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杜讒邪第二十三
貞觀初,太宗謂侍臣曰:「朕觀前代,讒佞之徒,皆國之蟊賊也。或巧言令色,朋黨比周。若暗主庸君,莫不以之迷惑,忠臣孝子所以泣血銜冤。故叢蘭欲茂,秋風敗之;王者欲明,讒人蔽之。此事著於史籍,不能具道。至如齊、隋間讒譖事,耳目所接者,略與公等言之。斛律明月,齊朝良將,威震敵國,周家每歲斫汾河冰,慮齊兵之西渡。及明月被祖孝征讒構伏誅,周人始有吞齊之意。高颎有經國大才,為隋文帝贊成霸業,知國政者二十餘載,天下賴以安寧。文帝惟婦言是聽,特令擯斥。及為煬帝所殺,刑政由是衰壞。又隋太子勇撫軍監國,凡二十年間,固亦早有定分。楊素欺主罔上,賊害良善,使父子之道一朝滅於天性,逆亂之源,自此開矣。隋文既混淆嫡庶,竟禍及其身,社稷尋亦覆敗。古人云『世亂則讒勝』,誠非妄言。朕每防微杜漸,用絕讒構之端,猶恐心力所不至,或不能覺悟。前史云:『猛獸處山林,藜藿為之不采;直臣立朝廷,奸邪為之寢謀。』此實朕所望於群公也。」魏徵曰:「《禮》云:『戒慎乎其所不睹,恐懼乎其所不聞。』《詩》云『愷悌君子,無信讒言。讒言罔極,交亂四國。』又孔子曰:『惡利口之覆邦家』,蓋為此也。臣嘗觀自古有國有家者,若曲受讒譖,妄害忠良,必宗廟丘墟,市朝霜露矣。願陛下深慎之!」
정관 처음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짐이 앞선 세상을 보건대 헐뜯고 아첨하는 무리는 다 나라의 좀이요 도적이다. 더러는 말을 교묘히 하고 낯빛을 꾸미며 무리 지어 두루 붙는다. 어둡고 못난 임금이면 이로써 미혹되지 않는 이가 없어, 충성된 신하와 효성된 아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원통함을 머금는 까닭이 된다. 그러므로 떨기 난초가 무성하려 하면 가을바람이 이를 무너뜨리고, 왕 된 이가 밝으려 하면 헐뜯는 사람이 이를 가린다. 이 일이 사서에 드러나 있어 다 말할 수 없다.
제나라와 수나라 사이의 헐뜯고 참소한 일 같은 것은 귀와 눈에 닿은 바이니 대략 공들과 말해 보겠다. 곡률명월은 제나라 조정의 좋은 장수라 위엄이 적국을 떨게 하였다. 주나라 집안은 해마다 분하의 얼음을 깨어 제나라 군사가 서쪽으로 건널까 걱정하였다. 명월이 조효징의 헐뜯어 얽음을 입고 죽임을 당하자, 주나라 사람이 비로소 제나라를 삼킬 뜻을 가졌다.
고경은 나라를 다스릴 큰 재주가 있어 수 문제를 도와 패업을 이루었고, 나라 정사를 맡은 것이 스무 해 남짓이라 천하가 이에 힘입어 편안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오직 아녀자의 말만 듣고 특별히 물리쳐 내치게 하였다. 고경이 양제에게 죽임을 당하매 형벌과 정사가 이로 말미암아 쇠하고 무너졌다.
또 수나라 태자 양용은 군사를 어루만지고 나라를 살핀 것이 무릇 스무 해라 참으로 또한 일찍 정해진 분수가 있었다. 그런데 양소가 임금을 속이고 위를 그르치며 좋고 착한 이를 해쳐, 아비와 아들의 도가 하루아침에 타고난 성품에서 없어지게 하였으니 거스르고 어지러움의 근원이 이로부터 열렸다. 수 문제가 이미 적자와 서자를 뒤섞더니 마침내 재앙이 제 몸에 미치고 사직도 이윽고 엎어져 무너졌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세상이 어지러우면 곧 헐뜯음이 이긴다』 하였으니 참으로 망령된 말이 아니다. 짐이 늘 작은 것을 막고 차츰 스미는 것을 끊어 헐뜯어 얽는 실마리를 없애려 하나, 오히려 마음과 힘이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어 더러 깨닫지 못할까 두렵다. 앞선 역사에 이르기를 『사나운 짐승이 산과 숲에 있으면 명아주와 콩잎을 캐지 않고, 곧은 신하가 조정에 서면 간사하고 그릇된 이가 꾀를 그친다』 하였다. 이것이 참으로 짐이 여러 공에게 바라는 바다.」
위징이 말하였다.
「『예기』에 이르기를 『그 보지 못하는 바에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듣지 못하는 바에 두려워한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화락한 군자여, 헐뜯는 말을 믿지 말라. 헐뜯는 말이 끝이 없어 사방의 나라를 서로 어지럽힌다』 하였습니다. 또 공자가 말하기를 『말 잘하는 입이 나라를 엎는 것을 미워한다』 하였으니 대개 이를 이름입니다.
