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정관정요 › 형법을 논하다

論刑法第三十一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18 · 한자 2,977자 · 낭독 11.9분

「정관정요」 형법을 논하다 「論刑法第三十一」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元年,太宗謂侍臣曰:「死者不可再生,用法務在寬簡。古人云:『鬻棺者欲歲之疫,非疾於人,利於棺售故耳』。今法司核理一獄,必求深刻,欲成其考課。今作何法,得使平允?」諫議大夫王珪進曰:「但選公直良善人,斷獄允當者,增秩賜金,即奸偽自息。」詔從之。太宗又曰:「古者斷獄,必訊於三槐、九棘之官,今三公、九卿,即其職也。自今以後,大辟罪皆令中書、門下四品以上及尚書九卿議之。如此,庶免冤濫。」由是至四年,斷死刑,天下二十九人,幾致刑措。

정관 원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죽은 이는 다시 살아날 수 없으니 법을 쓰는 데 너그럽고 간략함에 힘써야 한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널을 파는 이가 그해에 돌림병이 들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널이 팔리는 데 이롭기 때문일 뿐이다』 하였다. 이제 법을 맡은 관사가 옥사 하나를 따져 다스릴 때 반드시 깊고 모질기를 구하는 것은 그 고과를 이루려 함이다. 이제 어떤 법을 지어야 고르고 미쁘게 할 수 있겠는가.」

간의대부 왕규가 나아가 말하였다.

「다만 공정하고 곧고 좋고 착한 사람을 골라 옥사를 끊음이 미쁘고 마땅한 이에게 품계를 더하고 금을 내리시면, 곧 간사함과 거짓이 절로 그칩니다.」

조서로 이를 좇았다. 태종이 또 말하였다.

「옛날에 옥사를 끊을 때는 반드시 삼괴와 구극의 벼슬아치에게 물었으니, 이제 삼공과 구경이 곧 그 직분이다. 이제부터 뒤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다 중서성과 문하성의 사품 이상 및 상서와 구경에게 의논하게 하라. 이와 같이 하면 거의 원통하고 넘침을 면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사 년에 이르러 사형을 끊은 것이 천하에 스물아홉 사람이라 거의 형벌을 버려두는 데 이르렀다.

貞觀二年,太宗謂侍臣曰:「比有奴告主謀逆,此極弊法,特須禁斷。假令有謀反者,必不獨成,終將與人計之;眾計之事,必有他人論之,豈藉奴告也?自今奴告主者,不須受,盡令斬決。」

정관 이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요사이 종이 주인의 모반을 고발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지극히 나쁜 법이라 특별히 모름지기 금하여 끊어야 한다. 설사 모반하는 이가 있더라도 반드시 홀로 이루지 못하고 끝내 장차 남과 이를 꾀할 터이니, 여럿이 꾀한 일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이를 논함이 있을 것이다. 어찌 종의 고발을 빌리겠는가. 이제부터 종이 주인을 고발하면 모름지기 받지 말고 다 베어 처결하게 하라.」

貞觀五年,張蘊古為大理丞。相州人李好德素有風疾,言涉妖妄,詔令鞠其獄。蘊古言:「好德癲病有徵,法不當坐。」太宗許將寬宥。蘊古密報其旨,仍引與博戲。治書侍御史權萬紀劾奏之。太宗大怒,令斬於東市。既而悔之,謂房玄齡曰:「公等食人之祿,須憂人之憂,事無巨細,咸當留意。今不問則不言,見事都不諫諍,何所輔弼?如蘊古身為法官,與囚博戲,漏泄朕言,此亦罪狀甚重。若據常律,未至極刑。朕當時盛怒,即令處置。公等竟無一言,所司又不覆奏,遂即決之,豈是道理。」因詔曰:「凡有死刑,雖令即決,皆須五覆奏。」五覆奏,自蘊古始也。又曰:「守文定罪,或恐有冤。自今以後,門下省覆,有據法令合死而情可矜者,宜錄奏聞。」

정관 오 년에 장온고가 대리승이 되었다. 상주 사람 이호덕이 본디 풍질이 있어 말이 요망한 데 걸리매 조서로 그 옥사를 국문하게 하였다. 온고가 말하기를 「호덕은 미친병에 증험이 있으니 법으로 마땅히 죄에 앉힐 수 없습니다」 하였다. 태종이 너그러이 용서하기를 허락하였다. 온고가 그 뜻을 몰래 알리고 이어 이끌어 함께 장기를 두었다. 치서시어사 권만기가 이를 탄핵하여 아뢰었다. 태종이 크게 노하여 동쪽 저자에서 베게 하였다.

