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욕혼吐谷渾
1말싸움에서 갈라선 형제
吐谷渾,慕容廆之庶長兄也,其父涉歸分部落一千七百家以隸之。及涉歸卒,廆嗣位,而二部馬鬥,廆怒曰:「先公分建有別,奈何不相遠離,而令馬鬥!」吐谷渾曰:「馬爲畜耳,鬥其常性,何怒於人!乖別甚易,當去汝於萬里之外矣。」於是遂行。廆悔之,遣其長史史那蔞馮及父時耆舊追還之。吐谷渾曰:「先公稱卜筮之言,當有二子克昌,祚流後裔。我卑庶也、理無並大,今因馬而別,殆天所啟乎!諸君試驅馬令東,馬若還東,我當相隨去矣。」樓馮遣從者二千騎,擁馬東出數百步,輒悲鳴西走。如是者十餘輩,樓馮跪而言曰:「此非人事也。」遂止。鮮卑謂兄爲阿幹,廆追思之,作《阿幹之歌》,歲暮窮思,常歌之。
토욕혼은 모용외의 서출 맏형이다. 아버지 섭귀가 부락 일천칠백 집을 나누어 그에게 딸렸다. 섭귀가 죽고 외가 자리를 잇자 두 부의 말이 싸우니, 외가 노하여 말하였다. 「선공께서 나누어 세우심에 분별이 있었거늘, 어찌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아 말이 싸우게 하는가!」 토욕혼이 말하였다. 「말은 짐승일 뿐이라 싸우는 것이 본디 성질인데 어찌 사람에게 노하는가! 갈라지기는 몹시 쉬우니, 마땅히 너에게서 만 리 밖으로 떠나 주마.」 그러고는 드디어 떠났다.
외가 뉘우쳐 장사 사나루풍과 아버지 때의 늙은 신하들을 보내 돌아오기를 청하니, 토욕혼이 말하였다. 「선공께서 점친 말을 일컬어 두 아들이 창성하여 복이 후손에 흐르리라 하셨다. 나는 미천한 서출이니 이치로 보아 나란히 클 수 없다. 이제 말로 인해 갈라짐은 아마 하늘이 여신 것이리라! 그대들이 시험 삼아 말을 몰아 동으로 가게 해 보라. 말이 동으로 돌아가면 내 마땅히 따라가리라.」 누풍이 따라온 이천 기를 시켜 말을 몰아 동으로 수백 걸음을 나가게 했으나, 문득 슬피 울며 서쪽으로 내달았다. 이러기를 십여 차례 하니 누풍이 꿇어앉아 「이는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하고 드디어 그만두었다.
선비는 형을 아간(阿幹)이라 이르니, 외가 뒤에 그리워하여 《아간의 노래》를 짓고, 세밑에 그리움이 사무치면 늘 그 노래를 불렀다.
2서쪽으로 간 토욕혼
吐谷渾謂其部落曰:「我兄弟俱當享國,廆及曾玄才百餘年耳。我玄孫已後,庶其昌乎!」於是乃西附陰山。屬永嘉之亂,始度隴而西,其後子孫據有西零已西甘松之界,極乎白蘭數千里。然有城郭而不居,隨逐水草,廬帳爲屋,以肉酪爲糧。其官置長史、司馬、將軍,頗識文字。其男子通服長裙,帽或戴冪。婦人以金花爲首飾,辮髪縈後,綴以珠貝。其婚姻,富家厚出娉財,竊女而去。父卒,妻其群母;兄亡,妻其諸嫂。喪服制,葬訖而除。國無常稅,調用不給,輒斂富室商人,取足而止。殺人及盜馬者罪至死,他犯則征物以贖。地宜大麥,而多蔓菁,頗有菽粟。出蜀馬、犛牛。西北雜種謂之爲阿柴虜,或號爲野虜焉。吐谷渾年七十二卒,有子六十人,長曰吐延,嗣。
