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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신씨肅慎氏

진서 사이전 晉書 四夷傳 · 방현령(房玄齡) 등 · 648년 (당 정관 22) · 단락 2 · 한자 492자 · 낭독 2.0분

「진서 사이전」 한 권 「숙신씨」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진(晉)나라가 본 사방의 이웃들. 모용외에게 깨진 부여를 조서를 내려 되세워 준 이야기, 마한·진한의 풍속과 소도(蘇塗), 숙신의 호시와 석노, 그리고 형과 아우가 말싸움으로 갈라선 토욕혼 일곱 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1숙신의 풍속

肅慎氏一名挹婁,在不咸山北,去夫餘可六十日行。東濱大海,西接寇漫汗國,北極弱水。其土界廣袤數千里,居深山窮谷,其路險阻,車馬不通。夏則巢居,冬則穴處。父子世爲君長。無文墨,以言語爲約。有馬不乘,但以爲財產而已。無牛羊,多畜豬,食其肉,衣其皮,績毛以爲布。有樹名雒常,若中國有聖帝代立,則其木生皮可衣。無井灶,作瓦鬲,受四五升以食。坐則箕踞,以足挾肉而啖之,得凍肉,坐其上令暖。土無鹽鐵,燒木作灰,灌取汁而食之。俗皆編發,以布作襜,徑尺餘,以蔽前後。將嫁娶,男以毛羽插女頭,女和則持歸,然後致禮娉之。婦貞而女淫,貴壯而賤老,死者其日即葬之於野,交木作小槨,殺豬積其上,以爲死者之糧。性凶悍,以無憂哀相尚。父母死,男子不哭泣,哭者謂之不壯。相盜竊,無多少皆殺之,故雖野處而不相犯。有石砮,皮骨之甲,檀弓三尺五寸,楛矢長尺有咫。其國東北有山出石,其利入鐵,將取之,必先祈神。

숙신씨는 일명 읍루니, 불함산 북쪽에 있어 부여에서 육십 일쯤 가는 거리다. 동쪽은 큰 바다에 닿고 서쪽은 구만한국에 접하며 북쪽은 약수에 이른다. 그 지경은 너비가 수천 리인데, 깊은 산 궁벽한 골에 살아 길이 험하고 막혀 수레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여름이면 나무 위에 살고 겨울이면 굴에 산다. 아비와 아들이 대대로 군장이 된다.

문묵이 없어 말로 약속을 삼는다. 말이 있어도 타지 않고 다만 재산으로 삼을 뿐이다. 소와 양이 없고 돼지를 많이 길러, 그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을 입으며 털을 자아 베를 만든다. 낙상(雒常)이라는 나무가 있어, 중국에 성스러운 임금이 새로 서면 그 나무에 옷 지을 만한 껍질이 난다 한다. 우물과 부엌이 없고 질그릇 솥을 만들어 너덧 되를 담아 먹는다. 앉을 때는 다리를 뻗고 발에 고기를 끼워 먹으며, 언 고기를 얻으면 그 위에 앉아 녹인다. 땅에 소금과 쇠가 없어 나무를 태워 재를 만들고, 물을 부어 즙을 받아 먹는다.

풍속에 다 머리를 땋으며, 베로 폭 한 자 남짓한 앞치마를 만들어 앞뒤를 가린다. 혼인하려면 남자가 깃털을 여자 머리에 꽂고, 여자가 응하면 가지고 돌아간 뒤에 예를 갖추어 맞는다. 지어미는 곧고 처녀는 음란하며, 젊은이를 귀히 여기고 늙은이를 천히 여긴다. 죽으면 그날로 들에 장사 지내는데, 나무를 엇걸어 작은 곽을 만들고 돼지를 잡아 그 위에 쌓아 죽은 이의 양식으로 삼는다. 성질이 흉하고 사나워 근심 없고 슬픔 없음을 서로 숭상하니, 부모가 죽어도 사내는 곡하지 않으며 곡하는 자를 씩씩하지 못하다 이른다. 도둑질하면 많고 적음 없이 다 죽이므로, 들에 살아도 서로 범하지 않는다.

돌살촉과 가죽·뼈 갑옷이 있고, 박달 활은 석 자 다섯 치요 호시(楛矢)는 길이가 한 자 여덟 치다. 그 나라 동북에 돌 나는 산이 있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뚫으니, 캐려면 반드시 먼저 신에게 빈다.

2호시와 석노

周武王時,獻其楛矢、石砮。逮于周公輔成王,復遣使入賀,爾後千餘年,雖秦漢之盛,莫之致也。及文帝作相,魏景元末,來貢楛矢、石砮、弓甲、貂皮之屬。魏帝詔歸於相府,賜其王傉雞錦罽、綿帛。至武帝元康初,復來貢獻。元帝中興,又詣江左貢其石砮。至成帝時,通貢于石季龍,四年方達。季龍問之,答曰:「每候牛馬向西南眠者三年矣,是知有大國所在,故來一云。」

주 무왕 때 호시와 석노(石砮)를 바쳤다. 주공이 성왕을 도울 때 다시 사신을 보내 하례하였는데, 그 뒤 천여 년 동안은 진·한의 성대로도 오게 하지 못했다. 문제(사마소)가 재상이 되자 위나라 경원 말에 와서 호시·석노·활·갑옷·담비 가죽 따위를 바쳤다. 위나라 황제가 조서로 상부(相府)에 돌리게 하고, 그 왕 녹계에게 비단 모직과 솜을 내렸다.

무제 원강 초에 다시 와서 공물을 바쳤다. 원제가 중흥하자 또 강남에 이르러 석노를 바쳤다. 성제 때는 석계룡(후조 석호)에게 조공을 통했는데 네 해 만에야 닿았다. 계룡이 물으니 답하였다. 「소와 말이 서남쪽을 향해 자는 것을 세 해째 살폈기에, 큰 나라가 있는 곳을 알고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