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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초莊子 雜篇 庚桑楚

장자 莊子 · 장주(莊周)와 뒷사람들 · 전국시대(기원전 4~3세기) · 서진 곽상 33편본 · 단락 39 · 한자 2,625자 · 낭독 10.5분

「장자」 잡편 「경상초」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북녘 검은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이름을 곤이라 한다」 — 이 한 줄로 시작해, 등이 몇천 리인지 알 수 없는 새가 남녘 바다로 날아가는 데서 책이 열린다. 나비 꿈을 꾸고 깨어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것인가」 묻고, 소 잡는 백정이 열아홉 해 동안 칼을 갈지 않고, 아내가 죽자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한다. 달팽이 뿔 위에서 나라끼리 싸워 주검 수만이 넘어졌다는 이야기로 전쟁을 그치게 하고, 혜자의 무덤을 지나며 「나는 더불어 말할 이가 없다」 한다. 도덕경과 나란히 두면 같은 자리를 아주 다른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린다.

1경상초가 외루산에 살다

老聃之役有庚桑楚者,偏得老聃之道,以北居畏壘之山,其臣之畫然知者去之,其妾之挈然仁者遠之;擁腫之與居,鞅掌之為使。居三年,畏壘大壤。畏壘之民相與言曰:「庚桑子之始來,吾洒然異之。今吾日計之而不足,歲計之而有餘。庶幾其聖人乎!子胡不相與尸而祝之,社而稷之乎?」

노담의 제자에 경상초라는 이가 있어 노담의 도를 치우쳐 얻고, 북쪽으로 외루산에 살았다. 그 종 가운데 똑똑하게 아는 이는 떠나고 그 첩 가운데 잘난 체 어진 이는 멀어졌다. 굼뜬 이와 함께 살고 부산한 이를 부렸다.

세 해를 사니 외루가 크게 잘되었다. 외루의 백성이 서로 말하였다. "경상자가 처음 왔을 때 우리는 흠칫 그를 이상히 여겼다. 이제 우리가 날마다 헤아리면 모자라나 해마다 헤아리면 남는다. 아마도 성인인가 보다. 그대들은 어찌 함께 그를 시동으로 모셔 빌고 사직으로 삼지 않는가."

2남면하고도 언짢아하다

庚桑子聞之,南面而不釋然。弟子異之。庚桑子曰:「弟子何異於予?夫春氣發而百草生,正得秋而萬寶成。夫春與秋,豈无得而然哉?天道已行矣。吾聞至人,尸居環堵之室,而百姓猖狂不知所如往。今以畏壘之細民而竊竊焉欲俎豆予于賢人之間,我其杓之人邪?吾是以不釋於老耼之言。」

경상자가 이를 듣고 남면하고서도 언짢아하였다. 제자가 이상히 여겼다.

경상자가 말하였다. "제자들아, 어찌 나를 이상히 여기느냐. 무릇 봄기운이 피어 온갖 풀이 나고, 마침 가을을 얻어 온갖 열매가 이루어진다. 무릇 봄과 가을이 어찌 얻은 것 없이 그러하겠느냐. 하늘의 도가 이미 행해진 것이다.

내가 듣기로 지인은 좁은 방에 시동처럼 있어도 백성이 미친 듯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하였다. 그런데 이제 외루의 자잘한 백성이 소곤거리며 나를 어진 이 사이에 제기로 받들려 하니, 내가 남의 표적이 되는 사람이겠느냐. 나는 이 때문에 노담의 말에 언짢은 것이다."

3어진 이를 높이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였습니다

弟子曰:「不然。夫尋常之溝,巨魚无所還其體,而鯢鰌為之制;步仞之丘陵,巨獸无所隱其軀,而㜸狐為之祥。且夫尊賢授能,先善與利,自古堯舜以然,而況畏壘之民乎!夫子亦聽矣!」

제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여덟 자쯤 되는 도랑에는 큰 물고기가 제 몸을 돌릴 데가 없으나 도롱뇽과 미꾸라지는 거기서 왕 노릇 합니다. 몇 자 되는 언덕에는 큰 짐승이 제 몸을 숨길 데가 없으나 요망한 여우는 거기서 상서롭게 여깁니다.