토욕혼이 그 부락에 일렀다. 「우리 형제가 다 나라를 누리려니와, 외는 증손·현손까지 백여 년일 뿐이다. 내 현손 이후에야 아마 창성하리라!」 이에 서쪽으로 음산에 붙었다가, 영가의 난을 만나 비로소 농산을 넘어 서쪽으로 갔다. 그 뒤 자손이 서령 서쪽 감송의 지경을 차지하니 백란까지 수천 리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곽이 있어도 살지 않고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며, 장막으로 집을 삼고 고기와 유즙으로 양식을 삼았다. 벼슬로 장사·사마·장군을 두었고 자못 문자를 알았다. 남자는 대개 긴 치마를 입고 모자나 너울을 쓴다. 부인은 금꽃으로 머리를 꾸미고 머리를 땋아 뒤로 두르며 구슬과 조개를 단다. 혼인은 부잣집이 폐백을 후히 내되 여자를 훔쳐 간다. 아비가 죽으면 뭇 서모를 아내로 삼고, 형이 죽으면 형수들을 아내로 삼는다. 상복은 장사를 마치면 벗는다. 나라에 일정한 세금이 없어 쓸 것이 모자라면 부잣집과 장사꾼에게 거두어 넉넉해지면 그친다. 사람을 죽이거나 말을 훔친 자는 죄가 죽음에 이르고, 다른 죄는 물건을 거두어 속죄하게 한다. 땅은 보리에 알맞고 순무가 많으며 콩과 조도 자못 있다. 촉마(蜀馬)와 야크가 난다. 서북의 잡종은 그들을 아시로(阿柴虜)라 부르고 혹 야로(野虜)라고도 한다.
토욕혼이 일흔둘에 죽으니 아들 예순이 있었고, 맏이 토연이 이었다.
3항우라 불린 토연
吐延身長七尺八寸,雄姿魁傑,羌虜憚之,號曰項羽。性俶儻不群,嘗慷慨謂其下曰:「大丈夫生不在中國,當高光之世,與韓、彭、吳、鄧並驅中原,定天下雌雄,使名垂竹帛,而潛竄窮山,隔在殊俗,不聞禮教於上京,不得策名於天府,生與麋鹿同群,死作氈裘之鬼,雖偷觀日月,獨不愧於心乎!」性酷忍,而負其智,不能恤下,爲羌酋薑聰所刺。劍猶在其身,謂其將紇拔泥曰:「豎子刺吾,吾之過也,上負先公,下愧士女。所以控制諸羌者,以吾故也。吾死之後,善相葉延,速保白蘭。」言終而卒。在位十三年,有子十二人,長子葉延嗣。
토연은 키가 일곱 자 여덟 치에 웅장한 자태가 우람하여 강로(羌虜)가 두려워하며 항우라 불렀다. 성품이 뜻이 커서 무리와 어울리지 않았는데, 일찍이 강개하여 아랫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대장부가 중국의 고제·광무 시절에 나지 못하여 한신·팽월·오한·등우와 중원을 나란히 달리며 천하의 자웅을 정해 이름을 죽백에 드리우지 못하고, 궁벽한 산에 숨어 다른 풍속에 막혀, 상경의 예교를 듣지 못하고 천부(天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 살아서는 고라니 사슴과 무리 짓고 죽어서는 털가죽 옷의 귀신이 되니, 해와 달을 훔쳐본들 홀로 마음에 부끄럽지 않으랴!」
성품이 몹시 모질고 제 슬기를 자부하여 아랫사람을 돌보지 못하다가, 강족 추장 강총에게 찔렸다. 칼이 아직 몸에 박힌 채 장수 흘발니에게 일렀다. 「종놈이 나를 찔렀으니 나의 허물이다. 위로 선공을 저버리고 아래로 사녀에게 부끄럽다. 여러 강족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나 때문이었다. 내가 죽거든 엽연을 잘 도와 빨리 백란을 지키라.」 말을 마치고 죽었다. 재위 십삼 년에 아들 열둘이 있었고, 맏아들 엽연이 이었다.