이윽고 이를 뉘우쳐 방현령에게 말하였다.

「공들이 남의 녹을 먹으니 모름지기 남의 걱정을 걱정해야 하고, 일에 크고 작음 없이 다 마땅히 마음을 두어야 한다. 이제 묻지 않으면 곧 말하지 않고 일을 보고도 도무지 간쟁하지 않으니 무엇을 돕는 것인가.

온고 같은 이는 몸이 법관이면서 죄수와 장기를 두고 짐의 말을 새어 나가게 하였으니 이 또한 죄상이 몹시 무겁다. 그러나 만약 떳떳한 율에 따랐다면 지극한 형벌에는 이르지 않았다. 짐이 그때 크게 노하여 곧 처치하게 하였는데, 공들이 끝내 한마디 말도 없고 맡은 관사도 또 다시 아뢰지 않아 마침내 곧 처결하였으니 어찌 도리이겠는가.」

이에 조서를 내렸다.

「무릇 사형이 있으면 비록 곧 처결하라 명하더라도 다 모름지기 다섯 번 다시 아뢰라.」

다섯 번 다시 아뢰는 일이 온고에게서 비롯되었다. 또 말하였다.

「글을 지켜 죄를 정하면 더러 원통함이 있을까 두렵다. 이제부터 뒤로 문하성이 다시 살펴 법령에 따라 죽음에 맞으나 실정이 가엾을 만한 것이 있으면 마땅히 적어 아뢰라.」

蘊古,初以貞觀二年,自幽州總管府記室兼直中書省,表上《大寶箴》,文義甚美,可以規誡。其詞曰:

온고는 처음 정관 이 년에 유주총관부 기실로 중서성에서 겸하여 일 보면서 표를 올려 「대보잠」을 바쳤는데, 글의 뜻이 몹시 아름다워 법도와 경계로 삼을 만하였다. 그 글은 이러하다.

今來古往,俯察仰觀,惟辟作福,為君實難。宅普天之下,處王公之上,任土貢其所有,具僚和其所唱。是故恐懼之心日弛,邪僻之情轉放。豈知事起乎所忽,禍生乎無妄。故以聖人受命,拯溺亨屯,歸罪於己,推恩於民。大明無偏照,至公無私親。故以一人治天下,不以天下奉一人。禮以禁其奢,樂以防其佚。左言而右事,出警而入蹕。四時調其慘舒,三光同其得失。故身為之度,而聲為之律。勿謂無知,居高聽卑;勿謂何害,積小成大。樂不可極,極樂成哀;欲不可縱,縱欲成災。壯九重於內,所居不過容膝;彼昏不知,瑤其臺而瓊其室。羅八珍於前,所食不過適口;惟狂罔念,丘其糟而池其酒。勿內荒於色,勿外荒於禽;勿貴難得之貨,勿聽亡國之音。內荒伐人性,外荒蕩人心;難得之物侈,亡國之聲淫。勿謂我尊而傲賢侮士,勿謂我智而拒諫矜己。聞之夏後,據饋頻起;亦有魏帝,牽裾不止。安彼反側,如春陽秋露;巍巍蕩蕩,推漢高大度。撫茲庶事,如履薄臨深;戰戰栗栗,用周文小心。

이제가 오고 옛날이 가매 굽어 살피고 우러러 보건대, 오직 임금만이 복을 짓거니와 임금 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온 하늘 아래에 자리하고 왕공의 위에 처하여, 땅에 맡겨 그 있는 것을 바치게 하고 온 벼슬아치가 그 부르는 바에 화답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마음이 날로 느슨해지고 그릇되고 치우친 정이 굴러 놓아집니다. 어찌 알겠습니까, 일은 소홀히 하는 데서 일어나고 재앙은 뜻하지 않은 데서 생기는 것을.

그러므로 성인이 명을 받아 물에 빠진 이를 건지고 어려움을 트이게 하매, 죄를 제게 돌리고 은혜를 백성에게 미룹니다. 큰 밝음은 치우쳐 비추지 않고 지극한 공정함은 사사로이 가까이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천하를 다스릴 뿐 천하로 한 사람을 받들게 하지 않습니다.