또 무릇 어진 이를 높이고 능한 이에게 맡기며 착한 이와 이로운 것을 앞세우는 것은 예로부터 요와 순이 그러하였는데, 하물며 외루의 백성이겠습니까. 선생님도 들어주십시오."

4큰 어지러움의 뿌리는 요와 순 사이에서 난다

庚桑子曰:「小子來!夫函車之獸,介而離山,則不免於罔罟之患;吞舟之魚,碭而失水,則蟻能苦之。故鳥獸不厭高,魚鼈不厭深。夫全其形生之人,藏其身也,不厭深眇而已矣!且夫二子者,又何足以稱揚哉!是其於辯也,將妄鑿垣牆而殖蓬蒿也,簡髮而櫛,數米而炊,竊竊乎又何足以濟世哉!舉賢則民相軋,任知則民相盜。之數物者,不足以厚民。民之於利甚勤,子有殺父,臣有殺君,正晝為盜,日中穴阫。吾語女,大亂之本,必生於堯舜之間,其末存乎千世之後。千世之後,其必有人與人相食者也。」

경상자가 말하였다. "젊은이야 오너라. 무릇 수레를 삼킬 만한 짐승도 홀로 산을 떠나면 그물의 근심을 면하지 못하고, 배를 삼킬 만한 물고기도 물결에 밀려 물을 잃으면 개미가 그를 괴롭힐 수 있다.

그러므로 새와 짐승은 높은 것을 싫어하지 않고 물고기와 자라는 깊은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무릇 제 몸과 삶을 온전히 하는 사람이 제 몸을 감추는 데도 깊고 아득한 것을 싫어하지 않을 뿐이다.

또 무릇 저 두 사람을 어찌 일컬어 기리기에 넉넉하겠느냐. 이는 말재주로 치자면 함부로 담을 뚫어 쑥대를 심는 것이요, 머리카락을 골라 빗질하고 쌀알을 세어 밥 짓는 격이다. 소곤거린들 또 어찌 세상을 건지기에 넉넉하겠느냐.

어진 이를 들어 쓰면 백성이 서로 밀치고, 아는 이에게 맡기면 백성이 서로 훔친다. 이 몇 가지는 백성을 두텁게 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백성이 이익에 몹시 부지런하여 자식이 아비를 죽이고 신하가 임금을 죽이며, 대낮에 도둑질하고 한낮에 담을 뚫는다.

내가 그대에게 이르노니, 큰 어지러움의 뿌리는 반드시 요와 순 사이에서 나서 그 끝가지가 천 세대 뒤에 남을 것이다. 천 세대 뒤에는 반드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있으리라."

5남영주가 무릎 꿇고 여쭙다

南榮趎蹵然正坐曰:「若趎之年者已長矣,將惡乎託業以及此言邪?」

남영주가 흠칫하여 바로 앉으며 말하였다. "저 같은 나이는 이미 늙었는데, 무엇에 몸을 맡겨 배워야 이 말씀에 이르겠습니까."

6몸을 온전히 하고 삶을 안아라

庚桑子曰:「全汝形,抱汝生,无使汝思慮營營。若此三年,則可以及此言矣。」

경상자가 말하였다. "그대의 몸을 온전히 하고 그대의 삶을 안아, 그대의 생각이 부산히 내닫지 않게 하라. 이렇게 세 해면 이 말에 이를 수 있다."