신이 일찍이 보건대 예로부터 나라를 두고 집을 둔 이가 만약 헐뜯고 참소함을 굽혀 받아들여 함부로 충성되고 좋은 이를 해치면, 반드시 종묘가 언덕과 폐허가 되고 저자와 조정에 서리와 이슬이 내렸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깊이 삼가소서.」
貞觀七年,太宗幸蒲州。刺史趙元楷課父老服黃紗單衣,迎謁路左,盛飾廨宇,修營樓雉以求媚;又潛飼羊百餘口、魚數千頭,將饋貴戚。太宗知,召而數之曰:「朕巡省河、洛,經歷數州,凡有所須,皆資官物。卿為飼羊養魚,雕飾院宇,此乃亡隋弊俗,今不可復行。當識朕心,改舊態也。」以元楷在隋邪佞,故太宗發此言以戒之。元楷慚懼,數日不食而卒。
정관 칠 년에 태종이 포주에 거둥하였다. 자사 조원해가 노인들에게 누런 사 홑옷을 입혀 길 왼쪽에서 맞아 뵙게 하고, 관청 건물을 성대히 꾸미고 다락과 성가퀴를 손질하여 잘 보이기를 구하였다. 또 몰래 양 백여 마리와 물고기 수천 마리를 길러 귀한 인척에게 보내려 하였다. 태종이 알고 불러 꾸짖었다.
「짐이 하수와 낙수를 돌아 살피며 여러 고을을 지나면서 무릇 필요한 바가 있으면 다 관가의 물건에 힘입었다. 경이 양을 먹이고 물고기를 기르며 관청 건물을 새겨 꾸미니, 이는 곧 망한 수나라의 나쁜 풍속이라 이제 다시 행할 수 없다. 마땅히 짐의 마음을 알아 옛 모습을 고치라.」
원해가 수나라에서 그릇되고 아첨하였으므로 태종이 이 말을 내어 경계한 것이다. 원해가 부끄럽고 두려워 며칠 먹지 않다가 죽었다.
貞觀十年,太宗謂侍臣曰:「太子保傅,古難其選。成王幼小,以周、召為保傅,左右皆賢,足以長仁,致理太平,稱為聖主。及秦之胡亥,始皇所愛,趙高作傅,教以刑法。及其篡也,誅功臣,殺親戚,酷烈不已,旋踵亦亡。以此而言,人之善惡,誠由近習。朕弱冠交遊,惟柴紹、竇誕等,為人既非三益,及朕居茲寶位,經理天下,雖不及堯、舜之明,庶免乎孫皓、高緯之暴。以此而言,復不由染,何也?」魏徵曰:「中人可與為善,可與為惡,然上智之人自無所染。陛下受命自天,平定寇亂,救萬民之命,理致升平,豈紹、誕之徒能累聖德?但經云:『放鄭聲,遠佞人。』近習之間,尤宜深慎。」太宗曰:「善。」
정관 십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태자의 사부는 예로부터 그 고름이 어려웠다. 성왕이 어리고 작을 때 주공과 소공을 사부로 삼으니 좌우가 다 어질어 어짊을 자라게 하기에 넉넉하였고, 다스림이 태평에 이르러 성스러운 임금이라 일컬어졌다. 진나라의 호해에 이르러서는 시황이 사랑하는 바라 조고가 스승이 되어 형법으로 가르쳤다. 그가 자리를 빼앗자 공신을 베고 친척을 죽여 모질고 매섭기를 그치지 않으니 발꿈치를 돌리자마자 또한 망하였다. 이로 말하면 사람의 착함과 모짊은 참으로 가까이 익히는 데서 말미암는다.
짐이 스무 살 무렵 사귄 이는 오직 시소와 두탄 등이니 사람됨이 이미 세 가지 유익한 벗이 아니었다. 그런데 짐이 이 보배로운 자리에 있으면서 천하를 다스리매, 비록 요임금과 순임금의 밝음에는 미치지 못하나 거의 손호와 고위의 사나움은 면하였다. 이로 말하면 다시 물듦에서 말미암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위징이 말하였다.
「중간쯤 되는 사람은 더불어 착한 일을 할 수도 있고 더불어 모진 일을 할 수도 있으나, 가장 슬기로운 사람은 절로 물드는 바가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하늘에서 명을 받으시어 도적의 어지러움을 평정하고 만백성의 목숨을 건지시어 다스림이 태평에 이르렀으니, 어찌 시소와 두탄의 무리가 성스러운 덕에 누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다만 경에 이르기를 『정나라 소리를 내치고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하라』 하였습니다. 가까이 익히는 사이는 더욱 마땅히 깊이 삼가셔야 합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좋다.」
尚書左仆射杜如晦奏言:「監察御史陳師合上《拔士論》,謂人之思慮有限,一人不可總知數職,以論臣等。」太宗謂戴胄曰:「朕以至公治天下,今任玄齡、如晦,非為勛舊,以其有才行也。此人妄事毀謗,止欲離間我君臣。昔蜀後主昏弱,齊文宣狂悖,然國稱治者,以任諸葛亮、楊遵彥不猜之故也。朕今任如晦等,亦復如法。」於是,流陳師合於嶺外。
상서좌복야 두여회가 아뢰었다.