예로 그 사치를 금하고 악으로 그 게으름을 막습니다. 왼쪽에 말을 적고 오른쪽에 일을 적으며, 나갈 때 길을 트고 들어올 때 길을 치웁니다. 네 철이 그 참혹함과 펴짐을 고르고 세 빛이 그 얻음과 잃음을 함께합니다. 그러므로 몸이 자가 되고 소리가 가락이 됩니다.

앎이 없다 이르지 마소서, 높이 있으면서 낮은 데를 듣습니다. 무슨 해가 되랴 이르지 마소서,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을 이룹니다. 즐거움을 다해서는 안 되니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되고, 욕심을 놓아서는 안 되니 욕심을 놓으면 재앙이 됩니다. 아홉 겹 안을 크게 지어도 사는 데는 무릎 들일 만하면 그만인데, 저 어두운 이는 알지 못하여 그 대를 옥으로 하고 그 방을 구슬로 합니다. 여덟 가지 진미를 앞에 벌여도 먹는 데는 입에 맞으면 그만인데, 오직 미친 이는 생각이 없어 지게미로 언덕을 삼고 술로 못을 만듭니다.

안으로 여색에 거칠지 마시고 밖으로 새 쫓기에 거칠지 마소서.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히 여기지 마시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소리를 듣지 마소서. 안으로 거칠면 사람의 성품을 치고 밖으로 거칠면 사람의 마음을 흔듭니다. 얻기 어려운 물건은 사치요 나라를 망하게 하는 소리는 음란함입니다.

내가 높다 하여 어진 이에게 오만하고 선비를 업신여기지 마시고, 내가 슬기롭다 하여 간언을 막고 저를 뽐내지 마소서. 하후씨에게서 들었으니 밥상을 놓고 자주 일어났고, 또한 위나라 황제가 있으니 옷자락을 붙잡혀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저 뒤척이는 이들을 편안케 하기를 봄볕과 가을 이슬같이 하시고, 높고 높으며 넓고 넓게 한 고조의 큰 도량을 미십시오. 이 뭇일을 어루만지기를 살얼음을 밟고 깊은 데 임하듯 하시어, 벌벌 떨며 주 문왕의 조심함을 쓰십시오.

《詩》云:「不識不知。」《書》曰:「無偏無黨。」一彼此於胸臆,捐好惡於心想。眾棄而後加刑,眾悅而後命賞。弱其強而治其亂,伸其屈而直其枉。故曰:如衡如石,不定物以數,物之懸者,輕重自見;如水如鏡,不示物以形,物之鑒者,妍蚩自露。勿渾渾而濁,勿皎皎而清;勿汶汶而暗,勿察察而明。雖冕旒蔽目而視於未形,雖黈纊塞耳而聽於無聲。縱心乎湛然之域,遊神於至道之精。扣之者,應洪纖而效響;酌之者,隨淺深而皆盈。故曰:天之清,地之寧,王之貞。四時不言而代序,萬物無為而受成。豈知帝有其力,而天下和平。吾王撥亂,戡以智力;人懼其威,未懷其德。我皇撫運,扇以淳風;民懷其始,未保其終。爰術金鏡,窮神盡性。使人以心,應言以行。包括理體,抑揚辭令。天下為公,一人有慶。開羅起祝,援琴命詩。一日二日,念茲在茲。惟人所召,自天祐之。爭臣司直,敢告前疑。

『시경』에 이르기를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하였고, 『서경』에 이르기를 「치우침이 없고 무리 지음이 없다」 하였습니다. 이쪽과 저쪽을 가슴속에서 하나로 하고 좋아함과 미워함을 마음의 생각에서 버리십시오. 뭇사람이 버린 뒤에 형벌을 더하고 뭇사람이 기뻐한 뒤에 상을 명하십시오. 그 강한 것을 약하게 하고 그 어지러운 것을 다스리며, 그 굽은 것을 펴고 그 뒤틀린 것을 곧게 하십시오.

그러므로 이르기를, 저울과 같고 돌과 같아 사물을 수로 정하지 않아도 사물이 걸리면 가볍고 무거움이 절로 보이고, 물과 같고 거울과 같아 사물에 모양을 보이지 않아도 사물이 비치면 곱고 미움이 절로 드러난다 합니다.

