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征伐第三十五
武德九年冬,突厥頡利、突利二可汗以其眾二十萬,至滑水便橋之北,遣酋帥執矢思力入朝為覘,自張聲勢云:「二可汗總兵百萬,今已至矣。」乃請返命。太宗謂曰:「我與突厥面自和親,汝則背之,我無所愧,何輒將兵入我畿縣,自誇強盛?我當先戮爾矣!」思力懼而請命。蕭瑀、封德彜等請禮而遣之,太宗曰:「不然。今若放還,必謂我懼。」乃遣囚之。太宗曰:「頡利聞我國家新有內難,又聞朕初即位,所以率其兵眾直至於此,謂我不敢拒之。朕若閉門自守,虜必縱兵大掠。強弱之勢,在今一策。朕將獨出,以示輕之,且耀軍容,使知必戰。事出不意,乖其本圖,制服匈奴,在茲舉矣。」遂單馬而進,隔津與語,頡利莫能測。俄而六軍繼至,頡利見軍容大盛,又知思力就拘,由是大懼,請盟而退。
무덕 구 년 겨울에 돌궐의 힐리와 돌리 두 가한이 그 무리 이십만으로 활수 편교의 북쪽에 이르렀다. 우두머리 집시사력을 보내 조정에 들어와 엿보게 하고 스스로 위세를 펴 말하였다.
「두 가한이 군사 백만을 거느리고 이제 이미 이르렀습니다.」
이에 돌아가 명을 아뢰기를 청하였다. 태종이 말하였다.
「내가 돌궐과 낯을 맞대고 스스로 화친하였는데 너희가 곧 이를 등졌다. 나는 부끄러울 바가 없다. 어찌 문득 군사를 이끌고 내 서울 언저리 고을에 들어와 스스로 굳세고 성함을 자랑하는가. 내가 마땅히 먼저 너를 죽이겠다.」
사력이 두려워하여 목숨을 청하였다. 소우와 봉덕이 등이 예로 대하여 보내기를 청하니 태종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이제 만약 놓아 돌려보내면 반드시 내가 두려워한다 이를 것이다.」
이에 그를 가두게 하였다. 태종이 말하였다.
「힐리는 우리나라에 새로 안의 어려움이 있음을 듣고 또 짐이 처음 자리에 오른 것을 들었다. 그래서 그 군사와 무리를 이끌고 곧장 여기에 이르러 내가 감히 막지 못하리라 이르는 것이다. 짐이 만약 문을 닫고 스스로 지키면 오랑캐가 반드시 군사를 놓아 크게 노략질할 것이다. 굳세고 약한 형세가 오늘 한 가지 계책에 있다.
짐이 장차 홀로 나가 가벼이 여김을 보이고, 또 군사의 모습을 빛내어 반드시 싸울 줄을 알게 하리라. 일이 뜻밖에 나와 그 본디 꾀를 어그러뜨려 흉노를 눌러 복종시키는 것이 이 한 번의 거사에 있다.」
마침내 홀로 말을 타고 나아가 나루를 사이에 두고 말하니 힐리가 헤아릴 수 없었다. 이윽고 여섯 군이 잇달아 이르렀다. 힐리가 군사의 모습이 크게 성함을 보고 또 사력이 잡혀 갇힌 것을 알매, 이로 말미암아 크게 두려워하여 맹세를 청하고 물러갔다.
貞觀初,嶺南諸州奏言高州酋帥馮盎、談殿阻兵反叛。詔將軍藺謩發江、嶺數十州兵討之。秘書監魏徵諫曰:「中國初定,瘡痍未復,嶺南瘴癧,山川阻深,兵運難繼,疾疫或起,若不如意,悔不可追。且馮盎若反,即須及中國未寧,交結遠人,分兵斷險,破掠州縣,署置官司。何因告來數年,兵不出境?此則反形未成,無容動眾。陛下既未遣使人就彼觀察,即來朝謁,恐不見明。今若遣使,分明曉諭,必不勞師旅,自致闕庭。」太宗從之,嶺表悉定。侍臣奏言:「馮盎、談殿往年恒相征伐,陛下發一單使,嶺外帖然。」太宗曰:「初,嶺南諸州盛言盎反,朕必欲討之,魏徵頻諫,以為但懷之以德,必不討自來。既從其計,遂得嶺表無事,不勞而定,勝於十萬之師。」乃賜徵絹五百匹。
정관 처음에 영남 여러 고을이 아뢰기를 고주의 우두머리 풍앙과 담전이 군사로 막고 배반하였다 하였다. 조서로 장군 인모에게 강남과 영남 수십 고을의 군사를 내어 이를 치게 하였다. 비서감 위징이 간하였다.
「중국이 갓 정해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습니다. 영남은 장기가 있고 산과 내가 막히고 깊어 군사와 수송이 잇기 어렵고 돌림병이 더러 일어납니다. 만약 뜻대로 되지 않으면 뉘우쳐도 따를 수 없습니다.
또 풍앙이 만약 배반한다면 곧 모름지기 중국이 아직 편안하지 않은 때를 타 먼 사람과 사귀어 맺고, 군사를 나누어 험한 데를 끊으며, 고을과 현을 무찔러 노략질하고 벼슬아치를 두었을 것입니다. 무슨 까닭으로 고한 지 몇 해가 되도록 군사가 지경을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이는 곧 배반할 모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니 무리를 움직임을 용납할 바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이미 사람을 보내 그곳에 나아가 살펴보게 하지 않으셨으니, 곧 와서 뵙더라도 밝게 드러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제 만약 사신을 보내 밝게 알아듣게 타이르시면, 반드시 군사를 수고롭게 하지 않고도 절로 대궐 뜰에 이를 것입니다.」
태종이 이를 좇으니 영남 밖이 다 정해졌다. 곁에서 모시는 신하가 아뢰었다.
