜自伐之色。時有特進江夏王道宗,尤以將略馳名,兼好學,敬慕賢士,動修禮讓,太宗並加親待。諸宗室中,惟孝恭、道宗莫與為比,一代宗英云。

하간왕 이효공은 무덕 처음에 조군왕으로 봉해졌고 여러 번 옮겨 동남도행대 상서좌복야를 받았다. 효공이 소선과 보공석을 쳐 평정한 뒤 마침내 강회와 영남과 영북을 거느려 다 통틀어 다스렸다. 한 방면을 오로지 맡아 위엄과 이름이 몹시 드러났고 여러 번 옮겨 예부상서가 되었다. 효공은 성품이 오직 물러나 사양할 뿐 교만하게 뽐내고 스스로 자랑하는 낯빛이 없었다.

그때 특진 강하왕 이도종이 있어 더욱 장수의 지략으로 이름을 날렸고, 아울러 배우기를 좋아하고 어진 선비를 공경하고 사모하며 움직임에 예와 사양을 닦으니 태종이 아울러 가까이 대하였다. 여러 종실 가운데 오직 효공과 도종만이 견줄 이가 없었으니 한 시대 종실의 빼어난 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