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倭人
1문신하는 사람들
在帶方東南大海中,依山島為國。地多山林,無良田,食海物。舊有百餘小國相接,至魏時,有三十國通好,戶有七萬。男子無大小,悉黥面文身,自謂太伯之後。又言上古使詣中國,皆自稱大夫。昔夏少康之子封於會稽,斷髮文身以避蛟龍之害。今倭人好沈沒取魚,亦文身以厭水禽。計其道里,當會稽東冶之東。其男子衣以橫幅,但結束相連,略無縫綴。婦人衣如單被,穿其中央以貫頭,而皆被髮徒跣。其地溫暖,俗種禾稻紵麻而蠶桑織績。土無牛馬,有刀楯弓箭,以鐵為鏃。有屋宇,父母兄弟臥息異處。食飲用俎豆。嫁娶不持錢帛,以衣迎之。死有棺無槨,封土為冢。初喪,哭泣不食肉,已葬,舉家入水澡浴自潔,以除不祥。其舉大事,輒灼骨以占吉凶。不知正歲四節,但計秋收之時以為年紀。人多壽百年,或八九十。國多婦女,不淫不妒。無爭訟。犯輕罪者沒其妻孥,重者族滅其家。舊以男子為主,漢末倭人亂,攻伐不定,乃立女子爲王,名曰卑彌呼。
왜인은 대방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으니, 산섬에 의지해 나라를 이루었다. 땅에 산림이 많고 좋은 밭이 없어 바다 것을 먹는다. 옛날에는 백여 소국이 서로 잇닿았는데, 위나라 때에 이르러 서른 나라가 통호하니 호수는 칠만이다.
남자는 크고 작음 없이 다 낯에 먹물 뜨고 몸에 문신하며, 스스로 태백(太伯)의 후손이라 이른다. 또 상고에 중국에 사신 갈 때 다 스스로 대부라 일컬었다 한다. 옛날 하나라 소강의 아들이 회계에 봉해지자 머리를 자르고 문신하여 교룡의 해를 피했는데, 지금 왜인이 물에 잠겨 고기 잡기를 좋아하니 또한 문신으로 물새를 물리치는 것이다. 그 길을 헤아리면 회계 동야(東冶)의 동쪽에 해당한다.
남자 옷은 가로폭 천을 묶어 이을 뿐 거의 꿰매지 않고, 부인 옷은 홑이불 같은데 가운데를 뚫어 머리를 꿰며, 다 머리를 풀고 맨발이다. 땅이 따뜻하여 벼와 모시를 심고 누에 쳐 길쌈한다. 땅에 소와 말이 없으며, 칼·방패·활·화살이 있고 쇠로 살촉을 만든다. 집이 있으며 부모 형제가 눕고 쉬는 데를 달리한다. 먹고 마심에는 조두(俎豆)를 쓴다. 혼인에 돈과 비단을 쓰지 않고 옷으로 맞는다. 죽으면 관은 있고 곽은 없으며 흙을 쌓아 무덤을 만든다. 초상에는 곡하며 고기를 먹지 않고, 장사를 마치면 온 집안이 물에 들어가 몸을 씻어 스스로 깨끗이 하여 상서롭지 못함을 없앤다.
큰일을 일으킬 때면 문득 뼈를 태워 길흉을 점친다. 정월과 사철을 몰라 다만 가을걷이 때를 헤아려 한 해로 삼는다. 사람이 많이 장수하여 백 살 혹은 팔구십 살에 이른다. 나라에 부녀가 많은데 음란하지 않고 시새우지 않는다. 다투는 송사가 없다. 가벼운 죄를 범한 자는 처자를 몰수하고, 무거운 자는 그 집안을 멸한다. 옛날에는 남자를 임금으로 삼았는데, 한나라 말에 왜인이 어지러워 서로 치며 안정되지 않자, 이에 여자를 세워 왕으로 삼으니 이름이 히미코(卑彌呼)다.
2히미코 이후의 조공
宣帝之平公孫氏也,其女王遣使至帶方朝見,其後貢聘不絶。及文帝作相,又數至。泰始初,遣使重譯入貢。
선제(사마의)가 공손씨를 평정하자 그 여왕이 사신을 대방에 보내 조현했고, 그 뒤 조공과 빙문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가 재상이 되자 또 자주 이르렀다. 태시 초에 사신을 보내 겹통역으로 조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