4풀사람을 쏘던 엽연
葉延年十歲,其父爲羌酋薑聰所害,每旦縛草爲薑聰之象,哭而射之,中之則號泣,不中則瞋目大呼。其母謂曰:「姜聰,諸將已屠鱠之矣,汝何爲如此?」葉延泣曰:「誠知射草人不益于先仇,以申罔極之志耳。」性至孝,母病,五日不食,葉延亦不食。長而沈毅,好問天地造化、帝王年曆。司馬薄洛鄰曰:「臣等不學,實未審三皇何父之子,五帝誰母所生。」延曰:「自羲皇以來,符命玄象昭言著見,而卿等面牆,何其鄙哉!語曰『夏蟲不知冬冰』,良不虛也。」又曰:「《禮》云『公孫之子得以王父字爲氏』,吾祖始自昌黎光宅於此,今以吐谷渾爲氏,尊祖之義也。」在位二十三年卒,年三十三。有子四人,長子辟奚嗣。
엽연은 열 살에 아버지가 강족 추장 강총에게 해를 입자, 아침마다 풀을 묶어 강총의 형상을 만들고 울면서 쏘았는데, 맞히면 소리 내어 울고 못 맞히면 눈을 부릅뜨고 크게 외쳤다. 어머니가 「강총은 여러 장수가 이미 살을 저몄는데 네가 어찌 이러느냐」 하니, 엽연이 울며 말하였다. 「풀사람을 쏘는 것이 돌아가신 원수에게 보탬이 없는 줄 참으로 압니다만, 가없는 뜻을 펴는 것일 뿐입니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머니가 병들어 닷새를 먹지 못하니 엽연도 먹지 않았다.
자라서는 침착하고 굳세어 천지조화와 제왕의 연력 묻기를 좋아하였다. 사마 박락린이 「신들은 배우지 못하여 실로 삼황이 누구 아버지의 아들이며 오제가 누구 어머니의 소생인지 모릅니다」 하니, 엽연이 말하였다. 「복희 이래 부명과 천문이 밝게 드러나 있거늘 경들은 담장을 마주한 듯하니 어찌 그리 비루한가. 옛말에 〈여름 벌레는 겨울 얼음을 모른다〉 하더니 참으로 헛말이 아니로다.」 또 말하였다. 「예기에 〈공손(公孫)의 아들은 왕부(王父)의 자로 씨를 삼는다〉 하였다. 우리 조상이 창려에서 비롯하여 이 땅에 빛나게 자리 잡았으니, 이제 토욕혼으로 씨를 삼음은 조상을 높이는 뜻이다.」 재위 이십삼 년, 서른셋에 죽었다. 아들 넷이 있었고 맏아들 벽해가 이었다.
5아우 셋을 벤 벽해
辟奚性仁厚慈惠。初聞苻堅之盛,遣使獻馬五十匹,金銀五百斤。堅大悅,拜爲安遠將軍。時辟奚三弟皆專恣,長史鐘惡地恐爲國害,謂司馬乞宿雲曰:「昔鄭莊公、秦昭王以一弟之寵,宗祀幾傾,況今三孽並驕,必爲社稷之患。吾與公忝當元輔,若獲保首領以沒于地,先君有問,其將何辭!吾今誅之矣。」宿雲請白辟奚,惡地曰:「吾王無斷,不可以告。」於是因群下入覲,遂執三弟而誅之。辟奚自投於床,惡地等奔而扶之,曰:「臣昨夢先王告臣云:『三弟將爲逆亂,汝速除之。』臣謹奉先王之命矣。」辟奚素友愛,因恍惚成疾,謂世子視連曰:「吾禍滅同生,何以見之於地下!國事大小,汝宜攝之,吾餘年殘命,寄食而已。」遂以憂卒。在位二十五年,時年四十二。有子六人,視連嗣。
벽해는 성품이 어질고 두터우며 자애로웠다. 처음 부견의 성함을 듣고 사신을 보내 말 오십 필과 금은 오백 근을 바치니, 견이 크게 기뻐하며 안원장군에 제수하였다. 그때 벽해의 세 아우가 다 방자하니, 장사 종악지가 나라의 해가 될까 두려워 사마 걸숙운에게 말하였다. 「옛날 정 장공과 진 소왕은 아우 하나를 총애하다가 종사가 거의 기울었소. 하물며 지금 세 서얼이 나란히 교만하니 반드시 사직의 근심이 될 것이오. 나와 공이 외람되이 원보의 자리에 있으니, 머리를 보전한 채 땅에 묻힌들 선군이 물으시면 장차 무슨 말로 대답하겠소. 내 이제 그들을 베겠소.」 숙운이 벽해에게 아뢰기를 청하니, 악지가 「우리 왕은 결단이 없으니 알려서는 안 되오」 하고, 뭇 신하가 입조하는 틈에 드디어 세 아우를 잡아 베었다.