흐리멍덩하게 흐리지 마시고 지나치게 희게 맑지도 마소서. 어둡고 흐리게 어둡지 마시고 잘디잘게 밝지도 마소서. 비록 면류관 술이 눈을 가려도 아직 모양 없는 것을 보시고, 비록 누런 솜이 귀를 막아도 소리 없는 데서 들으십시오. 마음을 맑고 고요한 곳에 놓고 정신을 지극한 도의 정밀함에 노닐게 하십시오.

두드리는 이에게는 크고 잚에 응하여 울림을 내고, 떠 가는 이에게는 얕고 깊음을 따라 다 차게 하십시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의 맑음과 땅의 편안함과 왕의 곧음이라 합니다. 네 철이 말하지 않아도 차례를 갈마들고 만물이 함이 없이도 이룸을 받습니다. 어찌 황제에게 그 힘이 있는 줄 알겠습니까마는 천하가 화평합니다.

우리 왕께서 어지러움을 다스리매 슬기와 힘으로 이기셨으니, 사람이 그 위엄을 두려워하나 아직 그 덕을 품지는 못하였습니다. 우리 황제께서 운수를 어루만지매 순수한 바람으로 부치셨으니, 백성이 그 처음을 품었으나 아직 그 끝을 지키지는 못하였습니다.

이에 쇠거울의 술법을 펴 신묘함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십시오. 사람을 마음으로 부리시고 말에 행실로 응하십시오. 이치의 요체를 싸안고 말과 명령을 누르고 드날리십시오. 천하가 공정한 것이 되면 한 사람에게 경사가 있습니다. 그물을 열고 빌기를 일으키며 거문고를 당겨 시를 명하십시오. 하루 이틀도 이를 생각하여 여기에 두십시오. 오직 사람이 부르는 바를 하늘이 절로 돕습니다. 간쟁하는 신하와 곧음을 맡은 이가 감히 앞선 의심을 아룁니다.

太宗嘉之,賜帛三百段,仍授以大理寺丞。

태종이 이를 아름답게 여겨 비단 삼백 단을 내리고 이어 대리시승을 주었다.

貞觀五年,詔曰:「在京諸司,比來奏決死囚,雖云三覆,一日即了,都未暇審思,三奏何益?縱有追悔,又無所及。自今後,在京諸司奏決死囚,宜二日中五覆奏,天下諸州三覆奏。」又手詔敕曰:「比來有司斷獄,多據律文,雖情在可矜而不敢違法,守文定罪,惑恐有冤。自今門下省復有據法合死,而情在可矜者,宜錄狀奏聞。」

정관 오 년에 조서를 내렸다.

「서울에 있는 여러 관사가 요사이 사형수를 아뢰어 처결할 때, 비록 세 번 다시 아뢴다 하나 하루에 곧 마쳐 도무지 살펴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 세 번 아뢴들 무슨 보탬인가. 설사 좇아 뉘우침이 있어도 또한 미칠 바가 없다. 이제부터 뒤로 서울에 있는 여러 관사가 사형수를 아뢰어 처결할 때는 마땅히 이틀 안에 다섯 번 다시 아뢰고, 천하의 여러 고을은 세 번 다시 아뢰게 하라.」

또 손수 조서로 칙명하였다.

「요사이 맡은 관사가 옥사를 끊을 때 흔히 율의 글에 따르니, 비록 실정이 가엾을 만해도 감히 법을 어기지 못한다. 글을 지켜 죄를 정하면 원통함이 있을까 두렵다. 이제부터 문하성이 다시 살펴 법에 따라 죽음에 맞으나 실정이 가엾을 만한 것이 있으면 마땅히 정상을 적어 아뢰라.」

貞觀九年,鹽澤道行軍總管、岷州都督高甑生,坐違李靖節度,又誣告靖謀逆,減死徙邊。時有上言者曰:「甑生舊秦府功臣,請寬其過。」太宗曰:「雖是藩邸舊勞,誠不可忘。然理國守法,事須畫一,今若赦之,使開僥幸之路。且國家建義太原,元從及征戰有功者甚眾,若甑生獲免,誰不覬覦?有功之人,皆須犯法。我所以必不赦者,正為此也。」

정관 구 년에 염택도행군총관 민주도독 고증생이 이정의 지휘를 어긴 죄에 걸리고 또 이정이 모반한다고 무고하여, 죽음을 덜어 변방으로 옮겼다. 그때 글을 올려 말한 이가 있었다.

「증생은 옛 진왕부의 공신이니 청컨대 그 허물을 너그러이 하소서.」

태종이 말하였다.