「풍앙과 담전이 지난해에 늘 서로 쳤는데, 폐하께서 홑사신 하나를 보내시매 영남 밖이 조용해졌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처음에 영남 여러 고을이 풍앙이 배반한다고 성하게 말하여 짐이 반드시 이를 치려 하였다. 위징이 자주 간하여 다만 덕으로 품으면 반드시 치지 않아도 절로 오리라 하였다. 이미 그 계책을 좇아 마침내 영남 밖에 일이 없게 되었으니, 수고롭지 않고 정해진 것이 십만 군사보다 낫다.」
이에 위징에게 비단 오백 필을 내렸다.
貞觀四年,有司上言:「林邑蠻國,表疏不順,請發兵討擊之。」太宗曰:「兵者兇器,不得已而用之。故漢光武云:『每一發兵,不覺頭須為白。』自古以來窮兵極武,未有不亡者也。苻堅自恃兵強,欲必吞晉室,興兵百萬,一舉而亡。隋主亦必欲取高麗,頻年勞役,人不勝怨,遂死於匹夫之手。至如頡利,往歲數來侵我國家,部落疲於征役,遂至滅亡。朕今見此,豈得輒即發兵?但經歷山險,土多瘴癧,若我兵士疾疫,雖克剪此蠻,亦何所補?言語之間,何足介意!」竟不討之。
정관 사 년에 맡은 관사가 글을 올려 말하였다.
「임읍의 오랑캐 나라가 표와 글이 순하지 않으니 청컨대 군사를 내어 쳐 치소서.」
태종이 말하였다.
「군사는 흉한 그릇이라 마지못하여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광무제가 이르기를 『한 번 군사를 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머리와 수염이 하얘진다』 하였다. 예로부터 군사를 다하고 무예를 다한 이가 망하지 않은 이가 없다.
부견은 스스로 군사가 굳셈을 믿어 반드시 진나라 왕실을 삼키려 하여 군사 백만을 일으켰다가 한 번에 망하였다. 수나라 임금 또한 반드시 고구려를 취하려 하여 해마다 부역시키니 사람이 원망을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 예사 사내의 손에 죽었다. 힐리 같은 이는 지난 몇 해 여러 번 우리나라를 침노하러 왔는데, 부락이 정벌과 부역에 지쳐 마침내 멸망에 이르렀다.
짐이 이제 이를 보고 어찌 문득 곧 군사를 내겠는가. 다만 산과 험한 데를 지나야 하고 땅에 장기가 많으니, 만약 우리 군사가 돌림병에 걸리면 비록 이 오랑캐를 이겨 자른들 또한 무엇에 보탬이 되겠는가. 말 사이의 일을 어찌 마음에 둘 것이겠는가.」
끝내 이를 치지 않았다.
貞觀五年,康國請歸附。時太宗謂侍臣曰:「前代帝王,大有務廣土地,以求身後之虛名,無益於身,其民甚困。假令於身有益,於百姓有損,朕必有為,況求虛名而損百姓乎?康國既來歸朝,有急難不得不救;兵行萬里,豈得無勞於民?若勞民求名,非朕所欲。所請歸附,不須納也。」
정관 오 년에 강국이 붙어 돌아오기를 청하였다. 그때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앞선 세상의 제왕이 크게 땅을 넓히기에 힘써 몸이 죽은 뒤의 헛된 이름을 구한 이가 많으나, 제 몸에 보탬이 없고 그 백성이 몹시 곤궁하였다. 설사 제 몸에 보탬이 있어도 백성에게 덜림이 있으면 짐은 반드시 하지 않겠는데, 하물며 헛된 이름을 구하여 백성을 덜겠는가.
강국이 이미 와서 조정에 돌아오면 급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건지지 않을 수 없다. 군사가 만 리를 가면 어찌 백성에게 수고로움이 없겠는가. 만약 백성을 수고롭게 하여 이름을 구한다면 짐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붙어 돌아오기를 청한 것은 모름지기 받아들이지 말라.」
貞觀十四年,兵部尚書侯君集伐高昌,及師次柳谷,候騎言:「高昌王麴文泰死,克日將葬,國人咸集,以二千輕騎襲之,可盡得也。」副將薛萬均、姜行本皆以為然。君集曰:「天子以高昌驕慢,使吾恭行天誅。乃於墟墓間以襲其葬,不足稱武,此非問罪之師也。」遂按兵以待葬畢,然後進軍,遂平其國。
정관 십사 년에 병부상서 후군집이 고창을 쳤다. 군사가 유곡에 머무르는데 척후 기병이 말하였다.
「고창왕 국문태가 죽어 날을 정해 장차 장사 지내려 하니 나라 사람이 다 모입니다. 가벼운 기병 이천으로 엄습하면 다 얻을 수 있습니다.」
부장 설만균과 강행본이 다 그렇게 여겼다. 군집이 말하였다.
「천자께서 고창이 교만하고 거만하다 하시어 나로 하여금 삼가 하늘의 벰을 행하게 하셨다. 그런데 무덤 사이에서 그 장사를 엄습하는 것은 무예라 일컫기에 넉넉하지 않으니 이는 죄를 묻는 군사가 아니다.」
마침내 군사를 눌러 장사가 끝나기를 기다린 뒤에 군사를 나아가게 하여 마침내 그 나라를 평정하였다.
