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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文史第二十八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4 · 한자 700자 · 낭독 2.8분

「정관정요」 글과 역사를 논하다 「論文史第二十八」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初,太宗謂監修國史房玄齡曰:「比見前、後《漢史》載錄揚雄《甘泉》、《羽獵》,司馬相如《子虛》、《上林》,班固《兩都》等賦,此既文體浮華,無益勸誡,何假書之史策?其有上書論事、詞理切直、可裨於政理者,朕從與不從皆須備載。」

정관 처음에 태종이 나라 역사 편찬을 감독하는 방현령에게 말하였다.

「요사이 보건대 『전한서』와 『후한서』가 양웅의 「감천」과 「우렵」, 사마상여의 「자허」와 「상림」, 반고의 「양도」 같은 부를 실어 적었다. 이는 이미 글투가 들뜨고 화려하여 권하고 경계함에 보탬이 없는데, 무엇하러 역사책에 적기를 빌리는가. 그 글을 올려 일을 논한 것으로 말과 이치가 간절하고 곧아 정사와 다스림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짐이 좇았든 좇지 않았든 다 모름지기 갖추어 실으라.」

貞觀十一年,著作佐郎鄧隆表請編次太宗文章為集。太宗謂曰:「朕若制事出令,有益於人者,史則書之,足為不朽。若事不師古,亂政害物,雖有詞藻,終貽後代笑,非所須也。只如梁武帝父子及陳後主、隋煬帝,亦大有文集,而所為多不法,宗社皆須臾傾覆。凡人主惟在德行,何必要事文章耶?」竟不許。

정관 십일 년에 저작좌랑 등륭이 표를 올려 태종의 글월을 차례로 엮어 문집으로 만들기를 청하였다. 태종이 말하였다.

「짐이 만약 일을 짓고 명을 내어 사람에게 보탬이 있으면 역사가 곧 이를 적을 터이니 썩지 않기에 넉넉하다. 만약 일이 옛것을 스승 삼지 않아 정사를 어지럽히고 사물을 해치면, 비록 말의 무늬가 있어도 끝내 뒷세상에 비웃음을 남길 터이니 필요한 바가 아니다.

다만 양 무제 부자와 진 후주와 수 양제 같은 이들도 또한 큰 문집이 있었으나, 한 바가 흔히 법답지 못하여 종묘와 사직이 다 잠깐 사이에 기울어 무너졌다. 무릇 임금은 오직 덕과 행실에 있으니 어찌 반드시 글월을 일삼겠는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貞觀十三年,褚遂良為諫議大夫,兼知起居註。太宗問曰:「卿比知起居,書何等事?大抵於人君得觀見否?朕欲見此註記者,將卻觀所為得失以自警戒耳。」遂良曰:「今之起居,古之左、右史,以記人君言行,善惡畢書,庶幾人主不為非法,不聞帝王躬自觀史。」太宗曰:「朕有不善,卿必記耶?」遂良曰:「臣聞守道不如守官,臣職當載筆,何不書之?」黃門侍郎劉洎進曰:「人君有過失,如日月之蝕,人皆見之。設令遂良不記,天下之人皆記之矣。」

정관 십삼 년에 저수량이 간의대부가 되어 기거주를 겸하여 맡았다. 태종이 물었다.

「경이 요사이 기거를 맡았는데 어떤 일을 적는가. 대체로 임금이 볼 수 있는가 없는가. 짐이 이 적은 기록을 보려는 것은, 장차 한 바의 얻음과 잃음을 도로 보아 스스로 경계하려는 것일 뿐이다.」

수량이 말하였다.

「오늘의 기거는 옛날의 좌사와 우사이니 임금의 말과 행실을 적어 착함과 모짊을 다 씁니다. 거의 임금이 법 아닌 일을 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왕이 몸소 역사를 보았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짐에게 착하지 못함이 있으면 경이 반드시 적는가?」

수량이 말하였다.

「신이 듣건대 도를 지키는 것이 벼슬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합니다. 신은 직분이 마땅히 붓을 잡는 자리이니 어찌 이를 적지 않겠습니까.」

황문시랑 유계가 나아가 말하였다.

「임금에게 허물과 잘못이 있으면 해와 달이 먹히는 것과 같아 사람이 다 봅니다. 설사 수량이 적지 않게 하더라도 천하 사람이 다 이를 적을 것입니다.」

貞觀十四年,太宗謂房玄齡曰:「朕每觀前代史書,彰善癉惡,足為將來規誡。不知自古當代國史,何因不令帝王親見之?」對曰:「國史既善惡必書,庶幾人主不為非法。止應畏有忤旨,故不得見也。」太宗曰:「朕意殊不同古人。今欲自看國史者,蓋有善事,固不須論;若有不善,亦欲以為鑒誡,使得自修改耳。卿可撰錄進來。」玄齡等遂刪略國史為編年體,撰高祖、太宗實錄各二十卷,表上之。太宗見六月四日事,語多微文,乃謂玄齡曰:「昔周公誅管、蔡而周室安,季友鴆叔牙而魯國寧。朕之所為,義同此類,蓋所以安社稷,利萬民耳。史官執筆,何煩有隱?宜即改削浮詞,直書其事。」侍中魏徵奏曰:「臣聞人主位居尊極,無所忌憚。惟有國史,用為懲惡勸善,書不以實,後嗣何觀?陛下今遣史官正其辭,雅合至公之道。」

정관 십사 년에 태종이 방현령에게 말하였다.

「짐이 앞선 세상의 사서를 볼 때마다 착함을 드러내고 모짊을 미워하니 앞날의 법도와 경계가 되기에 넉넉하다. 예로부터 그 시대의 나라 역사를 무슨 까닭으로 제왕이 몸소 보게 하지 않았는지 알지 못하겠다.」

대답하였다.

「나라 역사는 착함과 모짊을 반드시 적으니 거의 임금이 법 아닌 일을 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만 뜻을 거스름이 있을까 두려워하였으므로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짐의 뜻은 옛사람과 자못 같지 않다. 이제 스스로 나라 역사를 보려는 것은, 대개 착한 일이 있으면 참으로 논할 것이 없고 만약 착하지 못함이 있으면 또한 거울과 경계로 삼아 스스로 닦고 고칠 수 있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경은 지어 적어 올리라.」

방현령 등이 마침내 나라 역사를 덜고 줄여 편년체로 만들어, 고조와 태종의 실록을 저마다 스무 권씩 지어 표와 함께 올렸다. 태종이 유월 나흘의 일을 보매 말에 은미한 표현이 많으므로 이에 현령에게 말하였다.

「옛날 주공이 관숙과 채숙을 베어 주나라 왕실이 편안하였고, 계우가 숙아에게 짐새 독을 먹여 노나라가 편안하였다. 짐이 한 바는 의로움이 이런 무리와 같으니, 대개 사직을 편안케 하고 만백성을 이롭게 한 까닭이다. 사관이 붓을 잡으면서 어찌 번거로이 숨김이 있는가. 마땅히 곧 뜬 말을 고쳐 깎고 그 일을 곧게 적으라.」

시중 위징이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임금은 자리가 지극히 높은 데 있어 꺼릴 바가 없고, 오직 나라 역사만이 모짊을 징계하고 착함을 권하는 데 쓰인다 합니다. 적기를 사실대로 하지 않으면 뒤를 잇는 이가 무엇을 보겠습니까. 폐하께서 이제 사관을 보내 그 말을 바로잡게 하시니 참으로 지극히 공정한 도에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