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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론莊子 內篇 齊物論

장자 莊子 · 장주(莊周)와 뒷사람들 · 전국시대(기원전 4~3세기) · 서진 곽상 33편본 · 단락 12 · 한자 3,182자 · 낭독 12.7분

「장자」 내편 「제물론」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북녘 검은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이름을 곤이라 한다」 — 이 한 줄로 시작해, 등이 몇천 리인지 알 수 없는 새가 남녘 바다로 날아가는 데서 책이 열린다. 나비 꿈을 꾸고 깨어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것인가」 묻고, 소 잡는 백정이 열아홉 해 동안 칼을 갈지 않고, 아내가 죽자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한다. 달팽이 뿔 위에서 나라끼리 싸워 주검 수만이 넘어졌다는 이야기로 전쟁을 그치게 하고, 혜자의 무덤을 지나며 「나는 더불어 말할 이가 없다」 한다. 도덕경과 나란히 두면 같은 자리를 아주 다른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린다.

1땅의 퉁소와 하늘의 퉁소 — 나는 나를 잃었다

南郭子綦隱几而坐,仰天而嘘,嗒焉似喪其耦。顏成子游立侍乎前,曰:「何居乎?形固可使如槁木,而心固可使如死灰乎?今之隱几者,非昔之隱几者也。」子綦曰:「偃,不亦善乎,而問之也!今者吾喪我,汝知之乎?汝聞人籟而未聞地籟,汝聞地籟而未聞天籟夫!」子游曰:「敢問其方。」子綦曰:「夫大塊噫氣,其名爲風。是唯无作,作則萬竅怒呺。而獨不聞之翏翏乎?山林之畏隹,大木百圍之竅穴,似鼻,似口,似耳,似枅,似圈,似臼,似洼者,似汙者;激者,謞者,叱者,吸者,叫者,譹者,宎者,咬者,前者唱于而隨者唱喁,泠風則小和,飄風則大和,厲風濟則衆竅爲虚。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子游曰:「地籟則衆竅是已,人籟則比竹是已。敢問天籟。」子綦曰:「夫吹萬不同,而使其自己也。咸其自取,怒者其誰邪!」

남곽자기가 안석에 기대어 앉아 하늘을 우러러 숨을 내쉬는데, 멍하니 제 짝을 잃은 듯하였다. 안성자유가 앞에 서서 모시다가 말하였다. "어찌 된 일입니까. 몸을 참으로 마른나무처럼 만들 수 있고, 마음을 참으로 식은 재처럼 만들 수 있습니까. 지금 안석에 기댄 분은 예전에 안석에 기대던 분이 아닙니다."

자기가 말하였다. "언아, 참 잘 물었구나. 지금 나는 나를 잃었는데 너는 그것을 아느냐. 너는 사람의 퉁소는 들었어도 땅의 퉁소는 듣지 못하였고, 땅의 퉁소는 들었어도 하늘의 퉁소는 듣지 못하였구나."

자유가 말하였다. "감히 그 방도를 여쭙습니다."

자기가 말하였다. "저 큰 덩이가 뿜어내는 기운을 바람이라 한다. 이것은 일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면 온갖 구멍이 성내어 울부짖는다. 너는 저 윙윙 소리를 듣지 못하였느냐.

산과 숲이 우뚝하고, 백 아름 큰 나무의 구멍들은 코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두공 같고 잔 같고 절구 같고 웅덩이 같고 물웅덩이 같다. 부딪치는 소리, 씽씽 소리, 꾸짖는 소리, 들이마시는 소리, 부르짖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깊은 소리, 물어뜯는 소리가 난다. 앞의 것이 '우' 하고 부르면 뒤의 것이 '우' 하고 따른다. 산들바람이면 작게 화답하고 회오리바람이면 크게 화답하며, 거센 바람이 그치면 온갖 구멍이 텅 빈다. 너는 저 나뭇가지가 흔들흔들 살랑살랑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

자유가 말하였다. "땅의 퉁소란 온갖 구멍이요, 사람의 퉁소란 대나무를 늘어놓은 것이겠지요. 감히 하늘의 퉁소를 여쭙습니다."

자기가 말하였다. "만 가지로 불어 대되 저마다 제 스스로 그리 되게 한다. 다 제 스스로 취하는 것이니, 성내게 하는 자가 그 누구겠느냐."

