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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福寺摴蒲記

금오신화 金鰲新話 · 김시습(金時習) · 1465~1470년 무렵 · 단락 46 · 한자 3,388자 · 낭독 13.6분

「금오신화」 만복사 저포기 「萬福寺摴蒲記」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문 소설이고, 이 서가에 드는 첫 조선 책이다. 김시습이 세상을 등지고 경주 금오산에 숨어 살며 지었다. 다섯 편이 다 산 사람과 죽은 이,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이야기다 — 부처와 저포를 던져 아내를 얻었더니 왜구에게 죽은 넋이었고(만복사 저포기), 담을 넘어 맺은 인연이 홍건적에게 끊겼다가 넋으로 돌아오며(이생규장전), 부벽루에서 만난 여인은 기자의 딸이라 하며 위만에게 나라를 잃은 일을 말한다(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는 유학자가 염라왕과 마주 앉아 귀신과 윤회를 두고 따지고, 용궁부연록은 용왕의 잔치에 불려가 상량문을 짓는다. 다섯 편의 주인공이 하나같이 벼슬길이 막힌 선비이고, 그들을 알아주는 이는 저승에만 있다.

南原有梁生者,早喪父母,未有妻室,獨居萬福寺之東。房外有梨花一株,方春盛開,如瓊樹銀堆,生每月夜,逡巡朗吟其下。詩曰:

남원에 양생(梁生)이라는 이가 있었다. 일찍이 어버이를 여의고 아직 아내를 두지 못하여 만복사 동쪽에 홀로 살았다. 방 밖에 배나무 한 그루가 있어 바야흐로 봄에 활짝 피니 구슬 나무에 은이 쌓인 듯하였다. 양생은 달 밝은 밤마다 그 아래를 서성이며 낭랑히 읊었다. 시에 이르기를,

一樹梨花伴寂廖,可憐辜負月明宵。靑年獨臥孤窓畔,何處玉人吹鳳簫。

한 그루 배꽃이 쓸쓸함을 짝하는데 가엾어라, 달 밝은 이 밤을 저버림이여. 젊은 나이에 홀로 외로운 창가에 누웠으니 어디서 옥 같은 이가 봉황 퉁소를 부는가.

翡翠孤飛不作雙,鴛鴦失侶浴晴江。誰家有約敲碁子,夜卜燈花愁倚窓。

물총새는 홀로 날아 짝을 짓지 못하고 원앙은 짝을 잃고 갠 강에 목욕하네. 뉘 집에 언약이 있어 바둑돌을 두드리는가 밤에 등불 꽃으로 점치며 시름겨워 창에 기대네.

吟罷,忽空中有聲曰:「君欲得好逑,何憂不遂。」生心憙之,明日卽三月二十四日也。州俗燃燈於萬福寺祈福,士女騈集,各呈其志。日晩梵罷人稀,生袖摴蒲,擲於佛前曰:「吾今日,與佛欲鬪蒲戱,若我負,則設法筵以賽,若不負,則得美女,以遂我願耳。」祝訖,遂擲之,生果勝,卽跪於佛前曰:「業已定矣,不可誑也。」遂隱於几下,以候其約。

읊기를 마치자 홀연 공중에서 소리가 있어 말하였다. 「그대가 좋은 짝을 얻고자 하니 어찌 이루지 못할까 근심하는가.」

양생이 마음에 기뻤다. 이튿날은 곧 삼월 스무나흗날이었다. 그 고을 풍속에 만복사에서 등을 밝혀 복을 비는데, 남녀가 나란히 모여 저마다 제 뜻을 아뢰었다. 날이 저물어 범패가 그치고 사람이 드물어지자, 양생이 소매에서 저포(摴蒲)를 꺼내어 부처 앞에 던지며 말하였다.

「제가 오늘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겨루려 합니다. 만약 제가 지면 법연(法筵)을 베풀어 갚겠고, 만약 지지 않으면 아름다운 여인을 얻어 제 소원을 이루게 해 주십시오.」

빌기를 마치고 마침내 던지니 양생이 과연 이겼다. 곧 부처 앞에 꿇어앉아 말하였다. 「일이 이미 정해졌으니 속이지 못하십니다.」 마침내 궤(几) 아래 숨어 그 언약을 기다렸다.

俄而有一美姬,年可十五六,丫鬟淡飾,儀容婥妁,如仙姝天妃,望之儼然,手携油甁,添燈揷香,三拜而跪,噫而歎曰:「人生薄命,乃如此邪?」遂出懷中狀詞,獻於卓前。其詞曰:「某州某地居住,何氏某,竊以曩者,邊方失禦倭寇來侵,干戈滿目,烽燧連年,焚蕩室廬,盧掠生民,東西奔竄,左右逋逃,親戚僮僕,各相亂離,妾以蒲柳弱質,不能遠逝,自入深閨,終守幽貞,不爲行露之沾,以避橫逆之禍,父母以女子守節不爽,避地僻處,僑居草野,已三年矣。然而秋月春花,傷心虛度,野雲流水,無聊送日,幽居在空谷,歎平生之薄命,獨宿度良宵,傷彩鸞之獨舞,日居月諸,魂銷魄喪,夏日冬宵,膽裂腸摧,惟願覺皇,曲垂憐愍,生涯前定,業不可避,賦命有緣,早得歡娛,無任懇禱之至。」

이윽고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나이는 열대여섯쯤, 두 갈래로 쪽 지고 담담히 꾸몄는데 자태가 곱고 아리따워 신선의 여인이나 하늘의 왕비 같아 바라보매 엄연하였다. 손에 기름병을 들고 등에 기름을 채우고 향을 꽂고는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탄식하며 말하였다.

