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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貢賦第三十三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5 · 한자 566자 · 낭독 2.3분

「정관정요」 공물과 세금을 논하다 「論貢賦第三十三」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二年,太宗謂朝集使曰:「任土作貢,布在前典,當州所產,則充庭實。比聞都督、刺史邀射聲名,厥土所賦,或嫌其不善,逾意外求,更相仿效,遂以成俗。極為勞擾,宜改此弊,不得更然。」

정관 이 년에 태종이 조집사에게 말하였다.

「땅에 맡겨 공물을 짓는 것이 앞선 법전에 널려 있으니, 그 고을에서 나는 것으로 곧 뜰에 채우는 것이다. 요사이 들으니 도독과 자사가 이름을 얻으려 하여, 그 땅에서 바치는 것이 더러 좋지 않다고 싫어하며 뜻을 넘어 밖에서 구하고, 다시 서로 본떠 마침내 풍속을 이루었다 한다. 지극히 수고롭고 시끄러우니 마땅히 이 폐단을 고쳐 다시 그러하지 말게 하라.」

貞觀中,林邑國貢白鸚鵡,性辯慧,尤善應答,屢有苦寒之言。太宗湣之,付其使,令還出於林藪。

정관 연간에 임읍국이 흰 앵무를 바쳤는데, 성품이 말을 잘하고 슬기로워 더욱 응답을 잘하였고 여러 번 추워 괴롭다는 말을 하였다. 태종이 가엾이 여겨 그 사신에게 부쳐 수풀로 돌려보내게 하였다.

貞觀十二年,疏勒、朱俱波、甘棠遣使貢方物,太宗謂群臣曰:「向使中國不安,日南、西域朝貢使亦何緣而至?朕何德以堪之?睹此翻懷危懼。近代平一天下,拓定邊方者,惟秦皇、漢武。始皇暴虐,至子而亡。漢武驕奢,國祚幾絕。朕提三尺劍以定四海,遠夷率服,億兆乂安,自謂不減二主也。然二主末途,皆不能自保,由是每自懼危亡,必不敢懈怠。惟藉公等直言正諫,以相匡弼。若惟揚美隱惡,共進諛言,則國之危亡,可立而待也。」

정관 십이 년에 소륵과 주구파와 감당이 사신을 보내 그 땅의 물건을 바쳤다. 태종이 뭇 신하에게 말하였다.

「만약 중국이 편안하지 않았다면 일남과 서역의 조공 사신이 또한 무슨 인연으로 이르렀겠는가. 짐이 무슨 덕으로 이를 감당하겠는가. 이를 보매 도리어 위태로움과 두려움을 품는다.

요사이 세상에 천하를 평정하여 하나로 하고 변방을 넓혀 정한 이는 오직 진 시황과 한 무제뿐이다. 시황은 사나워 아들 대에 이르러 망하였고, 한 무제는 교만하고 사치하여 나라의 복이 거의 끊길 뻔하였다. 짐이 석 자 칼을 들어 사해를 정하매 먼 오랑캐가 다 복종하고 억조 백성이 다스려져 편안하니, 스스로 이르기를 두 임금에 덜하지 않다 하겠다. 그러나 두 임금의 끝길이 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늘 스스로 위태롭고 망할까 두려워하니 반드시 감히 게을리하지 못한다. 오직 공들의 곧은 말과 바른 간언에 힘입어 서로 바로잡고 돕고자 한다. 만약 오직 아름다움만 드날리고 모짊을 숨기며 함께 아첨하는 말만 올린다면, 곧 나라의 위태로움과 망함을 서서 기다릴 만하다.」

貞觀十八年,太宗將伐高麗,其莫離支遣使貢白金。黃門侍郎褚遂良諫曰:「莫離支虐殺其主,九夷所不容,陛下以之興兵,將事吊伐,為遼東之人報主辱之恥。古者討弒君之賊,不受其賂。昔宋督遺魯君以郜鼎,桓公受之於大廟,臧哀伯諫曰:『君人者將昭德塞違,今滅德立違,而置其賂器於大廟,百官象之,又何誅焉?武王克商,遷九鼎於雒邑,義士猶或非之,而況將昭違亂之賂器置諸大廟,其若之何?』夫《春秋》之書,百王取則,若受不臣之筐篚,納弒逆之朝貢,不以為愆,將何致伐?臣謂莫離支所獻,自不合受。」太宗從之。

정관 십팔 년에 태종이 장차 고구려를 치려 하는데 그 막리지가 사신을 보내 은을 바쳤다. 황문시랑 저수량이 간하였다.

「막리지가 그 임금을 사납게 죽여 아홉 오랑캐가 용납하지 않는 바이니, 폐하께서 이 때문에 군사를 일으켜 장차 위로하고 치는 일을 하시어 요동 사람을 위해 임금이 욕본 부끄러움을 갚으려 하십니다. 옛날에 임금을 죽인 도적을 칠 때는 그 뇌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옛날 송나라 화독이 노나라 임금에게 고나라 솥을 보내니 환공이 이를 태묘에서 받았습니다. 장애백이 간하기를 『남의 임금 된 이는 장차 덕을 밝히고 어긋남을 막아야 하는데, 이제 덕을 없애고 어긋남을 세워 그 뇌물 그릇을 태묘에 두시면 온갖 벼슬아치가 이를 본받을 터이니 또 무엇을 베겠습니까.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아홉 솥을 낙읍으로 옮기매 의로운 선비도 오히려 더러 이를 그르다 하였는데, 하물며 장차 어긋나고 어지러운 뇌물 그릇을 밝혀 태묘에 두시면 그것을 어찌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무릇 『춘추』의 글은 백 왕이 법으로 취하는 바입니다. 만약 신하 아닌 이의 광주리를 받고 임금을 죽인 이의 조공을 들이면서 허물로 여기지 않으신다면, 장차 무엇으로 치는 일을 이루시겠습니까. 신은 막리지가 바친 것을 절로 받으심이 마땅하지 않다 여깁니다.」

태종이 이를 좇았다.

貞觀十九年,高麗王高藏及莫離支蓋蘇文遣使獻二美女,太宗謂其使曰:「朕憫此女離其父母兄弟於本國,若愛其色而傷其心,我不取也。」並卻還之本國。

정관 십구 년에 고구려 왕 고장과 막리지 개소문이 사신을 보내 아름다운 여자 둘을 바쳤다. 태종이 그 사신에게 말하였다.

「짐은 이 여자들이 제 나라에서 부모 형제를 떠난 것을 가엾이 여긴다. 만약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그 마음을 다치게 한다면 나는 취하지 않겠다.」

아울러 그 나라로 물려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