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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慎終第四十

정관정요 貞觀政要 · 오긍(吳兢) · 8세기 초 · 단락 22 · 한자 3,370자 · 낭독 13.5분

「정관정요」 끝을 삼감을 논하다 「論慎終第四十」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말을 주제별로 모은 책. 임금의 길에서 시작해 간언을 받아들이는 법, 벼슬아치를 고르는 법, 형벌과 세금과 정벌을 거쳐 「끝을 삼감」으로 끝난다. 위징이 낯을 맞대고 꺾어 말하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책의 뼈대다. 고구려 안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성주에게 비단을 내린 일, 방현령이 죽어 가며 요동 정벌을 말린 상소도 여기에 있다.

貞觀五年,太宗謂侍臣曰:「自古帝王亦不能常化,假令內安,必有外擾。當今遠夷率服,百穀豐稔,盜賊不作,內外寧靜。此非朕一人之力,實由公等共相匡輔。然安不忘危,治不忘亂,雖知今日無事,亦須思其終始。常得如此,始是可貴也。」魏徵對曰:「自古已來,元首股肱不能備具,或時君稱聖,臣即不賢,或遇賢臣,即無聖主。今陛下明,所以致治。向若直有賢臣,而君不思化,亦無所益。天下今雖太平,臣等猶未以為喜,惟願陛下居安思危,孜孜不怠耳!」

정관 오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예로부터 제왕도 또한 늘 잘 다스려지게 할 수는 없었다. 설사 안이 편안하면 반드시 밖에 시끄러움이 있었다. 지금 먼 오랑캐가 다 복종하고 온갖 곡식이 넉넉히 여물며 도적이 일어나지 않아 안팎이 편안하고 고요하다. 이는 짐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참으로 공들이 함께 서로 바로잡고 도운 데서 말미암는다.

그러나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다스려질 때 어지러움을 잊지 않아야 한다. 비록 오늘 일이 없음을 알아도 또한 모름지기 그 처음과 끝을 생각해야 한다. 늘 이와 같이 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귀히 여길 만하다.」

위징이 대답하였다.

「예로부터 임금과 신하가 함께 갖추어지지 못하여, 더러 그때 임금은 성스럽다 일컬어지나 신하가 곧 어질지 못하고, 더러 어진 신하를 만나면 곧 성스러운 임금이 없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밝으시니 그래서 다스림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다만 어진 신하만 있고 임금이 다스림을 생각하지 않으면 또한 보탬이 없습니다. 천하가 이제 비록 태평하나 신들은 오히려 이를 기쁨으로 삼지 않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편안한 데 있으면서 위태로움을 생각하고 부지런히 게을리하지 않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貞觀六年,太宗謂侍臣曰:「自古人君為善者,多不能堅守其事。漢高祖,泗上一亭長耳,初能拯危誅暴,以成帝業,然更延十數年,縱逸之敗,亦不可保。何以知之?孝惠為嫡嗣之重,溫恭仁孝,而高帝惑於愛姬之子,欲行廢立,蕭何、韓信功業既高,蕭既妄系,韓亦濫黜,自餘功臣黥布之輩懼而不安,至於反逆。君臣父子之間悖謬若此,豈非難保之明驗也?朕所以不敢恃天下之安,每思危亡以自戒懼,用保其終。」

정관 육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예로부터 임금으로 착한 일을 한 이가 흔히 그 일을 굳게 지키지 못하였다. 한 고조는 사수 가의 한 정장이었을 뿐인데, 처음에는 위태로움을 건지고 사나움을 베어 황제의 업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십수 년을 늘였다면 마음껏 놀아 무너짐을 또한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으로 이를 아는가. 효혜제는 맏아들의 무거움이 있고 따뜻하고 공손하며 어질고 효성스러웠는데도 고제가 아끼는 여자의 아들에 미혹되어 폐하고 세우기를 행하려 하였다. 소하와 한신은 공업이 이미 높았는데, 소하는 이미 함부로 갇히고 한신 또한 함부로 물리쳐졌다. 그 나머지 공신 경포의 무리가 두려워 편안하지 못하여 거스르고 배반함에 이르렀다. 임금과 신하, 아비와 아들 사이가 어그러지고 그릇됨이 이와 같으니 어찌 지키기 어려움의 밝은 증험이 아니겠는가. 짐이 그래서 감히 천하의 편안함을 믿지 못하고, 늘 위태로움과 망함을 생각하여 스스로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그 끝을 지키려 한다.」

貞觀九年,太宗謂公卿曰:「朕端拱無為,四夷咸服,豈朕一人之所致,實賴諸公之力耳!當思善始令終,永固鴻業,子子孫孫,遞相輔翼。使豐功厚利施於來葉,令數百年後讀我國史,鴻勛茂業粲然可觀,豈惟稱隆周、炎漢及建武、永平故事而已哉!」房玄齡因進曰:「陛下撝挹之志,推功群下,致理升平,本關聖德,臣下何力之有?惟願陛下有始有卒,則天下永賴。」太宗又曰:「朕觀古先撥亂之主皆年逾四十,惟光武年三十三。但朕年十八便舉兵,年二十四定天下,年二十九升為天子,此則武勝於古也。少從戎旅,不暇讀書,貞觀以來,手不釋卷,知風化之本,見政理之源。行之數年,天下大治而風移俗變,子孝臣忠,此又文過於古也。昔周、秦以降,戎狄內侵,今戎狄稽顙,皆為臣妾,此又懷遠勝古也。此三者,朕何德以堪之?既有此功業,何得不善始慎終耶!」

정관 구 년에 태종이 공경에게 말하였다.