「사람의 삶이 기박함이 이와 같단 말인가.」

마침내 품에서 글을 꺼내어 탁자 앞에 바쳤다. 그 글에 이르기를,

「아무 고을 아무 땅에 사는 하씨(何氏) 아무개는 삼가 아룁니다. 지난날 변방이 지킴을 잃어 왜구가 쳐들어오니, 방패와 창이 눈에 가득하고 봉화가 해를 이었습니다. 집을 불사르고 백성을 노략하매 동으로 서로 달아나 숨고 좌로 우로 도망하여, 친척과 종들이 저마다 흩어졌습니다.

저는 갯버들 같은 약한 몸이라 멀리 가지 못하고 스스로 깊은 규방에 들어 끝내 그윽한 곧음을 지켰습니다. 길 이슬에 젖지 않아 뜻밖의 화를 피하였고, 부모는 딸이 절개를 지켜 어긋나지 않았다 하여 궁벽한 곳으로 땅을 피해 초야에 붙여 산 지 이미 세 해입니다.

그러나 가을 달과 봄꽃에 마음 상하며 헛되이 보내고, 들 구름과 흐르는 물에 하염없이 날을 보냅니다. 빈 골짜기에 그윽이 살며 한평생의 기박함을 탄식하고, 홀로 좋은 밤을 지새우며 채색 난새가 홀로 춤추는 것을 슬퍼합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매 넋이 스러지고 얼이 빠지며, 여름 낮 겨울 밤에 쓸개가 찢어지고 창자가 끊어집니다.

오직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 굽어 어여삐 여겨 주십시오. 살아갈 길은 앞서 정해져 있어 업(業)은 피할 수 없으나, 타고난 명에 인연이 있다면 일찍 기쁨을 얻게 하여 주십시오. 간절히 비는 마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女旣投狀,嗚咽數聲。生於隙中,見其姿容,不能定情,突出而言曰:「向者投狀,爲何事也?」見女狀辭,喜溢於面,謂女子曰:「子何如人也,獨來于此?」女曰:「妾亦人也,夫何疑訝之有,君但得佳匹,不必問名姓,若是其顚倒也。」時寺已頹落,居僧住於一隅,殿前只有廊廡,蕭然獨存,廊盡處,有板房甚窄。生挑女而入,女不之難,相與講歡,一如人間。

여인이 글을 바치고 나서 목메어 몇 소리 울었다. 양생이 틈으로 그 모습을 보고 정을 가누지 못하여 불쑥 나서며 말하였다. 「아까 바친 글은 무슨 일 때문입니까.」

여인의 글을 보고는 기쁨이 얼굴에 넘쳐 여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홀로 여기 왔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저도 사람입니다. 무엇을 그리 의심하십니까. 그대는 다만 좋은 짝을 얻으면 될 뿐, 굳이 이름과 성을 물을 것이 없습니다. 어찌 그리 뒤집힌 말씀을 하십니까.」

그때 절은 이미 무너져 스님들이 한쪽 구석에 살았다. 전각 앞에는 다만 행랑만이 쓸쓸히 남아 있었고, 행랑 끝에 널빤지로 지은 방이 있어 몹시 좁았다. 양생이 여인을 이끌어 들어가니 여인이 어려워하지 않았다. 서로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여느 사람과 한가지였다.

將及夜半,月上東山,影入窓柯,忽有跫音,女曰:「誰耶?將非侍兒來耶?」兒曰:「唯。向日娘子,行不過中門,履不容數步,昨暮偶然而出,一何至於此極也?」女曰:「今日之事,蓋非偶然,天之所助,佛之所佑,逢一粲者,以爲偕老也。不告而娶,雖明敎之法典,式燕以遨,亦平生之奇遇也。可於茅舍,取裀席酒果來。」

밤이 깊으려 할 때 달이 동산에 올라 그림자가 창가지에 들었다. 홀연 발소리가 나니 여인이 말하였다. 「누구냐. 시중드는 아이가 온 것 아니냐.」

아이가 말하였다. 「예. 지난날 아씨께서는 걸음이 중문을 넘지 않고 신이 몇 걸음을 옮기지 않으셨는데, 어제저녁에 우연히 나오시더니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르셨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오늘 일은 우연이 아니다. 하늘이 돕고 부처가 도우시어 한 어여쁜 이를 만나 함께 늙기로 한 것이다. 아뢰지 않고 시집가는 것이 비록 밝은 가르침의 법도는 아니나, 잔치를 베풀어 노니는 것 또한 한평생의 기이한 만남이다. 초가에 가서 자리와 술과 과일을 가져오너라.」

侍兒一如其命而往,設筵於庭,時將四更也。鋪陳几案,素淡無文,而醪醴馨香,定非人間滋味。生雖疑怪,談笑淸婉,儀貌舒遲意必貴家處子,踰墻而出,亦不之疑也。觴進,命侍兒,歌以侑之,謂生曰:「兒定仍舊曲,請自製一章以侑,如何?」生欣然應之曰:「諾。」乃製滿江紅一闋,命侍兒歌之曰:

시중드는 아이가 그 말대로 가서 뜰에 자리를 베푸니 때는 장차 사경(四更)이었다. 안석과 상을 펴 놓았는데 소박하여 무늬가 없었으나, 술이 향기로워 결코 사람 세상의 맛이 아니었다.

