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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려기 — 궁예後高麗紀

제왕운기 帝王韻紀 · 이승휴(李承休) · 1287년 (고려 충렬왕 13) · 단락 9 · 한자 144자 · 낭독 0.6분

「제왕운기」 하권 「후고려기 — 궁예」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반고에서 금나라까지, 단군에서 고려까지 — 동서 두 역사를 노래로 엮은 서사시. 「요동에 따로 한 천지가 있다」며 한국의 역사를 중국과 나란히 세우고, 단군을 한반도 모든 나라의 시조로 노래한 첫 역사책의 하나다. 저자가 손수 단 협주 197개가 함께 실려 있다.

1후고려기

後高麗紀

후고려기(後高麗紀·궁예의 나라).

2쫓겨난 왕자

羅王景文生庶子, 齒有兩重含付聲, 相是害君乃放逐, 托跡浮圖潛遊行.

신라 경문왕이 서자를 낳으니, 이가 두 겹으로 나고 울음에 이상한 소리가 섞였다. 상 보는 이가 「임금을 해칠 상」이라 하여 내쫓으니, 중의 무리에 몸을 붙여 숨어 떠돌았다.

3까마귀가 떨군 왕 자

捿興敎寺 邏齋去, 時以應鉢手中擎, 有烏含落是器中, 王字鏤在黃牙柱.

흥교사에 깃들어 재(齋)를 돌러 다닐 때, 바리때를 손에 받쳐 들었더니, 까마귀가 문 것을 그 그릇에 떨어뜨렸는데, 누런 상아 산가지에 왕(王) 자가 새겨져 있었다.

협주 1

古之善達寺也, 或云浮石寺, 以國史爲定.

옛날의 선달사니, 혹은 부석사라고도 한다. 《국사》를 기준으로 삼는다.

4간사한 싹을 감추다

中心自奇秘不出, 方寸益復藏姦萌.

마음속으로 기이하게 여겨 숨기고 내지 않으니, 가슴속에 간사한 싹을 더욱 깊이 감추었다.

5선종에서 궁예로

名本善宗改弓裔, 投北原 賊梁吉兵.

이름은 본디 선종(善宗)이었다가 궁예로 고치니, 북원의 도적 양길의 군사에 몸을 던졌다.

협주 2

今原州也.

지금의 원주다.

吉委任, 故傳其兵.

양길이 맡겨 부렸으므로 그 군사를 넘겨받게 되었다.

6후고려를 일컫다

唐佋大順元庚戌, 稱後高麗立王旌.

당 소종 대순 원년 경술에, 후고려를 일컫고 왕의 깃발을 세웠다.

7금성에서 철원으로

初屯金城日闢土, 轉宅鐵郡新開京.

처음 금성(김화)에 진 치고 날로 땅을 넓히더니, 철원 고을로 자리를 옮겨 새로 서울을 열었다.

8정명 4년 무인까지

至梁貞明四戊寅.

양나라 정명 사년 무인에 이르니,

9우리 태조를 위해 백성을 몰아 주다

二十有八年光更, 莫愧邇來尤暴恣, 爲 我太祖驅蒼生.

스물여덟 해 만에 빛이 바뀌었다. 요사이 더욱 포악하고 방자했음을 부끄러워 말라, 우리 태조를 위해 백성을 몰아다 준 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