7눈먼 이는 스스로 보지 못합니다

南榮趎曰:「目之與形,吾不知其異也,而盲者不能自見;耳之與形,吾不知其異也,而聾者不能自聞;心之與形,吾不知其異也,而狂者不能自得。形之與形亦辟矣,而物或間之邪,欲相求而不能相得?今謂趎曰:『全汝形,抱汝生,勿使汝思慮營營。』趎勉聞道達耳矣!」

남영주가 말하였다. "눈은 몸과 다르지 않은 줄 아는데 눈먼 이는 스스로 보지 못하고, 귀는 몸과 다르지 않은 줄 아는데 귀먹은 이는 스스로 듣지 못하며, 마음은 몸과 다르지 않은 줄 아는데 미친 이는 스스로 얻지 못합니다.

몸과 몸도 또한 나뉘어 있으니, 사물이 그 사이를 가로막아 서로 구하려 해도 서로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제 저에게 '그대의 몸을 온전히 하고 그대의 삶을 안아 그대의 생각이 부산히 내닫지 않게 하라' 하시니, 저는 애써 도를 귀로 들었을 뿐입니다."

8내 재주가 작아 그대를 바꾸지 못한다

庚桑子曰:「辭盡矣。曰,奔蜂不能化藿蠋,越雞不能伏鵠卵,魯雞固能矣。雞之與雞,其德非不同也,有能與不能者,其才固有巨小也。今吾才小,不足以化子。子胡不南見老子!」

경상자가 말하였다. "내 말은 다하였다. 이르기를, 나나니벌은 콩벌레를 바꾸지 못하고 월나라 닭은 고니 알을 품지 못하나 노나라 닭은 본디 할 수 있다 한다. 닭과 닭이 그 덕이 같지 않은 것은 아니나, 능한 것과 능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은 그 재주에 본디 크고 작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재주가 작아 그대를 바꾸기에 넉넉하지 않다. 그대는 어찌 남쪽으로 가서 노자를 뵙지 않느냐."

9이레 밤낮을 걸어 노자에게 이르다

南榮趎贏糧,七日七夜至老子之所。

남영주가 양식을 지고 이레 밤낮을 걸어 노자가 있는 데에 이르렀다.

10그대가 경상초에게서 왔는가

老子曰:「子自楚之所來乎?」南榮趎曰:「唯。」

노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경상초에게서 왔는가." 남영주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11어찌 데리고 온 사람이 이리 많은가

老子曰:「子何與人偕來之衆也?」南榮趎懼然顧其後。

노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데리고 온 사람이 이리 많은가." 남영주가 두려워하며 제 뒤를 돌아보았다.

12내가 이른 바를 모르는가

老子曰:「子不知吾所謂乎?」

노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내가 이른 바를 모르는가."

13제 대답을 잊고 제 물음도 잃었습니다

南榮趎俯而慙,仰而歎曰:「今者吾忘吾答,因失吾問。」

남영주가 고개를 숙여 부끄러워하고 우러러 탄식하여 말하였다. "이제 제가 제 대답을 잊었고 그로 말미암아 제 물음도 잃었습니다."

14무슨 말인가

老子曰:「何謂也?」

노자가 말하였다. "무슨 말인가."

15어질면 도리어 제 몸을 시름겹게 합니다

南榮趎曰:「不知乎?人謂我朱愚。知乎?反愁我軀。不仁則害人,仁則反愁我身;不義則傷彼,義則反愁我己。我安逃此而可?此三言者,趎之所患也,願因楚而問之。」

남영주가 말하였다. "알지 못하면 사람들이 저를 어리석다 합니다. 알면 도리어 제 몸을 시름겹게 합니다. 어질지 않으면 남을 해치고 어질면 도리어 제 몸을 시름겹게 합니다. 옳지 않으면 저쪽을 다치게 하고 옳으면 도리어 저를 시름겹게 합니다.

제가 어디로 이를 달아나야 하겠습니까. 이 세 마디가 제가 근심하는 바이니, 경상초를 말미암아 여쭙기를 바랍니다."

16그대는 집 잃은 사람이로구나

老子曰:「向吾見若眉睫之間,吾因以得汝矣。今汝又言,而信之。若規規然若喪父母,揭竿而求諸海也。女亡人哉!惘惘乎,汝欲反汝情性而无由入,可憐哉!」

노자가 말하였다. "아까 내가 그대의 눈썹과 속눈썹 사이를 보고 그로써 그대를 알았다. 이제 그대가 또 말하니 이를 믿게 되었다.