2참 주인이 있는가

大知閑閑,小知間間;大言炎炎,小言詹詹。其寐也魂交,其覺也形開,與接爲構,日以心鬬。縵者,窖者,密者。小恐惴惴,大恐縵縵。其發若機栝,其司是非之謂也;其留如詛盟,其守勝之謂也;其殺如秋冬,以言其日消也;其溺之所爲之,不可使復之也;其厭也如緘,以言其老洫也。近死之心,莫使復陽也。喜怒哀樂,慮嘆變慹,姚佚啓態,樂出虚,蒸成菌。日夜相代乎前,而莫知其所萌。已乎,已乎!旦暮得此,其所由以生乎!非彼无我,非我无所取,是亦近矣,而不知其所爲使。若有真宰,而特不得其朕,可行已信,而不見其形,有情而无形。百骸、九竅、六藏,賅而存焉,吾誰與爲親?汝皆悅之乎?其有私焉?如是,皆有爲臣妾乎?其臣妾不足以相治乎?其遞相爲君臣乎?其有真君存焉。如求得其情與不得,无益損乎其真。一受其成形,不亡以待盡,與物相刃相靡,其行盡如馳,而莫之能止,不亦悲乎!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可不哀邪!人謂之不死,奚益!其形化,其心與之然,可不謂大哀乎?人之生也,固若是芒乎?其我獨芒,而人亦有不芒者乎?夫隨其成心而師之,誰獨且无師乎?奚必知代而心自取者有之?愚者與有焉。未成乎心而有是非,是今日適越而昔至也,是以无有爲有。无有爲有,雖有神禹,且不能知,吾獨且奈何哉!

큰 앎은 너그럽고 작은 앎은 잗달다. 큰 말은 담박하고 작은 말은 수다스럽다.

잠들면 넋이 얽히고 깨면 몸이 열려, 닿는 것마다 얽혀 날마다 마음으로 싸운다. 느긋한 자, 깊이 숨긴 자, 촘촘한 자가 있다. 작은 두려움에는 벌벌 떨고 큰 두려움에는 넋을 놓는다.

쏘아 나가는 것이 쇠뇌의 오늬 같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가려 대는 것을 말한다. 머무는 것이 맹세한 듯하다는 것은 이김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시들어 가는 것이 가을 겨울 같다는 것은 날로 스러짐을 말한다. 빠져든 짓은 되돌릴 수 없고, 막혀 버린 것이 봉해 놓은 듯하다는 것은 늙어 파여 간다는 말이다. 죽음에 가까운 마음은 무엇으로도 다시 살릴 수 없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근심과 한탄, 변덕과 두려움, 들뜸과 방자함과 꾸밈이 있다. 음악이 빈 데서 나오고 버섯이 김에서 돋듯이, 밤낮으로 앞에서 갈마드는데 어디서 싹트는지 알지 못한다.

그만두자, 그만두자. 아침저녁으로 이것을 얻으니, 이것이 말미암아 사는 바인가.

저것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취할 데가 없다. 이것도 가깝기는 하나 무엇이 그렇게 시키는지 알지 못한다. 참 주재자가 있는 듯하나 그 자취를 얻을 수 없다. 미더이 행하여지되 그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실상은 있으나 모습이 없다.

백 개의 뼈마디와 아홉 구멍과 여섯 장부가 갖추어 있는데 나는 어느 것과 친하겠는가. 너는 다 좋아하는가, 아니면 치우쳐 아끼는 데가 있는가. 그렇다면 다 신하와 첩이 되는가. 그 신하와 첩끼리는 서로 다스리지 못하는가. 아니면 번갈아 임금과 신하가 되는가. 참 임금이 거기 있는 것인가. 그 실상을 찾아 얻든 얻지 못하든 그 참됨에는 더하고 덜함이 없다.

한번 이루어진 몸을 받으면 죽지 않고 다함을 기다린다. 사물과 서로 베고 서로 갈리며 달리듯 나아가 멈추지 못하니 또한 슬프지 않은가. 한평생 애쓰고도 그 이룸을 보지 못하고, 지쳐 늘어져 돌아갈 데를 알지 못하니 애처롭지 않은가. 사람들이 죽지 않았다 한들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그 몸이 바뀌면 마음도 따라 그러하니 큰 슬픔이라 하지 않겠는가.

사람의 삶이란 본디 이렇게 어두운 것인가. 나만 홀로 어둡고 남에게는 어둡지 않은 이도 있는가.

