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興亡第三十四
貞觀初,太宗從容謂侍臣曰:「周武平紂之亂,以有天下;秦皇因周之衰,遂吞六國。其得天下不殊,祚運長短若此之相懸也?」尚書右仆射蕭瑀進曰:「紂為無道,天下苦之,故八百諸侯不期而會。周室微,六國無罪,秦氏專任智力,蠶食諸侯。平定雖同,人情則異。」太宗曰:「不然,周既克殷,務弘仁義;秦既得誌,專行詐力。非但取之有異,抑亦守之不同。祚之修短,意在茲乎!」
정관 처음에 태종이 조용히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주 무왕은 은나라 주왕(紂)의 어지러움을 평정하여 천하를 가졌고, 진 시황은 주나라가 쇠한 틈을 타 마침내 여섯 나라를 삼켰다. 그 천하를 얻은 것이 다르지 않은데 복과 운수의 길고 짧음이 어찌 이토록 서로 아득한가?」
상서우복야 소우가 나아가 말하였다.
「주왕(紂)이 도가 없어 천하가 이를 괴로워하였으므로 팔백 제후가 기약하지 않고 모였습니다. 주나라 왕실이 미약해졌을 때 여섯 나라는 죄가 없었는데 진씨가 오로지 슬기와 힘에 맡겨 제후를 누에처럼 먹었습니다. 평정한 것은 비록 같으나 사람의 정은 곧 다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주나라는 이미 은나라를 이기고 어짊과 의로움을 넓히기에 힘썼고, 진나라는 이미 뜻을 얻고 오로지 속임과 힘을 행하였다. 다만 얻은 것에 다름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지킨 것이 같지 않았다. 복의 길고 짧음이 뜻은 여기에 있으리라.」
貞觀二年,太宗謂黃門侍郎王珪曰:「隋開皇十四年大旱,人多饑乏。是時倉庫盈溢,竟不許賑給,乃令百姓逐糧。隋文不憐百姓而惜倉庫,比至末年,計天下儲積,得供五六十年。煬帝恃此富饒,所以奢華無道,遂致滅亡。煬帝失國,亦此之由。凡理國者,務積於人,不在盈其倉庫。古人云:『百姓不足,君孰與足?』但使倉庫可備兇年,此外何煩儲蓄!後嗣若賢,自能保其天下;如其不肖,多積倉庫,徒益其奢侈,危亡之本也。」
정관 이 년에 태종이 황문시랑 왕규에게 말하였다.
「수나라 개황 십사 년에 크게 가물어 사람들이 흔히 굶주리고 모자랐다. 이때 곳간이 차서 넘쳤는데도 끝내 나누어 주기를 허락하지 않고 이에 백성으로 하여금 곡식을 좇아 떠나게 하였다. 수 문제는 백성을 가엾이 여기지 않고 곳간을 아꼈으니, 말년에 이르러 천하의 쌓임을 셈하매 오륙십 년을 댈 만하였다. 양제가 이 넉넉함을 믿어 사치하고 화려하며 도가 없었으므로 마침내 멸망에 이르렀다. 양제가 나라를 잃은 것 또한 이에서 말미암았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이는 사람에게 쌓기에 힘써야지 그 곳간을 채우는 데 있지 않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백성이 넉넉하지 않으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넉넉하겠는가』 하였다. 다만 곳간이 흉년에 갖출 만하게 하면 될 뿐이니 이 밖에 무엇하러 번거로이 쌓아 두겠는가. 뒤를 잇는 이가 만약 어질면 절로 그 천하를 지킬 수 있고, 만일 그가 못나면 곳간에 많이 쌓아 둔 것이 한갓 그 사치를 더할 뿐이니 위태롭고 망하는 밑동이다.」
貞觀五年,太宗謂侍臣曰:「天道福善禍淫,事猶影響。昔啟民亡國來奔,隋文帝不吝粟帛,大興士眾營衛安置,乃得存立。既而強富,子孫不思念報德,才至始畢,即起兵圍煬帝於雁門。及隋國亂,又恃強深入,遂使昔安立其國家者,身及子孫,並為頡利兄弟之所屠戮。今頡利破亡,豈非背恩忘義所至也?」群臣咸曰:「誠如聖旨。」
정관 오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하늘의 도는 착한 이에게 복 주고 음란한 이에게 재앙을 주니 일이 그림자와 메아리 같다. 옛날 계민이 나라를 잃고 달아나 오매 수 문제가 조와 비단을 아끼지 않고 군사와 무리를 크게 일으켜 지키고 두어 마침내 살아 설 수 있었다. 이윽고 굳세고 넉넉해지자 자손이 덕 갚기를 생각하지 않아, 겨우 시필에 이르러 곧 군사를 일으켜 안문에서 양제를 에워쌌다. 수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또 굳셈을 믿고 깊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옛날 그 나라를 편안히 세워 준 이가 제 몸과 자손에 이르기까지 아울러 힐리 형제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제 힐리가 무너져 망하였으니 어찌 은혜를 등지고 의로움을 잊은 데서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뭇 신하가 다 말하였다.