그대는 어리둥절하기가 부모를 잃은 듯하고, 장대를 들고 바다를 재려는 듯하다. 그대는 집 잃은 사람이로구나. 아득하구나. 그대는 그대의 실상과 성품으로 돌아가려 하나 들어갈 길이 없으니 가엾구나."

17열흘을 스스로 시름하다

南榮趎請入就舍,召其所好,去其所惡,十日自愁,復見老子。

남영주가 들어가 처소에 머물기를 청하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불러들이고 제가 싫어하는 것을 버리며 열흘을 스스로 시름하다가 다시 노자를 뵈었다.

18밖이 얽매인 이와 안이 얽매인 이

老子曰:「汝自洒濯,熟哉鬱鬱乎!然而其中津津乎猶有惡也。夫外韄者不可繁而捉,將內揵;內韄者不可繆而捉,將外揵。外內韄者,道德不能持,而況放道而行者乎!」

노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스스로 씻어 냈으나 어찌 그리 답답한가. 그러나 그 속에 넘쳐흐르듯 아직 나쁜 것이 있다.

무릇 밖이 얽매인 이는 번거로이 붙들 수 없으니 안을 닫아야 하고, 안이 얽매인 이는 얽어 붙들 수 없으니 밖을 닫아야 한다. 밖과 안이 다 얽매인 이는 도덕으로도 지킬 수 없는데, 하물며 도를 놓아 두고 다니는 이겠는가."

19삶을 지키는 법을 듣고자 합니다

南榮趎曰:「里人有病,里人問之,病者能言其病,病者猶未病也。若趎之聞大道,譬猶飲藥以加病也,趎願聞衞生之經而已矣。」

남영주가 말하였다. "마을 사람이 병이 나면 마을 사람이 문병합니다. 병자가 제 병을 말할 수 있으면 병자는 아직 크게 병든 것이 아닙니다.

저 같은 이가 큰 도를 듣는 것은, 비유하자면 약을 마셔 병을 더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삶을 지키는 법을 듣기 바랄 뿐입니다."

20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가

老子曰:「衞生之經,能抱一乎?能勿失乎?能无卜筮而知吉凶乎?能止乎?能已乎?能舍諸人而求諸己乎?能翛然乎?能侗然乎?能兒子乎?兒子終日嗥而嗌不嗄,和之至也;終日握而手不掜,共其德也;終日視而目不瞚,偏不在外也。行不知所之,居不知所為,與物委蛇而同其波。是衞生之經已。」

노자가 말하였다. "삶을 지키는 법이란, 하나를 안을 수 있는가. 잃지 않을 수 있는가. 점치지 않고 길흉을 알 수 있는가. 그칠 수 있는가. 그만둘 수 있는가. 남에게서 버리고 제게서 구할 수 있는가. 훌쩍 벗어날 수 있는가. 어리숙할 수 있는가. 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가.

어린아이는 온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으니 어울림의 지극함이요, 온종일 주먹을 쥐어도 손이 저리지 않으니 그 덕을 함께함이요, 온종일 보아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니 치우쳐 밖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녀도 갈 데를 알지 못하고 머물러도 할 바를 알지 못하며, 사물과 함께 구불구불하여 그 물결을 같이한다. 이것이 삶을 지키는 법이다."

21그러면 이것이 지인의 덕입니까

南榮趎曰:「然則是至人之德已乎?」

남영주가 말하였다. "그러면 이것이 지인의 덕입니까."

22얼음이 풀리고 언 것이 녹는 것

曰:「非也。是乃所謂冰解凍釋者,能乎?夫至人者,相與交食乎地而交樂乎天,不以人物利害相攖,不相與為怪,不相與為謀,不相與為事,翛然而往,侗然而來。是謂衞生之經已。」

말하였다. "아니다. 이는 이른바 얼음이 풀리고 언 것이 녹는 것이니, 그럴 수 있겠는가.

