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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務農第三十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4 · 한자 618자 · 낭독 2.5분

「정관정요」 농사에 힘씀을 논하다 「論務農第三十」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二年,太宗謂侍臣曰:「凡事皆須務本。國以人為本,人以衣食為本,凡營衣食,以不失時為本。夫不失時者,在人君簡靜乃可致耳。若兵戈屢動,土木不息,而欲不奪農時,其可得乎?」王珪曰:「昔秦皇、漢武,外則窮極兵戈,內則崇侈宮室,人力既竭,禍難遂興。彼豈不欲安人乎?失所以安人之道也。亡隋之轍,殷鑒不遠,陛下親承其弊,知所以易之。然在初則易,終之實難。伏願慎終如始,方盡其美。」太宗曰:「公言是也。夫安人寧國,惟在於君。君無為則人樂,君多欲則人苦。朕所以抑情損欲,克己自勵耳。」

정관 이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무릇 일은 다 모름지기 밑동에 힘써야 한다. 나라는 사람을 밑동으로 삼고 사람은 옷과 밥을 밑동으로 삼으며, 무릇 옷과 밥을 마련하는 일은 때를 잃지 않는 것을 밑동으로 삼는다. 무릇 때를 잃지 않는 것은 임금이 간략하고 고요해야 이룰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창칼이 여러 번 움직이고 흙과 나무 일이 그치지 않으면서 농사 때를 빼앗지 않으려 한들 될 수 있겠는가.」

왕규가 말하였다.

「옛날 진 시황과 한 무제는 밖으로는 곧 창칼을 다하고 안으로는 곧 궁실을 높이고 사치하여, 사람의 힘이 이미 다하자 재앙과 어려움이 마침내 일어났습니다. 그들인들 어찌 사람을 편안케 하려 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람을 편안케 하는 도를 잃은 것입니다. 망한 수나라의 바퀴자국은 은나라의 거울이 멀지 않은 것과 같아, 폐하께서 몸소 그 폐단을 이어받아 바꿀 바를 아십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곧 쉬우나 이를 마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끝을 삼가기를 처음같이 하시어야 비로소 그 아름다움을 다하실 것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공의 말이 옳다. 무릇 사람을 편안케 하고 나라를 안녕케 하는 것은 오직 임금에게 있다. 임금이 함이 없으면 곧 사람이 즐겁고 임금이 욕심이 많으면 곧 사람이 괴롭다. 짐이 그래서 정을 누르고 욕심을 덜며 몸을 이겨 스스로 힘쓸 뿐이다.」

貞觀二年,京師旱,蝗蟲大起。太宗入苑視禾,見蝗蟲,掇數枚而咒曰:「人以穀為命,而汝食之,是害於百姓。百姓有過,在予一人,爾其有靈,但當蝕我心,無害百姓。」將吞之,左右遽諫曰:「恐成疾,不可。」太宗曰:「所冀移災朕躬,何疾之避?」遂吞之。自是蝗不復為災。

정관 이 년에 서울이 가물고 메뚜기가 크게 일었다. 태종이 동산에 들어가 벼를 보다가 메뚜기를 보고 몇 마리를 집어 들고 빌었다.

「사람은 곡식으로 목숨을 삼는데 네가 이를 먹으니 이는 백성을 해치는 것이다. 백성에게 허물이 있다면 나 한 사람에게 있다. 네게 신령함이 있거든 다만 마땅히 내 마음을 먹고 백성을 해치지 말라.」

삼키려 하자 좌우가 곧 간하였다.

「병이 될까 두렵습니다. 안 됩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바라는 바가 재앙을 짐의 몸으로 옮기는 것인데 무슨 병을 피하겠는가.」

마침내 삼켰다. 이로부터 메뚜기가 다시 재앙이 되지 않았다.

貞觀五年,有司上書言:「皇太子將行冠禮,宜用二月為吉,請追兵以備儀註。」太宗曰:「今東作方興,恐妨農事。」令改用十月。太子少保蕭瑀奏言:「準陰陽家,用二月為勝。」太宗曰:「陰陽拘忌,朕所不行。若動靜必依陰陽,不顧理義,欲求福祐,其可得乎?若所行皆遵正道,自然常與吉會。且吉兇在人,豈假陰陽拘忌?農時甚要,不可暫失。」

정관 오 년에 맡은 관사가 글을 올려 말하였다.

「황태자께서 장차 관례를 행하실 터인데 마땅히 이월이 길하니, 청컨대 군사를 불러 의례를 갖추게 하소서.」

태종이 말하였다.

「이제 봄 농사가 바야흐로 일어나니 농사일을 방해할까 두렵다.」

시월로 고쳐 쓰게 하였다. 태자소보 소우가 아뢰었다.

「음양가에 견주면 이월을 쓰는 것이 낫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음양의 얽매인 꺼림은 짐이 행하지 않는 바다. 만약 움직이고 고요함을 반드시 음양에 따르고 이치와 의로움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복 받기를 구한들 얻을 수 있겠는가. 만약 행하는 바가 다 바른 도를 좇으면 절로 늘 길함과 만난다. 또 길함과 흉함은 사람에게 있으니 어찌 음양의 얽매인 꺼림을 빌리겠는가. 농사 때가 몹시 요긴하니 잠시도 잃을 수 없다.」

貞觀十六年,太宗以天下粟價率計斗值五錢,其尤賤處,計斗值三錢,因謂侍臣曰:「國以民為本,人以食為命。若禾黍不登,則兆庶非國家所有。既屬豐稔若斯,朕為億兆人父母,唯欲躬務儉約,必不輒為奢侈。朕常欲賜天下之人,皆使富貴,今省徭賦,不奪其時,使比屋之人恣其耕稼,此則富矣。敦行禮讓,使鄉閭之間,少敬長,妻敬夫,此則貴矣。但令天下皆然,朕不聽管弦,不從畋獵,樂在其中矣!」

정관 십육 년에 태종은 천하의 조 값이 대체로 셈하여 한 말에 다섯 푼이요 그 더욱 싼 곳은 셈하여 한 말에 세 푼임을 알고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나라는 백성을 밑동으로 삼고 사람은 밥으로 목숨을 삼는다. 만약 벼와 기장이 여물지 않으면 곧 뭇 백성이 나라가 가진 바가 아니다. 이미 잘 여문 것이 이와 같은 데 붙었으니, 짐은 억조 사람의 부모가 되어 오직 몸소 검소함과 아낌에 힘쓰려 할 뿐 반드시 문득 사치하지 않겠다.

짐이 늘 천하의 사람에게 내려 다 넉넉하고 귀하게 하려 한다. 이제 부역과 세금을 덜고 그 때를 빼앗지 않아 집집의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껏 밭 갈고 심게 하니 이는 곧 넉넉함이요, 예와 사양을 도타이 행하여 마을 사이에서 젊은이가 어른을 공경하고 아내가 남편을 공경하게 하니 이는 곧 귀함이다. 다만 천하가 다 그러하게 한다면, 짐이 관현을 듣지 않고 사냥을 좇지 않아도 즐거움이 그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