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慎所好第二十一
貞觀二年,太宗謂侍臣曰:「古人云『君猶器也,人猶水也,方圓在於器,不在於水。』故堯、舜率天下以仁,而人從之;桀、紂率天下以暴,而人從之。下之所行,皆從上之所好。至如梁武帝父子志尚浮華,惟好釋氏、老氏之教;武帝末年,頻幸同泰寺,親講佛經,百寮皆大冠高履,乘車扈從,終日談論苦空,未嘗以軍國典章為意。及侯景率兵向闕,尚書郎以下,多不解乘馬,狼狽步走,死者相繼於道路。武帝及簡文卒被侯景幽逼而死。孝元帝在於江陵,為萬紐於謹所圍,帝猶講《老子》不輟,百寮皆戎服以聽。俄而城陷,君臣俱被囚摯。庾信亦嘆其如此,及作《哀江南賦》,乃云:『宰衡以干戈為兒戲,縉紳以清談為廟略。』此事亦足為鑒戒。朕今所好者,惟在堯、舜之道,周、孔之教,以為如鳥有翼,如魚依水,失之必死,不可暫無耳。」
정관 이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임금은 그릇과 같고 사람은 물과 같으니, 모나고 둥근 것은 그릇에 있지 물에 있지 않다』 하였다. 그러므로 요임금과 순임금이 천하를 어짊으로 이끄니 사람들이 그를 좇았고,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사나움으로 이끄니 사람들이 그를 좇았다. 아래에서 행하는 바는 다 위에서 좋아하는 바를 좇는다.
양 무제 부자 같은 이는 뜻이 뜬 화려함을 높여 오직 석씨와 노씨의 가르침만 좋아하였다. 무제는 말년에 자주 동태사에 거둥하여 몸소 불경을 강의하니, 온갖 벼슬아치가 다 큰 갓과 높은 신으로 수레를 타고 좇으며 온종일 괴로움과 공함을 이야기하고 일찍이 군사와 나라의 법도를 뜻에 두지 않았다. 후경이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향하자 상서랑 이하가 흔히 말 탈 줄을 몰라 낭패하여 걸어 달아나니 죽는 이가 길에 잇달았다. 무제와 간문제는 마침내 후경에게 갇히고 핍박받아 죽었다. 효원제는 강릉에 있다가 만뉴우근에게 에워싸였는데, 황제가 오히려 『노자』 강의를 그치지 않고 온갖 벼슬아치가 다 군복을 입고 들었다. 이윽고 성이 함락되어 임금과 신하가 다 사로잡혔다.
유신 또한 그러함을 탄식하여 「애강남부」를 지으면서 이에 이르기를 『재상은 창칼을 아이 장난으로 삼고 벼슬아치는 맑은 이야기를 나라의 지략으로 삼았다』 하였다. 이 일 또한 거울과 경계로 삼기에 넉넉하다.
짐이 이제 좋아하는 바는 오직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와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에 있다. 마치 새에게 날개가 있고 물고기가 물에 기대는 것과 같아서 이를 잃으면 반드시 죽으니 잠시도 없을 수 없다고 여긴다.」
貞觀二年,太宗謂侍臣曰:「神仙事本是虛妄,空有其名。秦始皇非分愛好,為方士所詐,乃遣童男童女數千人,隨其入海求神仙。方士避秦苛虐,因留不歸,始皇猶海側踟躕以待之,還至沙丘而死。漢武帝為求神仙,乃將女嫁道術之人,事既無驗,便行誅戮。據此二事,神仙不煩妄求也。」
정관 이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신선 일은 본디 헛되고 망령된 것이라 헛되이 그 이름만 있다. 진 시황이 분수 아닌 것을 좋아하다가 방사에게 속아, 이에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수천 사람을 보내 그를 따라 바다에 들어가 신선을 구하게 하였다. 방사는 진나라의 가혹하고 사나움을 피하여 그대로 머물러 돌아오지 않았는데, 시황은 오히려 바닷가에서 머뭇거리며 그를 기다리다가 사구에 돌아와 죽었다. 한 무제는 신선을 구하려고 이에 딸을 도술 하는 사람에게 시집보냈는데, 일이 이미 증험이 없자 곧 베어 죽였다. 이 두 가지 일에 따르면 신선은 번거로이 망령되이 구할 것이 못 된다.」
貞觀四年,太宗曰:「隋煬帝性好猜防,專信邪道,大忌胡人,乃至謂胡床為交床,胡瓜為黃瓜,築長城以避胡。終被宇文化及使令狐行達殺之。又誅戮李金才,及諸李殆盡,卒何所益?且君天下者,惟須正身修德而已,此外虛事,不足在懷。」
정관 사 년에 태종이 말하였다.
「수 양제는 성품이 시새우고 막기를 좋아하여 오로지 그릇된 도만 믿고 오랑캐를 크게 꺼렸다. 이에 호상을 교상이라 하고 호과를 황과라 하며 긴 성을 쌓아 오랑캐를 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끝내 우문화급이 영호행달을 시켜 그를 죽였다. 또 이금재를 베고 여러 이씨를 거의 다 없앴으나 끝내 무슨 보탬이 있었는가. 또 천하에 임금 된 이는 오직 모름지기 몸을 바르게 하고 덕을 닦을 뿐이니, 이 밖의 헛된 일은 마음에 둘 것이 못 된다.」
貞觀七年,工部尚書段綸奏進巧人楊思齊至。太宗令試,綸遣造傀儡戲具。太宗謂綸曰:「所進巧匠,將供國事,卿令先造此物,是豈百工相戒無作奇巧之意耶?」乃詔削綸階級,並禁斷此戲。
정관 칠 년에 공부상서 단륜이 재주 있는 사람 양사제를 데려와 아뢰었다. 태종이 시험하게 하니 단륜이 꼭두각시 놀이 기구를 만들게 하였다. 태종이 단륜에게 말하였다.
「바친 재주 있는 장인은 장차 나라의 일에 이바지할 것인데, 경이 먼저 이런 물건을 만들게 하였으니 이 어찌 온갖 장인이 서로 경계하여 기이하고 교묘한 것을 짓지 말라는 뜻이겠는가.」
이에 조서로 단륜의 품계를 깎고 아울러 이 놀이를 금하여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