「짐이 옷깃을 바르고 손을 모아 함이 없는데도 사방 오랑캐가 다 복종하니, 어찌 짐 한 사람이 이룬 바이겠는가. 참으로 여러 공의 힘에 힘입었을 뿐이다. 마땅히 처음을 잘하고 끝을 좋게 하여 큰 업을 길이 굳히고, 자자손손 번갈아 서로 돕고 날개가 되기를 생각해야 한다. 넉넉한 공과 두터운 이로움이 오는 세대에 베풀어져, 수백 년 뒤에 우리나라 역사를 읽으면 큰 공훈과 무성한 업이 환하게 볼 만하게 해야 한다. 어찌 오직 융성한 주나라와 불꽃 같은 한나라와 건무·영평 연간의 옛일만 일컫는 데 그치겠는가.」

방현령이 이로 인해 나아가 말하였다.

「폐하께서 겸손히 낮추시는 뜻으로 공을 뭇 아랫사람에게 미루십니다. 다스림이 태평에 오른 것은 본디 성스러운 덕에 걸린 일이니 아랫신하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오직 폐하께서 처음이 있고 끝이 있으시기를 바라니, 그러면 곧 천하가 길이 힘입을 것입니다.」

태종이 또 말하였다.

「짐이 보건대 옛날 앞서 어지러움을 다스린 임금은 다 나이가 마흔을 넘었고 오직 광무제만이 나이 서른셋이었다. 그런데 짐은 나이 열여덟에 곧 군사를 일으키고, 나이 스물넷에 천하를 정하며, 나이 스물아홉에 올라 천자가 되었으니 이는 곧 무예가 옛날보다 나은 것이다.

어려서 군사를 좇아 책 읽을 겨를이 없었으나 정관 이래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풍속과 교화의 밑동을 알고 정사와 다스림의 근원을 보았다. 이를 행한 지 몇 해에 천하가 크게 다스려져 풍속이 옮기고 바뀌며 아들이 효도하고 신하가 충성하니, 이는 또 글이 옛날보다 나은 것이다.

옛날 주나라와 진나라 이래로 오랑캐가 안으로 침노하였는데, 이제 오랑캐가 이마를 조아려 다 신하와 종이 되었으니, 이는 또 먼 데를 품는 일이 옛날보다 나은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짐이 무슨 덕으로 감당하겠는가. 이미 이런 공업이 있으니 어찌 처음을 잘하고 끝을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貞觀十二年,太宗謂侍臣曰:「朕讀書見前王善事,皆力行而不倦,其所任用公輩數人,誠以為賢。然致理比於三、五之代,猶為不逮,何也?」魏徵對曰:「今四夷賓服,天下無事,誠曠古所未有。然自古帝王初即位者,皆欲勵精為政,比跡於堯、舜;及其安樂也,則驕奢放逸,莫能終其善。人臣初見任用者,皆欲匡主濟時,追縱於稷、契;及其富貴也,則思茍全官爵,莫能盡其忠節。若使君臣常無懈怠,各保其終,則天下無憂不理,自可超邁前古也。」太宗曰:「誠如卿言。」

정관 십이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짐이 책을 읽어 앞선 왕의 착한 일을 보면 다 힘써 행하고 게을리하지 않으며, 그 맡겨 쓴 공들 몇 사람을 참으로 어질다 여긴다. 그런데 다스림에 이른 것을 삼황오제의 시대에 견주면 오히려 미치지 못하니 어찌해서인가?」

위징이 대답하였다.

「이제 사방 오랑캐가 손님으로 복종하고 천하에 일이 없으니 참으로 아득한 옛날에도 있지 않던 바입니다. 그러나 예로부터 제왕이 처음 자리에 오른 이는 다 정신을 다잡아 정사를 하여 요임금과 순임금에게 자취를 견주려 하였으나, 그 편안하고 즐거워짐에 이르러서는 곧 교만하고 사치하며 마음껏 놀아 그 착함을 마칠 수 있는 이가 없었습니다. 신하로서 처음 맡겨 쓰인 이는 다 임금을 바로잡고 때를 건져 후직과 설에게 자취를 좇으려 하였으나, 그 넉넉하고 귀해짐에 이르러서는 곧 구차히 벼슬과 작위를 온전히 할 것만 생각하여 그 충성된 절개를 다할 수 있는 이가 없었습니다.