「참으로 성스러운 뜻과 같습니다.」
貞觀九年,北蕃歸朝人奏:「突厥內大雪,人饑,羊馬並死。中國人在彼者,皆入山作賊,人情大惡。」太宗謂侍臣曰:「觀古人君,行仁義、任賢良則理;行暴亂、任小人則敗。突厥所信任者,並共公等見之,略無忠正可取者。頡利復不憂百姓,恣情所為,朕以人事觀之,亦何可久矣?」魏徵進曰:「昔魏文侯問李克:『諸侯誰先亡?』克曰:『吳先亡。』文侯曰:『何故?』克曰:『數戰數勝,數勝則主驕,數戰則民疲,不亡何待?』頡利逢隋末中國喪亂,遂恃眾內侵,今尚不息,此其必亡之道。」太宗深然之。
정관 구 년에 북쪽 변방에서 조정에 돌아온 사람이 아뢰었다.
「돌궐 안에 큰 눈이 내려 사람이 굶주리고 양과 말이 아울러 죽습니다. 중국 사람으로 그곳에 있는 이가 다 산에 들어가 도적이 되니 사람의 정이 크게 모집니다.」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옛 임금을 보건대 어짊과 의로움을 행하고 어질고 좋은 이에게 맡기면 곧 다스려지고, 사납고 어지러움을 행하고 소인에게 맡기면 곧 무너졌다. 돌궐이 믿고 맡기는 이들은 아울러 공들과 함께 이를 보았거니와 도무지 충성되고 바르며 취할 만한 이가 없다. 힐리는 다시 백성을 걱정하지 않고 정을 마음껏 하여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짐이 사람의 일로 보건대 또한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위징이 나아가 말하였다.
「옛날 위 문후가 이극에게 묻기를 『제후 가운데 누가 먼저 망하겠는가』 하니 이극이 『오나라가 먼저 망합니다』 하였습니다. 문후가 『무슨 까닭인가』 하니 이극이 말하기를 『자주 싸워 자주 이깁니다. 자주 이기면 곧 임금이 교만해지고 자주 싸우면 곧 백성이 지치니, 망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하였습니다. 힐리는 수나라 끝에 중국이 상하고 어지러움을 만나 마침내 무리를 믿고 안으로 침노하였는데, 이제도 오히려 그치지 않으니 이것이 그 반드시 망할 길입니다.」
태종이 깊이 그렇게 여겼다.
貞觀九年,太宗謂魏徵曰:「頃讀周、齊史,末代亡國之主為惡多相類也。齊主深好奢侈,所有府庫用之略盡,乃至關市無不稅斂。朕常謂此猶如饞人自食其肉,肉盡必死。人君賦斂不已,百姓既弊,其君亦亡,齊主即是也。然天元、齊主若為優劣?」徵對曰:「二主亡國雖同,其行則別。齊主愞弱,政出多門,國無綱紀,遂至亡滅。天元性兇而強,威福在己,亡國之事,皆在其身。以此論之,齊主為劣。」
정관 구 년에 태종이 위징에게 말하였다.
「요사이 주나라와 제나라의 역사를 읽었는데, 끝 대에 나라를 망하게 한 임금이 모진 짓을 한 것이 흔히 서로 비슷하다. 제나라 임금은 사치를 몹시 좋아하여 모든 곳간을 다 써 버리고, 이에 관문과 저자에까지 세금을 거두지 않는 데가 없었다. 짐은 늘 이를 두고 마치 먹기를 탐하는 사람이 스스로 제 살을 먹는 것과 같아 살이 다하면 반드시 죽는다 이른다. 임금이 세금 거두기를 그치지 않아 백성이 이미 피폐하면 그 임금 또한 망하니 제나라 임금이 곧 그러하다. 그런데 천원과 제나라 임금 가운데 누가 낫고 못한가?」
위징이 대답하였다.
「두 임금이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비록 같으나 그 행실은 곧 다릅니다. 제나라 임금은 무르고 약하여 정사가 여러 문에서 나오고 나라에 벼리가 없어 마침내 망하고 멸함에 이르렀습니다. 천원은 성품이 흉하고 굳세어 위엄과 복이 제게 있었으니, 나라를 망하게 한 일이 다 그 몸에 있습니다. 이로 논하면 제나라 임금이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