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정관정요 › 사치와 방종을 논하다

論奢縱第二十五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6 · 한자 1,156자 · 낭독 4.6분

「정관정요」 사치와 방종을 논하다 「論奢縱第二十五」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十一年,侍御史馬周上疏陳時政曰:

정관 십일 년에 시어사 마주가 상소하여 그때의 정사를 아뢰었다.

臣歷睹前代,自夏、殷、周及漢氏之有天下,傳祚相繼,多者八百餘年,少者猶四五百年,皆為積德累業,恩結於人心。豈無僻王?賴前哲以免爾!自魏、晉以還,降及周、隋,多者不過五六十年,少者才二三十年而亡。良由創業之君不務廣恩化,當時僅能自守,後無遺德可思。故傳嗣之主政教少衰,一夫大呼而天下土崩矣。今陛下雖以大功定天下,而積德日淺,固當崇禹、湯、文、武之道,廣施德化,使恩有餘地,為子孫立萬代之基。豈欲但令政教無失,以持當年而已!且自古明王聖主雖因人設教,寬猛隨時,而大要以節儉於身、恩加於人二者是務。故其下愛之如父母,仰之如日月,敬之如神明,畏之如雷霆。此其所以卜祚遐長而禍亂不作也。

신이 앞선 세상을 두루 보건대, 하나라와 은나라와 주나라로부터 한씨가 천하를 두기까지 복을 전하여 서로 이은 것이 많은 이는 팔백 남짓 해요 적은 이도 오히려 사오백 해였습니다. 이는 다 덕을 쌓고 업을 포개어 은혜가 사람 마음에 맺힌 까닭입니다. 어찌 치우친 왕이 없었겠습니까마는 앞선 슬기로운 이에게 힘입어 면하였을 뿐입니다.

위나라와 진나라 이래로 주나라와 수나라에 이르러서는 많은 이가 오륙십 해를 넘지 못하고 적은 이는 겨우 이삼십 해에 망하였습니다. 참으로 업을 연 임금이 은혜와 가르침을 넓히기에 힘쓰지 않아, 그때에는 겨우 스스로 지킬 수 있었으나 뒤에 생각할 만한 남은 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를 이은 임금이 정사와 가르침이 조금 쇠하매 한 사내가 크게 부르짖자 천하가 흙 무너지듯 하였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비록 큰 공으로 천하를 정하셨으나 덕을 쌓은 것이 아직 얕습니다. 참으로 마땅히 우임금과 탕임금과 문왕과 무왕의 도를 높이시고 덕의 가르침을 널리 베푸시어, 은혜에 남는 자리가 있게 하여 자손을 위해 만대의 터를 세우셔야 합니다. 어찌 다만 정사와 가르침에 잃음이 없게 하여 그해를 버티려고만 하시겠습니까.

또 예로부터 밝은 왕과 성스러운 임금이 비록 사람을 따라 가르침을 베풀고 너그러움과 사나움을 때에 따라 하였으나, 큰 요긴함은 몸을 검소히 하고 은혜를 사람에게 더하는 두 가지에 힘쓰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랫사람이 부모처럼 사랑하고 해와 달처럼 우러르며, 신명처럼 공경하고 우레처럼 두려워하였습니다. 이것이 복을 점쳐 아득히 길고 재앙과 어지러움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입니다.

今百姓承喪亂之後,比於隋時才十分之一,而供官徭役,道路相繼,兄去弟還,首尾不絕。遠者往來五六千裏,春秋冬夏,略無休時。陛下雖每有恩詔,令其減省,而有司作既不廢,自然須人,徒行文書,役之如故。臣每訪問,四五年來,百姓頗有怨嗟之言,以陛下不存養之。昔唐堯茅茨土階,夏禹惡衣菲食。如此之事,臣知不復可行於今。漢文帝惜百金之費,輟露臺之役,集上書囊以為殿帷,所幸夫人衣不曳地。至景帝以錦繡綦組妨害女工,特詔除之,所以百姓安樂。至孝武帝,雖窮奢極侈,而承文、景遺德,故人心不動。向使高祖之後即有武帝,天下必不能全。此於時代差近,事跡可見。今京師及益州諸處營造供奉器物,並諸王妃主服飾,議者皆不以為儉。臣聞昧旦丕顯,後世猶怠,作法於理,其弊猶亂。陛下少處民間,知百姓辛苦,前代成敗,目所親見,尚猶如此,而皇太子生長深宮,不更外事,即萬歲之後,固聖慮所當憂也。