「비록 번저 시절의 옛 수고라 참으로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고 법을 지킴은 일이 모름지기 한결같아야 한다. 이제 만약 그를 용서하면 요행의 길을 열게 한다. 또 나라가 태원에서 의로움을 세울 때 처음부터 따르고 정벌에 공이 있는 이가 몹시 많은데, 만약 증생이 면함을 얻으면 누가 넘겨다보지 않겠는가. 공 있는 사람이 다 모름지기 법을 범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용서하지 않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貞觀十一年,特進魏徵上疏曰:

정관 십일 년에 특진 위징이 상소하였다.

臣聞《書》曰:「明德慎罰」,「惟刑恤哉!」《禮》云:「為上易事,為下易知,則刑不煩矣。上人疑則百姓惑,下難知則君長勞矣。」夫上易事,則下易知,君長不勞,百姓不惑。故君有一德,臣無二心,上播忠厚之誠,下竭股肱之力,然後太平之基不墜,「康哉」之詠斯起。當今道被華戎,功高宇宙,無思不服,無遠不臻。然言尚於簡文,誌在於明察,刑賞之用,有所未盡。夫刑賞之本,在乎勸善而懲惡,帝王之所以與天下為畫一,不以貴賤親疏而輕重者也。今之刑賞,未必盡然。或屈伸在乎好惡,或輕重由乎喜怒;遇喜則矜其情於法中,逢怒則求其罪於事外;所好則鉆皮出其毛羽,所惡則洗垢求其瘢痕。瘢痕可求,則刑斯濫矣;毛羽可出,則賞因謬矣。刑濫則小人道長,賞謬則君子道消。小人之惡不懲,君子之善不勸,而望治安刑措,非所聞也。

신이 듣건대 『서경』에 이르기를 「덕을 밝히고 벌을 삼가라」 하였고 「오직 형벌을 가엾이 여기라」 하였습니다. 『예기』에 이르기를 「위가 섬기기 쉽고 아래가 알기 쉬우면 곧 형벌이 번거롭지 않다. 윗사람이 의심하면 곧 백성이 미혹하고 아래를 알기 어려우면 곧 임금이 수고롭다」 하였습니다. 무릇 위를 섬기기 쉬우면 곧 아래를 알기 쉽고, 임금이 수고롭지 않으면 백성이 미혹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에게 한결같은 덕이 있고 신하에게 두 마음이 없어, 위에서 충성되고 두터운 정성을 펴고 아래에서 팔다리의 힘을 다한 뒤에야 태평의 터가 떨어지지 않고 「편안하도다」 하는 노래가 이에 일어납니다.

지금 도가 중화와 오랑캐에 덮이고 공이 온 누리에 높아, 생각하여 복종하지 않음이 없고 멀어서 이르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은 글을 간략히 함을 높이시면서 뜻은 밝게 살피는 데 있으시니, 형벌과 상을 씀에 다하지 못한 바가 있습니다.

무릇 형벌과 상의 밑동은 착함을 권하고 모짊을 징계하는 데 있으니, 제왕이 천하와 더불어 한결같이 하고 귀하고 천함과 가깝고 성긂으로 가볍고 무겁게 하지 않는 바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형벌과 상은 반드시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더러는 굽히고 폄이 좋아하고 미워함에 있고 더러는 가볍고 무거움이 기쁨과 노여움에서 말미암습니다. 기쁨을 만나면 곧 법 안에서 그 실정을 가엾이 여기시고 노여움을 만나면 곧 일 밖에서 그 죄를 구하십니다. 좋아하는 이는 곧 가죽을 뚫어 그 털을 내고, 미워하는 이는 곧 때를 씻어 그 흉터를 구합니다. 흉터를 구할 수 있으면 곧 형벌이 이에 넘치고, 털을 낼 수 있으면 곧 상이 이로 인해 그릇됩니다. 형벌이 넘치면 곧 소인의 도가 자라고 상이 그릇되면 곧 군자의 도가 사라집니다. 소인의 모짊이 징계되지 않고 군자의 착함이 권해지지 않는데 다스림이 편안하고 형벌을 버려두기를 바라는 것은 들은 바가 아닙니다.