만약 임금과 신하로 하여금 늘 게으름이 없어 저마다 그 끝을 지키게 한다면, 곧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을까 걱정할 것이 없고 절로 앞선 옛날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참으로 경의 말과 같다.」

貞觀十三年,魏徵恐太宗不能克終儉約,近歲頗好奢縱,上疏諫曰:

정관 십삼 년에 위징이 태종이 검소함과 아낌을 잘 마치지 못하고 요 몇 해 자못 사치와 방종을 좋아함을 두려워하여 상소하여 간하였다.

臣觀自古帝王受圖定鼎,皆欲傳之萬代,貽厥孫謀。故其垂拱巖廊,布政天下。其語道也,必先淳樸而抑浮華;其論人也,必貴忠良而鄙邪佞;言制度也,則絕奢靡而崇儉約;談物產也,則重穀帛而賤珍奇。然受命之初,皆遵之以成治;稍安之後,多反之而敗俗。其故何哉?豈不以居萬乘之尊,有四海之富,出言而莫己逆,所為而人必從,公道溺於私情,禮節虧於嗜欲故也?語曰:「非知之難,行之為難;非行之難,終之斯難。」所言信矣。

신이 보건대 예로부터 제왕이 천명을 받고 도읍을 정하매 다 만대에 전하여 그 자손에게 꾀를 남기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옷깃을 드리우고 마루에 있으면서 정사를 천하에 폈습니다.

그 도를 말할 때는 반드시 순박함을 먼저 하고 뜬 화려함을 눌렀으며, 그 사람을 논할 때는 반드시 충성되고 좋은 이를 귀히 여기고 그릇되고 아첨하는 이를 낮게 여겼습니다. 제도를 말할 때는 곧 사치와 화려함을 끊고 검소함과 아낌을 높였으며, 물산을 이야기할 때는 곧 곡식과 비단을 무겁게 여기고 진귀하고 기이한 것을 천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명을 받은 처음에는 다 이를 좇아 다스림을 이루었으나, 조금 편안해진 뒤에는 흔히 이를 뒤집어 풍속을 무너뜨렸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어찌 만승의 높은 자리에 있고 사해의 넉넉함을 가져, 말을 내면 제게 거스르는 이가 없고 하는 바를 사람이 반드시 좇으매, 공정한 도가 사사로운 정에 빠지고 예절이 즐기고 바라는 데서 이지러진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옛말에 이르기를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고, 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치는 것이 이에 어렵다」 하였으니 이른 바가 미쁩니다.

伏惟陛下年甫弱冠,大拯橫流,削平區宇,肇開帝業。貞觀之初,時方克壯,抑損嗜欲,躬行節儉,內外康寧,遂臻至治。論功則湯、武不足方,語德則堯、舜未為遠。臣自擢居左右,十有餘年,每侍帷幄,屢奉明旨。常許仁義之道,守之而不失;儉約之志,終始而不渝。一言興邦,斯之謂也。德音在耳,敢忘之乎?而頃年以來,稍乖曩志,敦樸之理,漸不克終。謹以所聞,列之於左: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께서 나이 갓 스물에 크게 가로 흐르는 물을 건지시고 온 누리를 깎아 평정하시어 황제의 업을 처음 여셨습니다. 정관 처음에는 때가 바야흐로 굳세었는데도 즐기고 바라는 것을 눌러 덜고 몸소 아껴 씀을 행하시어, 안팎이 편안하고 안녕하여 마침내 지극한 다스림에 이르셨습니다. 공을 논하면 탕임금과 무왕도 견주기에 넉넉하지 않고, 덕을 말하면 요임금과 순임금도 멀지 않습니다.

신이 뽑혀 좌우에 있은 지 열 해 남짓, 장막에서 모실 때마다 여러 번 밝은 뜻을 받들었습니다. 늘 어짊과 의로움의 도를 지켜 잃지 않으시고 검소함과 아낌의 뜻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꾸지 않으시겠다 허락하셨습니다. 한마디 말이 나라를 일으킨다 함이 이를 이름입니다. 덕스러운 말씀이 귀에 있으니 감히 이를 잊겠습니까.

그런데 요 몇 해 이래로 지난날의 뜻과 조금 어그러져, 도탑고 질박한 다스림을 차츰 마치지 못하십니다. 삼가 들은 바를 아래에 벌여 놓습니다.

陛下貞觀之初,無為無欲,清靜之化,遠被遐荒。考之於今,其風漸墜,聽言則遠超於上聖,論事則未逾於中主。何以言之?漢文、晉武俱非上哲,漢文辭千里之馬,晉武焚雉頭之裘。今則求駿馬於萬里,市珍奇於域外,取怪於道路,見輕於戎狄,此其漸不克終一也。

폐하께서 정관 처음에는 함이 없고 바람이 없으시어 맑고 고요한 교화가 멀리 거친 땅까지 덮였습니다. 이제 상고해 보면 그 바람이 차츰 떨어져, 말씀을 들으면 곧 위없는 성인을 멀리 뛰어넘으시나 일을 논하면 곧 중간쯤 되는 임금을 넘지 못하십니다.

