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기국焉耆國
1언기국의 형세
焉耆國西去洛陽八千二百里,其地南至尉犁,北與烏孫接,方四百里。四面有大山,道險隘,百人守之,千人不過。其俗丈夫翦發,婦人衣襦,著大袴。婚姻同華夏。好貨利,任奸詭。王有侍衛數十人,皆倨慢無尊卑之禮。
언기국은 서쪽으로 낙양에서 팔천이백 리다. 그 땅은 남으로 위리에 이르고 북으로 오손과 접하며 사방 사백 리다. 사면에 큰 산이 있고 길이 험하고 좁아, 백 사람이 지키면 천 사람도 지나지 못한다. 그 풍속은 장부가 머리를 자르고, 부인은 저고리에 큰 바지를 입는다. 혼인은 화하와 같다. 재물과 이익을 좋아하고 간사한 속임을 예사로 한다. 왕에게 시위 수십 명이 있는데 다 거만하여 높낮이의 예가 없다.
2회가 구자를 멸하다
武帝太康中,其王龍安遣子入侍。安夫人獪胡之女,妊身十二月,剖脅生子,曰會,立之爲世子。會少而勇傑,安病篤,謂會曰:「我嘗爲龜茲王白山所辱,不忘於心。汝能雪之,乃吾子也。」及會立,襲滅白山,遂據其國,遣子熙歸本國爲王。會有膽氣籌略,遂霸西胡,蔥嶺以東莫不服。然恃勇輕率,嘗出宿於外,爲龜茲國人羅雲所殺。
무제 태강 연간에 그 왕 용안이 아들을 보내 입시시켰다. 안의 부인은 회호(獪胡)의 딸인데 열두 달 아이를 배어 옆구리를 가르고 아들을 낳으니 회(會)라 하고 세자로 세웠다. 회는 젊어서부터 용감하고 뛰어났다. 안이 병이 위독해지자 회에게 「내 일찍이 구자왕 백산에게 욕을 당해 마음에 잊지 못한다. 네가 씻어 준다면 곧 내 아들이다」 하였다. 회가 서자 백산을 습격해 멸하고 드디어 그 나라를 차지하였으며, 아들 희를 본국에 돌려보내 왕으로 삼았다. 회는 담력과 계략이 있어 드디어 서호(西胡)의 패자가 되니 총령 동쪽이 복종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나 용맹을 믿고 경솔하여, 일찍이 밖에 나가 자다가 구자국 사람 나운에게 살해되었다.
3장식이 복병을 깨뜨리다
其後張駿遣沙州刺史楊宣率衆疆理西域,宣以部將張植爲前鋒,所向風靡。軍次其國,熙距戰於賁侖城,爲植所敗。植時屯鐵門,未至十餘里,熙又率衆先要之于遮留穀。植將至,或曰:「漢祖畏于柏人,岑彭死于彭亡,今穀名遮留,殆將有伏?」植單騎嘗之,果有伏發。植馳擊敗之,進據尉犁,熙率群下四萬人肉袒降于宣。呂光討西域,復降於光。及光僭位,熙又遣子入侍。
그 뒤 장준이 사주자사 양선을 보내 무리를 거느리고 서역을 다스리게 하니, 선이 부장 장식을 선봉으로 삼자 가는 곳마다 바람에 쏠리듯 하였다. 군사가 그 나라에 다다르자 희가 분륜성에서 막아 싸우다 식에게 패했다. 식이 철문에 진 치고 십여 리를 못 미쳤을 때, 희가 또 무리를 거느리고 차류곡에서 먼저 길목을 지켰다. 식이 이르려 할 때 어떤 이가 「한 고조는 백인(柏人)을 꺼렸고 잠팽은 팽망(彭亡)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골짜기 이름이 차류(遮留·막고 붙듦)니 아마 복병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식이 홑말로 살피니 과연 복병이 일어났다. 식이 달려 쳐서 깨뜨리고 나아가 위리를 차지하니, 희가 무리 사만 명을 거느리고 웃통을 벗어 선에게 항복하였다. 여광이 서역을 칠 때 다시 광에게 항복했고, 광이 참위하자 희가 또 아들을 보내 입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