무릇 지인이란 서로 함께 땅에서 먹고 서로 함께 하늘에서 즐기며, 사람과 사물의 이로움과 해로움으로 서로 건드리지 않는다. 서로 괴이한 짓을 하지 않고 서로 꾀하지 않고 서로 일삼지 않으며, 훌쩍 가고 어리숙하게 온다. 이를 삶을 지키는 법이라 한다."

23그러면 이것이 지극한 것입니까

曰:「然則是至乎?」

말하였다. "그러면 이것이 지극한 것입니까."

24어린아이는 화도 복도 없다

曰:「未也。吾固告汝曰:『能兒子乎!』兒子動不知所為,行不知所之,身若槁木之枝而心若死灰。若是者,禍亦不至,福亦不來。禍福无有,惡有人災也!」

말하였다. "아직이다. 내가 참으로 그대에게 '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가' 하고 일렀다.

어린아이는 움직여도 할 바를 알지 못하고 다녀도 갈 데를 알지 못하며, 몸은 마른나무 가지 같고 마음은 식은 재 같다. 이런 이에게는 화도 이르지 않고 복도 오지 않는다. 화와 복이 없는데 어찌 사람의 재앙이 있겠는가."

25마음이 크게 안정된 이는 하늘빛을 낸다

宇泰定者,發乎天光。發乎天光者,人見其人,[物見其物。]人有脩者,乃今有恆;有恆者,人舍之,天助之。人之所舍,謂之天民;天之所助,謂之天子。

마음이 크게 안정된 이는 하늘빛을 낸다. 하늘빛을 내는 이는 사람이 그 사람됨을 보고 사물이 그 사물됨을 본다.

사람이 닦음이 있으면 이에 한결같음이 있고, 한결같음이 있는 이는 사람이 그에게 깃들이고 하늘이 그를 돕는다. 사람이 깃들이는 바를 하늘의 백성이라 하고, 하늘이 돕는 바를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

26배움이란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는 것

學者,學其所不能學也;行者,行其所不能行也;辯者,辯其所不能辯也。知止乎其所不能知,至矣;若有不即是者,天鈞敗之。

배우는 이는 그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고, 행하는 이는 그 행할 수 없는 것을 행하며, 따지는 이는 그 따질 수 없는 것을 따진다.

앎이 그 알 수 없는 데에 그치면 지극하다. 만일 이에 나아가지 않는 이가 있으면 하늘의 고름이 그를 무너뜨린다.

27신령한 뜰은 붙드는 바가 있으되

備物以將形,藏不虞以生心,敬中以達彼,若是而萬惡至者,皆天也,而非人也,不足以滑成,不可內於靈臺。靈臺者有持,而不知其所持,而不可持者也。

사물을 갖추어 몸을 받들고, 헤아리지 않음을 갈무리하여 마음을 살리며, 속을 공경하여 저쪽에 통한다. 이러한데도 온갖 나쁜 것이 이른다면 다 하늘이지 사람이 아니다. 이룬 것을 어지럽히기에 넉넉하지 않으니 신령한 뜰에 들이지 말아야 한다.

신령한 뜰이란 붙드는 바가 있으되 그 붙드는 바를 알지 못하며, 붙들 수 없는 것이다.

28밝은 데서 나쁜 짓을 하면 사람이 벌한다

不見其誠己而發,每發而不當,業入而不舍,每更為失。為不善乎顯明之中者,人得而誅之;為不善乎幽閒之中者,鬼得而誅之。明乎人、明乎鬼者,然後能獨行。

제 참됨을 보지 못하고 내면 낼 때마다 마땅하지 않고, 일이 들어와 놓이지 않으면 고칠 때마다 잃는다.

밝은 데서 착하지 않은 짓을 하는 이는 사람이 얻어 벌하고, 그윽하고 한가한 데서 착하지 않은 짓을 하는 이는 귀신이 얻어 벌한다. 사람에게 밝고 귀신에게 밝은 뒤에야 홀로 행할 수 있다.