양생이 비록 괴이하게 여겼으나 말과 웃음이 맑고 고왔고 몸가짐이 느긋하여, 반드시 귀한 집 처녀가 담을 넘어 나온 것이려니 하고 또한 의심하지 않았다.

잔이 나아가자 시중드는 아이에게 명하여 노래로 흥을 돋우게 하고 양생에게 말하였다. 「아이는 옛 가락만 알 뿐입니다. 청컨대 스스로 한 장을 지어 흥을 돋우심이 어떠합니까.」

양생이 흔연히 응하여 말하였다. 「좋습니다.」 이에 「만강홍(滿江紅)」 한 가락을 지어 시중드는 아이에게 노래하게 하였다.

惻惻春寒羅衫薄,幾回腸斷金鴨冷。晩山凝黛,暮雲張繖。錦帳鴛衾無與伴,寶▩半倒吹龍管。可惜許光陰易跳丸,中情懣。燈無焰銀屛短,徒收淚誰從款。喜今宵,鄒律一吹回暖。破我佳城千古恨,細歌金縷傾銀椀。悔昔時抱恨,蹙眉兒眠孤館。

쓸쓸한 봄추위에 비단 적삼이 얇은데 몇 번이나 애가 끊겼던가, 금 오리 향로가 차갑네. 저녁 산은 눈썹먹을 엉기고 저문 구름은 일산을 폈네. 비단 장막 원앙 이불에 짝할 이 없고 보배 □은 반쯤 기울어 용 피리를 부네. 아깝구나, 세월이 튀는 알처럼 쉬이 가는 것이 속마음이 답답하네. 등에 불꽃이 없고 은 병풍이 짧은데 부질없이 눈물을 거두니 누구를 따라 정을 나누랴. 기뻐라 오늘 밤, 추연(鄒衍)의 피리 한 가락이 따스함을 돌렸네. 무덤에 서린 천고의 한을 깨뜨리니 가늘게 「금루의(金縷衣)」를 노래하며 은 사발을 기울이네. 뉘우치노라, 지난날 한을 안고 눈썹을 찌푸리며 외로운 객관에서 잠들던 것을.

〔「보배」 다음 한 글자가 저본에 빠져 있다.〕

歌竟,女愀然曰:「曩者蓬島,失當時之約,今日瀟湘,有故人之逢,得非天幸耶。郞若不我遐棄,終奉巾櫛,如失我願,永隔雲泥。」生聞此言,一感一驚曰:「敢不從命?」然其態度不凡,生熟視所爲,時月掛西峯,鷄鳴荒村,寺鐘初擊,曙色將暝。女曰:「兒可撤席而歸,隨應隨滅不知所之。」女曰:「因緣已定,可同携手。」生執女手,經過閭閻,犬吠於籬,人行於路,而行人不知與女同歸,但曰:「生早歸何處?」生答曰:「適醉臥萬福寺,投故友之村墟也」

노래가 끝나자 여인이 슬픈 빛으로 말하였다. 「지난날 봉래섬에서 그때의 언약을 잃었으나 오늘 소상(瀟湘)에서 옛 벗을 만났으니 하늘의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낭군이 만약 저를 멀리 버리지 않으신다면 끝내 수건과 빗을 받들겠습니다. 만약 제 바람을 잃는다면 길이 구름과 진흙으로 갈리겠습니다.」

양생이 이 말을 듣고 한편 느껍고 한편 놀라 말하였다. 「어찌 감히 말씀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몸가짐이 범상하지 않아 양생이 하는 양을 자세히 보았다. 그때 달이 서쪽 봉우리에 걸리고 닭이 거친 마을에서 울며 절의 종이 처음 울리고 새벽빛이 어스름해지려 하였다.

여인이 말하였다. 「아이야, 자리를 거두고 돌아가거라.」 아이는 대답하자마자 스러져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여인이 말하였다. 「인연이 이미 정해졌으니 손을 잡고 함께 가시지요.」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마을을 지나는데, 개가 울타리에서 짖고 사람이 길을 다녔으나 길 가는 이들은 양생이 여인과 함께 가는 줄을 알지 못하고 다만 말하였다. 「선비는 이 아침에 어디로 가시오.」

양생이 답하였다. 「마침 만복사에서 취해 누웠다가 옛 벗의 마을에 들르는 길입니다.」

至詰朝,女引至草莽間,零露瀼瀼,無逕路可遵。生曰:「何居處之若此也?」女曰:「孀婦之居,固如此耳。」女又謔曰:「於邑行路,豈不夙夜,謂行多露。」生乃謔之曰:「有狐綏綏,在彼淇梁。魯道有蕩,齊子翺翔。」吟而笑傲。遂同去開寧洞,蓬蒿蔽野,荊棘參天,有一屋,小而極麗,邀生俱入,裀褥帳幃極整,如昨夜所陳。留三日,歡若平生然,其侍兒,美而不黠,器皿潔而不文,意非人世,而繾綣意篤,不復思廬,已而女謂生曰:「此地三日不下三年君當還家以顧生業也。遂設離宴以別。」生悵然曰:「何遽別之速也?」女曰:「當再會,以盡平生之願爾,今日到此弊居,必有夙緣,宜見鄰里族親,如何?」生曰:「諾。」卽命侍兒,報四鄰以會。

이튿날 아침에 여인이 이끌어 풀숲 사이에 이르니 이슬이 흥건하고 따라갈 만한 길이 없었다.