제 이루어진 마음을 좇아 스승으로 삼는다면 누군들 스승이 없겠는가. 어찌 반드시 갈마듦을 알아 마음으로 스스로 취하는 이에게만 있겠는가. 어리석은 이에게도 있다. 마음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옳고 그름이 있다는 것은, 오늘 월나라로 떠나 어제 다다랐다는 말이다. 이는 없는 것을 있다 하는 것이다. 없는 것을 있다 하면 신령한 우임금이라도 알 수 없을 터인데 내가 홀로 어찌하겠는가.

협주 1

一作「薾」

苶 — 판본에 따라 「薾」로 쓴다

3저것과 이것 — 도의 지도리

夫言非吹也,言者有言,其所言者特未定也。果有言邪?其未嘗有言邪?其以爲異於鷇音,亦有辯乎?其无辯乎?道惡乎隱而有真僞?言惡乎隱而有是非?道惡乎往而不存?言惡乎存而不可?道隱於小成,言隱於榮華。故有儒墨之是非,以是其所非而非其所是。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則莫若以明。物无非彼,物无非是。自彼則不見,自知則知之。故曰:彼出於是,是亦因彼。彼、是,方生之說也。雖然,方生方死,方死方生;方可方不可,方不可方可;因是因非,因非因是。是以聖人不由,而照之于天,亦因是也。是亦彼也,彼亦是也。彼亦一是非,此亦一是非。果且有彼是乎哉?果且无彼是乎哉?彼是莫得其偶,謂之道樞。樞始得其環中,以應无窮。是亦一无窮,非亦一无窮也。故曰「莫若以明」。

말이란 바람 부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이에게는 말이 있다. 다만 그 말하는 바가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과연 말이 있는 것인가, 아직 말이 있은 적이 없는 것인가. 그것이 갓 깬 새 소리와 다르다 여긴다면, 가름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도는 어디에 가려져 참과 거짓이 생겼는가. 말은 어디에 가려져 옳고 그름이 생겼는가. 도가 어디로 간들 있지 않겠으며, 말이 어디에 있은들 안 될 것이 있겠는가. 도는 작은 이룸에 가려지고 말은 화려함에 가려진다. 그래서 유가와 묵가의 옳고 그름이 있어, 저쪽이 그르다는 것을 옳다 하고 저쪽이 옳다는 것을 그르다 한다. 저쪽이 그르다는 것을 옳다 하고 저쪽이 옳다는 것을 그르다 하려면, 밝음으로 비추는 것만 못하다.

사물에는 저것 아닌 것이 없고 이것 아닌 것이 없다. 저쪽에서 보면 보이지 않고 스스로 알면 안다. 그러므로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 또한 저것에 말미암는다 한다. 저것과 이것은 함께 난다는 말이다.

그렇다 해도, 나면서 곧 죽고 죽으면서 곧 나며, 되면서 곧 안 되고 안 되면서 곧 된다. 옳음에 말미암아 그름이 있고 그름에 말미암아 옳음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 길로 가지 않고 하늘에 비추어 본다. 이 또한 그러함에 말미암는 것이다.

이것 또한 저것이요 저것 또한 이것이다. 저것에도 하나의 시비가 있고 이것에도 하나의 시비가 있다. 과연 저것과 이것이 있는 것인가, 과연 저것과 이것이 없는 것인가. 저것과 이것이 서로 짝을 얻지 못하는 자리를 도의 지도리라 한다. 지도리가 비로소 고리의 한가운데를 얻어 끝없음에 맞선다. 옳음도 하나의 끝없음이요 그름도 하나의 끝없음이다. 그러므로 「밝음으로 비추는 것만 못하다」 한 것이다.

4조삼모사 — 도는 통하여 하나다

以指喻指之非指,不若以非指喻指之非指也;以馬喻馬之非馬,不若以非馬喻馬之非馬也。天地一指也,萬物一馬也。可乎可,不可乎不可。道行之而成,物謂之而然。惡乎然?然於然。惡乎不然?不然於不然。物固有所然,物固有所可。无物不然,无物不可。故爲是舉莛與楹,厲與西施,恢恑憰怪,道通爲一。其分也,成也;其成也,毀也。凡物无成與毀,復通爲一。唯達者知通爲一,爲是不用而寓諸庸。庸也者,用也;用也者,通也;通也者,得也。適得而幾矣,因是已。已而不知其然,謂之道。勞神明爲一而不知其同也,謂之朝三。何謂朝三?曰:狙公賦芧,曰:「朝三而暮四。」衆狙皆怒。曰:「然則朝四而暮三。」衆狙皆悅。名實未虧而喜怒爲用,亦因是也。是以聖人和之以是非而休乎天均,是之謂兩行。

