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읍林邑
1마원의 구리 기둥 터
林邑國本漢時象林縣,則馬援鑄柱之處也,去南海三千里。後漢末,縣功曹姓區,有子曰連,殺令自立爲王,子孫相承。其後王無嗣,外孫范熊代立。熊死,子逸立。其俗皆開北戶以向日,至於居止,或東西無定。人性凶悍,果於戰鬥,便山習水,不閑平地。四時暄暖,無霜無雪,人皆倮露徒跣,以黑色爲美。貴女賤男,同姓爲婚,婦先娉婿。女嫁之時,著迦盤衣,橫幅合縫如井欄,首戴寶花。居喪翦鬢謂之孝,燔屍中野謂之葬。其王服天冠,被纓絡,每聽政,子弟侍臣皆不得近之。
임읍국은 본디 한나라 때 상림현이니 곧 마원이 구리 기둥을 세운 곳으로, 남해에서 삼천 리다. 후한 말에 현의 공조로 성이 구(區)인 이에게 아들 련(連)이 있어 현령을 죽이고 스스로 서서 왕이 되니, 자손이 서로 이었다. 그 뒤 왕에게 후사가 없어 외손 범웅이 대신 즉위하였다. 웅이 죽고 아들 일(逸)이 즉위하였다.
그 풍속은 다 북쪽 문을 열어 해를 향하게 하는데, 사는 곳은 동서가 일정하지 않다. 사람들 성질이 흉하고 사나우며 싸움에 과감하고, 산에 익숙하고 물에 익어 평지에는 서툴다. 사철이 따뜻하여 서리도 눈도 없다. 사람들이 다 벌거벗고 맨발이며 검은빛을 아름답다 여긴다. 여자를 귀히 여기고 남자를 천히 여기며, 같은 성끼리 혼인하고 며느리 쪽이 먼저 사위에게 청혼한다. 여자가 시집갈 때는 가반의(迦盤衣)를 입으니 가로폭을 우물 난간처럼 맞꿰매며, 머리에 보배 꽃을 인다. 상을 입으면 구레나룻을 자르는 것을 효라 이르고, 주검을 들에서 태우는 것을 장사라 이른다. 그 왕은 하늘 관을 쓰고 영락을 두르는데, 정사를 들을 때마다 자제와 시신이 다 가까이하지 못한다.
2종 문이 왕이 되다
自孫權以來,不朝中國。至武帝太康中,始來貢獻。咸康二年,範逸死,奴文纂位。文,日南西卷縣夷帥範椎奴也。嘗牧牛澗中,獲二鯉魚,化成鐵,用以爲刀。刀成,乃對大石嶂而咒之曰:「鯉魚變化,冶成雙刀,石嶂破者,是有神靈。」進斫之,石即瓦解。文知其神,乃懷之。隨商賈往來,見上國制度,至林邑,遂教逸作宮室、城邑及器械。逸甚愛信之,使爲將。文乃譖逸諸子,或徙或奔。及逸死,無嗣,文遂自立爲王。以逸妻妾悉置之高樓,從己者納之,不從者絕其食。於是乃攻大岐界、小岐界、式僕、徐狼、屈都、乾魯、扶單等諸國,並之,有衆四五萬人。遣使通表入貢於帝,其書皆胡字。至永和三年,文率其衆攻陷日南,害太守夏侯覽,殺五六千人,餘奔九真,以覽屍祭天,鏟平西卷縣城,遂據日南。告交州刺史硃蕃,求以日南北鄙橫山爲界。
손권 이래 중국에 조회하지 않다가 무제 태강 연간에 처음 와서 공물을 바쳤다. 함강 이년에 범일이 죽자 종 문(文)이 자리를 빼앗았다. 문은 일남 서권현의 이(夷) 우두머리 범치의 종이다. 일찍이 시내에서 소를 치다가 잉어 두 마리를 얻었는데 쇠로 변하여 그것으로 칼을 만들었다. 칼이 이루어지자 큰 바위를 마주해 빌었다. 「잉어가 변화하여 두 칼을 이루었으니, 바위가 깨지면 신령함이 있음이라.」 나아가 찍으니 바위가 곧 기와처럼 부서졌다. 문이 그 신령함을 알고 품고 다녔다.
