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畋獵第三十八
秘書監虞世南以太宗頗好畋獵,上疏諫曰:「臣聞秋狝冬狩,蓋惟恒典;射隼從禽,備乎前誥。伏惟陛下因聽覽之餘辰,順天道以殺伐,將欲摧班碎掌,親御皮軒,窮猛獸之窟穴,盡逸材於林藪。夷兇剪暴,以衛黎元,收革擢羽,用充軍器,舉旗效獲,式遵前古。然黃屋之尊,金輿之貴,八方之所仰德,萬國之所系心,清道而行,猶戒銜橛。斯蓋重慎防微,為社稷也。是以馬卿直諫於前,張昭變色於後,臣誠細微,敢忘斯義?且天弧星罼,所殪已多,頒禽賜獲,皇恩亦溥。伏願時息獵車,且韜長戟,不拒芻蕘之請,降納涓澮之流,袒裼徒搏,任之群下,則貽範百王,永光萬代。」太宗深嘉其言。
비서감 우세남이 태종이 자못 사냥을 좋아하므로 상소하여 간하였다.
「신이 듣건대 가을 사냥과 겨울 사냥은 대개 오직 떳떳한 법전이요, 새매를 쏘고 날짐승을 좇는 일이 앞선 가르침에 갖추어져 있다 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께서 듣고 보시는 남은 겨를을 타 하늘의 도를 따라 죽이고 치시며, 장차 등뼈를 꺾고 발바닥을 부수려 몸소 가죽 수레를 모시고, 사나운 짐승의 굴을 다하고 수풀에서 날랜 짐승을 다 잡으시려 합니다. 흉함을 없애고 사나움을 잘라 뭇 백성을 지키고, 가죽을 거두고 깃을 뽑아 군사 기구에 채우며, 깃발을 들어 잡은 것을 바치는 일은 앞선 옛일을 좇는 법식입니다.
그러나 누런 덮개 수레의 높음과 금 수레의 귀함은 여덟 방위가 덕을 우러르는 바요 만국이 마음을 매는 바입니다. 길을 맑히고 가시면서도 오히려 재갈과 굴레를 경계하십니다. 이는 대개 무겁게 삼가고 작은 것을 막아 사직을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마상여가 앞에서 곧게 간하였고 장소가 뒤에서 낯빛을 바꾸었습니다. 신이 참으로 잘고 하찮으나 감히 이 뜻을 잊겠습니까.
또 하늘의 활과 별 그물로 죽인 것이 이미 많고, 잡은 짐승을 나누어 내려 주시니 임금의 은혜 또한 넓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때로 사냥 수레를 쉬게 하시고 우선 긴 창을 감추시며, 꼴 베는 이의 청함을 막지 마시고 실개천의 흐름도 굽어 받아들이소서. 웃통을 벗고 맨손으로 치는 일은 뭇 아랫사람에게 맡기시면, 곧 백 왕에게 법도를 남기고 만대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태종이 그 말을 깊이 아름답게 여겼다.
谷那律為諫議大夫,嘗從太宗出獵,在途遇雨,太宗問曰:「油衣若為得不漏?」對曰:「能以瓦為之,必不漏矣。」意欲太宗弗數遊獵,大被嘉納。賜帛五十段,加以金帶。
곡나율이 간의대부가 되어 일찍이 태종을 따라 사냥을 나갔다가 길에서 비를 만났다. 태종이 물었다.
「기름 먹인 옷을 어떻게 하면 새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대답하였다.
「기와로 만들 수 있으면 반드시 새지 않을 것입니다.」
뜻은 태종이 자주 놀며 사냥하지 않기를 바란 것이라 크게 아름답게 여겨져 받아들여졌다. 비단 오십 단을 내리고 금띠를 더하였다.