양생이 말하였다. 「사는 곳이 어찌 이러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홀로 된 여인의 거처가 본디 이러할 뿐입니다.」

여인이 또 놀리며 말하였다. 「고을 길을 가면서 어찌 이른 새벽이나 밤에 다니지 않으랴, 길에 이슬이 많다 하겠지요.」

양생이 이에 놀려 말하였다. 「여우가 어슬렁어슬렁 저 기수(淇水)의 다리에 있네. 노나라 길이 평탄하니 제나라 여인이 훨훨 가는구나.」

읊고는 웃으며 희롱하였다.

마침내 함께 개령동으로 가니 쑥대가 들을 덮고 가시나무가 하늘에 닿았는데, 집 한 채가 있어 작으나 몹시 고왔다. 양생을 맞아 함께 드니 자리와 요와 휘장이 지극히 가지런하여 어젯밤에 벌여 놓았던 것과 같았다.

사흘을 머무는데 즐거움이 한평생과 같았다. 그 시중드는 아이는 아름다우면서도 약지 않았고 그릇은 깨끗하면서도 무늬가 없어 아무래도 사람 세상이 아닌 듯하였으나, 얽힌 정이 도타워 다시 생각하지 않았다.

이윽고 여인이 양생에게 말하였다. 「이 땅의 사흘은 인간의 세 해에 못지않습니다. 낭군은 마땅히 집으로 돌아가 살림을 돌보십시오.」 마침내 헤어지는 잔치를 베풀어 작별하였다.

양생이 서운하여 말하였다. 「어찌 이별이 이리 급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마땅히 다시 만나 한평생의 바람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이 누추한 집에 이르신 것도 반드시 묵은 인연이 있어서이니, 이웃과 겨레붙이를 만나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양생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곧 시중드는 아이에게 명하여 사방 이웃에게 알려 모이게 하였다.

其一曰鄭氏。其二曰吳氏。其三曰金氏。其四曰柳氏。皆貴家巨族,而與女子,同閭閈親戚,而處子者也。性俱溫和,風韻不常,而又聰明識字,能爲詩賦,皆作七言短篇四首以贐,鄭氏態度風流,雲鬟掩鬢,乃噫而吟曰:

그 하나는 정씨, 둘은 오씨, 셋은 김씨, 넷은 유씨였다. 다 귀한 집 큰 겨레로 여인과 같은 마을에 사는 친척이며 처녀들이었다. 성품이 다 온화하고 풍운이 범상하지 않았으며, 또 총명하여 글자를 알고 시와 부를 지을 줄 알았다. 다 칠언 단편 네 수를 지어 이별에 부쳤다.

정씨는 몸가짐이 풍류로우며 구름 같은 쪽이 살쩍을 가렸는데, 이에 탄식하며 읊었다.

春宵花月兩嬋娟,長把春愁不記年。自恨不能如比翼,雙雙相戱舞靑天。

봄밤의 꽃과 달이 둘 다 고운데 긴 봄 시름을 잡고 해를 세지 않았네. 스스로 한하노니 비익조같이 되지 못하여 쌍쌍이 서로 희롱하며 푸른 하늘에 춤추지 못함을.

漆燈無焰夜如何,星斗初橫月半斜。惆悵幽宮人不到,翠衫撩亂鬢鬖*사。

옻칠한 등에 불꽃이 없으니 이 밤을 어이하랴 별들이 처음 비끼고 달도 반쯤 기울었네. 서글퍼라, 그윽한 궁에 사람이 오지 않으니 푸른 적삼이 어지럽고 살쩍이 헝클어졌네.

摽梅情約竟蹉跎,辜負春風事已過。枕上淚痕幾圓點,滿庭山雨打梨花。

매실을 던지던 정의 언약이 마침내 어그러져 봄바람을 저버린 일이 이미 지났네. 베개 위 눈물 자국이 몇 방울이나 둥근가 뜰에 가득한 산비가 배꽃을 때리네.

一春心事已無聊,寂寞空山幾度宵。不見藍橋經過客,何年裴航遇雲翹。

한 봄의 마음 일이 이미 하염없어 쓸쓸한 빈 산에 몇 밤을 지냈던가. 남교(藍橋)를 지나는 나그네를 보지 못하니 어느 해에 배항(裴航)이 운교(雲翹)를 만나랴.

吳氏,丫鬟妖弱,不勝情態,繼吟曰:

오씨는 쪽 진 머리가 요염하고 여려 정과 태를 이기지 못하였는데, 이어 읊었다.