이제 백성은 상하고 어지러운 뒤를 이어받아 수나라 때에 견주면 겨우 열에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관가에 바치는 부역이 길에 서로 이어져 형이 가면 아우가 돌아와 머리와 꼬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먼 이는 오가는 것이 오륙천 리요, 봄가을 겨울 여름에 도무지 쉴 때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비록 은혜로운 조서를 내리실 때마다 그것을 덜고 줄이게 하시나, 맡은 관사가 짓는 일을 이미 그만두지 않으니 절로 모름지기 사람이 있어야 하는지라, 한갓 문서만 오갈 뿐 부리기를 예전과 같이 합니다. 신이 늘 찾아 물어보건대 사오 년 이래로 백성에게 자못 원망과 탄식의 말이 있으니, 폐하께서 그들을 살펴 기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옛날 요임금은 띠 지붕에 흙 섬돌이었고 하나라 우임금은 거친 옷을 입고 변변찮은 밥을 먹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이제 다시 행할 수 없음을 신도 압니다. 한 문제는 백금의 비용을 아껴 이슬대의 공역을 그만두었고, 글 올린 주머니를 모아 전각의 휘장으로 삼았으며, 총애하는 부인의 옷이 땅에 끌리지 않았습니다. 경제에 이르러서는 비단 수와 끈이 여자의 일을 방해한다 하여 특별히 조서로 없앴으니, 그래서 백성이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효무제에 이르러 비록 사치를 다하고 극에 이르렀으나 문제와 경제가 남긴 덕을 이어받았으므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고조 뒤에 곧 무제가 있었다면 천하가 반드시 온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시대로 자못 가까워 일의 자취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서울과 익주 여러 곳에서 지어 바치는 그릇과 물건, 아울러 여러 왕과 왕비와 공주의 옷과 꾸밈을 의논하는 이들이 다 검소하다 여기지 않습니다. 신이 듣건대 새벽부터 크게 밝히던 이도 뒷세상에는 오히려 게을러지고, 다스림으로 법을 지어도 그 폐단이 오히려 어지럽다 합니다. 폐하께서는 젊어서 백성 사이에 계시어 백성의 고생을 아시고 앞선 세상의 이룸과 무너짐을 눈으로 몸소 보셨는데도 오히려 이와 같으신데, 황태자는 깊은 궁궐에서 나고 자라 바깥일을 겪지 않았으니, 곧 만세 뒤의 일이 참으로 성스러운 생각으로 걱정하셔야 마땅한 바입니다.

臣竊尋往代以來成敗之事,但有黎庶怨叛,聚為盜賊,其國無不即滅,人主雖欲改悔,未有重能安全者。凡修政教,當修之於可修之時,若事變一起,而後悔之,則無益也。故人主每見前代之亡,則知其政教之所由喪,而皆不知其身之有失。是以殷紂笑夏桀之亡,而幽、厲亦笑殷紂之滅。隋帝大業之初,又笑周、齊之失國,然今之視煬帝,亦猶煬帝之視周、齊也。故京房謂漢元帝云:「臣恐後之視今,亦猶今之視古。」此言不可不戒也。

신이 가만히 지난 시대 이래의 이룸과 무너짐의 일을 찾아보건대, 다만 뭇 백성이 원망하여 배반하고 모여 도적이 되면 그 나라가 곧 없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임금이 비록 고쳐 뉘우치려 해도 다시 편안하고 온전할 수 있었던 이는 있지 않았습니다.