손가락으로 손가락이 손가락 아님을 밝히는 것은, 손가락 아닌 것으로 손가락이 손가락 아님을 밝히는 것만 못하다. 말로 말이 말 아님을 밝히는 것은, 말 아닌 것으로 말이 말 아님을 밝히는 것만 못하다. 천지도 하나의 손가락이요 만물도 하나의 말이다.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도는 걸어가서 이루어지고 사물은 일컬어서 그리 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그러함에서 그러하다. 어찌하여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음에서 그렇지 않다. 사물에는 본디 그러한 바가 있고 본디 되는 바가 있다. 그렇지 않은 사물이 없고 안 되는 사물이 없다.

그러므로 가는 풀줄기와 큰 기둥, 문둥이와 서시, 야릇하고 괴이한 것들을 들어 보아도 도는 통하여 하나가 된다. 나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이루어지는 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무릇 사물에는 이룸도 무너짐도 없이 다시 통하여 하나가 된다. 오직 통달한 이라야 통하여 하나임을 알아, 이 때문에 쓰지 않고 여느 쓰임에 맡긴다. 여느 쓰임이란 쓰임이요, 쓰임이란 통함이요, 통함이란 얻음이다. 얻는 데 이르면 거의 다한 것이니, 그러함에 말미암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줄을 모르는 것을 도라 한다.

정신을 괴롭혀 하나로 만들려 하면서 그것이 본디 같은 줄을 모르는 것을 조삼(朝三)이라 한다. 조삼이란 무엇인가. 원숭이 치는 이가 도토리를 나누어 주며 "아침에 셋 저녁에 넷" 하니 원숭이들이 다 성을 냈다.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 하니 원숭이들이 다 기뻐하였다. 이름과 실상이 이지러지지 않았는데 기쁨과 노여움이 갈렸으니 이 또한 그러함에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옳고 그름을 아울러 하늘의 고름에 쉰다. 이를 두 길로 함께 감(兩行)이라 한다.

5이룸과 이지러짐

古之人,其知有所至矣。惡乎至?有以爲未始有物者,至矣,盡矣,不可以加矣。其次以爲有物矣而未始有封也,其次以爲有封焉而未始有是非也。是非之彰也,道之所以虧也。道之所以虧,愛之所以成。果且有成與虧乎哉?果且无成與虧乎哉?有成與虧,故昭氏之鼓琴也;无成與虧,故昭氏之不鼓琴也。昭文之鼓琴也,師曠之枝策也,惠子之據梧也,三子之知幾乎,皆其盛者也,故載之末年。唯其好之也,以異於彼,其好之也,欲以明之彼。非所明而明之,故以堅白之昧終。而其子又以文之綸終,終身无成。若是而可謂成乎,雖我亦成也;若是而不可謂成乎,物與我无成也。是故滑疑之耀,聖人之所圖也。爲是不用而寓諸庸,此之謂以明。

옛사람은 그 앎이 지극한 데가 있었다. 어디까지 지극하였는가. 아직 사물이 있은 적이 없다고 여긴 이가 있었으니, 지극하고 다하여 더할 수 없다. 그다음은 사물이 있으나 아직 경계가 있은 적이 없다고 여겼다. 그다음은 경계가 있으나 아직 옳고 그름이 있은 적이 없다고 여겼다.

옳고 그름이 드러남은 도가 이지러지는 까닭이다. 도가 이지러짐은 치우쳐 아낌이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과연 이룸과 이지러짐이 있는가, 과연 이룸과 이지러짐이 없는가. 이룸과 이지러짐이 있다는 것은 소씨가 거문고를 타는 것이요, 이룸과 이지러짐이 없다는 것은 소씨가 거문고를 타지 않는 것이다.

소문이 거문고를 타고 사광이 지팡이를 짚고 혜자가 오동나무에 기대던 것, 세 사람의 앎이 거의 지극하여 다 그 성한 이들이었으므로 만년까지 이름이 실렸다. 오직 그들이 좋아한 것을 남과 달리하려 하였고, 좋아한 것을 남에게 밝히려 하였다. 밝힐 바가 아닌 것을 밝히려 한 까닭에 굳음과 흼의 어두움으로 마쳤다. 그 아들 또한 아비의 실마리로 마쳐 한평생 이룬 것이 없었다.