장사꾼을 따라 오가며 상국의 제도를 보고, 임읍에 이르러 드디어 일에게 궁실과 성읍과 기계 만드는 법을 가르치니, 일이 몹시 아끼고 믿어 장수로 삼았다. 문이 이에 일의 여러 아들을 참소하니 혹 옮겨지고 혹 달아났다. 일이 죽고 후사가 없자 문이 드디어 스스로 서서 왕이 되었다. 일의 처첩을 다 높은 다락에 두고 저를 따르는 자는 거두고 따르지 않는 자는 밥을 끊었다. 이에 대기계·소기계·식복·서랑·굴도·건로·부단 등 여러 나라를 쳐서 아우르니 무리가 사오만이었다.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황제께 조공했는데 그 글이 다 호(胡)의 글자였다. 영화 삼년에 이르러 문이 무리를 거느리고 일남을 쳐 함락시켜 태수 하후람을 해치고 오륙천 명을 죽이니, 남은 이들은 구진으로 달아났다. 람의 주검으로 하늘에 제사하고 서권현 성을 깎아 평지로 만들고 드디어 일남을 차지하였다. 교주자사 주번에게 알려, 일남 북쪽 변두리 횡산으로 경계를 삼자고 청하였다.
3탐욕이 부른 화
初,徼外諸國嘗齎寶物自海路來貿貨,而交州刺史、日南太守多貪利侵侮,十折二三。至刺史姜壯時,使韓戢領日南太守,戢估較太半,又伐船調枹,聲云征伐,由是諸國恚憤。且林邑少田,貪日南之地,戢死絕,繼以謝擢,侵刻如初。及覽至郡,又耽荒於酒,政教愈亂,故被破滅。
처음에 변경 밖 여러 나라가 보물을 싸 들고 바닷길로 와서 무역했는데, 교주자사와 일남태수가 대개 이익을 탐해 침탈하고 업신여겨 열에 두셋을 깎았다. 자사 강장 때에 이르러 한집이 일남태수를 맡았는데, 값을 태반이나 후려치고 또 배를 징발하고 북채를 거두며 정벌한다고 소리 내니, 이로부터 여러 나라가 분해하고 원망하였다. 게다가 임읍은 밭이 적어 일남 땅을 탐냈다. 한집이 죽자 사탁이 이었는데 침탈이 처음과 같았다. 하후람이 군에 이르러서는 또 술에 빠져 정사와 교화가 더욱 어지러웠으므로, 그래서 깨져 멸망당한 것이다.
4일남을 잃다
既而文還林邑。是歲,硃蕃使督護劉雄戍于日南,文復攻陷之。四年,文又襲九真,害士庶十八九。明年,征西督護滕畯率交廣之兵伐文于盧容,爲文所敗,退次九真。其年,文死,子佛嗣。
이윽고 문이 임읍으로 돌아갔다. 이해에 주번이 독호 유웅을 일남에 수자리 세웠는데 문이 다시 쳐서 함락시켰다. 사년에 문이 또 구진을 습격하여 사서(士庶)를 열에 여덟아홉이나 해쳤다. 이듬해 정서독호 등준이 교주·광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노용에서 문을 쳤으나 문에게 패하여 물러나 구진에 머물렀다. 그해에 문이 죽고 아들 불(佛)이 이었다.
5화친과 침입
升平末,廣州刺史勝含率衆伐之,佛懼,請降,含與盟而還。至孝武帝甯康中,遣使貢獻。至義熙中,每歲又來寇日南、九真、九德等諸郡,殺傷甚衆,交州遂致虛弱,而林邑亦用疲弊。
승평 말에 광주자사 등함이 무리를 거느리고 치니, 불이 두려워 항복을 청하므로 함이 맹약하고 돌아왔다. 효무제 영강 연간에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의희 연간에 이르러 해마다 또 일남·구진·구덕 등 여러 군을 침노하여 죽이고 다친 이가 몹시 많으니, 교주가 드디어 허약해졌고 임읍도 그로써 피폐해졌다.
6호달의 조공
佛死,子胡達立,上疏貢金盤椀及金鉦等物。
불이 죽고 아들 호달이 서서, 소를 올리고 금 소반과 주발과 금 징 따위 물건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