29안으로 맡기는 이와 밖으로 맡기는 이

券內者,行乎无名;券外者,志乎期費。行乎无名者,唯庸有光;志乎期費者,唯賈人也。人見其跂,猶之魁然。與物窮者,物入焉;與物且者,其身之不能容,焉能容人!不能容人者无親,无親者盡人。兵莫憯於志,鏌鋣為下;寇莫大於陰陽,无所逃於天地之間。非陰陽賊之,心則使之也。

안으로 맡기는 이는 이름 없는 데서 행하고, 밖으로 맡기는 이는 씀씀이를 기약하는 데 뜻을 둔다.

이름 없는 데서 행하는 이는 오직 여느 데에도 빛이 있고, 씀씀이를 기약하는 데 뜻을 두는 이는 오직 장사꾼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가 발돋움하는 것을 보고도 오히려 우뚝하다 여긴다.

사물과 더불어 다하는 이에게는 사물이 들어오고, 사물과 더불어 겨우 지내는 이는 제 몸도 담지 못하는데 어찌 남을 담겠는가. 남을 담지 못하는 이는 친함이 없고, 친함이 없는 이는 사람이 다한 것이다.

병기 가운데 뜻보다 아픈 것이 없으니 막야도 그 아래다. 도적 가운데 음과 양보다 큰 것이 없으니 하늘과 땅 사이에 달아날 데가 없다. 음과 양이 그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리 시킨 것이다.

30모습 있는 것으로 모습 없는 것을 본떠 정한다

道通,其分也。其成也毀也。所惡乎分者,其分也以備;所以惡乎備者,其有以備。故出而不反,見其鬼;出而得,是謂得死。滅而有實,鬼之一也。以有形者象无形者而定矣!

도가 통하면 나뉜다. 그 이루어짐이 곧 무너짐이다.

나뉨을 싫어하는 까닭은 그 나뉨이 갖춤으로 하기 때문이요, 갖춤을 싫어하는 까닭은 그 갖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그 귀신을 보고, 나가서 얻으면 이를 죽음을 얻었다 한다. 없어졌는데 실상이 있으면 귀신의 하나다.

모습 있는 것으로 모습 없는 것을 본떠 정한다.

31천문(天門)이란 없음이다

出无本,入无竅,有實而无乎處,有長而无乎本剽,有所出而无竅者有實。有實而无乎處者,宇也;有長而无本剽者,宙也。有乎生,有乎死;有乎出,有乎入。入出而无見其形,是謂天門。天門者,无有也。萬物出乎无有。有不能以有為有,必出乎无有,而无有一无有。聖人藏乎是。

나오되 뿌리가 없고 들되 구멍이 없다. 실상이 있으되 처할 데가 없고 길이가 있으되 뿌리와 끝이 없다. 나오는 바가 있으되 구멍이 없는 것에 실상이 있다.

실상이 있으되 처할 데가 없는 것이 우(宇)요, 길이가 있으되 뿌리와 끝이 없는 것이 주(宙)다.

삶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나옴이 있고 듦이 있다. 들고 나되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이를 하늘의 문이라 한다. 하늘의 문이란 없음이다. 만물이 없음에서 나온다.

있음이 있음으로 있음을 삼을 수 없고 반드시 없음에서 나오는데, 없음은 한결같이 없음이다. 성인은 여기에 갈무리한다.

32옛사람의 앎이 지극한 데가 있었다

古之人,其知有所至矣。惡乎至?有以為未始有物者,至矣,盡矣,弗可以加矣!其次以為有物矣,將以生為喪也,以死為反也,是以分已。其次曰始无有,既而有生,生俄而死;以无有為首,以生為體,以死為尻;孰知有无死生之一守者,吾與之為友。是三者雖異,公族也,昭景也,著戴也,甲氏也,著封也:非一也。

옛사람은 그 앎이 지극한 데가 있었다. 어디까지 지극하였는가.