貞觀十一年,太宗謂侍臣曰:「朕昨往懷州,有上封事者云:『何為恒差山東眾丁於苑內營造?即日徭役,似不下隋時。懷、洛以東,殘人不堪其命,而田獵猶數,驕逸之主也。今者復來懷州田獵,忠諫不復至洛陽矣。』四時蒐田,既是帝王常禮,今日懷州,秋毫不幹於百姓。凡上書諫正,自有常準,臣貴有詞,主貴能改。如斯詆毀,有似咒詛。」侍中魏徵奏稱:「國家開直言之路,所以上封事者尤多。陛下親自披閱,或冀臣言可取,所以僥幸之士得肆其醜。臣諫其君,甚須折衷,從容諷諫。漢元帝嘗以酎祭宗廟,出便門,御樓船。御史大夫薛廣德當乘輿免冠曰:『宜從橋,陛下不聽臣言,臣自刎,以頸血汙車輪,陛下不入廟矣。』元帝不悅。光祿卿張猛進曰:『臣聞主聖臣直,乘船危,就橋安。聖主不乘危,廣德言可聽。』元帝曰:『曉人不當如是耶!』乃從橋。以此而言,張猛可謂直臣諫君也。」太宗大悅。
정관 십일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짐이 어제 회주에 갔는데 봉한 글을 올린 이가 이르기를 『어찌하여 늘 산동의 뭇 장정을 동산 안 짓는 일에 보내십니까. 요즘의 부역이 수나라 때보다 덜하지 않은 듯합니다. 회주와 낙양 동쪽으로 상한 사람들이 그 명을 감당하지 못하는데도 사냥이 오히려 잦으시니 교만하고 게으른 임금이십니다. 이제 다시 회주에 오셔서 사냥하시니 충성된 간언이 다시 낙양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네 철에 사냥하는 것은 이미 제왕의 떳떳한 예요, 오늘 회주에서는 가을 터럭만큼도 백성을 범하지 않았다. 무릇 글을 올려 간하고 바로잡는 데 절로 떳떳한 기준이 있으니, 신하는 말이 있음을 귀히 여기고 임금은 고칠 수 있음을 귀히 여긴다. 이처럼 헐뜯는 것은 저주하는 것과 비슷한 데가 있다.」
시중 위징이 아뢰어 일컬었다.
「나라가 곧은 말의 길을 열었으므로 봉한 글을 올리는 이가 더욱 많습니다. 폐하께서 몸소 펼쳐 보시고 더러 신하의 말에 취할 만한 것이 있기를 바라시니, 그래서 요행을 바라는 선비가 그 추함을 마음껏 부릴 수 있습니다.
신하가 그 임금에게 간할 때는 몹시 모름지기 알맞게 하여 조용히 넌지시 간해야 합니다. 한 원제가 일찍이 술로 종묘에 제사하러 편문을 나가 다락배를 타려 하였습니다. 어사대부 설광덕이 수레 앞에서 갓을 벗고 말하기를 『마땅히 다리로 가셔야 합니다. 폐하께서 신의 말을 듣지 않으시면 신이 스스로 목을 찔러 목의 피로 수레바퀴를 더럽히겠습니다. 그러면 폐하께서 사당에 드시지 못합니다』 하니 원제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광록경 장맹이 나아가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임금이 성스러우면 신하가 곧다 합니다. 배를 타면 위태롭고 다리로 가면 편안합니다. 성스러운 임금은 위태로움을 타지 않으시니 광덕의 말이 들을 만합니다』 하였습니다. 원제가 『사람을 깨우침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이에 다리를 좇았습니다. 이로 말하면 장맹은 곧은 신하로 임금에게 간하였다 이를 만합니다.」
태종이 크게 기뻐하였다.
貞觀十四年,太宗幸同州沙苑,親格猛獸,復晨出夜還。特進魏徵奏言:「臣聞《書》美文王不敢盤於遊田,《傳》述《虞箴》稱夷、羿以為戒。昔漢文臨峻阪欲馳下,袁盎攬轡曰:『聖主不乘危,不僥幸,今陛下騁六飛,馳不測之山,如有馬驚車敗,陛下縱欲自輕,奈高廟何?』孝武好格猛獸,相如進諫:『力稱烏獲,捷言慶忌,人誠有之,獸亦宜然。猝遇逸材之獸,駭不存之地,雖烏獲、逄蒙之伎不得用,而枯木朽株盡為難矣。雖萬全而無患,然而本非天子所宜。』孝元帝郊泰畤,因留射獵,薛廣德稱:『竊見關東困極,百姓離災。今日撞亡秦之鐘,歌鄭、衛之樂,士卒暴露,從官勞倦,欲安宗廟社稷,何憑河暴虎,未之戒也』?臣竊思此數帝,心豈木石,獨不好馳騁之樂?而割情屈己,從臣下之言者,志存為國,不為身也。臣伏聞車駕近出,親格猛獸,晨往夜還。以萬乘之尊,暗行荒野,踐深林,涉豐草,甚非萬全之計。願陛下割私情之娛,罷格獸之樂,上為宗廟社稷,下慰群寮兆庶。」太宗曰:「昨日之事偶屬塵昏,非故然也,自今深用為誡。」
정관 십사 년에 태종이 동주 사원에 거둥하여 몸소 사나운 짐승을 치고 다시 새벽에 나가 밤에 돌아왔다. 특진 위징이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서경』은 문왕이 감히 놀며 사냥하기를 즐기지 않았음을 아름답게 여겼고, 『전』은 「우잠」을 말하여 이예를 일컬어 경계로 삼았다 합니다.