「감찰어사 진사합이 「발사론」을 올려, 사람의 생각과 헤아림에 한계가 있으니 한 사람이 여러 직분을 다 알 수 없다 하여 신 등을 논하였습니다.」
태종이 대주에게 말하였다.
「짐이 지극히 공정함으로 천하를 다스린다. 이제 방현령과 두여회에게 맡긴 것은 공훈 있는 옛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재주와 행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함부로 헐뜯는 일을 하는 것은 다만 나의 임금과 신하를 갈라놓으려는 것이다. 옛날 촉나라 후주는 어둡고 약하였고 제 문선제는 미치고 어그러졌으나, 그런데도 나라가 다스려졌다 일컬어진 것은 제갈량과 양준언에게 맡기고 의심하지 않은 까닭이다. 짐이 이제 여회 등에게 맡긴 것도 또한 그 법과 같다.」
이에 진사합을 영외로 귀양 보냈다.
貞觀中,太宗謂房玄齡、杜如晦曰:「朕聞自古帝王上合天心,以致太平者,皆股肱之力。朕比開直言之路者,庶知冤屈,欲聞諫諍。所有上封事人,多告訐百官,細無可采。朕歷選前王,但有君疑於臣,則下不能上達,欲求盡忠極慮,何可得哉?而無識之人,務行讒毀,交亂君臣,殊非益國。自今以後,有上書訐人小惡者,當以讒人之罪罪之。」
정관 연간에 태종이 방현령과 두여회에게 말하였다.
「짐이 듣건대 예로부터 제왕이 위로 하늘의 마음에 맞아 태평에 이른 것은 다 팔다리 같은 신하의 힘이라 한다. 짐이 요사이 곧은 말의 길을 연 것은 거의 원통하고 굽은 것을 알고 간쟁을 듣고자 함이다. 그런데 봉한 글을 올린 사람들이 흔히 온갖 벼슬아치를 들추어 고발하니 잘아서 취할 것이 없다.
짐이 앞선 왕들을 두루 골라 보건대, 다만 임금이 신하를 의심하면 곧 아래가 위에 이를 수 없다. 충성을 다하고 헤아림을 다하기를 구한들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앎이 없는 사람이 헐뜯고 무너뜨리기를 힘써 임금과 신하를 서로 어지럽히니 자못 나라에 보탬이 아니다. 이제부터 뒤로 글을 올려 남의 작은 모짊을 들추는 이가 있으면 마땅히 헐뜯는 사람의 죄로 죄주라.」
魏徵為秘書監,有告徵謀反者。太宗曰:「魏徵,昔吾之讎,只以忠於所事,吾遂拔而用之,何乃妄生讒構?」竟不問徵,遽斬所告者。
위징이 비서감이 되었을 때 위징이 모반한다고 고발한 이가 있었다. 태종이 말하였다.
「위징은 옛날 나의 원수였으나 다만 섬기는 바에 충성하였으므로 내가 마침내 뽑아 썼다. 어찌 이에 함부로 헐뜯어 얽는 일을 내는가.」
끝내 위징에게 묻지 않고 곧 고발한 이를 베었다.
貞觀十六年,太宗謂諫議大夫褚遂良曰:「卿知起居,比來記我行事善惡?」遂良曰:「史官之設,君舉必書。善既必書,過亦無隱。」太宗曰:「朕今勤行三事,亦望史官不書吾惡。一則鑒前代成敗事,以為元龜;二則進用善人,共成政道;三則斥棄群小,不聽讒言。吾能守之,終不轉也。」
정관 십육 년에 태종이 간의대부 저수량에게 말하였다.
「경이 기거를 맡았으니 요사이 나의 일 행함의 착함과 모짊을 적었는가?」
수량이 말하였다.
「사관을 둔 것은 임금의 행동을 반드시 적으려 함입니다. 착함을 이미 반드시 적으니 허물 또한 숨기지 않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짐이 이제 세 가지 일을 부지런히 행하니 또한 사관이 나의 모짊을 적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는 곧 앞선 세상의 이룸과 무너짐의 일을 거울로 삼아 큰 거북 점으로 삼는 것이요, 둘은 곧 착한 사람을 나아가게 하여 함께 정사의 도를 이루는 것이요, 셋은 곧 뭇 소인을 물리쳐 버리고 헐뜯는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를 지킬 수 있으니 끝내 바꾸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