貞觀十六年,太宗謂侍臣曰:「北狄世為寇亂,今延陀倔強,須早為之所。朕熟思之,惟有二策:選徒十萬,擊而虜之,滌除兇醜,百年無患,此一策也。若遂其來請,與之為婚媾。朕為蒼生父母,茍可利之,豈惜一女!北狄風俗,多由內政,亦既生子,則我外孫,不侵中國,斷可知矣。以此而言,邊境足得三十年來無事。舉此二策,何者為先?」司空房玄齡對曰:「遭隋室大亂之後,戶口太半未復,兵兇戰危,聖人所慎,和親之策,實天下幸甚。」
정관 십육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북쪽 오랑캐가 대대로 도적질하고 어지럽혔는데, 이제 연타가 뻣뻣하니 모름지기 일찍 그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짐이 익히 생각하건대 오직 두 가지 계책이 있다. 무리 십만을 골라 쳐서 사로잡아 흉한 무리를 씻어 없애면 백 년에 걱정이 없으리니 이것이 한 계책이다. 만약 그 와서 청함을 들어주어 그와 혼인을 맺는 것이다. 짐은 뭇 백성의 부모가 되었으니 진실로 그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면 어찌 딸 하나를 아끼겠는가. 북쪽 오랑캐의 풍속은 흔히 안 정사에서 말미암으니, 또한 이미 아들을 낳으면 곧 나의 외손이라 중국을 침노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딱 잘라 알 수 있다. 이로 말하면 변방이 서른 해쯤 일이 없기에 넉넉하다. 이 두 계책을 들었는데 어느 것이 먼저인가?」
사공 방현령이 대답하였다.
「수나라 왕실의 큰 어지러움을 겪은 뒤라 호구가 태반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군사는 흉하고 싸움은 위태로워 성인이 삼가는 바이니, 화친하는 계책이 참으로 천하에 몹시 다행입니다.」
貞觀十七年,太宗謂侍臣曰:「蓋蘇文弒其主而奪其國政,誠不可忍。今日國家兵力,取之不難,朕未能即動兵眾,且令契丹、靺鞨攪擾之,何如?」房玄齡對曰:「臣觀古之列國,無不強陵弱,眾暴寡。今陛下撫養蒼生,將士勇銳,力有餘而不取之,所謂止戈為武者也。昔漢武帝屢伐匈奴,隋主三征遼左,人貧國敗,實此之由,惟陛下詳察。」太宗曰:「善!」
정관 십칠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개소문이 그 임금을 죽이고 그 나라 정사를 빼앗았으니 참으로 참을 수 없다. 오늘 나라의 군사 힘으로 이를 취하기가 어렵지 않으나, 짐이 곧 군사와 무리를 움직이지는 못하겠으니, 우선 거란과 말갈로 하여금 이를 흔들어 어지럽히게 하면 어떠한가?」
방현령이 대답하였다.
「신이 옛날의 여러 나라를 보건대 굳센 이가 약한 이를 업신여기고 무리가 적은 이를 사납게 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뭇 백성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장수와 군사가 날래고 굳세어 힘에 남음이 있는데도 이를 취하지 않으시니, 이른바 창을 그치는 것이 무예라는 것입니다. 옛날 한 무제가 여러 번 흉노를 치고 수나라 임금이 세 번 요동을 친 일은 사람이 가난해지고 나라가 무너진 것이 참으로 이에서 말미암았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자세히 살피소서.」
태종이 말하였다.
「좋다.」
貞觀十八年,太宗以高麗莫離支賊殺其主,殘虐其下,議將討之。諫議大夫褚遂良進曰:「陛下兵機神算,人莫能知。昔隋末亂離,克平寇難,及北狄侵邊,西蕃失禮,陛下欲命將擊之,群臣莫不苦諫,惟陛下明略獨斷,卒並誅夷。今聞陛下將伐高麗,意皆熒惑。然陛下神武英聲,不比周、隋之主,兵若渡遼,事須克捷,萬一不獲,無以威示遠方,必更發怒,再動兵眾。若至於此,安危難測。」太宗然之。
정관 십팔 년에 태종이 고구려 막리지가 그 임금을 도적처럼 죽이고 그 아랫사람을 잔인하게 사납게 대한다 하여 장차 치기를 의논하였다. 간의대부 저수량이 나아가 말하였다.
「폐하의 군사 낌새와 신묘한 셈은 사람이 알 수 없는 바입니다. 옛날 수나라 끝의 어지럽고 헤어짐에 도적의 어려움을 이겨 평정하셨고, 북쪽 오랑캐가 변방을 침노하고 서쪽 번방이 예를 잃음에 이르러 폐하께서 장수를 명해 치려 하시매 뭇 신하가 괴로이 간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나, 오직 폐하께서 밝은 지략으로 홀로 끊으시어 마침내 아울러 베어 없애셨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장차 고구려를 치신다는 말을 들으니 뜻이 다 어지럽습니다. 그러나 폐하의 신령한 무예와 꽃다운 이름은 주나라와 수나라의 임금에 견줄 바가 아닙니다. 군사가 만약 요수를 건너면 일이 모름지기 이겨야 하는데, 만에 하나 얻지 못하면 먼 지방에 위엄을 보일 수 없어 반드시 다시 노여움을 내시고 거듭 군사와 무리를 움직이실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 이르면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태종이 그렇게 여겼다.
貞觀十九年,太宗將親征高麗,開府儀同三司尉遲敬德奏言:「車駕若自往遼左,皇太子又監國定州,東西二京,府庫所在,雖有鎮守,終是空虛,遼東路遙,恐有玄感之變。且邊隅小國,不足親勞萬乘。若克勝,不足為武,倘不勝,翻為所笑。伏請委之良將,自可應時摧滅。」太宗雖不從其諫,而識者是之。
정관 십구 년에 태종이 장차 몸소 고구려를 치려 하니 개부의동삼사 울지경덕이 아뢰었다.
