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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悔過第二十四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4 · 한자 498자 · 낭독 2.0분

「정관정요」 허물을 뉘우침을 논하다 「論悔過第二十四」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二年,太宗謂房玄齡曰:「為人大須學問。朕往為群兇未定,東西征討,躬親戎事,不暇讀書。比來四海安靜,身處殿堂,不能自執書卷,使人讀而聽之。君臣父子,政教之道,共在書內。古人云:『不學,墻面,蒞事惟煩。』不徒言也。卻思少小時行事,大覺非也。」

정관 이 년에 태종이 방현령에게 말하였다.

「사람이 되어서는 크게 모름지기 배우고 물어야 한다. 짐이 지난날 뭇 흉악한 무리가 아직 평정되지 않아 동서로 치고 다니며 몸소 군사 일을 하느라 글 읽을 겨를이 없었다. 요사이 사해가 고요하여 몸이 전각에 있으매, 스스로 책을 잡지 못하면 사람을 시켜 읽게 하고 이를 듣는다. 임금과 신하, 아비와 아들과 정사와 가르침의 도가 다 책 안에 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배우지 않으면 담을 마주한 것과 같아 일에 임하여 오직 번거로울 뿐이다』 하였으니 한갓 헛말이 아니다. 젊었을 적 일 행하던 것을 돌이켜 생각하니 크게 그릇되었음을 깨닫는다.」

貞觀中,太子承乾多不修法度,魏王泰尤以才能為太宗所重,特詔泰移居武德殿。魏徵上疏諫曰:「魏王既是陛下愛子,須使知定分,常保安全,每事抑其驕奢,不處嫌疑之地也。今移居此殿,使在東宮之西,海陵昔居,時人以為不可。雖時移事異,猶恐人之多言。又王之本心,亦不寧息。既能以寵為懼,伏願成人之美。」太宗曰:「我幾不思量,甚大錯誤。」遂遣泰歸於本第。

정관 연간에 태자 이승건이 흔히 법도를 닦지 않았고, 위왕 이태는 더욱 재능으로 태종에게 무겁게 여겨져 특별히 조서로 이태를 무덕전으로 옮겨 살게 하였다. 위징이 상소하여 간하였다.

「위왕이 이미 폐하의 사랑하는 아들이니, 모름지기 정해진 분수를 알게 하여 늘 안전함을 지키게 하고, 일마다 그 교만과 사치를 누르며 혐의스러운 자리에 두지 않으셔야 합니다. 이제 이 전각으로 옮겨 살게 하시니 동궁의 서쪽에 있게 되는데, 해릉왕이 옛날 살던 곳이라 그때 사람들이 옳지 않다 여겼습니다. 비록 때가 옮기고 일이 달라졌으나 오히려 사람의 말이 많을까 두렵습니다. 또 왕의 본디 마음도 또한 편안히 쉬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총애를 두려움으로 삼을 수 있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남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소서.」

태종이 말하였다.

「내가 거의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몹시 큰 잘못이다.」

마침내 이태를 본디 집으로 돌려보냈다.

貞觀十七年,太宗謂侍臣曰:「人情之至痛者,莫過乎喪親也。故孔子云:『三年之喪,天下之通喪,自天子達於庶人也。』又曰:『何必高宗?古之人皆然。』近代帝王遂行不逮漢文以日易月之制,甚乖於禮典。朕昨見徐幹《中論·復三年喪》篇,義理甚深,恨不早見此書。所行大疏略,但知自咎自責,追悔何及!」因悲泣久之。

정관 십칠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정으로 가장 아픈 것은 어버이를 여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삼 년의 상은 천하에 통하는 상이니 천자로부터 뭇 백성에게까지 이른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어찌 반드시 고종뿐이겠는가. 옛사람이 다 그러하였다』 하였다.

요사이 세상의 제왕이 마침내 한 문제가 날로 달을 바꾼 제도조차 좇지 못하니 예의 법전에 몹시 어긋난다. 짐이 어제 서간의 『중론』 「삼년상을 되살림」 편을 보니 뜻과 이치가 몹시 깊었다. 이 책을 일찍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행한 바가 크게 성글고 간략하였으니, 다만 스스로 허물하고 스스로 꾸짖을 줄만 알 뿐 좇아 뉘우친들 어찌 미치겠는가.」

그러고는 슬퍼 오래도록 울었다.

貞觀十八年,太宗謂侍臣曰:「夫人臣之對帝王,多承意順旨,甘言取容。朕今欲聞己過,卿等皆可直言。」散騎常侍劉洎對曰:「陛下每與公卿論事,及有上書者,以其不稱旨,或面加詰難,無不慚退,恐非誘進直言之道。」太宗曰:「朕亦悔有此問難,當即改之。」

정관 십팔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무릇 신하가 제왕을 대함에 흔히 뜻을 받고 뜻을 좇아 단 말로 받아들여지기를 취한다. 짐이 이제 제 허물을 듣고자 하니 경들은 다 곧게 말하라.」

산기상시 유계가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공경과 일을 논하실 때마다, 또 글을 올린 이가 있을 때 그것이 뜻에 맞지 않으면 더러 낯을 맞대고 따져 물으시어, 부끄러워하며 물러가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아마도 곧은 말을 이끌어 나아오게 하는 도가 아닐까 합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짐도 또한 이렇게 따져 물은 것을 뉘우친다. 마땅히 곧 이를 고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