아직 사물이 있은 적이 없다고 여긴 이가 있었으니 지극하고 다하여 더할 수 없다. 그다음은 사물이 있다 여기고 삶을 잃음으로 삼고 죽음을 돌아감으로 삼았으니, 이로써 나뉜 것이다. 그다음은 처음에 없음이 있었고 이윽고 삶이 있으며 삶이 문득 죽는다 하여, 없음을 머리로 삼고 삶을 등뼈로 삼고 죽음을 꽁무니로 삼았다.

누가 있음과 없음과 죽음과 삶이 하나로 지켜지는 줄 알겠는가. 나는 그와 벗하겠다.

이 셋이 비록 다르나 한 겨레다. 소씨와 경씨는 벼슬로 드러났고 갑씨는 봉토로 드러났으니, 하나가 아니다.

33이(移是)를 든다

有生,黬也,披然曰移是。嘗言移是,非所言也。雖然,不可知者也。臘者之有膍胲,可散而不可散也;觀室者周於寢廟,又適其偃焉!為是舉移是。

삶이 있는 것은 검은 얼룩이다. 활짝 펴 이를 이(移是)라 한다. 한번 이를 말해 보자면 말할 바가 아니다. 그렇더라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납향 제사에 소의 밥통과 발굽이 있는 것은 흩을 수도 있고 흩을 수 없기도 하다. 집을 보는 이가 침실과 사당을 두루 돌고 또 뒷간에도 가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이(移是)를 든다.

34이(移是)란 지금 사람이다

請常言移是。是以生為本,以知為師,因以乘是非。果有名實,因以己為質。使人以為己節,因以死償節。若然者,以用為知,以不用為愚;以徹為名,以窮為辱。移是,今之人也,是蜩與學鳩同於同也。

한번 이(移是)를 말해 보자. 이는 삶을 뿌리로 삼고 앎을 스승으로 삼아, 그로 말미암아 옳고 그름을 탄다. 과연 이름과 실상이 있어 그로 말미암아 저를 바탕으로 삼는다.

사람으로 하여금 저를 절개로 여기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음으로 절개를 갚게 한다. 그런 이는 쓰이는 것을 앎으로 삼고 쓰이지 않는 것을 어리석음으로 삼으며, 통하는 것을 이름으로 삼고 궁한 것을 욕됨으로 삼는다.

이(移是)란 지금 사람이니, 이는 매미와 새끼 비둘기가 같은 것에서 같은 격이다.

35지극한 예는 남을 가리지 않는다

蹍市人之足,則辭以放驁,兄則以嫗,大親則已矣。故曰,至禮有不人,至義不物,至知不謀,至仁无親,至信辟金。

저잣거리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조심하지 못했다고 사과하고, 형이면 어루만지고, 어버이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지극한 예는 남을 가리지 않고, 지극한 옳음은 사물을 가리지 않고, 지극한 앎은 꾀하지 않고, 지극한 어짊은 친함이 없고, 지극한 미쁨은 쇠붙이를 물리친다.

36네 갈래 여섯 가지

徹志之勃,解心之謬,去德之累,達道之塞。貴富顯嚴名利六者,勃志也。容動色理氣意六者,謬心也。惡欲喜怒哀樂六者,累德也。去就取與知能六者,塞道也。此四六者,不蕩胸中則正,正則靜,靜則明,明則虛,虛則无為而无不為也。道者,德之欽也;生者,德之光也;性者,生之質也。性之動,謂之為,為之偽謂之失。知者,接也;知者,謨也。知者之所不知,猶睨也。動以不得已之謂德,動无非我之謂治,名相反而實相順也。

뜻의 어지러움을 걷어 내고, 마음의 얽힘을 풀고, 덕의 얽매임을 버리고, 도의 막힘을 뚫어라.