且夫暇豫清談,皆敦尚於孔、老;威怒所至,則取法於申、韓。直道而行,非無三黜,危人自安,蓋亦多矣。故道德之旨未弘,刻薄之風已扇。夫刻薄既扇,則下生百端;人競趨時,則憲章不一。稽之王度,實虧君道。昔州犁上下其手,楚國之法遂差;張湯輕重其心,漢朝之刑以弊。以人臣之頗僻,猶莫能申其欺罔,況人君之高下,將何以措其手足乎?以睿聖之聰明,無幽微而不燭,豈神有所不達,智有所不通哉?安其所安,不以恤刑為念;樂其所樂,遂忘先笑之變。禍福相倚,吉兇同域,惟人所召,安可不思?頃者責罰稍多,威怒微厲,或以供帳不贍,或以營作差違,或以物不稱心,或以人不從命,皆非致治之所急,實恐驕奢之攸漸。是知「貴不與驕期而驕自至,富不與侈期而侈自來」,非徒語也。

또 무릇 한가한 때의 맑은 이야기에서는 다 공자와 노자를 도타이 높이시면서, 위엄과 노여움이 이르는 데서는 곧 신불해와 한비에게서 법을 취하십니다. 곧은 도로 행하다가 세 번 물러남이 없지 않고, 남을 위태롭게 하여 저를 편안케 하는 일이 대개 또한 많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의 뜻이 아직 넓어지지 않았는데 모질고 엷은 바람이 이미 부칩니다. 무릇 모질고 엷음이 이미 부치면 곧 아래에서 백 가지 실마리가 생기고, 사람이 다투어 때를 좇으면 곧 법도가 한결같지 않습니다. 왕의 법도에 상고하면 참으로 임금의 도를 이지러뜨립니다.

옛날 주리가 손을 올리고 내리매 초나라의 법이 마침내 어긋났고, 장탕이 그 마음으로 가볍고 무겁게 하매 한나라 조정의 형벌이 이로써 무너졌습니다. 신하의 치우침으로도 오히려 그 속임을 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는데, 하물며 임금이 높이고 낮추시면 장차 무엇으로 그 손발을 두겠습니까.

슬기롭고 성스러운 총명하심으로 그윽하고 은미하여 비추지 않는 바가 없으니, 어찌 신령함이 이르지 못하는 바가 있고 슬기가 통하지 못하는 바가 있겠습니까. 그 편안한 바를 편안히 여겨 형벌을 가엾이 여김을 생각으로 삼지 않으시고, 그 즐거운 바를 즐거워하여 마침내 먼저 웃던 것의 변고를 잊으십니다. 재앙과 복이 서로 기대고 길함과 흉함이 한 지경에 있어 오직 사람이 부르는 바이니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요사이 꾸짖고 벌하심이 차츰 많아지고 위엄과 노여움이 조금 매서워졌습니다. 더러는 이바지가 넉넉하지 않다 하시고, 더러는 짓는 일이 어그러졌다 하시며, 더러는 물건이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하시고, 더러는 사람이 명을 좇지 않는다 하십니다. 이는 다 다스림에 이르는 데 급한 바가 아니요, 참으로 교만과 사치가 차츰 스밀까 두렵습니다. 그러니 「귀함은 교만과 기약하지 않아도 교만이 절로 이르고, 넉넉함은 사치와 기약하지 않아도 사치가 절로 온다」 함이 한갓 말이 아님을 압니다.

且我之所代,實在有隋。隋氏亂亡之源,聖明之所臨照。以隋氏之府藏譬今日之資儲,以隋氏之甲兵況當今之士馬,以隋氏之戶口校今時之百姓,度長比大,曾何等級?然隋氏以富強而喪敗,動之也;我以貧窮而安寧,靜之也。靜之則安,動之則亂,人皆知之,非隱而難見也,非微而難察也。然鮮蹈平易之途,多遵覆車之轍,何哉?在於安不思危、治不念亂、存不慮亡之所致也。昔隋氏之未亂,自謂必無亂;隋氏之未亡,自謂必不亡,所以甲兵屢動,徭役不息。至於將受戮辱,竟未悟其滅亡之所由也,可不哀哉!

또 우리가 대신한 것은 참으로 수나라에 있습니다. 수씨가 어지러워 망한 근원은 성스럽고 밝으심이 임하여 비추시는 바입니다. 수씨의 곳간으로 오늘의 밑천과 쌓임에 견주고, 수씨의 갑옷과 군사로 지금의 군사와 말에 견주며, 수씨의 호구로 지금의 백성을 헤아려, 길이를 재고 크기를 견주면 일찍이 무슨 등급이겠습니까. 그러나 수씨는 넉넉하고 굳센데도 잃고 무너진 것은 움직였기 때문이요, 우리는 가난하고 궁한데도 편안하고 안녕한 것은 고요했기 때문입니다.

