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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후조선後朝鮮祖是箕子

제왕운기 帝王韻紀 · 이승휴(李承休) · 1287년 (고려 충렬왕 13) · 단락 4 · 한자 84자 · 낭독 0.3분

「제왕운기」 하권 「기자 — 후조선」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반고에서 금나라까지, 단군에서 고려까지 — 동서 두 역사를 노래로 엮은 서사시. 「요동에 따로 한 천지가 있다」며 한국의 역사를 중국과 나란히 세우고, 단군을 한반도 모든 나라의 시조로 노래한 첫 역사책의 하나다. 저자가 손수 단 협주 197개가 함께 실려 있다.

1후조선의 시조 기자

後朝鮮祖是箕子, 周虎元年己卯春, 逋來至此自立國, 周虎遙封降命綸.

후조선의 시조는 기자니, 주 무왕 원년 기묘년 봄에 도망해 이 땅에 와서 스스로 나라를 세우니, 주 무왕이 멀리서 봉하여 명을 내렸다. (武王의 武는 저본이 고려 혜종의 이름을 피해 虎로 적었다.)

2홍범구주를 묻다

禮難不謝乃入覲, 洪範九疇問彛倫 四十一代孫名準, 被人侵奪聊去民.

예로 보아 사례하지 않을 수 없어 들어가 뵈니, 홍범구주로 떳떳한 인륜을 물었다. 41대손의 이름은 준(準)이니, 남에게 침탈당하여 백성을 두고 떠났다.

협주 1

尙書疏云, ‘虎王, 箕子之囚, 箕子走之朝鮮立國. 虎王聞之因封焉. 箕子受封, 不得無臣禮, 因謝入覲, 虎王問洪範九疇, 在周之十三年也.’ 已下現於傳者, 皆不注.

《상서》 소(疏)에 이른다. 「무왕이 기자를 가두었던 것을 풀어 주자 기자는 조선으로 달아나 나라를 세웠다. 무왕이 듣고 그대로 봉하니, 기자는 봉함을 받고 신하의 예가 없을 수 없어 사례하러 들어가 뵈었고, 무왕이 홍범구주를 물으니 주나라 13년의 일이다.」 이 아래로 경전에 나타나는 것은 다 주를 달지 않는다.

3구백이십팔 년의 다스림

九百二十八年理, 遺風餘烈傳熙淳.

구백이십팔 년을 다스리니, 남긴 풍속과 공렬이 밝고 순후하게 전해졌다.

4금마군으로 옮긴 준왕

準乃移居金馬郡, 立都又復能君人.

준왕은 이에 금마군으로 옮겨 살며, 도읍을 세우고 다시 백성의 임금 노릇을 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