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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金祖名旻姓完顔

제왕운기 帝王韻紀 · 이승휴(李承休) · 1287년 (고려 충렬왕 13) · 단락 5 · 한자 70자 · 낭독 0.3분

「제왕운기」 상권 「금나라」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반고에서 금나라까지, 단군에서 고려까지 — 동서 두 역사를 노래로 엮은 서사시. 「요동에 따로 한 천지가 있다」며 한국의 역사를 중국과 나란히 세우고, 단군을 한반도 모든 나라의 시조로 노래한 첫 역사책의 하나다. 저자가 손수 단 협주 197개가 함께 실려 있다.

1완안씨의 금 태조

○金祖名旻姓完顔, 因敗遼軍初得志.

금 태조의 이름은 민(旻)이요 성은 완안이니, 요나라 군사를 깨뜨린 데서 처음 뜻을 얻었다.

협주 1

太祖虎元帝, 以遼天慶四年甲午, 敗遼軍於鴨江, 其明年乙未, 群臣 卽皇帝位. 以是年爲元, 我肅宗十一年也. 都上京, 土德. 至太宗會同三年, 卒平遼, 四年克宋. 至哀帝天興元年, 天兵圍汴. 帝奔歸德, 轉側至汝墳, 明年自焚而死. 自太祖至哀帝, 凡九主, 合一百一十八年. 傳之大元.

태조 무원제(武元帝·저본은 피휘로 虎元帝)다. 요나라 천경 사년 갑오에 압록강에서 요나라 군사를 깨뜨리고, 그 이듬해 을미에 뭇 신하의 추대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이해를 원년으로 삼으니 우리 숙종 11년(예종 10년의 잘못인 듯하나 저본대로 둔다)이다. 상경에 도읍했고 토덕이다. 태종 회동 삼년에 이르러 마침내 요를 평정하고, 4년에 송을 이겼다. 애제 천흥 원년에 이르러 하늘 군사(몽골군)가 변경을 에워싸자 황제는 귀덕으로 달아났다가 여분(汝墳)까지 흘러가 이듬해 스스로 불타 죽었다. 태조부터 애제까지 무릇 아홉 임금, 합하여 일백십팔 년이다. 대원(大元)에 전하였다.

2요를 평정하고 송을 이기다

平遼克宋遷都燕, 毛方尾域承頣指.

요를 평정하고 송을 이겨 연경으로 도읍을 옮기니, 털옷 입고 꼬리 튼 지역이 다 턱짓을 받들었다.

3만수신산

淸平日久事豪華, 萬壽神山聳蒼翠.

맑고 평안한 날이 오래되자 호화를 일삼으니, 만수신산(萬壽神山)이 푸르게 솟았다.

협주 1

章宗皇帝所築, 三十六洞也. 上有廣官宮, 內有王殿, 東有長朝殿, 南有元春殿, 今上國畢功. 臣奉使入朝, 侍宴三遊.

장종 황제가 쌓은 것으로 서른여섯 굴이 있다. 위에 광한궁이 있고 안에 옥전이 있으며, 동에 장조전, 남에 원춘전이 있는데 지금의 상국(원나라)이 공사를 마쳤다. 신이 사명을 받들고 입조하여 잔치를 모시며 세 번 노닐었다.

4평주에서 모인 정기

其先大史烏古剌, 山水平州鍾秀氣.

그 선조 대사(大史) 오고래는, 산과 물 좋은 평주(平州)에서 빼어난 기운을 모아 났다.

5우리 부모의 나라

故應謂我父母鄕, 結爲兄弟通信使.

그러므로 마땅히 우리를 부모의 고향이라 이르며, 형제를 맺어 신사(信使)를 통하였다.

협주 2

金人詩云, ‘燕地神仙窟, 三韓父母鄕.’ 蓋不忘本也.

금나라 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연 땅은 신선의 굴이요, 삼한은 부모의 고향이라」 하였으니, 대개 근본을 잊지 않은 것이다.

臣嘗爲式目執事, 閱都監文書, 偶得金國詔書二通. 其序皆云, ‘大金國皇帝, 寄書于高麗國皇帝云云.’ 此結兄弟之訂也.

신이 일찍이 식목도감의 집사가 되어 도감 문서를 열람하다가 우연히 금나라 조서 두 통을 얻었다. 그 첫머리에 다 이르기를 「대금국 황제가 고려국 황제에게 글을 부친다」 하였으니, 이것이 형제를 맺은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