이런 것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면 나 또한 이룬 것이요, 이런 것을 이루었다 할 수 없다면 사물도 나도 이룬 것이 없다. 그러므로 헷갈리게 하는 번쩍임은 성인이 물리치는 바다. 이 때문에 쓰지 않고 여느 쓰임에 맡기니, 이를 밝음으로 비춘다 한다.

6천지는 나와 나란히 났다

今且有言於此,不知其與是類乎?其與是不類乎?類與不類,相與爲類,則與彼无以異矣。雖然,請嘗言之。有始也者,有未始有始也者,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有有也者,有无也者,有未始有无也者,有未始有夫未始有无也者。俄而有无矣,而未知有无之果孰有孰无也。今我則已有謂矣,而未知吾所謂之,其果有謂乎?其果无謂乎?天下莫大於秋豪之末,而太山爲小;莫壽乎殤子,而彭祖爲夭。天地與我並生,而萬物與我爲一。既已爲一矣,且得有言乎?既已謂之一矣,且得无言乎?一與言爲二,二與一爲三。自此以往,巧歷不能得,而況其凡乎!故自无適有,以至於三,而況自有適有乎!无適焉,因是已。

이제 여기에 말이 있다 하자. 그것이 옳음과 한 무리인지 한 무리가 아닌지 알지 못한다. 무리이든 무리가 아니든 서로 무리가 되고 나면 저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 해도 한번 말해 보자.

비롯함이 있고, 아직 비롯함이 있은 적이 없음이 있고, 아직 「비롯함이 있은 적이 없음」이 있은 적이 없음이 있다. 있음이 있고, 없음이 있고, 아직 없음이 있은 적이 없음이 있고, 아직 「없음이 있은 적이 없음」이 있은 적이 없음이 있다. 문득 있음과 없음이 생겼으나, 있음과 없음 가운데 어느 것이 있고 어느 것이 없는지 알지 못한다.

이제 나는 이미 말한 바가 있으나, 내가 말한 바가 과연 말한 것인지 과연 말하지 않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천하에 가을 터럭 끝보다 큰 것이 없고 태산이 작으며, 갓난아이로 죽은 이보다 오래 산 이가 없고 팽조가 일찍 죽었다. 천지는 나와 나란히 났고 만물은 나와 하나다.

이미 하나가 되었다면 또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미 하나라고 일컬었다면 또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나와 말이 둘이 되고 둘과 하나가 셋이 된다. 이로부터 나아가면 셈 잘하는 이도 얻지 못할 터인데 하물며 여느 사람이겠는가. 없음에서 있음으로 가도 셋에 이르는데 하물며 있음에서 있음으로 감이겠는가. 나아가지 말고 그러함에 말미암을 뿐이다.

7말하지 않는 가림 — 보광(葆光)

夫道未始有封,言未始有常,爲是而有畛也,請言其畛:有左、有右,有倫、有義,有分、有辯,有競、有爭,此之謂八德。六合之外,聖人存而不論;六合之內,聖人論而不議。《春秋》經世,先王之志,聖人議而不辯。故分也者,有不分也;辯也者,有不辯也。曰:何也?聖人懷之,衆人辯之以相示也,故曰:辯也者,有不見也。夫大道不稱,大辯不言,大仁不仁,大廉不嗛,大勇不忮。道昭而不道,言辯而不及,仁常而不成,廉清而不信,勇忮而不成,五者园而幾向方矣。故知止其所不知,至矣。孰知不言之辯,不道之道?若有能知,此之謂天府。注焉而不滿,酌焉而不竭,而不知其所由來,此之謂葆光。

도는 아직 경계가 있은 적이 없고 말은 아직 한결같음이 있은 적이 없다. 이 때문에 금이 생겼으니 그 금을 말해 보자. 왼쪽이 있고 오른쪽이 있으며, 차례가 있고 마땅함이 있으며, 나눔이 있고 가름이 있으며, 겨룸이 있고 다툼이 있다. 이를 여덟 가지 덕이라 한다.