무릇 정사와 가르침을 닦는 일은 마땅히 닦을 수 있을 때에 닦아야 합니다. 만약 일의 변고가 한번 일어난 뒤에 이를 뉘우치면 곧 보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앞선 세상의 망함을 볼 때마다 곧 그 정사와 가르침이 무너진 까닭은 알면서도, 다 제 몸에 잃음이 있음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은나라 주왕은 하나라 걸왕의 망함을 비웃었고 유왕과 여왕은 또 은나라 주왕의 멸함을 비웃었습니다. 수나라 황제는 대업 처음에 또 주나라와 제나라가 나라를 잃음을 비웃었으나, 이제 양제를 보는 것이 또한 양제가 주나라와 제나라를 본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경방이 한 원제에게 이르기를 「신은 뒤에서 지금을 보는 것이 또한 지금 옛날을 보는 것과 같을까 두렵습니다」 하였으니, 이 말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往者貞觀之初,率土霜儉,一匹絹才得粟一斗,而天下帖然。百姓知陛下甚憂憐之,故人人自安,曾無謗讟。自五六年來,頻歲豐稔,一匹絹得十餘石粟,而百姓皆以陛下不憂憐之,咸有怨言。又今所營為者,頗多不急之務故也。自古以來,國之興亡不由蓄積多少,惟在百姓苦樂。且以近事驗之,隋家貯洛口倉,而李密因之;東京積布帛,王世充據之;西京府庫亦為國家之用,至今未盡。向使洛口、東都無粟帛,即世充、李密未必能聚大眾。但貯積者固是國之常事,要當人有餘力而後收之。若人勞而強斂之,竟以資寇,積之無益也。然儉以息人,貞觀之初,陛下已躬為之,故今行之不難也。為之一日,則天下知之,式歌且舞矣。若人既勞矣,而用之不息,倘中國被水旱之災,邊方有風塵之警,狂狡因之竊發,則有不可測之事,非徒聖躬旰食晏寢而已。若以陛下之聖明,誠欲勵精為政,不煩遠求上古之術,但及貞觀之初,則天下幸甚。

지난날 정관 처음에는 온 땅에 서리가 내려 흉년이 들어 비단 한 필에 겨우 조 한 말을 얻었는데도 천하가 조용하였습니다. 백성이 폐하께서 몹시 걱정하고 가엾이 여기심을 알았으므로 사람마다 스스로 편안하여 일찍이 헐뜯고 원망함이 없었습니다.

오륙 년 이래로 해마다 자주 곡식이 잘 여물어 비단 한 필에 조 열 섬 남짓을 얻는데도, 백성이 다 폐하께서 걱정하고 가엾이 여기지 않으신다 하여 다 원망하는 말이 있습니다. 또 이제 짓는 것이 자못 급하지 않은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나라의 흥하고 망함은 쌓아 둔 것이 많고 적음에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백성이 괴로운가 즐거운가에 있습니다. 또 가까운 일로 시험해 보면, 수나라 집안이 낙구창에 쌓아 두매 이밀이 이에 기댔고, 동경에 베와 비단을 쌓아 두매 왕세충이 이를 차지하였으며, 서경의 곳간 또한 나라의 쓰임이 되어 지금까지 다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낙구와 동도에 조와 비단이 없었다면 곧 세충과 이밀이 반드시 큰 무리를 모으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만 쌓아 두는 것이 참으로 나라의 떳떳한 일이나, 요긴한 것은 마땅히 사람에게 남은 힘이 있은 뒤에 거두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수고로운데 억지로 거두면 마침내 도적에게 밑천을 대는 것이라 쌓아도 보탬이 없습니다. 그러나 검소함으로 사람을 쉬게 하는 것은 정관 처음에 폐하께서 이미 몸소 하신 바이니, 그러므로 이제 이를 행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이를 하루만 행하시면 곧 천하가 이를 알고 노래하고 또 춤출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이미 수고로운데 부리기를 그치지 않다가, 혹 중국이 물과 가뭄의 재앙을 입고 변방에 바람과 티끌의 경보가 있어, 미치고 교활한 이가 이를 틈타 몰래 일어나면 곧 헤아릴 수 없는 일이 있을 터이니, 한갓 임금께서 늦게 잡수시고 늦게 주무시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폐하의 성스럽고 밝으심으로 참으로 정신을 다잡아 정사를 하려 하신다면 번거로이 아득한 옛날의 술법을 멀리서 구할 것 없이, 다만 정관 처음에만 미치시면 곧 천하가 몹시 다행입니다.

太宗曰:「近令造小隨身器物,不意百姓遂有嗟怨,此則朕之過誤。」乃命停之。

태종이 말하였다.

「요사이 몸에 지닐 작은 그릇과 물건을 짓게 하였는데, 백성에게 마침내 탄식과 원망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하였다. 이는 곧 짐의 허물이요 잘못이다.」

이에 명하여 이를 그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