寺裏燒香歸去來,金錢暗擲竟誰媒。春花秋月無窮恨,銷却樽前酒一盃。

절 안에 향 사르고 돌아왔건만 금돈을 가만히 던진들 마침내 누가 중매하랴. 봄꽃 가을 달에 끝없는 한을 술동이 앞 한 잔 술로 삭이네.

漙漙曉露浥桃腮,幽谷春深蝶不來。却喜隣家銅鏡合,更歌新曲酌金疊。

방울방울 새벽이슬이 복사 뺨을 적시는데 그윽한 골에 봄이 깊어도 나비가 오지 않네. 도리어 기뻐라, 이웃집 구리 거울이 맞아 다시 새 노래를 부르며 금 잔을 따르는 것이.

年年燕子舞東風,腸斷春心事已空。羨却芙蕖猶竝蔕,夜深同浴一池中。

해마다 제비는 동풍에 춤추는데 애가 끊기니 봄 마음의 일이 이미 비었네. 부럽구나, 연꽃은 오히려 꼭지를 나란히 하여 밤 깊도록 한 못 가운데 함께 목욕하는 것이.

一層樓在碧山中,連理枝頭花正紅。却恨人生不如樹,靑年薄命淚凝瞳。

한 층 누각이 푸른 산 가운데 있고 연리지 가지 끝에 꽃이 한창 붉네. 도리어 한하노니 사람의 삶이 나무만 못하여 젊은 나이에 명이 기박해 눈물이 눈동자에 엉기는 것을.

金氏,整其容儀,儼然染翰,責其前詩,淫佚太甚,而言曰:「今日之事,不必多言,但叙光景,胡乃陳懷,以失其節,傳鄙懷於人間。」遂郞然賦曰:

김씨는 몸가짐을 가다듬고 엄연히 붓을 적시더니, 앞의 시가 음탕함이 너무 심하다고 나무라며 말하였다.

「오늘 일은 굳이 말을 많이 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 자리의 경치를 펴면 될 것이지, 어찌 속마음을 늘어놓아 그 절도를 잃고 비루한 마음을 사람 세상에 전하려 하십니까.」

마침내 낭랑히 읊었다.

杜鵑鳴了五更風,寥落星河已轉東。莫把玉簫重再弄,風情恐與俗人通。

두견이 울고 나니 오경의 바람인데 쓸쓸한 은하수가 이미 동으로 돌았네. 옥 퉁소를 잡아 거듭 다시 불지 말라 바람 같은 정이 속된 사람에게 통할까 두렵네.

滿酌烏程金叵羅,會須取醉莫辭多。明朝捲地東風惡,一段春光奈夢何。

오정(烏程)의 술을 금 파라(叵羅) 잔에 가득 부으니 모름지기 취할 것이요 많다고 사양하지 말라. 내일 아침 땅을 말아 오는 동풍이 사나우면 한 자락 봄빛을 꿈엔들 어이하랴.

綠紗衣袂懶來垂,絃管聲中酒百巵。淸興未闌歸未可,更將新語製新詞。

푸른 사(紗) 옷소매를 게을리 드리우고 줄과 피리 소리 가운데 술이 백 잔이라. 맑은 흥이 다하지 않았으니 돌아갈 수 없어 다시 새 말을 가져다 새 노래를 지으리.

幾年塵土惹雲鬟,今日逢人一解顔。莫把高唐神境事,風流話柄落人間。

몇 해나 티끌이 구름 쪽에 엉겼던가 오늘 사람을 만나 한 번 낯을 폈네. 고당(高唐)의 신령한 지경의 일을 가져다 풍류의 이야깃거리로 인간에 떨어뜨리지 말라.

柳氏,淡粧素服,不甚華麗,而法度有常,沈默不言,微笑而題曰:

유씨는 담박하게 꾸미고 흰옷을 입어 그리 화려하지 않았으나 법도에 떳떳함이 있었다. 잠잠히 말이 없다가 살포시 웃으며 지었다.

確守幽貞經幾年,香魂玉骨掩重泉。春宵每與姮娥伴,叢桂花邊愛獨眠。

그윽한 곧음을 굳게 지킨 지 몇 해던가 향기로운 넋과 옥 같은 뼈가 깊은 샘에 묻혔네. 봄밤마다 항아(姮娥)와 짝하여 떨기 계수 꽃 가에서 홀로 자기를 사랑하였네.

却笑春風桃李花,飄飄萬點落人家。平生莫把靑蠅點,誤作崑山玉上瑕。

우습구나, 봄바람의 복사와 오얏꽃이 나부껴 만 점으로 남의 집에 떨어지는 것이. 한평생 쉬파리의 점을 가져다 곤륜산 옥 위의 티로 잘못 만들지 말라.

脂粉慵拈首似蓬,塵埋香匣綠生銅。今朝幸預鄰家宴,羞看冠花別樣紅。

연지와 분을 잡기 게을러 머리가 쑥 같고 티끌이 향 갑을 묻어 구리에 푸른 녹이 슬었네. 오늘 아침 다행히 이웃집 잔치에 끼어 머리에 꽂은 꽃이 남달리 붉은 것을 부끄러이 보네.