천지 밖의 일은 성인이 두고 논하지 않는다. 천지 안의 일은 성인이 논하되 따지지 않는다. 『춘추』는 세상을 다스린 선왕의 뜻이니 성인이 따지되 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눈다는 것은 나누지 않는 데가 있음이요, 가린다는 것은 가리지 않는 데가 있음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성인은 품고, 뭇사람은 가려 서로 내보인다. 그러므로 가린다는 것은 보지 못하는 데가 있다 한다.

무릇 큰 도는 일컫지 않고, 큰 가림은 말하지 않고, 큰 어짊은 어질지 않고, 큰 청렴은 겸손하지 않고, 큰 용기는 사납지 않다. 도가 드러나면 도가 아니고, 말이 따지면 미치지 못하고, 어짊이 한결같으면 이루어지지 않고, 청렴이 맑기만 하면 미덥지 않고, 용기가 사나우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다섯은 둥근 것인데 모난 데로 가까이 간다.

그러므로 앎이 알지 못하는 데에 그치면 지극하다. 누가 말하지 않는 가림과 도라 하지 않는 도를 알겠는가. 만일 알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이를 하늘의 곳간이라 한다. 부어도 차지 않고 퍼내도 마르지 않으며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하니, 이를 감추어진 빛(葆光)이라 한다.

8요가 순에게 물은 세 나라

故昔者堯問於舜曰:「我欲伐宗、膾、胥敖,南面而不釋然,其故何也?」舜曰:「夫三子者,猶存乎蓬艾之間。若不釋然,何哉?昔者十日並出,萬物皆照,而況德之進乎日者乎!」

옛날에 요가 순에게 물었다. "내가 종·회·서오를 치려 하는데 남면하고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순이 말하였다. "저 세 나라는 아직 쑥대밭 사이에 있을 뿐입니다. 개운하지 않으실 것이 무엇입니까. 옛날에 열 개의 해가 나란히 떠서 만물을 다 비추었는데, 하물며 덕이 해보다 나아간 것이겠습니까."

9설결이 왕예에게 묻다 — 무엇이 바른 맛인가

齧缺問乎王倪曰:「子知物之所同是乎?」曰:「吾惡乎知之!」「子知子之所不知邪?」曰:「吾惡乎知之!」「然則物无知邪?」曰:「吾惡乎知之!雖然,嘗試言之。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邪?庸詎知吾所謂『不知』之非知邪?且吾嘗試問乎汝:民溼寢則腰疾偏死,鰌然乎哉?木處則惴慄恂懼,猨猴然乎哉?三者孰知正處?民食芻豢,麋鹿食薦,蝍蛆甘帶,鴟鴉耆鼠,四者孰知正味?猨猵狙以爲雌,麋與鹿交,鰌與魚游。毛嬙、麗姬,人之所美也,魚見之深入,鳥見之高飛,麋鹿見之決驟,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自我觀之,仁義之端,是非之塗,樊然殽亂,吾惡能知其辯!」齧缺曰:「子不知利害,則至人固不知利害乎?」王倪曰:「至人神矣!大澤焚而不能熱,河漢沍而不能寒,疾雷破山、風振海而不能驚。若然者,乘雲氣,騎日月,而遊乎四海之外。死生无變於己,而況利害之端乎!」

설결이 왕예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사물이 다 같이 옳다 하는 바를 아십니까."

"내가 어찌 알겠는가."

"선생께서는 선생이 알지 못하는 바를 아십니까."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렇다면 사물에는 앎이 없습니까."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렇더라도 한번 말해 보자. 내가 이른바 '안다'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닌 줄 어찌 알겠으며, 내가 이른바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또 내가 너에게 물어보자. 사람은 축축한 데서 자면 허리가 아프고 반신이 마르는데 미꾸라지도 그러한가. 나무 위에 있으면 벌벌 떨며 두려워하는데 원숭이도 그러한가. 이 셋 가운데 누가 바른 자리를 아는가.

사람은 소와 돼지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으며 지네는 뱀을 달게 여기고 올빼미와 까마귀는 쥐를 즐긴다. 이 넷 가운데 누가 바른 맛을 아는가.

원숭이는 원숭이를 짝으로 삼고 고라니는 사슴과 사귀며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논다. 모장과 여희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하나, 물고기가 보면 깊이 들어가고 새가 보면 높이 날며 사슴이 보면 달아난다. 이 넷 가운데 누가 천하의 바른 빛깔을 아는가.

내가 보기에 어짊과 옳음의 실마리, 옳고 그름의 길은 어수선히 뒤섞였으니 내가 어찌 그 가름을 알겠는가."