귀함과 넉넉함과 드러남과 위엄과 이름과 이익 여섯은 뜻을 어지럽힌다. 얼굴과 몸짓과 낯빛과 결과 기운과 뜻 여섯은 마음을 얽는다. 미움과 바람과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 여섯은 덕을 얽맨다. 떠남과 나아감과 취함과 줌과 앎과 능함 여섯은 도를 막는다.

이 네 갈래 여섯 가지가 가슴속에 출렁이지 않으면 바르고, 바르면 고요하고, 고요하면 밝고, 밝으면 비고, 비면 함이 없으면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도란 덕이 우러르는 바요, 삶이란 덕의 빛이요, 성품이란 삶의 바탕이다. 성품이 움직이는 것을 함이라 하고, 함이 거짓된 것을 잃음이라 한다.

앎이란 닿는 것이요 앎이란 꾀하는 것이다. 아는 이가 알지 못하는 바는 곁눈질과 같다.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것을 덕이라 하고, 움직임에 내가 아닌 것이 없는 것을 다스림이라 한다. 이름은 서로 반대되나 실상은 서로 따른다.

37온전한 사람이라야 하늘에도 사람에도 능하다

羿工乎中微而拙乎使人无己譽;聖人工乎天而拙乎人;夫工乎天而俍乎人者,唯全人能之。唯蟲能蟲,唯蟲能天。全人惡天,惡人之天,而況吾天乎人乎!

예는 작은 것을 맞히는 데는 잘하였으나 남이 저를 기리지 않게 하는 데는 서툴렀다. 성인은 하늘에는 잘하나 사람에는 서투르다. 무릇 하늘에도 잘하고 사람에도 좋은 이는 오직 온전한 사람이라야 할 수 있다.

오직 벌레라야 벌레 노릇을 할 수 있고 오직 벌레라야 하늘 노릇을 할 수 있다. 온전한 사람은 하늘을 싫어하고 사람의 하늘을 싫어하는데, 하물며 내가 하늘이니 사람이니 하겠는가.

38천하를 새장으로 삼으면 참새가 달아날 데가 없다

一雀適羿,羿必得之,或也。以天下為之籠,則雀无所逃。是故湯以胞人籠伊尹,秦穆公以五羊之皮籠百里奚。是故非以其所好籠之而可得者,无有也。

참새 한 마리가 예에게 다가오면 예가 반드시 그것을 얻으니 재주다. 천하를 새장으로 삼으면 참새가 달아날 데가 없다.

이 때문에 탕은 요리사 자리로 이윤을 새장에 넣었고, 진나라 목공은 양 다섯 마리 가죽으로 백리해를 새장에 넣었다.

이 때문에 그가 좋아하는 것으로 새장에 넣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이는 없다.

39성냄이 성내지 않음에서 나온다

介者拸畫,外非譽也。胥靡登高而不懼,遺死生也。夫復謵不餽而忘人,忘人,因以為天人矣!故敬之而不喜,侮之而不怒者,唯同乎天和者為然。出怒不怒,則怒出於不怒矣;出為无為,則為出於无為矣!欲靜則平氣,欲神則順心。有為也。欲當則緣於不得已,不得已之類,聖人之道。

발 잘린 이가 꾸밈을 버리는 것은 헐뜯음과 기림을 밖으로 하기 때문이요, 죄수가 높은 데 올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죽고 사는 것을 버렸기 때문이다.

무릇 되풀이해 익혀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을 잊으니, 남을 잊으면 그로 말미암아 하늘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공경하여도 기뻐하지 않고 업신여겨도 성내지 않는 이는, 오직 하늘의 어울림과 같아진 이라야 그러하다.

성냄을 내되 성내지 않으면 성냄이 성내지 않음에서 나온 것이요, 함을 내되 함이 없으면 함이 함 없음에서 나온 것이다.

고요하려 하거든 기운을 고르게 하고, 신묘하려 하거든 마음을 따르라. 함이 있을 때 마땅하려 하거든 어쩔 수 없음을 말미암아라. 어쩔 수 없음의 부류가 성인의 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