「임금께서 만약 몸소 요동으로 가시고 황태자가 또 정주에서 나라를 살피면, 동서 두 서울은 곳간이 있는 곳이라 비록 진 치고 지킴이 있으나 끝내 이는 비게 됩니다. 요동은 길이 멀어 양현감 같은 변고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또 변방 모퉁이의 작은 나라라 만승을 몸소 수고롭게 하기에 넉넉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겨도 무예라 하기에 넉넉하지 않고 만일 이기지 못하면 도리어 비웃음이 됩니다. 엎드려 청컨대 좋은 장수에게 맡기시면 절로 때에 맞추어 꺾어 없앨 수 있습니다.」
태종이 비록 그 간언을 좇지 않았으나 아는 이들이 옳게 여겼다.
禮部尚書江夏王道宗從太宗征高麗,詔道宗與李勣為前鋒,及濟遼水克蓋牟城,逢賊兵大至,軍中僉欲深溝保險,待太宗至,徐進。道宗議曰:「不可,賊赴急遠來,兵實疲頓,恃眾輕我,一戰可摧。昔耿弇不以賊遺君父,我既職在前軍,當須清道以待輿駕。」李勣大然其議。乃率驍勇數百騎,直沖賊陣,左右出入,勣因合擊,大破之。太宗至,深加賞勞。道宗在陣損足,帝親為針灸,賜以御膳。
예부상서 강하왕 이도종이 태종을 따라 고구려를 쳤다. 조서로 도종과 이적을 선봉으로 삼았다. 요수를 건너 개모성을 이기매 도적의 군사가 크게 이르렀다. 군중에서 다 도랑을 깊이 파고 험한 데를 지키며 태종이 이르기를 기다려 천천히 나아가고자 하였다. 도종이 의논하여 말하였다.
「안 된다. 도적이 급함에 달려 멀리서 왔으니 군사가 실로 지치고 무디었다. 무리를 믿고 우리를 가벼이 여기니 한 번 싸움으로 꺾을 수 있다. 옛날 경엄은 도적을 임금이자 아비에게 남기지 않았다. 나는 이미 직분이 앞 군사에 있으니 마땅히 모름지기 길을 맑혀 임금의 수레를 기다려야 한다.」
이적이 크게 그 의논을 옳게 여겼다. 이에 날래고 용맹한 수백 기를 이끌고 곧장 도적의 진을 찔러 좌우로 드나드니, 이적이 이로 인해 합쳐 쳐서 크게 무찔렀다. 태종이 이르러 깊이 상 주고 위로하였다. 도종이 진중에서 발을 다치니 황제가 몸소 침을 놓고 뜸을 떠 주며 임금의 음식을 내렸다.
太宗《帝範》曰:「夫兵甲者,國家兇器也。土地雖廣,好戰則民雕;中國雖安,忘戰則民殆。雕非保全之術,殆非擬寇之方,不可以全除,不可以常用。故農隙講武,習威儀也;三年治兵,辨等列也。是以勾踐軾蛙,卒成霸業;徐偃棄武,終以喪邦。何也?越習其威,徐忘其備也。孔子曰:『以不教民戰,是謂棄之。』故知弧矢之威,以利天下,此用兵之職也。」
태종의 『제범』에 이렇게 일렀다.
「무릇 병기와 갑옷은 나라의 흉한 그릇이다. 땅이 비록 넓어도 싸움을 좋아하면 곧 백성이 시들고, 중국이 비록 편안해도 싸움을 잊으면 곧 백성이 위태롭다. 시듦은 온전히 지키는 술법이 아니요 위태로움은 도적에 대비하는 방도가 아니니, 아주 없앨 수도 없고 늘 쓸 수도 없다.
그러므로 농사 틈에 무예를 익히는 것은 위엄 있는 거동을 익히는 것이요, 세 해에 군사를 다스리는 것은 등급과 차례를 가리는 것이다. 그래서 구천은 개구리에게 절하여 마침내 패업을 이루었고, 서언은 무예를 버려 끝내 나라를 잃었다. 어찌해서인가. 월나라는 그 위엄을 익혔고 서나라는 그 갖춤을 잊었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가르치지 않은 백성으로 싸우는 것을 이를 버린다 이른다』 하였다. 그러므로 활과 화살의 위엄으로 천하를 이롭게 함이 이 군사 쓰는 직분임을 안다.」
貞觀二十二年,太宗將重討高麗。是時,房玄齡寢疾增劇,顧謂諸子曰:「當今天下清謐,咸得其宜,惟欲東討高麗,主為國害。吾知而不言,可謂銜恨入地。」遂上表諫曰:
정관 이십이 년에 태종이 장차 거듭 고구려를 치려 하였다. 이때 방현령이 병들어 누워 더욱 심해지자 여러 아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지금 천하가 맑고 고요하여 다 그 마땅함을 얻었는데, 오직 동쪽으로 고구려를 치려 하시는 것만이 주로 나라의 해가 된다. 내가 알면서 말하지 않으면 한을 머금고 땅에 든다 이를 만하다.」
마침내 표를 올려 간하였다.
