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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 올리는 표帝王韻紀進呈引表

제왕운기 帝王韻紀 · 이승휴(李承休) · 1287년 (고려 충렬왕 13) · 단락 3 · 한자 367자 · 낭독 1.5분

「제왕운기」 상권 「지어 올리는 표」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반고에서 금나라까지, 단군에서 고려까지 — 동서 두 역사를 노래로 엮은 서사시. 「요동에 따로 한 천지가 있다」며 한국의 역사를 중국과 나란히 세우고, 단군을 한반도 모든 나라의 시조로 노래한 첫 역사책의 하나다. 저자가 손수 단 협주 197개가 함께 실려 있다.

1표제

帝王韻紀進呈引表.

제왕운기를 지어 올리는 인표(進呈引表).

2임금께 올리는 글

臣承休言. 臣謹編修, 帝王韻紀, 分爲兩卷, 繕寫以進者, 牛襟下士, 粗得曉於典墳, 螢燭末光, 期助明於日月. 臣承休, 誠惶誠恐頓首頓首. 恭惟我, 主上殿下, 於周爲盛, 于湯有光, 天妹爲妃, 夫豈三韓, 曾見龍樓成集? 實惟百代難聞, 萬世奇逢, 一時鍾在. 伏念, 臣陪先代遺弓之詔, 報中天昇日之祥, 因緣扈駕以西東, 除拜超階於華要. 自頂至踵, 洽然湛露淪身, 擢髮數恩, 行以淸絲補袞, 乃緣命薄, 返得身閑, 嗟無計於覩天, 喜祝齡之有地. 心歸佛隴, 目屬虯函, 萬軸明窓, 趂日志疲之消息, 九重丹禁, 恒春不老之光陰. 抑念, 唯玆不腆之文, 是我平生之業, 宜以蟲吟之無譜, 聊申鶴戀之有加. 遂乃古往今來, 皇傳帝受, 中朝, 則從盤古而至於金國, 東國, 則自檀君而洎我本朝, 肇起根源, 窮搜簡牘, 較異同而撮要, 仍諷詠以成章. 彼相承授受之興立, 如指諸掌, 凡肯搆云爲之取捨, 可灼於心. 伏望優推聖知, 無以人廢, 暫借离明之炤, 許垂乙夜之觀, 付外施行, 爲後勸誡. 臣誠惶誠恐頓首頓首, 謹言.

신 승휴가 아룁니다. 신이 삼가 《제왕운기》를 엮어 두 권으로 나누고 깨끗이 베껴 올리나이다. 소 옷깃만 한 하찮은 선비가 옛 전적을 대강 깨쳤기로, 반딧불 촛불의 끄트머리 빛으로나마 해와 달의 밝음을 돕고자 하나이다. 신 승휴는 참으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조아리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주나라보다 성하시고 탕왕보다 빛나시며, 하늘의 누이(원나라 공주)를 왕비로 맞으셨으니, 무릇 삼한이 언제 용루(龍樓)에 이런 경사가 모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나이까. 실로 백대에 듣기 어렵고 만세에 만나기 드문 일이 한때에 모인 것이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은 선대의 유궁(遺弓)의 조서를 모시고 하늘 가운데 해 오르는 상서를 아뢰어, 인연 따라 어가를 동서로 호종하고 화려하고 요긴한 자리에 등급을 뛰어 제수받았나이다.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이슬 같은 은혜가 흠뻑 몸에 스몄으니, 머리털을 다 뽑아 세어도 은혜를 다 셀 수 없어, 맑은 실로 곤룡포를 깁듯 갚으려 하였으나, 명이 얇은 탓에 도리어 몸이 한가해져, 하늘을 우러러 뵐 길 없음을 탄식하면서도 성수를 빌 땅이 있음을 기뻐하나이다.

마음은 불롱(佛隴)에 돌아가고 눈은 책 상자에 붙어, 밝은 창가 만 축의 책으로 지친 날을 삭이며, 구중 궁궐을 향해서는 늘 봄같이 늙지 않으실 세월을 비옵니다.

또 생각하옵건대 이 변변치 못한 글은 신의 평생의 업이라, 악보 없는 벌레 울음이나마 학이 님 그리는 정성을 더하여 아뢰옵니다. 이에 예로부터 지금까지 황제가 전하고 제왕이 받은 것을, 중국은 반고에서 금나라까지, 동국은 단군에서 우리 본조(고려)까지, 근원이 처음 일어난 데부터 서책을 샅샅이 뒤져 다르고 같음을 견주어 요점을 추리고, 이내 읊조려 노래를 이루었나이다. 저 서로 이어받아 일어선 자취가 손바닥 가리키듯 환하고, 무릇 이어 세운 일들의 취하고 버림이 마음에 밝게 드러날 것이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의 아심을 너그러이 미루시어 사람이 미천하다고 글까지 버리지 마시고, 잠시 이명(离明)의 비춤을 빌려 을야(乙夜)에 보아 주시는 은혜를 드리우시며, 바깥에 내려 시행하게 하시어 뒷사람의 권계로 삼게 하소서. 신은 참으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조아리며 삼가 아뢰나이다.

3지원 24년 3월

至元二十四年三月 日. 頭陀山居士臣李承休.

지원 이십사년(1287) 3월 일. 두타산 거사 신 이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