娘娘今配白面郞,天定因緣契闊香。月老已傳琴瑟線,從今相待似鴻光。

아씨가 이제 흰 얼굴의 낭군과 짝하니 하늘이 정한 인연이라 고락을 함께함이 향기롭네. 달 늙은이가 이미 거문고와 비파의 줄을 전하였으니 이제부터 서로 대하기를 양홍(梁鴻)과 맹광(孟光)같이 하라.

女乃感柳氏終篇之語,出席而告曰:「余亦粗知字畵,獨無語乎。」

여인이 이에 유씨가 끝 편에 한 말에 느꺼워 자리에서 나와 아뢰었다. 「저도 또한 글을 대강 아는데 어찌 홀로 말이 없겠습니까.」

乃製近體七言四韻,以賦曰:

이에 근체 칠언 사운(四韻)을 지어 읊었다.

開寧洞裏抱春愁,花落花開感百憂。楚峽雲中君不見,湘江竹下泣盈眸。

개령동 안에서 봄 시름을 안고 꽃이 지고 꽃이 피매 온갖 근심에 느꺼웠네. 초협(楚峽)의 구름 속에 그대를 보지 못하고 상강(湘江)의 대 아래 눈물이 눈에 가득하였네.

晴江日暖鴛鴦竝,碧落雲銷翡翠遊。好是同心雙綰結,莫將紈扇怨淸秋。

갠 강에 해가 따스하니 원앙이 나란하고 푸른 하늘에 구름이 스러지니 물총새가 노네. 좋구나, 한마음으로 쌍쌍이 맺는 것이 비단부채로 맑은 가을을 원망하지 말라.

生亦能文者。見其詩法淸高,音韻鏗鏘,唶唶不已。卽於席前,走書古風長短篇一章,以答曰:

양생 또한 글을 할 줄 아는 이였다. 그 시법이 맑고 높으며 소리와 운이 쟁쟁한 것을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곧 자리 앞에서 고풍 장단편 한 장을 붓 달려 써 답하였다.

今夕何夕,見此仙姝。花顔何婥妁,絳脣似櫻珠。風騷尤巧妙,易安當含糊。織女投機下天津,嫦娥抛杵離淸都。靚粧照此玳瑁筵,羽觴交飛淸讌娛。殢雨尤雲雖未慣,淺斟低唱相怡愉。自喜誤入蓬萊島,對此仙府風流徒。瑤漿瓊液溢芳樽,瑞腦霧噴金猊爐。白玉牀前香屑飛,微風撼波靑紗廚。眞人會我合巹巵,綵雲冉冉相縈紆。君不見文簫遇彩鸞,張碩逢杜蘭。人生相合定有緣,會須擧白相闌珊。娘子何爲出輕言,道我掩棄秋風紈。世世生生爲配耦,花前月下相盤桓。

오늘 저녁은 어떤 저녁인가 이 신선의 여인을 만났네. 꽃 같은 얼굴은 어찌 그리 곱고 붉은 입술은 앵두 구슬 같은가. 시 짓는 솜씨는 더욱 공교로우니 이안(易安)도 마땅히 말을 머금으리. 직녀가 베틀을 던지고 하늘 나루를 내려왔고 항아가 절굿공이를 놓고 맑은 도읍을 떠났네. 곱게 단장하여 이 대모(玳瑁) 자리를 비추고 깃 술잔이 오가며 맑은 잔치가 즐겁네. 비에 젖고 구름에 얽히는 일은 익숙하지 않으나 얕게 따르고 낮게 노래하며 서로 기뻐하네. 스스로 기뻐라, 잘못 봉래섬에 들어 이 신선 마을의 풍류로운 무리를 마주한 것이. 아름다운 술과 옥 같은 즙이 향기로운 동이에 넘치고 서뇌향(瑞腦香)이 금 사자 향로에서 안개처럼 뿜네. 흰 옥 평상 앞에 향가루가 날고 가벼운 바람이 푸른 사(紗) 휘장을 물결처럼 흔드네. 참사람이 나를 만나 합환주 잔을 나누니 채색 구름이 하늘하늘 서로 감도네.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문소(文簫)가 채란(彩鸞)을 만나고 장석(張碩)이 두란(杜蘭)을 만난 것을. 사람이 살며 서로 만나는 데는 정해진 인연이 있으니 모름지기 잔을 들어 흥이 다하도록 하세. 아씨는 어찌하여 가벼운 말을 내어 내가 가을바람에 부채를 버리듯 하리라 이르는가. 세세생생 짝이 되어 꽃 앞 달 아래 서로 노닐리라.

酒盡相別,女出銀椀一具,以贈生曰:「明日,父母飯我于寶蓮寺。若不遺我,請遲于路上,同歸梵宇,同覲我父母,如何?」生曰:「諾。」

술이 다하여 서로 헤어지려 할 때 여인이 은 사발 하나를 내어 양생에게 주며 말하였다. 「내일 부모께서 저를 위해 보련사에서 밥을 올리십니다. 만약 저를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길 위에서 기다리셨다가 함께 절로 가서 제 부모를 함께 뵈옵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양생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生如其言,執椀待于路上,果見巨室右族,薦女子之大祥車馬騈闐上于寶蓮,見路傍,有一書生,執椀而立,從者曰:「娘子殉葬之物,已爲他人所偸矣。」主曰:「如何?」從者曰:「此生所執之椀。」遂聚馬以問,生如其前約以對,父母感訝良久曰:「吾止有一女子,當寇賊傷亂之時,死於干戈,不能窀窆,殯于開寧寺之間,因循不葬,以至于今。今日大祥已至,暫設齌筵,以追冥路。君如其約,請竢女子以來,願勿愕也。」言訖先歸。

양생이 그 말대로 사발을 들고 길 위에서 기다리니, 과연 큰 집의 이름난 겨레가 딸의 대상(大祥)을 지내러 수레와 말이 잇달아 보련사로 오르는 것이 보였다.