설결이 말하였다. "선생께서 이로움과 해로움을 모르신다면 지인도 본디 이로움과 해로움을 모릅니까."

왕예가 말하였다. "지인은 신묘하다. 큰 늪이 타올라도 뜨겁게 하지 못하고, 황하와 한수가 얼어붙어도 춥게 하지 못하며, 사나운 벼락이 산을 쪼개고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어도 놀라게 하지 못한다. 그런 이는 구름 기운을 타고 해와 달에 올라 사해 밖에 노닌다. 죽고 사는 것도 제게 아무 변함이 없는데 하물며 이롭고 해로운 실마리이겠는가."

10장오자의 말 — 큰 꿈에서 깨어

瞿鵲子問乎長梧子曰:「吾聞諸夫子,聖人不從事於務,不就利,不違害,不喜求,不緣道,无謂有謂,有謂无謂,而遊乎塵垢之外。夫子以爲孟浪之言,而我以爲妙道之行也。吾子以爲奚若?」長梧子曰:「是黃帝之所聽瑩也,而丘也何足以知之!且汝亦大早計,見卵而求時夜,見彈而求鴞炙。予嘗爲汝妄言之,汝以妄聽之。奚旁日月,挾宇宙,爲其䐇合,置其滑涽,以隸相尊?衆人役役,聖人愚芚,參萬歲而一成純。萬物盡然,而以是相藴。予惡乎知悅生之非惑邪?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邪?麗之姬,艾封人之子也。晉國之始得之也,涕泣沾襟;及其至於王所,與王同匡牀,食芻豢,而後悔其泣也。予惡乎知夫死者不悔其始之蘄生乎?夢飲酒者,旦而哭泣;夢哭泣者,旦而田獵。方其夢也,不知其夢也。夢之中又占其夢焉,覺而後知其夢也。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而愚者自以爲覺,竊竊然知之。君乎,牧乎,固哉!丘也與汝,皆夢也;予謂汝夢,亦夢也。是其言也,其名爲弔詭。萬世之後,而一遇大聖知其解者,是旦暮遇之也。既使我與若辯矣,若勝我,我不若勝,若果是也,我果非也邪?我勝若,若不吾勝,我果是也,而果非也邪?其或是也,其或非也邪?其俱是也,其俱非也邪?我與若不能相知也。則人固受其黮闇,吾誰使正之?使同乎若者正之,既與若同矣,惡能正之?使同乎我者正之,既同乎我矣,惡能正之?使異乎我與若者正之,既異乎我與若矣,惡能正之?使同乎我與若者正之,既同乎我與若矣,惡能正之?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而待彼也邪?何謂和之以天倪?曰:是不是,然不然。是若果是也,則是之異乎不是也亦无辯;然若果然也,則然之異乎不然也亦无辯。化聲之相待,若其不相待。和之以天倪,因之以曼衍,所以窮年也。忘年忘義,振於无竟,故寓諸无竟。」

구작자가 장오자에게 물었다. "제가 선생님께 들으니 '성인은 일을 일삼지 않고, 이로움에 나아가지 않고, 해로움을 피하지 않고, 구하기를 기뻐하지 않고, 도에 매이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말한 것이요 말하여도 말하지 않은 것이며, 티끌 밖에 노닌다'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를 터무니없는 말이라 하셨으나 저는 묘한 도의 행함이라 여깁니다. 그대는 어떠하다 여기십니까."

장오자가 말하였다. "이것은 황제도 듣고 어리둥절했을 일인데 구(丘)가 어찌 알겠는가. 또 그대도 너무 일찍 셈하였다. 알을 보고 새벽 알리기를 구하고 탄환을 보고 새 구이를 구하는 격이다.

내가 그대에게 함부로 말해 볼 터이니 그대도 함부로 들어라. 어찌 해와 달을 곁에 두고 우주를 끼고서, 그 어울림에 맡기고 그 어수선함을 그대로 두어, 종을 서로 높이듯 하지 않는가. 뭇사람은 아등바등하고 성인은 어리숙하여, 만 년을 아울러 하나의 순수함을 이룬다. 만물이 다 그러하여 이로써 서로 감싼다.

내가 삶을 기뻐하는 것이 미혹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내가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어려서 집을 잃고 돌아갈 줄 모르는 것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여희는 애 땅 국경지기의 딸이었다. 진나라가 처음 그를 얻었을 때 눈물이 옷깃을 적셨으나, 임금의 처소에 이르러 임금과 한 자리에 들고 고기를 먹게 되자 그 울었던 것을 뉘우쳤다. 내가 어찌 저 죽은 이가 처음에 살기를 바랐던 것을 뉘우치지 않는 줄 알겠는가.

