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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실의 뿌리自古受命君, 孰不非常類

제왕운기 帝王韻紀 · 이승휴(李承休) · 1287년 (고려 충렬왕 13) · 단락 18 · 한자 263자 · 낭독 1.1분

「제왕운기」 하권 「고려 왕실의 뿌리」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반고에서 금나라까지, 단군에서 고려까지 — 동서 두 역사를 노래로 엮은 서사시. 「요동에 따로 한 천지가 있다」며 한국의 역사를 중국과 나란히 세우고, 단군을 한반도 모든 나라의 시조로 노래한 첫 역사책의 하나다. 저자가 손수 단 협주 197개가 함께 실려 있다.

1본조 군왕 세계 연대

本朝君王世系年代

본조 군왕 세계 연대(本朝君王世系年代).

협주 1

凡七百言.

무릇 칠백 마디다.

2천명 받은 임금들

自古受命君, 孰不非常類.

예로부터 천명을 받은 임금이, 뉘라서 예사롭지 않은 부류 아니랴.

3우리 황가의 계통

惟我皇家系, 於此尤奇異.

오직 우리 황가의 계통은, 여기서 더욱 기이하다.

4잠룡 시절의 당 숙종

唐肅潛龍時, 遊賞東山水.

당 숙종이 잠룡이던 시절, 동방의 산수를 유람하다가,

5송악 기슭에 묵다

禮彼八眞仙, 寄宿松山趾.

저 여덟 진선(眞仙)에 예를 갖추고, 송악산 기슭에서 자고 갔다.

협주 1

唐書曰, “肅宗少封忠王.” 本朝學士洪瓘, 所撰世紀曰, “唐忠王, 遊松岳山, 禮八眞仙, 宿養子洞居士寶育家.” 則肅宗來遊明矣. 又按本紀, “龍王謂景康曰, ‘欲西去大唐, 見天子之父乎?’” 則英驗已著. 或以唐書無明文爲難者, 過矣. 且唐之史臣, 豈以副君潛遊外國之事, 筆之於矯書之文耶? 無明文, 理然.

《당서》에 「숙종은 젊어서 충왕에 봉해졌다」 한다. 본조 학사 홍관이 지은 《세기》에 「당 충왕이 송악산에 노닐며 여덟 진선에 예를 갖추고, 양자동 거사 보육의 집에서 잤다」 하였으니 숙종이 와서 노닌 것이 분명하다. 또 《본기》를 살피면 「용왕이 경강에게 이르기를 〈서쪽 대당으로 가서 천자인 아버지를 뵙고자 하는가?〉 하였다」 하니 영험이 이미 드러났다. 혹 《당서》에 명문이 없다고 트집 잡는 자는 지나치다. 또 당나라 사관이 어찌 부군(副君)이 몰래 외국에 노닌 일을 나라의 글에 적었으랴. 명문이 없음이 이치에 그러하다.

6성골장군의 후손

聖骨將軍 孫, 有女賢而美.

성골장군의 후손에, 어질고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협주 2

諱虎景, 今九龍山天王也. 初自白頭山率九人, 遊獵而來. 因獵而宿於山穴, 有虎來吼而不去. 十人議曰, “此必有由.” 各持衣物投之, 則虎受將軍之衣. 將軍出, 而穴陷, 九人同沒. 虎變爲女曰, “我寡居此山, 願與君同理神政.” 因婚而爲神. 由是, 名虎景, 而山名九龍. 蓋本山精也.

휘는 호경(虎景)이니 지금의 구룡산 천왕이다. 처음 백두산에서 아홉 사람을 거느리고 사냥하며 왔다. 사냥길에 산굴에서 자는데 범이 와서 울부짖으며 가지 않았다. 열 사람이 의논하기를 「반드시 까닭이 있다」 하고 저마다 옷가지를 던지니, 범이 장군의 옷을 받았다. 장군이 나가자 굴이 무너져 아홉 사람이 함께 묻혔다. 범이 여인으로 변해 말하기를 「나는 이 산에 홀로 사는 몸이니, 그대와 함께 신의 정사를 다스리고 싶다」 하고 혼인하여 신이 되었다. 이로써 이름을 호경이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이라 하니, 대개 본디 산의 정령이다.

諱辰義, 諡貞和王后. 父元德大王, 諱寶育. 祖松岳郡沙粲諱康忠. 曾祖聖骨將軍也. 母諱德周, 外祖沙粲, 長子諱伊帝建也.

휘는 진의(辰義)요 시호는 정화왕후다. 아버지는 원덕대왕 휘 보육이요, 할아버지는 송악군 사찬 휘 강충이요, 증조는 성골장군이다. 어머니는 휘 덕주니, 외조는 사찬으로 그 맏아들 휘가 이제건이다.

7활 잘 쏘는 작제건

遂合生景康, 善射無倫比.

드디어 합하여 경강(작제건)을 낳으니, 활 잘 쏘기 견줄 이가 없었다.

협주 1

大王諱, 作帝建.

