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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 견훤加恩縣人阿慈介

제왕운기 帝王韻紀 · 이승휴(李承休) · 1287년 (고려 충렬왕 13) · 단락 8 · 한자 168자 · 낭독 0.7분

「제왕운기」 하권 「후백제 — 견훤」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반고에서 금나라까지, 단군에서 고려까지 — 동서 두 역사를 노래로 엮은 서사시. 「요동에 따로 한 천지가 있다」며 한국의 역사를 중국과 나란히 세우고, 단군을 한반도 모든 나라의 시조로 노래한 첫 역사책의 하나다. 저자가 손수 단 협주 197개가 함께 실려 있다.

1새가 덮고 범이 젖 먹이다

加恩縣人阿慈介, 生得一兒業農圃, 置向田頭夫婦耘, 鳥來舒覆虎來乳.

가은현 사람 아자개가, 아이 하나를 낳고 농사를 업으로 삼았는데, 밭머리에 뉘어 두고 부부가 김을 매면, 새가 와서 날개를 펴 덮고 범이 와서 젖을 먹였다.

2재주가 무리에서 빼어나다

旣壯仕羅詣行間, 才力離倫性雄虎.

장성하여 신라에 벼슬해 군진에 나아가니, 재주와 힘이 무리에서 빼어나고 성품이 웅건하고 굳세었다.

3이씨 견훤

姓本是李名甄萱, 承命出向南方戍.

성은 본디 이씨요 이름은 견훤이니, 명을 받아 남방 수자리로 나아갔다.

4무진성에 깃발을 세우다

潛含大志伺時便, 啗士誘民常吐哺, 唐佋景福元壬子, 據虎珍城 初樹羽.

가만히 큰 뜻을 품고 때의 편의를 엿보며, 선비를 먹이고 백성을 달래 늘 입안의 밥을 뱉어 맞으니, 당 소종 경복 원년 임자에, 무진성(광주)에 웅거하여 처음 깃발을 세웠다. (武珍城의 武는 저본이 피휘하여 虎珍城으로 적었다.)

협주 1

今光州也.

지금의 광주다.

5아들 신검이 아비를 가두다

兵强氣銳恣橫行, 名後百濟四十五, 有子不良將奈何, 其名神劍乃幽父.

군사는 강하고 기세는 날카로워 마음껏 횡행하니, 후백제라 이름한 것이 마흔다섯 해. 아들이 어질지 못하니 장차 어찌하랴, 그 이름 신검이 곧 아비를 가두었다.

6금산사를 벗어나 우리 태조께

金山佛殿戶誰開, 泰華千里當寸步, 淸泰三年丙申春, 偸渡碧江歸 我祖.

금산사 불전의 문을 누가 열었던가, 태산 화산 같은 천 리를 한 걸음같이 여겨, 청태 삼년 병신년 봄에, 푸른 강을 몰래 건너 우리 태조께 돌아왔다.

7왕의 예로 위로하다

對以王禮慰於朝, 往討賊子尸諸路.

왕의 예로 대하여 조정에서 위로하고, 가서 도적 아들을 쳐 길가에 목을 늘어놓았다.

8피를 토하며 죽다

臨薨歐血那可追, 美矣羅王知去就.

죽음에 임해 피를 토했으니 어찌 돌이키랴. 아름답도다, 신라 왕이 거취를 알았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