臣聞兵惡不戢,武貴止戈。當今聖化所覃,無遠不暨。上古所不臣者,陛下皆能臣之;所不制者,皆能制之。詳觀古今,為中國患害,無過突厥。遂能坐運神策,不下殿堂,大小可汗,相次束手,分典禁衛,執戟行間。其後延陀鴟張,尋就夷滅,鐵勒慕義,請置州縣,沙漠已北,萬里無塵。至如高昌叛渙於流沙,吐渾首鼠於積石,偏師薄伐,俱從平蕩。高麗歷代逋誅,莫能討擊。陛下責其逆亂,殺主虐人,親總六軍,問罪遼碣。未經旬日,即拔遼東,前後虜獲,數十萬計,分配諸州,無處不滿。雪往代之宿恥,掩崤陵之枯骨,比功校德,萬倍前王。此聖主所自知,微臣安敢備說。
신이 듣건대 군사는 거두지 않음을 미워하고 무예는 창을 그침을 귀히 여긴다 합니다. 지금 성스러운 가르침이 미치는 바가 멀어서 이르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아득한 옛날에 신하 삼지 못하던 이를 폐하께서 다 신하로 삼으실 수 있었고, 억누르지 못하던 이를 다 억누르실 수 있었습니다.
옛날과 지금을 자세히 보건대 중국의 걱정과 해가 됨은 돌궐보다 더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앉아서 신묘한 계책을 부리시어 전각을 내려오지 않고도 크고 작은 가한이 차례로 손을 묶고 궁궐 지키는 일을 나누어 맡아 창을 잡고 대열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 뒤 연타가 올빼미처럼 뻗대다가 이윽고 무찔러 멸함을 당하였고, 철륵이 의로움을 사모하여 주와 현 두기를 청하니 사막 북쪽으로 만 리에 티끌이 없어졌습니다. 고창이 모래벌에서 어그러져 흩어지고 토욕혼이 적석에서 쥐처럼 머뭇거림에 이르러서는, 치우친 군사로 얇게 쳐도 다 좇아 평정되었습니다.
고구려는 대를 지나도록 벰을 벗어나 아무도 쳐 치지 못하였습니다. 폐하께서 그 거스르고 어지러움과 임금을 죽이고 사람을 사납게 함을 꾸짖어, 몸소 여섯 군을 거느리고 요동과 갈석에서 죄를 물으셨습니다. 열흘도 지나지 않아 곧 요동을 빼앗고 앞뒤로 사로잡아 얻은 것이 수십만으로 셈하며, 여러 고을에 나누어 배정하매 차지 않은 데가 없었습니다. 지난 대의 묵은 부끄러움을 씻고 효산의 마른 뼈를 덮으셨으니, 공을 견주고 덕을 재면 앞선 왕의 만 곱절입니다. 이는 성스러운 임금께서 스스로 아시는 바이니 하찮은 신하가 어찌 감히 갖추어 말하겠습니까.
且陛下仁風被於率土,孝德彰於配天。睹夷狄之將亡,則指期數歲;授將帥之節度,則決機萬里。屈指而候驛,視景而望書,符應若神,筭無遺策。擢將於行伍之中,取士於凡庸之末。遠夷單使,一見不忘;小臣之名,未嘗再問。箭穿七劄,弓貫六鈞。加以留情墳典,屬意篇什,筆邁鐘、張,詞窮賈、馬。文鋒既振,則宮徵自諧;輕翰暫飛,則花葩競發。撫萬姓以慈,遇群臣以禮。褒秋毫之善,解吞州之網。逆耳之諫必聽,膚受之訴斯絕。好生之德,禁障塞於江湖;惡殺之仁,息鼓刀於屠肆。鳧鶴荷稻粱之惠,犬馬蒙帷蓋之恩。降尊吮思摩之瘡,登堂臨魏徵之柩。哭戰亡之卒,則哀動六軍;負填道之薪,則情感天地。重黔黎之大命,特盡心於庶獄。臣心識昏憒,豈足論聖功之深遠,談天德之高大哉?陛下兼眾美而有之,靡不備具,微臣深為陛下惜之重之,愛之寶之。
또 폐하의 어진 바람이 온 땅에 덮이고 효성된 덕이 하늘에 짝하여 드러났습니다. 오랑캐가 장차 망할 것을 보시면 곧 몇 해로 때를 가리키시고, 장수에게 지휘를 주시면 곧 만 리 밖의 낌새를 결단하십니다. 손가락을 꼽아 역참을 기다리고 그림자를 보며 글을 바라시매, 부절이 응함이 신묘한 듯하고 셈에 빠진 계책이 없습니다.
장수를 대열 가운데서 뽑고 선비를 예사롭고 못난 끝에서 취하십니다. 먼 오랑캐의 홑사신도 한 번 보시면 잊지 않으시고, 작은 신하의 이름도 일찍이 두 번 물으신 적이 없습니다. 화살은 일곱 겹 갑옷을 뚫고 활은 여섯 균을 당기십니다.
게다가 옛 전적에 마음을 두시고 글월에 뜻을 붙이시니, 붓은 종요와 장지를 넘고 말은 가의와 사마상여를 다하십니다. 글의 서슬이 이미 떨치매 곧 가락이 절로 어울리고, 가벼운 붓이 잠시 날매 곧 꽃송이가 다투어 핍니다.
만백성을 자애로 어루만지시고 뭇 신하를 예로 만나십니다. 가을 터럭만 한 착함도 기리시고 고을을 삼킬 만한 그물도 푸십니다. 귀에 거슬리는 간언을 반드시 들으시고 살갗으로 스미는 하소연을 이에 끊으십니다. 살리기를 좋아하시는 덕으로 강과 호수에 막고 가로막는 것을 금하시고, 죽이기를 미워하시는 어짊으로 푸줏간에서 칼 소리를 그치게 하십니다. 오리와 학이 벼와 기장의 은혜를 입고 개와 말이 휘장과 덮개의 은혜를 입습니다. 높음을 낮추어 사마의 상처를 빨아 주시고 마루에 올라 위징의 널에 임하셨습니다. 싸우다 죽은 군사를 곡하시매 곧 슬픔이 여섯 군을 움직였고, 길을 메울 나무를 지시매 곧 정이 하늘과 땅을 움직였습니다. 검은 머리 백성의 큰 목숨을 무겁게 여기시어 특별히 뭇 옥사에 마음을 다하십니다.