대왕의 휘는 작제건이다.

8바다 가운데 멈춘 배

欲覲天子父, 寄達商人艤, 及至海中央, 舟乃旋流止.

천자인 아버지를 뵈려고, 상인의 배에 몸을 부쳤는데, 바다 한가운데 이르자, 배가 곧 맴돌며 멈추었다.

9외딴 바위에 내리다

商人怪其然, 且卜而且議, 扶出置孤巖, 舟行如過鷙.

상인들이 괴이히 여겨, 점도 치고 의논도 하더니, 부축해 내어 외딴 바위에 두자, 배가 사나운 새 지나가듯 내달렸다.

10용왕의 하소연

尋卽龍王出, 披誠陳所以, 爰有老野狐, 時時忽來此, 詐現佛威儀, 妖經紛說似, 我卽發頭痛, 此患難堪矣.

이윽고 용왕이 나와, 정성을 펴며 까닭을 아뢰었다. 「여기 늙은 들여우가 있어, 때때로 문득 이곳에 와서, 부처의 위의를 거짓으로 나투고, 요사한 경을 어지러이 설법하는 시늉을 하니, 나는 그만 머리가 아파, 이 근심을 견딜 수가 없소.」

11신궁을 당겨 다오

願子彈神弓, 爲我而除彼.

「원컨대 그대가 신궁(神弓)을 당겨, 나를 위해 저것을 없애 주오.」

12화살 한 대

果如其所云, 斃之以一矢.

과연 그 말대로 나타나니, 화살 한 대로 거꾸러뜨렸다.

13용왕의 맏사위

龍王復出謝, 引入深宮裏, 遂妻以長女, 乞與金毛豕, 兼以七寶隨, 載送西江涘, 還來松岳居.,

용왕이 다시 나와 사례하고, 깊은 궁 안으로 맞아들여, 드디어 맏딸로 아내를 삼게 하고, 달라는 대로 금털 돼지를 주었으며, 일곱 보배까지 딸려, 서강 물가에 실어 보내니, 돌아와 송악에 살았다.

협주 3

是爲景獻王后, 生四子二女, 其長子, 我世祖是也.

이가 경헌왕후(용녀)니 아들 넷과 딸 둘을 낳았다. 그 맏아들이 우리 세조다.

今祠堂在焉, 親幸所也.

지금 사당이 있으니 임금이 몸소 거둥하는 곳이다.

今廣明寺也.

지금의 광명사다.

14기장 밭과 왕씨

於焉誕聖智, 聖母 命詵師, 指此明堂謂, 斯爲種穄田, 因以爲王氏.

이에 성스럽고 슬기로운 이가 태어나니, 성모(聖母)가 도선 국사에게 명하여, 이 명당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기장(穄)을 심을 밭이라」 하니, 그로써 왕씨(王氏)로 성을 삼았다.

협주 2

智異山天王也

지리산 천왕이다.

俗呼穄爲王, 蓋言興王業也. 史臣曰, “自古聖人, 不係本宗, 而以德, 立姓者, 尙矣. 如帝舜之本, 姚氏, 而興於潙汭, 姓嬀, 光耿之本, 孟氏, 而指李, 爲姓, 仲尼之本, 子氏, 而母感乙鳥, 兼以取明爲孔者. 是也, 今亦然歟.”

세속에서 기장(穄)을 「왕」이라 부르니, 대개 왕업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사신이 말하기를 「예로부터 성인이 본디 종족에 매이지 않고 덕으로 성을 세운 일은 오래다. 순임금은 본디 요씨인데 규수 물가에서 일어나 성이 규씨가 되었고, 광경(光耿·노자를 이르는 듯)은 본디 맹씨인데 오얏나무를 가리켜 성으로 삼았고, 공자는 본디 자씨인데 어머니가 제비에 감응하고 아울러 밝음을 취해 공(孔)으로 삼았다. 지금도 그러한 것인가」 하였다.

15세조와 궁예

世祖 於羅時, 金城承錦寄, 弓裔自北原, 開國於是地.

세조는 신라 시절에, 금성(金城)에서 비단으로 부치는 글을 받았는데, 궁예가 북원으로부터 와서, 이 땅에 나라를 열었다.

협주 1

諱隆, 小宗龍建.

휘는 융(隆)이요, 어릴 적 이름은 용건이다.

16철원으로 옮긴 도읍

移都鐵原郡.

도읍을 철원군으로 옮겼다.

협주 1

今東州也. 臣嘗守是州, 而再遊金城, 二邑人歷歷傳說.

지금의 동주다. 신이 일찍이 이 고을을 지키며 금성에 두 번 노닐었는데, 두 고을 사람들이 역력히 전해 말한다.

17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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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본의 이 자리에는 글자 없이 마침표만 있다.)

18궁예의 조정에 벼슬하다

官人以百揆, 因仕裔之朝.

벼슬아치로 백규(百揆)의 자리에 올라, 그대로 궁예의 조정에 벼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