무엇으로 이를 말하겠습니까. 한 문제와 진 무제는 다 위없는 슬기로운 이가 아니었으나, 한 문제는 천 리 달리는 말을 사양하였고 진 무제는 꿩 머리 갖옷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곧 만 리에서 준마를 구하고 지경 밖에서 진귀하고 기이한 것을 사시니, 길에서 괴이함을 취하고 오랑캐에게 가벼이 여겨집니다. 이것이 그 차츰 마치지 못하시는 첫째입니다.

昔子貢問理人於孔子,孔子曰:「懍乎,若朽索之馭六馬。」子貢曰:「何其畏哉?」子曰:「不以道導之,則吾仇也,若何其無畏?」故《書》曰:「民惟邦本,本固邦寧。」為人上者,奈何不敬?陛下貞觀之始,視人如傷,恤其勤勞,愛民猶子,每存簡約,無所營為。頃年以來,意在奢縱,忽忘卑儉,輕用人力,乃云:「百姓無事則驕逸,勞役則易使。」自古以來,未有由百姓逸樂而致傾敗者也,何有逆畏其驕逸而故欲勞役者哉?恐非興邦之至言,豈安人之長算?此其漸不克終二也。

옛날 자공이 공자에게 사람 다스리는 일을 물으니 공자가 말하기를 「두렵도다, 썩은 새끼로 여섯 마리 말을 모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자공이 「어찌 그리 두렵습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도로 이끌지 않으면 곧 나의 원수가 되니 어찌 두려움이 없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서경』에 이르기를 「백성은 오직 나라의 밑동이니 밑동이 굳어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습니다. 남의 위가 된 이가 어찌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정관 처음에는 사람 보기를 다친 이 보듯 하시어 그 부지런하고 수고로움을 가엾이 여기고 백성 사랑하기를 자식같이 하시며, 늘 간략함과 아낌을 두고 지어 만드는 바가 없으셨습니다. 요 몇 해 이래로 뜻이 사치와 방종에 있어 문득 낮음과 검소함을 잊고 사람의 힘을 가벼이 쓰시며, 이에 이르시기를 「백성은 일이 없으면 곧 교만하고 게을러지니 부역시키면 부리기 쉽다」 하십니다.

예로부터 백성이 편안하고 즐거워서 기울어 무너짐에 이른 일은 있지 않았습니다. 어찌 거꾸로 그 교만하고 게으를까 두려워하여 짐짓 부역시키려 하십니까. 아마도 나라를 일으키는 지극한 말씀이 아닐 터이니 어찌 사람을 편안케 하는 긴 셈이겠습니까. 이것이 그 차츰 마치지 못하시는 둘째입니다.

陛下貞觀之初,損己以利物,至於今日,縱欲以勞人,卑儉之跡歲改,驕侈之情日異。雖憂人之言不絕於口,而樂身之事實切於心。或時欲有所營,慮人致諫,乃云:「若不為此,不便我身。」人臣之情,何可復爭?此直意在杜諫者之口,豈曰擇善而行者乎?此其漸不克終三也。

폐하께서 정관 처음에는 제 몸을 덜어 남을 이롭게 하셨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욕심을 놓아 사람을 수고롭게 하십니다. 낮고 검소하던 자취가 해마다 바뀌고 교만하고 사치한 정이 날로 달라집니다. 비록 사람을 걱정하는 말씀이 입에서 끊이지 않으나 제 몸을 즐겁게 하는 일이 실로 마음에 간절하십니다.

더러 때로 지으려는 바가 있는데 사람이 간할까 걱정되시면, 이에 이르시기를 「만약 이를 하지 않으면 내 몸이 편치 않다」 하십니다. 신하의 정으로 어찌 다시 다툴 수 있겠습니까. 이는 다만 뜻이 간하는 이의 입을 막는 데 있는 것이니, 어찌 착함을 가려 행하는 것이라 하겠습니까. 이것이 그 차츰 마치지 못하시는 셋째입니다.

立身成敗,在於所染,蘭芷鮑魚,與之俱化,慎乎所習,不可不思。陛下貞觀之初,砥礪名節,不私於物,惟善是與,親愛君子,疏斥小人。今則不然,輕褻小人,禮重君子。重君子也,敬而遠之;輕小人也,狎而近之。近之則不見其非,遠之則莫知其是。莫知其是,則不間而自疏;不見其非,則有時而自昵。昵近小人,非致理之道;疏遠君子,豈興邦之義?此其漸不克終四也。

몸을 세워 이루고 무너짐은 물드는 바에 있으니, 난초와 구릿대와 절인 물고기에 함께 있으면 그와 더불어 물들어 갑니다. 익히는 바를 삼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정관 처음에는 이름과 절개를 갈고닦으시어 남에게 사사로이 하지 않으시고 오직 착한 이만 더불어 하시며, 군자를 가까이 사랑하고 소인을 멀리 물리치셨습니다. 이제는 곧 그렇지 않으시어 소인을 가벼이 여겨 함부로 대하고 군자를 예로 무겁게 대하십니다. 군자를 무겁게 여기시매 공경하되 멀리하시고, 소인을 가벼이 여기시매 익숙히 하되 가까이하십니다. 가까이하면 곧 그 그름을 보지 못하고, 멀리하면 곧 그 옳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 옳음을 알지 못하면 곧 사이를 두지 않아도 절로 성글어지고, 그 그름을 보지 못하면 곧 때로 절로 친해집니다. 소인을 친하고 가까이하는 것은 다스림에 이르는 도가 아니요, 군자를 성글게 하고 멀리하는 것이 어찌 나라를 일으키는 뜻이겠습니까. 이것이 그 차츰 마치지 못하시는 넷째입니다.