벽해가 스스로 평상에 몸을 던지니 악지 등이 달려가 부축하며 말하였다. 「신이 어젯밤 꿈에 선왕께서 신에게 이르시기를 〈세 아우가 장차 반역하리니 너는 빨리 없애라〉 하셨습니다. 신은 삼가 선왕의 명을 받든 것입니다.」 벽해는 본디 우애가 깊어 그로 인해 실성하여 병이 되니, 세자 시련에게 일렀다. 「내가 화가 한배 형제를 멸하는 데 미쳤으니 무슨 낯으로 지하에서 뵈랴. 나랏일은 크고 작고 없이 네가 맡아라. 나는 남은 목숨을 밥이나 부쳐 살 뿐이다.」 드디어 근심으로 죽었다. 재위 이십오 년, 나이 마흔둘이었다. 아들 여섯이 있어 시련이 이었다.
6일곱 해 술을 끊은 시련
視連既立,通娉於乞伏乾歸,拜爲白蘭王。視連幼廉慎有志性,以父憂卒,不知政事,不飲酒遊田七年矣。鐘惡地進曰:「夫人君者,以德御世,以威齊衆,養以五味,娛以聲色。此四者,聖帝明王之所先也,而公皆略之。昔昭公儉嗇而喪,偃王仁義而亡,然則仁義所以存身,亦所以亡己。經國者,德禮也;濟世者,刑法也。二者或差,則綱維失緒。明公奕葉重光,恩結西夏,雖仁孝發于天然,猶宜憲章周孔,不可獨追徐偃之仁,使刑德委而不建。」視連泣曰:「先王追友于之痛,悲憤升遐,孤雖纂業,屍存而已。聲色游娛,豈所安也!綱維刑禮,付之將來。」臨終,謂其子視羆曰:「我高祖吐谷渾公常言子孫必有興者,永爲中國之西籓,慶流百世。吾已不及,汝亦不見,當在汝之子孫輩耳。」在位十五年而卒。有二子,長曰視羆,少曰烏紇堤。
시련이 서자 걸복건귀와 통빙하니 백란왕에 제수되었다. 시련은 어려서부터 청렴하고 삼가며 뜻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근심으로 돌아가신 일 때문에 정사를 살피지 않고 술 마시고 사냥 다니지 않은 지 일곱 해였다. 종악지가 나아가 말하였다. 「무릇 임금은 덕으로 세상을 몰고 위엄으로 무리를 가지런히 하며, 다섯 맛으로 몸을 기르고 소리와 색으로 즐깁니다. 이 넷은 성제와 명왕이 먼저 하신 바인데 공은 다 빠뜨리십니다. 옛날 소공은 검소하고 아끼다가 잃었고 언왕은 인의로 망했으니, 인의는 몸을 보존하는 길이자 저를 망치는 길이기도 합니다. 나라를 경영함은 덕과 예요, 세상을 건짐은 형벌과 법입니다. 둘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나면 벼리가 실마리를 잃습니다. 명공은 여러 대의 빛을 거듭 이어 은혜가 서하에 맺혔으니, 어짊과 효성이 천성에서 났다 해도 마땅히 주공과 공자를 본받아야지, 서언왕의 어짊만 홀로 좇아 형벌과 덕을 버려둔 채 세우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시련이 울며 말하였다. 「선왕께서 형제 잃은 아픔을 좇다 슬픔과 분함 속에 세상을 뜨셨소. 내 비록 업을 이었으나 주검으로 있을 뿐이오. 소리와 색과 놀이가 어찌 편안하겠소. 벼리와 형벌과 예는 앞날에 맡기오.」
임종에 아들 시비에게 일렀다. 「우리 고조 토욕혼공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자손 가운데 반드시 일어나는 자가 있어 길이 중국의 서쪽 울타리가 되어 경사가 백세에 흐르리라 하셨다. 나는 이미 미치지 못했고 너도 보지 못하려니와, 마땅히 네 자손들 대에 있으리라.」 재위 십오 년에 죽었다. 두 아들이 있으니 맏이 시비요 작은이 오흘제다.