신의 마음과 앎이 어둡고 어지러우니 어찌 성스러운 공의 깊고 멂을 논하고 하늘 같은 덕의 높고 큼을 이야기하기에 넉넉하겠습니까. 폐하께서 뭇 아름다움을 겸하여 가지시어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니, 하찮은 신하가 깊이 폐하를 위해 이를 아끼고 무겁게 여기며 사랑하고 보배로 삼습니다.
《周易》曰:「知進而不知退,知存而不知亡,知得而不知喪。」又曰:「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其惟聖人乎!」由此言之,進有退之義,存有亡之機,得有喪之理,老臣所以為陛下惜之者,蓋謂此也。《老子》曰:「知足不辱,知止不殆。」臣謂陛下威名功德,亦可足矣;拓地開疆,亦可止矣。彼高麗者,邊夷賤類,不足侍以仁義,不可責以常理。古來以魚鱉畜之,宜從闊略。必欲絕其種類,深恐獸窮則搏。且陛下每決死囚,必令三覆五奏,進素食,停音樂者,蓋以人命所重,感動聖慈也。況今兵士之徒,無一罪戾,無故驅之於戰陣之間,委之於鋒刃之下,使肝腦塗地,魂魄無歸,令其老父孤兒、寡妻慈母,望轊車而掩泣,抱枯骨而摧心,足變動陰陽,感傷和氣,實天下之冤痛也。且兵,兇器;戰,危事,不得已而用之。向使高麗違失臣節,而陛下誅之可也;侵擾百姓,而陛下滅之可也;久長能為中國患,而陛下除之可也。有一於此,雖日殺萬夫,不足為愧。今無此三條,坐煩中國,內為舊主雪怨,外為新羅報仇,豈非所存者小,所損者大?
『주역』에 이르기를 「나아갈 줄은 알면서 물러날 줄은 알지 못하고, 있을 줄은 알면서 없어질 줄은 알지 못하며, 얻을 줄은 알면서 잃을 줄은 알지 못한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나아감과 물러남, 있음과 없어짐을 알아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이는 오직 성인이로다」 하였습니다. 이로 말하면 나아감에는 물러남의 뜻이 있고, 있음에는 없어짐의 낌새가 있으며, 얻음에는 잃음의 이치가 있습니다. 늙은 신하가 폐하를 위해 아끼는 까닭은 대개 이를 이름입니다.
『노자』에 이르기를 「넉넉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하였습니다. 신은 폐하의 위엄과 이름과 공과 덕이 또한 넉넉하다 이르겠고, 땅을 넓히고 지경을 여는 일도 또한 그칠 만하다 이르겠습니다.
저 고구려는 변방 오랑캐의 천한 무리라 어짊과 의로움으로 대하기에 넉넉하지 않고 떳떳한 이치로 꾸짖을 수 없습니다. 예로부터 물고기와 자라처럼 길렀으니 마땅히 너그럽고 간략함을 좇아야 합니다. 반드시 그 씨를 끊으려 하시면 짐승이 궁하면 곧 덤빌까 깊이 두렵습니다.
또 폐하께서 사형수를 결단하실 때마다 반드시 세 번 다시 살피고 다섯 번 아뢰게 하시며, 소찬을 드시고 풍류를 그치시는 것은, 대개 사람의 목숨이 무거운 바라 성스러운 자애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지금 군사의 무리는 한 가지 죄도 없는데, 까닭 없이 그들을 싸움터 사이로 몰아 칼날 아래에 맡겨 간과 뇌를 땅에 바르게 하고 넋이 돌아갈 데 없게 합니다. 그 늙은 아비와 외로운 아이, 홀로 된 아내와 자애로운 어미로 하여금 상여 수레를 바라보며 얼굴을 가리고 울게 하고, 마른 뼈를 안고 마음이 무너지게 하니, 그늘과 볕을 움직여 바꾸고 화한 기운을 다치게 하기에 넉넉합니다. 참으로 천하의 원통하고 아픈 일입니다.
또 군사는 흉한 그릇이요 싸움은 위태로운 일이라 마지못하여 쓰는 것입니다. 만약 고구려가 신하의 절개를 어겨 잃었다면 폐하께서 이를 베셔도 됩니다. 백성을 침노하고 어지럽혔다면 폐하께서 이를 없애셔도 됩니다. 오래도록 중국의 걱정이 될 수 있다면 폐하께서 이를 없애셔도 됩니다. 여기에 하나라도 있다면 비록 날마다 만 사람을 죽이시더라도 부끄러워하기에 넉넉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 세 조목이 없는데 앉아서 중국을 번거롭게 하시어, 안으로는 옛 임금을 위해 원한을 씻고 밖으로는 신라를 위해 원수를 갚으시니, 어찌 남기는 바는 작고 더는 바는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願陛下遵皇祖老子止足之誡,以保萬代巍巍之名。發霈然之恩,降寬之大詔,順陽春以布澤,許高麗以自新,焚淩波之船,罷應募之眾,自然華夷慶賴,遠肅邇安。臣老病三公,朝夕入地,所恨竟無塵露,微增海嶽。謹罄殘魂餘息,豫代結草之誠。倘蒙錄此哀鳴,即臣死骨不朽。
바라건대 폐하께서 황조 노자의 그침과 넉넉함의 경계를 좇으시어 만대에 높고 높은 이름을 지키소서. 흠뻑 내리는 은혜를 내시고 너그러운 큰 조서를 내리시며, 봄볕을 따라 은택을 펴시고 고구려에게 스스로 새로워짐을 허락하시며, 물결을 헤칠 배를 태우시고 모집에 응한 무리를 파하소서. 그러면 절로 중화와 오랑캐가 다행으로 여겨 힘입고 먼 데가 엄숙하고 가까운 데가 편안할 것입니다.