《書》曰:「不作無益害有益,功乃成;不貴異物賤用物,人乃足。犬馬非其土性不畜,珍禽奇獸弗育於國。」陛下貞觀之初,動遵堯、舜,捐金抵璧,反樸還淳。頃年以來,好尚奇異,難得之貨,無遠不臻,珍玩之作,無時能止。上好奢靡而望下敦樸,未之有也。末作滋興,而求豐實,其不可得亦已明矣。此其終不克終五也。

『서경』에 이르기를 「보탬 없는 것을 지어 보탬 있는 것을 해치지 않아야 공이 이에 이루어지고, 기이한 물건을 귀히 여겨 쓰는 물건을 천히 여기지 않아야 사람이 이에 넉넉하다. 개와 말은 그 땅의 성품이 아니면 기르지 않고, 진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은 나라에서 기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정관 처음에는 움직임에 요임금과 순임금을 좇으시어 금을 버리고 옥을 던지며 질박함으로 돌아가고 순수함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요 몇 해 이래로 기이한 것을 좋아하고 높이시어, 얻기 어려운 재물이 멀어도 이르지 않는 것이 없고 진귀한 노리개 만들기가 그칠 때가 없습니다. 위에서 사치와 화려함을 좋아하면서 아래가 도탑고 질박하기를 바라는 일은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말단의 지음이 불어나 일어나는데 넉넉하고 알차기를 구하는 것이 얻을 수 없음 또한 이미 밝습니다. 이것이 그 마침내 마치지 못하시는 다섯째입니다.

貞觀之初,求賢如渴,善人所舉,信而任之,取其所長,恒恐不及。近歲以來,由心好惡,或眾善舉而用之,或一人毀而棄之,或積年任而用之,或一朝疑而遠之。夫行有素履,事有成跡,所毀之人,未必可信於所舉,積年之行,不應頓失於一朝。君子之懷,蹈仁義而弘大德;小人之性,好讒佞以為身謀。陛下不審察其根源,而輕為之臧否,是使守道者日疏,幹求者日進。所以人思茍免,莫能盡力。此其漸不克終六也。

정관 처음에는 어진 이 구하기를 목마른 듯이 하시어, 착한 이가 천거하는 바를 믿고 맡기시며 그 긴 바를 취하시고 늘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셨습니다. 요사이 몇 해 이래로는 마음의 좋아함과 미워함에서 말미암아, 더러는 뭇 착한 이가 천거하여 쓰시고 더러는 한 사람이 헐뜯어 버리시며, 더러는 여러 해 맡겨 쓰시다가 더러는 하루아침에 의심하여 멀리하십니다.

무릇 행실에는 평소 밟아 온 바가 있고 일에는 이루어진 자취가 있으니, 헐뜯는 사람이 반드시 천거한 사람보다 믿을 만한 것이 아니요, 여러 해의 행실이 하루아침에 문득 사라질 리 없습니다. 군자의 마음은 어짊과 의로움을 밟아 큰 덕을 넓히는 것이요, 소인의 성품은 헐뜯고 아첨하기를 좋아하여 제 몸의 꾀로 삼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그 근원을 살피지 않으시고 가벼이 그 좋고 나쁨을 정하시니, 이는 도를 지키는 이를 날로 성글어지게 하고 구하러 다니는 이를 날로 나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구차히 면할 것만 생각하고 힘을 다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 차츰 마치지 못하시는 여섯째입니다.

陛下初登大位,高居深視,事惟清靜,心無嗜欲,內除畢弋之物,外絕畋獵之源。數載之後,不能固志,雖無十旬之逸,或過三驅之禮。遂使盤遊之娛,見譏於百姓,鷹犬之貢,遠及於四夷。或時教習之處,道路遙遠,侵晨而出,入夜方還。以馳騁為歡,莫慮不虞之變,事之不測,其可救乎?此其漸不克終七也。

폐하께서 처음 큰 자리에 오르셨을 때는 높이 계시며 깊이 보시어, 일은 오직 맑고 고요하고 마음에 즐기고 바람이 없으셨습니다. 안으로 새 잡는 그물과 주살을 없애시고 밖으로 사냥의 근원을 끊으셨습니다. 몇 해 뒤에 뜻을 굳게 하지 못하시어, 비록 열흘씩 열 번 노니는 게으름은 없으나 더러 세 방향으로 모는 예를 지나치십니다. 마침내 두루 노니는 즐거움이 백성에게 비웃음을 받고, 매와 개를 바치는 일이 멀리 사방 오랑캐에까지 미칩니다. 더러 때로 익히고 가르치는 곳이 길이 아득히 멀어, 새벽을 무릅쓰고 나가 밤에 들어서야 돌아오십니다. 달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으시고 뜻하지 않은 변고를 헤아리지 않으시니, 일이 헤아릴 수 없게 되면 그것을 건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그 차츰 마치지 못하시는 일곱째입니다.