7중국을 다투자던 시비
視羆性英果,有雄略,嘗從容謂博士金城騫苞曰:「《易》云:『動靜有常,剛柔斷矣。』先王以仁宰世,不任威刑,所以剛柔靡斷,取輕鄰敵。當仁不讓,豈宜拱默者乎!今將秣馬厲兵,爭衡中國,先生以爲何如?」苞曰:「大王之言,高世之略,秦隴英豪所願聞也。」於是虛襟撫納,衆赴如歸。乞伏乾歸遣使拜爲使持節、都督龍涸已西諸軍事、沙州牧、白蘭王。視羆不受,謂使者曰:「自晉道不綱,奸雄競逐,劉、石虐亂,秦、燕跋扈,河南王處形勝之地,宜當糾合義兵,以懲不順,奈何私相假署,擬僭群凶!寡人承五祖之休烈,控弦之士二萬,方欲掃氛秦隴,清彼沙涼,然後飲馬涇渭,戮問鼎之豎,以一丸尼封東關,閉燕趙之路,迎天子于西京,以盡遐籓之節,終不能如季孟、子陽妄自尊大。爲吾白河南王,何不立勳帝室,策名王府,建當年之功,流芳來葉邪!」乾歸大怒,然憚其強,初猶結好,後竟遣衆擊之。視羆大敗,退保白蘭。在位十一年,年三十三卒。子樹洛幹年少,傳位於烏紇堤。
시비는 성품이 영특하고 과단하며 웅대한 계략이 있었다. 일찍이 조용히 박사 금성 사람 건포에게 말하였다. 「주역에 〈움직임과 고요함에 떳떳함이 있으니 굳셈과 부드러움이 결단된다〉 하였소. 선왕께서 어짊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위엄과 형벌을 쓰지 않으셨기에 굳셈과 부드러움이 결단되지 못해 이웃 적에게 가벼이 보였소. 어짊을 당해서는 사양하지 않는 법인데 어찌 팔짱 끼고 잠잠해서야 되겠소! 이제 말을 먹이고 병기를 갈아 중국과 저울대를 다투려 하니 선생은 어찌 생각하시오?」 포가 「대왕의 말씀은 세상에 뛰어난 계략이니, 진롱의 영웅호걸이 듣고자 하는 바입니다」 하였다. 이에 마음을 비우고 어루만져 받아들이니 무리가 돌아오듯 몰려들었다.
걸복건귀가 사신을 보내 사지절·도독용사이서제군사·사주목·백란왕에 제수하니, 시비가 받지 않고 사자에게 말하였다. 「진나라의 도가 벼리를 잃은 뒤로 간웅이 다투어 쫓고 유씨·석씨가 사납게 어지럽히며 진(秦)·연(燕)이 발호하오. 하남왕은 형승의 땅에 처했으니 마땅히 의병을 규합하여 순종하지 않는 자를 징계할 일이거늘, 어찌 사사로이 서로 벼슬을 빌려 주며 뭇 흉적을 흉내 내는가! 과인은 다섯 조상의 아름다운 공렬을 이어받아 활 당길 군사 이만을 두었으니, 바야흐로 진롱의 요기를 쓸고 저 사주와 양주를 맑게 한 다음, 경수와 위수에서 말에게 물 먹이고 솥의 무게를 묻는 종자를 베며, 한 알의 진흙으로 동관을 봉해 연·조의 길을 막고 천자를 서경으로 맞아 먼 울타리의 절개를 다하려 하오. 끝내 외효나 공손술처럼 함부로 스스로 높은 체할 수는 없소. 나를 위해 하남왕에게 아뢰시오. 어찌 제실에 공을 세우고 왕부에 이름을 올려, 당대의 공을 세우고 후대에 향기를 흘리지 않는가!」 건귀가 크게 노했으나 그 강함을 꺼려 처음에는 오히려 우호를 맺었다가, 뒤에 끝내 무리를 보내 쳤다. 시비가 크게 패하여 물러나 백란을 지켰다. 재위 십일 년, 서른셋에 죽었다. 아들 수락간이 어렸으므로 오흘제에게 자리를 전했다.