길가에 한 서생이 사발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 따르는 이가 말하였다. 「아씨와 함께 묻은 물건을 이미 남이 훔쳐 갔습니다.」

주인이 말하였다. 「무슨 말이냐.」

따르는 이가 말하였다. 「저 서생이 들고 있는 사발입니다.」

마침내 말을 세우고 물으니 양생이 앞서의 언약대로 대답하였다. 부모가 느껍고 놀라 한참 있다가 말하였다.

「내게 딸 하나가 있었는데, 도적이 쳐들어와 어지럽던 때에 방패와 창에 죽어 제대로 묻지 못하고 개령사 사이에 임시로 두었다가, 미루고 미루어 장사 지내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소. 오늘 대상이 이미 이르러 잠시 재(齋) 자리를 베풀어 저승길을 좇으려 하오. 그대가 그 언약대로 하려거든 청컨대 딸아이가 오기를 기다리되 놀라지 마시오.」

말을 마치고 먼저 돌아갔다.

生佇立以待。及期,果一女子,從侍婢,腰裊而來,卽其女也。相喜携手而歸,女入門禮佛,投于素帳之內,親戚寺僧,皆不之信,唯生獨見,女謂生曰:「可同茶飯。」生以其言,告于父母。父母試驗之,遂命同飯,唯聞匙筋聲,一如人間。父母於是驚歎,遂勸生,同宿帳側,中夜言語琅琅,人欲細聽,驟止其言曰:「妾之犯律,自知甚明。少讀詩書,粗知禮義,非不諳褰裳之可愧,相鼠之可赧,然而久處蓬蒿,抛棄原野,風情一發,終不能戒。曩者,梵宮祈福,佛殿燒香,自嘆一生之薄命,忽遇三世之因緣。擬欲荊▩椎▩,奉高節於百年,羃酒縫裳,修婦道於一生。自恨業不可避,冥道當然,歡娛未極,哀別遽至。今則步蓮入屛,阿香輾車,雲雨霽於陽臺,烏鵲散於天津,從此一別,後會難期。臨別凄惶,不知所云。」送魂之時,哭聲不絶,至于門外,但隱隱有聲曰:

양생이 우두커니 서서 기다렸다. 때가 되자 과연 한 여인이 시중드는 계집종을 데리고 허리를 하늘거리며 왔으니 곧 그 여인이었다. 서로 기뻐 손을 잡고 돌아갔다.

여인이 문에 들어 부처께 예를 올리고 흰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친척과 절의 스님들이 다 믿지 않았고 오직 양생만이 보았다.

여인이 양생에게 말하였다. 「함께 차와 밥을 드시지요.」

양생이 그 말을 부모께 아뢰었다. 부모가 시험해 보려고 마침내 함께 먹게 하니, 다만 수저 소리만 들리는 것이 여느 사람과 한가지였다. 부모가 이에 놀라 탄식하고 마침내 양생에게 권하여 장막 곁에서 함께 자게 하였다.

밤중에 말소리가 낭랑하였는데 사람이 자세히 들으려 하면 문득 그 말을 그쳤다. 여인이 말하였다.

「제가 법도를 어긴 것은 스스로 매우 밝게 압니다. 어려서 시와 글을 읽어 예와 의를 대강 아니, 치마를 걷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요 쥐를 노래한 시가 낯 붉힐 일임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쑥대밭에 머물러 들판에 버려졌으매 바람 같은 정이 한 번 일자 끝내 삼가지 못하였습니다.

지난날 절집에서 복을 빌고 불전에 향을 사르며 한평생의 기박한 명을 스스로 탄식하다가, 홀연 삼세(三世)의 인연을 만났습니다. 가시나무 비녀에 방망이 쪽을 하고 백 년의 높은 절개를 받들며, 술을 거르고 옷을 지어 한평생 아내의 도리를 닦으려 하였습니다.〔「형(荊)」과 「추(椎)」 다음 한 글자씩이 저본에 빠져 있다.〕

스스로 한하노니 업(業)은 피할 수 없고 저승길은 그러한 것이라, 기쁨이 다하기도 전에 슬픈 이별이 문득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연꽃을 밟고 병풍으로 들어가며 아향(阿香)이 수레를 굴리니, 구름과 비가 양대(陽臺)에서 개고 까막까치가 하늘 나루에서 흩어집니다. 이로부터 한 번 헤어지면 뒷날 만남을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헤어짐에 임하여 서글프고 황망하여 무어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넋을 보낼 때 곡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문 밖에 이르러 다만 은은히 소리가 있어 이르기를,

冥數有限,慘然將別。願我良人,無或踈闊。哀哀父母,不我匹兮。漠漠九原,心糾結兮。

저승의 셈에 한이 있어 참담히 이별하려 합니다. 바라건대 우리 좋은 분이여 행여 멀리하지 마십시오. 슬프고 슬픕니다, 부모님이여 저를 짝지어 주지 못하셨습니다. 아득한 구천에 마음이 얽히고 맺힙니다.