孔子曰:「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然則君之待臣,義不可薄。陛下初踐大位,敬以接下,君恩下流,臣情上達,咸思竭力,心無所隱。頃年以來,多所忽略。或外官充使,奏事入朝,思睹闕庭,將陳所見,欲言則顏色不接,欲請又恩禮不加,間因所短,詰其細過,雖有聰辯之略,莫能申其忠款。而望上下同心,君臣交泰,不亦難乎?此其漸不克終八也。

공자가 말하기를 「임금은 신하를 예로 부리고 신하는 임금을 충성으로 섬긴다」 하였습니다. 그러한즉 임금이 신하를 대함에 의로움이 엷어서는 안 됩니다.

폐하께서 처음 큰 자리를 밟으셨을 때는 공경으로 아래를 맞으시어, 임금의 은혜가 아래로 흐르고 신하의 정이 위로 이르러 다 힘을 다하기를 생각하고 마음에 숨기는 바가 없었습니다. 요 몇 해 이래로 소홀히 하시는 바가 많습니다. 더러 밖의 벼슬아치가 사신에 채워져 일을 아뢰러 조정에 들어와 대궐 뜰을 보기를 생각하고 장차 본 바를 아뢰려 하나, 말하려 하면 곧 낯빛을 대해 주지 않으시고 청하려 하면 또 은혜와 예를 더해 주지 않으십니다. 그 짧은 바를 틈타 그 잔 허물을 따져 물으시니, 비록 총명하고 말 잘하는 지략이 있어도 그 충성된 정성을 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위아래가 마음을 같이하고 임금과 신하가 사귀어 태평하기를 바라시니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그 차츰 마치지 못하시는 여덟째입니다.

「傲不可長,欲不可縱,樂不可極,志不可滿。」四者,前王所以致福,通賢以為深誡。陛下貞觀之初,孜孜不怠,屈己從人,恒若不足。頃年以來,微有矜放,恃功業之大,意蔑前王,負聖智之明,心輕當代,此傲之長也。欲有所為,皆取遂意,縱或抑情從諫,終是不能忘懷,此欲之縱也。志在嬉遊,情無厭倦,雖未全妨政事,不復專心治道,此樂將極也。率土乂安,四夷款服,仍遠勞士馬,問罪遐裔,此志將滿也。親狎者阿旨而不肯言,疏遠者畏威而莫敢諫,積而不已,將虧聖德。此其漸不克終九也。

「오만함은 자라게 해서는 안 되고, 욕심은 놓아서는 안 되며, 즐거움은 다해서는 안 되고, 뜻은 채워서는 안 된다」 하였습니다. 이 네 가지는 앞선 왕이 복에 이른 까닭이요 통달한 어진 이가 깊은 경계로 삼은 바입니다.

폐하께서 정관 처음에는 부지런히 게을리하지 않으시고 제 몸을 굽혀 남을 좇으시며 늘 모자란 듯이 하셨습니다. 요 몇 해 이래로 조금 뽐내고 놓으심이 있어, 공업의 큼을 믿고 뜻이 앞선 왕을 업신여기시며 성스럽고 슬기로운 밝음을 자부하여 마음으로 지금 세상을 가벼이 여기십니다. 이것이 오만함이 자란 것입니다.

하려는 바가 있으면 다 뜻을 이루기를 취하시고, 설사 더러 정을 눌러 간언을 좇으시더라도 끝내 마음에서 잊지 못하십니다. 이것이 욕심을 놓으신 것입니다.

뜻이 즐기고 노니는 데 있어 정에 싫증과 지침이 없으시니, 비록 아직 정사를 온전히 방해하지는 않으나 다스림의 도에 마음을 오로지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즐거움이 장차 다하려는 것입니다.

온 땅이 다스려져 편안하고 사방 오랑캐가 정성으로 복종하는데, 여전히 멀리 군사와 말을 수고롭게 하여 먼 변방에 죄를 물으십니다. 이것이 뜻이 장차 차려는 것입니다.

가까이 익숙한 이는 뜻에 아첨하여 말하려 하지 않고, 성글고 먼 이는 위엄을 두려워하여 감히 간하지 못합니다. 쌓여 그치지 않으면 장차 성스러운 덕을 이지러뜨릴 것입니다. 이것이 그 차츰 마치지 못하시는 아홉째입니다.