꿈에 술을 마신 이가 아침에 곡을 하고, 꿈에 곡을 한 이가 아침에 사냥을 나간다. 꿈꾸는 동안에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꿈속에서 또 그 꿈을 점치다가 깨고 나서야 꿈인 줄 안다. 큰 깨어남이 있고서야 이것이 큰 꿈인 줄 아는데, 어리석은 이는 스스로 깨어 있다 여겨 잗달게 아는 체한다. 임금이니 목자니 하는 것도 참으로 굳은 생각이다. 구도 그대도 다 꿈이다. 내가 그대더러 꿈이라 하는 것도 꿈이다. 이런 말을 조궤(弔詭)라 이름한다. 만세 뒤에라도 한 번 큰 성인을 만나 그 풀이를 안다면, 그것은 아침저녁으로 만난 것과 같다.

이제 나와 그대가 따진다 하자.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내가 그대를 이기지 못하면, 그대가 과연 옳고 내가 과연 그른 것인가. 내가 그대를 이기고 그대가 나를 이기지 못하면, 내가 과연 옳고 그대가 과연 그른 것인가. 어느 한쪽이 옳고 어느 한쪽이 그른 것인가. 둘 다 옳거나 둘 다 그른 것인가. 나와 그대가 서로 알 수 없다면 남들도 본디 그 어둠을 받을 터이니, 내가 누구를 시켜 바로잡겠는가.

그대와 같은 이를 시켜 바로잡게 하면 이미 그대와 같으니 어찌 바로잡겠는가. 나와 같은 이를 시켜 바로잡게 하면 이미 나와 같으니 어찌 바로잡겠는가. 나와도 그대와도 다른 이를 시켜 바로잡게 하면 이미 나와도 그대와도 다르니 어찌 바로잡겠는가. 나와도 그대와도 같은 이를 시켜 바로잡게 하면 이미 나와도 그대와도 같으니 어찌 바로잡겠는가. 그렇다면 나와 그대와 남들이 다 서로 알 수 없는데 또 누구를 기다리겠는가.

하늘의 고름으로 아우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옳음은 옳지 않음이요 그러함은 그렇지 않음이다. 옳음이 과연 옳다면 옳음이 옳지 않음과 다른 것도 가릴 것이 없다. 그러함이 과연 그러하다면 그러함이 그렇지 않음과 다른 것도 가릴 것이 없다. 바뀌는 소리가 서로 기다리는 것은 서로 기다리지 않는 것과 같다. 하늘의 고름으로 아우르고 끝없이 흐름에 맡기니, 이것이 해를 다하는 길이다. 나이를 잊고 마땅함을 잊어 끝없는 데서 떨치니, 그러므로 끝없는 데에 맡긴다."

11그림자의 그림자가 그림자에게 묻다

罔兩問景曰:「曩子行,今子止;曩子坐,今子起,何其无特操與?」景曰:「吾有待而然者邪?吾所待又有待而然者邪?吾待蛇蚹蜩翼邪?惡識所以然?惡識所以不然?」

그림자의 그림자가 그림자에게 물었다. "아까는 그대가 가더니 이제는 그대가 멎고, 아까는 그대가 앉더니 이제는 그대가 일어나니 어찌 그리 지조가 없는가."

그림자가 말하였다. "내가 기대는 것이 있어 그런 것인가. 내가 기대는 것이 또 기대는 것이 있어 그런 것인가. 내가 뱀의 비늘이나 매미의 날개를 기다리는 것인가. 어찌 그러한 까닭을 알며 어찌 그렇지 않은 까닭을 알겠는가."

12나비 꿈

昔者莊周夢爲胡蝶,栩栩然胡蝶也,自喻適志與,不知周也。俄然覺,則蘧蘧然周也。不知周之夢爲胡蝶與?胡蝶之夢爲周與?周與胡蝶,則必有分矣,此之謂物化。

옛날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였다. 스스로 즐거워 뜻에 맞았고 자기가 장주인 줄 알지 못하였다. 문득 깨어 보니 뻣뻣한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 장주와 나비에는 반드시 나뉨이 있을 터이니, 이를 사물의 바뀜(物化)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