고요하면 곧 편안하고 움직이면 곧 어지러움은 사람이 다 아는 바라, 숨어서 보기 어려운 것이 아니요 은미하여 살피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평탄한 길을 밟는 이가 드물고 엎어진 수레의 바퀴자국을 좇는 이가 많은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편안한 데서 위태로움을 생각하지 않고, 다스림에서 어지러움을 생각하지 않으며, 있음에서 없어짐을 헤아리지 않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옛날 수씨가 아직 어지럽지 않았을 때 스스로 반드시 어지러움이 없으리라 하였고, 수씨가 아직 망하지 않았을 때 스스로 반드시 망하지 않으리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갑옷과 군사가 여러 번 움직이고 부역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장차 죽임과 욕됨을 받게 되어서도 끝내 그 멸망이 말미암은 바를 깨닫지 못하였으니 슬프지 않겠습니까.

夫鑒形之美惡,必就於止水;鑒國之安危,必取於亡國。故《詩》曰:「殷鑒不遠,在夏後之世。」又曰:「伐柯伐柯,其則不遠。」臣願當今之動靜,必思隋氏以為殷鑒,則存亡之治亂,可得而知。若能思其所以危,則安矣;思其所以亂,則治矣;思其所以亡,則存矣。知存亡之所在,節嗜欲以從人,省遊畋之娛,息靡麗之作,罷不急之務,慎偏聽之怒;近忠厚,遠便佞,杜悅耳之邪說,甘苦口之忠言;去易進之人,賤難得之貨,采堯舜之誹謗,追禹湯之罪己;惜十家之產,順百姓之心,近取諸身,恕以待物,思勞謙以受益,不自滿以招損;有動則庶類以和,出言而千里斯應,超上德於前載,樹風聲於後昆,此聖哲之宏觀,而帝王之大業,能事斯畢,在乎慎守而已。

무릇 모양의 아름다움과 미움을 비추려면 반드시 멎은 물에 나아가야 하고, 나라의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비추려면 반드시 망한 나라에서 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경』에 이르기를 「은나라의 거울이 멀지 않으니 하후씨의 세상에 있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도끼자루를 베고 도끼자루를 베니 그 법이 멀지 않다」 하였습니다.

신은 지금의 움직임과 고요함이 반드시 수씨를 생각하여 은나라의 거울로 삼기를 바라니, 곧 살아남음과 망함,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위태로워진 까닭을 생각할 수 있으면 곧 편안하고, 그 어지러워진 까닭을 생각하면 곧 다스려지며, 그 망한 까닭을 생각하면 곧 살아남습니다.

살아남고 망함이 있는 데를 아시어, 즐기고 바라는 것을 덜어 사람을 좇으시고, 놀고 사냥하는 즐거움을 덜며, 화려하고 고운 지음을 그치시고, 급하지 않은 일을 그만두시며, 한쪽만 듣고 내는 노여움을 삼가소서. 충성되고 두터운 이를 가까이하고 편하고 아첨하는 이를 멀리하시며, 귀를 기쁘게 하는 그릇된 말을 막고 입에 쓴 충성된 말을 달게 여기소서. 쉽게 나아오는 사람을 버리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천히 여기시며, 요임금과 순임금이 헐뜯음을 캐던 일을 취하고 우임금과 탕임금이 제게 죄 물은 일을 좇으소서. 열 집의 재산을 아끼고 백성의 마음을 따르시며, 가까이 제 몸에서 취하고 너그러움으로 사물을 대하소서. 수고로이 겸손하여 보탬을 받기를 생각하고 스스로 가득 차 덜림을 부르지 마소서.

움직임이 있으면 뭇 무리가 화하고 말을 내면 천 리에서 이에 응할 터이니, 위없는 덕을 앞선 기록보다 뛰어나게 하고 바람 같은 소리를 뒷 자손에게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스럽고 슬기로운 이의 큰 안목이요 제왕의 큰 업이니, 능한 일이 이에 다하고 삼가 지키는 데 있을 뿐입니다.