신은 늙고 병든 삼공이라 아침저녁으로 땅에 들 터인데, 한스러운 것은 끝내 티끌과 이슬만큼도 바다와 산에 조금도 더하지 못한 것입니다. 삼가 남은 넋과 남은 숨을 다하여 미리 풀을 맺어 갚을 정성을 대신합니다. 만약 이 슬픈 울음을 적어 두심을 입는다면 곧 신은 죽어도 뼈가 썩지 않겠습니다.
太宗見表,嘆曰:「此人危篤如此,尚能憂我國家。」雖諫不從,終為善策。
태종이 표를 보고 탄식하였다.
「이 사람이 병이 이토록 위독한데도 오히려 나의 나라를 걱정할 수 있구나.」
비록 간언을 좇지는 않았으나 끝내 좋은 계책이 되었다.
貞觀二十二年,軍旅亟動,宮室互興,百姓頗有勞弊。充容徐氏上疏諫曰:
정관 이십이 년에 군사가 자주 움직이고 궁실이 번갈아 일어나 백성에게 자못 수고롭고 피폐함이 있었다. 충용 서씨가 상소하여 간하였다.
貞觀已來,二十有餘載,風調雨順,年登歲稔,人無水旱之弊,國無饑饉之災。昔漢武帝,守文之常主,猶登刻玉之符;齊桓公,小國之庸君,尚塗泥金之事。望陛下推功損己,讓德不居。億兆傾心,猶闕告成之禮;雲、亭佇謁,未展升中之儀。此之功德,足以咀嚼百王,網羅千代者矣。然古人有云:「雖休勿休。」良有以也。守初保末,聖哲罕兼。是知業大者易驕,願陛下難之;善始者難終,願陛下易之。
정관 이래 스무 해 남짓, 바람이 고르고 비가 순하여 해마다 곡식이 오르고 여물었습니다. 사람에게 물과 가뭄의 폐단이 없고 나라에 굶주림의 재앙이 없습니다.
옛날 한 무제는 글을 지키는 예사 임금이었는데도 오히려 옥을 새긴 부절에 올랐고, 제 환공은 작은 나라의 못난 임금이었는데도 오히려 금을 진흙에 바르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공을 미루고 제 몸을 덜며 덕을 사양하여 차지하지 않으심을 바라봅니다. 억조 백성이 마음을 기울이는데도 오히려 이룸을 고하는 예가 빠져 있고, 운운산과 정정산이 뵙기를 기다리는데도 아직 하늘에 올리는 의례를 펴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공과 덕은 백 왕을 씹어 삼키고 천 대를 그물질하기에 넉넉합니다.
그러나 옛사람이 이르기를 「비록 아름다워도 아름답다 하지 말라」 하였으니 참으로 까닭이 있습니다. 처음을 지키고 끝을 지키는 일을 성스럽고 슬기로운 이도 겸하기 드뭅니다. 그러니 업이 큰 이는 교만하기 쉬움을 아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이를 어렵게 여기소서. 처음을 잘한 이가 끝을 마치기 어려우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이를 쉽게 하소서.
竊見頃年以來,力役兼總,東有遼海之軍,西有昆丘之役,士馬疲於甲胄,舟車倦於轉輸。且召募役戍,去留懷死生之痛,因風阻浪,人米有漂溺之危。一夫力耕,年無數十之獲;一船致損,則傾覆數百之糧。是猶運有盡之農功,填無窮之巨浪;圖未獲之他眾,喪已成之我軍。雖除兇伐暴,有國常規,然黷武玩兵,先哲所戒。昔秦皇並吞六國,反速危禍之基;晉武奄有三方,翻成覆敗之業。豈非矜功恃大,棄德輕邦,圖利忘害,肆情縱欲?遂使悠悠六合,雖廣不救其亡;嗷嗷黎庶,因弊以成其禍。是知地廣非常安之術,人勞乃易亂之源。願陛下布澤流人,矜弊恤乏,減行役之煩。增雨露之惠。
가만히 보건대 요 몇 해 이래로 힘든 부역이 겹쳐 아울러, 동쪽에 요해의 군사가 있고 서쪽에 곤륜의 부역이 있습니다. 군사와 말이 갑옷과 투구에 지치고 배와 수레가 실어 나름에 지쳤습니다.
또 모집하여 부역하고 지키게 하매 가는 이와 머무는 이가 죽고 사는 아픔을 품고, 바람에 막히고 물결에 걸려 사람과 쌀이 떠내려가고 빠지는 위태로움이 있습니다. 한 사내가 힘써 밭을 갈아도 한 해에 수십 섬의 거둠이 없는데, 배 하나가 다치면 곧 수백 섬의 곡식을 엎습니다. 이는 다함이 있는 농사의 공을 옮겨 다함이 없는 큰 물결을 메우는 것이요, 아직 얻지 못한 남의 무리를 꾀하다가 이미 이룬 우리 군사를 잃는 것입니다.