8술에 빠진 오흘제
烏紇堤一名大孩,性軟弱,耽酒淫色,不恤國事。乞伏乾歸之入長安也,烏紇堤屢抄其境。乾歸怒,率騎討之。烏紇堤大敗,亡失萬餘口,保于南涼,遂卒于胡國。在位八年,時年三十五。視羆之子樹洛幹立。
오흘제는 일명 대해니, 성품이 유약하고 술과 여색에 빠져 나랏일을 돌보지 않았다. 걸복건귀가 장안에 들어가자 오흘제가 여러 번 그 지경을 노략하니, 건귀가 노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쳤다. 오흘제가 크게 패하여 만여 명을 잃고 남량에 몸을 붙였다가 마침내 호국에서 죽었다. 재위 팔 년,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시비의 아들 수락간이 즉위하였다.
9무인가한 수락간
樹洛幹九歲而孤,其母念氏聰惠有姿色,烏紇堤妻之,有寵,遂專國事。洛幹十歲便自稱世子,年十六嗣立,率所部數千家奔歸莫何川,自稱大都督、車騎大將軍、大單于、吐谷渾王。化行所部,衆庶樂業,號爲戊寅可汗,沙漒雜種莫不歸附。乃宣言曰:「孤先祖避地於此,暨孤七世,思與群賢共康休緒。今士馬桓桓,控弦數萬,孤將振威梁益,稱霸西戎,觀兵三秦,遠朝天子,諸君以爲何如?」衆咸曰:「此盛德之事也,願大王自勉!」乞伏乾歸甚忌之,率騎二萬,攻之於赤水。樹洛幹大敗,遂降乾歸,乾歸拜爲平狄將軍、赤水都護,又以其弟吐護真爲捕虜將軍、層城都尉。其後屢爲乞伏熾磐所破,又保白蘭,慚憤發病而卒。在位九年,時年二十四。熾磐聞其死,喜曰:「此虜矯矯,所謂有豕白蹄也。」有子四人,世子拾虔嗣。其後世嗣不絕。
수락간은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 염씨가 총명하고 자색이 있어 오흘제가 아내로 삼아 총애하니, 드디어 나랏일을 주물렀다. 낙간은 열 살에 스스로 세자라 일컫고, 열여섯에 자리를 이어 거느린 수천 집을 이끌고 막하천으로 달려가, 스스로 대도독·거기대장군·대선우·토욕혼왕이라 일컬었다. 교화가 부내에 행해져 뭇사람이 생업을 즐기니 무인가한(戊寅可汗)이라 불렀고, 사강의 잡종이 다 귀부하였다.
이에 선언하였다. 「나의 선조께서 이 땅에 피해 오신 지 나에게 이르러 일곱 대다. 뭇 어진 이와 함께 아름다운 실마리를 이루고자 하노라. 이제 군사와 말이 씩씩하여 활 당길 자 수만이니, 나는 장차 양주·익주에 위엄을 떨쳐 서융의 패자를 일컫고, 삼진에서 군사를 사열한 뒤 멀리 천자께 조회하려 하는데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무리가 다 「이는 성대한 덕의 일이니 원컨대 대왕은 스스로 힘쓰소서!」 하였다.
걸복건귀가 몹시 꺼려 기병 이만을 거느리고 적수에서 치니, 수락간이 크게 패하여 드디어 건귀에게 항복하였다. 건귀가 평적장군·적수도호에 제수하고, 또 그 아우 토호진을 포로장군·층성도위로 삼았다. 그 뒤 여러 번 걸복치반에게 깨져 다시 백란을 지키다가, 부끄러움과 분함으로 병이 나 죽었다. 재위 구 년, 나이 스물넷이었다. 치반이 그 죽음을 듣고 기뻐하며 「이 오랑캐가 굳세고 굳세니, 이른바 흰 발굽 가진 돼지로다」 하였다. 아들 넷이 있어 세자 습건이 이었고, 그 뒤로 대가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