餘聲漸滅,嗚哽不分,父母已知其實,不復疑問。生亦知其爲鬼,尤增傷感,與父母聚頭而泣,父母謂生曰:「銀椀任君所用。但女子,有田數頃,蒼赤數人,君當以此爲信,勿忘吾女子。」

남은 소리가 점점 스러져 목이 메어 가려들을 수 없었다. 부모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다시 의심하여 묻지 않았다. 양생도 또한 그가 귀신인 줄 알고 서러움이 더욱 더하여 부모와 머리를 맞대고 울었다.

부모가 양생에게 말하였다. 「은 사발은 그대가 쓰는 대로 맡기겠소. 다만 딸아이에게 밭 몇 이랑과 종 몇 사람이 있으니, 그대는 마땅히 이것으로 믿음을 삼아 내 딸을 잊지 마시오.」

翌日,設牲牢朋酒,以尋前迹,果一殯葬處也。生設奠哀慟,焚楮鏹于前,遂葬焉。作文以弔之曰:

이튿날 희생과 술을 갖추어 앞서의 자취를 찾으니 과연 임시로 묻어 둔 곳이었다. 양생이 제물을 차려 놓고 애통해하며 앞에서 종이돈을 사른 뒤 마침내 장사 지냈다. 글을 지어 조문하였다.

「惟靈,生而溫麗,長而淸渟。儀容侔於西施,詩賦高於淑眞,不出香閨之內,常聽鯉庭之箴。逢亂離而璧完,遇寇賊而珠沈。托蓬蒿而獨處,對花月而傷心。腸斷春風,哀杜鵑之啼血,膽裂秋霜,歎紈扇之無緣。嚮者,一夜邂逅,心緖纏綿。雖識幽明之相隔,實盡魚水之同歡。將謂百年以偕老,豈期一夕而悲酸。月窟驂鸞之姝,巫山行雨之娘,地黯黯而莫歸,天漠漠而難望。入不言兮恍惚,出不逝兮蒼茫。對靈幃而掩泣,酌瓊漿而增傷。感音容之窈窈,想言語之琅琅。嗚虖哀哉。爾性聰慧,爾氣精詳。三魂縱散,一靈何亡。應降臨而陟庭,或薰蒿而在傍。雖死生之有異,庶有感於些章。」

「생각건대 넋이시여. 나면서 온화하고 고왔으며 자라서는 맑고 깊었습니다. 몸가짐은 서시(西施)에 견주었고 시와 부는 주숙진(朱淑眞)보다 높았으나, 향기로운 규방 밖을 나서지 않고 늘 아버지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난리를 만나서도 구슬이 온전하였고, 도적을 만나서 구슬이 잠겼습니다. 쑥대에 붙어 홀로 지내며 꽃과 달을 마주해 마음 상하였습니다. 봄바람에 애가 끊겨 두견이 피 토하며 우는 것을 슬퍼하였고, 가을 서리에 쓸개가 찢겨 비단부채가 인연 없음을 탄식하였습니다.

지난날 하룻밤에 우연히 만나 마음의 실이 얽히었습니다. 비록 저승과 이승이 서로 갈린 줄 알았으나 실로 물고기와 물의 즐거움을 다하였습니다. 장차 백 년을 함께 늙으리라 여겼는데 어찌 하룻저녁에 슬픔이 이를 줄 알았겠습니까.

달나라에서 난새를 타던 여인이여, 무산에서 비를 뿌리던 아씨여. 땅은 어둡고 어두워 돌아갈 수 없고 하늘은 아득하고 아득하여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들어와도 말이 없어 어슴푸레하고 나가도 가지 않아 아득합니다.

넋의 휘장을 마주해 낯을 가리고 울며 아름다운 술을 부으며 서러움을 더합니다. 소리와 모습이 아득함에 느껍고 말소리가 낭랑하던 것을 생각합니다.

아아 슬픕니다. 그대의 성품은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그대의 기운은 정밀하고 자세하였습니다. 세 넋이 비록 흩어졌으나 한 신령이야 어찌 없어지겠습니까. 마땅히 내려와 뜰에 오르시고 혹 향기로 곁에 계시겠지요. 비록 죽고 사는 것이 다르나 바라건대 이 글에 느끼심이 있으시기를.」

後極其情哀,盡賣田舍,連薦再三夕,女於空中,唱曰:「蒙君薦拔,已於他國,爲男子矣。雖隔幽明,寔深感佩。君當復修淨業,同脫輪回。」

뒤에 그 정과 슬픔을 다하여 밭과 집을 다 팔아 잇달아 두세 저녁을 재를 올렸다. 여인이 공중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그대의 천도를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사내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저승과 이승이 갈렸으나 참으로 깊이 느껍고 마음에 새깁니다. 그대는 마땅히 다시 맑은 업을 닦아 함께 윤회에서 벗어나십시오.」

生後不復婚嫁,入智異山採藥,不知所終。

양생은 뒤에 다시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었는데, 어디서 마쳤는지 알지 못한다.