비록 흉함을 없애고 사나움을 치는 것이 나라에 떳떳한 법이 있으나, 무예를 더럽히고 군사를 희롱하는 것은 앞선 슬기로운 이가 경계한 바입니다. 옛날 진(秦) 시황은 여섯 나라를 아울러 삼키고서 도리어 위태로움과 재앙의 터를 빨리 불렀고, 진(晉) 무제는 세 방면을 다 가지고서 도리어 엎어지고 무너지는 업을 이루었습니다. 어찌 공을 뽐내고 큼을 믿으며 덕을 버리고 나라를 가벼이 여기고, 이로움을 꾀하고 해로움을 잊으며 정을 마음껏 하고 욕심을 놓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침내 아득한 온 세상이 비록 넓어도 그 망함을 건지지 못하게 하였고, 시끄러운 검은 머리 백성이 피폐함으로 인해 그 재앙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땅이 넓은 것이 늘 편안한 술법이 아니요, 사람이 수고로운 것이 곧 어지러워지기 쉬운 근원임을 압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은택을 펴 사람에게 흐르게 하시고 피폐함을 가엾이 여기며 모자람을 구제하시어, 부역의 번거로움을 덜고 비와 이슬의 은혜를 더하소서.
妾又聞為政之本,貴在無為。竊見土木之功,不可遂兼。北闕初建,南營翠微,曾未逾時,玉華創制,非惟構架之勞,頗有功力之費。雖復茅茨示約,猶興木石之疲,假使和雇取人,不無煩擾之弊。是以卑宮菲食,聖王之所安;金屋瑤臺,驕主之為麗。故有道之君,以逸逸人;無道之君,以樂樂身。願陛下使之以時,則力不竭矣;用而息之,則心斯悅矣。
저는 또 듣건대 정사를 하는 밑동은 함이 없음을 귀히 여기는 데 있다 합니다. 가만히 보건대 흙과 나무의 공역을 마침내 겸할 수 없습니다. 북쪽 대궐을 갓 세우고 남쪽에 취미궁을 지었는데, 일찍이 때를 넘기지 않고 옥화궁을 처음 지으셨습니다. 다만 얽고 지음의 수고로움뿐 아니라 자못 힘과 비용의 들임이 있습니다. 비록 다시 띠 지붕으로 검소함을 보이시나 오히려 나무와 돌의 지침을 일으키고, 설사 값을 치르고 사람을 쓰신다 해도 번거롭고 시끄러운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낮은 궁궐과 박한 음식은 성스러운 왕이 편안히 여기는 바요, 금으로 지은 집과 옥으로 된 대는 교만한 임금이 곱다 여기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도가 있는 임금은 편안함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도가 없는 임금은 즐거움으로 제 몸을 즐겁게 합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때에 맞추어 부리시면 곧 힘이 다하지 않을 것이요, 쓰고서 쉬게 하시면 곧 마음이 이에 기뻐할 것입니다.
夫珍玩技巧,為喪國之斧斤;珠玉錦繡,實迷心之酖毒。竊見服玩鮮靡,如變化於自然,職貢奇珍,若神仙之所制,雖馳華於季俗,實敗素於淳風。是知漆器非延叛之方,桀造之而人叛;玉杯豈招亡之術,紂用之而國亡。方驗侈麗之源,不可不遏。夫作法於儉,猶恐其奢;作法於奢,何以制後?伏惟陛下,明照未形,智周無際,窮奧秘於麟閣,盡探賾於儒林。千王治亂之蹤,百代安危之跡,興亡衰亂之數,得失成敗之機,固亦包吞心府之中,循環目圍之內,乃宸衷久察,無假一二言焉。惟知之非難,行之不易,志驕於業著,體逸於時安。伏願抑志裁心,慎終成始,削輕過以添重德,擇今是以替前非,則鴻名與日月無窮,盛業與乾坤永泰!
무릇 진귀한 노리개와 재주와 교묘함은 나라를 잃게 하는 도끼요, 구슬과 옥과 비단 수는 참으로 마음을 미혹하는 짐독입니다. 가만히 보건대 옷과 노리개가 곱고 화려하여 절로 그러한 데서 바뀌어 나온 듯하고, 바치는 진귀한 물건이 신선이 지은 듯합니다. 비록 말세의 풍속에 화려함을 달리나 참으로 순수한 기풍에서 바탕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니 옻칠한 그릇이 배반을 부르는 방도가 아닌데도 걸이 이를 만들자 사람이 배반하였고, 옥 잔이 어찌 망함을 부르는 술법이겠습니까마는 주왕이 이를 쓰자 나라가 망하였음을 압니다. 바야흐로 사치와 화려함의 근원을 막지 않을 수 없음을 증험합니다. 무릇 검소함으로 법을 지어도 오히려 그 사치를 두려워하는데, 사치로 법을 지으면 무엇으로 뒤를 다스리겠습니까.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께서는 아직 모양 없는 것을 밝게 비추시고 슬기가 가없이 두루 미치시어, 기린각에서 그윽한 비밀을 다하시고 유림에서 깊은 것을 다 캐셨습니다. 천 왕의 다스림과 어지러움의 자취, 백 대의 편안함과 위태로움의 자취, 흥하고 망하고 쇠하고 어지러워진 셈, 얻고 잃고 이루고 무너진 낌새를 참으로 또한 마음속에 싸안으시고 눈길 안에서 돌리십니다. 곧 임금의 속마음이 오래 살피신 바라 한두 마디 말을 빌릴 것이 없습니다.
오직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쉽지 않아, 뜻이 업이 드러남에 교만해지고 몸이 때가 편안함에 게을러집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뜻을 누르고 마음을 마름질하시어 끝을 삼가 처음을 이루시고, 가벼운 허물을 깎아 무거운 덕을 더하시며 오늘의 옳음을 가려 지난날의 그름을 바꾸소서. 그러면 곧 큰 이름이 해와 달과 더불어 끝이 없고 성한 업이 하늘과 땅과 더불어 길이 태평할 것입니다.
太宗甚善其言,特加優賜甚厚。
태종이 그 말을 몹시 좋게 여겨 특별히 넉넉한 내림을 몹시 두터이 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