夫守之則易,取之實難。既能得其所以難,豈不能保其所以易?其或保之不固,則驕奢淫泆動之也。慎終如始,可不勉歟!《易》曰:「君子安不忘危,存不忘亡,治不忘亂,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誠哉斯言,不可以不深察也。伏惟陛下欲善之誌,不減於昔時,聞過必改,少虧於曩日。若以當今之無事,行疇昔之恭儉,則盡善盡美矣,固無得而稱焉。

무릇 지키기는 곧 쉽고 얻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미 그 어려운 바를 얻을 수 있었는데 어찌 그 쉬운 바를 지킬 수 없겠습니까. 그 혹 지킴이 굳지 못하면 곧 교만과 사치와 음란과 방자가 이를 움직인 것입니다. 끝을 삼가기를 처음같이 하기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역』에 이르기를 「군자는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있을 때 없어짐을 잊지 않으며, 다스려질 때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몸이 편안하고 나라와 집을 지킬 수 있다」 하였습니다. 참되도다 이 말이여, 깊이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께서 착하고자 하시는 뜻은 옛날보다 덜하지 않으시나, 허물을 들으면 반드시 고치심은 지난날보다 조금 이지러졌습니다. 만약 지금의 일 없음으로 지난날의 공손함과 검소함을 행하시면 곧 착함을 다하고 아름다움을 다하시는 것이라, 참으로 무어라 이루 일컬을 수 없을 것입니다.

太宗深嘉而納用。

태종이 깊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 썼다.

貞觀十四年,戴州刺史賈崇以所部有犯十惡者,被御史劾奏。太宗謂侍臣曰:「昔陶唐大聖,柳下惠大賢,其子丹朱甚不肖,其弟盜跖為臣惡。夫以聖賢之訓,父子兄弟之親,尚不能使陶染變革,去惡從善。今遣刺史,化被下人,咸歸善道,豈可得也?若令緣此皆被貶降,或恐遞相掩蔽,罪人斯失。諸州有犯十惡者,刺史不須從坐,但令明加糾訪科罪,庶可肅清奸惡。」

정관 십사 년에 대주자사 가숭이 그 다스리는 데 열 가지 큰 죄를 범한 이가 있었다 하여 어사에게 탄핵을 받았다.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옛날 도당씨는 큰 성인이요 유하혜는 큰 어진 이였으나, 그 아들 단주는 몹시 못났고 그 아우 도척은 신하로서 모질었다. 무릇 성인과 어진 이의 가르침과 아비와 아들, 형과 아우의 친함으로도 오히려 물들어 바뀌어 모짊을 버리고 착함을 좇게 하지 못하였다. 이제 자사를 보내 가르침이 아랫사람에게 미쳐 다 착한 도로 돌아가게 하는 일을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만약 이로 말미암아 다 낮추고 깎이게 한다면, 혹 서로 번갈아 가려 덮어 죄인이 이에 빠져나갈까 두렵다. 여러 고을에 열 가지 큰 죄를 범한 이가 있어도 자사는 모름지기 따라 죄받지 말게 하고, 다만 밝게 들추어 물어 죄를 매기게 하면 거의 간사하고 모진 것을 엄숙히 맑힐 수 있으리라.」

貞觀十六年,太宗謂大理卿孫伏伽曰:「夫作甲者欲其堅,恐人之傷;作箭者欲其銳,恐人不傷。何則?各有司存,利在稱職故也。朕常問法官刑罰輕重,每稱法網寬於往代,仍恐主獄之司,利在殺人,危人自達,以釣聲價。今之所憂,正在此耳。深宜禁止,務在寬平。」

정관 십육 년에 태종이 대리경 손복가에게 말하였다.

「무릇 갑옷 만드는 이는 그것이 굳기를 바라니 사람이 다칠까 두려워함이요, 화살 만드는 이는 그것이 날카롭기를 바라니 사람이 다치지 않을까 두려워함이다. 어찌해서인가. 저마다 맡은 바가 있어 이로움이 직분에 걸맞은 데 있기 때문이다.

짐이 늘 법관에게 형벌의 가볍고 무거움을 물으면 법의 그물이 지난 시대보다 너그럽다고 일컫는다. 그래도 옥사를 맡은 관사가 이로움이 사람 죽이는 데 있다 하여, 남을 위태롭게 하여 저를 드러내고 그로써 이름값을 낚을까 두렵다. 이제 걱정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을 뿐이다. 깊이 마땅히 금하여 그치게 하고 너그럽고 고르기에 힘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