昔陶唐、成湯之時,非無災患,而稱其聖德者,以其有始有終,無為無欲,遇災則極其憂勤,時安則不驕不逸故也。貞觀之初,頻年霜旱,畿內戶口並就關外,攜負老幼,來往數年,曾無一戶逃亡、一人怨苦,此誠由識陛下矜育之懷,所以至死無攜貳。頃年已來,疲於徭役,關中之人,勞弊尤甚。雜匠之徒,下日悉留和雇;正兵之輩,上番多別驅使。和市之物不絕於鄉閭,遞送之夫相繼於道路。既有所弊,易為驚擾,脫因水旱,穀麥不收,恐百姓之心,不能如前日之寧帖。此其漸不克終十也。

옛날 도당씨와 성탕 때에도 재앙과 걱정이 없지 않았으나 그 성스러운 덕이 일컬어진 것은, 그들에게 처음이 있고 끝이 있으며 함이 없고 바람이 없어, 재앙을 만나면 곧 그 걱정과 부지런함을 다하고 때가 편안하면 곧 교만하지도 게으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관 처음에는 여러 해 서리와 가뭄이 들어 서울 언저리의 호구가 아울러 관 밖으로 나가, 늙은이와 어린이를 이끌고 지고 몇 해를 오갔는데도 일찍이 한 집도 달아나거나 한 사람도 원망하고 괴로워함이 없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폐하께서 가엾이 여겨 기르시는 마음을 안 데서 말미암은 것이니, 그래서 죽음에 이르러도 두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요 몇 해 이래로 부역에 지쳐 관중 사람이 수고롭고 피폐함이 더욱 심합니다. 잡다한 장인의 무리는 쉬는 날에도 다 값을 주고 붙들어 두고, 정병의 무리는 번을 서면서 흔히 따로 부림을 받습니다. 값을 치르고 사들이는 물건이 마을에 끊이지 않고, 번갈아 실어 보내는 사내가 길에 서로 잇습니다. 이미 피폐한 바가 있으면 놀라 시끄러워지기 쉬우니, 만일 물과 가뭄으로 인해 곡식과 보리를 거두지 못하면 백성의 마음이 지난날처럼 편안히 붙어 있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이것이 그 차츰 마치지 못하시는 열째입니다.

臣聞「禍福無門,唯人所召。」「人無釁焉,妖不妄作。」伏惟陛下統天御宇十有三年,道洽寰中,威加海外,年穀豐稔,禮教聿興,比屋喻於可封,菽粟同於水火。暨乎今歲,天災流行。炎氣致旱,乃遠被於郡國;兇醜作孽,忽近起於轂下。夫天何言哉?垂象示誡,斯誠陛下驚懼之辰,憂勤之日也。若見誡而懼,擇善而從,同周文之小心,追殷湯之罪己,前王所以致禮者,勤而行之,今時所以敗德者,思而改之,與物更新,易人視聽,則寶祚無疆,普天幸甚,何禍敗之有乎?然則社稷安危,國家治亂,在於一人而已。當今太平之基,既崇極天之峻;九仞之積,猶虧一簣之功。千載休期,時難再得,明主可為而不為,微臣所以郁結而長嘆者也。

신이 듣건대 「재앙과 복은 들어오는 문이 없고 오직 사람이 부르는 바다」 하였고, 「사람에게 틈이 없으면 요사함이 함부로 일어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께서 하늘을 거느리고 누리를 다스리신 지 열세 해에, 도가 온 누리에 흡족하고 위엄이 바다 밖에 더해지며, 해마다 곡식이 넉넉히 여물고 예와 가르침이 이에 일어나, 집집이 봉해 줄 만하다는 데 견주어지고 콩과 조가 물과 불처럼 흔합니다.

올해에 이르러 하늘의 재앙이 흘러 다닙니다. 불꽃 같은 기운이 가뭄을 부르매 곧 멀리 군과 봉국에 미쳤고, 흉악한 무리가 재앙을 지으매 문득 가까이 서울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무릇 하늘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조짐을 드리워 경계를 보이니, 이는 참으로 폐하께서 놀라고 두려워하실 때요 걱정하고 부지런하실 날입니다.

만약 경계를 보고 두려워하시어 착한 것을 가려 좇으시고, 주 문왕의 조심함과 같이 하시며 은 탕임금이 제게 죄 물은 일을 좇으시고, 앞선 왕이 예에 이른 까닭을 부지런히 행하시고 지금 덕을 무너뜨리는 까닭을 생각하여 고치시어, 사물과 더불어 새로워지고 사람의 보고 들음을 바꾸신다면, 곧 보배로운 복이 가없어 온 하늘 아래가 몹시 다행일 터이니 무슨 재앙과 무너짐이 있겠습니까.

그러한즉 사직의 편안함과 위태로움, 나라의 다스림과 어지러움이 한 사람에게 있을 뿐입니다. 지금 태평의 터가 이미 하늘에 닿는 높음을 이루었으나, 아홉 길의 쌓음에 오히려 한 삼태기의 공이 이지러졌습니다. 천 년의 아름다운 때는 다시 얻기 어려운데, 밝은 임금이 하실 수 있는데도 하지 않으시니 하찮은 신하가 답답하여 길게 탄식하는 까닭입니다.