옛날 한 문제가 가파른 비탈에 임하여 달려 내려가려 하니 원앙이 고삐를 잡고 말하기를 『성스러운 임금은 위태로움을 타지 않고 요행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여섯 마리 나는 말을 몰아 헤아릴 수 없는 산을 달리시다가, 만약 말이 놀라고 수레가 무너지면 폐하께서 설사 스스로를 가벼이 여기신다 해도 고묘를 어찌하시겠습니까』 하였습니다.
효무제가 사나운 짐승 치기를 좋아하매 사마상여가 나아가 간하기를 『힘은 오획을 일컫고 날램은 경기를 말합니다. 사람에게 참으로 그런 이가 있으니 짐승 또한 마땅히 그러합니다. 갑자기 빼어난 재목의 짐승을 만나 있지 못할 자리에서 놀라면, 비록 오획과 방몽의 재주라도 쓸 수 없고 마른나무와 썩은 그루터기도 다 어려움이 됩니다. 비록 만에 하나도 걱정이 없다 하더라도 본디 천자께 마땅한 바가 아닙니다』 하였습니다.
효원제가 태치에 교제를 지내다가 그대로 머물러 사냥하니 설광덕이 일컫기를 『가만히 보건대 관동이 곤궁함이 지극하여 백성이 재앙을 만났습니다. 오늘 망한 진나라의 종을 치고 정나라와 위나라의 풍류를 노래하며, 군사가 밖에 드러나고 따르는 벼슬아치가 수고롭고 지칩니다. 종묘와 사직을 편안케 하려 하시면서 어찌 걸어서 하수를 건너고 맨손으로 범을 잡는 일을 경계하지 않으십니까』 하였습니다.
신이 가만히 이 여러 황제를 생각하건대 마음이 어찌 나무와 돌이겠으며 홀로 달리는 즐거움을 좋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정을 베고 제 몸을 굽혀 신하의 말을 좇은 것은, 뜻이 나라를 위함에 있고 제 몸을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신이 엎드려 듣건대 수레가 요사이 나가 몸소 사나운 짐승을 치고 새벽에 가서 밤에 돌아오신다 합니다. 만승의 높음으로 어두운 거친 들을 다니고 깊은 숲을 밟으며 우거진 풀을 건너시니 몹시 만에 하나도 온전할 계책이 아닙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사사로운 정의 즐거움을 베어 내시고 짐승 치는 즐거움을 그만두시어, 위로는 종묘와 사직을 위하시고 아래로는 뭇 벼슬아치와 억조 백성을 위로하소서.」
태종이 말하였다.
「어제 일은 우연히 티끌과 어둠을 만난 것이지 짐짓 그런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깊이 경계로 삼겠다.」
貞觀十四年,冬十月,太宗將幸櫟陽遊畋,縣丞劉仁軌以收獲未畢,非人君順動之時,詣行所,上表切諫。太宗遂罷獵,擢拜仁軌新安令。
정관 십사 년 겨울 시월에 태종이 장차 역양에 거둥하여 놀며 사냥하려 하였다. 현승 유인궤가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 임금이 순리에 따라 움직일 때가 아니라 하여, 행차하시는 곳에 나아가 표를 올려 간절히 간하였다. 태종이 마침내 사냥을 그만두고 인궤를 뽑아 신안령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