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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仁惻第二十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4 · 한자 428자 · 낭독 1.7분

「정관정요」 어진 마음을 논하다 「論仁惻第二十」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初,太宗謂侍臣曰:「婦人幽閉深宮,情實可湣。隋氏末年,求采無已,至於離宮別館,非幸御之所,多聚宮人。此皆竭人財力,朕所不取。且灑掃之餘,更何所用?今將出之,任求伉儷,非獨以省費,兼以息人,亦各得遂其情性。」於是後宮及掖庭前後所出三千餘人。

정관 처음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여자가 깊은 궁궐에 갇혀 있으니 정이 참으로 가엾다. 수나라 끝 무렵에 찾아 뽑기를 그침이 없어, 딴 궁궐과 딴 집으로 임금이 거둥하는 곳이 아닌 데까지 궁인을 많이 모아 두었다. 이는 다 사람의 재물과 힘을 다하는 것이라 짐이 취할 바가 아니다. 또 물 뿌리고 쓰는 일 밖에 다시 무엇에 쓰겠는가. 이제 내보내어 짝 구하기를 맡기려 하니, 홀로 비용을 덜 뿐 아니라 아울러 사람을 쉬게 하고 또한 저마다 그 정과 성품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이에 후궁과 액정에서 앞뒤로 내보낸 이가 삼천여 사람이었다.

貞觀二年,關中旱,大饑。太宗謂侍臣曰:「水旱不調,皆為人君失德。朕德之不修,天當責朕,百姓何罪,而多遭困窮!聞有鬻男女者,朕甚湣焉。」乃遣御史大夫杜淹巡檢,出御府金寶贖之,還其父母。

정관 이 년에 관중이 가물어 크게 굶주렸다.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물과 가뭄이 고르지 않은 것은 다 임금이 덕을 잃은 탓이다. 짐이 덕을 닦지 못하였으니 하늘이 마땅히 짐을 꾸짖어야 할 터인데, 백성이 무슨 죄로 이토록 곤궁함을 만나야 하는가. 아들딸을 파는 이가 있다 하니 짐이 몹시 가엾이 여긴다.」

이에 어사대부 두엄을 보내 돌아보아 살피게 하고, 임금의 곳간에서 금과 보배를 내어 물러 사서 그 부모에게 돌려주었다.

貞觀七年,襄州都督張公謹卒。太宗聞而嗟悼,出次發哀。有司奏言:「《準陰陽書》云:『日在辰,不可哭泣。』此亦流俗所忌。」太宗曰:「君臣之義,同於父子,情發於中,安避辰日?」遂哭之。

정관 칠 년에 양주도독 장공근이 죽었다. 태종이 듣고 탄식하며 슬퍼하여 밖에 나가 자리를 잡고 애곡을 발하려 하였다. 맡은 관사가 아뢰었다.

「음양서에 견주면 이르기를 『해가 진에 있으면 곡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는 또한 세속이 꺼리는 바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임금과 신하의 의로움은 아비와 아들과 같다. 정이 속에서 나오는데 어찌 진일을 피하겠는가.」

마침내 곡하였다.

貞觀十九年,太宗征高麗,次定州,有兵士到者,帝御州城北門樓撫慰之。有從卒一人病,不能進。詔至床前,問其所苦,仍敕州縣醫療之。是以將士莫不欣然願從。及大軍回次柳城,詔集前後戰亡人骸骨,設太牢致祭,親臨,哭之盡哀,軍人無不灑泣。兵士觀祭者,歸家以言,其父母曰:「吾兒之喪,天子哭之,死無所恨。」太宗征遼東,攻白巖城,右衛大將軍李思摩為流矢所中,帝親為吮血,將士莫不感勵。

정관 십구 년에 태종이 고구려를 치러 정주에 머물렀는데, 이르는 군사가 있으면 황제가 주성 북문 다락에 나가 어루만져 위로하였다. 따라온 군졸 하나가 병들어 나아가지 못하였다. 조서로 평상 앞에 이르게 하여 그 괴로운 바를 묻고, 이어 주와 현에 칙명하여 치료하게 하였다. 그래서 장수와 군사가 기꺼이 따르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큰 군사가 돌아와 유성에 머물렀을 때 조서로 앞뒤로 싸우다 죽은 이들의 뼈를 모으고 태뢰를 갖추어 제사하게 하였다. 몸소 임하여 곡하며 슬픔을 다하니 군사들이 눈물을 뿌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제사를 본 군사가 집에 돌아가 말하니 그 부모가 말하였다.

「내 아들의 상에 천자가 곡해 주셨으니 죽어도 한스러울 바가 없다.」

태종이 요동을 칠 때 백암성을 공격하다가 우위대장군 이사마가 흐르는 화살에 맞으니 황제가 몸소 피를 빨아 주었다. 장수와 군사가 느껴 힘쓰지 않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