臣誠愚鄙,不達事機,略舉所見十條,輒以上聞聖聽。伏願陛下采臣狂瞽之言,參以芻蕘之議,冀千慮一得,袞職有補,則死日生年,甘從斧鉞。

신이 참으로 어리석고 낮아 일의 낌새에 통달하지 못하나, 대략 본 바 열 조목을 들어 문득 성스러운 들으심에 아룁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서 신의 미치고 눈먼 말을 캐어 주시고 꼴 베는 이의 의논으로 참고하소서. 천 번 생각에 하나라도 얻음이 있어 임금의 자리에 도움이 있기를 바라니, 그러면 곧 죽는 날이 태어난 해와 같아 달게 도끼를 좇겠습니다.

疏奏,太宗謂徵曰:「人臣事主,順旨甚易,忤情尤難。公作朕耳目股肱,常論思獻納。朕今聞過能改,庶幾克終善事。若違此言,更何顏與公相見?復欲何方以理天下?自得公疏,反復研尋,深覺詞強理直,遂列為屏障,朝夕瞻仰。又尋付史司,冀千載之下識君臣之義。」乃賜徵黃金十斤,廄馬二匹。

상소가 아뢰어지자 태종이 위징에게 말하였다.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뜻을 좇기는 몹시 쉽고 정을 거스르기는 더욱 어렵다. 공은 짐의 귀와 눈이요 팔다리가 되어 늘 논하고 생각하여 바쳐 들인다. 짐이 이제 허물을 듣고 고칠 수 있으니 거의 착한 일을 잘 마칠 수 있으리라. 만약 이 말을 어긴다면 다시 무슨 낯으로 공과 서로 보겠으며, 다시 무슨 방도로 천하를 다스리겠는가.

공의 상소를 얻은 뒤로 되풀이 갈고 찾으매 말이 굳세고 이치가 곧음을 깊이 깨달았다. 마침내 병풍에 벌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본다. 또 이윽고 사관에 부쳐 천 년 뒤에도 임금과 신하의 의로움을 알게 하기를 바란다.」

이에 위징에게 황금 열 근과 마구간의 말 두 필을 내렸다.

貞觀十四年,太宗謂侍臣曰:「平定天下,朕雖有其事,守之失圖,功業亦復難保。秦始皇初亦平六國,據有四海,及末年不能善守,實可為誡。公等宜念公忘私,則榮名高位,可以克終其美。」魏徵對曰:「臣聞之,戰勝易,守勝難。陛下深思遠慮,安不忘危,功業既彰,德教復洽,恒以此為政,宗社無由傾敗矣。」

정관 십사 년에 태종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천하를 평정한 일은 짐이 비록 그 일을 하였으나, 이를 지킴에 꾀를 잃으면 공업 또한 다시 지키기 어렵다. 진 시황이 처음에는 또한 여섯 나라를 평정하고 사해를 차지하였으나, 말년에 이르러 잘 지키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경계로 삼을 만하다. 공들은 마땅히 공정함을 생각하고 사사로움을 잊으라. 그러면 곧 영화로운 이름과 높은 자리가 그 아름다움을 잘 마칠 수 있다.」

위징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건대 싸워 이기기는 쉽고 이긴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 합니다. 폐하께서 깊이 생각하고 멀리 헤아리시어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으시니, 공업이 이미 드러나고 덕과 가르침이 다시 흡족합니다. 늘 이로써 정사를 하시면 종묘와 사직이 기울어 무너질 까닭이 없습니다.」

貞觀十六年,太宗問魏徵曰:「觀近古帝王有傳位十代者,有一代兩代者,亦有身得身失者。朕所以常懷憂懼,或恐撫養生民不得其所,或恐心生驕逸,喜怒過度。然不自知,卿可為朕言之,當以為楷則。」徵對曰:「嗜欲喜怒之情,賢愚皆同。賢者能節之,不使過度,愚者縱之,多至失所。陛下聖德玄遠,居安思危,伏願陛下常能自制,以保克終之美,則萬代永賴。」

정관 십육 년에 태종이 위징에게 물었다.

「가까운 옛날의 제왕을 보건대 자리를 열 대까지 전한 이가 있고 한 대나 두 대뿐인 이가 있으며, 또한 제 몸에 얻어 제 몸에 잃은 이도 있다. 짐이 그래서 늘 걱정과 두려움을 품어, 더러는 살아 있는 백성을 어루만져 기름에 그 자리를 얻지 못할까 두렵고, 더러는 마음에 교만과 게으름이 생겨 기쁨과 노여움이 헤아림을 지나칠까 두렵다. 그러나 스스로 알지 못하니 경이 짐을 위해 이를 말해 주면 마땅히 본보기로 삼겠다.」

위징이 대답하였다.

「즐기고 바라며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정은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다 같습니다. 어진 이는 이를 절제하여 헤아림을 지나지 않게 하고, 어리석은 이는 이를 놓아 흔히 자리를 잃음에 이릅니다. 폐하께서는 성스러운 덕이 그윽하고 머시어 편안한 데 있으면서 위태로움을 생각하십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서 늘 스스로를 다잡아 잘 마치는 아름다움을 지키시면, 곧 만대가 길이 힘입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